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숨겨진 진실
만신창이가 된 커틀러를 애써 웃으며 반긴 잔트는 몇 가지 약재와 팔을 고정할 장치를 꺼내 왔다. 검을 쓰지 못하게 된 이후로 약학을 공부한 잔트였으니, 한번 기대를 걸어 볼 법했다.
하지만 잔트의 노력에도 커틀러의 팔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
램파드를 향한 마음이 맹목적이라 한들 커틀러 또한 사람이기에 지쳤고, 휴식이 필요했다.
이제 램파드는 자신의 최종 각인 상대가 커틀러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도 애쉬 테일러를 놓지 못하고 구질구질하게 붙잡았다. 램파드가 애써 봤자 애쉬를 향한 감정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풍화되고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애쉬를 향한 마음이 우정이든 우애든 뭐든, 다른 알파를 향해 정을 보이는 꼴을 곁에서 참고 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곁에 있다간 몸이 앞서 애쉬를 죽여 버릴 것만 같아 지금 당장은 꾹 참고, 북부 지방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호되게 반성해 보라며 램파드를 매몰차게 버리고 북부 지방으로 떠날 생각이었지만, 램파드는 커틀러의 첫사랑이자 평생에 단 하나뿐이 없을 소중한 이였다. 그가 모든 걸 내버리고 울고 불며 매달리자 욕망과 뒤섞인 마음에 램파드를 안아 버렸고 둘은 빠르게 화해했다.
램파드와 어느 정도 화해를 한 커틀러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북부 지방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한스는 밤늦게까지 울려 퍼진 램파드의 비명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눈 밑이 퀭한 채로 저택 안을 어슬렁거리다가 주인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발견했다. 램파드의 신음이 저택 전체에 울리게 한 장본인이 커틀러니까 뭐라도 먹여야겠다 싶어 간단한 요깃거리를 챙겨 왔다.
음식을 챙겨 온 한스가 주인의 방문을 열었을 때. 커틀러는 양팔로 단단히 제복의 끈을 고정하고 있었고, 깜짝 놀란 한스는 접시를 떨어뜨릴 뻔했다. 커틀러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입매가 잔잔했다.
“램파드에게 가서 고할 것이냐.”
“아… 아뇨. 램파드 폐하를 오래 모셨다지만 제 주인은 콘테 공이십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그리 놀란 것이냐.”
“걱정이 되어 그렇습니다.”
“말해 보아라.”
커틀러는 잔트가 만들어 준 고정대를 오른팔에 칭칭 감았다. 아직 한쪽 팔만 사용하는 척한 지 오래되지 않아 서툴렀다.
“……언제부터 숨기셨나요.”
“처음부터.”
“주인님……. 그러다 폐하께 정말 미움받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잔트 님이 주인님의 팔을 고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이제 평생 약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하셨는걸요.”
“…….”
“하아, 전 모릅니다. 오늘 본 것을 잊고 모른 체할 겁니다.”
“현명하구나.”
“폐하는 물론 주인님도 오래 모셔 왔으니까요. 그럼, 쉬십시오.”
한스는 커틀러의 방문을 꼭 닫으며 사라졌다.
커틀러는 어깨 붕대를 꺼내 팔을 고정하며 여행자용 망토를 둘렀다. 팔을 다친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단지 우성 알파의 회복력이 상상을 뛰어넘었을 뿐이었다. 생활하는 데는 지장 없지만, 전처럼 검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건 변함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천천히 회복된다면 언젠간 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램파드에게 사실을 말해도 그는 자신이 빚졌다며 미안해할 거지만은, 좀 더 확실히 채무를 주기 위해 외팔이 된 척 연기했다. 한 번 빚지면 참고 넘어가지 못하는 램파드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있기에 다친 것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램파드에게 들키면 자신의 인생을 희롱한 겁탈자일 것이며, 평생 모른다면 몸을 바쳐 자신을 지킨 사랑하는 연인으로 알 것이었다. 여차하면 정말 팔을 부러뜨리면 되니까.
더블스피크(Doublespeak)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