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65)

키스는 길었다. 서로를 알고 있는 우리는 그다음의 순서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손으로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옷 위로 만져 나가던 내 눈에 문득 거실의 소파가 보였다. 불과 어젯밤, 필복의 손길에 농락당하던 지혜가 생각난다. 시선을 들어 벽을 바라보니 지혜의 웨딩사진이 보인다. 활짝 웃는 얼굴로 이 쪽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이름 모를 불편함이 느껴진다. 지혜의 몸을 밀어냈다.

미.....미안. 이러려고 찾아온 건 아니었어.

 아....

촉촉히 젖은 눈을 한 지혜가 원망하듯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애써 외면한다.

난 임필복의 뒤를 밟고 있었어. 네 집을 알게 된 것은 그놈이 이곳을 향했기 때문이야.

 그랬구나....

 그리고 미안하지만.... 어젯밤, 네 집을 훔쳐보고 있었어.

자리에 앉던 지혜의 동작이 우뚝 멈춰 선다. 

서...설마?

 밤에 그 자식의 차를 부숴놓은게 나야.

 그렇다면,

지혜는 테이블에 올려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뜨문뜨문 말을 꺼냈다.

보...봤어? 그....그걸?

그녀가 말하는 그것이란 필복의 추태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그 추태의 이면까지도. 난 시선을 떨군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지혜는 한참동안 얼굴을 싸맨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그녀의 손에 내 손을 얹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그 새끼를 처단할거야. 그러기 위해서 네 도움이 필요해.

 도움이라니?

난 어젯밤 내내 생각한 계획을 털어놓았다. 지혜는 처음에 반신반의하다가 결말 부분에 이르자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왜 말이 안 되지? 그놈도 날 죽이려고 했는데 말야.

 그래도.....

지혜를 설득하는 건 쉽지 않았다. 결국 이런 이야기까지 꺼내고 말았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니잖아.

 뭐?

 필복은 니 남편이랑 친분을 다지고 있어. 언제라도 니 주변에서 나타날 수 있다고. 앞으로도 계속.

 그건.... 그렇지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나의 거듭된 설득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다. 수화기를 들고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자기야? 으응........응..... 다른 게 아니라 효진이가...... 엉. 걔........ 오랜만에 귀국해서 이야기도 나눌 겸....... 어. 자고 올지도 몰라. 응? 어...... 그렇게 할게. 그래.

전화를 끊은 그녀는 내게 설명했다.

남편한테는 효진이 만나느라 늦게 올 거라고 이야기해 놨어.

 효진이?

반가운 이름이긴 했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좋아. 그러면 이제 필복에게 전화를 해.

 별로 내키지 않아.

 날 위해서 그리고 너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야.

지혜는 뭔가 결심한 얼굴이 되어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표정은 꽤 굳어 있었다.

여보세요? ...... 그래요. 나에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요........ 안 그래도 오늘 만나자고 전화했어요..........웃기지 마요.. 절대 당신이 생각하는......... 암튼, 알았어요.........나중에 다시 연락할게요.

수화기를 내던지다시피한 지혜는 다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나, 잘 하고 있는 걸까?

 그래. 내가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줄게.

 하아.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여쁜 이마가 좁혀진다.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한다.

너에게는 결코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 선에서 처리할게. 너무 걱정 마.

 날 걱정하는게 아냐.

 그러면? 남편이 걱정 돼? 물론 남편 일에는 좀 지장이 있을 수는 있겠지.

 그렇기도 하지만......

지혜는 날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가가 살짝 젖어있었다.

다소 어리숙하고 엉뚱하고 맨날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기나 하던 평범한 어떤 대학생 말이야. 그 애가 걱정된다고.

나에 대한 평가가 그러셨단 말이죠. 쳇. 지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랬던 니가...... 어떻게 하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

 죽다 살아났으니까.

평범한 말이지만 나의 지난 시간을 함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었다. 지혜는 몹시 울상이 되어서 내 손을 맞잡았다.

많이.... 아팠어?

 대부분의 기간은 의식 없이 누워있었으니까 그렇게 크게 힘들지도 않았어.

