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95화 (495/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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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칙 삼라만상을 다시 살피다 >

"저게 나를 잡아먹을 거라는 소리지?"

"몽 선인의 말은 그렇다고 하는데, 믿을 수 있나요?"

"정정 당신이 생각하기엔 어떻소?"

건우는 머리 위에 있는 ‘삼라만상’을 힐끗 쳐다보고는 유정정에게 물었다.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법칙임은 분명한 것 같고, 그렇다면 몽 선인의 말처럼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임도 분명하죠."

"그리고 저 삼라만상을 이용하면 정말로 이곳에 하나의 세상을 구축하는 것도 가능하겠소."

"그렇지만 이상한 것이 있어요."

"뭐가 말이오?"

"저 삼라만상이 있기 전에도 이곳은 그런대로 잘 유지되고 있지 않았나요? 그런데 저 삼라만상이 새로 생겼다고 해서 달라진 것이 있었나요?"

유정정의 물음에 건우 또한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을 느꼈다.

삼라만상이 있기 전에도 이미 건우의 의념 공간은 엄청난 넓이였고, 그 안에 많은 것들이 있었다.

따지자면 대천세계의 일부가 의념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 대천 세계의 법칙이 이곳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건우 님의 의념 공간이 다른 세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몽이가 가장 핵심이 될 문제를 지적했다.

건우의 의념 공간 안은 이전부터 대천 세계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면 건우의 의념 공간을 대천 세계와 다른 세상이라고 한 몽유희의 말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혹시 삼라만상이 들어온 순간부터 그렇게 바뀐 것이 아닐까요?"

유정정이 몽이와는 다른 의견을 조심스럽게 꺼내 놓았다.

"내가 천지 법칙의 근원에서 삼라만상을 받는 순간부터 이곳 의념 공간은 대천 세계와는 다른 곳이 되었다?"

"몽 선인이 말하기를 삼라만상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어요. 아니 원래 그런 목적으로 일부를 떼어서 상공에게 전했던 것이겠죠."

"으음. 그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소."

그때, 천지 법칙의 근원인 빛기둥에서 들려왔던 목소리들을 떠올려 보면, 확실히 유정정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념 공간이 곧 대천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상임을 어떻게 확신한단 말인가.

건우는 잠시 그런 의심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치고 말았다.

"이런! 이리 어리석을 수가!"

"무슨 일이셔요? 왜 그러셔요?"

건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유정정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 의념 공간은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이 관여할 수 없는 곳이었소. 그럼에도 이곳에서 대천 세계의 천지 법칙이 그대로 적용된 것은."

"네? 어째서 그리 된 거여요?"

"내 무의식에 천지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이오."

"무의식에요?"

"어리석은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내 의념 공간에 그 무의식을 점령한 천지 법칙을 적용하고 있었던 것이지. 그래서 이곳의 모든 것이 천지 법칙의 적용을 받는 듯이 그랬던 것이오."

"아, 무의식이라……. 그랬군요.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저 삼라만상이 들어온 후로는 저것이 내 의념 공간의 법칙을 통제하기 시작했소."

"그걸 몰랐던 이유는, 이미 상공께서 무의식에 가지고 있던 그 법칙들과 삼라만상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고요?"

척하면 착!

유정정도 건우가 깨우친 것을 알아차리고 맞장구를 쳤다.

"내 의념 공간은 본래부터 대천세계의 고명한 봉인술과 다른 세상의 법칙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것이었소."

지구의 각성스킬은 아공간과 의념 공간이 더해진 것이 시작이었으니 건우의 말이 틀린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그 후로 건우의 의념 공간도 적잖은 변화를 거쳐 왔다.

특히 한 번의 윤회를 거치면서 의념 공간이 얼마나 크게 달라졌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건우의 의념 공간은 건우의 허락이 없이는 그 어떤 간섭이나 침입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도리어 건우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공고해진 면이 있었는데, 그만큼 건우만의 세상이 단단해진 결과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말로 이곳이 대천세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독립된 곳이란 뜻이네요. 그리고 이곳에 삼라만상까지 들어섰으니 하나의 세상이라 볼 수도 있는 것이고요."

