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화 (43/65)

옷을 벗는 건 금방이었다. 생각해 보니 효진과는 은근히 관계를 많이 맺어왔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몸을 대하는 데 꽤 익숙해져 있었다. 효진은 셔츠를 벗으며 말했다.

근데, 나 지금 기간 중인데?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했다가... 이내 알아들었다.

기간....? 아, 그래? 그럼 지금 못 하잖아.

 그러니까 입으로만 해줄게.

 아니, 꼭 뭐 해달란 거는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했나 싶어 주저하고 있는데 효진은 손을 등 뒤로 돌려 브래지어까지 벗으며 씨익 웃었다.

꼭 널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 맛 좀 보려는 거야.

 그래, 지혜 맛. 응.

좋은 변명이다. 굳이 반대할 필요까지는 없겠지. 난 바지와 팬티만 벗어 하체 벌거숭이 였고 효진은 위에만 벗어 상체 벌거숭이였다. 옷을 다 벗지 않으니 어째 이상한 느낌이었다. 효진은 내 다리 사이에 자기 몸을 위치시키더니 무릎을 꿇었다. 

엉덩이 살짝 들어봐.

 뭐하려고?

 예전에 오빠가 가진 비디오 중에서 특이한 게 있어서 좀 따라해보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효진이 시키는 대로 했다. 엉덩이를 녀석의 허벅지에 올려놓고 다리로 몸을 지탱한다. 상당히 불편했다. 태근이 형은 대체 어떤 비디오를 가지고 있는 게야. 아니, 것보다도 그걸 동생이 볼 수 있는 곳에 방치한단 말인가.

여기서 이렇게 하던데...

효진은 나름 인상까지 써가며 자세를 잡았지만 그게 썩 잘 되지는 않아 보였다. 아마도 자신의 가슴으로 내 자지를 감싸는 자세를 취하려던 모양이다. 나름 애는 쓰고 있는데 그게 좀 그랬다. 예전에 지혜에게 그런 서비스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지나치게 풍만한 지혜의 가슴 사이를 마치 보지처럼 찔러대었던 행복한 기억.... 그러나 지금은 좀 달랐다.

효진아.

 왜?

 나 허리 아프다.

너무 솔직담백하게 말해버린 걸까. 맥빠진 표정이 된 효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에휴. 역시 지혜 정도는 되어야 각이 나오려나?

효진은 살짝 투덜거리며 날 내려놓고 자지를 손에 쥐었다. 골이 난 그 표정이 살짝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농을 걸어보았다.

이래서 호환, 마마보다 유해 비디오가 더 위험하다고 하는가 보다.

 뭐야, 임마?

효진은 자지를 살짝 세게 쥐었다가 덥썩 물었다. 이빨로 살짝 건드리면서 날 괴롭히더니 이내 쪽쪽거리며 빨아주기 시작했다. 밑둥을 살살 긁어주며 나름 성의를 다해 빨고 있다.

흐음... 몸을 이쪽으로 좀 돌려봐.

자지를 입에 문 채 효진은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기간 중이라고 하니 아래쪽은 건드리지 않고 녀석의 가슴을 주물렀다. 녀석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닌데다가 엎드려 있다보니 아래로 묵직하게 자리한 모양이 나쁘지 않았다.

니가 너무 지혜랑만 비교해서 그래. 너도 그렇게 나쁜 가슴은 아냐.

손가락으로 유두를 비비고 있노라니 도톰한 유두가 직립하는 게 느껴졌다. 효진은 자지를 한 번 크게 훑어내어 전체적으로 침을 바르고 입을 뗐다. 손가락으로 링을 만들어 움푹 들어간 부분을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오호라. 한석 군이 그럼 다른 여자들 가슴도 제법 느껴보았단 거네?

말을 하고 보니 이야기가 어째 그렇게 되었다. 조금 머쓱하긴 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효진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딱히 어렵지 않았고 숨기고픈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뭐, 어쩌다 보니... 그럴 기회가 조금 있었어.

 그래? 어떤데? 다들 괜찮아?