그건 거짓말이었다. 움직이지도 않는 몸을 움직이려고 애쓸 때, 재활을 위해 산을 타고 있을 때.... 매 순간 나는 살아있음을 고통을 통해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미안.... 내가 알았더라면 반드시 그냥 가만 있지는 않았을텐데.

나의 몸을 어루만지는 지혜의 손길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뭉클한 감정이 샘솟는다. 아까는 주저했지만 이제 내가 결심한 대로 일을 처리하고 나면 다시는 그녀를 볼 수도 없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녀를 안아주게 되었다. 내 손이 그녀의 가슴에 닿자 그녀가 다소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하....한석아.

 미안. 그렇지만..... 너를 한번만 더 느끼고 싶어.

 한석아....

거부하지 않는 그녀와 함께 침실로 향한다. 거실의 웨딩사진 앞에서는 도저히 그녀를 취할 수 없다. 널찍한 더블베드에 몸을 던진다. 끌어안고 서로의 입술을 찾아 헤맨다. 그녀의 셔츠를 벗기고 치마를 끌어내린다. 왠지 모르게 서두르게 된다. 이곳은 그녀의 공간, 아니, 그녀와 그녀 남편의 공간이었다. 그곳에 이물질처럼 끼어든 나라는 존재가 나 스스로 버겁다. 지혜의 손길에 의해 내 옷도 금세 벗겨진다. 태초의 모습처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양새가 된 우리 둘은 예전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는 몸짓으로 서로의 안으로 침식해 들어간다.

하아....하악.....

어린아이의 머리통만 한 크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혜의 가슴이 출렁이는 모양새가 미칠 듯이 꼴릿하다. 두 손으로 마구 움켜쥐고 얼굴을 파묻고 입을 가득 벌려 한 모금 베어 문다. 열흘 굶은 아이가 젖 달라고 보채는 모양새로 거칠게 달려드는 내 몸짓에 지혜는 급격하게 흥분하고 있었다. 내 뒤통수를 끌어안고 자신의 가슴에 마구 비벼댄다. 한 손은 그녀의 몸을 훑고 내려가 다리 사이의 습지로 파고든다. 홍수가 난 게 아닐까 싶은 그녀의 안으로 손가락이 비집고 들어간다.

하윽.... 하악....하아악...하악....

지혜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어쩔 수 없이 내 머리 속에는 두 남자가 떠오른다. 내가 그녀를 가지지 못한 동안 나 대신 그녀를 품었을 게 분명한 지혜의 남편. 그리고 치졸한 짓으로 지혜를 겁박하여 그녀를 올라탔을 임필복. 고개를 흔들어 그 생각을 애써 지워보지만 손길이 나도 모르게 험해지는 것은 나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하....한석아......

내가 침대에 눕고 그녀를 위로 올라타게 한다. 그녀의 엉덩이를 잡아 끌어 내 앞에 가져다 놓자 자연스럽게 그녀의 눈 앞에는 우뚝 선 내 자지가 위치하게 된다. 무슨 의도인지 알았다는 듯이 그녀는 두 손으로 내 물건을 움켜쥐고 서서히 입으로 집어삼킨다. 따뜻하면서도 끈적한 입의 감촉이 자지의 끝 부분을 자극한다. 쭈압거리는 소리를 내며 지혜가 내 물건을 빠는 동안 난 그녀의 비부에 코를 들이밀고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자지가 들어갔을 그곳을 핥아내어 깨끗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읍..... 거...거...거긴... 하읍......

내 혀가 본격적으로 그녀의 안쪽을 핥고 빨아대자 지혜는 입에 머금고 있던 자지를 제대로 빨지 못하고 두 손으로만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자꾸 내 애무를 피하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자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더러울텐데.....

 지혜의 보지인데.....뭐가 어때.

 꺅!

지혜가 엉덩이를 빼내어 자세를 바로 하더니 날 타고 올라와 볼을 꼬집는다.

그런 이상한 말 쓰지 마.

 이상하다니. 보지가 어디가 어때서. 넌 방금 전까지 내 자지 빨아놓고는.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늘어놓자 지혜가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이상하단 말야.

