소설리스트

9장. (16/28)

9장.

[파티/소환신-신성제국: 키키님ㅠㅠ 제가 못나서 죄송합니다아... 열심히 배울게요ㅠㅠ]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아니에요. 저도 처음가는 거라 장담은 못 해드리고요]

[파티/매익화-신성제국: 공략집 안 보고 온 건 아닐거고^^]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직접 하는 건 그거랑 다르니까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옙 저도 공략집 많이 봐서 괜찮습니다! 근데 자게에서 추천하는 팁같은거 보고 스킬배치랑 연계 짜긴 했는데 이거 봐주실 수 있나요? 또 트리도 제가 아직 3개밖에 못 뚫어서 공&적중 있는 트리로 끼고 다니는데 공속하고 적중 수치 좀 봐주세요. 스샷 떠서 공략 끝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트리는 그때마다 다르긴 한데 기본적으로 공&적중이 맞아요. 연계는 들어가서 제가 직접 볼게요. 사역마는 1보스전까지는 소환하지 마세요. 1보스전 끝나고 사역마하고 손발 맞는 거 볼게요. 도핑은 자연량, 마력증강 쪽으로 하시고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넵넵 감사합니다ㅠㅠ 가능하면 위치도 봐주세요ㅠㅠ 제가 근접딜하던 버릇이 남아서 거리나 위치 잡기가 애매해서요]

[파티/키키아-신마제국: 네. 일단 들어가죠]

[파티/신강-신성제국: 일단 처음이니 운전은 천천히 하겠습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준비하자 다들]

매익화의 말에 여기저기 뻗어 앉아있던 길드원들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핑은 던전에 들어가서 할 요량인지, 대부분 그냥 펄쩍펄쩍 뛰며 손만 풀고 있었다. 이윽고 화면 중앙에 [로크아의 던전-난이도(중)으로 입장합니다]라는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캐릭 주변으로 눈 부신 빛이 솟구쳤다. 캐릭이 희미하게 변한 직후 화면은 로딩화면으로 전환되었다.

로딩 시간 동안 화면에는 추가된 메인 시나리오에 대한 영상이 흘러나왔다. 로크아의 던전 깊숙한 곳에서 레비아탄이 파괴의 신 ‘로크아’를 깨우는 의식을 행하는 모습이었다. 의식의 영창과 함께 레비아탄의 혼이 순식간에 거대한 구체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마지막으로 주술사가 숨을 거두면서 파괴의 신 ‘로크아’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용의 머리에 사자의 몸통과 아홉 개의 가시 같은 꼬리를 가진 괴수였다. 몸 전체는 두꺼운 검은색 비늘로 덮여 있어 단순한 공격은 바로 튕겨낼 것 같은 모습이었다. 숨을 크게 몰아쉬던 로크아의 노란색 눈이 번쩍 뜨인 것과 동시에 거대한 던전 안으로 포효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영상은 거기서 끝이 났다. 직후, 로딩화면이 전환되고 모두는 던전 안으로 무사히 귀환되었다.

[파티/딜러리-신성제국: 워워;; 겁나 무섭게 생겼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자 그럼 키키님은 열일 좀 하시고 우리는 천천히 가볼까]

[파티/신강-신성제국: 도핑ㄱ]

신강의 말에 길드원들 모두 풀도핑에 들어갔다. 서련도 킬리를 소환하고 도핑 후 소환신 곁으로 붙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소환신님은 제 옆으로 붙어서 따라오시면 돼요. 아, 미리 말하지만 저는 딜 안합니다. 대신 킬리 보낼 테니 걱정마세요. 저보단 세니까]

[파티/실키르-신성제국: 킬리넼ㅋㅋㅋㅋㅋㅋ 킬리야 이리온]

[파티/댕청이-신성제국: 반짝반짝 간지쩔엌ㅋㅋㅋㅋ]

[파티/소환신: 킬리야ㅠㅠ 어우ㅠㅠ 저도 저 외형 갖고 싶었는데ㅠㅠ]

킬리의 저 붉은 드래곤 외형은 이제 찾아도 없을 것이다. 워낙 초창기에 나왔던 거라 유저들이 외형이나 결제에 관심도 없었던 때이기도 했고, 당시 워낙 고가로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외형이기도 했으니까. 서련도 돈 쓰기 아쉬운 학생 때라 매일 밤 손만 빨며 바라보던 때이기도 했다.

[파티/신강: ㄱㄱ]

신강의 출발신호를 시작으로 모두는 순식간에 대열을 갖춰 움직였다. 제일 선두에는 탱커인 신강과 댕청이가, 중간에는 날렵한 회피기를 가진 딜러들이, 맨 뒤로는 힐러와 법사계열인 실키르와 소환신, 그리고 서련이 뒤따라 움직였다.

로크아는 총 5명의 중간 보스를 거쳐 마지막 보스로 향하는 긴 여정의 던전이었다. 조심해야 할 보스는 첫 번째 중간보스와 다섯 번째 중간 보스였다. 여기서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했고, 전멸도 수시로 일어났다.

그래도 다행인 게 있다면, 다들 경험치 떨굴 일 없는 만렙이라는 점이랄까.

서련의 시선이 힐끗 길드창으로 향했다. 어째서인지 유난히 조용한 게 뭐랄까.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그건 서련의 옆에서 뭘 하는지 모를 세 명의 비글들도 그랬다. 도저히 쳐다볼 용기가 안 나 쳐다보진 못했지만,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는 걸로 봐선 무언가를 하긴 하는 모양이었다.

[파티/신강-신성제국: 뗏목 탈게요. 가자마자 바로 은신병들 있으니까 바로바로 쫓아와 주세요. 특히 실키는 바로 와서 힐줘]

어느 정도 이동하자, 늪지대와 함께 작은 뗏목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뗏목에 마우스를 가져다 대자 공략집에서 봤던 대로 활성화가 되었다.

뗏목을 탈 수 있는 인원은 한 번에 두 명씩이었다. 두 명이 건널목에 도착할 때까지 뗏목은 다시 생겨나지 않았기에 처음에 탱커가 가서 몸빵으로 버티고 있을 때 두 번째 팀인 힐러가 가서 재빨리 힐을 하고 다음 팀이 올 때까지 버텨내야 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소환신님은 저랑 같이 마지막에 타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넵!]

곧 신강을 시작으로 모두 차례차례 뗏목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서련 차례가 당도했다. 던전의 시작은 뗏목을 건넌 것과 동시에 시작이었다. 아마 손발이 맞지 않는 파티는 저기서 첫 번째 전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파티/신강-신성제국: 끼룩아 가호 되냐]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ㅇㅇ]

다행히 서련이 도착했을 때 파티원들은 제법 잘 싸워주고 있었다. 서련은 뗏목에서 내리자마자 허겁지겁 대열에 편입해 딜을 넣는 소환신을 보며 그의 패턴을 자세히 관찰했다. 물론 킬리를 몹들에게 보내며.

음... 문제가 있긴 있네. 매익화가 왜 소환신의 교습을 부탁했는지 알 것 같았다. 서련은 쫄몹만 가끔씩 사냥해주며 우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소환신을 관찰했다.

그 행동은 우여곡절 끝에 1번 보스방에 진입할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소환이랑 키룩이는 쫄몹 나오는 대로 상대고 신강이는 되도록 혼자 어글 먹는 걸로 가. 댕청이는 실키 피통 확인하면서 위급하면 동행 써주고 개비는 구슬 시간마다 맞추는 거 잊지 마라]

1번 보스 방에 진입하기 전에 매익화는 공략집에 나온 대로 길드원들을 모아 설명하기 시작했다. 1번 보스가 어려운 점은 방구석에 설치된 4개의 구슬이 일정 시간마다 힘을 불려 보스의 힘을 증폭시킨다는 것이었다. 구슬에 빛이 들어오면 약 3초 내에 쏴 맞춰야 증폭이 사라지는데, 문제는 4개의 구슬에 빛이 들어오는 순서가 랜덤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점은, 방구석 한쪽에 거대한 구슬을 든 채 서 있는 ‘파편’이라는 이름을 가진 후드를 뒤집어쓴 몹이었다.

