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65)

서울을 벗어나서 한참을 달린다. 한 시간 정도 국도로 달리다가 휴게소에서 차를 세웠다. 효진이 말로는 평소 같으면 두 시간 정도면 충분히 갈 거리인데 주말에는 차가 많이 밀린단다.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씩 시킨다. 효진에게 왜 자주 안 왔느냐고 묻자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지혜도 없는데 내가 뭐하러?라며 반문한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한숨을 푸욱 내쉬고 있노라니 효진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내 등을 두드린다.

보고 싶으면 연락하지 그랬어? 어휴~ 우리 한석 군. 이 누나가 보고 시퍼쪄여?

 놔라. 내가 니가 왜 보고 싶냐. 그리고 연락처도 모른다고.

 어라? 내가 안 가르쳐 줬던가?

그제야 펜을 하나 꺼내더니 냅킨에다가 자기 꺼라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하나 적어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라면 몹시 바쁘게 비즈니스 하시는 분들이나 들고 다니는 거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꽤 대중화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언젠가 개나 소나 다 휴대전화를 들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효진은 메모를 건네주며 말했다.

연락처를 물어보지 그랬어.

 말을 할래도 니가 또 안 왔잖아.

 아, 그렇지.

효진은 무슨 상관이냐면서 대충 웃고 넘긴다. 그럼, 그렇지. 이 녀석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다. 이 녀석이라면 자기 친구 청첩장만 이런 식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기 결혼식 때가 되어도 뜬금없이 문 앞에다 청첩장만 떨렁 던져놓고 가고도 남을 녀석이다. 그게 아니면 지 결혼식에 날 부르지도 않아놓고 나중에 가서 야, 니 왜 안 와?라며 따질지도 모를 녀석이다. 어떻게 보면 마리보다 더한 벽창호라면 벽창호다. 마이 페이스의 지존이랄까. 더 이야기해보았자 속만 탈 것 같아 화제를 돌린다.

근데 저건 웬 차야? 게다가 외제차잖아. 저건.

 저건 오빠 차야. 내 차는 수리 중이라서 말야. 아빠는 차를 안 빌려준다 그러고.

효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무심하게 아이스 커피를 빨대로 쪽쪽 거리며 여상스럽게 대꾸한다. 니 차는 또 따로 있었습니까? 게다가 아빠 차나 오빠 차라니. 어째 이 녀석 평소 하고 다니던 꼬라지하고는 전혀 안 어울리게 집이 좀 사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오늘 입은 차림새는 평상시와는 다르게 좀 세련되어 보이기도 하고.

자자, 그럼 얼른 출발하자. 춘천 접어들면 또 한참 막혀.

출발 직전 효진은 나에게 면허가 있냐고 묻더니 그렇다고 대답하자 곧바로 운전을 내맡긴다. 자기는 뒷자리에 가서 쿨쿨 자 버린다. 코까지 골면서 말이다. 난데없이 생전 처음으로 해보는 외제차 운전이라 처음에는 긴장했지만, 나중에는 별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조수석에 앉은 마리는 아까 효진이랑 있을 때와는 영 딴판으로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다. 평소같으면 자기 하고 싶은 말로만 적어도 수백마디는 하고도 남았을 녀석인데 그러고 있으니 꼭 다른 사람 같다. 어째 아까 휴게소에서도 조용하더라니.

효진의 예상대로 춘천에 접어들기 시작하자 차가 제법 밀리기 시작했다. 청첩장 약도에 따르면 결혼식장은 춘천시청 근처였다. 이정표로 보면 이제 몇 킬로미터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차가 좀처럼 나가질 않았다. 정체되고 있는 틈에 마리를 불러본다.

마리야.

 .......

대답이 없다. 조금 힘주어 다시 불러본다.

어이, 김마리.

 ......와예.

뾰로퉁한 대답이 돌아온다. 힐끔 보니 입이 이만큼이나 나와있다. 

왜 그렇게 심통이 나 있어?

 제가 뭘예?

 그렇잖아. 평소와는 다르게 얌전하고....

 핫. 지는 얌전하믄 안 됩니꺼? 언니맨치로 얌전하면 또 누가 이쁘게 볼란지 누가 압니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심각한 표정의 마리를 옆에 두고 웃으면 좀 미안할 것 같아서 간신히 입을 틀어막기는 했는데 그 전에 새어나온 웃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마리는 그게 더 부아가 나는 모양이다.

짐 웃었어여? 남은 마, 속이 확 디비지는데 여서 웃고 막 그랍니꺼!

 푸하하하하.

