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50)

6

“아빠, 이거… 뭐야?”

일곱 살도 너무 놀라면 방방 뛰기보다는 당황해서 몸이 굳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해수는 제 눈 앞에 있는 자전거를 보고도 소리를 지르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자신만만하게 흰 천을 걷어 올렸을 때 활짝 웃으면서 안길 줄 알았는데 먹던 사탕도 입에서 굴릴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얼어 버렸다. 이소는 자신이 해준에게 선물을 받을 때 저런 표정이었을까 상상했다.

“이거… 아빠 친구가 해수 사 줬어.”

“아빠 친구? 진혁 삼촌은 아니고…, 그 키 크고 까만 옷 입은 아저씨?”

뭐, 그렇지. 진혁은 네가 이만치 큰 것도 모를 거야. 이소는 벌써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 가는 진혁의 흐릿한 얼굴을 기억하려 애썼다.

“응. 그 키 크고 까만 옷 입은 아저씨.”

“나 생일도 아닌데?”

“그냥, 해수가 자전거가 너무 낡아서 좋은 걸 사 주고 싶으셨대.”

“와…. 말도 안 돼. 정말 말도 안 돼.”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쨌든 납득은 했는지 해수는 천천히 고무 핸들을 쥐었다 놓으면서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끌어당겼다. 난생처음 받아 보는 엄청난 크기의 선물을 앞에 두고 아빠와 딸은 가게 안에 쪼그려 앉아 한참을 설명서에 코를 박고 읽어 내려갔다. 브레이크는 어떻게 걸고, 이쪽 손잡이를 당기면 벨이 울리고, 이건 후미등을 켜는 거고…. 그렇게 떠들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8시 30분이 다 되어 가 정숙이 문을 두드렸다.

“해수야, 어린이집 늦겠다. 이소 씨도 다녀오고. 엄마나, 이건 또 뭐야?”

이소와 해수는 동시에 정숙을 돌아보며 웃었다. 선물 받았어요. 아침 햇살에 부서지는 부녀의 미소가 유난히 닮아 있었다.

해수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이소는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침에 일어나 시계를 차려다가 괜히 기름이 튀거나 스크래치라도 날까 봐 얼른 벗어 서랍에 넣고는 내려오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 어젯밤 생각을 했다. 제 손목을 쥐던 해준의 큰 손바닥과 체온,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었던 목소리, 걱정시키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어두운 골목에서 제 뒷목과 허리를 감싸 쥐고 했던 진득한 키스.

“이소 씨, 어젯밤에 뭐 매운 거 먹었나 봐.”

“네?”

“입술이 너무 부었네.”

“아….”

정숙이 짐짓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바셀린을 건넸다. 튼 데도 좋고, 부은 데도 바르면 좀 나아지더라고. 그러니까 사람이 잠을 자야지, 자꾸 무리하면 안 돼. 두 손으로는 양파껍질을 벗기면서도 입은 쉬지도 않고 잔소리를 하는 정숙을 뒤로하고 이소는 주방에 있는 작은 거울에 얼굴을 비췄다. 아랫입술은 그럭저럭 티가 안 났는데 윗입술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 과장이 아니고 입술을 쭉 내밀면 그대로 코끝에 닿을 정도였다. 손끝으로 입술을 두드리자 아릿한 통증이 밀려왔다. 부어터질 만했다. 아니, 더 붓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다.

* * *

어젯밤 골목에서 꼴사나운 하소연을 마치고 해준의 품에 안겼을 때 이소는 더듬더듬 그의 허리에 손을 둘렀었다. 처음 해준에게 안겼을 때는 만신창이로 맞은 뒤라 우는 얼굴에 손이 가 있었고, 그 뒤에는 술을 마시고 안겨 있어서 대충 목을 끌어안았던 것 같다. 그러나 제정신으로 해준의 품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나자 차분하게 일자로 떨어뜨린 손이 퍽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머뭇대다 손을 올려 해준의 허리를 끌어안았는데 그 순간 뒷머리를 쓰다듬던 해준의 손이 우뚝 멈췄다. 역시 기분 나빴나? 조바심이 들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마자 세찬 소낙비처럼 쏟아진 입술에 숨이 막혔다.

키스가 서투르다는 것은 이미 애저녁에 알아차렸을 테지만 그런 이소를 봐줄 새도 없이 해준은 허기진 들짐승이 먹이를 먹어 치우듯 더 가깝고 지독하게 파고들었다. 키스라고는 그저 입술을 맞대는 것밖에 몰랐다. 꽉 다물린 입술을 몇 번이고 베어 물던 해준이 꾹 다물린 아래턱을 잡고 누르자 저항할 힘도 없이 느리게 잇새가 벌어졌다.

‘흐, 흐아. 교, 교수니-임…. 저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뱀처럼 기어들어 온 붉은 혀가 이소의 혀끝을 낚아채듯 감아올리고 더 깊은 곳을 지분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바짝 맞댄 배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허리를 잡고 있었던 손이 구명줄을 잡듯 해준의 등에 애처롭게 매달려 있었다. 겉에서 보면 감쪽같이 정중한 입맞춤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이소가 얕게 내뱉는 숨마저 다 먹어 치울 기세의 알알한 포식이었다.

‘으읍, 흡, …하으, 흣.’

붉은 혀가 입천장의 오톨도톨한 점막을 긁어내리는 감각이 생경하면서도 기분 좋은 간질거림을 남겼다. 자신도 모르게 혀를 들어 올리고 서툴게 응답하면 흡족함이 가득 찬 낮은 웃음소리가 입술 끝에 닿았다. 무슨 정신으로 입을 맞췄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이소는 그저 이 순간 집요하게 입술을 조르는 이 남자 때문에 머릿속이 왕왕 울렸다.

‘이소 씨.’

‘자, 잠시만요. 저 진짜 지금, 숨이-!’

‘한 번만 더.’

자꾸만 가빠지는 숨에 저도 모르게 어깨를 밀어내면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옆구리를 세게 쥐어 잡는 손아귀가 야속했다. 인적이 드물다곤 하지만 그래도 사방이 뻥 뚫린 골목이었고 심지어 건너편 집에는 불까지 켜져 있었다. 자꾸만 다리 사이를 파고드는 해준의 단단한 허벅지 위에 주저앉지 않으려고 발부리를 높이 들자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있었다.

