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83화 (483/499)

(483)

< 선계의 큰비밀을 전해 듣다 >

유희가 건우에게 전하려는 말을 막으려는 천지 법칙의 경고.

하지만 유희는 이미 각오했다는 듯이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모두가 잘못 알고 있지.”

“뭘 말입니까?”

“대의를 깨달은 선인들에 대해서.”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천지 법칙을 관통하는 거대한 깨달음의 뒤에 선인들이 자아를 잃는다고 하지.”

“그렇습니다.”

“그거, 거짓말이야.”

콰르르르릉! 번쩍! 꽈르릉!

천겁뢰가 사납게 내리쳐 거용의 머리를 때렸다.

하지만 그 기운은 그리 강력하지 않아서 거용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못했다.

그러니 그런 뇌전이 건우나 유희에게 이르러서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거짓말이라니요? 그렇다면 금선, 옥선, 대라선 등의 선인들이 자아를 잃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맞아. 그들은 사실 모든 업보와 공덕을 떨쳐내고 윤회에 들었을 뿐이야.”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갑자기 윤회라니요?”

“등선자들의 불로불사도 시간이 흐르면 허망해지기 마련이 아니냐. 그래서 다들 정신을 놓게 되고 말이다.”

“그런 경우가 많다고는 들었습니다. 그것이 선계 선인들의 큰 문제라고도.”

“그렇지. 결국 오래도록 수련을 거쳐서 등선자가 되어도 한계는 있기 마련이란 뜻이다. 불로불사? 그것은 허상이야.”

“하지만 수백만 년을 살아가는 선인들도 많지 않습니까.”

“호호호. 고작수백만 년이 무슨 대수란 말이냐? 대천 세계의 역사가수억 겁에 이를 것인데?”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아, 이야기가 어긋났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지. 천지 법칙의 큰 깨우침을 얻은 선인들이 자아를 잃은 것이 아니라 윤회에 들었다는 것.”

“그렇군요. 하지만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상하냐? 윤회에 들었다는 선인들이 여전히 금선, 옥선, 대라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거?”

“그렇습니다. 바로 그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건우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격앙된 목소리를 내었다.

“호호호. 윤회에 드는 것은 순수한 영혼뿐, 그가 오랜 수련을 통해서 얻은 법칙에 대한 깨우침은 그대로 남는 것이다."

“네? 법칙에 대한 깨우침이 남다니요?”

“어찌 설명을 할까……. 그래, 이런 것이지. 오랜 세월 법칙을 다루어 오던 수많은 사례들이 모여서 하나의 질서, 흐름을 만들었다고 할까? 나를 예로 들자면 말이다.”

“유희 선인님을요?”

“아니, 정확하게는 대라선 몽유희라 해야겠지. 이 몸은 오랜 세월 법칙을 다스리며 천지 법칙의 흐름에 맞게 살아왔느니라.

그 오랜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결국 더는 새로울 것이 없을 만한 상황이 되지. 너도 알지 않느냐. 괴뢰를 만들 때에도 그런 식의 술식을 새겨 넣지 않더냐. 물론 대오각성한 선인들로 금선이나 옥선, 대라선, 도조 따위을 만들 때에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겠지만.”

“아, 아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너무도 황당한 이야기를들어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습니다.”

유희의 말이 길어지자 건우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다른 손을 내밀어 그 말을 끊었다.

그리고 건우는 심각하게 유희의 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흘의 시간이 흐른 우, 건우가 고개를 들고 유희를 바라보았다.

“천지 법칙의 큰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결국 자신이 지금껏 수행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수한 영혼으로 윤회에 들었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수행의 결과가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 따위로 남아서 천지 법칙의 운용을 돕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렇다. 그것이 바로 내가 너에게 해 주려던 참(眞) 모습이니라.”

쿠르르릉! 꽈릉! 꽈릉! 콰과강!

유희의 말에 하늘을 가득 채운 보랏빛 구름과 샛노란 뇌전이 성을 내며 머리 위에서 뒤틀렸다.

