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3 토끼와 함께 춤을 =========================
껌벅거리는 전등은 곧 떨어질 듯이 위태롭고, 하얀 벽에는 물기가 묻어있을 정도로 공기가 축축하다. 바닥에 깔려있는 타일은 곳곳에 검붉은 얼룩이 묻어있다. 이 방이 단순히 구질구질한 것을 넘어서 소름끼치게 느껴지는 이유. 그 안에서 섬뜩한 소리를 내면서 회전하는 드릴 소리와, 입이 무언가에 막혀있는 발가벗은 여자가 읍읍거리면서 버둥거리는 소리 때문이다.
"아아, 내 정신 좀 보라지. 내가 요즘 이렇게 정신이 없다니까. 이해해달라고!"
예의 섬뜩한 토끼탈을 쓰고 있는 남자가 그러면서 큭큭거리고는 리모컨을 들어서 버튼을 조작했다.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울려퍼지는 것은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 음악에 맞추어서, 물 속에 들어있는 미역마냥 흔들거리던 그가 몸을 빙글 한 바퀴 돌리고 철제 테이블에 고정되어있는 여자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곡 정말 좋지 않나?"
여자의 몸에 경기를 일으키며 눈물을 줄줄 흘리고, 그 모습에 펑키 바니가 큭큭거리면서 그녀의 뺨을 후려친다.
"웃으라고 레이디! 당신을 위한 무대에서 그렇게 울어서야 쓰나?"
여자의 뺨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오르고, 입 안에 터졌는지 그녀의 입가에서 가느다랗게 피가 흘러나온다. 바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몇 번 흔들다가 입을 열었다.
"이 곡이 좋기는 한데, 뭔가 약간 부족하단 말이지."
그러면서 그가 빙빙 회전하고 있던 드릴을 여자의 발 등에 쑤셔박고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천쪼가리를 확 뺀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그 소리를 들으면서 펑키 바니가 몸을 부르르 떤다.
"크하, 그래! 이제 노래가 완성되는군. 그래서, 이름이 어떻게 되지 미스?"
물론, 드릴은 계속해서 돌고 있는 상태였고. 그녀에게 대답을 할 여유가 있을리 없다.
"... 아, 요즘 들어서 깜박깜박한다니까."
그러면서 바니는 여자의 살과 뼈를 뚫고 들어가고 있던 드릴을 뽑아냈다. 여자는 몸을 경련하면서 숨을 몰아쉬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저는 아무것도 잘못한게...!"
바니가 시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흔들고 드릴 손잡이로 그녀의 머리통을 한 대 후려쳤다.
"예의가 없잖아. 물어보면 대답을 해야지?"
그러면서 그는 바닥에 던져둔 그녀의 옷을 뒤져서 지갑을 찾아낸다.
"좋아, 미스 에리나. 딱히 제대로 된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서 펑키 바니가 음악에 맞추어서 깡충깡충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알고 있는 거 있어? 알고 있는거! 그 오징어 남자를 만났잖아, 뭐 좀 기억나는 걸 말하라고."
크리스틴 에리나, 그녀는 넋이 나간 상태에서 외쳤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제발, 풀어주세요...!"
그 말에 바니가 쯔쯔쯔쯔 소리를 내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틀린 대답이야."
바니는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으쓱했다.
"이거 실망인데... 대답으로 나를 만족시켜주지 못하니. 우리 게임이나 하나 할까?"
그러면서, 바니가 흠흠흠흠, 하는 웃음 소리와 함께 드릴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자유의지라는 걸 중시하는 신사니까. 물어볼게, 자기. 눈이랑 귀 둘 중 하나가 없어야 한다면 뭐가 없는 편이 나을까?"
그 말에, 크리스틴의 표정이 시퍼렇게 질리고, 몸을 펄떡거리기 시작한다. 그 힘으로 발등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사방으로 튄다.
"에에에, 죽으면 안됀다고. 우리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야지."
그러면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발목의 상처를 소독하고 지혈하는 바니. 그 모습은 분명히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생각해 봤어?"
바니의 말에, 크리스틴이 말했다.
"제발, 여기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테니까. 풀어주세요... 제가 그 남자에 대해서 알 리가 없잖아요...!"