결국은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하고 만다. 볼을 부풀리고 씩씩거리는 마리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더 웃겨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 시선을 앞으로만 유지한다. 길이 좀 뚫린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니 서서히 미끄러져 나가면서 차가 굴러간다. 그러다 또 금새 정체되고 만다.

아아, 미안. 비웃는건 아냐. 정말 마리 모습이 웃겨서 그래. 귀엽기도 하고.

 증말 못됐꾸루.....

터지기 직전의 풍선에서 김이 새어나가는 것처럼 마리는 한숨을 푹 내쉰다. 뭐라고 한참 꿍시렁거리는데 반 수 이상은 못 알아먹겠다. 그저 오른손을 뻗어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어째 내가 미안해야 되는거 같기는 한데.... 일단 네 언니랑 나 사이는 문제잖아.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지 성격대로라면 내 손을 물어뜯었을 법도 한데 다행히도 마리는 얌전히 있었다. 녀석은 시트에 몸을 묻으며 중얼거렸다.

언니야랑 내랑은 그렇게 착 분리가 안 되니까 그라지요.....

 뭔 소리야, 그게?

 선배님은 몰라도 됩니더. 그런게 있어예.

알쏭달쏭한 소리였지만 그 사이 시내에 완전히 진입했기에 운전에만 집중해야 했다. 효진을 불러 깨우고는 길안내를 시킨다. 초행길이라 헤매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별 문제없이 결혼식장에 도착했다. 식이 시작하려면 아직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대고 식장으로 올라간다.

결혼식장은 꽤나 복잡했다. 단일 식장인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홀에 사람이 꽉 차 있었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효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리의 손을 잡고 따라간다. 효진이가 신부측으로 가더니 한 아주머니와 정답게 인사를 나눈다. 지혜의 어머니인 모양이다. 효진이가 나와 마리 쪽을 보고 친구들이라고 소개한다. 엉겁결에 인사를 한다. 지혜의 눈매는 어머니를 닮은 모양이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서 낯익은 느낌을 받는다. 지혜 어머니는 우리에게 와줘서 고맙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고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다른 쪽을 향했다. 

효진이가 접수처에 축의금 봉투를 낸다. 미처 준비를 안한 내가 돈을 찾아와야 되나 어쩌나 하고 있는데 문득 내 정장 안주머니에서 바스락거리던 무언가가 생각난다. 손을 넣어 꺼내보고는 리사의 철저함에 다시 한번 웃어버렸다. 하얀 봉투에 앞면에는 祝 華婚이라고 씌여있었고 뒷면을 보니 우측 하단에 내 이름과 리사의 이름이 세로로 나란히 씌여있다. 마리도 자기 몫을 따로 준비해온 것을 내기에 별 수 없이 리사가 준비해 놓은 봉투를 신부측에 낸다. 나중에라도 지혜가 저 봉투를 보게 되면 내 이름과 나란히 씌여있는 리사 이름을 보게 되겠지. 하아. 리사. 넌 정말 대단하구나.

신부 보러 가야지.

 그럴까예?

효진이가 마리를 데리고 신부대기실로 향한다. 나도 따라 가야하나 멍하니 있다가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 차 있는 이 곳에서 그나마 아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는게 낫다 싶어서 그쪽으로 향한다. 발걸음을 돌리기 전에 식장 입구에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고 있는 이의 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본다. 말쑥하게 넘긴 머리카락과 제비꼬리 같은 연미복을 입은 이라면 당연히 신랑이겠지. 얼굴만으로도 꽤나 사람 좋게 생긴 녀석이었다. 못 생겼으면 그걸로나마 위안을 삼았을텐데.... 쳇.

꺄아~ 언니 너무 예뻐요.

신부대기실에 가까워지니 아니나 다를까. 주변의 소음을 제압하고도 남을 마리의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려온다. 트인 입구 옆에 있는 기둥을 돌아들어가 안으로 들어간다. 신데렐라 이야기에 나오는 호박마차를 연상시키는 둥그렇게 생긴 방, 그 가운데 얌전히 앉아있는 지혜의 모습이 보인다. 하얗고 순결하니 몹시도 눈부신 4월의 신부였다. 다른 사람들의 인사를 받느라 정신이 없던 지혜가 나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와줬구나? 고마워.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지혜는 너무도 밝게 웃으면서 맞아주었다.

너무 웃으면 딸 낳는다는데?

고작 이런 소리밖에 못 하겠다. 나란 남자.... 허이구.

