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버스가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졌다. 직행이고 도로도 막히지 않아 줄창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더 빨리 달리지 않나 조바심이 날 정도다. 28인승 버스지만 열 명도 채 타고 있지 않았다. 저녁이라 그런지 실내등도 모두 꺼진 상태다. 무얼 할까 하다가 유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아까 그렇게 하고 ROSE를 나온 터라 전화를 걸어도 되나 몹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아까 들은 뉴스가 가져다 준 충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어머, 자기. 어쩐 일이야? 다신 안 볼 것처럼 그러더니?
아니, 그게 저.....
아! 맞아. 지난 번에 술 주문한 거 주문서 왔는데 말야. 내가 어디 두었더라....
여상스럽게 대꾸하는 그녀의 말을 끊는다.
유미, 그 K사 말인데....
아! 찾았다. 여기 구석에 두니 몰랐네.
그러나 막상 전화를 받은 그녀는 내가 K사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것에 대답은 안 하고 딴청을 피운다. 대물물산도, 임필복도 모르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말투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 평소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더 따져봐야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마지막 질문이라고 전제하고 하나를 물어보았다.
물론, 유미는 모른다고 또 잡아 떼겠지만... 다른 거 하나만 물어볼게. 이게 진짜 내 마지막 질문이야.
또, 뭘?
필복이 물먹는 거야 상관없지만... 아니, 오히려 통쾌하고 좋지만... 그 사람만 조지는 게 아니라 결국은 그가 속한 회사까지 피해를 입는 거잖아. 괜히 덩달아 휘말려 피해를 입는 다른 사람들은....
그러자 유미가 나직한 한숨 소리를 들려주었다.
아아, 역시 이런 게 자기의 매력이지.
에? 매력?
갑자기 무슨 매력 타령이냐... 그나저나 나에게도 매력이 있다니, 오랜만에... 아니, 첨 듣는 것 같은 기분인데?
나한테 매력이라니.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아무 것도 모르잖아. 아주 순수하게. 그게 매력이야. 그... 뭐더라? 동치미?
.......설마 백치미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요. 역시 대학생이라 똑똑하네. 똑똑한 분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하나 있어. 잘 듣고, 잘 생각해.
백치미라는 단어를 아는 건 굳이 대학생이 아니어도 가능하겠고, 백치미가 있는 사람을 칭하면서 다시 똑똑하다고 말하는 건 뭐냐... 설마 비꼬는 건가. 그녀의 화법은 정말이지 변화무쌍하고 종잡을 수 없다.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야. 그렇지만 그런 걱정은 하지마. 내가 말했지?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라고. 내가 뭘 했다거나 박 회장이 손을 써서 그곳이 무너진 게 아냐. 거기에 양규호나 임필복이 있다고 해서 K나 대물물산이 망한 것도 더더욱 아니고 아냐. 안 그래도 망할 곳인데 그저 그 전에 그들의 자리를 더 끌어올려서 책임이 더 큰 곳에 앉힌 것 뿐이니까. 그게 우리가 한 일의 전부야. 이제 규호나 필복에게는 각종 청구가 날아가겠지. 임원진으로서 회사와 나눠 가져야할 부채와 보증. 그들이 평생 갚아도 끝나지 않을 것이고 박 회장의 스타일상.... 사채도 살짝 섞어두었겠지. 그건 곧 나락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거야. 사채를 써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설명하더라도 느낄 수 없는.... 그런 끔찍한 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박 회장? 유미가 박 회장을 알고 있다? 게다가 규호가 박 회장의 입김으로 승진한 것도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는 투다. 차분하게 늘어놓는 그녀의 말투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무척 조용하게,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진중함과 무게감이 담겨 있어서 함부로 반박하거나 말을 끊고 물어볼 수 없었다.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나 역시 물장사하면서 애들의 웃음을 남자들에게 팔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서로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거고 각자의 목적이 합치했기에 이뤄지는 일종의 신의거래라는 거지. 남들은 우리를 하찮게 보고 있지만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야. 어디서나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최소한의 룰이 있어. 그 룰이 있기 ??문에 우리가 짐승이 아니라 인간인 거야. 규호와 필복에게 행해진 건.... 그 룰을 깬 자에게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야. 법 같이 어려운 건 우리는 몰라. 그저 각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들이 깨닫게 해 준거야.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들이 언젠가는 깨달을 수 있겠지. 아니면 영영 깨닫지 못할 수도 있고.... 거기까지는 내 알 바가 아니야. 난 그저 내가 귀여워 하는 어떤 동치미 가득한 남자의 슬픔을 느끼고 대신 손을 써주었을 뿐이야. 중간에 설명이 좀 부실해서 나한테 삐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귀여워.
