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대와 함께하는 처음
기준이 희원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같이 있고 싶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 맞죠?”
기준의 되물음에 희원이 피식 웃었다.
“토끼 같아.”
희원이 툭 내뱉은 말에 기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누가 누구보고 토끼 같다는 거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희원이 기준의 미간을 검지로 꾹 누르며 말했다.
“나도 다 큰 성인이에요. 내가 뭐 유치원 교사라고 앤 줄 아나 봐. 근데 나 진짜 더운데…….”
희원이 옷을 잡고 팔랑팔랑 부채질을 했다. 기준은 인내심을 끌어모았다. 희원에게 성급하게 굴고 싶지 않았고 그를 겁먹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요동치는 혈류는 희원을 당장이라도 바닥에 눕히고 그 위를 점령하고 싶었지만 기준은 참았다.
“언제든 싫으면 밀어내요.”
기준은 희원을 쳐다보며 진심으로 말했다. 하지만 기준의 눈은 이미 흉포한 욕망으로 너울거렸다. 희원이 기준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말할게요. 같이, 있고 싶어요. 기준 씨랑.”
기준은 급하게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미 바지 안의 성기는 갑갑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심호흡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으면 차에서 뭔 일을 치를 것 같았다.
기준이 앞으로 돌아서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희원이 발을 뻗다가 그대로 휘청하며 기준에게 안겼다.
“잠시만, 희원 씨.”
마음과 몸이 점점 급해져서 기준은 인상을 썼다. 희원이 안기는 순간 그의 미미했던 오메가 향이 이제는 제대로 콧속을 찔렀기 때문이다. 아직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희원의 오메가 향이었다.
기준은 희원의 손을 잡고 절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안으로 이끌었다. 조급해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조금이라도 희원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그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희원이 기준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하아.”
참았던 숨을 터뜨리듯 희원이 기준의 등에 얼굴을 비비댔다. 그게 알파에게 얼마나 큰 자극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희원 씨, 잠깐만요.”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희원도 영문을 몰랐다. 며칠에 걸쳐서 서서히 진행되었던 전조 증상이 이렇게 갑자기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진행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거다. 몸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싶어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기준은 자신의 등을 만지작거리는 기다란 손이 살짝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준은 옷을 훌훌 벗고 그다음 행위를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한의 모든 인내심을 끄집어 올려서 참고 또 참았다.
“희원 씨. 겁내지 마요. 이상해진 게 아니에요. 약 먹었잖아요. 한 달 넘게 한약 먹었잖아요. 그 한의사 선생님이 그저 그런 돌팔이 할아범은 아니에요.”
“알아요. 하지만 이전에도 약은 먹었는데…….”
페로몬 문제 때문에 약을 먹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 봐 봐요. 그렇게 본격적으로 약을 먹고 치료하려고 한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내가 그랬잖아요. 효과가 있을 거라고.”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잘못된 게 아니에요. 먼저 씻어요. 욕실에 가운 있어요.”
기준은 자신이 먼저 그를 덮칠지도 모르겠어서 희원을 일단 욕실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큰방에 있는 욕실로 들어갔다. 바지를 뚫고 나올 것 같은 자신의 중심부를 보는 순간 기준은 자괴감이 들었다.
“도대체 뭐를 했다고 벌써 이 모양이 됐어.”
기준이 벽에 이마를 대고 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참아 냈는데 이제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상의를 벗고 바지와 속옷을 살짝 내리자마자 성기가 갑갑한 옷 안에서 퉁 하고 튕겨 나왔다.
“하아, 미치겠네.”
기준은 커질 대로 커진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이가 몇인데 이게 뭐냐고.”
희원의 오메가 향이 자꾸만 생각났다. 봄에 처음 맞이하는 꽃을 본 것처럼 설레는 기분이 들게 만들던 향이다. 기준은 눈을 감고 자신의 성기를 왼손으로 감쌌다. 요동치듯 맥이 뛰는 성기를 위아래로 잡고 흔들었다.
“하아. 씨발.”
욕지기가 서슴없이 나오며 욕실에 울려 퍼졌다. 기준은 하의를 채 다 벗지도 못하고 성기만 밖으로 끄집어낸 채 자위를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몇 년 만에 하는 짓거리인지 기준은 실소하면서도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희원의 새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 열에 달떠서 그렁그렁한 눈이 생각났다. 봄꽃처럼 마음을 어지럽히던 향을 다시 맡고 싶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들이마시고 싶었다. 그러다 그 새하얀 목덜미에 잇자국을 내고 마킹하고 싶었다.
“하아.”
기준이 더운 숨을 토해 내며 손을 더 빨리 움직였다. 자지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 희원의 몸속에 집어넣고 미친 듯이 허리를 흔들고 싶었다. 그 안은 얼마나 쫀득하고 따듯할까. 희원의 몸에서는 과즙같이 달큼한 향이 날 게 분명했다.
기준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크게 숨을 쉬었다. 손바닥 안에 울컥울컥 토해 낸 허연 정액을 보며 기준은 결국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미치겠네, 정말.”
열병을 앓는 소년과도 같은 마음에 기준은 스스로가 낯설었다.
기준이 씻고 나왔을 때 희원이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보이지 않았다. 가운을 입은 채 기준은 거실을 왔다 갔다 했다. 초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거실 욕실 문 앞에 섰다.
“희원 씨.”
기준이 희원을 불렀다. 하지만 희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기준이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 싶어 문고리를 잡았다가 다시 희원을 불렀다.
“희원 씨, 희원 씨!”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순간 수증기와 함께 진해진 오메가 향이 후욱 끼쳤다. 기준의 눈이 커다래졌다. 희원이 그대로 기준에게 덥석 안겨 들었기 때문이다.
“나 너무 더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가운을 칭칭 동여맨 모습이 꽤나 금욕적이었다. 하얀 얼굴에 꽃잎과도 같은 붉은 입술과 그렁그렁한 열감 오른 눈동자가 금욕적이면서도 색스러웠다. 볼이 발그스름한 분홍빛이었다. 새색시가 연지곤지를 찍은 것 같아서 가슴이 시끄러웠다.
“방으로 갈까요?”
기준이 희원을 잘 고쳐 안으며 물었다. 기준의 아랫배는 다시 묵직해져 왔다. 욕실에서 한 발 내보냈음에도 다시 발기하고 있었다. 희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바르작거리자 기준은 이제 몸에 불덩어리가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기준의 방은 휑뎅그렁했다. 널따란 침대 하나에 옆에는 스탠드와 협탁이 놓여 있었다. 희원은 피식 웃음이 났다.
“여기 사막 같아요.”
“네?”
“침대밖에 없어.”
희원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희원의 말에 기준은 살짝 민망함이 올라왔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희원이 움직이고 웃고 말을 뱉을 때마다 몸이 점점 더 뜨거워진다는 거였다.