안 그래도 딸 낳으려고 지금 계속 웃는 중이야. 도우미 언니가 웃으면 얼굴 땡겨서 화장 잘 안 먹는다고 웃지 말라는데도 말야.

방에 있는 사람들 모두 지혜의 대답에 웃어버렸다. 나도 웃어버린다. 효진과 마리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어서 지혜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 했다. 내가 들어오고 또 얼마 안 되어서는 사진사까지 들어와 조명 들이대고 사진찍는 통에 밀려나다시피하여 대기실에서 나와버린다. 하긴 무슨 말을 하겠는가. 이제는 남의 여자가 될 사람인데 말이다. 효진이랑 마리는 지혜와 함께 사진까지 찍고 나온다. 나도 찍으라고 권했지만 사양했다. 무엇보다 사진은 기록으로 남을텐데 그런 건 원치 않는다. 

잠시 후 장내방송이 나와 식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린다. 양측 어머님가 입장하고 바로 그 뒤에는 신랑과 지혜가 나란히 서서 기다리고 있다. 지혜는 아버지가 안 계실테니 동반입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등이 가득 파인 지혜의 웨딩드레스를 보며, 정말 엉뚱하게도 난 그녀의 알몸을 떠올리고 있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여자랑 하던 그날 밤. 내 위에 올라타던 그녀. 내 밑에서 신음하던 그녀. 내 물건을 입에 물던 그녀. 내 정액을 가득 쌌던 그녀의 뜨거운 안쪽까지..... 젠장. 내가 이렇게나 변태스러운 놈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의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상대로 음란한 상상이나 하고 있다니. 아니... 상상이 아니라 회상이라고 해야 하나. 으아아. 머리를 흔들어 끈적한 생각을 털어내려고 애쓴다. 옆에 서 있던 마리가 나를 이상하게 쳐다본다.

멀미하십니꺼?

 ......비슷하다.

신랑 신부입장이 끝나고 주례사가 시작되면서 난 식장을 나왔다. 마리가 따라오려고 했지만 효진이랑 사진까지 찍고 오라고 돌려보냈다. 건물을 나와 바깥 공기를 좀 쐬고 있노라니 맞은 편에 편의점이 하나 보인다. 길을 건넌다. 한참 망설이다가 음료수 하나, 담배 한 갑과 라이터 하나를 샀다. 편의점 앞에 있는 간이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인다. 

크음. 크음....큼.

역시 담배는 나랑 맞지 않는다. 신입생 때 술 잔뜩 마시고 멋모르고 몇 모금 빨아보았지만 입맛만 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런 시츄에이션에 이런 포지션에서는 담배 하나 물어줘야 모양새가 맞을 것 같다. 현실은 전혀 폼이 안 나지만 말이다. 몇 모금 빨기도 전에 꺼버린다. 담배갑도 버려버릴까 하다가 나중에 담배피는 후배나 만나면 줘야겠다는 생각에 대충 넣어둔다. 

라이타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면서 멍하니 맞은 편에 있는 결혼식장만 보고 있다. 음료수를 홀짝이면서 생각한다. 주례 끝나고 신혼부부 행진하고 사진 찍고.... 이러면 대충 30분은 넘게 걸릴테다.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하며 시간을 때운다. 이쯤이면 되었겠지하고 생각하고 일어나려는데 맞은 편 길에 웬 중형차 하나가 불법주차를 한다. 처음에는 별 신경을 안 쓰고 지나가려다가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보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대체 저 인간이 여길 어떻게.....?

눈을 비비고 다시 본다. 하필 이럴 때 지나가는 차들이 많아 건너기가 곤란하다. 녀석이 건물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황급히 2층 식장으로 올라갔지만 찾을 수 없었다. 식이 방금 끝났는지 사람들이 왁자지껄하게 쏟아나오고 있다.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 하는 곳이라 사람 하나 찾는게 쉬울리 없다. 그래도 확인해야 한다. 마음이 다급해졌다. 홀을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잘못 본 건가.

야, 여기서 뭐해. 한참 찾았잖아.

어느 샌가 나타난 효진이가 내 팔을 잡고 이끈다. 마리도 같이 있다. 효진이가 내게 빠르게 설명했다.

지혜는 폐백하러 갔어. 이따 나가는 것도 보고 싶기는 한데 지금 오빠한테 전화와서는 빨리 차 가져오라고 성화거든. 지금 바로 서울 가야 해.

 그....그래?

 미안하게 됐다. 모처럼 간만에 춘천왔으니 구경도 좀 하다가 닭갈비도 먹고 갈까 했는데 말야. 오빠가 하도 지랄맞아서.....