동치미가 아니라 백치미라니깐... 거참. 차분한 유미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치 안락한 침대에 누워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이야. 그래, 이건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라면 유미가 이렇게 달변일 리가 없잖아. 게다가 내가 귀엽다니. 이런 소리는 난생 처음 들어. 그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자기가 지금 가는 길이, 그리고 가야할 길은 참 보기 좋아.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보듬으면서, 그렇게 살아줘. 심심하면 가끔 연락하고. 다시는 로즈에 안 오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와주리라 믿어. 난 항상 여기에 있으니까.
전화가 끊기고도 한참 동안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 못 했다. 보기 좋아...라고? 무엇이 보이는지 굳이 따져 묻지 못 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그녀의 말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반론을 필요치 않는 말에는 무엇보다도 커다랗고 분명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플립을 접고 전화기를 품 안에 갈무리한다. 차창 밖을 내다본다. 검게 물든 창 밖은 가로등 말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꾸물거리는 차창 밖 풍경을 보면서 생각했다.
유사 이래 인간에게 있어 어둠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단지 어두워서가 아니라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모여 살기 시작했으며 도구를 만들고 불을 피웠다.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인간은 불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었듯이 갖은 수단과 방법을 써서 미래를 알아내려고 했다. 날씨를 예측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사람의 관계, 더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의 메커니즘, 이 모든 것이 미래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의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게 미래를 밝혀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잠재우려 했지만 그 시도는 늘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슈퍼 컴퓨터를 도입하였다는 기상청도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고 주식시장에서는 늘 추락하는 종목에 개미들이 몰려든다. 대통령을 지냈다는 사람이 하루 아침에 범죄자가 되어 쫓겨나질 않나, 앞날이 탄탄하다는 기업이 이렇게 맥없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렇듯, 미래는 알 수 없는 미지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유미는 그것을 웃으면서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행동까지 웃으며 바라볼 수 있다. 그런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에게 까닭 모를 편안함을 안겨주었다. 춘천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의 따스한 목소리가 귓가에 계속 남아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지난 일들을 떠올린다. 지혜가 직면한 불행을 발견하고 효진은 무척이나 괴로워했다. 슬퍼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그저 아무 근거도 없는 위로만을 해주었다. 다 잘 될거라는 말 뿐이었다. 아니, 말 뿐이라고 생각했다. 무기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니 그건 무기력한 게 아니었다. 아무 쓸모 없는 게 아니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살아간다. 과거에 입은 아픔에 대해 현재에 이르러 위로한다. 그게 최선이다. 그보다 더 잘할 순 없는 거였다. 어차피 미래가 어찌될지 모르는 우리들은, 과거만이라도 똑바로 바라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더욱더 과거를 바로 보고 그것에 대한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데, 현재가 괴롭다고 미래가 반드시 꼭 슬픔과 괴로움만으로 가득차리란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유미의 말마따나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미래인 거다.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다가올 미래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미래에 이르러 과거가 된 현재를 돌이키며 즐겁게 반추할 수 있도록... 지금의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유미의 목소리가 머리 속에 리플레이된다.
- 미래는 결정되어 있기도 하고 결정되어 있지 않기도 해요. 그게 미래에요.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미래라고 하는 거예요. 전 가방끈이 짧아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 그렇다고 하더군요. 한자로 아닐 미. 오다 래. 합쳐서 미래.
오지 않았으니 맞이하러 가야 한다. 그렇게 마음 먹었다.
