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를 부축해서 밖으로 나왔다. 사실 나도 몸이 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지혜가 더 안쓰러워 보였다. 모텔 밖으로 나가니 예린이 차를 가져왔다. 지혜와 함께 뒷자리에 올라탄다. 온몸이 욱씬욱씬 하니 안 아픈 곳이 없다. 예린에게 일단 지혜의 집 위치를 말해주었다. 차가 출발했다. 운전 중인 예린의 뒷모습을 보며 물어보았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한석 씨라면 필복을 쫓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서울에 와서 놈을 따라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이 모텔에 들어온 것 까지는 알았는데 방을 찾을 수가 없어서 시간이 좀 지체되었습니다.
그렇다. 예린이 난입하기 직전 필복에게 걸려온 전화는 아마도 그녀가 돌입하기 직전 시행한 최종확인이었던 셈이다.
아무튼 와줘서 고마워. 여러가지로.
감사는.......... 리사 아가씨에게 해 주십시요.
리사?
네. 그동안 대물물산의 자금줄을 죄는 일을 처리하느라 출산도 얼마 안 남았는데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그래. 리사가 그랬구나.....
이로써 필복은 몸이 거덜난 건 물론이고 사회적 기반도 거덜이 나게 생겼다.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방금 전 예린의 말에 섞여있던 익숙치 않은 단어를 깨달았다.
자, 잠깐! 출산이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예린은 약간 톤이 달라진 말투로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녀와 제법 오랜 시간을 지내온 나는 이게 그녀의 당황한 말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시치미를 뚝 떼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니 운전 하고 있는 중만 아니라면 뒤에서 목이라도 졸라서 다그치고 싶었다.
방금 리사가 출산 어쩌구 저쩌구 했잖아!
제가 언제요?
방금!
그게 언제를 말씀하시는 건지 정확히 설명을.....
그러자 여태 가만히 있던 지혜가 헛기침을 한다.
저기, 예린 씨라고 했던가요? 저도 들었어요.
........이런.
예린은 혀를 끌끌 찼다. 속도를 조금 줄이며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석 씨가 부산에 도착할 때까지는 결코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암튼 다음 달이 출산 예정일입니다.
리....리사가? 임신을....?
단 하루 밤이었지만 잊을 수 없는 그 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설마?
설마..... 내 아이를?
예.
시원스럽게 인정해버리는 예린이 부연 설명을 한다.
그리고 엄격히 말하자면, 아이가 아니라 아이들입니다. 쌍둥이거든요. 지난 번에 초음파 사진 찍어 보니 아이들은 무척이나 건강하답니다.
뭐? 왜 그런 이야기를 여태 안 한 거야?
여태 리사와 했던 통화를 떠올려본다. 힘겨워 하던 목소리이긴 했지만 이런 이야기는 일언반구 없었다. 내색도 없었다.
솔직히... 리사 아가씨가 몸이 상당히 약해져 있어서 제대로 출산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도 모릅니다. 병원에서도 아가씨를 말렸지만 막무가내셨습니다. 거기다 한석 씨 사고가 났을 때는 춘천까지 가서 밤을 새며 노심초사 하느라 몸이 더 약해졌죠. 결국 부산으로 실려 돌아온 리사 아가씨는 자신이 병원에 있는 모습을 한석 씨에게 보여주기 싫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렇다고 날 못 오게 하다니! 말이 돼?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기가 막혔다. 난 또 무슨 전염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다. 정말 그런 이유라니.... 그러나 옆에 있는 지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뭐?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기 약한 모습 같은 건 보이고 싶지 않거든. 나도 그랬고.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나한테 일절 말도 없이....
예린은 내 쪽을 힐끔 쳐다봤다. 운전할 때는 앞을 봐, 이 여자야!
그러기에 제가 부산으로 가야한다고 몇 번씩 조언을 드렸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는 없었잖아!!!