 그러냐.

아무리 오빠가 그러더라도 지랄이 뭐냐. 지랄이. 에휴.

넌 어떻게 할래? 마리랑 춘천에서 좀 놀다 올거야? 아니면 나랑 지금 바로 올라갈래?

 글쎄다.

마리를 돌아보니 마리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하겠단다.

어차피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다. 지혜에게 이미 인사는 했고 더 이상 볼 일도, 만날 일도 없다. 그렇지만 아까 본 그 인간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잘못 본 건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 빨리 결정하라고 재촉하는 효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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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 춘천에서 좀 더 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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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 지금 바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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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여러분의 선택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전 일주일동안 잠수함을 타고 다녀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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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의 루트 진행

[ 데이트 첫 날 ~ 더블 데이트 ] 공통루트 

Route A : 이명희 노말 엔딩 

Route B : 공통 진행

 Route C : 이명희 배드 엔딩 

Route D : 공통 진행

 Route E : 공통 진행 

Route F : [선택 안됨]

 Route G : [선택 대기중]

 Route H : [선택 대기중]

그러니 메인이야기는 공통루트에서 시작해서 Route B, D, E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이러다가 Z 까지 가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렇게까지 쓸 생각은 없구요.

 현재까지의 예상으로는 L 정도에서 혹은 플러스 마이너스 2 정도 내에서 

모든 루트가 완성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느덧 설정노트를 꽉꽉 채워가며 올해의 프로젝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계속 길어지는 이야기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분도 계시고

 흐름상 중복, 반복되는 이야기에 짜증을 내는 분도 있으며

 전개나 설정이 말도 안 된다며 비난을 하시는 분도 없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배드 엔딩 한번 썼다가 ㅄ이냐는 소리까지 들었었죠. 허이구. 여기에 대한 제 대답은요.... ( 그냥 읽지 마라 )

그러나 항상 댓글 달아주시고 쪽지 보내주시며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삼분의 일에서 절반 정도까지는 온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꿋꿋하게 적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태까지의 스토리 요약 

(데이트 첫 날, 다시 데이트 첫 날, Route B와 Route D, Route E 거쳐서 현재까지)

대학생 최한석은 우연한 기회에 이명희와의 소개팅에 나갔다가 명희는 못 만나고 김지혜를 만나서 관계를 맺는다. 지혜는 한석의 맞은 편 집으로 이사를 오고 한석은 지혜의 친구 효진과도 관계를 맺는다. 한석은 지혜에게 고백하지만 지혜는 곧 결혼하게 된다며 그를 퇴짜놓는다. 그리고 바로 얼마 후에 지혜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버린다. 명희와도 좋은 관계가 되려나 싶었는데 몇 번 엇갈리고 나서 다시는 만나지 못한다.

한편 한석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과외를 하는데 과외를 받는 여학생의 이름은 진유진. 엄마의 이름은 진유미. 그리고 유진을 끔찍히 아끼는 언니 한선영이 있다. 유미와 선영은 ROSE라는 룸살롱에서 일한다. 지혜에게 차이고 그 분풀이를 ROSE에서 하다가 선영에게 덜미가 잡혀 손해금액 변제 대신 선영을 과외하기로 한다.

또한 한석은 올해 신입생 중에서 특이한 녀석을 알게 되는데 그녀의 이름은 김마리. 그녀와 쌍둥이 언니인 김리사와 리사의 수행원인 성예린은 한석의 맞은 편 집으로 이사를 온다. 여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리사의 말에 한석은 지혜에게 연락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한석은 지혜를 연락처를 알지 못해 연락을 하지 못한다.

개강을 하고 나서 마리와 항상 붙어다니던 한석은 유진이가 부속고등학교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예전에 선영의 집에 있던 모습을 들킨 여자아이가 유진이 친구 양소란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또한, 우연한 기회에 리사와 놀이공원에서 데이트를 갖는다. 한석의 생일을 앞두고 어머니가 상경을 하게 되어 리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는다. 옛 팝송을 듣고 눈물을 보인 어머니에게서 예전에 집나간 이모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한석의 생일파티에서 술을 마시게 된 유진을 집에까지 데려다줬는데 다음날 연락을 해보니 유진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그래서 한석은 당장 수업도 제쳐놓고 유진에게 간다. 거기서 유진의 반나신을 보게 되고 그녀를 간호한다. 후에 선영이 찾아와 한석에게 제의를 한다. 자신의 몸을 제공하는 대신 유진을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한다. 그리하여 선영과 관계를 갖는다. 나중에 선영의 검은 옷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육체적으로 그녀와 좀 더 친밀해진다.