그 몹은 보스를 공격하기 전에는 몹으로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보스전이 시작되면 활성화가 되는데,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공격을 하거나 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목석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보스가 죽는 순간 연기가 되어 사라지는데, 그때 들고 있는 구슬이 바닥에 툭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테스트섭 유저들을 여기에 어떤 수수께끼가 있다고 생각해 공략하기 위한 많은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그냥 공격해도 파편의 몹은 그대로 명을 달리하며 구슬을 떨어뜨리고 죽는다. 추천 직업으로 뜨는 소환사로 죽여도 결과는 같았다. 혹시나 그가 가진 구슬을 빼앗는 게 목적이 아닐까 싶어서 몇몇 유저들이 ‘포식’이라는 희귀 아이템 드랍률을 높여주는 소환사 전용 스킬을 써봤지만, 그것도 수수께끼의 열쇠는 아니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저 ‘파편’이라는 몹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은 채였다.

[파티/신강-신성제국: 도핑 끝내면 바로 갈게요]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소환신님은 여기서 그냥 사역마 소환해서 싸울게요. 그리고 지금부터 영상 가능하시면 찍고 안되면 초마다 뜨는 스샷 찍어주세요.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마시고 광역기 뜰 때만 입구 쪽으로 빠질게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넵!]

소환신이 소환한 사역마는 앙증맞은 라쿤이었다. 매너 1강이라고, 아직 1강밖에 강화가 되어 있지 않은 게 아쉽긴 했지만, 그거야 앞으로 차차 늘리면 되는 거고.

[파티/키키아-신마제국: 그리고 증폭 쿨 되는 대로 써주세요. 사역마는 당연히 전투모드로 해 놓으시고 보스는 적중 높아도 상태이상 잘 안 걸리니까 딜 높은 스킬 위주로 쓰되, 쿨은 짧은 것부터 먼저 돌아가면서 쓰세요. 그리고 한 번 엇갈렸다고 아무거나 누르지 마시고 쿨 돌 때까지 증폭이나 회피 쓰면서 패턴 다시 찾으세요. 보스전은 그게 효율이 좋아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넵넵ㅠㅠ 죄송합니다아ㅠㅠ]

[파티/신강-신성제국: 더 혼내세요ㅋㅋㅋㅋㅋㅋ 저희말은 죽어도 안듣습니닼ㅋㅋㅋㅋㅋ]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아옼ㅋㅋㅋㅋ 우리는 뭐 개짖는 말이여ㅋㅋㅋㅋ 내가 뭐랬냐고 막 누르지 말라고 했자너]

혼내는 것처럼 보이나. 딴에는 굉장히 조곤조곤 말한 건데 저렇게 나오는 걸 보니 혼내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서련은 변론할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그게 버릇 고치는 데 더 효과가 좋을 수도 있으니까.

[파티/신강-신성제국: 갈게요]

모두 준비를 마쳤다고 생각한 신강이 드디어 1번 보스방의 문을 두드렸다. 끼익 소리와 함께 열린 방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있었다. 그 사이를 신강과 댕청이가 먼저 빠르게 파고들자 사슬 소리와 함께 피의 심판을 외치는 원령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서련과 소환신은 제일 마지막에 보스방으로 들어갔다. 방의 구석마다 놓인 4개의 구슬은 아처인 성냔개비가 맡기로 했다. 눈치를 보며 보스를 때리다가도 구슬에 빛이 들어오면 모두 보스를 중심으로 구슬의 번호를 매겨 알려주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4번]

[파티/실키르-신성제국: 4]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4]

뛰어난 스피드로 날아오르듯 이동한 성냔개비의 화살이 정확히 4번 구슬에 닿았다. 생각보다 좋은 팀워크였다. 게다가 어설프긴 했지만, 소환신 역시 서련이 조언해준 대로 스킬이 꼬이면 버프를 한 번 돌리고 다시 패턴을 찾아 보스에 대항했다.

다들 간당간당한 피를 유지하면서도 그런대로 잘 싸우고 있었다. 한 번 전멸할 뻔하긴 했지만, 킬리를 방어모드로 돌리고 탱커 노릇을 해주자 약물과 힐로 재빨리 안정을 찾고 다시 안정적인 리딩으로 공략하기 시작했다.

서련의 눈에 ‘파편’이 들어온 건 몹의 피가 약 5% 정도 남았을 때였다.

“…저걸 어째야 하지.”

파편이 들고 있는 커다란 구슬. 분명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당최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서련에게 별안간 매익화의 요청이 들어왔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키키님 포식 좀 써주시는건 어떤지^^]

저건 끝까지 웃는 눈이다. 서련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바로 보스몹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남은 피가 약 2%로였다. 포식은 죽지 전에 써야 아이템 희귀 드랍 확률을 높일 수 있으니, 지금 쓰는 게 맞았다.

재빨리 포식 스킬을 쓰자 어째 캐릭이 보스몹이 아닌 구슬을 들고 있는 파편을 바라보았다. 서련은 뒤늦게야 제가 대상지정을 바꾸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포식 스킬은 보스가 아닌 구슬을 들고 있는 파편에게 들어가 버렸다.

서련의 지시에 보스를 열심히 공격하던 킬리가 대뜸 머리에 느낌표를 띄우더니 곧장 파편 쪽으로 달려들어 그 몸을 왁왁 씹기 시작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아]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죄송요. 실수했어요]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일부러 그런건?]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아니긴 한데 소환신님이 넣는 건 어떠신지]

서련은 소환사가 떡 하니 있는데 왜 제게 시키냐는 불만을 담아 말했다. 그 말에 매익화는 별말 없이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게, 소환사의 포식 스킬은 퍼센티지가 없어 누가 넣어도 똑같은 확률이 적용되기 때문이었다.

-철의 심판자를 해치웠습니다.

-2398613의 경험치를 획득 하였습니다.

-‘파편의 구슬’을 획득하였습니다.

[파티/신강-신성제국: 파편의 구슬은 뭔?]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 공략에 저런거 있었음?]

[파티/실키르-신성제국: 니들 뭐 했냐?;;]

[파티/댕청이-신성제국: 전체 화면에 뜬 거 보면 드랍템은 아닌것 같은디]

[파티/딜러리-신성제국: 아직 룻도 안했어]

[파티/소환신-신성제국: 저 키키님... 킬리가 뭐 물고 있는데요]

서련은 의아함 가득한 시선으로 안개를 뚫고 달려오는 킬리를 바라보았다. 소환신의 말대로 킬리는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파편이 들고 있던 투명한 구슬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서련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시스템창을 뒤지기 시작했다.

휠을 올리자 곧 원하는 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포식’을 사용하였습니다.

-‘파편의 구슬’을 빼앗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 던전에 소환사가 필요한 이유. 어렴풋이 무언가가 잡힐 듯했다. 의아한 게 있다면, 이 방법은 이미 테스트 서버에서 시도해본 사례라는 것이었다. 한데 테스트 서버에서는 구슬을 얻었다는 말이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구슬의 역할. 아직 이게 애매모호 했다. 킬리가 그저 구슬을 가만히 물고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봤지만, 가만히 눈만 깜빡이는 게 룻을 하는 용도는 아니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킬리 간식생겼네]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아니 근데 테섭에서도 파편한테 포식 썼었다고 했는데 그때는 안 저랬지 않음?]

[파티/신강-신성제국: 확률이었을 지도 모르지]

[파티/댕청이-신성제국: 아 그거 말 되네. 이 뒤에도 보스방에 구슬 든 넘들 있었나?]

