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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환장 통수 선협전-419화 (419/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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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지 도는 갈협선인 >

갈협의 눈에서 시퍼런 영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에 건우 역시 의념을 강건히 해서 갈협의 기세를 맞받았다.

“등선도 하지 못한 하찮은 놈이 감히 나에게 반항을 하려 해?!”

갈협이 그런 건우의 반응에 더욱 분노를 쏟아내며 의념을 강화했다.

하지만 그런 갈협의 공격은 건우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미 건우는 유혼결을 세 번이나 성공시킨 바가 있었고, 그것은 같은 경지의 평범한 수사들에 비해서 여덟 배나 강력한 의념을 지녔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진선경의 선인이라 하더라도 그런 건우를 압도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등선의 기준은 법칙의 힘을 다루는 것에 있는 것.

의념의 강도를 두고 비교하자면 건우가 밀릴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선인님이라 하시지만 이리 막무가내로 저를 핍박하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수도계에서 이런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지만 또 그 때마다 당하는 쪽에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저항을 하지요.”

건우가 갈협의 의념과 영기를 받아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여차하면 방어를 떠나 공격까지도 생각하고 있었다.

“크윽!”

갈협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건우의 모습에 당황하여 얼굴이 붉어졌다.

여기서 물러서는 것은 선인으로서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건우를 공격하자니 영기나 의념으로는 제압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니 선인의 전가의 보도라 할 수 있는 법칙의 힘을 써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건우 역시 법칙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갈협 자신이 법칙의 힘을 쓰는 순간, 그 때부터 법칙의 힘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근처에 있는 다른 선인들에게 알려질 것이고, 싸움이 격해져 법칙과 법칙의 충돌이 주변에 영향을 주게 되면.

‘그리 되면 천지 법칙의 개입이 일어날 것이다.’

멋대로 법칙의 힘을 쓰다가는 반드시 그 대가를 받게 된다.

그래서 선인들이라도 법칙의 힘은 천지 법칙의 흐름에 맞추어서 순리에 맞게 쓰며 그 흐름을 도울 뿐, 거스르는 경우가 드물다.

또한 간혹 천지 법칙의 흐름을 거역하는 방식으로 법칙의 힘을 쓰더라도 그것을 무마할 여지가 있는 정도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등선에 이른 선인이 그렇지 않은 이와 다툼을 벌이며 법칙의 힘을 쓰게 되면?

그 책임은 오로지 등선한 선인에게 묻게 된다.

‘저 놈과 법칙의 힘으로 다투게 되면 저 놈이 사용한 법칙의 힘까지 모두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갈협은 어금니를 깨물며 당장이라도 건우를 향해 내치고 싶은 부식(腐蝕) 법칙의 힘을 억눌렀다.

“놈, 내가 막무가내라고? 네 놈은 나와 거래를 했음이다. 그런데 네가 신수의 알을 빼돌리는 짓을 하는데 마냥 두고 보라는 말이냐?”

“제가 신수의 알을 빼돌린 증거가 있습니까? 다만 그럴 것이라 짐작한 것에 지나지 않지 않습니까.”

“이 노옴!”

“게다가 아까 말씀하시길 온전해진 신수의 알이 나타나면 천지 법칙이 호응한다 하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드린 말씀처럼 신수의 알은 마지막순간에 잘못되어 녹아 없어졌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있습니까?”

“너는 계속해서 말을 돌리고 있구나.”

“저를 어찌하시려면 제가 신수의 알을 숨겼다는 증거를 내어 보이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을 내밀겠느냐?”

“그건 그 때에 가서 봐야 하겠지요.”

“네가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어차피 내친걸음이 아닙니까. 그리고……"

건우는 탁자 위의 옥함을 다시 한 번 갈협 앞으로 스윽 내밀었다.

“무슨 뜻이냐?”

“이미 저를 의심하시는 마당에 제가 계속해서 갈협 선인과의 거래를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거래를 무르겠다는 것이냐?”

“제 뜻이라기 보다는 갈협 선인의 뜻이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다섯 번의 기회가 더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협 선인께서 저를 이리 핍박하셨으니 말입니다.”

“다섯 번의 기회가 남았다?’’