한편, 한석은 자신에게 잘해주는 앞집 리사에게 호감을 갖게 되는데 그녀 역시 한석에게 호감을 표한다. 교생실습을 앞두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던 한석은 리사가 원하는 대로 하루 동안 애인이 되어 그녀와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다음 날, 리사는 자신의 일 때문에 부산으로 내려가고 그동안 감춰두었던 지혜의 청첩장을 전해준다. 한석은 마리와 함께 효진을 만나 결혼식이 있는 춘천으로 향한다. 지혜와의 어색하고 짧은 만남이 지나고 한석은 결혼식장에서 의외의 사람을 발견한다.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효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한석은 좀 더 춘천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러면 이제, 더블 데이트 Route G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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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나는 춘천 구경 좀 더 하다 올라갈게. 먼저 가라.

 그래? 괜찮겠어?

 응.

몹시도 쿨한 효진은 알았다고 대답한 후 더는 권하지 않았다. 그녀는 마리와 인사를 나누곤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일단 내려가 효진이가 차에 올라 타 출발하는 것을 배웅하고는 다시 식장을 올려다 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놈은 분명 여기로 들어갔다.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물도 아니니 분명 여기 지혜 결혼식에 볼일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지만 대체 그 녀석이 왜 나타났는지는 도무지 모르겠다. 불길한 예감만이 뇌리를 스칠 뿐이었다.

선배님예.....

마리의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다. 돌아보니 마리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지는 춘천이 처음이라가.... 아무래도 선배님이 하자는 대로 하겠심더.

 뭘 해?

 .......뭐든지예.

대체 얼굴은 왜 붉히는 건지 모르겠다. 녀석의 반응을 신경쓰고 있기에는 저 위에서의 일이 너무 신경 쓰인다. 나는 마리의 어깨를 짚었다. 고작 어깨를 짚은 것 뿐인데 녀석이 화들짝 놀란다. 이 녀석은 아까부터 왜 이렇게 깜짝깜짝 잘 놀라는 걸까.

일단 내가 저 위에서 확인할 게 있거든? 올라가서 확인 좀 하고 올테니까 여기서 좀 기다려줄래?

 확인이예? 뭔 확인을 합니꺼? 다 끝났는데예.

 그런게 있어.

설명하자면 너무 복잡하고 길다. 게다가 지혜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라 이 녀석에게 함부로 털어놓기도 곤란하다. 

오래 걸립니꺼?

 글쎄. 그렇지만 그렇게 오래는 안 걸릴꺼야.

난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이 녀석은 왜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가며 비협조적인지 모르겠다. 녀석은 한참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표정이 점점 굳는다. 잠시 후, 마리는 뭔가 알겠다는 듯이 입을 삐죽 거리며 따지듯이 말한다.

지혜 언니야 땜에 그러지예? 맞지예?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해.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마리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알았심더. 지가 마 예서 딱 십분만 기다릴 겁니데이. 10분만 지나뿔면 뭐가 됐든 지는 확 가뿌릴랍니다.

 알았어. 십분만!

간신히 마리의 협조를 얻어내고 계단을 한 걸음에 달려 성큼성큼 식장으로 올라간다. 홀에서 사람이 제법 빠지고 있었다. 우루루 빠져 나가는 사람들 중에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일단 아까 식당을 체크하지 않았던 게 생각난다. 식당은 하필 또 윗층이다. 다시 뛰어올라간다. 넓은 연회장은 아까 식 시작 직전의 홀만큼이나 시끌벅적했다. 여기 사람들은 결혼식에 와서 식당에서 아예 뽕을 뽑나 보다.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게 조금 있다 파하는 분위기라기 보단 이제부터 막 달리려는 분위기 같다. 한 바퀴 돌아보았지만 역시 놈은 보이지 않았다. 

제길. 대체 어디있는 거지? 시계를 보니 마리와 약속한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다. 몸을 돌려 2층으로 내려온다. 홀에 서서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곳을 생각해본다. 

아까 효진이가 그랬다. 지혜는 폐백하러 갔다고. 폐백이야 가족, 친지들이 모여 하는 행사인지라 설마 거기까지 가볼 생각은 못 했다. 그렇지만 더 확인할 곳도 남지 않았다. 천장에 붙은 표지판을 보고 폐백실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약간 좁은 복도를 지나 가니 기와로 장식해놓은 문 하나가 보인다. 그 너머가 폐백실인가 보다. 걸음을 재촉하려는데 복도가 갈라진 쪽에서 놈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숨겼다. 그와 내가 나쁜 관계라고 말하기에는 좀 애매하다. 워낙 짧게 스쳐 지나가듯 만난 사이이기 때문이다. 난 녀석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만 녀석이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어떨지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좋은 사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은 몸을 숨긴다. 그런데... 그런데 이 인간이 왜 폐백실 앞에 저러고 있는 거지? 