‘진, 진짜 이제 그만, 그만해요….’

결국 고개를 바짝 숙이고 애원하듯 도리질을 치고 나서야 볼과 귓불, 목덜미를 몇 번 더 빨아올리곤 떨어진 해준이 은근한 눈길로 이소의 코에 제 코를 부볐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범이 제 짝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소는 그제서야 제 손이 해준의 어깨를 쥐어뜯을 듯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겨진 옷에 배어난 땀이 축축했다. 손이 저리고 숨이 너무 찼다. 이런 건 진짜 처음이었다.

널을 뛰는 이소의 심장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해준은 낮은 목소리로 조르고 또 졸랐다.

‘더 하고 싶어요.’

‘안 돼요. 진짜 안 돼요.’

‘한 번만.’

‘안 돼요.’

‘쪽만 할게요.’

입술을 꾹 다물고 계속 고개를 젓던 이소가 쪽만 하고 떨어진다는 말에 멈칫하고 눈을 마주쳤다.

‘쪽만…?’

겁먹은 이소의 얼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해준은 결국 거짓말을 했다. 벽에 밀친 채 처음보다 더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결국 어깨를 밀쳐내다 못해 가슴을 퍽퍽 두드려 내쳐 버린 키스가 두 번째.

돌아오는 길에 ‘시리얼 바를 선물했는데 잘 받았냐’고 물어보자 해준은 백화점 다녀오느라 연구실에 들르지 못했다며 망연자실했다. 안 되겠다며 지금 당장 연구실에 가야겠다고 말하는 해준을 달래 주느라 했던 키스가 세 번째.

결국은 연구실 앞까지 같이 가서 문에 걸려 있는 시리얼 바를 찾아내자마자 어쩜 이런 생각을 다 했냐며 다른 사람 안 주고 혼자만 먹을 거라고 주절대는 해준에게 잡혀 뒷목덜미부터 받아 낸 키스가 네 번째.

‘저 입술 아파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설마 또 키스하지는 않겠지 눈치를 보다가 후다닥 올라가려고 하자 부드럽게 손목을 잡고 손등부터 가볍게 내려앉는 손등 키스를 마지막으로 해준은 집으로 돌아갔다.

겨우겨우 계단을 올라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그대로 주저앉아 볼을 만져 보자 열에 달아오른 뺨이 붉었다. 첫 키스였는데, 고백도 제대로 못 했는데 오늘 하루 동안 한 키스만 벌써 열 번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허리 아래가 저릿저릿했다. 팔에 얼굴을 묻자 제 후드 티에 아직도 해준의 냄새가 배어 있었다. 좋은 처방이었다. 낮의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해준의 키스는 좋은 약이었다.

“…가려야겠다.”

정숙이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손님이라도 오면 누가 봐도 키스 때문에 부어올랐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소는 서둘러 찬장에서 주방용 마스크를 찾아 얼굴에 쓰고 고개를 돌렸다. 어수선하게 구는 이소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는 정숙에게 ‘입술이요, 감기 때문인가 봐요.’ 했더니 정숙이 화들짝 놀라며 저도 마스크를 찾아 썼다. 이소는 숨을 돌리고 핸드폰을 열었다.

[잘 잤어요? 아침에 시리얼바 먹었어요. 맛있어요. 고마워요.] 08:25

[또 보고 싶다.] 08:42

[저녁에 보러가도 돼요?] 08:43

구애에 가까운 해준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우리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손도 잡고 키스도 하고 좋아한다고 고백도 했는데. 우리 그럼 이제 사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썸이라고 하는 건가? 그냥 자연스럽게 굴어야 하는 게 맞는 걸까? 아, 어렵다. 이소는 무어라 답장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 그냥 ‘네. 좋아요. 오셔도 돼요.’라고 보내고 화면을 껐다. 어쨌든 그냥 좋았다. 종일 들뜨고 비이성적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소는 이 기분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 * *

약속한 화요일, 이소는 주머니에 두툼한 돈 봉투를 넣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해준과 만난 밤 이후로 쭉 무시하고 있었더니 온갖 조롱 섞인 메시지가 잔뜩 쌓였다. 원래 약속한 날짜도 아니었고 변경된 날짜에 늦지 않게 가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겁박과 시비인지 고 대표는 계속해서 연락을 했다. 어차피 전화를 해 봤자 듣기 싫은 희롱만 해댈 게 뻔해서 이소는 오기로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사장님, 저 다녀올게요.”

“천천히 다녀와. 전화 계속 오던데…. 괜찮은 거지?”

“별일 없을 거예요. 원래 그분 말로만 겁주시는 거예요.”

20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상가 건물 앞이었다.

[민생을 살리는 사업자 전문대출, 파라다이스 대부]

처음에는 분명 그렇게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무어라 쓰였는지도 모를 간판은 글자가 죄다 떨어진 채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이소 역시 구석에 제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헬멧을 벗었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싸구려 커피 냄새가 진동하는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을 때마다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고 대표와 입씨름을 하다 보면 삼십 분을 훌쩍 지나곤 했다.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전화가 계속 울렸다. 출발하기 전에도 메시지를 보냈음에 불구하고 닦달을 해대는 게 오늘따라 얼마나 저를 잡으려고 그러나 싶어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주머니에서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꺼내 전원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 그대로 손가락이 굳어 버렸다. 해준이었다. 시계를 보자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이었다. 지난주부터 점심을 먹고 틈날 때마다 통화를 하곤 했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목소리를 들으려 전화를 한 것 같았다.

하필 고 대표의 사무실 앞이었다. 이소는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일 층으로 내려갔다.

“여보세요….”

- 이소 씨, 안녕.

“안녕하세요….”

- 왜 이렇게 목소리가 작아요? 화장실이에요?

해준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게 울려 퍼졌다. 해준은 연구실 안인지 조용했다.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지금, 잠깐 어디 나와 있어서….”

- 어디요? 배달?

“아니요. 배달은 아니고, 그…. 아, 잠깐 친구를 좀 만나러….”