리사 아가씨를 정말 보고 싶으셨다면 절 때려 눕히고서라도 가셨어야죠.
......내가 예린을 때리면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나 싶어서 묻자 이번에도 예린은 시원하게 대답한다.
제 반격을 맞고 쓰러져서 다시 반 년은 요양하셔야 했겠지요.
하아.
옆에 있던 지혜가 쿡- 하고 살짝 웃었다. 예린의 이야기는 이어졌다.
사실 애비없는 아이를 배었다고 아버님은 크게 진노하셔서 거의 의절해버린 터라... 지금 리사 아가씨 곁에는 한석 씨 어머님과 마리 아가씨만 계십니다.
대체......
고개를 젖혀 등받이에 기댄다. 옆 자리의 지혜를 돌아본다.
미안하다. 지혜야. 일단 너 내려주고 난 부산으로 바로 가야 겠어. 이런 이야기를 듣고... 가만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 어쨌거나 축하해. 잘 되길 바라.
축하? 그.....그렇겠지?
실감이 전혀 나질 않는다. 리사가 애를 낳는다고? 그것도 쌍둥이를? 게다가 내가 그 아이들의 아빠? 아침 나절까지 총각이었던 나는 졸지에 애 둘 딸린 남자가 되어버렸다. 할 말이 없다. 이게 뭐야, 대체. 기쁜 건지 슬픈 건지 놀란 건지 ... 아니면 그 셋 다인지 모를 감정에 휩싸인 채로 끙끙거리는 동안 지혜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리사라면, 마리의 언니 맞지?
응? 으응....
그러고 보니 지혜는 리사를 본 적이 없다. 아마 마리에게서 이야기는 들었을지 몰라도 말이다. 날 바라보는 지혜의 표정이 야릇했다.
마리랑 어떻게 잘 되는 건가 싶었는데 언제 또 그 언니를 꼬셨대니?
꼬...꼬시다니.
굳이 따지자면 내가 아니라 리사가 날 꼬신 것 같은데. 아악.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다.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날 보던 지혜가 피식 웃는다.
누군지는 몰라도 널 엄청 좋아하긴 좋아하나 보다.
그랬지.
지금 생각났다. 네 축의금 봉투에 부부명의로 내는 것처럼 나란히 써 있던 이름이 아마 그거였던 것 같네. 맞아. 그랬어.
그런 일도 있었지.
그리고 그 전날에는 날 꼬셔서 잠도 잤고 거기서 애도 가져서 지금 좀 있으면 낳는단다 그러고. 아아. 리사. 널 미치도록 보고 싶구나. 일단 보면 뽀뽀도 해주고 싶기는 하지만 한번 꼬집어 주고 싶기도 하다. 얄미운 이 기집애.
조금 샘 나.
.....응?
리사 생각을 하느라 지혜의 말을 제대로 잘 듣지 못 했다. 지혜는 내 쪽을 돌아보며 살포시 웃었다.
유부녀가 이런 생각 하면 안 되겠지?
아....아마도.
그래도 한석아.
응?
고마워.
그녀의 입술이 내게 다가온다. 예린 쪽을 의식한 난 잠시 멈칫했지만 그래도 지혜의 부드러운 입술을 잠깐이나마 즐긴다.
너는.... 날 만난게 어땠는지 몰라도, 난 널 만난 걸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지혜야....
정말이야. 그 날 카페에서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너를, 네 모습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거야.
그 날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술에 취해 마구 난장을 피우던 그녀. 나를 모텔로 이끌고 갔던 그녀. 콘돔을 꺼내고 수줍게 몸을 가리던 그녀. 그러나 이젠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다른 여자에게 묶인 내게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우린 이제 서로 다른 곳에 속해있어. 난 내 남편에게 돌아가야 하고 넌 널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야지.
그래.
어느새 지혜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지혜를 따라 내렸다. 집 앞까지 바래다 주고 싶었지만 지혜가 고개를 젓는다.