부끄러워 하는 지혜를 붙들어 눕히고는 그녀 위로 내 몸을 싣는다.

왜 이래, 다 아실만한 분이. 처녀도 아니고 아줌마가.

 너어~

 남편이랑 할 때는 그런 말 안 써?

 몰라. 그이 이야기는 하지마.

지혜의 다소 난감한 얼굴. 그 얼굴을 보니 더 괴롭혀주고 싶어지는 건 내가 못돼 처먹은 놈이라 그렇다.

왜? 이렇게 대낮에 딴 남자랑 놀아나는게 미안해서 그런거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니까.... 하악....

나의 비아냥거리는 말은 그녀의 폐부를 쑤시고 내 손가락은 그녀의 음부 위를 쑤신다.

그래도 어쩌나. 내 자지는 지금 지혜 보지 좋다고 쑤욱 들어가는데 말야. 응?

 하악... 모...몰라.... 그런 말.... 기분이 이상해.

아닌게 아니라 그녀의 안으로 들어간 자지는 예상외의 조임을 당하고 있었다. 은근히 지혜는 M기질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이상한데?

 모...몰라. 하악... 하악.....

그러고 보니 유부녀랑 하는 건 처음이구나. 알듯 모를듯한 야릇한 감정이 등줄기를 치고 올라간다. 남의 여자를 올라탄다는 배덕감에 자지가 부르르 떨릴 지경이다. 지혜의 보지를 사정없이 쑤시며 그녀가 부끄러워하는 소리를 계속 쏟아낸다.

니 보지가 엄청 조여.

 하악....하아아악....하악....

 내 자지 어때? 좋지? 응?

 모...몰라....하악....

 남편 자지랑 내 꺼 중에 어떤 게 좋아?

 흐읍.... 그런 말 하지마아...아악....

 내 자지가 좋다고 말해. 어서.

 한석이 꺼.... 좋아.... 하악.....

 한석이 뭐. 뭐냐고, 말해봐.

 하악....아응...하악....한석이 자지.... 아앙.....

박아서 쳐올릴 때마다 지혜의 커다란 가슴이 마치 공 튀듯 출렁거린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한가득 베어 물며 그녀의 안으로 깊숙이 사정했다. 내 쥬니어들이 강렬하게 그녀의 질 안으로 쏘아진다.

하악....하악.......

내 머리를 안고 있는 지혜의 품에 안겨 사정 후에 찾아오는 노곤함을 즐겼다. 가끔씩 혀를 내밀어 유두를 탐한다. 손가락으로 살짝 발기된 유두를 굴리고 손바닥으로 흘러내릴 것 같은 유방을 받쳐 들며 한 번씩 움켜쥔다.

난.... 못된 여자야.

지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에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본다.

지금 너한테 이렇게 안겨있으면서.... 느껴버리고 말았어. 난 규호 씨의 아내인데도....

 지혜야....

 난 나중에 벌받을 거야.

두 눈을 질끈 감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네 탓이 아냐.

다시 흐느끼기 시작하는 지혜를 끌어안는다. 사람과 사람이 알몸으로 끌어안고 있으면 서로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을까. 그녀의 슬픔을 느끼려 애써본다. 그러나 알몸의 여자를 안고 느껴지는 건 다시 무럭무럭 자라나는 자지 뿐이다. 지혜를 달래어 한 번 더 한다. 예전에 한번 받았던 젖 사이에 자지 끼우는 것도 했다. 남편한테도 해주냐고 괜히 물어 보았다가 한 대 맞았다.

한참동안이나 엉켜있던 우리는 몹시 아쉬워하며 떨어진다. 곧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타 장소물색에 나선다. 지혜의 집 자체가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있었기에 조금만 더 나가니 외딴 곳에 있는 모텔 같은 게 제법 보였다. 그 중에서 좀 허름하고 외진 곳에 있는 녀석으로 골라 주변을 살핀다. 뒤쪽으로는 야트막한 산이 하나 있고 주변은 죄다 논밭이다. 가끔 지나가다가 논밭만 있는 곳에 덩그러니 있는 모텔을 보면서 대체 저길 누가 가나 싶었는데 이렇게 내가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방 하나를 잡는다. 지혜가 필복에게 전화를 걸어 이곳의 위치를 알렸다. 둘이서만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으니 주변에는 알리지 말고 혼자 오라고 일렀다. 그녀가 전화를 끊는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좋아. 이젠 넌 돌아가.