하지만 곧 그 구름과 뇌전은 힘을 잃고 빠르게 사라져갔다.

고작해야 화신기 승경에나 나타날 정도의 구름과 뇌전이라, 결국 유희에게 경고를 하려는 것일 뿐, 실질적인 억지력은 없는 천겁뢰운이었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합니다. 네, 이해할수 있겠습니다.”

건우는 조금은 멍한 눈빛으로 그렇게 중얼거 렸다.

- 건우 님의 세상으로 보자면, 대천 세계 운용에 필요한 무슨 프로그램 같은 걸 만들고 윤회를 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몽이가 건우의 기억을 토대로 선인들이 남긴 수행의 흔적을 그렇게 비유했다.

건우도 몽이의 말이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대천세계를 아우르며 관리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이 있고, 그에 필요한 여러 프로그램들을 금선, 옥선, 대라선, 도조 따위로 비유하면 틀리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선인들의 등급은 상위 프로그램과 하위 프로그램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고.

“눈빛을 보아하니 정말로 이해를 한 것 같구나.”

“네, 어느 정도 윤곽은 잡은 것 같습니다.”

“그래, 어쨌거나그런 상황이니, 나 역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윤회에 들었어야 할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말씀이군요?”

“갑자기 미련이 남은 것이지. 그리고 실상 나와 같은 경우가 아주 없지도 않고.”

“막상 마지막 순간에 생에 대한 미련이 남아 윤회를 미루는 경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음,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지만 그 과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어서 좀 모자란 경우도 있는 것이지.”

“네?”

“깔끔하게 버릴 것을 버리고 윤회에 들지 못한 나 같은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덜떨어진 모자란 것, 말이다.”

“아니, 스스로를 그렇게까지 비하하실 것이야 있겠습니까?”

“아무튼 내 상황이 이러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리배천단 따위를 겁낼 이유도 없지.”

“여차하면 그냥 윤회를 하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시다는 거군요?”

“그렇다. 그러니 너는 나를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무슨 수작을 부릴 것도 걱정할 이유가 없고.”

“그건……"

“나는 그저 윤회 전에 남은 작은 미련을 떨치려 할 뿐이다. 그리고 내 미련이란 것은 별것도 아니다. 일생동안 꿈을 좇았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허(虛)가 아닌 실을 만져보고 싶을 뿐이다.”

“아니 그건 또 무슨……"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찾을 것이니 너는 신경 쓸 필요가 없느니라.”

유희의 바람을 들은 건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유희가 고개를 저었기에 건우는 말을 멈춰야 했다.

결국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너는 네 할 일이나 하라는 말이 아닌가.

“실로 선계의 큰 비밀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우가 우선 두 손을 모으고 깊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호호호. 그건 그렇지. 고마워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으니."

그러자 유희가 이전의 쾌활한 모습으로 돌아와 콧대를 세우며 과장스럽게 웃었다.

“깊이 새겨 두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서둘러 감여진인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감여진인? 그가 연화주를 가지고 있느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가 활동을 하지 않은지 오래 되었는지 거처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호호호. 대라선이 아니냐. 그렇다면 응당 나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

“네? 그럼 유희 선인께서 감여진인의 행방을 아신다는 것입니까?”

“이곳 허원계에 유독 고계 선인들이 많은 이유를 아느냐?”

건우의 물음에 유희가 또 반문을 던졌다.

이에 건우는 잠시 생각하다 답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윤회로 떠나고 남은 선인들의 유진(遺塵)을 관리하기 편하게 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호호호호. 너는 항상 나를 즐겁게 하는구나. 통쾌한 면이 있다. 옳다. 관리를 쉽게 하기 위함이라……. 실로 그토록 명확한 답은 없을 것이다.”

유희는 건우의 대답에 크게 웃으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어쨌거나윤회 법칙의 대라선 감여진인, 그가 허원계의 어디에 있는지 내가 잘 알고 있느니라. 호호호.”