유정정은 새삼스러운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다.

"흐음. 하지만 그것이 그리 기뻐할 일은 아닌 듯 하오."

그런 유정정을 향해서 건우가 말했다.

- 아니 건우 님이 자칫하면 삼라만상에 잡혀 먹히게 생겼다고요.

몽이도 상처받은 표정으로 유정정을 탓했다.

"호호. 설마요. 제 상공께서 어찌 삼라만상 따위에게 지시겠어요?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자 유정정은 도리어 활짝 웃으며 건우와 몽이를 번갈아 보았다.

건우는 그것이 유정정 식의 응원임을 깨닫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마주 웃어 보였다.

"맞소. 내가 누구요? 정정의 반려가 아니오? 이런 내가 어찌 삼라만상 따위에 질 수가 있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 아무튼 정정님 앞에선 왜 그렇게 바보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몽이를 통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짧은 단상을 밝혔지만 유정정은 그런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역시 상공이셔요. 당연히 그리하셔야지요. 그런데 이쯤 되면 몽 선인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삼라만상에 틈을 만들어 내 안전을 보장 받으란 소리 말이오?"

"네, 상공."

"그것도 생각은 해 봐야 할 듯하오. 일단 몽 선인이 바라는 대로 윤회를 시켜줬을 때, 삼라만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를 살펴봐야 하겠소. 물론 그 전에 그것이 가능한가를 먼저 살펴야겠지만."

"그도 그러네요. 생각해보면 상공의 의념 공간에 영혼을 윤회시켜 탄생을 이룰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 될 거예요."

"내 생각도 그렇소. 으음. 그런데 바깥의 영혼을 이곳으로 윤회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모르겠소."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의념을 불어넣어 삼라만상을 살피기 시작했다.

= 그래, 고민을 해 보았더냐?

건우가 상념에서 빠져나오자 몽유희의 영혼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아직 답을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 그러하냐?

건우의 대답에 몽유희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우선 제가 삼라만상을 두고 있는 곳이 윤회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 윤회에 적합하지 않다고?

"그렇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나무 몇 그루와 풀들뿐인데, 그곳에 어찌 윤회를 하시겠습니까?"

= 그런 상황이면 내 영혼을 받아들일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겠구나.

"그렇지요. 그러니 제가 몽 선인의 바람을 들어드리려 해도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습니다."

= 그 말은 시간도 오래 걸릴 거란 소리구나.

"그렇지요. 더구나 반드시 일이 된다는 약속도 드릴 수가 없습니다."

= 그러하겠지.

몽유희는 크게 실망한 기색으로 영혼의 기운이 약해졌다.

하지만 건우는 섣불리 그런 그녀를 위로하지 않았다.

딱히 몽유희에게 도움을 줄 방법도 없는데, 무슨 위로를 한단 말인가.

= 그렇다면 다른 약속이라도 하나 해 주겠느냐?

잠시 후, 몽유희의 영혼이 굳은 표정으로 건우를 보며 물었다.

"어떤 약속을 바라십니까?"

= 나를 봉인하여 시간을 멈추어 다오. 그리고 언젠가 내가 바라는 대로 윤회를 시킬 수 있을 것 같으면 그 때, 꺼내 주면 어떠하냐?

"그러다가 몽 선인의 바람과 같은 윤회가 불가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면 어찌합니까?"

= 그런 때가 온다면 어쩔 수 없겠지. 봉인에서 풀어 모든 것을 지우고 깨끗한 영혼을 만들어 윤회를 시켜다오.

"으음. 상위 세계로 가시겠다는 뜻이군요?"

= 네가 새로 만드는 세상에, 내 기억을 가지고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대천 세계에 윤회를 할 일이 없지 않겠느냐.

"뜻은 알겠습니다만……"

= 내 부탁이 어려운것이더냐?

몽유희는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보았다.

표정만 보고 있어도 그동안 자신이 준 도움을 기억한다면, 어찌 이럴 수 있느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럼 이리하지요."

= 어떻게 말이냐?