[파티/실키르-신성제국: ㄴㄴ 없음]

[파티/신강-신성제국: 일단 출발할게요. 키키님 시간없다 했으니까]

확률. 그거라면 어느 정도 말이 됐다. 그래도 역시 의문은 남아 있긴 했다. 테섭에서 수많은 방법으로 시도해봤을 텐데, 한 번 안 됐다고 바로 포기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 번도 건지지 못한 데에는 확률보다는 어떤 조건이리라.

예를 들면….

“…사역마의 강화 단계라든가.”

포식 스킬은 기본적으로 사역마가 가서 먹어 치우면서 쓰는 스킬이다. 원인이 있다면 캐릭보다는 사역마 쪽에 있을 확률이 더 클 것이다. 그러나 애초 포식 스킬에는 확률을 높이는 그런 퍼센티지가 아예 없다. 근데 그게 로크아 던전에서는 적용된다? 이러나저러나 참 논하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결국 서련은 의문만 잔뜩 떠안은 채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1번 보스의 룻을 하자마자 모두는 곧장 2번 방의 보스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도착한 2번 보스방에서 모두는 테스트섭에서 공략된 정보와 다르다는 걸 완벽히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게….

[파티/신강-신성제국: 저 구슬든 넘 없다고 하지 않았냐...?]

[파티/댕청이-신성제국: 킬리야 이리온. 우쭈쭈 저것좀 죽이고 오렴]

공략집에 없던 구슬을 든 ‘파편’이 2번째 보스방 구석에 떡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후드를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 머리에 달랑 이름만 떠 있는 채였다.

그걸 보자마자 서련은 즉각 소환신에게 말을 걸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소환신님. 보스 공격 들어가면 포식 스킬 저 파편한테 넣어보세요. 확률이면 실패 가능하니까 계속 넣어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넵]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일단 준비]

2번 방 보스는 비교적 공략이 쉽기 때문에 모두는 곧장 공략에 들어갔다. 그리고 공략이 시작됨과 동시에 소환신은 파편에게 포식 스킬을 넣었다. 다행히 포식이 딜 전용 스킬이 아니라 데미지가 적게 들어가는 편이라, 연속적인 스킬 사용이 가능했다.

몇 번 더 시도하던 소환신은 파편의 피가 찔끔 남았을 때에야 뒤로 물러났다.

[파티/소환신-신성제국: 저는 안되는 것 같은데요;; 키키님이 하셔야 될것 같아요ㅠㅠ]

서련은 보스의 피통을 보다 즉시 대상을 바꾸고 파편에게 포식을 넣었다. 보스를 열심히 공격하던 킬리는 서련의 앞에 구슬을 툭 내려놓고 곧장 파편에게 달려들어 온몸을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면에는 예상했던 그대로의 글이 떠올랐다.

-‘포식’을 사용하였습니다.

-‘파편의 구슬’을 빼앗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화면 중앙에 파편의 구슬 소식이 뜬 것과 동시에 길드원들의 보스공략도 끝이 났다. 킬리는 다시 구슬을 입에 물고 서련에게 다다닥 달려왔다. 놀랍게도 서련의 앞에 있던 구슬은 킬리가 물고 있는 구슬로 흡수당했다. 킬리가 문 구슬의 약간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붉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아마도 사역마 강화에 따라 확률변경되는 거 같네]

[파티/딜러리-신성제국: 아니 그럼 어느정도까지 강화를 해야 저걸 뺏는데;;]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테섭에서 시도했던 비셥이 7강 했었는데 소용없었던거 보면 그 이상일거 같은데]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미쳣? 아낰ㅋㅋㅋㅋㅋㅋ 7강 이상이 쉬운줄 아나ㅋㅋㅋㅋㅋㅋㅋ 키키님 뭐라 말 좀 해주세요ㅠㅠ]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음 어렵죠... 정말 힘든데]

서련도 지금이야 빛을 본 거지, 말도 못 하게 고생했었다. 포기할까 싶던 순간이 15강 때쯤이었나. 킬리를 보고 버텼지만, 사실 지금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7강 정도면 몇 번 도전하면 얻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다발적으로 도전을 안 했을 뿐이지. 7강 정도면 다발성으로 도전하기 전에 파편이 죽을 수도 있고.

[파티/실키르-신성제국: 아 그래서... 킬리가 풀강이라 한 번에 되는 거구나. 아... 이해됐다]

서련은 구슬을 입에 문 채 반짝반짝한 시선으로 저를 보는 킬리의 모습에 다시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너무 예뻤다. 포기하지 않길 아주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더불어 킬리도.

서련은 그래도 이해해 주겠지, 라는 심정으로 킬리의 목덜미를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눈을 둥글게 접은 킬리가 꼬리를 휙휙 흔들어대는 게 보였다. 소환사가 사역마에게 쓸 수 있는 호감도 모션이었다.

모션은 기본 3개에서 캐쉬로 살 수 있는 것까지 도합 10개 이상이 있는데, 서련은 캐쉬로 나온 모든 모션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비싼 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목덜미 쓰다듬기 모션이었다. 물론 전부 하진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진짜였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쪼물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소환신-신성제국: 우리 라쿠니는 언제 저렇게 클라나...ㅠㅠ]

[파티/매익화-신성제국: 그럼 다음 보스방에도 파편이 나올 확률이 높겠네 흠]

[파티/댕청이-신성제국: 일단ㄱㄱ]

40분이나 지났는데, 이제 겨우 2번 보스였다. 이대로 가다간 2시간 뒤에 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아니, 진짜 죽이겠다고 쫓아올지도 몰랐다.

서련은 일단 상황 봐서 공략팀에 딜러로서 가담하기로 하고, 매익화 길드원들의 뒤를 따라나섰다.

다행히 3번 방과 4번 방 보스몹은 어렵지 않은 네임드라 공략에 시간이 많이 허비되진 않았다. 이제 문제는 5번 방 보스와 마지막으로 남은 ‘파괴의 신 로크아’였다.

예상했던 대로 3번 방과 4번 방에도 구슬을 든 파편이 있었다. 그들 역시 소환신이 몇 번을 시도해봤지만, 구슬을 빼앗는 데는 무리였다. 결국 3, 4번 방 모두 킬리가 가서 빼앗고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

보스방을 지날 때마다 구슬이 커져서인지, 어느덧 킬리가 입에 문 구슬은 사람 머리통만큼이나 커진 후였다. 입에 물기 조금 힘들어 보이긴 했지만, 5번 방 보스를 대항할 때도 잘만 물고 하는 걸 보면 설정 자체가 그러한 듯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자폭쫄]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ㅇㅇ]

[파티/신강-신성제국: 뒤로ㅌㅌ]

5번 방 보스는 유난히 까다로운 공략법을 지닌 보스몹이었다. 보스몹 자체의 공격력은 세지 않아 버틸 만하지만, 체력이 사기급인데다 소환하는 쫄들이 자폭 스킬을 가지고 있어 그냥 두면 흐름을 잃고 아비규환에 빠져들었다. 한 명 자폭하는 순간 주변 몹들이 죄다 터지는데, 딜이 상당해서 탱커를 제외한 대부분은 이때 사망을 면치 못했다.

공략법은 쫄이 나온 순간 1번 탱커가 보스몹을 구석으로 유인해 붙잡고 있고, 2번 탱커가 도발이나 포획으로 쫄몹들을 죄다 반대쪽 구석으로 유인해 희생을 해서 자폭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때 다른 파티원들은 쫄몹의 자폭 범위에서 떨어져 보스몹을 공격해 피를 최대한 깎아내야 했다.

물론 힐러는 자폭 후 죽은 탱커를 빨리 살려내 다시 전장에 투입시키는 일을 해야 했고.

그래서 로크아는 탱커가 최소 둘 정도가 있어야 공략이 가능했다. 탱커가 하나일 땐, 그 대용으로 힐러를 둘 데리고 가는 방법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 에르덴에서 탱커계열 다음으로 방어력이 높은 게 힐러였기 때문이다.