- 아, 그렇구나. 지금은 그럼 친구랑 같이 있어요?

“이제 만나려고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켕기는 구석이 있다 보니 묻지도 않은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해준은 별로 의심하지 않는 듯 그렇구나, 하며 말꼬리를 늘였다. 나른한 목소리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 언제 끝나요? 나 오늘 오후 수업 없는데 데리러 갈까요?

“아니요, 아니요! 안 그러셔도 돼요!”

이소는 앞에 사람도 없는데 손을 휘저으며 소리를 높였다. 전화기 속 해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이소는 계단 위에서 누가 내려올까 봐 눈치를 보며 입을 가린 채 벽 쪽으로 붙었다. 갑작스럽게 목소리를 높여 해준이 놀라지는 않았을까 마음을 졸이며 말을 버벅였다.

“그러니까…, 이게 언제 끝날지 몰라서, 교수님 번거로우시니까요. 제가 끄, 끝나고 갈 테니까 우리 가게에서 만나요. 제가 전화 드릴게요.”

- 정말로 데리러 가면 안 돼요? 나 정말 오늘 바쁘지 않은데.

“저 오토바이도 가져왔고, 여기 좀 멀어서…. 진짜로 끝나고 바로 전화 드릴게요.”

- 이소 씨.

돌연 해준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네, 네에.”

-정말 친구 만나는 거예요?

티 났나. 하지만 해준은 모르니까 둘러대면 된다. 이소는 마른침을 삼켰다.

“네, 그럼요.”

- 정말 별일 아니죠? 나 피하는 거 아니고?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아무 일 없어요. 진짜로.”

-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해요. 바로 전화해요. 알았죠?

해준은 마치 이소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이라고 예감하는 듯 퍽 걱정을 담아 몇 번이고 말했다. 이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로 친구를 만나러 온 거라고 설명하고 겨우 해준을 달래 전화를 끊었다. 핸드폰을 끄기 전까지도 해준은 웬 찹쌀떡이 오열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끝나고 빨리 와요. 보고 싶어.] 하고 보챘다. 해준답기도 하고 해준답지 않기도 해서 풋 하고 웃음이 터졌다.

팔짝팔짝 뛰는 찹쌀떡이 너무 귀여워서 이소는 저도 이모티콘을 보내려고 채팅창을 열었지만 갖고 있는 이모티콘이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 보니 항상 저는 흔한 웃는 이모티콘 하나도 없이 재미없게만 메시지를 보냈다. 나중에 집에 가서 하나만 사야지, 생각하고 전원 버튼을 눌러 전화를 껐다. 숨을 돌리고 고개를 돌린 이소가 계단을 오르려던 참이었다.

“별일이야.”

벽에 등을 기댄 채 담배를 태우던 남자가 꽁초를 아무 데나 버렸다. 생글거리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금속처럼 날카로운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을 알았다는 듯 눈을 반짝였지만 꽁초를 비벼 끄는 발끝에는 묘한 신경질이 묻어 있었다.

“윤이소 웃는 거 되게 오랜만에 보네.”

파라다이스 대표, 고태균이었다.

고 대표의 손가락이 천천히 난간을 쓸어내렸다. 복도의 창을 통해 뻗어 나온 빛줄기 사이로 풀풀 날아다니는 먼지 결정이 보였다. 냉한 인상의 남자는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곤 고저 없는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이소야, 연애하니?”

담배 냄새가 독했다. 방금 태웠나 보다.

“…아니요.”

“그럼 누구랑 통화했어?

“…그냥, 친구요.”

이소는 혹여나 고 대표가 통화 내용을 다 들었을까 봐 마음을 졸였다. 해준의 목소리는 둘째치고 제 목소리는 계단 위에서 귀를 조금만 기울여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 대표와의 거리는 가까웠다.

“그래?”

고 대표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그냥 친구랑 통화하는데 얼굴을 다 붉히고. 이런 거 하는 사이야?”

굳은 표정으로 계단 위를 올려다보자 예의 능글맞은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 올린 고 대표는 손가락으로 고리를 만들어 그 사이를 쑤시는 손 모양을 했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어떻게 이야기가 항상 거기로 튀는지. 이소는 애꿎은 전화기를 힘주어 쥔 뒤 주머니에 말없이 집어넣었다. 고 대표가 입술을 비죽이며 신경질적으로 손을 털어 냈다.

“야, 왜 대답을 안 해.”

“…그런 거 하는 사이가 아니니까요, 그냥 정말 친구예요.”

“그치, 우리 이소는 걸레 아니잖아.”

고 대표가 잘생긴 얼굴을 쓸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한숨이 나왔다. 예전에는 정말 저 말끔하게 생긴 얼굴에 속아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고 곁에 있던 때가 있었다.

깨끗하고 단정한 슈트, 양옆으로 넓게 벌어진 어깨 아래로 위압감을 줄 정도의 흉통을 가진 덩치의 사내가 느릿하게 걸어 내려왔다. 같은 높이의 계단을 밟고 있어도 저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남자는 차가운 손을 들어 이소의 이마에 걸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이마를 스치는 마른 손에 소름이 돋았다. 고 대표와 비슷한 키의 해준과 있을 때는 이렇게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럴 때조차도 해준을 떠올리다니. 이소는 제 생각의 갈래가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느낌에 얕게 코웃음을 쳤다. 찰나였지만 미미하게 터지는 웃음을 눈치챈 고 대표는 동공을 좁혔다.

“저번에 봤을 때보다 살이 좀 더 빠졌네.”

“들어가시죠. 저 오늘은 정말 금방 가야 해서,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친근하게 말을 거는 고 대표의 눈을 보지 않으려 한껏 고개를 숙인 채 낡은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가 버리자 등 뒤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 * *

이소가 빚을 지기 시작한 것은 오 년 전 겨울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자잘하게 여기저기서 빌린 빚들도 있었지만 한두 달 안에 갚을 수 있을 만큼의 여력은 되었다. 그러다 이유 모를 고열이 두 살배기였던 해수를 덮친 지 삼 일이 넘어간 날, 덜컥 겁이 나 대학병원으로 달려 갔었던 그 날. 해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사리판단이 흐려졌고 병원에서 이유를 알 때까지 입원부터 하자고 강권해 있는 돈을 모조리 털어 입원비로 충당했다. 해열제를 맞지 않으면 40도가 훌쩍 넘어 사경을 해멨고 해열제를 놓으면 그대로 축 늘어져 잠을 자는 해수를 보며 몇 번이나 자책했다.