“누워 봐요.”
“으응.”
희원이 침대 위에 누우면서도 기준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바람에 기준이 얼떨결에 희원의 위를 점령했다. 기준이 팔에 힘을 주고는 희원을 내려다봤다. 물에 젖어 곱슬곱슬 웨이브 진 갈색 머리칼이 침대 위에 흩어져 있었다. 기준이 희원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를 옆으로 거두어 주고는 물었다.
“히트사이클 보통 며칠 와요?”
“이틀?”
“응, 이틀 동안 나랑 같이 있어도 되겠어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기준의 가운을 꼼지락꼼지락 만져 댔다. 풀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럼 눈치 보지 말고 풀어요.”
스르륵, 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앞섶이 풀어 헤쳐지는 가운데 기준이 얼굴을 내려 희원의 입술을 머금었다. 아랫입술을 몇 번 빨아들이자 춥춥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희원이 무릎을 세워서 발바닥을 이불에 문지르며 바르작거렸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어요.”
“으응.”
“이제 멈추라고 해도 못 멈춰요.”
“아까는 언제든 싫으면 밀어내라면서요. 막 한 입 갖고 두말하네?”
희원의 대답에 기준이 그 입을 막듯이 다시 입을 맞췄다. 서로의 숨을 주고받으며 기준은 서서히 알파 페로몬을 열기 시작했다.
고개를 꺾어서 공기를 불어 넣어 주고 다시 입을 맞춘 뒤 입술을 떼었을 때 희원의 입술이 반들반들 빛을 내고 있었다. 기준이 희원의 입술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말했다.
“그래서 밀어낼 거예요?”
“으음…….”
“이렇게 됐는데?”
기준이 가운 끈을 잡고 있는 희원의 손을 잡고는 제 앞섶에 문질렀다. 희원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토끼는 자기면서 누구보고 토끼래. 기준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물었다.
“느껴져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됐는데 밀어낸다고?”
“날 그렇게 원하는 줄 몰랐네.”
희원이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아, 누굴 죽일 셈이에요?”
희원이 툭 뱉은 반말에 기준의 성기가 다시 꿈틀 움직였다. 이제 기준의 성기는 배꼽노리에서 건들거렸다. 이러다 자지 터지는 거 아냐. 기준은 도대체 아래 깔린 이 남자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어느 때는 순진무구한 사람처럼 굴다가 어느 때는 이렇게 도발을 한다.
기준은 정신이 아득해져 감을 느꼈다. 이러다가는 먹히는 사람이 희원이 아닌 제가 되는 것 아닌가 싶어서 기준이 조금 더 페로몬을 풀었다.
희원이 엉덩이를 들썩이며 기준을 쳐다봤다. 눈에 열감이 가득했다.
“애인이 죽으면 안 되죠. 하아, 더워. 좀 어떻게 해 줘요.”
희원은 자기 가운 어깨 부근을 옆으로 벌렸다. 그러는 바람에 하얀 빗장뼈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겠네, 정말.”
기준이 희원의 손을 놓고는 이번에는 희원의 가운 끈을 풀었다. 희원은 그러는 동안 손장난을 치듯 기준의 앞섶을 건드렸다.
“희원 씨, 애인 좀 예뻐해 줘요.”
“나도요. 나도 좀. 나도 예뻐해 줘요.”
“기꺼이.”
기준이 몸을 일으키고는 자기 가운을 벗어 방바닥으로 팽개쳤다. 이성도 같이 팽개치는 순간이었다.
꽃불이 타오르듯 붉은 입술이 어여뻤다. 기준은 그 보드라운 입술을 살짝 깨물며 혀를 안으로 집어넣었다. 희원은 피하지 않고 혀를 내밀어서 마중했다. 서로 오가는 숨이 뜨거웠다.
기준의 혀가 희원의 혀와 얽혀 들었다. 서로 몸을 비비듯 혓바닥을 비비고 말랑한 볼 안쪽을 쓸었다. 희원의 혀를 탐하던 기준이 혀를 더 집어넣어서 입천장을 핥았다. 희원은 숨이 찰 때마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숨을 쉬고 기준의 키스를 따라갔다.
희원이 기준의 어깨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숨이 찰 때는 손끝에 힘이 들어갔고 괜찮을 때는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넓은 어깨를 쓰다듬다가 기준의 빗장뼈로 손가락을 옮겼다.
기준이 천천히 입을 떼고는 희원을 바라봤다. 두 사람 다 서로의 타액으로 입술이 반짝반짝 빛났다. 희원은 꽃물 터지듯 눈가가 붉어 그렁그렁했다. 기준이 그런 희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가운 좀 벗길게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기준이 가운을 살며시 젖혔다. 하얀 몸이 눈부셨다.
“어떻게 안 예쁜 구석이 없죠? 희원 씨는 신기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보지 마요.”
희원이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했다. 전조 증상이 있는 건 맞지만 아직 히트사이클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닌지라 이성이 조금 남아 있었다. 기준이 희원의 목에 얼굴을 묻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아까 기준이 깨문 빗장뼈에 붉은 꽃잎과도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기준이 혀로 살살 핥고는 말했다.
“희원 씨, 향 좋아요. 자기 향 알고 있어요?”
“네.”
“어떻게 이런 향이 나지? 향도 어떻게 이렇게 달콤하고 예쁠까?”
희원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모로 돌리고는 발바닥을 시트에 비볐다.
“뭐가 부끄러워요. 연인끼리.”
연인. 그 말에 희원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심장 소리가 기준의 귀에 들리는 게 아닐까 신경 쓰여 희원이 몸을 움직였다.
“부담되지 않도록 페로몬 조금씩 풀게요.”
“네.”
“잘 조절할게요.”
“으응.”
“팔 빼 봐요.”
기준이 랑일이 옷을 벗겨 주듯 소매를 잡고 당기자 희원이 슬그머니 손을 뺐다.
“허리 좀 들어 봐요.”
희원이 가운 벗기는 걸 도왔다. 기준이 몸 아래 있던 가운을 빼서 자신의 가운 위로 던졌다. 기준은 그대로 고개를 내려서 희원의 가슴에 입을 맞췄다.
“간지러워요. 흣! 아파.”
말랑한 입술로 살짝 빨던 기준이 조금 세게 빨아들였다. 그러자 희원이 허리를 튕겼다.
“아픈 거 아니잖아요. 거짓말하면 못쓴다고 나한테 그랬으면서.”
기준의 말이 맞았다. 아픈 것보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느낌에 놀란 게 컸다. 기준이 희원의 붉은 유실을 내려다봤다. 양쪽 젖꼭지가 앙증맞으면서도 먹음직스러웠다. 희원이 시선에 몸을 틀었다.
“부끄러워요? 더한 것도 할 텐데.”