[파티/댕청이-신성제국: 또 쫄]

[파티/실키르-신성제국: 아 이쪽으로 한 마리 온다]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내가 갈게. 빠지셈]

이 파티에서 현재 힐러는 실키르 단 한 명뿐이었다. 이 경우, 힐러의 보호는 최우선이 되어야 했다.

“잘하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잘하는 파티원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첫 공략을 함께하지 길드원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냥 거절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시험차 오늘 다녀보고 공략법을 대략 익혀 길드원에게 향하는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었던 마음도 한몫했다.

그래도 역시 첫 공략은 같은 길드원들하고 했어야 했다. 뒤늦은 후회에 서련은 길드창을 힐끗 쳐다보았다. 평소라면 활발했을 길드창이 지금은 깜깜무소식이었다. 이따가 제대로 사과하기로 다짐하고 서련은 이번에도 방구석 한쪽에 자리 잡고 서 있는 파편에게 포식 스킬을 선사했다.

-‘포식’을 사용하였습니다.

-‘파편의 구슬’을 빼앗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구슬을 획득하고 돌아보자 그 잠깐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글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쫄몹들이 여기저기를 나다니며 자폭을 해대고 있었다. 전멸할 것 같은 모습에 서련은 고민도 잠시 길드원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저도 같이 잡을게요]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아이고 고마워라]

빈말인 거 다 아는데 고맙기는. 서련은 보스몹 근처에 붙은 소환신에게 제 자리로 오라고 이른 뒤, 킬리를 보내고 폭딜을 캐스팅했다. 소환신이 나중에 스샷 찍은 걸 보여주면 방어구 대비 공격격차를 알 수 있을 터다.

서련은 보스를 때리면서 스킬마다 뜨는 데미지를 스샷하고 쫄몹이 나올 땐, 뒤로 빠져 탱커의 도발이 먹히지 않는 몹들을 잡아 족쳤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 잡자, 드디어 신강이 열심히 어글을 끌며 버티던 보스몹이 최후의 비명과 함께 바닥 위로 쿵 쓰러졌다.

-‘파편의 구슬’이 전부 모였습니다. 구슬에 신비한 힘이 담깁니다.

-‘파편의 구슬’이 ‘선한 기억의 파편’이 되었습니다.

-‘선한 기억의 파편’에 ‘약화의 힘’이 담깁니다.

보스를 죽이자마자 화면 중앙에 먹물처럼 번지는 까만 글씨가 생겨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모두의 시선이 킬리가 물고 있는 구슬로 향했다. 종전까지 검은빛을 띠고 있던 구슬이 지금은 형형색색 오팔의 빛을 발하며 물결 같은 아지랑이를 피워내고 있었다.

마우스를 갖다 대자 아직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막보는 다들 어떻게 하는지 알 테고... 문제는 저 킬리인데]

[파티/실키르-신성제국: 일단 막보방까지 가자. 키 작동 시켜야 돼]

[파티/댕청이-신성제국: 그래도 우리 꽤 빨리온거ㅋㅋㅋㅋㅋㅋ]

[파티/소환신-신성제국: 키키님 데미지가.... 또르륵....]

[파티/키키아-신마제국: 그냥 강화빨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저도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진이나 로운이를 생각하며 한 말인데, 어째서인지 서련의 말에 아무도 동참해주지 않았다. 그저 빤히 쳐다보는 모션만 취할 뿐.

[파티/강신-신성제국: 어쨌든ㄱㄱ 키키님 시간 없으실라]

[파티/키키아-신마제국: 20분 안쪽으로 부탁드려요]

[파티/딜러리-신성제국: 무리 같은데;;]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왜이러셬ㅋㅋㅋㅋ 우리 꽤 잘하고 있거든ㅋㅋㅋㅋㅋ]

자신감 가지게 그냥 내버려 두자. 현재 2시간까지는 딱 20분이 남은 상태였다. 가는 길까지 합하면 막보는 거의 10분 안에 깨야 한다는 건데, 서련이 봤을 때 절대 무리였다. 공략법에 나온 좀비 모드라면 버티는 것만 해도 최소 20분이었다. 그러니까 그냥 망했다고 보면 된다.

마지막 보스방을 향하는 길은 일직선이었다. 물론 길목을 지키는 정예몹들이 득실거렸지만, 일단 이쪽은 수만 아홉이라. 그냥 몇 번 때리면 녹아내리는 수준이었다.

가는 길에 보스방의 게이트 장치를 하나하나 활성화 시키자, 얼마 가지 않아 화면 위로 게이트 개방 소식이 들려왔다. 모두는 그때부터 신강을 따라 몹들을 상대하지 않고 보스방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어찌저찌 따돌려 신강만 죽는 걸로 다들 마지막 보스방까지 단숨에 다다랐다. 우글거리던 몹들이 사라지자 실키르는 죽어 널브러진 신강을 살리고 다시 보스방 앞으로 뛰어왔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첫번째 신강이 어글 끌다가 딜러리 성냔, 소환이, 키룩이, 댕청이 순으로 어글 넘기고 하나씩 죽어. 실키는 자가부활 걸어놓고 애들 죽으면 바로바로 살리고. 다들 화면에 부활제안 뜨면 바로 수락해서 어글 뺏어가야 되는 거 잊지 말고]

드디어 마지막 보스 공략 지점에 다다랐다. 테스트 서버와 같은 난이도로 패치가 된 거면, 테섭처럼 모두 좀비 모드가 되어 공략을 해야 했다.

한 명이 어글을 끌고 때리다가 맞아 죽으면 2번째 사람이 바로 어글을 끌고 때리면서 줄줄이 돌아가며 딜을 넣는 구조였다. 이때 힐러는 모든 사람들이 죽으면 전체 힐을 사용해 살리고 두 번째 페이즈부터는 다굴 형식으로 때리다 광역기에 죽으면 힐러가 예측 스킬을 넣어 살리면서 릴레이로 달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여기서는 서련도 별수 없이 공략에 가담해야 했다. 게다가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해야 10분. 아직까지도 길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파티/신강-신성제국: 그럼 갈 테니 바로 따라 들어오세요]

드디어 보스방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하나둘 들어가는 파티원들을 보며 서련은 아직 구슬을 입에 물고 있는 킬리를 바라보았다. 원래 게이트로 이동하거나 로딩화면을 거칠 때 사역마는 서버 안정을 이유로 사라지기 일쑤였다. 한데 지금은 용도도 모르는 구슬을 물고 있으니,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킬리를 유심히 보며 서련은 마지막으로 게이트를 클릭했다. 이내 <파괴신의 방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라는 문구가 뜬 팝업창이 떠올랐다. 서련이 예를 누르자 주변에 하얀 빛이 솟구치더니 화면이 전환되고 짧은 영상이 재생되었다.

공략 영상에서 봤던 영상이었다. 파괴의 신 로크아가 포효를 터뜨리는 장면으로 흔들리는 지면 위에 선 파티원들이 무기를 거머쥐면서 달려드는 영상이었는데, 달려드는 곳에서 끝났어야 할 영상이 킬리의 등장으로 늘어나 버렸다.

응? 네가 여기 왜 나와, 할 정도로 뜬금없는 등장이긴 했지만, 요점은 그게 아니라 킬리가 입에 물고 있는 구슬이었다.

그 구슬을 보자마자 로크아는 크게 놀란 듯이 뒤로 주춤 물러났다. 거대한 포효가 한 번 더 지상을 뒤흔들고, 땅이 우지끈 갈라졌다. 그리고 두 번째 포효가 다시 터져 나왔을 때, 킬리의 입에 있던 구슬이 하늘로 떠올랐다.

눈부신 빛이 일렁이던 구슬은 공명하듯 웅웅 거리더니 순식간에 로크아의 심장 속으로 날아가 박혔다. 로크아가 고통스러운 듯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누군가의 출발 신호를 마지막으로 영상은 중지되었다.