여기까지면 됐어. 네 덕분에 모든 게 잘 해결되었으니 앞으로 내 걱정은 하지마 ....
그래도 그 차림으로 괜찮겠어?
괜찮아. 아직 남편은 안 왔을 거야. 얼른 들어가면 돼.
그래.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지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다소 물기 있는 목소리로 날 올려다보며 조용하게 속삭였다.
마지막으로...... 딱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안아줘.
이번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를 부둥켜 안고 진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키스는 길었지만 그 시간은 지극히 짧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지혜가 내 가슴을 밀어낸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자신의 눈에 고인 눈물을 들키기 싫은 걸까.
이제 가 봐.
그래. 갈게....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 타서 사이드 미러로 지혜의 모습을 본다. 더는 보지 못할 그 얼굴을 한번 더 새겨본다. 애써 울음을 참는 그 얼굴. 잊을 수 있을까. 정말 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이젠 잊어야지. 내 상념에 엔딩을 고하듯 예린이 말한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두 눈을 감았다. 가속하는 차가 충분히 멀리갔다고 생각할 때까지 눈을 뜨지 않았다. 골목길을 한참을 달리던 차가 어느덧 평탄한 도로에 진입한다. 그때까지 조용하던 예린이 그제서야 말을 꺼낸다.
아쉬우신가요?
내가 뭘.
저 분과 더 못 만나는 거요.
못 만나는게 아냐. 안 만나는 거지.
차이를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르겠어.
어느덧 어두워진 도로에는 헤드라이트의 물결이 넘실대었다. 맞은 편 차들의 빛이 꽤나 눈부셨다.
그러고 보니 예린은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네? 그래놓고도 잘 보여?
잘 보입니다.
안 보일 것 같은데....
생각보단 잘 보입니다. 예를 들면, 아까 한석 씨가 그 분과 진하게 키스하는 것도 다 잘 보이고 말이죠.
그런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지마!
으아아악! 그런 건 이야기 하지 마!!!
글쎄요. 전 입이 가벼운 편이라...
누가? 예린 씨가? 입이 가볍다고?
네.
차라리 인도 코끼리가 깃털처럼 가볍다고 하던가 아니면 북한 사람들이 고도 비만으로 힘들어 하고 있단 소릴 해라. 그거는 믿어줄게.
그 말을 누가 믿어!
내가 현실을 직시하고 절규하며 발버둥치자 예린은 차를 길 한 편에 세웠다. 그녀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고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한석 씨가 제게도, 그런 진한 키스를 해주신다면.... 입이 무거워질지도 모릅니다.
정말?
네.
꼼짝없이, 반협박에 못 이긴 나는 예린과도 키스를 하고 말았다. 길어지는 키스에 야릇한 기분이 모락모락 피어날 때쯤 예린이 입을 떼었다. 그녀는 혀를 내밀어 자신의 입술을 살짝 핥은 다음 몸을 바로 했다. 그녀의 가슴께를 만지고 있던 내 손도 얼른 제 자리로 돌아온다.
하아...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어? 어....
묘한 기분이었다. 차안에 남녀가 단둘이 있으면서 키스를 나눈다는 건 꽤나 야릇한 기분이었다. 예전에 이러다가 한강에서 뭔가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하는데....
부산에서는, 이러지 않을 거지?
자세를 바로하며 예린을 돌아본다. 예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예린!!
일단은 출발부터 하겠습니다. 가는 길은, 머니까요.
차가 앞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 나아간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리사에게, 나를 지켜줌과 동시에 탐내는 예린을 데리고 말이다.
차창 너머 저 멀리 둥글게 떠오른 달이 내가 가는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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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노말 엔딩]을 달성하였습니다.