어느새 날 태운 버스가 춘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터미널을 빠져나간다. 버스터미널 앞에서 낯익은 은색 차량을 발견한다. 차 옆에 서 있는 두 여자의 모습이 몹시 이채롭다. 마치 손을 놓으면 곧 미아가 되어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두 손을 꽉 맞잡고 있는 그녀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춘천을 가는 버스를 올라탈 때만 해도 퍽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심경이었는데 여러 생각을 하면서 머리 속이 많이 차분해졌다. 결정을 내렸다. 애써 쾌활하게 웃으며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디, 한 잔 하러 가기 좋은 곳 없어? 난 춘천에 정말 모처럼인데...
가라앉은 표정을 하고 있던 효진이 이런 내 태도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지혜를 돌아본다. 내 시선을 살짝 피하고 있던 지혜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한 곳을 가리켰다. 두 레이디를 뒤에 태우고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지혜의 지시를 따라 시내를 벗어나 어떤 산의 중턱까지 난 도로를 따라 달린다. 완만한 곳에 접어들자 포장마차와 주차된 차로 가득 찬 광장 같은 것이 나타났다.
후아. 여기 이런 데가 있었네. 몰랐다.
차를 세워놓고 내리니 춘천시내의 야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산 중턱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포장마차 한 곳을 정해 포장 바깥에 펼쳐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한다. 바람이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밖에서 술을 못 마실 정도는 아니었다. 소주와 오뎅을 시키고 셋이 둘러 앉았다. 효진과 지혜의 앞에 놓인 잔에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그래서, 나 없는 동안 둘이서 연애 좀 많이 하셨어? 지혜한테 효진이 뺏기는 건가 싶어서 조마조마했는데.
연애....? 풋.
역시 효진이.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다가 술 한잔을 비우고 나니 조금 풀린다. 그리고 내 말에 살짝 웃음까지 짓는다. 그렇지만 지혜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했다. 그녀를 향해 반농담조로 말한다.
안 그래도 나도 요새 학교 안 다녀서 시간 많이 남는데 두 사람 사이에 눈치 없이 끼는 건가 싶어서 춘천 오기 상당히 망설였다고. 지혜만 좋다고 하면 자주 놀러 올게. 서울에서 그렇게 먼 것도 아니고 말야. 전처럼 셋이서 놀자.
한석아, 너 아까....
지혜야. 일단 한 잔 하고, 그 다음에 편하게 이야기 하자. 무거운 이야기도 아니고 무서운 이야기도 아니니까.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니까.
나의 강권에 못이겨 그녀 역시 잔을 비웠다. 세 사람의 오랜만의 술자리를 기념하며 한 잔, 춘천의 멋진 야경을 향해 건배하며 한 잔, 그리고 다시 싱글이 되어 돌아온 지혜를 기념하며 한 잔. 기타 여러가지 이유를 대가며 한 순배씩 더.... 오뎅 국물이 떨어지기도 전에 소주 두 병이 순식간에 바닥난다.
후우. 어디부터 이야기 해야 되나. 우리가 무턱대고 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그 새끼를 발견한 이야기부터.... 해야 되겠지?
아까까지는 쌀쌀하다고 생각한 날씨였는데, 알코올의 힘을 빌리고 나니 견디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세 병째의 소주병을 가져오면서 내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효진은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으로 단무지 쪼가리를 헤집고 있었고 지혜는 붉어진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는 무척 사이가 좋은 효진이랑 난데... 너 때문에 처음으로 의견이 갈렸어. 난 필복을 조지고 싶었고 효진이는 네 남편에게 그 사실을 말해서 말리게 하고 싶었지. 서로 의견이 달랐기에 각각 움직였어. 그리고 과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지. 바로 네 남편. 규호에 대해서야.
규호 씨가.... 왜?
지혜의 목소리가 몹시 떨리고 있었다.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술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그녀도 어느 순간에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던 걸까.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알고... 있었어. 그놈은...
알고 있다니...?
네가... 필복에게.... 그렇게 협박당하고... 또 그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지혜가 고개를 떨군다. 그녀의 말끝이 파르르 떨린다.
그야 그 사람이 알았으니 나에게 이혼을 요구....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고개를 거칠게 저었다. 아무리 마음을 고쳐 먹었어도 이런 이야기를 맨정신에 하는 건 무리겠다 싶어서 일단 소주부터 돌리고 시작한 건데, 그래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내 앞에 놓인 잔을 단숨에 들이킨다. 그리고 뱉어내듯이 말했다.