"아,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서 하는게 아니라고. 재밌지 않아? 나는 엄청 즐거운데 지금."
그러면서 그가 다시 드릴을 회전시키며 아직 멀쩡한 크리스틴의 다른 쪽 발등에 드릴을 가져갔다.
"나 혼자 즐거웠나?"
드릴이 살갗과 종이 한장 차이로 떨어진 채로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고. 크리스틴이 대답한다.
"재밌어요! 재미있어요!"
눈물과 게거품을 물어가며, 외치는 그녀의 말에 바니가 킬킬거렸다.
"나도 즐거워."
그러면서, 드릴이 천천히 크리스틴의 발등을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크리스틴이 비명을 지른다. 잠깐 그렇게 드릴을 돌리던 바니가 드릴을 뽑고 다시 지혈을 하면서 말했다.
"더 놀아주고 싶지만. 말이지,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아서. 나중에 돌아오면 특별 서비스 해줄테니까. 기대하라고 미스 에리나."
그 말과 함께 바니가 눈을 허옇게 뒤집은채로 가까스로 숨을 쉬고 있는 크리스틴을 버려두고 문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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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정도가 지났다. 아가페의 그 지긋지긋한 카를이라는 친구는 2주 전에 사망하셨고. 레이첼은 내일부터 아가페의 잔당들을 규합 할 예정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레이첼과 상당히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나는 자동으로 아가페까지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모처럼 축배를 들 생각으로 버팔로 윙과 맥주를 사서 레이첼과 함께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티비의 아래에 자막으로 작게 스쳐지나가는 내용들. 저건 흔하다. 워낙 납치 사건이 많은 로고스 시티다 보니 매일 밤 9시 마다 오늘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이 아래에 자막처럼 떠오르는 것이다.
항상 보던 물건이라 별달리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아니, 않았었다.
"... 크리스틴 에리나?"
나는 순간적으로 어이가 없어져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첼이 나를 보면서 말한다.
"아는 사람이야?"
아는 사람이지. 나는 일단 턱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그 화면을 바라봤다.
장난치는게 아니라. 킹스 크로스에서 납치를 통해서 인력을 공급하는 곳은 오직 한 곳, 나의조직이다. 아직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전에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에, 크리스틴이 킹스 크로스에 산다는 것은 확인했었다.
즉, 크리스틴 에리나가 납치되었다고 한다면 백이면 백 잭 오 랜턴에서 납치를 했어야 상황에 맞는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모를리가 없지. 뭔가 이상하다. 나는 레이첼에게 사과를 구하고 로고스 시티 경찰청 사이트에 들어가서 실종자 명단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나는 전화기를 들어서 잭 오 랜턴 근거지에 전화를 걸었다.
"잭이다. 지금 당장 내 메일로 최근 한달 간 우리가 납치했던 인간들 명단 다 보내. 당장."
그리고 나는 머리를 긁는다. 뭔가 이상한데. 경찰청 사이트에 나와있는 실종자 명단을 보면서 나는 주소지가 킹스 크로스 언저리로 되어있는 자들을 싹 모았다. 그리고, 나에게 보내진 메일을 확인해서 우리쪽에서 납치한 사람들 이름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 납치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일단, 모두 최근 2주간 실종되었다.
어디선가 다들 본 것 같은데. 그렇게 명단을 훑던 나는 인상깊은 얼굴들 몇 개를 발견하고 신음했다.
"이런 씨발.."
내가 오징어 가면을 쓰고, 강간당했던 여자를 하나 구했던 적이 있다. 그 얼굴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일단, 그 헐벗은 몸매가 깊게 인상에 남아있었으니까.
마찬가지로, 나를 보면서 머리에다가 먹물을 들이붓고 깊은 저 바닷 속 파인애플을 불렀던 남자도 기억한다.
다 실종되어있다.
나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려찍었다.
"어떤 새끼가..."
뻔하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모두 최근 2주간 납치되었고. 나에게 구체적으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은 현재 얼마 남아있지 않다. 루드비히 사망, 카를 사망, 호핑 존스는 애초에 저런 잡일들을 할 이유가 없고. 내 머리 속에 굉장히 기분나쁘게 생긴 토끼탈 하나가 떠오른다.