무리해서 일을 나가지 말걸, 잠을 좀 더 줄이고 아이랑 있을걸, 좀 더 잘 먹일걸, 먹고 싶다던 음료수 사 달라고 할 때 사 줄걸. 우습게도 일주일 정도면 퇴원할 수 있을 줄 알았던 병원은 한 달을 더 있다가 나왔다. 고작 한 달인데, 그 고작 한 달값을 지불할 돈이 없었다. 동갑내기 진혁과 미혼부센터에도 너무 많이 신세를 졌기 때문에 차마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병원밥을 먹이고 저는 작은 우유로 배를 채우던 날이 사흘이 지나갈 때 즈음 공사판에서 일을 할 때 종종 챙겨 주던 안전과장이 연락을 해 왔다. 저 아는 사람이 다른 사채 쓰는 것보다는 낮은 이율이고 선이자도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 준다고 했다.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잘 갚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말에 연신 감사하다고 허공에 허리를 숙였다. 통장 잔고가 고작 만 원 단위로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오 년 전 바로 이 낡은 사무실에서 이소는 파라다이스 고 대표를 만났다.

‘이름이 특이하네, 우리말 이름이야?’

‘온화할 이, 흴 소요.’

‘오, 듣고 보니 이름 따라 피부가 참 하얗네.’

사채회사는 온몸에 문신을 하고 쇠 파이프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덩치 큰 사람들만 있는 줄 알았던 이소는 멀끔하게 차려입은 서늘한 인상의 젊은 남자가 제 손을 잡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격려 하는 말에 울컥해 그 자리에서 눈물을 뚝뚝 떨궜다. 거죽밖에 남지 않은 제 마른 손에 비해 남자의 커다란 손은 반질반질 윤이 났다.

계약서를 쓰는 동안 따뜻한 차와 짜장면도 한 그릇 얻어먹었다. 사흘 만에 제대로 된 식사였다. 그리고 제 손에 들어온 것은 빳빳한 지폐, 오백만 원. 이자는 월 30만 원. 사채치고는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다. 병원비를 하고 해수와 지낼 한 달간의 생활비. 작은 월세방을 얻어 남은 돈은 되는대로 갚을 생각이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열 달 동안 꼬박꼬박 이자를 갚았다. 그렇게 갚은 이자가 원금을 넘어섰지만 원금 상환은 엄두도 못 내고 생활비는 갈수록 쪼들렸다.

‘이상하다. 왜 금방 안 갚아지지….’

이소는 결국 고 대표 돈을 갚으려 또 다른 사채에도 손을 댔다. 휴대전화에 수시로 뜨는 대출 상담 광고를 보고 전화를 했고 또 다른 두 곳에서 돈을 또 빌렸다. 그러나 매달 130만 원씩의 이자 부담은 오래지 않아 또 사채를 불리고, 결국 또 돈을 빌리는 악순환. 고 대표가 유하기는 했다. 이번에는 진짜 월세방에 문신을 잔뜩 한 남자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집기를 깨부쉈다. 결국 아이와 함께 머리채를 잡히기 직전에 그 반지하 방에 붕어빵을 들고 찾아온 고 대표가 사태를 수습했다.

뺨을 하도 맞아 피떡이 된 이소의 입가에 붕어빵을 물려 주며 고 대표는 위임장을 건넸다.

‘그 사채 빚은 내가 일괄로 갚아 줄게. 대신 넌 나한테 이자만 내. 다른 새끼한테 가지 말고.’

그렇게 기존 사채상환금까지 모두 해서 매달 100만 원 혹은 200만 원까지도 건넸다. 지난 3년간 못해도 이자와 수수료로 3천만 원은 넘게 건넨 것 같은데도 여전히 원금 3천만 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죽고 싶었지만 죽을 수 없었다. 신용불량자, 22살부터 제 이름 뒤를 따라다니던 신분을 얻었다.

결국 또 돈이 필요해지면 빌릴 곳은 파라다이스 대부 한 군데뿐이었다. 돈은 미친 듯이 불어났다. 이자 계산하는 것도 의미 없었다. 그렇지만 계속 적어 내려갔다. 언젠가는 갚겠지, 정말 언젠가는 다 갚겠지. 그런 생각으로.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대표님. 이자도 함께 넣었어요. 그리고…. 이건 얼마 안 되지만 중도상환금이에요.”

“그냥 뒀다가 다음 달에 넣지 왜.”

“어차피 갚아야 하니까요.”

낡은 외관과 다르게 깨끗하고 넓은 사무실. 꽤 젊은 나이에 사채업을 혼자 시작한 고 대표는 듣자 하니 이 건물 말고도 서울의 노른자 땅에 몇 채의 건물이 더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꼭 이소를 만날 때면 이 허름하고 낡아 떨어진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소는 항상 이곳이 싫었다. 보는 사람이 적었고 무슨 일이 일어나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음침한 장소였다. 언제든 수틀리면 제 손모가지 하나 부러뜨리는 것쯤은 일도 아닌 사람들과 그런 일이 왕왕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곳.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이소는 제 앞에 놓인 까만 커피를 내려다보며 얌전히 정산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담배 냄새를 감추려 뿌린 인공적인 허브 향기에 두통이 몰려오는 듯했다. 고 대표는 나른한 목소리로 만족스럽게 웃었다.

“와, 백만 원이나 더 넣었네?”

“이번 달에 좀… 장사가 잘 되어서요.”

“해진이 맛있는 거나 사 주지 뭘 또 덥썩 가져오고 그래. 정 없게.”

“해수요.”

“아, 해수. 그래, 삼촌이 미안하다고 전해 줘.”