다른 여자들의 가슴에 대해 여자와 논하게 되다니.... 그러면서도 나는 효진의 가슴을 계속 주무르고 있었고 효진이도 내 자지를 붙잡고 있었다. 가끔씩 혀를 내어 핥으면서 손으로는 계속 훑으면서....

다 각자의 장점이 있는 거지, 뭐.

문득 내가 보고 만졌던 가슴들이 떠올랐다. 거대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지혜부터 시작해서 뽕브라로 가리고 있던 명희, 반강제적인 시츄에이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유진, 검은 브래지어의 선영,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모양과 감촉이 좋았던 리사.... 그리고 지금 주무르고 있는 효진의 가슴까지. 그 효진은 지금 열심히 내 자지를 주무르고 있다.

누가 제일 커?

 역시... 지혜랄까. 그나저나 넌 정말 크기에 집착하는 구나.

 집착까지는 아니고 그냥 비교가 되니까 하는 소리지. 그러는 남자들은 이거 크기에 민감하다면서?

그러면서 살짝 힘을 주어 잡는다. 그렇게까지 아프지는 않지만 일부러 엄살을 좀 피웠다.

아야야... 그런 이야기는 또 어디서 들은 거야?

 두 번째 남자친구였던가? 그 놈이 좀 변태였거든. 맨날 이상한 소리만 해대고 그랬어. 물건은 쬐깐한 주제에.

문득 궁금해졌다.

그럼... 효진이 너도 다른 자지를 많이 본 거야?

 다른 거? 으음.. 몇 개 봤지.

 몇 개? 많이 봤나 보네. 처음 본 게 언젠데?

효진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말야. 그때 내가 지혜랑 막 이상한 짓 한창 시작할 때라서 솔직히 스스로 겁이 좀 났었어. 내가 남자를 안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남자랑 하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일단 제일 자주 보는 사람인 과외 선생을 한 번 꼬셔봤지.

 어떻게 꼬셨는데?

 음... 야한 이야기 해달라고 조르고 일부러 짧은 치마도 입고 수업 받기도 하고... 한 보름 정도 그렇게 했더니 넘어오더라. 일부러 집에 아무도 없는 날로 수업 갑자기 바꿔서 단 둘이 있을 때 은근슬쩍 들이댔더니 바로 헐떡대더라고. 그때 처음 봤어.

살짝 뜨끔했다. 과외선생과 여고생이라.... 남의 이야기가 아닌데 이거?

그래서 둘이 했어?

 아니. 그 사람도 처음이었는지 물건 꺼내놓고 내 다리 사이에 비비다가 그냥 싸버렸어. 하게 된 건 나중에 대학교에서 다른 선배랑 사귀면서....

묘한 대화였다. 여자는 남자의 자지를 물고 빨고 주무르면서 자신의 지난 남자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남자는 여자의 가슴을 주무르면서 자신이 보았던 다른 여자들의 가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니. 정말 기묘한 상황이고 웃긴 이야기였다. 게다가 효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기분 나쁘거나 불쾌한 생각은 전혀 없는 게 더 신기했다. 꺼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효진도 그렇거니와 그녀의 남자 경험을 전해 들으면서도 울컥 하지 않는 나. 우리 둘은 정말 불알친구 사이이려나.

....그러다 대학 졸업하고는 선보러 다니면서 한동안 굶었고, 나중에 지혜랑 너랑 같이 한 게 참 오랜만이라서 재미있었어. 니 이것도 훌륭했고.

효진은 손가락으로 내 자지를 살짝 건드렸다. 끝부분에 뭔가가 살짝 흘러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주 몇 방울씩.

훌륭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야?

 크기나 길이도 나쁘지 않고... 음.. 무엇보다 모양이 예쁘달까?

 예뻐? 푸후....

자기가 들어도 자기 표현이 우스웠는지 효진은 내 웃음에 동조했다. 웃다보니 예전에 지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같은 바람둥이는 싫다고 하면서 그녀는 내 자지에 입을 맞추었다. 그래도, 얘는 좋아. 얘는 죄가 없잖아?라고 하면서 말이다.