 싫어.

 넌 굳이 있을 필요가 없단 말야.

 아니야. 나도 그놈의 끝을 보아야 겠어.

지혜의 표정은 결연했다. 그녀까지 말려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 말려보았지만 고집이 보통이 아니었다. 차에 미리 실어두었던 노끈과 야구방망이를 챙겨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다소 널찍한 방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둥근 침대에 앉아있다. 기분이 이상하다. 이젠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나는 기분이다. 지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나... 기분이 이상해.

 나도.

침대에 놓인 지혜의 손을 가만히 끌어다 맞잡았다. 그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그런걸 왜 생각해?

 난... 신문이나 뉴스에서 치정살인이니 뭐니 하며 나오는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나라 이야기같이 생각했거든.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러고 있다고?

 응.

살해할 대상이 오길 기다리면서 두 명의 예비살인자는 떨고 있었다. 솔직히, 나도 제정신이 아닌 기분이다.

처음에는 좀 떠들썩하겠지. 그렇지만 금방 또 잊혀질거야.

 그럴까?

모텔 방에 여자와 단둘이 있는 거였지만 야한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전혀 다른 느낌의 미친 흥분이 내 신경을 곤두서게 하고 있었고 지혜는 지혜 나름대로 침울한 표정이었다.

똑- 똑-

지혜와 내가 서로를 쳐다 본다. 놈이 왔다!

노끈을 손에 감는다. 양 손에 적당히 감은 다음 팽팽하게 잡아당겨 본다. 지혜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마주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나는 한쪽 벽으로 비껴섰다.

누구세요?

 나다. 니 서방.

필복의 목소리였다. 지혜가 문을 연다. 문이 열리자마자 놈은 지혜를 와락 끌어안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흐흐. 니 년이 이젠 내 좆맛을 인정한 게로구나. 알아서 자리잡고 부르기까지 하는 걸 보면.

 이거 놔요.

 여기까지 불러놓고 앙탈이야?

입을 주욱 내밀는 녀석의 얼굴을 지혜가 가까스로 밀어낸다. 

일단 안으로 들어와요.

지혜의 인도를 따라 녀석이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난 머리 속에서 수만번도 더 연습한대로 놈의 등 뒤에서 와락 달려들어 녀석의 목을 노끈으로 걸었다.

이게 뭐.... 커억!!!

뒤를 돌아볼 틈을 주지않고 팔에 힘을 주었다. 바짝 당긴 줄로 녀석의 목을 졸라댄다. 지혜는 이쪽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엑스자로 교차한 팔꿈치로 녀석의 등을 누르면서 줄에 걸리는 장력을 더욱 팽팽하게 한다. 손으로 끈을 어찌해보려고 버둥거리는 놈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이었다. 녀석보단 내가 키가 있으니 녀석을 들어올려 버린다면 좋으련만 그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람의 무게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거기다 가만있지 않으니 양손에 걸리는 부하는 장난이 아니다. 녀석은 미친듯이 발을 마구 휘둘러댄다. 그러다가 테이블에 발이 닿자 녀석은 그것을 딛고 몸을 뒤로 한껏 밀어낸다. 예상치 못한 반격에 뒤로 밀려난 내가 줄을 놓치고 말았다. 아뿔싸!

커억.... 컥.... 이게 대체....

내게서 튕겨져 나가다시피한 놈의 동작은 굉장히 잽쌌다. 짧달막하고 배 나온 아저씨의 동작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몸을 굽혀 테이블 위의 재떨이를 집어든다. 그것을 치켜들고 내쪽을 향해 집어 던졌다. 급히 몸을 숙였다.

꺄악!!!

지혜의 비명과 동시에 사기로 된 재떨이가 내 머리 위의 벽을 맞고 팍- 하며 깨져나간다. 산산조각이 되어 비산한 파편이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손으로 대충 머리 위를 가리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놈이 달려오는게 보인다. 반격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녀석이 집어들고 휘두른 스탠드 조명이 내 허리에 작렬했다. 

