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94화 (494/499)

(494)

< 삼라만상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

"조화선인을 알고 있었습니까?"

건우가 몽유희를 보며 물었다.

= 몰랐느니. 너와 헤어질 때에도 몰랐느니라. 그저 네가 반려를 지극히 아끼는 것을 보고 참된 것을 보았다 만족하며 분체로 너를 도왔을 뿐이니라.

"그런데 이후에 저의 행적을 살펴보니 조화선인의 이야기가 나오더란 말씀이군요?"

= 그러했다. 도대체 흑와류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했느니라. 더구나 그곳에서 일어났던 엄청난 천겁뢰운은 그야말로 선계 역사에서 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지.

"그래서 더 자세히 알아보셨다는 말씀이군요."

= 그렇다.

"하아."

몽유희의 대답에 건우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세요? 왜 그리 근심을?"

유정정이 이유를 몰라 물었다.

"몽 선인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면, 또 다른 누군가 그것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것이 걱정이셔요?"

"우리를 귀찮게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호호호. 상공께서 무엇이 겁이 난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상공께선 여러 법칙들에서 도조들과 비견될 깨우침을 얻지 않으셨어요? 그런데 어찌 걱정을 하고 그러셔요."

"이리저리 얽히다 보면 또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소. 나는 그저 당신과 평온하게 살고 싶을 따름인데."

"저도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앞으로 번거로운 일이 있더라도 그 또한 상공의 업보인 것을요. 여기 몽 선인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 또 할 말이 없는 건우다.

그래서 슬그머니 몽유희의 영혼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몽 선인께서 제가 조화진법을 발동시킨 것을 아셨다는 말인데, 그것이 지금 몽 선인의 모습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기다렸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3만 년의 시간을 이런 좁고 답답한 공간에 머물다니.

= 그리 의심스럽게 볼 것은 없느니라. 나는 그저 내 본성에 따라서 선택을 했을 뿐이니.

"본성이라 하시면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 뭐긴 뭐겠느냐. 나는 일생을 재미를 위해 살았으니 이번 역시 그러할 뿐이다. 네가 천지 법칙의 근원에 닿았다는 가설을 가지고 이리저리 애쓰다가 내가 무엇을 알아냈는지 아느냐?

"음, 모르겠습니다."

= 호호호. 사실을 말하자면 참으로 우연한 일로 나는 대천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상들에 대해 알게 되었느니라.

"대천 세계가 아닌 또 다른 세계라면, 혹이 윤회를 통해서 올라간다는 한 차원 높은 세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건우는 선계에서 금선, 옥선, 대라, 도조 등의 직책을 받아 천지 법칙의 운행을 돕는 대가로 윤회할 수 있다는 상위 세상을 떠올리며 물었다.

= 아쉽게도 그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그 상위 세계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그조차도 이곳에 오래 머무는 동안에 기억이 거의 날아가 없어졌지.

"그렇습니까? 그런 세상에 대한 것을 잊어버렸다니 아쉬운 일이군요."

= 호호, 아쉬울 것이었다면 내가 기억이 날아가도록 뒀겠느냐? 적어도 나에겐 그리 중하지 않은 내용이었을 것이니라.

"음. 그 말씀은 새로 발견했다는 세상들이 몽 선인께는 더욱 흥미로웠다는 말씀이군요?"

= 그렇지. 바로 그렇다. 그리고 그 세상들과 네가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 나는 곧바로 상위 세계로의 윤회를 포기하고 너를 기다리겠다고 작정했느니라.

"다른 세상이 저와 관계가 있다고요?"

건우는 문득 몽유희가 자신이 살던 지구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살짝 긴장했다.

= 정확하게는 네가 천지 법칙의 근원에서 가지고 왔을 '삼라만상'이지. 그것이 다른 세상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었느니라.

"삼라만상이 다른 세상들과 연관이 있다고요? 그럼 혹시 삼라만상이 원래 다른 세상에서 온 것입니까?"