지혜도 그런 소리 했던 것 같다. 나는 싫어도 내 자지는 좋다고 그랬어.

 뭐야, 그게. 크크큭.

천장을 향해 직립해 있는 자지는 침에 번들거리고 있었고 내 쪽을 향해 상체를 드러내놓고 반쯤 엎드린 효진의 가슴은 내 손에 의해 마구 주물러지고 있었다. 그렇게 에로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분위기를 두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뭐랄까. 이런 게 정말 격의없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탁 터놓고 하는 대화라는 게 바로 이런 것. 그러나 이런 대화는 정말 단 둘이서만 해야 한다. 우리 둘 말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자 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님요, 맥주라도....

문이 벌컥 열리고, 우렁찬 목소리와 급히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이어진다. 그러다 우뚝 멈춰선다. 들고 있던 비닐봉지는 바닥에 떨어진다. 맥주병이 서로 부딪히며 쨍- 하는 소리를 낸다.

마....마리야....

침대 위에 엉켜 있던 우리는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렸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를 목격한 마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왜 진작에 문을 잠그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을까. 마리가 우리 집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것을 왜 진작에 탓하지 않았을까.

효...효진 언니?

마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아무리 효진이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서는 당황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이불을 추스려 가슴을 가렸다.

마리야, 이건 말야... 그러니까....딱히 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러나 마리는 그녀의 설명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효진은 한숨을 푹 쉬고는 침대 한 쪽에 있던 내 바지를 찾아내어 던져주었다.

빨리 나가봐. 쟤는 달래야 될 거 아냐.

 그...그래. 그럴게. 잠깐만.

침대에서 구르다시피 바닥으로 내려온 다음 낑낑거리며 바지를 껴입었다. 팬티를 입을 틈도 없이 바지만 입고 후다닥 집을 나섰다. 문소리가 따로 들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앞집으로 들어가진 않은 것 같고 밖으로 나간 것 같아 길로 나가본다. 발걸음이 워낙 빠른 녀석이라 그런지 전혀 보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단 방향 하나를 정해두고 뛰었다. 한참을 달려보아도 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완전히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혹시나 싶어 예전에 갔던 놀이터를 가보았지만 거기도 비어있었다. 집 근처를 한참 돌아보며 찾았지만 어디에도 마리는 없었다. 별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효진이 나를 맞이했다.

못 찾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셔츠를 벗었다. 갑자기 이리저리 뛰는 바람에 등줄기에 땀이 흥건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효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모텔로 갈 걸 그랬나... 괜히 지혜 침대 가겠다고.... 미안하다, 한석아.

 아냐. 니가 미안할 필요는 없어. 평소 녀석에게 분명히 이야기 했었어야 하는데.. 집에 막 들어오지 말라고.

 마리가 너 좋아하긴 많이 좋아했나 보다. 충격이 좀 크겠지?

 아무래도....

얼마 전 마리에게 고백 아닌 고백을 받았던 사실을 효진에게 따로 이야기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눈치가 있는 그녀는 마리와 나 사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암튼 미안해.

 .......니 입에서 미안하단 소리 들으니까 왜 이렇게 어색하냐. 관둬.

들고 있던 셔츠를 빨래 바구니에 던져버렸다. 효진은 우물쭈물하다가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 도망가서... 우리 한석 군 많이 심심해지면 이 누나가 앞집으로 들어올까?

 하아. 됐다. 마음만 받을게. 넣어둬.

 농담이 아니라 진짜. 너 마리랑 안 되면 왠지 내가 미안하잖아.

 됐어. 마리랑 나랑..... 아주 그런 사이도 아니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열 여자 싫다는 남자 없다는 옛말은 진리인 모양이다. 내가 마리랑 사귀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좋은 관계로 진전될지도 모르는 그런 사이인데도 이런 식으로 마리와 틀어지는 게 꽤 안타까웠다. 