-‘파괴의 신 로크아’가 잃어버린 ‘선한 기억의 파편’을 흡수하였습니다.

-‘파괴의 신 로크아’의 힘이 약화 되었습니다.

[파티/신강-신성제국: 뭐냐고;;;;]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헐]

[파티/딜러리-신성제국: 킬리가 다했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실키르-신성제국: 일단ㄱㄱ]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전부 덤벼봐 일단]

[파티/댕청이-신성제국: 신강아 어글ㄱ]

황당한 전개를 뒤로하고 파티원들은 곧장 다굴정신을 이용해 로크아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소환신만 서련이 서 있는 곳에 붙어 근거리 폭딜을 캐스팅하며 공격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실키만 뒤로 빠지고 다들 그대로]

[파티/실키르-신성제국: ㅇㅇ]

보스의 첫 번째 광역딜이 캐스팅 되기 시작했다.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던 로크아는 힘을 응축하려는지 몸을 웅크린 채 잠시 뜸을 들였다. 주변에 붉은 기류가 넘실거리고 약 2초 후 전체 광역딜이 파티원들을 덮쳤다. 원래는 여기서 전멸을 하는 게 맞았다. 테스트 서버에 나온 그대로라면.

[파티/댕청이-신성제국: ㅇㅋ 뭔지 알겠네]

[파티/신강-신성제국: 이거지ㅋㅋㅋㅋㅋ]

[파티/매익화-신성제국: 다들 나한테 감사한거 잊지 말자^^]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길마님은 ㅈㄹ까지 맙시다^^]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누구 덕?ㅋㅋㅋㅋㅋㅋ 미친다 진짴ㅋㅋㅋㅋ]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낯짝의 신]

한데, 그 누구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반피 이상이 닳긴 했지만, 버틸만한 데미지였다. 역시 열쇠는 파편의 구슬이 맞았다. 소환사 추천은 이걸 위한 것이었다. 소환사가 있으면 쉽게 공략할 수 있지만 구슬을 얻는 게 어렵고, 소환사가 없어도 난이도가 오르긴 하지만 어렵게나마 깰 수는 있다. 필수가 아닌 추천. 르덴이 머리를 쓴 게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파티/신강-신성제국: 실키는 그대로 거기서 걍 힐해]

[파티/실키르-신성제국: 그러고 있거든]

이번 일이 밝혀지는 순간 이제 서련은 지옥의 시달림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도 매익화 포함 전 종족을 상대로. 벌써부터 귓속말이 들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토순이네야 그댁 길마가 알아서 잘할 테고.

원래 로크아는 뒤로 갈수록 체력 하강 대비 광역기 공격력이 상승하는 패턴을 보였다. 지금 이 상태로라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두 탱커들이 방어 스킬을 대폭 늘리고 예측힐이 잘 들어온다면 승산은 있어 보였다.

보스몹의 피가 50% 이하로 줄자 역시나 다시 로크아가 광역딜을 시전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터질 듯 부푼 근육들이 팽팽히 당겨지고 괴수가 몸을 웅크리자, 붉은 기류가 응집하기 시작했다. 다들 긴장했는지, 할 수 있는 모든 주문서를 돌리고 방어에 치중했다.

이윽고 쾅, 소리와 함께 로크아가 포효를 터뜨리며 두 팔을 뒤로 젖히고 가슴을 크게 내밀었다. 전체 광역딜이 파티원들에게 쾅쾅 쏟아졌다. 다행히 타이밍 좋게 두 탱커의 방어 스킬이 끝나는 동시에 광역 예측 힐이 들어왔다.

손발을 한두 번 맞춰본 솜씨가 아니었다. 이 정도면 거의 탑급에 속한다고 봐야 했다. 다행히 파티원들의 정확한 팀웍 덕분에, 이번에도 전멸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데미지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공격으로 어느 정도 데미지 수치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다음 광역기가 터져 나오는 25%때 전원은 확실히 피해야 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마지막 광역기 때 모두 뒤로 빠져주세요]

[파티/매익화-신성제국: 들었지 애들아]

매익화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즉시 대답했다. 모두 대답은 없었지만, 서련은 어련히 알아들었으리라 판단했다. 그리고 마지막 광역기 캐스팅이 시작되었다. 이제까지보다 더 위험한 모습으로 몸을 웅크린 로크아가 끄득끄득 소리를 내며 이를 갈았다. 보스몹의 상태탭을 보자 광역기 스킬 바가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파티/신강-신성제국: ㅌ]

가장 멀리 있던 서련과 소환신을 시작으로 모두는 보스와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어 관련 주문서를 두르고 스킬이 터져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마지막 광역기는 로크아의 부푼 몸이 무서울 정도로 내밀어졌을 때, 포효와 함께 터져 나왔다. 로크아의 근처 지반 위로 벼락과 바위더미가 떨어지고, 근육으로 뭉친 팔이 허공을 무차별로 갈랐다.

[파티/신강-신성제국: ㄱㄱ]

초를 세고 있던 신강이 광역기가 끝날 때 즈음 잽싸게 외치며 튀어 나가자, 다른 파티원들도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피는 25%다. 실수 없이 잘하면 서련도 2시간이라는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들 이번 기회를 날리기 싫은지, 온갖 폭딜 스킬을 꽂아 넣으며 로크아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로크아의 피통이 1%가 되었을 때, 화면이 영상으로 다시 전환되었다.

엉망이 된 폐허 속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로크아의 모습이 파티원들을 등진 채 재생되었다. 비틀거리던 육중한 몸이 완전히 쓰러지고 나서야 구슬은 빛을 잃고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로크아는 데굴데굴 굴러가는 구슬을 가물가물한 눈으로 바라보다 끝내 스르륵 눈을 감아 버렸다. 어쩐지 연민이 깃든 눈동자였다.

그 모습을 파티원들은 비장한 표정으로 동정을 담아 바라보았다. 화면은 마치 눈을 감는 것 같은 영상효과를 끝으로 다시 게임 화면으로 전환되었다.

-‘파괴의 신 로크아’를 쓰러뜨렸습니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키키님 좀 자주 봬야 겠는데]

[파티/딜러리-신성제국: 애들아 영상 잘 찍었냐?ㅋㅋㅋㅋㅋㅋ]

[파티/소환신-신성제국: 키키님 스샷 올려도 될까요?ㅠㅠ 이건 진짜 올려야 돼요ㅠㅠ]

[파티/신강-신성제국: 미쳤다ㅋㅋㅋㅋ 이맛에 게임하는 거짘ㅋㅋㅋㅋ]

[파티/댕청이-신성제국: 키키님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닿ㅎㅎㅎㅎㅎ 다음에 어떻게 또?ㅎㅎㅎㅎ]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음]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일단 룻부터 할까요]

[파티/키룩키룩-신성족: 잊고 있었넼ㅋㅋㅋㅋㅋㅋ 누구 룻이냨ㅋㅋㅋㅋ]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기달]

그래도 첫 공략인데 좋은 게 나왔을까 싶었다. 그냥 별 기대도 하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만 애써 마음을 다스리며 보고 있는데, 별안간 성냔개비 머리 위로 ‘헉!’하는 말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화면 위로 화려하게 장식하는 아이템들.