이야, 임 전무님이 여기까지 와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양 과장 결혼은 꼭 챙긴다고 했는데 말이야. 길이 멀다보니 좀 늦었네. 이해하게나.

 하하. 제가요, 솔직히 고객님들 결혼식에 간 적은 많이 있습니다만 제 결혼에 고객님이 오신 건 처음입니다.

 예끼, 이 사람아. 그럼 결혼이 처음하는 거지, 나중에 또 하려구?

 그런가요? 하하하하.

뭔가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놈이 지금 대화하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오늘의 신랑이었다. 지혜의 남편이란 말이다. 남편이란 사람이 왜 저 놈이랑 저렇게 친밀하게 대화하고 있는 거야!

어머, 한석아.

아뿔싸. 지혜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피할 도리도 없이 그대로 마주치고 말았다. 커다란 옷 가방을 옆으로 둘러맨 어떤 여자와 함께였다. 아마도 폐백이 이제 막 끝난 듯 얼굴의 연지도 채 떼지 않은 터였다. 지혜는 날 보며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까 효진이는 급한 일 있다고 먼저 간다고 하던데, 넌 아직 안 갔어?

 어? 그.....그게....

젠장. 이 복도를 지나 조금만 꺾어 들어가면 그놈이랑 지혜랑 마주치게 된다. 그놈이 있는 곳은 지금 지혜가 향하고 있는 쪽이었고 지혜가 그 쪽으로 다가갈 수록 내 마음은 타들어간다.

여기... 춘천 구경 좀 더할까 하고...

 아, 맞다. 마리랑 같이 왔었지? 구경 재미있게 해.

지혜는 눈인사를 남기고 나를 지나쳐 가려고 했다. 그녀가 내 곁을 지나가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팔을 뻗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지혜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깜짝 놀란다.

하...한석아?

 아, 저.... 그게......

젠장. 젠장. 젠장. 속으로 이 소리만 수백 번을 외쳐보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지혜는 좀 당황한 눈치였으나 이내 침착하게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얹으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야기 하면 안 될까? 지금은 좀 바빠서 말야.

 그....그렇겠지?

이대로 지혜를 보내야 하는 걸까. 새까맣게 타버린 내 속은 그대로 미이라처럼 바싹바싹 말라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데, 바로 그 때 2층으로 올라온 마리가 눈에 보였다. 두리번거리며 홀을 가로지르던 마리는 나와 지혜를 발견하고는 입을 딱 벌린다. 알듯 모를듯한 표정이 녀석의 얼굴을 스쳐지나간다. 이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가버렸다. 마리를 부르고 싶었지만 지금은 지혜가 우선이었다. 일단 그녀의 팔을 놓았다.

추...축하한다고 말야. 아까 경황이 없어서 그 말을 못 한거 같아.

 그래? 고마워.

옆에 있는 여자가 지혜를 재촉한다. 지혜는 내게 고개를 까딱 해 보이고는 한복치마를 두 손으로 쥔 채로 그대로 나를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다. 이번에는 내가 잡은 것도 아닌데 지혜가 발걸음을 우뚝 멈춰서고 만다. 복도 갈림길에 그 새끼가 나타난 것이다.

어, 자기야. 인사드려. 대물물산의 임 전무님이라고. 내가 형님처럼 모시는 분이야.

지혜의 남편이 그놈을 지혜에게 소개한다. 젠장할. 저 남편이라는 놈은 모르고 있는게 틀림없다. 정말!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게 틀림없다. 지혜에게 이 놈에 대해서 소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이 놈이 누구인지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누구보다 지혜가 더 잘 알고 있음을 말이다. 임 전무는 한껏 웃으며 남편의 등을 두드린다. 철판도 꿰뚫을 듯한 강렬한 시선은 지혜에 고정시켜 둔 채.

어이쿠. 신부가 이렇게나 미인이라니. 동생은 좋겠네, 그려.

넉살 좋은 저 웃음을 보고 있는 게 괴롭다.

하하. 제가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나 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남편의 속없는 웃음소리가 내 속을 뒤틀리게 한다.