나중에 마리한테 우리 사이는 니가 생각하는 것 만큼 깊은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해줄까?

효진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있는 걸 봤는데... 믿겠어?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잖아. 그냥 심심해서 자지랑 가슴 만지면서 놀고 있었다고 하면.....

 .......말이 되냐? 욕이나 더 안 먹으면 다행이겠다.

 안되나?

누가 효진이 아니랄까봐 내놓는 대책이 참, 쓸모 없다. 효진은 나중에 마리를 보면 연락 달라고 해놓고 나갔다. 효진을 배웅하고 돌아오며 앞 집을 쳐다본다. 불이 꺼진 그곳으로 마리가 언제쯤 돌아올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앞 집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명색이 아가씨인데 밤새 어디가서 뭐하고 있었을까 싶었다. 별 수 없이 돌아섰다. 공부할 것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간만에 도서관 가서 공부나 해야지 싶었다. 그러나 학교로 가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선영의 집이었다.

아침에 집에서 나와 걸어서 선영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낮이었다. 그녀의 방 앞까지 간다. 문은 잠겨 있었다.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넘버락 덮개를 열고 잠시 고민했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려나. 

그러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유진이의 생일을 입력하자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방 안의 곰돌이들만이 날 맞이한다. 사람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오기까지 했지만 소득이 전혀 없었다. 방 안을 둘러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웬 한숨이세요?

 그야 여기까지 왔는데 아무도 없으니까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가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목이 부러질 정도의 스피드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유미가 눈을 깜빡이며 서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답했다.

아무도 없긴요. 제가 있는데?

──────────────────────────

*

유미랑 할까요, 말까요?

 유...유미 씨, 여긴 어떻게....?

들어오면서 문을 닫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에 있는 걸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들었다. 한마디로, 좆됐다!. 내 질문에 도리어 유미가 반문한다.

어떻게라뇨. 선영이가 챙길 게 있다고 가보라고 해서 온 건데... 그러는 선생님은 여긴 어떻게 오셨나요? 게다가 문도 잠겨져 있었을텐데?

 그게 그러니까....

헙.... 내가 선영이의 문을 열고 들어왔지. 그렇군. 젠장할. 무어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우물쭈물 거리고 있노라니 유미가 알았다는 듯이 주먹으로 자기 손을 탁 친다.

설마 빈집털이?!

 아뇨. 그럴 리가요.

 아니면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노리는 강간범?

 으엑! 그럴 리가 없잖아요!

강렬하게 부정해보지만 그녀의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재차 묻는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데요. 여긴 선영이 혼자 사는 집인데 선생님이 여기 서 계신 이유가 말이죠.

 그...그건....

유미답지 않은 날카로운 추궁에 사정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관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기에 좀 무엇해서 일단 방 안으로 들어와 평소 선영과 내가 과외할 때 쓰던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나는 몇 달 전 ROSE에서 내가 부렸던 추태와 그것에 대한 선영의 청구, 그리고 과외 계약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외를 이 집에서 하기 때문에 넘버락 번호를 알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유미는 깔깔거리며 즐거워했다. 뭐야, 남은 지금 절대 들키면 안되는 일을 들켜가지고 고자될 위험을 무릎 쓰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웃어?

유미 씨... 절대로 선영한테는 비밀로 해주셔야 돼요.

그녀는 자신의 웃음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말했다.

왜요? 들키면 고자라도 만들어 버리겠다고 했던가요?

 헙..... 그걸 어떻게.....

 선영이 평소 말투라면 그러고도 남죠. 하하, 선생님 정말 제대로 물리셨네요.

 물리다뇨?

......설마 입으로 해주는 그걸 가지고 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유미는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천천히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음.. 우리 가게에서 그런 일까지는 하지 않지만 가끔 질 낮은 가게에서 그런 거 할 때가 있어요. 그걸 우리는 문다고 표현하죠.

 가끔? 그런 거?