*
쓰면서도 본인조차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지혜 엔딩이냐고 본인에게 물어보며 버럭버럭 짜증을 내고 있습니다만.... 지혜 엔딩 맞습니다. 맞고요. 배드도 아니고 노말 엔딩 맞습니다. 지혜 팔자가 참 기구합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지혜 이야기의 처음을 보아도... 이 아이의 이야기를 이거보다 더 좋게 만들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원래 각자 루트에서나 하게 되어있던 히로인 중 선영, 리사 둘이나 공통루트에서 한석에게 들이대는 바람에 스토리가 꼬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열린 결말 식으로 끝내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입니다. 다른 루트에서도 꼭 리사가 애를 낳으란 법은 없습니다.
아우, 복잡해! 이제 다 이유도 없이 여자가 꼬이는 한석이 때문입니다. 한석을 죽입시다. 한석은 나의 원쑤. 그런데 한석을 죽이며 거기로 스토리가 쫑이군요. 에궁. 살려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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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의 [배드 엔딩]을 쓰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지난번 명희 배드 엔딩 사건 이후로 꽤나 의기소침해진터라.... 지혜 배드 엔딩으로 들어가는 분기는 스스로 없애버렸습니다. Route G 중에서 어딘가 모르게 한석이가 혼자 선택하고 행동하는 파트가 있습니다.
거기서 한번 더 분기 따서 나아가면 지혜 남편 규호와 필복이 대활약을 하는 NTR 루트가 나올 법도 했었는데.... 에에.. 이건 그냥 설정 노트의 한페이지로 끝. 바이바이. 쓸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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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간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겠습니다.
유진이가 아파서 드러누워있던 그때로 돌아가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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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수업에 일단 참석했다가 유진에게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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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공통루트 - Route B - Route D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지혜의 결혼식 날, 그 날로 되돌아 가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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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지금 바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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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공통루트 - Route B - Route D - Route E에서 이어지는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지금부터의 48시간 동안의 선택을 받은 후에 바로 준비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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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밤 되세요.
여태까지의 스토리 요약
(데이트 첫 날, 다시 데이트 첫 날, Route B와 Route D, Route E 거쳐서 현재까지)
대학생 최한석은 우연한 기회에 이명희와의 소개팅에 나갔다가 명희는 못 만나고 김지혜를 만나서 관계를 맺는다. 지혜는 한석의 맞은 편 집으로 이사를 오고 한석은 지혜의 친구 효진과도 관계를 맺는다. 한석은 지혜에게 고백하지만 지혜는 곧 결혼하게 된다며 그를 퇴짜놓는다. 그리고 바로 얼마 후에 지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다. 명희와도 좋은 관계가 되려나 싶었는데 몇 번 엇갈리고 나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한편 한석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는데 과외를 받는 여학생의 이름은 진유진. 엄마의 이름은 진유미. 그리고 유진을 끔찍히 아끼는 언니 한선영이 있다. 유미와 선영은 ROSE라는 룸살롱에서 일한다. 지혜에게 차이고 그 분풀이를 ROSE에서 하다가 선영에게 덜미가 잡혀 손해금액 변제 대신 선영을 과외하기로 한다.
또한 한석은 올해 신입생 중에서 특이한 녀석을 알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김마리. 그녀와 쌍둥이 언니인 김리사와 리사의 수행원인 성예린은 한석의 맞은 편 집으로 이사를 온다. 여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리사의 말에 한석은 지혜에게 연락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한석은 지혜를 연락처를 알지 못해 연락을 하지 못한다.
개강을 하고 나서 마리와 항상 붙어다니던 한석은 유진이가 부속고등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예전에 선영의 집에 있던 모습을 들킨 여자아이가 유진이 친구 양소란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또한, 우연한 기회에 리사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갖는다. 한석의 생일을 앞두고 어머니가 상경을 하게 되어 리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옛 팝송을 듣고 눈물을 보인 어머니에게서 예전에 집나간 이모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석의 생일파티에서 술을 마시게 된 유진을 집에까지 데려다줬는데 다음날 연락을 해보니 유진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한석은 당장 수업도 제쳐놓고 유진에게 간다. 거기서 유진의 반나신을 보게 되고 그녀를 간호한다. 후에 선영이 찾아와 한석에게 제의를 한다. 자신의 몸을 제공하는 대신 유진을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한다. 그리하여 선영과 관계를 갖는다. 나중에 선영의 검은 옷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육체적으로 그녀와 좀 더 친밀해진다.