답지 않게 목 끝까지 차오른 시비를 삼키고 쓴 커피를 꿀꺽 넘겼다. 아이 이름이야 중요한 것도 아닌데 전 같지 않게 자꾸만 말이 모나게 나갔다. 머리가 아프니 단 게 먹고 싶었다. 해준과의 전화를 끊고 나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일찍 끝난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상환하는 즐거운 날이니까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사 줄 수 있는 여유를 부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피곤만 몰려왔다.

고 대표는 정산이 끝났는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남은 금액을 인쇄해 이소가 앉은 테이블 위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산더미 같이 불어난 채무 금액의 뒷자리가 티 나지 않게 줄어 있었다. 건너편 자리도 비어 있는데 꾸역꾸역 제 옆자리에 붙어 앉자 독한 연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천천히 갚으라니까. 어차피 우리 오래 볼 거잖아.”

“빨리 갚아야죠. 제가 얼른 털어야 대표님도 편해지시고….”

“난 십 년도 더 보고 싶은데.”

소파 뒤로 넘긴 손이 이소의 흰 목덜미를 살살 쓸어넘겼다. 얼마 전 머리를 잘라서 그런지 하얗게 드러난 목에 모가 가는 머리카락이 보기 좋게 다듬어져 있었다. 고 대표의 손끝이 짧게 친 머리카락을 문지르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저도…, 편해지죠.”

고 대표가 말허리를 잘라 먹었지만 이소는 얕은 숨을 들이켜고 불쾌함을 숨겼다. 고 대표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소가 입을 열 때마다 입꼬리에 호선을 그리고 웃었다. 퍽 귀여운 것을 본다는 듯 애정을 담아 깜빡이는 눈을 피해 고개를 돌리자 테이블 밑 운동화 끝에 고 대표의 구두 코가 닿았다. 대놓고 걸어오는 수작에 같은 자리에 있던 고 대표의 수하는 눈치껏 고개를 돌렸다.

“갈수록 말도 잘해…. 예전엔 쩔쩔매는 꼴이 꼭 비 맞은 개새끼 같았는데 요새는 툭툭 기어오르는 게 제법 친해진 것 같고. 아, 우리 친해진 거야? 난 좋은데.”

“…….”

고 대표는 길게 뻗은 다리를 꼬고는 낡은 쿠션에 등을 기대앉았다. 뒤통수부터 귓바퀴를 훑어내리는 시선이 구렁이처럼 목을 감아 죄는 것 같았다.

“빨리 갚는 방법 알면서.”

자그마치 오 년이었다. 고등학교 친구인 진혁을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때부터 만났으니 가장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8년하고 5개월. 같이 사는 정숙은 이제 고작 2년. 그런 이소에게 5년이나 얼굴을 마주한 고 대표는 사회에 나와 가장 오래 본 사람 중 하나였다. 한 달에 한 번 보는데도 한 시간 정도 얼굴을 마주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스트레스로 열이 절절 끓었다. 차라리 제 앞에서 거친 언어로 욕을 하거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눈에 훤히 드러나는 적대감이라 당장은 듣기 싫고 상처를 받아도 금세 털어 낼 수 있었지만.

“여전히 생각 없어?”

“전, 그러니까… 대표님과는 그런….”

“남자인 게 뭐 어때서. 눈 감고 다리만 벌리고 있으면 내가 알아서 할 텐데. 나 진짜 존나 잘해. 나랑 자고 싶어서 일부러 돈 빌리는 연놈들이 한 트럭이야. 한 번 자면 반절 깎아 주고 그 다음번에 자면 또 반절. 남는 장사잖아, 이소야.”

무서워? 무서우면 약 먹고 하면 되지, 형이 천국 보내 준다니까. 저렇게 뱀 같은 눈을 하고 진득하게 저를 훑어내리는 시선을 말없이 견뎌 내는 시간은 고문처럼 느껴졌다. 덧붙여 천박하고 저속한 언어로 희롱하는 것까지도. 이소는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쥐었다.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언제 또 돌변할지 몰라 숨을 고르고 입술을 달싹였다.

“저 오늘은…. 정산 끝나셨으면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수도 없이 거절한다. 고 대표는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래도 웬만하면 보내 줬다. 그저 말로만 그러는 것이다. 지금도 꼬리를 내리고 바짝 엎드리면 조금 놀리다 집에 순순히 보내줄 것이다.

“어디 가. 간식 먹고 가야지.”

테이블 위로 살짝 놓은 것은 작은 비닐 포장이 된 탁구공만 한 눈깔사탕이었다. 애도 아니고, 매번 고 대표는 쓴 커피를 줘 놓고 다디단 간식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걸 다 씹어 삼킬 때까지 보내 주지 않았다. 스물두 살, 어린 이소는 그 간식을 퍽 좋아했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낮은 이율에 큰돈을 스스럼없이 빌려주던 그 남자가 챙겨 주던 케이크 따위를 좋다고 받아먹었다. 지금은 고작 이런 것에 감동 받지 않을 거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 대표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듯 사탕을 굴려 제 앞에 깠다.

“오늘은 그냥 가져가서 먹을게요.”

“보는 앞에서 먹어. 성의를 봐서.”

성의는 개뿔. 이번에는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이따위 것을 먹이는 건지. 이소는 한숨을 쉬며 사탕을 깠다. 예전에 몇 번 반항심이 들어 안 먹겠다고 하고 일어났을 때 고 대표의 수하들이 대표님을 무시하는 거냐며 재떨이로 머리를 쳐 버리는 바람에 이마가 찢어졌던 일이 있었다. 물론 그 앞에서 고 대표가 누구 앞에서 고객을 치는 거냐며 그 새끼 머리를 똑같이 만들어 줬지만, 그 일 이후로 웬만하면 괜한 오기를 부리는 일은 관뒀다.

비닐을 까서 사탕을 입 안에 욱여넣었다. 굵은 설탕 입자가 가득 묻은 사탕의 까실한 표면이 점막을 긁는 느낌이 불쾌했다. 한입에 넣기에도 버거운 크기라 양 볼을 굴려 가며 녹일 수가 없어 혀 위에 얹어 놓으면 싸구려 단맛이 퍼졌다. 깨물어 먹으려 해도 도무지 입이 벌어지지 않아 겨우 입을 다물고 녹이고 있는데 고 대표는 이소가 남긴 커피를 홀짝이며 나른하게 웃었다.

