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화.
그날부터 상천의 단월검 일초식 삭풍 수련이 시작되었다.
목검을 잡은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져 나갈 정도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노력하는 상천이었지만 종삼이 말한 진정한 삭풍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휘둘러서 바람을 벨 수 있겠어?”
“야, 그거는 베는 게 아니라 후려치는 거지!”
“무식하게 힘으로만 하려고 하지 말라니까?”
“그게 아니잖아! 너 바보냐!”
상천이 수련하는 것을 보며 종삼은 쉬지 않고 떠들었다.
상천도 처음에는 욱하는 대신 종삼의 말을 새겨들으며 열심히 수련에 임했지만 계속 잔소리만 들어놓는 데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너 검으로 사람 뼈 부러뜨릴래? 그럴 거면 몽둥이를 들지 그러냐?”
“아, 쫌!”
결국 수련을 하던 상천이 종삼의 잔소리에 폭발하고 말았다.
휘두르던 검을 내려놓고는 종삼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뭐?”
상천이 소리를 지르자 순간 움찔했던 종삼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상천에게 물었다.
“수련하는데 자꾸 잔소리할 거야?!”
상천도 지지 않고 큰 소리로 맞받아쳤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다.”
“그럼 뭔가 제대로 가르쳐 주든가!”
“가르쳐 주고 있잖아!”
종삼의 말에 상천이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네 말대로 내가 지금까지 한 잔소리가 다 그냥 내 기분 따라 한 건 줄 아느냐? 그냥 너 괴롭히려고 그런 건줄 알아? 다 도움이 되는 말이다. 그걸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릴 생각만 하지 말고 좀 되새겨 봐!”
종삼의 호통에 상천이 입을 빼쭉 내밀고는 다시 검을 주워들었다.
“상(想), 행(行), 감(感), 오(悟). 다시 말해 무공 수련은 생각하고 행하고 느끼고 깨닫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넌 지금 뭔가가 빠져 있어. 뭐가 빠졌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 봐.”
그렇게 말하며 돌아선 종삼이 백룡문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에 종삼이 남긴 말을 곱씹으며 검을 들고 서 있는 상천의 머리 위로 중천에 떠오른 해가 뜨거운 햇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종삼의 말을 들은 이후로 상천은 무조건 검만 휘둘러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검을 휘두르는 시간보다는 감(感), 오(悟), 다시 말해 느끼고 깨달으려는 노력도 하기 시작했다.
생각하고 행하는 건 충분히 하고 있었으니까.
‘삭풍. 바람을 벤다. 베는 것과 바람. 이 두 가지.’
비록 어린 나이지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린 결과 베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바람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느껴야 깨달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어내었다.
‘그런데 그걸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또 막막해졌다.
베는 느낌.
실제로 무언가를 베어본 적이 없어 그 감촉을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베는 것을 옆에서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어떤 느낌인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으〜!! 무공이라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거였나?”
상천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벤다… 벤다… 벤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상천이 연무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삐죽 올라와 있는 잡초에 시선을 옮겼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허리 높이까지 자라 있던 잡초 대부분은 종삼이 이미 깔끔하게 베어버린 상태였다.
하지만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다 보니 어느새 다시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풀부터 베어볼까?”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상체를 일으켜 세워 앉았다. 그러고는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어디 낫이 있을 텐데…….”
그렇게 중얼거리며 백룡문 곳곳을 돌아다니던 상천이 한쪽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녹슨 낫 하나를 발견하고는 양손으로 번갈아 쥐며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였던가?”
그렇게 중얼거린 상천이 연무장 돌바닥 사이를 비집고 나온 잡초의 끝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살짝 잡고는 잡초 밑 부분을 낫으로 스윽 그었다.
“뭐야? 안 베이잖아!”
하지만 정작 잡초는 베이지 않고 낫을 따라 휘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종삼이 하던 것을 떠올리며 똑같이 따라해 봤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우쒸! 뭐야, 이거! 녹슬어서 그런가? 이왕이면 새것 좀 사다 놓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낫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상천이 손끝으로 낫의 날을 살짝 찔러보았다.
“악!”
잘못 찔렀는지 상천의 손이 얇게 베이며 피가 흘렀다.
균이 있든 없든 일단 본능적으로 상처 부위를 입으로 가져간 상천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녹슬었어도 날은 잘 서 있네! 아이고, 아파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가 멈출 때까지 입으로 빤 상천이 손가락을 옷에 아무렇게나 대충 닦고는 다시 풀을 잡았다.
“왜 안 잘리는 거야?”
상천이 다시 한번 풀을 낫으로 베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아저씨는 잘만 하는 것 같았는데… 왜 난 안 되지?”
그렇게 말하며 상천이 또 한 번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다시! 내가 꼭 베고야 만다!”
그러면서 다시금 상천이 풀을 잡았다.
베는 느낌 한번 경험해 보려다가 오기가 생겨 버린 상천이었다.
오늘은 조금 일찍, 저녁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일 즈음 돌아온 종삼은 연무장에 쭈그려 앉아 있는 상천을 볼 수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등을 지고 앉아 있어 상천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던 종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뒤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상천의 등 뒤에서 살짝 고개를 들이밀고 뭘 하는지 본 종삼은 낫으로 풀을 베고 있는 상천을 보며 나직이 물었다.
“재밌냐?”
“재밌어 보이냐?”
“재미없어? 그런데 왜 해?”
“어떻게 하다 보니……. 으잉?”
