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18화 (418/499)

(418)

< 거, 속여 먹기 쉽지 않네 >

대천 세계를 구분할 때에 보통 인계, 영계, 선계로 나눈다.

건우는 대천 세계의 경험을 인계에서 시작했고, 이후 영계를 거쳐 선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세 단계의 구분은 수사들의 경지를 나눌 때나 수도계 존재의 등급을 나눌 때에도 쓰이고 있었다.

인계급은 연신기에서 화신기까지의 수사와 그에 준하는 등급.

영계급은 입령기에서 태령기에 이르는 수사와 그에 준하는 등급.

마지막으로 선계급은 당연히 진선경 이상의 진정한 신선들과 그에 준하는 등급을 이른다.

따지자면 태령기 완경의 건우는 아직 영계급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건우의 경우에는 진선경의 수사들이 다루는 법칙의 힘을 어느 정도 깨우친 것이 있어서 선계급에 반쯤 걸쳤다 할 수 있겠다.

“이건 딱 봐도 선계급의 기물인데?”

건우는 갈협이 주고 간 옥함에 의 념을 불어 넣으며 중얼거 렸다.

같은 옥(玉)이라도 등급의 차이는 무궁하다.

범인들이 다루는 옥과 수사가 다루는 것이 같을 수 없고, 수사라도 경지에 따라서 다루는 옥의 수준이 다르다.

당연히 영계급의 수사가 선계급의 수련자원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 그래도 건우 님의 의념이 강력해 옥함을 연화할 수 있어서 다행이죠.

“그걸 못하면 옥함을 열 수도 없고,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살피지도 못했을 걸?”

- 그나저나 무슨 옥으로 만든 걸까요?

“보아하니 한옥(寒玉)의 종류인 듯한데, 그 기운을 잘 조절해서 안에 들이 있는 것이 상하지 않게 유지하고 있는 거지.”

-뭐가들었어요?

“음, 알(卵)이다.”

- 알이요? 무슨 알인데요?

“그건 모르겠다. 모두 합쳐서 일곱 쌍의 알이 있는데, 부화하면 뭐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 그 일곱 쌍 중에서 한 쌍이라도 제대로 키워내면 된다는 거네요?

“그렇게 쉽게 이야기 할 건 아닌 듯하다. 이거 굉장히 격이 높은 존재의 알이 분명하거든.”

그래요?

“음, 어쨌거나 내가 마침 생기 법칙과 조율 법칙을 익히고 있으니 어떻게든 알을 부화시킬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럼 다행이네요. 만약 그걸 못했으면 그 갈협이란 선인이 건우 님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잖아요. 그냥 곱게 넘어가진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지.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떠난 것을 보면 확실히 실패 후에 어떤 올가미를 씌울지 모를 일이지.”

건우는 갈협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어쩐 일인지 자신에게 어떤 일을 강제하는 모습은 그닥 없었다.

하지만 그게 갈협의 의지라기 보다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중에 갈협이 맡긴 일은 되면 좋고, 안 되면 그에 맞춰 건우를 어찌 해 보려는 뜻이 담긴 듯 보였다.

“어쨌거나 여기 이 알에 무슨 함정을 파 놓은 것은 아닌 듯 하니 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면 되겠지.”

실패하진…….

“않을 거다. 이전에 흡기토성유근의 구근을 배양한 경험이 있으니 일곱 쌍의 알들 중에 한 쌍을 성공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게다.”

건우는 일곱 번이나 기회가 있는데 성공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서두르거나 가볍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래도우선 이게 무슨 알인지부터 알아봐야지.”

부화시키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   *   *

건우는 녹각성의 영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갈협이 맡긴 알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는데, 그 과정에서 건우는 의외로 선계급에 대한 정보가 드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선계급의 수사는 물론이고 생물이거나 무생물, 공법, 비방, 갖가지 수련자원 등등, 거의 모든 정보가 막혀 있었다.

“아주 지들 끼리만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란 거지. 아래에 있는 놈들은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거고.”

건우는 화를 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알의 정체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마당에 선계의 정보 통제를 자신이 어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건우는 수련동 거실에 앉아서 탁자 위에 놓인 손바닥 두 개 넓이의 옥함을 노려보았다.