으아악!!!

욱씬거림이 전신으로 퍼져나가 똑바로 설 수가 없다. 허리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간신히 일어서려는데 재차 달려드는 필복의 발길질이 내 얼굴을 강타했다.

꺄아아악!!!

지혜가 내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코에 제대로 맞았는지 뜨끈한 기운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지난 한달간의 지옥훈련은 내 몸을 회복시켜주었지만 이런 충격까지 견디게 만들어 주진 못한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필복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날카롭고 기세가 매서웠다.

누군가 했더니 네 놈이었군. 뒈져버린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나?

 그래. 니 놈을 죽이기 전에는 못 죽지.

코피가 역류하여 입안에 피가 고였다. 퉤- 하고 뱉어낸다.

그래? 그럼 죽여봐라. 그게 쉽게 되면 말야.

안정된 자세의 필복이었다. 이 새끼. 뭐라도 배운 놈인가. 일단 이렇게 된거 이판사판이었다. 손을 뻗어 짚이는 대로 냅다 집어던지고는 놈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필복은 나의 주먹을 흘려보내고 그대로 내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커억!!!!

폐가 입으로 튀어나와 버리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재차 이어지는 펀치는 빠짐없이 내 얼굴을 강타한다. 지혜가 달려들어 필복을 뒤에서 끌어안아 간신히 공격이 멈출 때까지 내 얼굴에는 소나기 펀치가 차례로 떨어졌다.

이 씨발년이.... 니 년도 작당을 해?!

 꺄악!!

녀석이 어떻게 후려쳤는지 몰라도 난폭한 소리와 함께 지혜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벽에 기대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느라 그 모습이 보이지도 않았다. 녀석이 내게 다가와 내 허벅지를 짓누르는게 느껴졌다.

으으아아악악!!!

잘근잘근 내 다리를 밟아버리는 녀석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가 없었다. 녀석의 다리를 붙드는게 고작이다. 필복은 코웃음치며 말했다.

이 씹새야. 예전에 니 놈의 럭키펀치가 지금도 통할 줄 알았어? 누가 누굴 죽여?

 크윽!! 더러운 새끼! 나가 뒈져!

욕을 해보아도 돌아오는 건 무자비한 발길질 뿐이었다. 얼얼해진 턱을 붙들고 바닥에 나뒹군다. 녀석은 내게 다가와 내 배를 툭툭 차며 말했다.

안 되겠네. 지혜 이 년이 빨통이 죽여주는 년이라 좀 더 데리고 놀려고 했는데 이딴 식으로 나오면 나도 곤란하지. 빨리 남편에게 까발리고 털어버리든가 해야지 안 되겠다.

 아...안 돼....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지혜의 행복을 지켜주기는 커녕 이렇게 파토를 내고 마는 건가. 절망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패배감이 나를 굴복시킨다. 방 저편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지혜의 모습이 너무도 미안해서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지혜는 좀 따먹고 갈까? 애인 놈이 보는데서 따먹는 것도 각별한 재미가 있겠군 그래.

필복이 나를 질질 끌고가더니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노끈으로 내 팔과 다리를 의자에 단단히 묶었다. 저항하거나 벗어나고 싶었지만 녀석에게 두들겨 맞은 데미지는 그리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이리와, 쌍년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녀석이 지혜의 머리채를 붙잡고 질질 끌고 가 침대로 던져버리는 장면을 차마 계속 볼 수가 없다. 옷이 찢겨지는 소리에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문다. 어느덧 정신을 차린 지혜가 극렬히 저항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필복의 난폭한 주먹 뿐이었다.

으허허엉.... 놔... 이 나쁜 자식아... 죽어버려!!

 왜? 니 젊은 애인 놈 좆이 아니라서 실망이야? 응?

필복이 허리띠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일단 박아놓으면 질질 싸댈 년이 앙탈은.....

그 때 삐리리리- 하는 전자음이 났다. 필복은 벗으려던 바지를 주섬거리며 투덜거렸다.