 네. 술에 꼴은 손님 하나 물어다가 룸에 앉혀놓고 빈 병이랑 아가씨랑 옆에 앉혀놓는 거예요. 그래 놓고 술에 깬 사람에게 청구서를 내밀죠. 적당히 조작도 되고 부풀려진 청구서를 말이예요. 그런데도 그거 못 내겠다 하는 손님에게는 추심 전문으로 하는 아저씨들을 붙여드린다거나.... 암튼, 이쪽 업계에서는 흔해 빠진 일이에요. 호호호. 선영이는 그걸 그렇게 응용해서 썼군요.

당했다. 아주 제대로 당했다. 생각치도 못한 선영의 사기행각에 놀아나버린 멍청하고 얼빵하기 그지 없는 최한석이가 입을 떡 벌리고 있노라니 유미는 계속 웃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과외를 받는다라... 흐음. 선영이도 선생님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요.

 네? 마음에 들어요?

속으로 한선영, 이 사기꾼 같은 여자야! 라고 저주를 퍼붓고 있던 나는 다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영이가 내가 마음에 들었다니.... 문득 나를 향해 자기라는 호칭으로 애틋하게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안 그래도 요새 궁금했거든요. 선영이가 어머니 탈상하고 애 기분이랄까, 암튼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기에 무슨 일일까 싶었죠. 그리고 지난 번에 가게 오셨을 때 선생님이 선영이 찾는 거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거든요. 그런데 둘이서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몰랐네요. 호호호호.

그 이전에 유진을 건드리지 말라는 이유로 몸대 몸의 계약을 맺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것까지 말하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거듭 비밀 엄수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유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선영이가 프라이드가 강한 아이이고 하니 이 점에 대해서는 저도 입을 다물어 드리죠.

 아, 감사합니다.

고자가 되긴 아직 이른 모양이다. 다행이다. 그런데 유미가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사탕장수에게 가장 큰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표정으로.... 이 여자는 대체 어떻게 이렇게 표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걸까.

그럼 저한테는 뭐가 있나요?

 네에?

이건 또 무슨 소리다냐.

남자 하나 살리는 셈 치고 비밀을 지키기로 했는데.... 입이 근질근질해서 막 못 참겠고 이런데 이런 저를 위한 어디 좋은 거 없나요?

 아... 유미 씨....

내가 어쩔 줄 몰라하고 있으려니까 그녀는 도리어 싱긋 웃으며 몸을 이쪽으로 살짝 기울여온다. 입술을 살짝 내미는 그녀를 보고 몸을 뒤로 빼내려다가 너무 대놓고 거부하는 기색을 보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개를 살짝 들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짧은 키스. 그러나 유미의 입술은 상당히 부드러웠고 달콤한 맛이 났다. 이 곳은 작은 방 안. 침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고 혈기왕성한 남자와 농염한 매력을 뿜어내는 여자가 단 둘이 마주 앉아 있다. 그리고 둘의 입술은 방금 붙었다가 떨어졌고.... 나도 모르게 가슴이 쿵쾅거리고 설레게 된다. 이거... 이거... 이러다 사고라도 치는 거 아닐까 몰라.....

음... 나쁘지 않네요.

맛있는 쥬스를 마시고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감았던 눈을 뜨는데, 그 눈빛이 정말이지 보통이 아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는다. 지금 만약 유미가 나를 요구한다면.... 차마 거절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은 바쁘니 여기까지만 하도록 해요.

 네? 오늘은...이라니....

 어머, 선생님도 참. 비밀 엄수 대가가 겨우 뽀뽀 한 번으로 끝날리가 없잖아요. 상식이 없으시네. 상식이.

.........두 번만 상식 있다가는 대체 무슨 짓까지 하라고 할 지 두려워진다. 유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선영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화장대로 갔다. 거기 아래쪽에 있는 서랍을 열더니 두툼한 서류철을 꺼내왔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건 이거 때문이에요. 요새 이거 때문에 골치가 많이 아프답니다. 이것만 아니라면 저도 지금 선생님이랑... 호호호...

 아, 예.