“우리 이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입이 참 작아.”

대답할 만한 일도 아니고 무슨 의도로 말하는 것인지 너무 자명해 그저 눈을 깔고 열심히 입에서 사탕만 녹였다.

“존나게 열심히 빠네.”

침을 삼키는 것도 쉽지 않아 입술을 열고 혀를 눌러 가며 입 안에 차오르는 타액을 넘길 때마다 목울대에서 저절로 꿀꺽꿀꺽 소리가 났다.

“이소야.”

눈동자를 들자 어느새 허리를 바짝 숙인 고 대표가 고개를 기울인 채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딱히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저를 바라보는 시선에 데일 것 같았다. 느리게 뻗어 나온 손이 이소의 턱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유난히 차가운 손은 서슬 퍼런 칼날처럼 느껴졌다.

“연애 같은 거 하지 마. 돈도 더 천천히 갚아. 딴생각하지 말고.”

“제가 언제 딴….”

“예쁘게 대답해.”

고 대표가 턱을 쥔 손을 펼쳐 손가락으로 볼우물을 지그시 눌렀다. 안 그래도 커다란 사탕 때문에 좁아진 입 안을 바깥에서 압박해 오자 호흡과 침이 넘어가는 타이밍이 어긋나 구역감이 올라왔다. 대답을 할 때까지 놔주지 않을 생각인지 볼을 쥔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오늘 뭔가 단단히 마음에 안 들었구나 싶었다. 숨구멍으로 침이 깔딱깔딱 넘어갈 것 같았다. 목울대가 꿀렁거렸다. 마주친 두 눈과 살짝 벌어진 입술은 마치 이소의 얼굴을 관음하듯 진득하게 훑어내렸다.

결국에는 삼키지 못한 침이 입술 새로 왈칵 샜다. 놀라 고개를 뒤로 젖히자 타액이 기도로 들어갔는지 별안간 사레가 들려 콜록콜록 밭은 숨을 뱉었다.

“아흑, 흐…. 콜록, …흡.”

“어휴, 주평아. 여기 티슈 줘라. 누가 보면 좆 빨다 토한 줄 알겠다.”

질 나쁜 농담에 성질이 나 입에 문 사탕을 퉤 뱉자 타액 범벅이 된 사탕이 도로록 소리를 내며 지저분하게 소파 아래를 굴렀다.

“…딴생각, 안 해요. 돈 꼬박꼬박 드리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이사를 가. 특별히 멀리 가지도 않으면서 자꾸 옮겨대는 이유가 뭐야?”

“그거야 돈이 없어서, 하…. 그리고 어차피 이사해도 알아서 다 찾아오시잖아요.”

언제나 귀신같이 제가 이사한 곳을 찾아내 불시에 찾아와 정신을 빼놓았다. 어디를 가도 제 손아귀에 있다는 뜻이었다. 지방까지 내려가 봤지만 결국 어렵지 않게 저를 찾아냈고, 그 이후에 계좌이체는 불사하고 무조건 현금으로 돈을 받아 내는 통에 멀리 이사를 가봤자 상납하러 고 대표를 찾아와야 하는 저만 손해였다.

고 대표가 티슈를 뽑아 내밀자 이소는 고 대표의 손을 못 본 척 새로 티슈를 뽑아 입을 닦아 냈다. 고 대표의 시선이 붉게 달아오른 입술에 가닿았다.

“내가 요새 바빠서 이소 보러 갈 시간이 없는데, 주소 적어 놓고 가.”

“안 오셔도 돼요. 그냥 지금처럼 제가 왔다 갔다 할게요.”

“집에 딸 말고 뭐 숨겨 놓은 거 있어? 혹시 여자?”

이소가 눈을 홉뜨고 고 대표를 흘겼다.

“그런 거 없어요.”

“그럼 적어, 잔말 말고.”

막무가내였다. 시계를 보니 대충 들어온 시간부터 사십 분 정도 지나 있었다. 어느새 후각도 마비되었는지 담배 냄새도 옅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옆에 놓인 메모지에 주소를 갈겨 적은 후 일어났다. 입이 얼얼했다. 어쩐지 조금씩 선을 넘는 것 같아 다음번에는 뭘 주든 먹는 일 없이 차라리 대가리나 깨지고 오는 게 낫겠다 싶었다.

이소는 가방을 쥐고 문고리를 잡았다. 이제 이 문만 열고 나가면 앞으로 한 달간은 볼 일이 없는 작자다. 나가자마자 해준에게 전화를 해야지 생각뿐이었다. 뭣도 없는 저를 존중하는 그 다정한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러나 문고리를 돌려 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게 왜 안 열리지. 적잖이 당황한 이소의 뒤로 천천히 다가온 고 대표가 가까이 몸을 붙였다. 뒷걸음질을 치려다 멈칫한 것은 내내 방 안에서 은은하게 나기만 했던 담배 냄새가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훅 끼쳤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제 엉덩이에 닿은 고 대표의 아래가 단단하게 서 있었다.

“무슨….”

지금까지 희롱은 수도 없이 당했지만 직접적으로 고 대표가 몸을 붙여 온 적은 없었다. 노골적으로 허리를 지분대는 손이 이소의 팔을 강하게 그러쥐었다. 사시나무 떨듯 손이 떨렸다. 귓바퀴에 토해 낸 더러운 숨, 낮은 신음 소리가 질척하게 내려앉았다. 당장 고 대표를 밀치고 뛰쳐나가야 하는데 문을 코앞에 두고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방 안에는 고 대표 말고도 세 명이나 더 있었음에도 고 대표는 그런 것들이 상관없다는 듯 천천히 바지를 비벼 가며 허리 짓을 했다.

“생각해 보니까, 아까 너 표정이 그냥 보내기 너무 아까운데. 오늘 조금만 상환하자, 어?”

“흡….”