처음부터... 네가 필복에게 그렇게 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그러면서 필복에게 오히려 딜을 제안한 거야. 네 남편이 너를 필복에게 내주고... 필복은 그 댓가로 규호에게 차를 샀지.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지혜의 큰 눈이 더욱 커진다. 그녀는 입을 딱 벌리고 떠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미...믿을 수 없어.. 그 사람이 어떻게...
그 뿐만이 아냐. 애초에 그 사람이 너와 결혼한 것도... 네가 효진이의 친구라는 걸 알고 한 거였어. 너는 선봐서 그냥 성격 맞고 조건 괜찮은 사람 만나서 결혼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그게 아냐. 그 놈은 처음부터 다 알고 노리고 있었어. 그래서 그랬던 거야.
효진이가... 효진이네 집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거야?
아무래도 지혜는 효진이네 집이 어느 정도의 집안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실감이 안 나긴 마찬가지였으니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저건 그녀가 언젠가는 반드시 흘려야할 눈물이다. 그녀의 몫이다. 그렇지만.... 그냥 울고 있게만 둘 수는 없다. 그녀가 슬퍼하면 효진이도 슬퍼하니까. 그러니까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효진이는 규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어.... 효진이 아버지에게 자기를 소개시켜 주면, 널 놓아주겠다고 했거든. 네가 이혼함으로써 필복도 더 이상 너에게 들이댈 명분이 사라지니까.... 그렇게 널 그놈에게서 ?燦?놓았어. 그건 우리가 한 게 맞아. 아니, 효진이가 한 거야.
그럼... 그럼, K사가 부도난 거는 어떻게 된거야. 그것도 효진이 아버지가 하셨다고?
아니. 그건... 내가 아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들었어. 그 회사가 그 분의 영향력 하에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 때문에 망하게 한 건 아니래. 원래 그 회사는 망할 예정이었고 다만 그 분은 녀석을 더 높이 끌어올려 책임자의 자리에 앉힌 거야.
지혜는 두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두었다. 심장이 문제가 생긴 걸까. 아니면 문제가 생겼다고 느낀 걸까.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데?
자세히는 몰라도 그 사람도 일정 부분 회사부도에 대한 걸 책임지는 방향으로 나가겠지. 법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거기까지는 나도 모르겠어.
하아..... 정말.... 정말 모를 이야기구나. 난 효진이 네가...
멍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던 지혜는 효진을 돌아보았다. 효진은 마치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지혜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네가.. 어느 정도 잘 사는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
지혜야, 난 말하지 않으려고 한 게 아니라....
변명하려는 효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지혜는 고개를 저었다.
널 탓하려는 게 아냐. 그냥 내가 내 친구에 대해 너무 몰랐구나 싶어서 그래.
지혜야...
나 말야, 잠깐 혼자 있어도 될까?
지혜는 우리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일어났다. 조금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분명한 걸음걸이로 걷는다. 효진이가 따라 가려고 하기에 팔을 붙들었다. 날 돌아보는 효진을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날 향한 원망이 담겨 있었다.
왜... 왜 이야기 한거야. 차라리 평생 몰랐을 수도 있었잖아.
그렇다면 너나 나나 평생 지혜한테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 건데... 너 앞으로 지혜 안 볼 셈이야?
그건 아니지만....
산중턱 가장자리에는 전망대처럼 나있는 너른 장소가 있었고 난간이 놓여있었다. 지혜는 그 난간에 기대어 서서 시내쪽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내 손에 팔을 잡히어 꼼지락거리고 있는 효진을 보며 시간을 재고 있다가 내 재킷을 벗어서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왜?
춥잖아. 애인께서 가서 따뜻하게 덮어줘.
울상이 된 효진의 얼굴이 조금, 아주 조금 피었다. 내 옷을 손에 들고 효진이 지혜에게 다가간다. 둘이서 마주 서서 무언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한 번 꼭 끌어안고 서로의 등을 토닥여준다. 그리고 내 재킷을 두른 지혜와 함께 효진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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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