그 안에는 여전히 처음 받았을 때처럼 일곱 쌍의 알이 들어 있었다.

아직 손을 대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 상황인 것이다.

“무엇의 알인지는 몰라도 일단 꽤나 위태로운 상태인 것은 분명해. 생기도 부족하고 내부의 기운도 제 멋대로 날뛰고 있어.”

건우는 녹각성을 통해서 알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동안에도 알들의 상태를 살피는 일은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옥함에 들어 있는 알들이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임을 알아낼 수 있었다.

“이건 일종의 미숙아들 같은 거지. 제대로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낳은 거야.”

알을 낳는 어미들이 항상 최상의 상태인 알만 낳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엔 처음에 낳은 몇 개의 알은 낳자마자 어미가 먹어치우기도 한다.

그렇게 알을 먹는 것으로 힘을 얻어 나머지 알을 좋은 상태로 낳으려는 것이다.

물론 지금 건우가 가진 알은 그런 용도로 낳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낳자마자 먹어치웠을 것이니, 이건 어미가 미처 성장하지 못한 알을 조산한 경우일 것으로 보였다.

“낳아 놓고보니 미숙란(未熟卵)이었던 거지. 그래서 버렸을 거고, 그걸 갈협이 챙겼다면 이야기가되겠지.”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 손을 뻗어 옥함에 올렸다.

그리고 의념을 집중하여 알을 더욱 자세히 살폈다.

“일곱 쌍 중에서 특별히 차이가 있는 것은 없다. 모두가 비슷한 상태야. 자, 그럼 여기서 알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이어서 각각 날뛰는 기운에 균형을 잡아주면 되겠지.”

건우는 그 동안 알을 부화시 킬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아봤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기를 보충해주고 기운의 균형을 맞춰 준다는 간단한 것이었다.

알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기본과 일반의 선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시작해 보자. 목표는 한 쌍의 알도 실패하지 않고 모두 성공하는 것으로…… 건우는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몽이를 시켜 함 속에 있는 알 한 쌍을 의념 공간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순간 먼 곳에 있던 갈협은 건우가 한 쌍의 알을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갈협조차도 건우의 의념 공간으로 옮긴 알은 세상에서 사라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일단 숨겨 두는 건가요?

그런 건우의 행동에 몽이가 확인하듯 물었다.

“그런 거지. 그리고 혹시라도 첫 시도가 성공하면 나머지 남은 것들도 의념공간으로 옮겨서 숨길 거야. 어차피 갈협 선인은 한 쌍이라도 성공하면 그만이라 했으니까.”

그렇죠! 괜히 갈협 선인에게 좋은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죠. 헤헤.

“그래. 그럼 어디.”

건우는 그렇게 한 쌍의 알을 숨기고는 이어서 한 쌍의 알을 옥함 밖으로 꺼냈다.

이번에는 건우가 직접 의념을 불어 넣어 한 쌍의 알을 옥함 밖으로 꺼낸 것인데, 건우는 옥함의 뚜껑을 열지 않고 뚜껑을 투과해서 알을 꺼냈다.

알은 뚜껑을 액체처럼 뚫고 나왔는데, 건우는 그 즉시 알을 작은 자기 병에 넣었다.

알이 들어 있던 옥함과 완벽하게 같은 환경을 지닌 병이니 문제는 없겠죠?

“3년은 버틸 테니 그 시간이면 충분히 결과가 나오겠지.”

몽이의 물음에 건우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자기로 된 병은 건우가 알들이 담겨 있는 한옥(寒玉) 상자를 본떠 만든 것으로 3년 정도는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었다.

건우는 그 자기 병 안에 알을 넣고 생기 법칙을 이용하여 생기를 부여하고, 조율 법칙을 이용하여 알에 담긴 기운의 균형을 잡았다.

“중요한 것은 서둘지 않는 것이지. 생기 법칙은 살아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으니까.”

네, 그나마 다행인 건, 옥함이 알들의 성장을 완전히 멈춰두고 있다는 거죠. 알이 성장해서 부화되는 과정의 변화가 없잖아요.