서류철에 감사해야 겠군. 그녀가 다시 자리로 돌아와 서류철을 펼치자 빼곡하게 적힌 글자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 몇 달간 보아오면서 저절로 눈에 익은 글씨체였다. 둥글둥글하면서도 다소 어린아이의 글씨체 같은... 바로 선영의 글씨체였다.

뭔가요, 이게.

 아, 저희 가게 장부요. 여태까지 선영이가 관리하느라고 저는 신경도 안 쓰고 살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나니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되어서요.

문득 얼마 전 유진이가 말한 게 생각났다. 자기 엄마가 답지 않게 일감을 집에 까지 가져와 고민하고 있더라는.... 그런 일의 일환인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걸 관리하던 사람은 대체 지금 어디에 있기에 생전 관리 안하던 사람이 하겠다고 나선걸까.

선영이가 어디 멀리 갔나요?

 멀죠. 충남인데.... 아, 모르셨어요?

장부를 넘기며 무심하게 대답하던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날 쳐다보았다.

네. 얼마 전에 새벽에 갑자기 전화 오더니 어디 같이 가자고 한 이후로 연락이 없어요.

 흐음... 그때 한 전화가 선생님한테 거는 거였군요... 흐음......

다시 빙긋 웃으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유미를 보고 뜨끔했다. 그녀는 내게 추궁하듯이 물었다.

정말 단순한 과외 선생님과 학생 사이 맞아요?

 마...맞는데요.

 다른 거 가르쳐주고 막 그런 거 아니죠?

 다른 거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그런 이야기 많잖아요? 과외 선생님과 여학생의 은밀하고 농염한 비.밀.스.러.운.행.위.

 ..........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있다고 하면 이 무슨 낭패인가.

아, 그러고 보니 선생님 양다리네요? 유진이도 과외하고 계시잖아요.

뜨악. 이 아줌마는 대체 자기 딸을 두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 한사코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맹렬한 부정은 긍정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격언이 떠오르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부정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유진이랑은 정말 아무 일 없습니다.

 어머, 그럼 선영이랑은 일이 있었나 보네요.

 .........

이런 걸 가리켜서 유도심문이라고 하던가. 이건 뭐... 독립군 취조하는 나까무라 순사도 이것보단 덜 잔인하겠다.

흐음... 이러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는데.....

선영에 대해 더 물어보았다가는 대체 무슨 이야기까지 나올지 몰라 앞에 놓인 장부 이야기로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이...이거 정리하셔야 된다면서요? 유미 씨. 네에?

 뭐, 정리야 정리 나름이죠. 선생님의 양다리랑 이리저리 가지 쳐놓으신 것도 정리....

 험험. 이거 급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유미 씨?

그제서야 유미는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장부를 보았다. 나를 보며 빙글빙글 웃던 표정이 사라지고 이마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아, 정말이지. 저는 숫자 같은 거랑 정말 안 친하단 말이에요. 이런 건 어디 맡기면 딱 해주고 대신 알아서 해주는 데 없는 건가요?

 그야 회계사무소 같은 데 의뢰하시면....

 이건 술집 장부라구요. 탈세도 적당히 하고 주류 신고도 적당히 해야 돼요. 그걸 남한테 맡길 수 있나요.

 그...그렇습니까?

탈세와 주류 신고를 적당히라... 그런 의뢰를 받아주는 회계사도 있으려나. 찾아보면 있을 것 같기도 한데.... 문득 날 바라보는 유미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쩐지 불안해졌다.

선생님, 대학생이죠?

 그런데요.

 아르바이트 하나 안 하실래요?

 아르바이트요?

아르바이트라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싶었는데, 그 설마가 맞았다. 유미는 자신의 장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거 정리하는 아르바이트요. 선생님이라면 남도 아니니 믿고 맡길 수 있고 또 대학생이니까 이런 것도 잘 하시겠네요.

 대학생이 이런 걸 잘 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전 장부 정리 같은 건 한번도 안 해봤어요.

게다가 나보고 남이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일까. 

지금부터 배워서 하시면 되죠. 보수도 넉넉히 드릴게요.