기준이 고개를 내려서 희원의 왼쪽 유두에 입을 맞췄다. 희원이 몸을 비틀자 도망가지 못하도록 양쪽 허리를 잡고는 계속 쪽쪽 유두를 빨았다. 작은 과실과도 같은 유두가 바짝 서기 시작했다. 기준이 자신의 페로몬을 더 풀자 희원이 발바닥으로 기준의 종아리를 쓸었다.
“흐읏!”
기준이 희원의 유두를 혀끝으로 찌르고 혓바닥으로 유륜 전체를 핥자 희원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길게 신음했다. 머리 위에서 울리는 희원의 신음에 기준의 성기가 꿈틀 요동쳤다. 아마 욕실에서 한 발 빼지 않았으면 여기서 쌌을 거다. 마치 청소년기 몽정하는 소년처럼 말이다.
기준은 그대로 고개를 더 내려서 희원의 배꼽 위를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그리고 드로어즈에 손을 갖다 댔다.
“벌써 섰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기준의 말을 희원이 입술을 삐죽이며 받아쳤다.
“누가 아니라고 그랬나.”
능글맞은 기준의 말에 희원의 페로몬이 조금 더 진해졌다.
기준이 희원의 드로어즈를 잡고 아래로 내렸다. 희원이 엉덩이를 들며 자신의 속옷을 벗기는 걸 도왔다.
눈앞에 보이는 희원의 벗은 몸에 기준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하얀 나신은 야함과 동시에 성스럽기까지 했다. 남자치고 가느다란 허리와 도톰한 가슴, 쭉 뻗은 종아리와 탄탄해 보이는 허벅지와 엉덩이는 마치 중세 시대의 조각상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기준의 성기는 점점 커져 이제는 성기 대가리가 속옷을 비집고 고개를 내밀었다.
기준이 고개를 내리는 것을 보며 희원이 상체를 반쯤 일으켰다.
“잠깐, 잠깐만요.”
“가만히. 그대로 가만히 있어요.”
기준이 희원을 자리에 도로 눕혔다. 그러고는 오른쪽 발목을 잡고 발목 안쪽에 깊게 입 맞췄다.
“흐읏.”
“정말 미치게 예뻐요.”
“하읏!”
기준이 반쯤 선 희원의 성기를 길게 핥자 희원이 도리질 치며 기준의 어깨를 잡았다. 누가 자신의 성기를 빨아 주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오메가가 히트사이클마다 알파와 함께하는 건 아니었다. 희원은 알파와 사귀었지만 사귀는 동안에 같이 섹스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러니 히트사이클에 알파와 함께하는 건 사실상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응… 불이라도 좀 꺼 줘요.”
사위가 어두워져 집에 왔을 때는 불을 켠 상태라 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희원은 형광등 아래 자신만 훤히 벗고 누워 있는 게 부끄러웠다. 기준은 아직 속옷을 입은 채여서 뭔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준이 손을 뻗어 조도를 낮추었다. 은은한 조명 빛이 방을 비추었다.
“하읏! 아아!”
기준이 희원의 성기 끝에 쪽쪽 입을 맞추다가 입 안으로 깊게 집어넣었다. 반쯤 선 성기가 기준의 입 안에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기준은 볼을 오므려서 기둥을 압박했다. 머리끝까지 치고 올라오는 쾌락에 희원이 아랫배에 힘을 주고 바들바들 떨었다.
기준은 희원의 엉덩이를 양쪽 손으로 붙들고는 희원이 도망가는 퇴로를 막았다. 볼을 조여서 압박하다가 반쯤 뺐다가 다시 목구멍까지 처박았다.
“잠깐, 잠깐만요 기준 씨.”
몸이 들들 끓었다. 머리가 아득해져 갔다. 희원은 발바닥으로 기준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밀릴 기준도 아닐뿐더러 기준은 뭐에 스위치가 눌린 건지 오히려 오럴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춥춥 게걸스러운 소리가 나게끔 빨고 핥고 조였다.
“하읏, 으, 읏, 기준 씨. 쌀 거 같아요. 아아!”
그의 입에 사정할 수는 없어서 희원이 기준을 밀어내며 어떻게 해서든 참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 입 안에서 성기를 빼 줄 거였으면 진작 빼 주었을 거다. 기준은 희원의 사정을 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머리를 움직였다. 그러면서 페로몬을 조금 더 풀었다.
“아아! 아, 아으, 기준 씨! 아아! 흣!”
희원이 바르르 떨었다. 기준의 입 안에 밤꽃 향이 퍼졌다.
기준이 몸을 일으켜 희원을 내려다봤다. 희원이 열이 잔뜩 오른 눈으로 미간을 좁힌 채 기준을 바라봤다. 기준의 잘생긴 목울대가 꿀꺽 움직이는 것을 보고 희원이 눈을 꾹 감고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왼쪽 손목으로 제 눈을 가렸다.
“왜 가려요. 예쁜 눈 보고 싶은데.”
“그걸 왜 먹어요.”
“왜요? 안 먹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흐잇!”
희원의 질색하는 표정을 보고 기준이 웃으며 제 드로어즈를 벗어 침대 밑으로 던졌다. 둘의 옷이 차곡차곡 쌓여 가듯 둘의 페로몬도 방 안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희원 씨, 이제 넣고 싶은데 어떤 자세가 좋아요? 좋아하는 자세 있어요?”
희원이 힐긋 기준의 성기를 내려다봤다. 기다랗고 굵은 성기는 선단이 이미 젖어 있었다. 희원은 순간 저런 게 자신의 몸속에 과연 들어올 수 있을지 의심해 봤다.
기준이 희원의 발목을 잡고 발목 안쪽을 길게 핥았다. 그러다가 촉촉 입을 맞추고 살짝 깨물었다.
“아!”
“말해 봐요.”
“몰라, 모르겠어요.”
희원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몸이 뜨거울 대로 뜨거워서 더 이상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숨을 뱉을 때마다 불덩이를 토해 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힘들면 눈 감고 있어요.”
기준이 희원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 그대로 양쪽 다리를 넓게 벌렸다.
“창피해.”
“괜찮아요.”
기준이 희원의 양쪽 다리를 희원의 가슴 쪽으로 접었다.
“잠, 잠깐! 기준 씨! 하읏!”
몸을 일으키려던 희원이 그대로 목을 뒤로 젖혔다. 기준이 희원의 엉덩이 사이에 혀를 댔다. 있을 수도 없는 일이거니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누가 자신의 그런 곳에 혀를 댈 거라 생각하겠느냐 말이다.
얼굴이 홧홧해졌다. 부끄러워서 당장이라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고 싶었다. 하지만 기준은 희원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냐, 아니, 흣! 잠깐!”