펑키 바니인지 퍼킹 바니인지 하는 그 정신병자 새끼를 만나서 기폭장치를 나꿔채 간게 2주 전이다. 시기가 맞아 떨어진다.
"아니, 씨발 경찰들은 일을 안하는 거야? 수십명이 킹스 크로스에서 2주간 납치를 당했는데 뭐가 이렇게 고요해!"
"무슨 일이야, 당신?"
레이첼이 나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다는 듯이 다가온다.
"아무래도, 나 때문에 아는 사람이 피해를 본 것 같아."
그 말에, 레이첼이 말한다.
"그, 크리스틴 에리나라는 사람?"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레이첼이 나를 바라본다.
"도와줄까?"
그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레이첼을 바라봤다. 야, 너 검은 꽃 핀 여자잖아. 이런 대사를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나의 표정을 살펴보던 그녀가 대답했다.
"당신 혼자 보내느니. 내가 따라가서 착 달라붙어 있는 편이 속이 편해. 그리고, 딱 봐서 관계가 수상하다 싶으면 내가 죽여버릴거야."
야, 너 너무 죽여버린다는 말을 무슨 '오늘 저녁에 짜장면 먹자' 같은 느낌으로 말하지 말아줘. 존나 무섭다.
함께 움직여서 손해가 갈 일은 없겠지.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누가 했는지는 짐작이 가?"
그 말에,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돌 마스크."
그 말에, 레이첼의 표정이 확 굳는다.
"... 말도 안돼."
레이첼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확신해? 진짜로 돌 마스크야?"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확실하다.
"어쩌자고 그런 정신병자들이랑 얽힌거야? 나 집에 있을 때 밖에서 핵폭탄이라도 터뜨렸어?"
아니, 그냥 자그마한 기폭장치 하나 얻고 싶어서 에드먼드 힐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만났을 뿐이지. 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나는 아하하 거리면서 대답을 회피하고. 레이첼이 입술을 파르르 떨면서 웃을 일이 아니라고 외쳤다. 그리고 이내 몸을 부르르 떨고는 나를 바라본다.
"얼굴 들킨거 아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로 안들켰어."
그 말에 레이첼이 숨을 가다듬는다.
"하긴, 펑키 바니가 얼굴을 알고 있는데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서 숨 쉴 수 있을리가 없어."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징어 가면으로 얽히니까 나를 본 새끼들은 모조리 다 납치하고 있을 정도니. 내 얼굴을 보면 이 게임을 하는데 굉장한 애로사항이 마구마구 꽃필 것이다. 레이첼은 나를 바라보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우리 얼굴부터 가려야해. 절대로 들키면 안돼. 펑키 바니와 신분증 까고 얽히면 백프로 죽은 다음에 시체 훼손까지 풀옵션이야."
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건 게임이다. 나는 지금 게임을 하고 있는 거고. 그 크리스틴이라는 여자는 어차피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일 뿐이다. 여기에서 죽어 없어진다고 해도 진짜로 누군가가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 컴퓨터에 있던 야동 폴더 하나 지워지는 거랑 비슷한 거겠지.
근데...
'츠키미야카이의 카이쵸(會長, 야쿠자의 보스) 딸이 납치되서 사지가 잘려나가고 거기에 동물 인형탈이 붙어있는 채로 카이쵸의 주택으로 발송되었어. 그 정신나간 토끼탈 새끼를 잡아보겠다고 지랄을 했는데. 2주 정도 지난 다음에는 카이쵸의 마누라가 자궁이 적출되고 그 안에 쓰레기가 가득 담긴 상태로 다시 배달되었고.'
소피아의 말이 귓가에 환청처럼 울린다.
이게 설사 가상이라도. 면식이 있는 사람이 그런 꼴을 당하는 걸 '게임이니까'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넘기기에는 내 멘탈이 지극히 평범하다!
============================ 작품 후기 ============================
크리스틴 미안해. 나를 용서해줘. 너를 이렇게 할 생각은 없었어.
아 진짜, 저 같이 정상적이고 모범적인 시민이 정신병자 이야기를 쓰려니 정말 힘드네요...
잭, 너 안 평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