“그렇지요.”

“그럼 너는 그 다섯 번의 기회에서 한 번은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렸다?”

“그 또한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은 다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인께서 이미 저를 믿지 못하시니……"

“믿고 믿지 않고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 너는 어쨌거나 일곱 쌍의 알 중에서 하나는 온전하게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으니.”

갈협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었다.

솔직히 지금도 그는 건우가 완성된 신수의 알을 숨겼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게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자신은 건우가 부화 가능한 신수의 알을 내어놓으면 좋은 일이다.

혹여 실패한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든 받아 낼 명분이 생기는 것이고.

그러니 지금 여기서 계속 화를 내며 건우와의 거래를 무산시키는 것은 오히려 손해만 남는 일이다.

이미 신수의 알 두 쌍이 사라진 상황이 아닌가.

“책임이라 하시지만 이미 선인께서 판을 깨려 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마당에 계속해서 일을 시키신다 하여도 제가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건우가 대 놓고 갈협의 뜻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이미 갈협과 한바탕 충돌을 일으킨 마당인데 굳이 몸을 낮출 생각이 없어진 것이다.

“하기 싫다고? 그럼 영찬후는 포기하겠다는 뜻이구나?”

“어차피 그 하나를 얻어도 다른 둘을 더 찾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남은 둘을 얻지 못하는 이상, 선인이 가지고 계신 하나를 얻어봐야 무슨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

“영찬후는 하나라도 더 있으면 그만큼 특별한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영찬후 하나 따위라 할 수는 없지.”

“어쨌거나 온전하지 못한 상태인 것은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네 개의 특별한 효과에 하나가 더해지는 것이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끄응. 놈! 결국 나에게 다른 영찬후를 내어 놓으란 말이구나?”

“상황이 바뀌었으니 거래 내용도 바뀌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뻔뻔하구나. 내 신수의 알을 훔쳐간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대가를 추가로 요구해?”

갈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갈협을 바라보는 건우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럼 어쩌자는 것입니까? 저는 이대로는 갈협 선인과의 거래를 할 생각이 없습니다. 비록 영찬후 하나를 포기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제가 감수할 문제이지요.

“허어! 네 놈이 도대체 무엇을 믿고 이리 방자하게 구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너를 단숨에 때려죽일 수도 있음을 모르느냐?”

“그야 해 보면 알 일이 아닙니까? 앞서 견주어 보니 의념이나 영기로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는데,다음은 법칙의 힘입니까?”

갈협이 건우를 이리저리 협박해 보려 했지만 건우는 도리어 그런 갈협을 놀리듯 법칙의 힘을 거론했다.

이리 되자 갈협은 끝내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당장 건우에게 쓸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법칙의 힘을 휘둘러 건우를 죽여 없애고 싶지만 그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건우가 생기 법칙과 조율 법칙 두 가지를 다룰 수 있는데, 그런 건우를 자신의 부식 법칙으로 억누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또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건우와 자신이 사용한 법칙의 힘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냥 일거에 건우를 제압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싸움이 길어져 법칙의 힘이 이리저리 퍼지게 되면 갈협 자신이 그 모든 책임을 져야 했다.

건우가 등선을 한 선인이라면 각자에게 책임을 묻겠지만 등선자와 그렇지 않은 수사의 싸움에선 무조건 등선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것이 천지 법칙이 등선자들에게 적용하는 규칙이다.

이러니 갈협이 어찌 건우를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후우우. 놈! 제법 눈치가 빠르구나. 내가 너를 어쩌지 못할 것을 알고 있는 것이야. 그렇지 않으냐?!”

“갈협 선인께서 저를 마음대로 하시지 못하신단 말입니까? 그래서 그리 조심하셨던 것입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하하하. 몰랐다? 몰랐다고? 내가 그 말을 어찌 믿겠느냐. 믿는 것도 없이 고작 태령기 놈이 내 앞에서 이리 뻗댈 수는 없는 일이지. 그래, 그런 것이야. 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갈협은 뭔가를 깨달은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는 곧 마음을 추스르고 건우를 노려봤다.