숨을 집어삼켰다. 여기서 실수로 소리를 내거나 해서 고 대표를 잘못 건드리면 정말 이 미친놈이 저 사람들 앞에서 제 바지를 까 내릴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이소는 그저 두 눈을 크게 뜨고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제 엉덩이 골 사이에 좆을 비비고 있는 고 대표를 가만히 놔둘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단단한 좆으로 쿡쿡 볼기 사이를 찔러대던 고 대표가 허리를 더듬으며 상의를 추어올렸다. 옷이 빠르게 밀려 올라갔다.

“새끼들아, 나가 봐. 나 지금 자지 아파 터질 거 같아.”

“자, 잠깐만. 잠깐만요. 대표님…. 제발, 잠깐만요.”

“야, 이소야. 엉덩이 빼 봐, 가만히 있어 보라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이소가 고 대표의 손을 덥썩 잡았다. 커다랗고 두툼한 손이 유두에 가 닿기도 전에 이소에게 저지당했다.

“왜. 무서워?”

고 대표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손가락을 세워 가슴을 살살 더듬었다. 코를 킁킁대며 이소의 목덜미에 부볐다. 소름 끼쳤다. 아직도 단단하게 발기된 밑이 바짝 붙어 있었다. 이소는 고 대표의 엄지손가락을 꼭 쥐었다. 무언의 부탁이었다. 적어도 오늘은, 오늘은 안 된다.

“…다음에.”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렸다. 고 대표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약속을 정하면 안 되는데. 거절해야 하는데…. 이 자리에서 거절하면 그대로 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제로 당할 것 같았다. 입술이 벌벌 떨렸다. 웃음이 비식비식 새어 나오는지 고 대표의 목소리가 진동했다.

“푸흡, 안 하는 게 아니고. 다음에 한다고?”

“…네. 다음… 다음에 오면…, 그때 하겠…습니다.”

결국 이소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입술을 짓씹었다. 다음 달 상환일. 고작 한 달. 딱 그만큼 미뤄서 뭘 하겠다고 다음을 꺼낸 건지. 그러나 이소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공포와 자책으로 얼룩져 있던 찰나, 돌연 이소의 고개가 옆으로 덜걱 꺾였다.

“대, 대표님.”

“있어 봐. 영역표시 좀 하자.”

고 대표의 오돌토돌한 혀가 희고 가는 목덜미부터 굴곡진 턱선을 따라 매끈한 뺨까지 느리게 핥아 올렸다. 혀가 타고 올라오는 동안 얼마나 천천히 굼질거리는지 꼭 달팽이가 점액을 질질 흘리며 목덜미를 타고 기어 다니는 것만 같았다. 소름이 끼쳤다. 이소의 손이 고 대표의 팔을 세게 그러쥔 채 부들부들 떨렸다. 쪽, 소리와 함께 뺨에 닿은 입술이 떨어졌다. 흡사 숯을 삼킨 것마냥 미묘하게 쉰 목소리가 만족스럽게 속삭였다.

“아, 존나 맛있다.”

짙은 담배 냄새는 가볍게 몸을 물렸다. 이후 얼굴 옆으로 뻗은 손은 느릿하게 문고리 옆 요철을 눌렀다.

“여길 누르면, 나갈 수 있어.”

전에 올 때는 못 보던 버튼을 누르자 자동으로 문고리가 돌아갔다. 문이 열렸지만 사지에 소름이 돋아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뺨에서 담배 냄새가 묻은 타액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더 있다 갈래?”

웃음소리가 묻은 목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이소는 고개를 흔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발걸음을 뗐다. ‘또 봐, 전화랑 문자 씹지 말고.’ 하며 낭랑하게 말을 건넨 남자는 마치 또래 친구에게 놀러 오라는 듯 여상한 태도였다.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개새끼, 개새끼. 고 대표가 만진 제 몸이 너무 더럽게 느껴졌다. 화가 나서 가슴과 머리에 열이 올랐다. 오토바이에 오른 이소는 숨을 고르고 시동을 걸었다.

해준 생각이 났지만, 지금은 볼 수가 없었다. 또 울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귀를 씻어 잊어버릴 수 있다면 백 번이고 귀를 씻고 싶었다. 뺨을 닦고 또 닦아 살갗이 너덜너덜해지게 만든 후 갖다 버리고 싶다. 이소는 제 머리를 탁탁 때렸다.

“잊어버리자, 잊어버리자…. 빨리 잊어버리자….”

가라앉은 눈을 한 채 조용히 집 반대 방향으로 오토바이를 돌렸다. 주머니 속 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그저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집의 반대 방향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간 곳은 멀지 않았다. 사람이 적고 마음 놓고 쉴 수 있을 만한 곳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수지 근처 둑방이 눈에 띄었을 뿐이다. 저 멀리 매점도 보였지만 돌아갈 때도 운전을 해야 해서 아쉽게도 맥주는 포기해야 했다. 술을 마시고 모조리 잊어버리면 좋을 텐데 아직은 하루가 남아 있었고 해야 할 일도 태산이었다.

이소는 오토바이를 세워 놓은 후 들꽃이 잔뜩 핀 둑방에 쪼그려 앉았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몇 번 더 울렸지만 꺼내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아무리 거지 같아도, 최악의 상황에서라도 절대로 꺼 놓을 수가 없는 핸드폰이기에 더욱 진절머리가 났다. 진동이 멈춘 핸드폰을 꺼내 무음 상태로 해 둔 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릎 위로 교차한 마른 팔에 고개를 묻었다. 고 대표의 사무실에서 나온 후로 쭉 머릿속에 누군가 먹물을 들이부은 듯 사고가 느리고 어둡게 침잠하고 있었다. 고작 한 시간 정도 있었을 뿐인데 온몸에서 독한 담배 냄새가 진동을 했다.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낮고 걸걸한 목소리와 저열한 농담, 불쾌하게 닿았던 딱딱한 아래와 꿈틀거리는 혀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체한 듯 가슴이 답답했다. 맨살에 닿은 귓바퀴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또 열이 오르고 있었다.

고 대표가 저를 유독 봐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변함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제가 어려서 그런 줄 알았다. 빌린 돈이 얼마 되지 않아서 너그럽게 군다고 생각했다. 딸린 식구가 있으니까 불쌍하게 여겨서 그런 줄 짐작했다. 그동안 만난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빨리 갚으라고 눈치를 주지도 않았고 폭언을 하거나 때리는 일도 없었다.