한편, 한석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앞집 리사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데 그녀 역시 한석에게 호감을 표한다. 교생실습을 앞두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던 한석은 리사가 원하는 대로 하루 동안 애인이 되어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다음 날, 리사는 자신의 일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고 그동안 감춰두었던 지혜의 청첩장을 전해준다. 한석은 마리와 함께 효진을 만나 결혼식이 있는 춘천으로 향한다. 지혜와의 어색하고 짧은 만남이 지나고 한석은 결혼식장에서 의외의 사람을 발견한다. 그러나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효진의 요구에 한석은 서울로 향한다.
그러면 이제, 더블 데이트 Route H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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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도 따라 올라가지 뭐. 여기서 돌아가는 길은 안 그래도 빡빡한데 말야.
예전에 춘천에 한번 놀러온 적 있었는데 돌아가는 길에 몹시도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버스 타고 춘천역인가 어딘가 가서 또 경춘선 타고 어쩌고 했던 것 같은데 그 길도 기억이 잘 안나고 말이다.
그러자 그럼. 마리도 괜찮지?
효진이가 묻자 마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지혜에게 한 번 더 인사를 할까 했지만 안 그래도 이런저런 일로 정신없을텐데 거기에 더 보탤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이제 완전히 남의 여자가 되어버린 그녀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볼 일 없겠지. 보아서도 안 되고. 계단을 내려가기 직전 홀을 한 번 더 둘러본다. 역시 그놈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잘못 본 게 틀림없다. 하기야 여기가 어디라고 그놈이 무슨 낯짝으로 오겠는가 싶다.
선배님요. 안 가세여?
간다, 가.
계단 아래쪽에서 날 재촉하는 마리의 머리를 한번 흐트려뜨리곤 앞서 걸어간다. 효진이가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은색 JEEP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를 기다린다. 마리가 뒤에 타고 내가 조수석에 탔다.
일단 가평까지는 내가 운전할게. 그 뒤는 니가 좀 해줘.
알았어. 임마.
돌아오는 길은 꽤나 막혔다. 아까 춘천 들어갈때 막힌 것 이상이었다. 점심시간 조금 지나 출발 했건만 우리 집까지 도착했을 때는 저녁시간이 다 되었을 정도였다. 오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고는 하나 꽤나 오래 걸리고 말았다. 자기 오빠한테 안 혼나려나 걱정되는데 효진이 녀석은 우리를 집까지 태워다주었다.
지하철 역에 내려줘도 됐을 텐데. 암튼 고맙다.
고맙기는. 너도 애썼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마리를 깨워 데리고 내린다. 효진이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곤 차를 출발시켰다. 선 채로 졸고 있는 마리를 자기 집에다 들여 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온다. 정장을 벗는다. 옷걸이를 꺼내와 그것을 잘 걸어두었다. 리사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나에게 보내진 청첩장을 숨기고 그러면서도 이런 옷을 준비해놓고 있었을 리사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문득 리사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오늘 아침에 출발했으니 지금은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예전에 받아 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예린의 명함을 꺼내어 전화를 건다. 신호가 몇 차례 가더니 누군가 받는다.
네. 성예린입니다.
무뚝뚝한 낮은 목소리는 여전하다.
아, 예린 씨? 최한석입니다.
아, 예.
도착했어요?
예.
리사는요? 같이 안 있나요?
아가씨는 사무실에 가셨습니다.
아, 그래요.
......
......