기준의 잘생기고 높다란 콧대가 주름에 와 닿는 게 느껴졌다. 기준은 그런 것쯤 상관없다는 듯 입술을 모아서 엉덩잇살을 빨고 혀를 내어 핥았다. 그러고는 구멍 안으로 혀를 집어넣었다.
“그만, 아아! 아, 아읏!”
희원은 참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마구 젓고 기준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기준이 자신의 허벅지를 잡고 다리를 접어, 들어 올린 상태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기준은 혀를 구멍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빼기를 반복하다가 주름을 혓바닥으로 길게 핥았다.
“아아!”
시트가 희원의 손바닥 안에서 구겨졌다. 희원이 몸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기준이 자신을 놓아주었으면 싶었다. 차라리 기준이 자신을 아프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기준은 너무 다정하고 다감해서 이 순간까지도 자신을 너무 배려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 순간 희원의 뒤로 뭔가가 왈칵 터졌다. 진한 향기가 머리가 아플 정도로 방을 채워 나갔다. 바로 우성 오메가의 향이었다.
“하으읏.”
찌걱찌걱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희원의 엉덩이 사이를 기준의 기다란 손가락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안으로 박힐 때마다 희원은 작살에 꽂힌 물고기처럼 몸을 파드득 튕기며 떨었다.
“기준 씨이, 그마안요.”
“쉬잇, 이렇게 구멍이 작아서 내 걸 어떻게 넣으려고 그래요. 대가리도 못 들어가요.”
기준이 몸을 덮고는 귓가에 속삭였다. 늘 정중하게 굴었던 기준이 내뱉는 저급한 단어들에 희원이 고개를 저었다.
기준이 손가락을 빼는 것 같더니 구멍을 조금 더 벌리며 부피감을 늘렸다. 손가락이 두 개에서 세 개로 늘었다. 희원이 도리질 치며 기준의 손아귀에서 도망가려는 듯 허리를 뒤틀었지만 그 행동은 바로 기준에 의해서 저지당했다.
기준은 희원의 구멍이 게걸스레 먹고 있는 손가락 말고 다른 쪽 손으로 희원의 허리를 잡아서 지그시 눌렀다. 그러는 바람에 손가락이 더 깊게 들어가자 희원이 칭얼거리듯 우는 소리를 냈다.
“흐읏, 이제, 흣, 넣어 줘요.”
희원이 자꾸 달아나려는 듯 몸을 뒤챘다. 아무래도 처음이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히트사이클이 찾아와 욕망으로 몸이 달아올랐지만 정신 끄트머리에서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다.
“뭐를 넣어 줄까요?”
“기준 씨이.”
열에 잠식되어 희원이 여름날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기준은 짓궂게도 자신의 성기를 희원의 성기와 비비며 다시 물었다.
“제대로 말해 줘요, 네?”
앞으로는 성기가 비벼지고 뒤로는 손가락이 들쑤시고 있어서 그건 그것대로 자극이었다. 희원이 어쩔 줄을 모르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다가 희원은 결국 기준의 잔뜩 성이 난 성기를 손으로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기준의 눈이 커졌다.
“이거, 이거 넣어, 흐으, 줘요.”
기준도 이제 한계였다. 기준이 희원의 뒷구멍에서 손가락 세 개를 뺐다. 손가락은 이미 축축했다. 기준이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잡고는 말했다.
“희원 씨 안에 들어갔던 내 손에서도 희원 씨 향 나요. 달콤하고 야한 향.”
기준의 노골적인 말에 희원이 눈썹을 찡그렸다. 기준이 미간에 촉 입을 맞추고는 자신의 성기 대가리를 희원의 주름에 갖다 대고 비볐다. 작은 꽃봉오리 같은 구멍은 그렇게 손가락 세 개를 넣고 가위질하듯 쑤셨는데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아프면 밀든가 때리든가 해요.”
“어떻게 그, 하읏!”
커다란 성기가 작은 봉오리를 벌리며 들어가기 시작했다. 반질반질 프리컴으로 질척거리는 귀두가 이미 흠뻑 젖은 뒷구멍을 벌리며 진입했다.
“으읏, 아아. 기준 씨, 아파, 아파요.”
“조금만, 읏, 힘 좀 풀어 봐요, 착하다, 응?”
결국에는 기준이 몸을 내려 입을 맞추며 조금씩 안으로 밀어 넣었다. 겁에 질린 희원이 담쟁이넝쿨처럼 기준의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이러면 제가 못 움직여요, 읏, 힘 좀.”
“어떻게, 아아! 어떻게 해야 할, 읏.”
아무래도 요령이 없는 모양이었다. 기준은 커다란 손으로 희원의 엉덩이를 주물렀다. 찹쌀떡같이 부드러운 엉덩이가 손에 쫀득쫀득 감겼다.
“배에 힘을 주고 밀어내 봐요.”
“흐읏. 어떻게…….”
“천천히. 옳지 그렇게.”
기준이 페로몬을 조금 더 흘리며 엉덩이를 부드럽게 매만졌다. 희원이 조금 힘을 풀자마자 기준은 상냥한 얼굴을 한 채 하체는 난폭하게 밀어붙였다.
“아악!”
순결한 구멍을 찢어발기듯 난폭한 성기가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희원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발발 떨었다. 기준이 목울대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면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희원의 몸에서 나는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은 자꾸만 정신을 놓게 만들었다. 기준은 희원에게 몸을 더 붙이며 허리를 움직였다.
“희원 씨, 흣, 희원 씨.”
“으응, 으, 아아! 아!”
대답을 하는 건지 아니면 신음을 내지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기준은 이것도 저것도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 희원과 같이 몸을 비비고 있는 것 자체가 황홀했다.
“지금 죽어도, 읏, 여한이 없을 정도로, 아아, 정말 예뻐서 미칠 것 같아요.”
기준이 희원의 귀를 핥으며 말했다. 희원이 몸을 떨었다. 다시 사정감을 느끼는지 희원이 몸을 바르작거렸다. 희원이 무의식중에 기준의 배에 자신의 성기를 비볐다. 그에 기준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음란하고 야하고 그러면서도 예쁘면, 읏, 어쩌자는 거예요.”
속삭이는 말에 희원이 눈물 젖은 눈으로 기준을 쳐다봤다. 기준의 다정하면서도 욕망이 절절 끓는 눈을 마주하는 순간 희원은 그대로 기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쉬었다.
“숲에 들어와 아읏, 있는 것 같아, 읏.”
기준의 향은 안정을 느끼게 했다. 욕망에 몸이 절절 끓다가도 그의 페로몬을 맡으면 마음 한구석이 안정되면서도 몸이 축축 늘어졌다.
“그렇게 애교 부리면 으, 나 죽어요.”
“으응.”
“아, 못 참겠어.”