때 묻은 손에 봉투를 들고 문을 열면 뜨끈한 밥을 시켜 주고 사는 이야기를 들어 주며 동네 형처럼 지냈다. 제게 잘 해 주는 모습을 보며 사실 속내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 빠릿빠릿하게 굴었고 한시도 늦지 않으려 애를 썼다. 고 대표는 그런 이소를 매우 예뻐했다. 귀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어도 얌전히 굴었다. 금 같은 돈을 빌려줬으니까 고작 그 정도 만지는 것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윤이소는 어리고 순진했고 동시에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해수의 운동회가 겹쳐 납기일에 방문을 못 할 것 같아 미리 찾아갔었던 날이 있었다. 메시지를 몇 번 했지만 답장이 없어 갈까 말까 고민을 하다 결국은 멋대로 버스에 올랐다. 어쩌면 하루 일찍 왔다고 칭찬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고 동시에 다음 날 해수와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낼 생각에 충동적으로 벌인 일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만두 한 봉지를 샀다. 몇 마디 안부를 건네고 돈 봉투를 주고 웃으면서 나올 계획이었다.

계단을 올라 사무실 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대로 몸을 돌려 도망쳤어야 했다. 아으으, 아으으 하는 신음 소리를 듣고 아무 의심 없이 ‘대표님, 어디 다치셨어요?’ 하며 바보같이 문을 여는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경계심이 없으면 제가 문고리를 잡은 곳이 돈놀이를 하는 대부업체라는 사실을 그렇게 한 번에 망각할 수 있었을까.

눈 앞에는 온몸에 젖은 피와 누런 멍을 매단 남자가 시체마냥 축 늘어져 있었다. 고 대표의 손에는 피가 묻은 야구 배트가 들려 있었고 그의 발밑으로 엉망으로 흩어진 푸른 지폐가 수북했다. 남자는 꼭 죽은 것 같았다. 그가 입은 흰 셔츠가 척척하게 물든 것이 눈에 들어오자 그제서야 덜컥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을 치다 그대로 미끄러져 버렸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이소에게 고 대표는 야구 배트를 저 멀리 집어 던지고 다가왔다. 쓰러진 남자의 몸을 고깃덩이마냥 아무렇지 않게 밟고 걸어오는 모습에 소름이 끼쳐 엉덩이를 밀며 도망가려 하자 그대로 발목이 잡혔다.

‘이소야, 손이 다 까졌잖아. 이 예쁜 손이 다쳐서 어떻게 해.’

마치 연극을 하듯 한껏 꾸민 목소리와 과장된 표정에 등줄기가 서늘했다. 고 대표는 피떡이 되어 쓰러진 남자 앞에서 고작 바닥에 쓸린 이소의 손바닥에 온갖 유난을 떨며 밴드를 붙여 줬다. 미리 가져온 돈은 아주 잘했다면서 평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냉장고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꺼내어 주었다. 눈에 띄게 벌벌 떠는 어깨를 토닥이며 천천히 다 먹고 가라며 나른하게 웃는 고 대표의 미소를 보며 처음으로 그에게 공포를 느꼈다. 꾸역꾸역 입 안에 케이크를 밀어 넣고 빠져나온 사무실 문 앞에 제가 샀던 만두가 볼품없이 쏟아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런 사람에게 이딴 것을 호의랍시고 들이밀 생각을 했다니.

돌연 토악질이 밀려와 계단을 뛰어 내려가 방금 속에 쑤셔 넣었던 케이크를 모두 게워 냈다. 그러나 아무리 손가락을 넣고 목구멍을 쑤셔도 머릿속에 들어찬 생생한 광경까지 게워 낼 수는 없었다.

‘그 사람 이미 죽었을지도 몰라. 나보다 어려 보였는데, 가져온 돈도 훨씬 많았는데 왜.’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신고가 들어가자마자 고 대표는 자신을 먼저 의심할 것이고 그럼 다음 달에 복날 개 패듯이 맞아 시체처럼 늘어지는 사람은 자신이 될 것임은 자명했다. 세 살배기 해수 얼굴도 생각나지 않았다. 비겁하고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저도 그렇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웠다.

그 뒤 이소는 약속한 날이 아니면 예고 없이 파라다이스에 가는 일을 하지 않았다. 전처럼 밥을 얻어먹으며 안부를 전하는 일도 없었다. 억지로 주는 간식을 빨리 입 속에 욱여넣고 빠져나왔다.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고 눈치를 보고 쭈뼛거리며 거리를 두자 고 대표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자를 올려 받았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계산법이었지만 법보다 주먹이 가까이 있었기에 그저 그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굴었다.

몸을 만지려 하면 여전히 움츠러들었지만 고 대표는 이소가 놀라고 얼굴을 붉히는 것을 유희거리로만 여기는 듯 다행히 더 다가오지는 않았다. 전화와 문자에 미친 듯이 집착했지만 때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 년, 저만 참으면 그럭저럭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그랬는데. 오늘따라 문득 그런 우울감이 치솟는다.

이 지긋지긋한 관계에 끝이 있기는 할까? 영영 끝나지 않는 게 아닐까? 그냥 고 대표 말대로 눈 딱 감고 한 번 자고 나서 빚의 반을 깎고, 또 한 번 자고 반을 깎고. 그러다 언젠가 몇십만 원 정도로 줄어들면 돈 봉투를 집어 던지고 이제 다시는 볼 일 없다고 깔끔하게 끝낼 수 있을까? 달력에 상환 날짜가 다가오면 얼마나 더듬어 대고 전화를 해 댈지 저절로 신경이 곤두섰다. 토끼의 간처럼 집에 고막을 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을 정도였다. 듣지 못한다고 하면 그때는 그 지옥의 주둥아리를 다물려나.

쓸데없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자연스럽게 두통이 일었다. 십 분만. 정말 십 분만 우울해하다가 가야지. 그리고 집에 가는 길에 교수님한테 전화해야지. 곧 도착한다고, 같이 밥 먹자고 해야지. 해준의 얼굴을 보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티 나지 않게 웃을 기운을 좀 만들어 놔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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