건우는 자신이 다른 세상에서 대천 세계로 온 것을 떠올리며 그렇게 물었다.

=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네가 아직 삼라만상의 진정한 힘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진정한 힘이라니요? 삼라만상은 대천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법칙이 조화롭게 아우러진 하나의 법칙입니다. 저는 그렇게 보았습니다."

건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무시를 당하자 발끈하며 그렇게 대답했다.

= 너는 삼라만상을 하나로 보는 것이냐?

이에 몽유희가 건우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여럿이 더해진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로 완성되었다고 봅니다."

건우는 숨기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삼라만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면 굳이 숨길 일도 아니었다.

그런다고 몽유희가 건우의 삼라만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님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삼라만상은 자신의 의념 공간에 들어온 후로 완전히 의념 공간과 하나가 되어 버린 상태였다.

건우 자신을 죽일 수는 있어도, 자신에게서 삼라만상을 빼앗거나 뽑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법칙에 대한 깊은 이해에 도달한 이후로 더욱 확신할 수 있게 된 사실이었다.

= 좋구나. 그래도 벌써 삼라만상에 확실한 의미를 부여했음이 아니냐. 아주 좋구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좀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시지요?"

건우가 혼잣말처 럼 감탄을 거듭하는 몽유희를 보며 추궁하듯이 말했다.

= 그래, 내가 너에게 부탁할 것도 있는데, 무엇을 숨기겠느냐.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마.

몽유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그녀가 알아낸 삼라만상에 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 삼라만상이 그런 것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몽유희의 이야기가 끝나고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후, 유정정이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새삼스럽 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보고 있었다.

= 그럴 것이다. 자신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어찌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

몽유희가 아직도 말을 하지 못하는 건우를 보며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삼라만상, 그것은 건우가 알아낸 것처럼 대천 세계의 모든 법칙이 아우러진 것이었다.

그 말은 대천 세계를 유지하는 거대한 천지 법칙의 흐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이야기다.

크기만 작을뿐.

그러니 그 삼라만상이면 세상 하나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만 삼라만상의 크기가 작으니, 당연히 그것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도 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삼라만상이 커진다고요?"

유정정이 몽유희를 향해 물었다.

= 커진다고 해야 할까? 힘이 강해진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점차 포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지. 그래서 결국 하나의 세상을 유지할 정도까지 되는 것이고.

"그러니까 몽 선인께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는 다른 세상들이란 것이 모두 삼라만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세상이라는 것입니까?"

= 그렇다. 네가 천지 법칙의 근원에서 삼라만상의 일부를 얻은 것처럼, 이전에도 그와 같은 기연을 얻은 이들이 있었던 것이지.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가 많았다는 말씀이지요?"

= 내가 아는 세상만 적어도 서른은 넘는 것으로 안다. 물론 그 중에는 아직 영계 규모도 되지 않는 작은 세상도 더러 있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상이 대천 세계에 속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전에 수미 세계니 무슨 세계니 하며 인계나 영계를그리 부르곤 했는데 말입니다."

= 그건 절대 아니다. 내가 말한 세상은 대천 세계와는 전혀 다른, 독립된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삼라만상은 절대 한 세상에 두 개가 있을 수 없음이다.

"네?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한 세상에 두 개가 있을 수 없다니요. 분명 제가 대천세계에 있고, 또한 제가 삼라만상의 일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건우는 앞뒤가 맞지 않는 몽유희의 말에 놀라며 물었다.

= 그 답이야 어려울 것이 없지 않으냐. 그리고 그것이 지금껏 내가 너를 기다렸던 이유인 것이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 삼라만상이 한 세상에 두 개가 있을 수 없다면, 네가 가진 삼라만상이 있는 곳은 대천세계가 아닌 것이지. 그게 무에 어려운 추측이란 말이냐?

"허! 제가 가진 삼라만상이 있는 곳은 대천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 그리 말씀하신 것입니까?"

= 그렇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너를 기다렸다 하기도 했고.