뭘 물어도 단답형의 대답. 거기서 대화가 뚝 끊긴다. 하기야 내가 예린이랑 무슨 이야기를 해봤어야 말이지.
에..... 운전 오래 했을 텐데 안 피곤해요?
괜찮습니다.
회심의 안부성 질문도 단칼에 대화종료. 예린과의 대화는 진입장벽이 너무 높다.
그럼 저... 리사에게 선물 잘 받았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늦게라도 저한테 전화 좀 달라구 해주시구요.
알겠습니다.
무슨 ARS 상대로 통화하는 기분이다. 용건을 남기고 끊으려는데 예린이 나를 부른다.
한석 씨.
네?
......마리 아가씨를 잘 부탁합니다. 부디.
아, 예.
갑자기 마리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지. 앞집 사니까 잘 봐달라는 걸까. 학교 선배이기도 하고.... 난 별 생각 없이 알았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예린은 그때 칼국수 집에서도 내게 이런 식으로 인사를 했었다. 부디 리사 아가씨를 잘 부탁합니다. 하고 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와 리사가 뭘 했더라....
순간적으로 멈칫한다. 설마. 설마....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오른다. 터무니없는 생각이고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막연한 생각 하나가 내 머리 속을 가득 메운다. 설마 예린은 리사가 그 날 나에게 그런 식으로 대쉬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래서 그런 식으로 부탁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켜준 것이었나. 그걸 그녀가 어떻게 알지? 문득 아침에 마리가 중얼거렸던 말이 떠오른다. 언니한테는 얼추 듣긴 들었습니다만....
크악-
그러고 보니 대체 이 여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어디까지 서로 주고 받는 건가 싶다. 나야 형제가 없이 자라서 친형제나 자매 지간에 당최 어떤 대화를 하는지 전혀 감도 안 잡히지만 적어도 나는 사촌 형들이나 사촌 누나들에게도 내가 동네 누구누구를 좋아하는지조차 말한 적이 없다. 사촌 형제와 친 형제는 다른 건가?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그렇다. 만약 예린이 항상 그래왔듯이 계속 리사 곁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 날 리사와의 밤은 성사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대쉬하기로 마음 먹은 리사가 예린에게 미리 언질을 주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내가 여자라면.... 어떤 남자를 유혹하겠다고 할 때 그런 이야기를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할 것인가 싶다. 아니지. 아니지. 마리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리사라면 그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했지만 답은 나올 리 만무했다.
나의 결론은 내려졌다. 역시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겠다.
신발을 챙겨 신고 집을 나와 앞집으로 향한다. 그래보았자 딱 두 걸음 거리다. 문을 두드리려다가 멈칫했다. 마리를 불러서 대체 뭘 어떻게 물어본건가 싶다. 급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설마 마리를 불러내 가지고,
니 언니랑 나랑 어젯밤 한 거에 대해서 어디까지 들은 거야?
............라는 직접적이고 다이렉트한 질문이라도 할까. 그게 아니면,
헤이, 유어 시스터랑 미랑 섹스했다! 라스트 나잇에!
...........라고 미쿡인처럼 쾌할하고 가볍게 이야기라도 할까. 마리는 영어에 약하니까 이게 좀 먹힐지도...... 허이구. 내가 드디어 돌았구나. 이런 미친 생각까지 하고 말이다.
늘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가던 문을 코 앞에 두고 난 한참동안이나 끙끙거려야 했다. 오늘 아침 마리가 보인 태도라든가 리사가 혹시나 남겼을 말이라든가 암튼 뭐든간에 마리에게 속시원히 털어놓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꺼낼 수 있는 화제가 아니니까 말이다. 꽤나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일단은 밥이라도 먹자는 이야기를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살짝 뜬금없는 말이고 다소 이르긴 하지만 저녁 먹을 시간도 가까워졌기에 그리 갑작스럽거나 어색한 제안도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데, 그러기 직전 나도 모르게 손을 멈추게 된다. 묘한 소리를 들은 탓이다. 그것은 목소리라기 보단 신음에 가까웠고 리사와 밤을 바로 어제 보낸 나에게 있어 그리 낯선 소리가 아니었다. 나직하고 가느다란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들을 수가 있었다.