내가 십 년만 젊어도 이런 여성분의 애인하겠는데 말야. 지금은 좀 무리려나?

저 말이 단순한 덕담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소름마저 돋는다.

지금 임 전무님이 어떠셔서요. 아직 현역 아니십니까?

 그런가? 어허허허허.

모든 것을 알고 비릿한 웃음을 흘리는 이와 무지한 자의 멍청한 웃음을 가로지르는 지혜의 목소리가 들린다.

임 전무님이시라구요.

지혜의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녀석의 뒷모습이 통째로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것 같다. 그렇지만 지혜는 내 생각보다 강한 여자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남편이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낸 지혜는 그대로 걸어가버렸다. 그놈과 남편은 그 후에도 시답지 않은 소리를 더 나누고 나서 헤어졌다. 지혜의 남편은 지혜가 간 쪽으로 걸어갔고 그놈은 밖을 향해 걸어간다. 나도 모르게 그놈을 따라간다. 식장을 내려와도 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마리의 아까 그 표정이 떠오른다. 내가 아직까지 지혜를 잊지 못하는 줄 알고 실망했겠지. 그러나 마리에 대한 생각은 금방 지워 버렸다. 저 천하의 쳐죽일 놈이 우선이다.

이봐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떤 마음에서인지 조차 모르겠다. 차에 올라타려는 놈을 불러 세운다. 

왜 그러슈?

날 못 알아보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난 네 놈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내 대가리가 굵어지고 처음으로 때려본 사람이니까 말이다.

당신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지혜랑은 이미 끝났잖아!

어리둥절한 표정. 그러나 이내 그 표정은 서서히, 아주 천천히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뀐다.

너 이 새끼. 그래 네 놈이었군. 그때 지혜 옆에 있던 젊은 새끼가.

녀석은 뭐가 웃긴지 껄껄 웃었다. 날 한번 위아래로 스윽 쳐다보고 그대로 차에 올라타더니 조수석 쪽 창을 내리고 내게 말했다.

일단 타지. 설마 아주 큰 소리로 여기서 지난 일을 떠벌리고 싶은 건 아닐테니까 말야.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여긴 지혜 결혼식장 바로 코 앞이다. 지혜의 친인척, 혹은 아는 사람으로 드글거리는 곳이다. 여기서 이 놈이랑 소리 높여 이야기하다보면 내가 이 놈보다 더 못할 짓을 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놈의 차에 타도 괜찮을까 싶었지만 도리가 없었다. 일단 올라탄다. 녀석은 차를 출발시켰고 금방 시내를 벗어나더니 조금 더 달려 어떤 커다란 강 근처에 차를 세운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도로였다. 둘 다 내렸다.

이름이나 좀 알자. 이것도 인연인데.

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보닛에 기대어 앉은 녀석은 안주머니를 뒤지면서 무심하게 말했다.

너나 나나 결국은 구멍 동서인데 말야. 너무 떽떽 거리지는 말자구. 혹시 담배있나?

처음에 그놈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못 알아들었다. 구멍 동서라니.... 바로 다음 순간, 그 의미를 깨닫고는 곧장 달려들어 녀석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밀어붙여 차 보닛 위에 녀석을 쳐 박는다.

미친 소리 작작 해!

손에 힘을 가득 주고 으르렁거려 보았지만 오히려 상대는 태평했다. 놈은 벗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담배 있냐고 물었잖아. 젊은이.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그래도 이게 진짜......

 그럼 말야. 만약 니가 지혜랑 안 잤으면 날 쳐라. 내 그냥 맞아주마.

 이익!!!

주먹을 치켜 올렸지만 후려치진 못 했다. 놈의 말은 틀리지 않다. 젠장. 젠장. 젠장!

으아아악!!!

애꿎은 보닛만 후려치고 만다. 손을 놓았다.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찾아내 뒤로 던졌다. 찰칵찰칵 소리가 나더니 이내 담배 연기가 내 쪽까지 흘러 들어왔다. 담배 한 개비를 반쯤 태울 시간이 흐르고 녀석이 조용히 말했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이지. 예전에 자네하고 나하고 좀 안 좋게 스쳐 지나가긴 했지만 오래 전 일이기도 하니 그냥 잊어버림세. 자네가 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냥 동생처럼 알고 지내는 양 과장이 결혼한다고 해서 순수한 마음에서 축하해주러 온 거네만....

후우- 하는 긴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물씬 내 쪽으로 풍겨온다.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는 나도 한 대 몹시 땡기는 기분이다.