기준이 희원의 골반을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상체를 세운 뒤 본격적으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성이 날 대로 난 성기가 안을 퍽퍽 들쑤시기 시작했다. 희원의 구멍에서 물이 질질 흘러서 침대 시트를 더럽혔지만 그런 것쯤은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기준은 자신의 성기를 물어뜯듯 꽉 조이는 구멍에 만족하며 허리를 더 빠르게 움직였다.
“기준, 기준 씨. 너무, 너무 세. 너무 커요.”
“읏! 희원 씨, 희원 씨.”
꽉 물어 오는 내벽에 기준은 속절없이 희원의 이름만 불러 댔다. 작살에 꿰인 것은 희원인데 오히려 기준이 그물 속에 갇힌 고기처럼 파득거리며 애처롭게 희원을 불렀다.
“아아! 아, 기준 씨!”
“너무 좋아, 미치겠어.”
빠르게 박는 기준 때문에 희원의 고개가 점점 뒤로 넘어갔다. 손으로 기준의 팔을 잡고 있지만 몸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기에 바빴다.
“흐읏! 아파, 아파요.”
골반을 잡고 쾅쾅 찍어 대는 기준에 희원은 이제 그 고통을 수반한 쾌감이 미친 듯이 좋아서 머리가 어떻게 될 것만 같았다. 이럴 바에는 그냥 정신을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온몸이 기준의 페로몬에 절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조금만, 조금만요.”
“아아! 쌀 것 같아. 그만, 그만요.”
“괜찮아, 싸요. 괜찮아.”
“아읏!”
기준의 성기가 너무 깊게 들어와서 처박히는 느낌이었다. 마치 목구멍으로 지금 폭주하고 있는 심장과 같이 나올 것만 같았다. 온몸의 장기가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 제발, 제발.”
“아읏, 괜찮아요, 싸요.”
자꾸 기준의 배에 비벼지는 희원의 성기가 팽팽하게 올라붙어 있었다. 희원이 바들바들 떨면서 애원했다.
“이제 그만, 읏, 아파, 아파요.”
“거짓말하면 못쓴다니까요, 으읏, 아픈 게 아니, 아!”
기준이 희원의 골반을 잡고 있던 한쪽 손을 가져와서 희원의 성기를 잡고 허리 짓에 맞추어 같이 흔들었다.
“싸도 돼. 싸도 돼요, 희원 씨.”
기준이 몇 번 흔들어 주며 허락하자 희원이 울컥울컥 기준의 배에 사정했다. 그러면서 엉덩이를 꽉 조였다. 기준이 괴로운 듯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며 이를 윽물었다.
“읏!”
기준이 그대로 희원의 골반을 잡고 몸을 쑥 잡아 뺐다.
“흑. 기준 씨.”
굵고 기다란 성기가 내벽을 죽 긁으며 빠져나갔다. 희원은 그 생생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준에 의해서 위로 살짝 밀려서 침대 헤드에 머리가 닿은 희원이 제 가랑이 사이를 쳐다봤다.
기준이 그대로 자신의 성기를 잡고 몇 번 아래위로 훑었다. 성이 날 대로 난 검붉은 성기가 번들번들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기준이 커다란 손으로 더 빨리 훑었다. 그러자 이내 희원의 하얀 허벅지 안쪽에 정액이 떨어졌다.
기준과 희원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희원이 허겁지겁 기준에게 손을 뻗었다. 기준이 몸을 내리니 희원이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희원 씨.”
“기준 씨. 흐윽, 기준 씨.”
갑자기 눈물을 쏟는 희원에 기준이 당황했지만 이내 그의 눈물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서 기준은 그대로 희원을 꼭 끌어안아 주었다.
“사랑해요, 희원 씨.”
기준이 희원을 꼭 안고는 몸을 굴려 옆으로 누웠다.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누운 모양새가 되었다. 기준이 커다란 손으로 희원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땀에 젖은 등은 여리고 뜨거웠다.
“그동안 우리 희원 씨가 힘들었구나.”
희원은 기준의 품으로 더 파고들며 흐느꼈다. 기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제는 희원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제 나랑 함께해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희원이 기준의 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해요, 희원 씨.”
“나도요.”
“말로 해 줘야죠. 응?”
기준의 조름에 희원이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용하게 말했다.
“사랑해요, 기준 씨.”
기준이 희원의 손목을 잡고는 깊게 입을 맞추었다. 고개를 묻고 있던 희원이 기준을 바라봤다. 기준은 이번에는 희원의 얼굴을 잡고 여기저기 입을 맞췄다.
* * *
희원은 눈앞에 있는 넓은 가슴에 깜짝 놀라서 숨을 들이마셨다. 어제 이 품에 안겨서 그의 어깨를 매만지고 밀어내고 다시 끌어안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정신이 조금 들자 어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희원은 살짝 몸을 빼며 뒷걸음질 치듯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좀 더 자요.”
기준이 희원의 허리를 감은 손을 당겨 벗어나려고 하는 희원을 끌어당겼다.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희원이 기준의 가슴에 이마를 박았다. 희원이 슬쩍 그의 가슴을 밀었다.
“아직 더 자도 돼요.”
목이 잠겼는지 기준의 목소리가 낮았다. 희원이 손대고 있는 그의 가슴에서 두근두근 뛰는 심장박동이 느껴졌다. 그도 나와 같구나 싶은 생각에 희원이 혼자 얼굴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기준이 눈을 뜨고는 희원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희원이 서둘러 손을 뗐다.
“아침부터 그렇게 만지작거리면 저 오해해요.”
“아뇨, 제가 언제…….”
희원이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하자 기준이 희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헝클어진 갈색빛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어떻게 아침에 봐도 이렇게 예쁠까요?”
“왜 그래요, 아침부터.”
“부끄러워하지 마요. 정말 예뻐서 그러는 거니까.”
기준이 희원의 반듯한 이마에 입을 맞췄다.
“잘 잤어요?”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준 씨는요? 혹시 제가 옆에 있어서 잘 못 잤거나…….”
“그러기는 했죠.”
기준의 말에 희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기준은 어느새 토끼가 또 나타났네 싶어 피식 웃었다.
“어, 어 죄송…….”
“예쁜 얼굴 구경하느라 잘 못 자긴 했죠.”
기준의 말에 희원이 눈썹을 찡그렸다. 기준은 그 눈썹에도 입을 맞췄다.
“아직 열이 다 가신 건 아니구나. 몸은 괜찮아요?”
입술에 스친 이마가 뜨끈했다. 팔을 두르고 있는 몸도 아이처럼 열이 있었다. 기준이 계속해서 희원의 볼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어젯밤보다는 나아요. 아직 힘이 없긴 하지만요.”
“뭐 좀 먹을래요? 움직일 수 있을까?”