하아...하아..... 선배님요...... 하악........
귓가에 전해지는 소리는 분명 마리의 목소리. 그러나 평상시의 쾌활하고 목청 큰 그런 마리의 목소리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어젯밤 내 품 안에서 그 눈부신 몸을 퍼뜩거리며 달콤한 신음을 흘려대던 리사의 목소리 같았다.
하음....하악...하악...하....
달뜬 목소리가 나를 이끈다. 현관 문고리를 쥐고 살짝 돌려본다. 잠겨있지 않았다. 돌아간다. 문소리를 내지 않도록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문을 연다. 내 몸이 들어갈 정도로만 당겨 열고 몸을 비집고 넣는다. 역순으로, 다시 천천히.... 결코 문 소리가 나지 않도록 닿는다. 손바닥에서 땀이 저절로 난다.
아항....하흥....하악....하아악.....
마리의 방은 바로 이 쪽, 현관 바로 옆방이었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발끝으로만 걸어 거실에 올라선다. 반쯤 열려있는 문 안에서 예의 그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살짝.... 정말 살짝 문을 더 밀어 열고 안쪽을 들여다본다. 싱글 침대 위.... 아직 옷도 채 다 벗지 않은 마리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있기에 그녀의 손 동작이 보이진 않지만 팔 한쪽은 두 다리 사이에 위치하고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이..... 대체 왜 이러고 있지?
하아...하아..... 선배님요...... 하악........
내 귀를 의심한다. 녀석이 스스로를 위안하는 행위에 몰두하고 있으면서 나를 찾고 있었다. 그래, 물론 과한 생각일 수도 있다. 녀석이 동기들과 친하게 어울려 지내는 것처럼 나 말고도 친한 다른 선배가 있을 수도 있지. 마리가 부르고 있는 저 선배가 꼭 최한석만을 의미한다고는 안 했잖아. 그렇지만 묘한 열기에 취해버린 나는 어느샌가 문을 밀고 몸을 방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침대에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마리는 나의 존재를 깨닫지 못 하고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킨다. 손을 뻗는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마리를 불러서 어쩌겠다는 걸까. 지금이라도 못 본 척하고 나가는게 낫지 않을까. 자신의 비밀스런 행위가 들통났을 때 마리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생각보다도 내 마음 속 한 구석에 자리잡은 음란한 욕구가 나를 더 과감하게 만들고 있다. 마리가 스스로 위안하게 만들지 말고 나를 사용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다는 저열한 욕망. 이미 난 그녀와 똑같은 얼굴을 한 여인과 지난 밤 뜨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았는가. 그 때의 리사가 얼마나 뜨거운 몸을 가졌는지 새삼 깨닫지 않았나. 리사와 쌍둥이인 마리라고 내가 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겠는가.
뭔가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손을 뻗는다. 욕망이 날 이끈다. 손이 닿았다. 내 손가락이 마리의 어깨에 닿았다.
꺄악!
역시 마리의 목소리는 진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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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데이트 Route H 시작합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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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의 패턴
(A or B) 에서 A는 엔딩, B는 진행
(C or D) 에서 C는 엔딩, D는 진행
(E or F) 에서 E가 진행
(G or H) 에서 G는 엔딩
그런 고로 H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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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Q : 선영씨, 이제 검은 옷 안 입는데 그러면 속옷도 검은 색말고 다른 색인건가요? 무슨 색이세요?
선영 : 질문이 뭐 그딴 식이죠? 작가가 변태인가요, 이거?
Q : 아니, 그게 그러니까.... 답변을 좀....
선영 : 기분이 몹시 나쁘군요. 대답하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