“그, 그럼……"

유희의 말에 건우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제 드디어 정정을 만날 희망이 바로 앞에 있지 않은가.

“자, 그럼 출발을 해 보자꾸나. 물론 감여진인의 거처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를 만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습니까?”

“대라선의 거처가 아니냐. 그것도 본신은 윤회를 하고 그저 천지 법칙의 흐름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유진만 남은 상태의.”

“그러니 특별히 지키는 뭔가가 있을 거란 말씀이군요?”

“너 같으면 방치해 두겠느냐?”

건우는 뻔한 사실을 굳이 입에 담은 것은 부끄러워 말을 줄였다.

그리고 곧이어 유희 선인이 알려준 장소를 찾아 거용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어떠하냐? 대라선의 거처이니라.”

허원계의 한곳.

거대한 산맥을 발 아래에 두고 유희가 물었다.

건우는 그녀와 나란히 서서 아래쪽으로 굽어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산맥 전체에 강력한 진법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진법이 매우 고명합니다. 산맥을 공간으로 분리하였는데, 마치 한 겹을 그대로 복사하여 덮어씌운 것 같습니다. 감여진인의 실제 거처는 안쪽에 겉으로 보이는 산맥을 걷어 내어야 드러날 듯 합니다.”

“제법이구나. 그래서 어찌할 것이냐?”

“진법의 위력이 뛰어나지만 이미 진법의 내용을 파악한 마당에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껍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하냐?”

“제가 익힌 공간 법칙의 경지가 아주 몹쓸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망설이는 것이냐? 곧바로 들어가면 감여진인의 동부 앞에 닿을 수 있을 터인데?”

“일이 어찌 그리 쉽겠습니까? 그리 들어가면 당연히 침입자가 되어 온갖 금제와 진법, 선기, 선보의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허면 어쩌자는 것이냐?”

“이미 감여진인이 윤회를 해 버린 상황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꽤나 오래된 일이고요.”

“그렇지.”

“제가 허원계에 도착하여 감여진인에 대해서 알아보니 수미 세계에서 연화궁의 비극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부터 활동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네, 그래서 생각하건대, 정정이 연화주에 갇혔을 때의 감여진인은 그저 유진에 불과했겠지요.”

“그렇겠지. 상황이 그렇다 하고 있구나.”

“그럼 결국 연화주를 이곳으로 옮겨 감여진인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제리배천단의 누군가가 아니겠습니까?”

“네 말은, 감여진인의 거처에 제리배천단이 드나드는 뒷문이 있을 거란 소리구나?”

“그렇습니다. 지금 보건대 이곳에 있는 진법과 금제 등은 분명 대라선의 격에 어울릴만 합니다. 그렇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감여진인의 재주였을 거란 말이겠지요.”

“나도 그리 생각한다.”

“하지만 제리배천단에서 항시 대라선급의 누군가를 보내어 이곳을 관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경지가 낮은 이들이 드나들 수단을 만들어 뒀겠지요.”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의심이 가는 곳마다 의념을 펼쳐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산맥 전체를 뒤덮은 진법을 꼼꼼하게 살피기를 3년.

건우는 결국 교묘하게 숨겨놓은 생로(生路)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습니다.”

“그래? 어디, 어디에 있느냐?”

건우가 진법을 살피는 동안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던 유희가 눈을 번쩍 떴다.

“저기 저 봉우리 밑에 있는 작은 숲입니다. 그곳에 진법을 가로지르는 길의 입구가 있습니다.

건우가 손을 들어 산맥에 우뚝 솟은 봉우리들 중에 하나를 가리 켰다.

그리고 곧바로 거룡을 움직여 그 봉우리 아래로 날아갔다.

그런데.

“을 줄 알았다. 역적놈!”

봉우리 아래의 숲에 거의 닿았을 무렵, 숲에서 여섯 선인들이 득달같이 달려 나와 거용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지? 이놈들은?'

건우는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유희와 시선을 교환했다.

< 선계의 큰 비밀을 전해 듣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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