종삼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대꾸하던 상천이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슬쩍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뭐하냐?”
“아! 아저씨! 잘 왔어. 이거 어떻게 해?”
“잡초는 왜 베고 있어? 철들었냐?”
종삼의 물음에 상천이 인상을 찌푸리고는 잡초와 낫을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낫으로 풀을 어떻게 베? 난 왜 안 되지?”
“그러니까 그걸 지금 왜 하고 있냐고. 하라는 무공 수련은 안 하고.”
종삼이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자 상천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베는 느낌이 뭔지 알고 싶어서.”
“베는 느낌?”
“어. 베는 느낌. 초식 이름이 삭풍이잖아. 바람을 벤다. 그럼 베는 느낌이 뭔지를 알아야 감이 올 거 같아서. 여기서 벨 수 있는 건 잡초 밖에 없잖아.”
상천의 말에 종삼은 놀라움과 기특함을 느꼈다.
어린 나이에 머리로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것을 넘어 구체적인 방법까지 생각해 내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베는 느낌을 알기 위해 풀을 벨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대단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하지만 종삼은 그런 마음을 숨긴 채 입을 열었다.
“그런 것도 못하냐? 다섯 살 먹은 어린애도 하겠다.”
“칫!”
종삼의 핀잔에 상천이 짧게 투덜거렸다.
“이리 줘봐. 잡초를 이렇게 잡고 여기를 베는 거다.”
“나도 그렇게 했는데?”
종삼이 하는 것을 잘 보고 있던 상천이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어떻게 했는데? 해봐.”
그렇게 말하며 종삼이 상천에게 낫을 건네주었다.
“여기를 이렇게 잡고, 그리고 이 밑부분을 이렇게! 거봐! 안 되잖아!”
종삼이 할 때와 달리 상천이 했을 때는 베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니까 안 되지. 내놔봐.”
그러면서 종삼이 상천의 낫을 빼앗아 들었다.
“뭐가 다르지?”
“잘 봐. 그냥 이렇게 잡아당겨 봤자 절대 안 베인다. 잡초라는 놈들은 굉장히 끈질기거든. 어지간해서는 죽지도 않아.”
그렇게 말하며 종삼이 잡초의 밑부분에 낫을 두고는 상천을 한번 쳐다보았다.
“이렇게 한 다음에 한 번에 힘을 빡! 주는 거야. 낫과 풀이 만나는 순간에. 손목이 중요한 거야, 손목이.”
“아!”
상천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탄성을 질렀다.
“해봐.”
“알았어. 아~ 쉬운 거였네! 내가 이번에는 베고 만다.”
방법을 터득한 상천이 종삼으로부터 낫을 건네받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낫을 여기다가 이렇게 놓고… 잡초랑 낫이랑 만나는 순간에 힘을 빡!”
싹둑!
“오! 됐다! 됐어! 아저씨! 됐어!”
종삼이 가르쳐 준 방법대로 하자 정말 풀이 베어졌다.
그러자 뭐 대단한 것이라도 해낸 것처럼 상천이 기뻐했다.
“뭐하냐? 고작 잡초 하나 벤 거 가지고 이렇게 기뻐하면 어떡해? 동네 창피하니 어디 가서 너 여기 산다고 하지 마라. 얼굴 들고 동네 못 돌아다니겠다.”
종삼이 상천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상천이 금방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빼쭉 내밀었다.
“그렇게 좋으면 앞으로 연무장 풀은 네가 다 베라. 난 이제 허리 아파서 못하겠다.”
“뭐? 여기를 다?”
상천이 제법 넓은 연무장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종삼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 여기 싹 다.”
“말도 안 돼. 나 무공 수련 해야지!”
“수련해도 잘 늘지도 않으면서 무슨.”
“안 되니까 더 많이 해야지, 풀 벨 시간이 어딨어?”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모르냐?”
“과… 뭐?”
종삼의 말에 상천이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새 까먹었냐?”
“아, 아냐! 안 까먹었어. 근데 뭐랬지?”
“과!유!불!급!”
능청스럽게 다시 묻는 상천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본 종삼이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아! 그거! 무리하면 안 좋다, 뭐 그런 거 아니었어?”
“하…….”
종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종삼의 눈치를 보던 상천이 스리슬쩍 물었다.
“왜, 틀렸어?”
“넌 왜 항상 정확하게 모르고 얼추 비슷하게, 아니면 애매하게 아냐?”
종삼의 말에 상천이 배시시 웃으면서 대꾸했다.
“뭐 어때? 뜻만 통하면 되지. 하하! 어쨌건 베는 느낌이 이런 거였군. 검 휘두를 때에도 이렇게 해야겠다. 닿는 순간에 힘을 빡!”
그렇게 말하며 상천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검을 가지러 걸어갔다.
“잠깐!”
“음? 왜?”
종삼이 자신을 불러 세우자 상천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뭐 잊은 거 없냐?”
“뭐? 뭘 잊었지?”
상천이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되물었다.
“제자리!”
“아, 맞다.”
종삼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낫을 가리키며 짧게 말하자 상천이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쪼르르 달려갔다.
연무장 위에 아무렇게나 놔둔 낫을 집어 든 상천이 다른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근데, 이거 어디 있었지?”
“하…….”
그렇게 말하는 상천을 보며 종삼이 또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이잖아!”
“아, 맞다!”
종삼이 위치를 알려주자 부끄럽다는 듯 웃으며 낫을 들고 달려가는 상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