[파티/성냔개비-신성제국: <로크아의 심판의 마법서><로크아의 심판의 목걸이><파괴의 갑주><파과의 구슬><파괴의 견갑><파괴의 서><타버린 재><로크아의 비늘><로크아의 발톱><로크아의 이빨><로크아의 꼬리>]

심심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서련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성냔개비가 헉 소리를 내뱉을 만했다. 다른 건 별볼일 없는 잠텝이라 하더라도 ‘심판’이 들어간 건 에르덴에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중 가장 좋은 주신급 아이템이었다. 다른 것과 달리 다홍색 글씨로 뜬 것만 해도 그랬다.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이번엔 소환신이 양보하자. 키키님 고생했으니까]

[파티/소환신-신성제국: 여기서 탐내면 양아치지;;]

[파티/딜러리-신성제국: 왘ㅋㅋㅋㅋㅋㅊㅊㅊㅊ]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이번에 르덴이 일 좀 하셨넼ㅋㅋㅋㅋㅋ]

[파티/댕청이-신성제국: 부럽ㅠㅠ ㅊㅊ]

‘로크아의 심판의 마법서’는 소환사 전용 무기였다. 공격력이 낮은 대신 적중옵션이 높아, 마도사들은 잘 착용하지 않았기에 적중이 필요한 소환사가 주 착용자가 된 것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던 서련은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고민을 정리하고 자박자박 타자를 두드렸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소환신님 드세요. 저는 괜찮아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저는 파티보다 PVP가 맞아서 지금 맞춘 공적템이 더 나아요. 괜찮습니다]

서련의 말에 매익화 길드는 잠시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양보해 준다고 해도 사실 서련은 받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첫 공략을 길드원들과 하지도 못했는데, 좋은 것까지 덤으로 얻어갈 순 없었다. 게다가 공적 아이템을 맞춘 지 고작 며칠밖에 안 됐다. 이 이상은 사실 필요가 없었다.

[파티/신강-신성제국: 저... 키키님. 그럼 소량이지만 축하비 정도랑 심판의 목걸이는 받아주시겠어요? 이것도 안 드리면 너무 죄송해서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ㅠㅠ 저 정말 열심히 키울게요ㅠㅠ 진짜 꼭 대견할 만큼 훌륭히 크겠습니다ㅠㅠ 감사합니다 키키님. 정말 감사합니다]

축하비는 아마 보답 개념일 것이다. 서련은 픽 웃으며 그 말을 승낙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예. 그럼 그것만 제가 받고 나머지는 길드분들이 전부 드시는 걸로 하죠]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감사합니다!]

매익화 길드는 한 차례 서련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며 고맙다는 인사를 표했다. 그리고 서련에게 거래를 걸어 골드를 건네주었다. 무려 1억 골드. 보답치고 많은 돈이었지만, 오늘 고생한 수고비로 치기로 했다. 물론 목걸이도 덤으로.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저는 이제 진짜 가봐야 할 것 같은데 먼저 가도 될까요]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출구가 저쪽밖에 없는데 같이 가죠]

서련은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킬리의 활약으로 보스몹 공략 시간이 확 줄어 2시간에서 딱 5분 정도만 경과한 점이라는 거다. 지금 빨리 나가 연락하면 그래도 받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킬리와 함께 외부 포탈을 탔는데, 설마 거기서 친숙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외부 포탈 후문이라고 해서, 이곳은 던전 정문과 달리 중립 안전지대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 뒤치기 밑 무한 PVP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서련은 시정잡배처럼 일어나는 유저들, 아니. 자신의 길드원들을 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신마제국/묵요: 왜 이제야 나오세요, 키키형ㅎ]

[신마제국/호백조: 아 목빠지는 줄]

[신마제국/베르르: 읏차! 어디 우리 메기형 멀쩡한지 볼까]

[신마제국/순한양: 우리 메기형 다른 길드 넘들이랑 갔다오니까 좋았쪄여? 으음 때깔은 그대로고]

[신마제국/건블리아: 키키야 이건 나도 불가항력이었다]

[신마제국/휴리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야생닭: 누님... 그러지 마여...;; 아니 키키야... 미안허다ㅠㅠ]

서련의 시선이 하진을 통틀어 로운과 원호에게까지 닿았다. 제일 먼저 돌아본 건 하진이었다. 하진은 긴말 없이 어깨를 으쓱하며 로운과 원호쪽으로 턱짓을 해보였다. 그게 마치, 그래서 경고했잖아,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서련도 거기까지는 예상했던 바다. 포탈 한 번 타려고 했다가 자게에 등판까지 할 정도로 묶여 다녔는데 잊을 리가.

문제는 저를 보자마자 도핑에 들어간 길드원들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굳이 극딜용 무기까지 꺼내들며 말이다. 본능이 말하건대 죽을 수 있으니 피하라고 권고 조치를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그 예상은 조금도 빗나가지 않았다.

“형. 여기저기 불려 다니느라 힘드셨죠?”

“걱정 마세요. 저희가 편~하게 해드릴 테니까.”

서련의 시선을 느낀 로운과 원호가 해사하게 웃는 낯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저 거뭇거뭇하게 피어오르는 어딘지 못 죽여 안달이 난….

“그… 어떻게…?”

“몇 번 죽으면 본보기가 되겠죠, 뭐.”

“키키랑 한팀되면 좆된다, 정도로. 어때요, 형. 괜찮죠?”

“…….”

서련의 시선이 다시 하진에게 향했다. 이쯤 되니 지쳤는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젓는 게, 어쨌든 도와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서련은 일단 다른 사람을 설득해 보기로 했다. 지극히 평화적인 방법으로.

[신마제국/키키아: 저 진짜 빨리 깨고 온건데 다들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신마제국/베르르: 형 5분 늦었는데요ㅎㅎ]

[신마제국/키키아: 5분은 좀 봐주면 안 될까...]

[신마제국/순한양: 1분도 봐줄까 말까하는데 5분을 무슨 수로 봐줘요ㅎ 우리 메기 형 탈피했다더니 왜 얼굴은 점점 두꺼워질까. 형도 그렇게 생각하져? ㅇㅇ?]

[신마제국/건블리아: 됐고 키키야. 자게에 이쁘게 올려줄 테니까 좀 죽자]

[신마제국/휴리사: 고럼고럼ㅋㅋㅋㅋㅋ 예쁘게 발리다 보면 딴 놈들이 보복이 무서워서라도 우리 키키랑 안 놀겠지~]

음, 그렇다면야. 결국 서련은 옆에 서서 팔짱끼고 구경하는 매익화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부탁 좀 할게요]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아 벌써 끝났? 재밌었는데ㅎ]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새벽 소환권 1회]

[파티/매익화-신성제국: 콜. 뭐 도와줄까요]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신호주면 저희 길드 좀 덮쳐주세요. 저 좀 빠져나가게요]

[파티/소환신-신성제국: 맡겨만 주십쇼]

[파티/키룩키룩-신성제국: 재밌네 이거ㅋㅋㅋㅋ]

[파티/신강-신성제국: 다들 준비하자ㅎㅎㅎㅎㅎㅎ]

이렇게 열성적으로 움직여주는 걸 보니 아이템을 주길 참 잘한 것 같았다. 서련은 무기를 꺼내드는 매익화 길드를 보며 재빨리 킬리를 소환했다. 그게 어떤 적대행동이라고 생각했는지, 대검을 든 순한양이 곧장 공속 보조 스킬을 쓰고 서련쪽으로 달려들었다. 그게 시발점이 된 양, 하진을 제외한 서련의 길드원들이 죄다 앞으로 달려나오기 시작했다.

서련은 가장 앞서 뛰어오고 있는 순한양을 대상으로 잡고,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즉딜 스킬 범위인 12m에 딱 들어오자마자 그 안면에 스킬을 날리고 튀어 나갔다.

[파티/키키아-신마제국: 지금요]

서련이 말에 예열이라도 하듯 기다리고 있던 매익화 길드가 환호를 지르며 튀어나갔다. 그 사이를 뚫고 서련은 중앙에 있는 캐릭을 대충 클릭해 킬리의 광역공격을 퍼부었다. 미리 알고 뒤로 잽싸게 물러난 텅 빈 땅에 킬리의 주먹이 콰앙 소리를 내며 박혔다.