 아니, 지금 보수가 문제가 아니라....

손을 내저으며 거부하려고 하자 유미가 살짝 인상을 썼다.

지금 선생님이 거부하실 처지인가요?

 ......처지요?

 네. 여러 가지로. 자~알 한번 생각해보세요.

늘 생글생글 웃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유미가 인상을 쓰니 유진이와 상당히 닮았다. 아니, 유진이가 엄마를 닮았다고 해야 옳겠지만, 아무튼. 유진이가 가끔씩 시전하는 자신의 제안을 절대 거부 못 하게 만들기 스킬의 오리지날을 맛보고 있자니 아주 죽을 맛이다. 날씨가 그리 더운 것도 아닌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하... 하겠습니다.

 흐음. 맡겨도 되려나요?

 ....하게 해주십시요.

 좋아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유진이의 말빨과 사람을 가지고 노는 처세가 대체 어디서 왔는지 이제 명확해졌다. 피는 못 속이는 건가. 하아. 난 유미의 양해를 구하고 장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덧셈과 뺄셈으로 이루어지는 게 장부지만 여러가지 요소로 인해 비율이라던가 항목별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저기, 이거 제가 가지고 가서 정리해 와도 되려나요?

 가지고요? 어딜요?

 내용을 보니 엑셀이나 DB로 정리하는 게 빠를 것 같아서요. 학교에 가면 컴퓨터가 있거든요.

 컴퓨터? 어머, 그런 것도 할 줄 아세요?

유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제가 하는 공부 중에는 수치제어 같은 것도 있으니까요. 대량의 숫자를 다룰 때는 그만한 게 없거든요.

 선생님 컴퓨터는 없어요?

 비싸서....

내 대답을 들은 그녀는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흐음. 아무리 그래도 이건 기업 비밀 같은 건데 들고 나가기는 좀....

 그런가요. 그럼 뭐, 그냥 수기로 해보겠습니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뭐, 원래 선영이 하던 거라고 하니 좀 더 파악하면 되겠지 싶었다. 그러나 유미는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뇨.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일단 가죠.

 네? 어딜요?

 컴퓨터 필요하다면서요. 사러 가요.

저녁 먹을 찬거리를 사러 가자는 것처럼 유미는 선뜻 나섰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유미는 한번 정한 사항은 뒤로 물리지 않는 여자였다. 선영의 방을 나와 유미의 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그녀와 나는 한 컴퓨터 대리점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점원 한 명이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유미는 점원에게 이 가게에서 가장 좋은 컴퓨터를 보여 달라고 했다. 사양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용도를 말하는 것도 아닌 가장 좋은 컴퓨터라.... 이건 뭐 대놓고 컴퓨터 초짜라고 이야기하는 거 아닌가. 대리점이니 가격을 후려치거나 덤태기를 씌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다. 점원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어느 분이 쓰실 건데요.

 이쪽 분이요.

유미가 나를 가리키자 점원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남편 분이 상당히 젊어보이시네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난데없이 유미의 남편이 되어버렸다. 내가 인상을 쓰며 점원의 안내를 받아 가는 동안 유미는 뭐가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뒤따라왔다. 남편이래요, 남편. 호호호.

데스크탑으로 찾으시는 건가요, 아님....

 그건 얼마인데요?

엑셀이나 DB 돌리는 용도니까 그렇게 고사양까지는 필요없겠지 싶어 아카데미 버전이 주욱 늘어선 라인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486DX 정도면 무난하겠다 싶어 가격을 물어보니 189만원이란다. 한 학기 등록금의 뺨을 후려치는 그 가격에 할 말을 잃고 더 저렴한 것으로 찾아본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머나. 이것도 컴퓨터인가요?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던 유미가 진열대에 놓인 노트북을 가리켰다. 내가 점점 싼 모델로 내려가고 있자 내게 흥미를 잃던 점원이 그 쪽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달려간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노트북에 대한 사양을 마구 늘어놓기 시작했다. 166MHz 펜티엄MMX에 32MB RAM, 3GB 하드디스크, 10배속 CD롬에 2MB 메모리가 달린 비디오 카드가 어쩌구 저쩌구.... 그러나 생긋 웃고 있는 유미의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뭔 소리니.