“좋다. 네 놈이 그리 말을 하니 다시 거래 조건을 조정하겠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신수의 알 한 쌍을 온전하게 만들어 내게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나는 네가 찾고자 하는 영찬후의 행방을 찾아주마.”

“하하하. 고작 영찬후의 행방이란 말입니까? 그 정도야 굳이 갈협 선인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알아내지 못할 일이 아니지요. 과거 제가 녹각성 경매장에서 영찬후 세 개를 판매한 후에, 소란이 있었 고, 그 뒤에 영찬후가 감쪽같이 사라셨습니다. 이만한 정황만으로도 지금 그 영찬후가 누구의 손에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어렵겠습니까?”

“뭐라?”

“물론 그런 이야기야 모두가 선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것이라 제가 지금껏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만, 이전과 지금이 또 같은 수가 있겠습니까?”

“네가 선인들 사이의 일을 알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구나. 하긴 그렇겠지. 누군가 네게 충고를 하지 않았다면 어찌 네가 나에게 맞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 내 그것을 잠시 잊었구나.”

갈협은 이제 건우를 뒤에서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확신했다.

그 누군가가 건우에게 조언을 했거나 혹은 건우를 휘하에 두었을 수도 있었다.

어쨌거나 건우가 등선 후의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은 분명하고, 그런 자가 있다면 다른 영찬후 두 개를 정강 선인이 가지고 있음을 알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니 자신이 내건 조건은 별다른 가치가 없는 것이고.

“뿌득! 좋다. 내가 그 영찬후 두 개까지 더해서 세 개의 영찬후를 너에게 주도록 하마.”

“갈협 선인께서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닌데 그렇게 장담을 하시는 것은 무리가 아닙니까?”

“나는 이미 다른 두 개의 영찬후를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고, 그에게서 영찬후 두 개를 얻어 낼 자신이 있다. 그러니 그것은 네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

“좋습니다. 그리 자신을 하시니 믿어야겠지요. 그럼 그리 하는 것으로 하지요. 저는 신수의 알 한 쌍을 온전히 만들어 갈협 선인께 드리고 선인께선 제가 가진 영찬황의 후, 세 개를 모아 주시는 것으로 말입니다.”

“흐흐흐흐. 그래, 그리 하자꾸나. 하지만 너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네가 나에게 준 치욕은 절대 잊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라는 것이 있는데, 갈협 선인과 저의 갈등은 어디서 시작이 된 것이겠습니까? 책임이 저에게 있는지 갈협 선인께 있는지 숙고해 볼 일이라 생각합니다.”

“고얀 놈!”

쿠르르르르릉! 퍼석!

건우의 말에 갈협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영기를 뿌렸는데 건우가 그것을 막아내자 수련동부의 거실을 장식하던 가구들이 가루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신수의 알이 온전해지 면 다시 찾아오마. 혹여 남은 신수의 알을 모두 상하게 만들어도 찾아올 것이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억해라. 내가 너를 어찌 하려면 굳이 직접 움직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내 한마디에 너를 죽이려 움직일 아이들이 두 손으로 꼽고도 남을 정도는 되느니, 알량한 수작으로 나를 조롱한 대가는 후일에 반드시 받게 될 것이다. 흥!”

갈협은 마지막으로 그렇게 화풀이를 하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건우는 갈협이 사라진 자리를 한참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소매를 흔들어 거실을 정리했다.

순식간에 부서지고 무너진 거실이 정돈되며 새로운 가구들이 자리를 잡았다.

- 하여간 수도계의 놈들은 하나같이 아전인수의 첨단을 걷는 거 같아요. 제가 한 잘못은 생각도 않고……?

- 정말 정강 선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큰 일 날뻔 했어요.

그 때, 몽이가 퉁퉁 부은 얼굴로 나타나 투덜거렸다.

‘정강 선인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하지 말라니까.’

그냥 심언으로 저하고만 이야기를 하는 건데 뭐가 어때요? 이건 건우 님이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거와 다를 바 없잖아요.

‘그래도 혹시라도 입 밖으로 정강 선인의 이름이 나오면 곤란하니 그러는 거지. 그리고……

네네, 어차피 정강 선인 역시 완전히 믿을 수는 없죠. 건우 님이 옳아요.

< 꼭지 도는 갈협선인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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