아, 씨발. 이럴 때 전화야. 전화는....

필복은 흐느끼는 지혜에게 조용하라고 윽박지르고는 품안에서 휴대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여보세요....... 이봐.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해!

필복은 플립을 닫고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집어던졌다. 

기분 잡치게 시리.....

바로 다음 순간, 무언가 벼락같은 소리가 난다. 고개를 들고 바라보는 내 눈앞에 마치 영화 속에서 느린 화면으로 무언가 지나가듯 문이 떨어져 나갔다. 문짝에서 떨어져 나간 문이 방안으로 날려들어온다.

뭐...뭐야!

당황한 필복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떤 한줄기 검은 바람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필복을 박차고 지나간다. 그렇다. 그 모습은 도저히 사람의 속도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바람처럼 느껴질 정도의 스피드다. 바람은 그대로 필복을 몇 번 차서 떨구더니 녀석의 팔 하나를 잡고 무슨 장작 쪼개듯이 무릎에 대고 구부린다. 단단한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난다. 사람의 생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이런 소리인가. 귀를 틀어막고 싶지만 팔을 들어올릴 기운이 없다.

끄아악!!!

기괴한 모양으로 꺾여진 자신의 팔을 바라보며 필복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녀석과는 전혀 반대의 입장인 나로서는 방금 등장한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기쁨의 함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예린!!!!

그녀는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필복을 내려보며 서 있다가 얼굴을 내쪽으로 돌려 고개만 까딱거린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냐. 정말.... 고마워.

고맙고 미안했다. 이런 순간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녀가 고마웠고 지난 아침 그렇게 그녀를 두고 혼자 떠나와서 미안했다.

너는 또 뭐야?!

 나?

바닥에 앉은 채로 뒷걸음치던 필복은 등이 벽에 막히자 더는 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예린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놈에게 다가갔다.

난 말이지, 이 분의 수행원이야. 내가 그 분의 곁을 잠시 비운 사이에 네 놈이 내 소중한 님께 참 많은 짓을 했다고 하더군.

 내...내가 뭘!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예린은 필복의 다리 위로 올라탔다. 무릎으로 녀석의 허벅지를 단단히 조여놓고 손을 뻗어 녀석의 성한 팔의 손목을 잡더니 손가락 하나를 꺾었다.

일단 하나.

 끄아아아악!!!

무언가 손꼽아 셀 때는 손가락을 안쪽으로 접지 않나? 예린이 그걸 착각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차로 치었고.

 끄윽....그...그만해.....

 그리고 두울.

 으아아악!!

내가 귀를 다 틀어막고 싶을 지경의 비명이었다. 다 큰 어른이 어린 아이처럼 눈물콧물 흘려가며 비명을 지르는 광경은 결코 유쾌한 게 아니었다. 

저 분이 아끼는 사람을 괴롭혔으며....

 제....제발......

 마지막으로 세엣.

 끄아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나도 고개를 돌려버렸다. 셋이라고 남은 세 개를 한꺼번에 꺾을 필요는 없잖아. 예린!!!

이렇게 상처를 입혔겠다.

 으허허어엉... 제발.... 제발.... 선생님.... 살려주십쇼......

필복의 몸은 축 늘어질대로 늘어졌지만 한쪽 팔만은 예린에게 붙들린 채였다. 예린은 놈의 팔을 놓아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 다가와 줄을 풀어주고는 입고 있는 자켓을 벗어 침대에서 벌벌 떨고 있는 지혜에게 덮어준다. 지혜는 겁먹은 얼굴로 나와 예린을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괜찮아. 우리 편이야.

다리를 절뚝거리며 예린의 곁에 섰다. 예린이 나를 부축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아냐. 내가 고집을 부렸는데, 뭘.

기운만 있다면 예린를 업고서라도 동네 한 바퀴를 돌았을 테다. 고마운 사람은 나인데 예린은 못내 미안해한다. 그녀의 등을 한번 두드려주고 필복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벽에 기댄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던 그는 내 시선을 느끼자 무릎으로 기어오며 내게 매달렸다. 

이보게, 동생.... 아니, 사장님. 제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요.