기준이 몸을 일으켜 앉자 희원도 따라서 몸을 일으키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허리 아래가 빠질 것 같았다. 이러다가 발 딛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식사 여기로 갖다줄게요. 좀 누워 있어요.”
“아니에요, 그럴 것까지는 없어요. 괜찮아요.”
“뭘 괜찮아요. 일어나서 앉지도 못하는데. 어제 너무 무리시켰나 보다.”
기준이 미안한 표정을 짓자 희원이 기준의 팔을 잡고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좋았어요. 그치만 처음이라서…….”
기준이 몸을 일으켜 침대를 벗어나며 희원의 이마에 다시 입을 맞췄다.
“다음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할게요. 누워 있어요. 우리 어제 저녁도 안 먹었어요.”
“지금 몇 시인데요?”
기준이 협탁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희원 씨, 유치원에 전화해 두는 게 좋겠어요. 오늘 휴가 내겠다고.”
“네, 그럴게요.”
“휴가 내는 거 오늘이랑 내일 내요.”
“네? 오늘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제 일찌감치 찾아온 히트사이클에 아마 오늘 하루 정도만 지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경험을 되짚어 보면 희원의 히트사이클은 해 봐야 이틀을 꽉 채우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일까지 내요. 오늘 목요일이니까 내일 내고 주말 쉬고 그러면 되겠네.”
기준이 의자 위에 놓인 가운을 집어서 몸에 걸쳤다. 맨몸 위에 덮이는 가운을 보다 희원이 급히 눈을 돌렸다. 아무것도 안 입은 기준의 중심부가 아침이라 그런지 살짝 부피감을 키운 상태였다.
“구경하고 싶으면 대놓고 구경해요.”
“네?”
“어제 볼 거 다 봐 놓고는 뭘 내외를 해요.”
“그런 게 아니라……!”
기준이 개구지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난 어제 희원 씨 자는 거 구경했는데.”
“네?”
“그럼 하다가 잠든 희원 씨를 씻기고 시트 갈고 정리하고… 누가 했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실컷 구경했어요.”
“아 정말!”
희원이 부끄러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기준이 키득거리며 희원의 머리통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침대를 완전히 벗어나며 말했다.
“히트사이클 끝나고도 좀 쉬어야 하잖아요. 어제 오늘 내내 나랑 놀고 내일 출근해서 애들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직 그 정도 체력 안 되잖아요, 희원 씨는. 모레에는 나랑 같이 비싸고 맛있는 것 먹어요. 그렇게 주말 지내고 월요일에 출근해요.”
“저는 그렇다 치고 기준 씨는 출근해야 하잖아요.”
희원이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던 이불을 목까지 내리고는 기준을 향해 말했다. 가운을 입었어도 판판한 등을 보며 희원이 어젯밤 그의 등을 긁었던 자신의 손톱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도 오늘이랑 내일 연차 냈어요.”
“……왜요?”
“그럼 연인이 히트사이클인데 집에 놔두고 출근해요?”
기준이 희원을 바라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희원은 히트사이클을 혼자 보내곤 했기 때문에 딱히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기준에게 러트가 온다면 그런 기준을 홀로 남겨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기준 씨한테 이틀은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기준이 인상을 쓰고는 불퉁하게 희원을 쳐다봤다. 그 얼굴에 랑일이 얼굴이 숨어 있어서 희원은 기준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그렇게 소처럼 일했으면 됐지요. 그렇게 부려 먹히고 그깟 이틀도 휴가 못 내면, 그것도 연인 히트사이클인데, 그것도 못 하게 하면 그런 회사 그만둬야죠.”
“누가 들으면 그냥 사원인 줄 알겠어요.”
“아직 그냥 일개 이사일 뿐이에요.”
희원이 피식 웃었다. 그러면서 침대 밑으로 발을 내렸다.
“유치원에 전화도 하고 식탁에서 밥도 먹고 기준 씨랑 커피도 마시고 그럴래요. 뒤돌아요. 나 가운 입을 동안에는 보지 마요.”
기준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면서도 착하게 뒤를 돌았다. 희원이 의자 위에 대충 놓인 가운을 들어서 맨몸 위에 입었다. 그러고는 한 발 떼려고 하다 허리를 울리는 통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내려 줘요.”
“안겨서 가요. 지금은 안 잡아먹어요. 잡아먹더라도 배불리 먹인 다음에 잡아먹어야지.”
기준이 희원의 허리를 받치고 오금에 손을 넣어 안아 들었다. 희원이 허겁지겁 기준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기준은 문 앞에 가서 희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문 열어 줘요.”
희원이 착하게 문고리를 돌려서 문을 열어 주었다. 기준은 희원을 안고 곧장 식탁으로 가지 않고 그렇게 거실을 두어 바퀴 돌았다. 희원이 내려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기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성에 찰 만큼 희원을 안고 돌아다닌 뒤 식탁 앞에 앉혀 주었다.
“창피하게 뭐예요.”
“예뻐서요. 이제 전화해요. 그러는 동안 맛있는 것 해 줄게요.”
희원은 식탁 앞에 앉아서 전화를 하는 대신 한동안 기준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눈에 담았다. 둘만의 행복한 일상이었다.
* * *
희원이 설거지를 하겠다는 것을 한사코 거절한 기준이 희원의 앞에 커피가 가득한 잔을 놓았다.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앉았다.
“커피 마셔요.”
“네, 감사해요.”
하지만 기준과 희원은 서로 보고 웃느라 커피만 식어 갔다. 한참을 둘이 서로의 잘생기고 고운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데 본가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빠!
“응. 잘 잤어?”
―응, 근데 아빠. 오늘 나 할머니하고 유치원 가야 해?
랑일이가 일어나자마자 그 소식을 접했는지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불퉁하게 물었다. 기준은 앞에 놓인 커피 잔을 만지며 말을 골랐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아침부터 떼쟁이 이랑일 버튼이 눌릴 수도 있었다.
“응, 오늘은 아빠가 못 데리러 갈 것 같은데. 미안해.”
―왜? 아빠 어디 있는데? 또 먼 데 갔어?
기준이 목이 타는지 식어 빠진 커피로 목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아파서…….”
그 말 한마디에 어제 일이 기억이 난 모양인지 랑일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선생님! 선생님은? 병원에 있어?
“아빠가 선생님하고 같이 있어 줘야 할 것 같아.”
랑일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기준은 그런 랑일이의 행동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눈앞에 희원의 손이 불쑥 뻗어 왔다. 기준이 자신의 핸드폰을 가리키며 묻는 듯한 눈을 하자 희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랑일아.”
―응?
희원은 기준에게 전화를 넘겨받아서 제 귀에 가져다 댔다.
“랑일아, 선생님이야.”
―선생님? 선생님! 많이 아파요?
“우리 랑일이가 오늘이랑 내일 유치원 잘 다녀오면 선생님 괜찮아질 것 같아.”