그런데 말야. 오히려 자네야 말로 아직까지 지혜를 못 잊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아까 보아하니 표정도 몹시 안 좋아 보이더만.

강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이가 없어서 뒤를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표정은 당신 때문에 그렇지!

그러나 녀석의 능글맞은 표정은 여전했다.

나? 내가 뭘 어쨌다고 그러나. 허허. 비록 늦어서 사진은 촬영 못 했다만 이래 봬도 신랑 측에다 축의금도 냈다고. 뭐가 문제지?

 으흑.....

분했다. 분명 이 자식이 이런 자리까지 온 사실은 꺼림칙한 일이다. 그러나 녀석의 말마따나 녀석은 지혜가 아니라 신랑이랑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온 이유에 대해서 전혀 꿀릴 것이 없게 된다. 내가 꺼림칙하다는 것 말고는 겉으로는 아무런 논리의 허점이 없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주저하고 있자니 녀석의 말이 이어진다.

여자가 결혼 전에 다른 남자랑 사귀고 그러는 거야 요즘 같은 세상에서 뭐 큰 허물이라도 되나. 그냥 자네나 나나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도 모를 일인데, 안 그래? 괜히 열내지 말게.

녀석은 담배 한 대를 더 태우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차를 빼더니 이내 출발해버렸다. 녀석이 떠나고 나서도 난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나 자신이 한심하다.

흐르는 강을 바라보면서 내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생각했다. 오지랖도 넓게 옛 여자 결혼식에 와서는 그 여자의 옛 애인을 붙들고 다그친다. 차라리 저 놈이랑 지혜는 불륜이나마 오래 지속된 관계라도 되었지 나와 지혜는 말 그대로 스쳐 지난 인연에 불과했다.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오래 생각해보아야 답이 없다. 어차피 지혜와는 이제 볼 일도 만난 일도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 이었다. 그저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꿈틀대는 어둡고 검은 마음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여긴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없는 지극히 한적한 도로였다. 나쁜 새끼. 이런 데다가 나를 떨구고 가다니. 이런 식으로 나를 골탕먹이려는 게 틀림없다. 게다가 내 담배도 가져가 말야. 억지로 녀석의 나쁜 점만을 골라 생각하며 도로 쪽으로 나가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아마 이쪽 방면으로 가면 시내가 나왔던 것 같다. 물론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팔과 다리에 힘이 없어 패잔병마냥 터덜터덜 걷는다. 

한 오 분 가량 걸었을까. 뒤쪽에서 아련하게 차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고 뒤쪽을 바라본다. 아직 오후인데도 벌써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다니 이상한 차다. 일단 손을 들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차가 이쪽으로 점점 다가온다. 나를 본 것일까.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 쳤지만 그런다고 그 차와 나의 간격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차의 속도는 내 예상보다 빨랐다. 

부딪힌다. 피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몸을 던져 피했다. 아니,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차의 좌측 보닛 위쪽에 쳐박힌다. 운전석 쪽 창을 타고 한 바퀴 구르며 몸이 날아 오른다. 허공에 체류하는 시간은 짧았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낙하의 시간은 영겁과도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퍽- 소리와 함께 아스팔트 위를 구른다. 기괴하게 뒤틀린 내 팔과 다리가 보인다. 평야설넷면 저 방향으로 꺾이지 않는데 이상하다. 바른 방향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노력만이 가상하다. 내 몸, 내 정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눈을 뜨려고 노력했다. 눈꺼풀이야 말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신체부위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다. 어디에서 흘러나온 건지 알 수 없는 뜨거운 핏물이 내 눈을 덮는다. 세상이 붉게 물들어 간다. 내가 붉게 물드는 건지, 세상을 가득 덮는 붉은 홍수가 범람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예전에 길바닥에서 내가 주워 들었던 죽은 강아지가 생각났다. 녀석을 아스팔트에서 데리고 와서 땅에 파묻은 건 잘한 짓인 거 같다. 아스팔트 위는 너무도 차가웠다. 차갑고 차가우며 지극히 차가웠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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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혜]의 [배드 엔딩]을 달성하였습......

 ..........은 뻥입니다.

더블 데이트 Route G 시작합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지난번 분기에서 남는다는게 마리랑 엮이는 루트인줄 아시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본의 아니게 뒤통수 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

[등장인물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Q : 이봐요, 한석 씨! 죽었어요?

 한석 : ......Route G는 1화 짜리인가요?

 Q : 아뇨. 더 이어 가야죠. 여기서 끝내봐요. 뭔 또 욕을 듣게 될지....

 한석 : 그럼 살아있나 보네요. 다행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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