[신마제국/키키아: 음 보니까 다들 좀 발전하셔야 할듯 싶은데]

[신마제국/키키아: 제 킬리처럼요ㅎ]

텅 빈 땅을 쏜살같이 헤치고 지나가면서 서련은 제 길드원들을 구태여 도발했다. 날렵하게 땅을 밟고 지나가자, 매익화를 대치하던 모두가 즉각 서련을 쫓아오기 시작했다. 그 뒤를 매익화까지 쫓기 시작하자, 어째 주변 유저들의 시선이 콕콕 와 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동정가득한 시선으로.

[신마제국/호백조: 키키형 그러지 말고 걍 포기하시져? 그게 피차 편할 거 같은데ㅎ]

[신마제국/베르르: 이얔ㅋㅋㅋ 우리 메기형 저 메기같이 잽싼 동작 크으... 알았으니까 고만하고 좀 와요]

[신마제국/순한양: 키키형아 쩔미들 딱밤때리고 가는 거 아님요ㅋㅋㅋㅋㅋ 형은 쫌 초시리즈 딱밤좀 맞읍시다?ㅋㅋㅋㅋㅋㅋ 킬리야ㅋㅋㅋㅋㅋㅋ 넌 샛꺄 이리와 머리좀 박자]

[신마제국/휴리사: 어쭈?ㅋㅋㅋㅋㅋ 우리 키키가 이젠 막 도발까지 하네ㅋㅋㅋㅋㅋ]

서련은 다시 킬리를 보내 광역기를 선물했다. 물론 다들 이젠 물 흐르듯이 그 광역기를 피할 정도로 킬리의 공격패턴을 완벽히 파악한 후였다. 서련 역시 굳이 맞으라고 킬리를 보낸 건 아니었다.

[신마제국/키키아: 무서워라]

일종의 어그로랄까. 이 정도면 얼추 피한 것 같고, 이제 슬슬 한 명씩 잡아다 반격해볼 생각이었다. 제일 첫 번째 먹잇감은 당연히 가장 만만한 절미들이었다. 서련의 시선이 베르르와 순한양을 오가다 베르르 쪽으로 고정되었다.

베르르의 방어력이 직업상 더 낮았기 때문이었다. 서련은 탭을 눌러 베르르를 공격대상에 넣고 주변 지형을 쭉 살펴보았다. 꽤 널찍한 게 몇 번 돌면 얼추 끝을 볼 만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아군을 끌어들여야겠지.

“하진아.”

“…왜.”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불안한 목소리였다. 서련은 미안한 듯 뺨을 긁적거리다 눈동자만 힐끗 들어 하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니, 낚았다.

“계란말이 해줄게, 응?”

하진의 눈빛이 심각하게 흔들렸다. 누가 보면 얼마나 먹고 싶으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모습이었다. 머릿속에선 이미 식탁 앞에 앉아있을지도 몰랐다.

가만히 방관하고 있던 걸 보면, 하진 역시 따로 노는 서련의 행동에 불만이 없던 건 아닐 터다. 이번 기회에 남의 손 좀 빌려 고쳐볼까 싶어 내버려 둔 모양인데, 문제는 서련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결국 하진은 욕설을 내뱉으며 마우스를 틀어잡았다.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졌는지는 안 봐도 뻔했다.

길드원들의 맨 끝에서 설렁설렁 쫓고 있던 하진이 동족상잔을 저지른 건 순식간이었다. 절미들의 경악 어린 말과 함께 옆에서 로운과 원호의 미쳤냐는 외침이 들려왔다. 서련은 그 혼란을 틈타 베르르에게 폭딜을 꽂아 넣었다. 서련의 공격이 명중한 순간 킬리의 적의도 베르르를 향했다.

-신마제국의 ‘키키아’가 폭염의 불꽃을 사용해 신마제국의 ‘베르르’에게 2893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신마제국의 ‘키키아-킬리’가 괴수 할퀴기를 사용해 신마제국의 ‘베르르’에게 2303의 데미지를 주었습니다.

-신마제국의 ‘베르르’가 출혈에 빠졌습니다.

각 잡고 달려드는 킬리를 내버려 두고 서련은 방향을 틀어 운동장 돌 듯 반회전 해서 내달리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베르르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킬리가 다시 서련의 곁으로 합류했다.

[신마제국/베르르: 아악! 킬리 이 나쁜생캬아아아악]

[신마제국/건블리아: 걱정마라 형이 네 원한은 꼭 갚아주마]

[신마제국/순한양: 키키형ㅎㅎㅎㅎ 다음은 저 아니져?ㅎㅎㅎㅎㅎ 옆에 생닭형도 있고 묵요형도 있는데ㅎㅎㅎㅎㅎ 저 아니져?]

[신마제국/키키아: 너 맞는데 절미야ㅎ]

[신마제국/순한양: 아 혀엉!!]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련은 근처 높은 바위 지형으로 올라가 곧장 순한양의 다리를 묶고 다발공격 스킬 캐스팅에 들어갔다. 그리 높은 곳이 아니라 건블리아가 금세 따라붙었지만, 서련이 순한양한테 딜을 넣자마자 다른 곳으로 활강한 탓에 거리는 다시 훌쩍 벌어졌다. 물론 그 순간에도 순한양에게 킬리를 맡겨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마제국/건블리아: 우리 메기 봐라. 얼마나 살고 싶으면 저렇게 필사적으로 움직이냐]

[신마제국/키키아: 다음이 형인데 그러고 있어도 되겠어요?ㅎ]

그 말에 건블리아는 길드원들에게 잘 부탁한다는 소리와 함께 뒤로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하진이 로운과 원호를 막다 말고 매익화 길드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신성제국/매익화: 그러고 보니 오늘은 강마가 안 보이네]

[신마제국/묵요: 그럼 니가 가서 좀 찾든가 샛꺄]

[신마제국/호백조: 저 샛낀 왜 자꾸 요새 낯짝을 비추는겨. 야 이 매닭샛꺄 너 안 ㄲㅈ냐?]

[신성제국/매익화: ^^]

[신마제국/베르르: ㅡㅡ 와... ㅅㅂ 저넘 먼저 죽여봐여... 이러다 우리 메기형 눈 멀겠네]

[신마제국/순한양: 아니 누가 나 좀]

[신마제국/베르르: 안되겠네 으른의 맛을 보여줘야지]

[신마제국/호백조: 으른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신마제국/야생닭: 하하하핳하핳하 애들말은 신경쓰지 마시져 하핳하]

[신성제국/딜러리: 아닙니다.ㅎㅎ 걍 도랐다 생각하시고 마음 편히 저희 길드님 먼저 죽이심 됩니다ㅎㅎ]

이쯤 되니 서련을 쫓아오는 자는 딱 한 명. 휴리사 밖에 없었다. 그것도 신나서 쫓아오는데, 안 죽일 수도 없고 해서 서련은 순한양이 딱 죽자마자 바로 킬리를 불러들였다. 그리고 킬리를 휴리사에게 보내려는데, 시스템창 위로 다른 적대종족의 스킬 소식이 들려왔다. 서련은 즉각 쉴드를 치고 방어력 상승 주문서를 쓰며 옆으로 훌쩍 빠졌다.

타앙! 탕-!

서련의 캐릭 위로 주문서의 효력이 떠오른 것과 쉴드 위로 화살이 박힌 건 거의 동시였다. 탕탕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에 몰렸다. 서련의 시선도 공격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련은 붉은 머리의 유저 한 명을 볼 수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서련의 입술 사이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

저 새끼도 와 있었네? 서련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한 번 인식하자 시스템 창 위로 가득 떠 있는 이름이 그제야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서련은 곧장 쓸 수 있는 모든 공적 아이템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향한 곳에는 ‘비연’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아처 한 놈이 있었다.

-‘생명의 샘’을 사용하였습니다.

-‘힘의 샘’을 사용하였습니다.

-‘마력의 샘’을 사용하였습니다.

-‘방어의 샘’을 사용하였습니다.

서련의 머리 위로 열개가 넘는 도핑이 생겨났다. 화살이 다시 날아온 건, 서련이 앞으로 튀어나가듯 캐릭을 움직였을 때였다.