―진짜요?
“응, 그러는 동안 아빠가 선생님 간호해 준대.”
―선생님, 나 할머니랑 유치원 갈 수 있어요!
눈앞에 랑일이가 있었으면 희원은 분명히 품에 꼭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대며 사랑한다고 말했을 거다.
“응, 우리 애기 씩씩하네.”
―네! 선생님 얼른 나아요!
“응, 선생님 빨리 건강해져서 같이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
―네! 선생님 보고 싶을 거예요. 사랑해요.
희원이 눈을 휘며 웃었다. 눈빛에 랑일이를 예뻐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어서 마주 앉아 있는 기준도 무심코 웃어 버렸다.
“선생님도 사랑해, 랑일아.”
희원이 전화를 끊고는 기준에게 주었다. 기준은 희원이 건네는 핸드폰 대신 그의 손목을 잡았다.
“응? 왜요?”
“나한테도 해 줘요.”
기준이 희원의 손목을 엄지로 살살 어루만졌다. 점점 손길이 농염해지고 있었다.
“뭐…를요?”
“사랑한다고. 나한테도 빨리 말해 줘요.”
희원의 볼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조금 창피해진 희원이 손목을 살짝 빼려고 했지만 기준이 놓아주지 않았다. 다정하던 눈빛이 어느새 욕망으로 들들 끓고 있었다.
“아들한테 질투하는 것 봐. 랑일이를 사랑하는 거랑 기준 씨랑은 엄연히 감정이 다른데.”
“그래도 빨리 말해 줘요.”
“사랑해요.”
기준이 그대로 희원의 손목에 깊게 입을 맞추며 눈을 바라봤다. 진해진 눈빛에 희원의 심장이 요동쳤다.
* * *
박 여사는 기준이 분가해서 홀로 랑일이를 키운다고 했을 때도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회장이 회사 일만으로도 바쁜데 애를 혼자 키우는 게 말이나 되냐며 반대했지만 박 여사는 지 새끼 지가 키우겠다는데 왜 난리냐고 일축해 버렸다.
이 회장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이씨 집안에서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하지만 기준의 정략결혼과 랑일이의 출생, 그리고 이혼으로 인해서 이제는 박 여사에게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박 여사는 기준의 정략결혼을 반대했던 사람이다. 기업도 좋고 가업도 좋지만 그보다 아들의 행복이 우선이었다.
물론 박 여사 역시 정략결혼을 한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아들 셋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결혼 초반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데다가 얼굴만 잘났고 까칠한 남자와 사는 게 쉽지는 않았다.
박 여사는 작은아들의 포부를 알고 있었다. 장남인 이준은 애초에 경영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샌님 같은 스타일로 앉아서 책 보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보는 게 전부인 소년이었다. 반면 기준은 어릴 때부터 리더십도 있었고 나서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 집에서는 애초부터 기업을 작은아들에게 주려고 식구들끼리 합의한 상태였다.
하지만 작은아들이 어찌나 까칠하고 제멋대로인지 그 성격을 맞추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기업의 총수가 되려면 기준에게도 후계자가 필요할 듯해서 결혼 이야기를 꺼낸 건데 그럴 때마다 지랄도 그런 지랄이 없었다.
몇 번 결혼 문제로 부자지간에 분란이 일자 기준은 자신이 나서서 해결책으로 정략결혼을 제시했다. 그에 이 회장은 옳다구나 하고 동의했다. 박 여사만이 우려를 표했지만 까칠하고 제멋대로인 이씨 둘이 해결 본 일은 박 여사도 어쩌지 못했다.
이 회장이 박 여사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 이유는 랑일이 때문이었다. 이 회장도, 기준도 애가 생기면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고 믿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박 여사는 사랑 없는 결혼은 계속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기준과 랑일이 모친의 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박 여사는 어른들의 욕심에 의해 엄마 없이 커야 하는 랑일이가 안쓰럽고 마음 아팠다. 그래서 핏줄이라는 문제를 둘째 치고라도 랑일이에 대해서 더 마음을 많이 쓰게 되었다.
기준이 랑일이를 데리고 분가한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이유는 기준도 제 자식에 대한 아빠의 심정을 더욱 깨달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고 본가와 기준의 집이 멀지 않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달려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반에는 열심히 아빠 역할을 해 나가던 기준이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점점 랑일이를 본가에 맡기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랑일이에게 소원한 건 아닌 듯했다. 랑일이가 떼를 쓰거나 그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랑일이는 제 아빠랑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제 아빠의 그런 행동에 수긍하는 눈치였다. 박 여사는 식탁 앞에 앉아서 커피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다.
“할머니! 나 전화 다 했어.”
제 아빠한테 전화한다기에 그러라고 하고는 자리를 피해 주방으로 들어왔더니 랑일이가 통화를 마쳤는지 주방으로 들어왔다.
“우리 강아지, 전화 다 했어? 아빠 번호까지 다 외우고 기특하네?”
“아빠가 아빠 번호랑 할머니 번호 알려 줬어. 나 할머니 번호도 다 알아.”
“그래? 누구네 강아지인데 이렇게 똑똑할까?”
박 여사는 커피 잔을 저 멀리 밀어 두고는 랑일이를 안아서 허벅지 위에 올렸다. 랑일이는 제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웃어 보였다. 어릴 때의 기준을 쏙 빼닮은 랑일이는 하는 짓도 기준과 닮아 있었다. 기준도 어릴 때부터 똑 부러지는 구석이 있었다.
“할머니, 오늘 할머니랑 유치원 갈 거야.”
“그래. 오늘 할머니가 데려다줄게.”
랑일이는 몇 번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식탁 위에 놓인 반찬들을 쳐다보다가 박 여사의 허벅지 위에서 내려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박 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랑일이 뒤를 따라갔다.
* * *
“선생님, 안녕하세요!”
랑일이가 씩씩하게 인사했다.
“안녕, 랑일아. 안녕하세요, 랑일이 할머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유치원 문 앞에 나와 있는 이는 지난번에 봤던 랑일이 담임 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이었다.
“근데 오늘은 담임 선생님이 안 계신가 봐요.”
“아, 이희원 선생님이요? 오늘이랑 내일 개인 사정으로 휴가 내셨어요.”
“그랬군요. 랑일아, 선생님 안 계신다고 하는데 오늘 할머니가 일찍 올까?”
박 여사는 랑일이가 얼마나 담임 선생님을 따르는지 알고 있기에 확인차 물었다. 그러자 랑일이가 고개를 저었다.
“나 선생님하고 열심히 하기로 약속했어!”
랑일이가 단단히 각오를 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그럼 할머니가 저번처럼 데리러 올게.”
“응! 할머니, 다녀오겠습니다.”