"일단 알았습니다. 몽 선인의 말씀이 옳은지는 나중에 따지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삼라만상이 다른 세상에 있다는 것과 몽 선인께서 윤회를 미루고 저를 기다리신 것에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건우는 몽유희의 입장부터 확실히 파악하기로 했다.

당장 자신의 의념 공간이 대천 세계와 다른 세상이라는 말은 당장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많은 고민을 해야 될 문제니 일단 뒤로 미루고, 몽 선인에 대한 것부터 해결하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 내가 앞서도 일렀거니와, 나는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당연히 호기심이 동하고 재미있을 것 같은 일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지.

"그 말씀은?"

"아무래도 상공이 가지고 계신 세상으로 가고 싶다는 말씀인 듯 한데요?"

가만히 듣고 있던 유정정도 이제는 몽유희의 뜻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 옳다. 또한 나는 너의 도움을 받아서 네 삼라만상의 세상에 다시 윤회하더라도 일부라도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나고 싶으니라.

"기억을 가지고 윤회를 하고 싶다니요? 원래 윤회가 그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 아무렴 어떠하냐. 네가 그 세상의 주인이나 다름없지 않으냐. 삼라만상의 규칙을 어기는 일이라도 네가 주인인 이상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부탁을 하는 것이고.

"확실히 가능성이야 있습니다. 하지만그런 짓을 했다가는 삼라만상에 큰 무리가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생성 초기의 세상에 처음부터 어긋남이 생기겠지요."

건우는 짧은 생각으로도 몽유희의 부탁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 너는 앞서 삼라만상을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던 이들이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그런데 그런 건우를 보며 몽유희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어찌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건우가 물었다.

= 내가 모두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아는 그 일부 중에 삼라만상의 주인이 있는 세상은 하나도 없다.

"그,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주인이 없다니요?"

= 모두가 삼라만상에 흡수되어 사라진 것이지.

"네에?"

"아니, 그럼 상공께서 위험하신 것이잖아요!"

건우는 물론 유정정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 나는 내가 아는 것만 말을 할 뿐이다. 그러니 나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어찌 화를 내겠습니까. 몽 선인께 무슨 잘못과 책임이 있다고. 절대 아닙니다."

건우가 살짝 고개를 숙이 며 사과했다.

그러자 유정정 역시 따라서 고개를 숙였다.

= 그렇게까지 할 것이야 뭐가 있겠느냐. 마음에 두지 마라.

몽유희는 그렇게 말하며 의념을 일으켜 두 사람의 자세를 바로 하려 했다.

물론 영혼만 남은 몽유희였으니 그것은 그저 시늉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시늉만으로도 영혼에 부담이 되는 일임을 알기에 건우와 유정정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고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런데 문득 생각하니, 앞서 하신 말씀에 큰뜻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그런 것입니까?"

고개를 들고 몸을 세운 후, 건우가 신중한 표정으로 몽유희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곁에 앉은 유정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건우를 바라봤다.

= 네 생각은 어떠하냐?

몽유희가 도리어 건우를 보며 물었다.

"저에게 초기의 삼라만상에 흠을 만들 수밖에 없는 부탁을 하신 후에, 다른 세상에서 삼라만상의 주인들이 소멸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 그래서?

"그것은 삼라만상의 완전한 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틈을 만들어야 제가 존재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매번 생각하지만 너는 무척 영민한 바가 있다. 그래,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것이라니요? 삼라만상을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상공의 안정(安定)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란 말인가요?"

유정정이 답답하다는 듯이 몽유희에게 확인하듯 물었다.

= 내가 지금껏 궁구하기로는 바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 또한 정답이라 자신할 수는 없구나.

유정정의 다그침에 몽유희는 그렇게 답하고는 팔짱을 낀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모습, 이에 건우 역시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려 의념 공간에 집중하여 삼라만상 아래에서 유정정의 본신과 마주했다.

- 아, 혼란스러워요.

그런 두 사람 앞에 몽이가 모습을 드러내며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 삼라만상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