"몽 선인을 이곳에 봉인하고 시간 법칙을 걸겠습니다. 그리고 언제고 제가 몽 선인을 찾을 일이 있으면 찾아오지요."

= 그 사이에 이곳에 무슨 일이 생겨도 네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구나? 그리고 봉인된 나를 데리고 다니는 부담도 피하고 싶은 것이고.

"그렇습니다. 괜한부담은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 그것 참, 그리 말을 하면 어쩔 도리가 있겠느냐. 알았다고 할 밖에. 그런데 너는 어찌하려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건우는 일단 몽유희를 봉인하고 떠나면 될 상황에 그녀가 무엇을 더 묻는 것인지 궁금했다.

= 네 세상이 빈약하다 하였으니 그것을 채워야 할 것이 아니냐. 그것을 어찌하려는가 묻는 것이다. 설마 하염없이 시간을 기다릴 생각은 아니겠지?

"그런 미련한 짓을 할 수야 있겠습니까. 아무리 시간 법칙을 익히고 있다지만 고작 나무 몇 그루와 약초밭 약간이 있을 뿐인 곳이 삼라만상이 풍성한 곳이 되기를 기다릴 수는 없지요."

= 그럼, 어찌하려느냐? 역시 작은 계를 하나 삼키는 것이 좋을 듯 한데?

"저 역시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천지 법칙의 노여움을 피하려면 저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아래라고? 설마 하계를 말하는 것이냐?

"적당히 보아서 영계 하나 정도를 취하면 좋겠습니다만, 그것도 어렵다면 인계를 취해 볼 생각도 있습니다."

= 내 생각에는 크게 욕심을 부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인계도 씨앗으로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천지 법칙의 감시가 불편하기는 하지요. 알겠습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건우는 몽유희에게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눈 후에 그녀의 영혼을 봉인하고 시간을 멈추도록 시간 법칙을 걸었다.

"일단 몽 선인은 봉인을 해 뒀으니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머물며 삼라만상과 독립된 세상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십시다."

이후 건우는 유정정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의념 공간에 집중하여 삼라만상을 궁구하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나왔습니다그려."

"으음? 총단주?"

"누구여요? 전에 말씀하신 제리배천단이란 곳의 총단주인가요?"

"맞소. 바로 그요."

건우가 몽유희의 영혼이 있던 곳에서 2백 년 정도를 머물며 삼라만상 법칙을 살피고 나오자, 환상대시의 문 앞에 제리배천단의 총단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과거 배단주라 했던 용족을 포함하여 네 명의 선인이 더 있었다.

건우가 짐작하기로 배단주 이외의 세 명은 새로 단주가 된 이들로 보였다.

"보아하니 나를 기다린 것 같습니다만?"

건우가 총단주를 보며 물었다.

"그러합니다. 실로 강 선인께 부탁이 있어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부탁이란 말입니까?"

건우는 굳이 싸우자고 해도 피할 생각이 없었지만, 부탁이라고 하니 마음이 더욱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습니다. 부디 부탁드리오니 조화선인의 기록을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으음? 조화선인의 기록을 말이오?"

건우는 뜻밖의 부탁이라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제리배천단의 숙원 사업으로 구룡승룡단을 만들고 조화진법을 만들 것입니다. 그러자면 그 기록이 필요하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건 제리배천단이 조화선인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오?"

건우는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되묻고 말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 기록을 나눠 준다고 해서 건우가 손해를 볼 일도 없었다.

‘천지 법칙이 또다시 누군가를 근원으로 불러들일 수작을 꾸미는 것이군. 결국 언젠가 삼라만상의 법칙을 받을 자격을 지닌 이를 근원으로 끌어들이겠지. 그러고 보면 내가 그곳에 닿은 것도 결국 천지 법칙의 의도였던 건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은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 있으니 가지고 가시오. 이젠 내가 신경 쓸 일도 아니니."

건우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이 소매에서 옥간 하나를 꺼내 총단주에게 던졌다.

그러자 총단주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데리고 온 단주들과 함께 허공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법칙 삼라만상을 다시 살피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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