 왜? 아까 하려던 거 마저하지 그래.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다시는! 사장님께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요! 네에?

 나말고, 니가 접근하지 말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시는 지혜 근처에도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팔로 애써 엎드려 머리를 쿵쿵 찧으며 비는 꼴이 우스웠다.

어떻게 할까요? 마저 처리할까요?

예린이 스윽 나서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이야기한다. 점심 때 먹다 남은 찬 밥은 어떻게 먹을까요 물어보는 말투다. 그러자 사색이 된 필복이 더더욱 내게 매달린다.

사장님. 제발.... 제발.... 이 분에게 말씀 좀 잘 드려서.....

그 꼴을 보고 있노라니 이런 놈을 죽이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허무해졌다. 난 발로 녀석을 살짝 밀어버리고 지혜 쪽을 돌아보았다.

너한테 다시는 접근 안 한다는 다짐만 받고 살려보낼까, 아니면 그냥 여기서 죽일까?

필복이 울부짖느라 방안이 좀 시끄러웠다. 예린이 그 놈을 발로 차서 조용히 시키는 동안 지혜는 필복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날, 그놈과의 옛 일을 떠올리는 걸까. 아니면 치욕스러웠던 시간을 떠올리는 걸까. 나로선 알 수 없다. 대체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 한참동안 있던 지혜는 고개를 들어 날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젓는다.

다짐만 받아. 나....나도 한때는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아까.... 너무 끔찍했어.

아까라고 한다면 예린의 숫자세기 놀이를 말하는 거겠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게 그 정도로 끔찍한데 하물며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니. 불과 얼마전까지 내가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 자체도 어처구니가 없다. 난 예린에게 말했다.

죽이지는 말자. 정신을 차리면 다시는 안 그러겠지.

 정 그러시다면 보험만 하나 들어두겠습니다.

 보험?

예린은 한 쪽 다리를 꿇고 앉아 필복과 마주했다. 

임승현. 맞지?

 그....그걸 어떻게!!!

필복의 울음이 뚝 그쳤다. 임승현? 누구지? 우는 아이 달래는 곶감 브랜드인가?

데리고 있는 애들중에서 여자 ?u치는 걸로 하도 감방에 많이 들어가 취직이 안 되는 놈이 하나 있어.

예린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지만 필복의 귀에 똑똑히 꽂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필복은 지금 필사적으로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놈에게 내가 일을 줬지. 하루 종일 임승현 뒤를 쫓아다니는 게 이제부터 그 놈 직업이야. 아침 일찍 영어학원 나가느라 새벽, 그 아무도 없는 시간에 집을 나서고 저녁에는 무슨 동아리인가 다니느라 밤 늦게 온다면서? 그렇게 에쁘게 생긴 아가씨가 혼자 다녀서야 되겠어? 그래서 그놈이 눈 떼지 않고 잘 따라다니면 내가 월급을 주지. 그런데 내가 잠시 신경을 안 쓰면 그놈이 과연 어떤 짓을 할지, 난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넌 알겠어?

 승현이 걔만은 제발.....

두 손 모아 싹싹 비는 필복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에린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니 딸년이 소중하면, 너부터 똑바로 하는게 좋아.

 여...여부가 있겠습니까....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필복을 보고 있노라니 참 허무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 딸이 그렇게 소중하다는 걸 아는 녀석이 지혜에게 그런 짓을 해? 역겨움에 토할 것 같다. 이대로 땅파고 들어가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저자세인 필복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는 지혜를 데리고 방을 나선다. 예린은 바닥에 떨어진 문을 줍더니 문틀에 기대어 세워놓았다. 그렇게 문을 닫기 전 방바닥에 앉아있는 필복에게 한 마디를 더 남겼다.

그리고 대물물산. 조금 있으면 자금 회수에 들어가니까 부도내기 싫으면 빨리 회사로 가보는게 좋을 거야.

 네에?

필복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지만 예린은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이제 저 새끼를 볼 일은 두 번 다시 없겠군. 확실히. 뒤에서 들려오는 저 비명은 숫제 지옥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

*

다음 편에 엔딩. 그리고 새로운 선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