저번에는 제 담임 선생님 다리를 붙잡고 새끼 코알라처럼 딱 달라붙어 있더니만 랑일이는 다른 선생님에게는 친근하게 굴지 않았다. 제 할 말만 박 여사에게 하고는 씩씩하게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그럼 선생님, 잘 부탁드려요. 이따 오후에 올게요.”
박 여사는 인사를 하고는 다시 차 뒷좌석에 올랐다. 그러고는 곧바로 기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어머니.
“랑일이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가는 길인데, 오늘 선생님이 안 계시더구나.”
―아, 그래요?
분명히 아들만 있는 집에 딸 역할을 하는 아들이 있다고 하는데 기준은 결코 그에 해당되지 않았다.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아들이 바로 기준이었다. 모자지간에 나누는 대화도 기준이 가장 적었다. 하물며 몇 년을 같은 집에서 살았는데도 말이다.
“랑일이가 유치원 안 가겠다고 떼쓸 줄 알았는데 선생님과 약속한 게 있는지 자기 열심히 할 거라고 하더구나.”
―다행이네요.
기준은 뭐를 하는지 짧게 대꾸했다.
“내일 온다고?”
―네.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기준은 어젯밤 랑일이를 이틀 동안 맡아 달라고 했다. 제대로 된 이유 설명은 없었다. 일이 생겨서 그러니 맡아 달라고만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원래도 구구절절 설명하는 일이 없는 작은아들이기에 박 여사는 알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는데 어째 감이 이상하다.
“혹시 어디 갔니?”
―네, 좀 일이 있어서요.
“무슨 일?”
―나중에 설명드릴게요. 아무튼 랑일이 좀 부탁드려요. 바빠서 끊을게요, 어머니.
끊긴 전화를 보고 박 여사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니 어제저녁부터 아들은 바쁜 것 같았다. 퇴근하면서부터 랑일이를 맡기고는 결국 연락 온 게 한밤중에 랑일이 등하원 부탁이었으니 말이다.
박 여사는 궁금하긴 했지만 나중에 이야기하겠다는 아들의 말을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전화를 끊은 기준이 자신의 허벅지에 앉아 있는 희원을 고쳐 안았다. 희원의 몸이 다시 오른 열로 뜨끈뜨끈했다.
“이러면 제가 전화하기 힘들잖아요.”
기준이 곤란하다는 듯 이야기하자 희원이 기준의 어깨를 툭 때렸다. 그래 봐야 힘이 전혀 실리지 않은 손길이었다.
“제가, 더 힘들어요.”
몸이 축축 늘어질 때마다 기준은 희원을 단단한 팔로 잡고는 잘 고쳐 안았다. 둘이 움직일 때마다 욕조의 물이 넘쳐흘렀다.
“희원 씨가 뭐가 힘들어요? 움직이는 건 난데?”
“그러지 좀 마요.”
“뭘 그러지 마요? 제대로 얘기해 줘야죠.”
기준은 희원의 몸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희원은 열이 올라서 죽겠는데 기준이 계속 장난을 쳐서 약이 오른 상태였다.
“전화하면서도 계속 움직였잖아요.”
“그럼 어떻게 해요? 내가 움직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꾸 조여서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잖아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손길은 매우 다정했다. 계속해서 이마에 입을 맞추고 뺨을 만지작거렸다. 희원은 순간 이러다 자신이 녹아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기준의 말에 괜히 입술을 삐죽였다.
“나 안 할래요. 방에 갈래요. 비켜요.”
희원이 당장이라도 기준의 품에서 벗어날 것처럼 구니 기준이 희원을 꼭 끌어안았다.
“어딜 가요. 가지 마요. 응?”
“놀렸잖아요.”
“알았어요. 미안해요. 예뻐서 그렇지.”
기준은 희원을 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고는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입술에 닿는 희원의 피부가 온통 온기로 가득했다.
기준이 젖은 머리칼을 넘겨 주며 눈을 마주했다. 그렁그렁 열이 오른 눈이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었다.
“어머니 전화였어요?”
“네.”
“집에다가는 뭐라고 했어요?”
“그냥 일 있어서 랑일이 좀 맡긴다고 했어요. 혹시 서운해요?”
기준이 희원의 눈치를 살폈다. 희원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요, 기준 씨가 알아서 할 거라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내가 우리 집에 아직 소개 안 시키는 거에 대해서 서운해할까 봐 말하는 건데요.”
희원은 열이 올라서 정신이 조금 없었지만 기준의 눈을 마주하며 그의 말을 들으려고 애썼다.
“우리 집에서 막내만 결혼했어요. 대학 내내 연상의 오메가를 만나서 줄기차게 따라다니다가 중간에 헤어졌어요. 그러더니 떠난 사람 찾는다고 학교를 1년 동안 휴학했죠. 지극정성이라고 그러더니 결국 아이부터 가져서 결혼했어요. 반면에 형은 별로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저는 이혼했고…….”
희원은 아무 반응 하지 않고 기준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연애를 하고 등등의 일들이 우리 박 여사님에게는 커다란 관심사예요.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말이죠.”
“그게 엄마 마음이겠죠.”
희원의 말에 기준이 다시 입 맞추었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아이도 안 낳아 봤으면서.”
“부모가 자식한테 작은 것 하나하나 관심 갖는 게 당연한 거잖아요. 걱정되고 염려스러우니까, 사랑하는 거니까 그런 거죠.”
“내 애인은 착하기도 해라.”
기준이 다시 입을 맞췄다.
“효자보다는 불효자에 가까워서 그런지 아직 집에다가 말하고 싶지 않아요. 분명히 박 여사님 아는 순간 나 말고 희원 씨한테 더 많이 연락하려고 할 거예요.”
희원이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기준을 바라봤다. 기준은 희원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설명했다.
“막냇동생 내외한테 하는 거 보니까 뭘 그렇게 못 먹여서 안달인지……. 게다가 백화점에도 막 끌고 다니고 이것저것 사다가 입히고……. 해준이도 제 배우자 예뻐하니 괜찮아하고, 해준이 배우자도 어머니랑 죽이 척척 맞아서 잘 다니는 것 같은데, 그 전에 나는 그거 내가 다 하고 싶거든요. 아무한테도 희원 씨 뺏기고 싶지 않아요.”
기준의 말에 희원이 그저 웃었다.
“그러니까 실컷 하고 난 다음에 얘기할게요. 절대 다른 이유 없으니까 서운해하거나 섭섭해하지 말아 줘요, 응?”
“그럴게요. 근데 우리 기준 씨 독점욕이 어마어마하네요?”
“그걸 이제 알았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나 많이 사랑해 줘야 해요. 소홀히 대하면 삐칠지도 몰라요.”
희원이 기준의 어깨에 이마를 비비대며 웃었다. 자꾸만 이 남자가 귀여워서 큰일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