[신마제국/키키아: 다빠져]

저 새끼는 내가 죽여.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정말 틀린 말 하나 없는 얘기였다.

서련의 말에 하진을 비롯해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련을 돌아보았다. 매익화 쪽도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

[신성제국/비연: 이쪽도 다빠져. 저 메기돼지는 내가 죽인다]

[신마제국/키키아: 회피 믿고 개까부는 닭한마리 언제 오나 기다렸는데 알아서 오셨네요]

[신성제국/비연: 됐고, 덤벼 샛꺄]

[신마제국/키키아: 회피ㄷㅅ이라 진걸 자꾸 까먹나]

비연의 뒤로 언뜻 거대한 토끼가 보인 듯도 했지만, 서련은 차마 그것까지 신경 쓰지 못했다. 그저 간만에 전투적인 자세로 비연을 향해 달려들 뿐이었다.

덕분에 휴리사는 딱 닭 쫓던 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주춤주춤 움직이는 휴리사 옆으로 비연과 같은 길드 이름을 단 유저들이 하나둘 나타나 한심하다는 듯 팀킬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블랙블 유저들이었다.

[신성제국/블라라: 어휴 저 뱅신샛끼]

[신성제국/잭콕: 내비둬라. 저러다 개발리고 또 돼지처럼 기어다니지]

[신성제국/금퇼: 에이 이길수도 있죠]

[신성제국/칼트럼: 형님들ㅎㅎㅎㅎ 비연형님 회피의 신인거 잊었습니까여ㅎㅎㅎ 안되면 비연형님 머리 박죠!ㅎㅎ]

[신성제국/건드레: 막내 또 하극상 시전한다. 됐고, 막내야 너 먼저 뻗고 시작하자]

[신성제국/칼트럼: 공평하게 막내 셋이 다 박겠습니다. 내 동기들 일루 오시져ㅎㅎ 토순이는 대신 박자ㅎㅎㅎㅎㅎ]

[신성제국/금퇼: 아 귀찮게]

[신성제국/레스크: 쟤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성제국/한겨울: 저러다 퇼이한테 또 겁나 엊어 터지지 어휴]

[신성제국/맴돌돌: 그... 토순이 말고 제가 하면 안돼요?]

[신성제국/건드레: 응 안돼]

[신성제국/블라라: 안된다 막깽아]

[신성제국/건드레: 막깽아 토순이 또 회수 당하고 싶냐?]

[신성제국/개나무: 막내들 목줄 어쨌냐?ㅋㅋㅋㅋㅋ]

[신성제국/랙블: 토순이가 울겠네. 막깽이 뒤로 더 와. 형들 안에 있어]

[신성제국/맴돌돌: 네]

맴돌돌이 뒤로 움직이자, 푸근하게 앉아있던 토실토실한 토순이도 껑충 뛰어 뒤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모두는 어딘지 아연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PVP지역인데 다들 어째 위기감 없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건 서련과 비연을 빼면 하진 쪽도 마찬가지였다.

아닌 방해꾼에 서련을 잡으려는 마음이 식었는지, 로운과 원호는 매익화 길드와 함께 적당한 곳에 서서 살벌한 대결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하진쪽으로 먼저 알은척을 한 것은 블랙블 길드였다. 그들은 하진과 로운을 보자 손을 척 뻗으며 반가움을 한껏 드러냈다.

[신성제국/건드레: 아니 이게 누구신가ㅋㅋㅋㅋ 그 유명하신 전섭 1위가 아니신갘ㅋㅋㅋㅋ]

[신성제국/칼트럼: 킬레아도 있네여ㅎㅎㅎㅎㅎㅎ]

[신성제국/블라라: 길드순위 수직상승중인 건블 길드께서 여긴 어인 일로?ㅋㅋㅋㅋ 아 공적작 하느라 바쁘시구나?]

[신마제국/킬레아: 신경 끄시지? ㅅㅂ 공적도 낮은 샛끼들이]

[신마제국/묵요: 하하 돼끼 궁둥짝이 오늘도 참 토실토실하네요. 또 개발라버리고 싶게]

[신성제국/잭콕: 아니 근데 저것들은 왜 남의 집 토순이를 가지고 ㅈㄹ이야]

[신성제국/한겨울: 니들 지금 시비거는 거지? 어?ㅋ]

[신마제국/호백조: ㅇㅇ]

[신성제국/금퇼: 제가 갈까요? 저 요새 근질근질한데ㅎ]

[신성제국/칼트럼: 내 동기를 위해 동참해야쓰겠네ㅎㅎㅎㅎㅎㅎ]

[신마제국/건블리아: 자자 잠깐! 고정들 하시고]

[신마제국/건블리아: 이 **들아 니들은 사고좀 적당히 쳐!]

[신마제국/야생닭: 하하 저희 애들 버릇이 참 별나라에 가 있죠? 이해하세요ㅎㅎ]

[신마제국/묵요: 아 저정도면 저희가 이겨요]

[신성제국/개나무: 그래서 니들 지금 해보자는 거냐?]

[신마제국/킬레아: 까지말고 덤벼]

[신마제국/베르르: 아니 형님들 지금 이 무슨 메기 같은 짓ㅋ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순한양: 이러면 우리가 어? 막]

[신마제국/베르르: 겁나 좋잖아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순한양: 캬ㅋㅋㅋㅋㅋ 우리 욜로 형님들ㅋㅋㅋㅋㅋㅋㅋ 키키형 끝내기 전에 우리가 먼저 끝냅시다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휴리사: 나도 껴도 될까?ㅋ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야생닭: 아니 누님;; 잠깐만요 우리 다들 평화롭게]

[신성제국/매익화: 우리도 껴도 될까?^^ 우리애들도 심심한데]

[신마제국/킬레아: 좃ㄲ]

[신성제국/매익화: 흠 껴도 되겠네]

[신성제국/랙블: 막깽이 뒤로 빠지고 막내들 막깽이 좀 보면서 덤벼]

[신성제국/블라라: 각잡고 하자ㅋㅋ 디지는 넘들 토순이 귓뱅맹이다]

[신성제국/잭콕: 덤벼라 이 샛끼들아]

[신성제국/건드레: 오늘 아주 레전드 찍겠네ㅋㅋㅋㅋㅋㅋㅋ 블블 가즈아!]

[신마제국/베르르: 아앀ㅋㅋㅋㅋ 우리도 저거 만듭시닼ㅋㅋㅋㅋㅋㅋ]

[신마제국/순한양: 건블 가즈아!]

[신마제국/휴리사: 까즈아!!]

[신성제국/매익화: 음... 매익화 가즈아?]

[신성제국/야생닭: 아니 다들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신성제국/야생닭: 아나 환장하겠네;]

결국 그날 3대 길드의 판결은 어느 쪽이 이겼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심지어는 서련과 비연 역시 누가 확실히 이겼다 할 승부수를 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도중 여기저기서 떠밀려온 유저들이 온갖 방해 공작이며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끝까지 싸워보겠다고 벼르던 서련도 종래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비연과의 결투는 다시 다음으로 미뤄졌다.

“아…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쉬운 말소리와 함께 서련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화면에는 득실득실한 유저들이 좋다고 서로를 썰어내고 있었다. 몇백 명이나 되는 유저들이었다. 도중 던전을 깨고 나온 유저들도 합세해 늘어나게 된 게 이벤트 형식으로 번지게 된 것이었다.

르덴이 이걸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의도한 거라면 첫날부터 아주 대박 터진 셈이었다.

서련의 시선이 힐끗 옆으로 향했다. 전장에서 빠져나와 높은 곳에 앉아있는 서련과 달리 하진과 로운, 원호는 아직도 이를 갈며 전투 중이었다. 그 옆모습도 유난히도 같아 보여, 서련은 다른 의미를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단지 이 떼쟁이 좀 빨리 끝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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