흐음.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이 가게에서 이게 제일 좋다는 거죠?

 그럼요, 손님. 안목이 있으시네요.

점원의 말이 끝나기게 무섭게 유미가 결정을 내렸다.

그럼 이걸로 주세요.

점원은 신이 나서 새 제품으로 꺼내오겠다며 창고 쪽으로 날듯이 달려갔다. 뜨악! 난 황급히 유미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유미 씨, 가격도 안 물어보고 사는 겁니까?

 왜요? 이게 제일 좋다잖아요.

 노트북은 더럽게 비싸다구요. 게다가 이건 펜티엄급.....

 팬티? 컴퓨터 이름치고는 꽤 야하네요?

 .......그런 PC통신급 유머를.....

 통신? 아, 이거 통신도 되는 거예요? 어머, 신기해라.

유미와 유진의 공통점을 또하나 발견했다. 남의 말을 결코 듣지 않는다. 자기가 결정한 건 무조건 옳다. 다른 이유는 필요 없다. 하아. 참 대단한 모녀지간이다.... 이윽고 점원이 포장되어 있는 노트북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그가 내용물을 하나하나 꺼내며 설명하는 동안 유미는 신용카드를 꺼내더니 결제를 했다. 얼핏 들으니 노트북의 가격은 389만원. 게다가 일시불. 헐..... 점원이 가방에 노트북을 챙기는 동안 조용히 물어보았다.

저기, 프로그램은 깔아주시나요?

 뭐 필요하신데요? 각종 게임 CD는 따로 드립니다만...

 아뇨, 게임은 필요없고 오피스 프로그램으로 깔아주세요.

 아, 그러세요. 잠시만요.

점원이 노트북을 가져가 다른 컴퓨터와 연결을 하더니 무언가 복사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 후, 유미와 나는 대리점을 나왔다. 내 어깨에는 노트북 가방이 걸려 있었다.

저, 이렇게 비싼 걸.....조금 부담되는데요.

 선생님. 그럴 때는 그냥 고맙다고 하시면 되구요, 알바 착수금이라고 생각하세요.

 착수금이요?

 네. 일단 저희 가게로 가서 아까 장부부터 정리하죠.

 고맙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호호호. 그래요. 바로 그렇게 대답하시는 거예요.

해야할 일은 하는 여자였다. 유미를 따라 ROSE로 갔다. 사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지나를 마주쳤다. 나와 유미를 보고 인사를 하는 그녀에게 유미가 말했다.

지금부터, 여기 선생님이랑 나랑 사무실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하니까 말야. 따로 부르기 전에는 아무도 들이지 마렴.

 ........장부 정리입니다. 지나 씨,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주세요.

깔깔거리는 지나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삐죽거리는 유미와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선영은 장부를 꽤 꼼꼼하고도 성실하게 정리해놓았고 나는 그것을 DB화 시키면서 필요한 경비와 임금 등을 계산해냈다. 꽤 오래 걸리고 지루한 일인지라 끝났을 때는 거의 한밤중이었다. 옆에서 치근덕 거리는 유미만 없었으면 아마 더 빨리 끝냈을 지도 모른다. 

다 되었거든요. 나중에 제가 출납명세서만 출력해올게요.

 헤에. 신기하네요. 그렇게만 하면 계산이 자동으로 되는 거예요?

 입력을 정확히 하고 수식을 구성하면....

 아아, 복잡한 이야기는 되었구요. 일도 다 하셨으니 술 한잔 안 하시겠어요?

 ......저 내일 출근인데요.

 어머나, 그랬지요. 흠. 알았어요. 내일 뵈어요.

유미의 배웅을 받으며 ROSE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왔다. 앞집은 여전히 불이 꺼져있었고 벨을 눌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

*

선영 루트에서 유미가 턱! 하니 사왔던 노트북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