“그래. 솔직히 알이 부화하는데 부족한 것이 생기뿐이고, 어긋난 기운만 제대로 잡아주면 되는 거라면 성공 가능성은 무척 높을 거다.”

역시 우리 건우 님!

건우의 말에 몽이가 척하고 엄지를 들어 주었다.

그리고 1 년 정도 건우가 정체불명의 알에 집중했을 때, 건우는 성공을 예감했다.

의외로 부족한 생기를 보충하고 기운의 균형을 맞춰준 것만으로 알에서 느껴지던 불안함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다.

건우는 그 느낌만으로도 자신의 시도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건우에게 좀 곤란한 상황이었다.

알이 온전해진 것을 알게 되면 갈협이 언제든 들이닥칠 수도 있는 문제고, 그리 되면 남은 알들도 되돌려 주거나 혹은 온전한 상태로 만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건우는 곧바로 몽이를 불러 자기 병 안의 알을 의념 공간으로 옮겨 버렸다.

거의 완전해진 알을 서둘러 숨겨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건우는 자신의 수련 동부 영역으로 불청객이 찾아드는 것을 느꼈고, 곧이어 수련동의 거실에 갈협이 나타났다.

“으음. 누구인가 했더니 선인이셨습니다?”

자신의 맞은편 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난 갈협을 보며 건우가 몸을 일으켜 허리를 숙이며 그렇게 인사를 했다.

어찌 연통도 없이 멋대로 남의 거처를 드나드느냔 숨은 뜻이 있음을 모를 수가 없는 인사였다.

갈협이 그런 건우의 인사에 살짝 눈썹을 꿈틀거 렸다.

그러곤 곧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건우에게 물었다.

“어찌 된 것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요?”

건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물었다.

“내가 분명 온전한 알이 만들어진 것을 느꼈는데 어찌 그것이 사라졌느냐 묻는 것이다.”

“온전한 알이 만들어졌다고요? 설마 그럴 리가요?”

건우는 여전히 모르쇠를 고수하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놈! 감히 나를 속이려는 것이냐? 네 놈이 그 알을 완성시키는 순간 천지 법칙이 반응을 보였음이다. 그런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

"그럼 그게 지금도 여전합니까?”

버럭 화를 내는 갈협을 향해 건우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뭔지 몰라도 알을 온전하게 만드는 순간에 천지 법칙이 그것에 반응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자신의 의념 공간은 이전부터 그 무엇이든 존재를 거의 완벽하게 감춰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이하게도 윤회를 하며 의념공간에 변화가 생긴 이후로 더욱 효과가 강화된 듯 보이기도 했다.

건우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혹시 천지 법칙조차 속일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갈협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으음. 내가 화를 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분명히 알이 온전한 상태가 되어 천지 법칙이 거기에 호응을 했는데 갑자기 그 알이 사라졌다. 그 말은 네가 완성된 알을 훼손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이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사실 어느 정도 성과가 있기는 했지만 알을 온전한 상태로 만드는 것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알이 녹아 버렸지요.”

“끄응. 그렇게 되었다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저 알이 어느 정도 완성에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천지 법칙이 꿈틀거린단 말인가?”

갈협은 건우를 앞에 두고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건우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결국 갈협이 꾸민 표정을 벗어던지고 건우를 노려봤다.

“놈! 아주 가증스럽구나. 누구든 지금의 너를 봤다면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결국 갈협이 목소리를 높이며 건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건우는 이 번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런 갈협 앞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노옴! 그럼 묻겠다. 네 놈이 가졌다는 그 영찬황과 영찬후는 어디에 있느냐?!”

!!”

갈협이 고함치며 물었고, 건우는 갈협이 찌른 회심의 한 수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갈협은 건우가 무언가를 숨겨 두는 특별한 수단이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온전하게 만든 알을 그곳에 숨겼으리란 짐작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제 재산에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영찬황과 영찬후에 대해서는 욕심이 없다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잠시 후, 건우는 불안한 표정을 연기하며 갈협에게 물었다.

마치 갈협이 자신의 보물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냔 의미가 담긴 표정이었다.

“노옴! 엉뚱한 이야기를 늘어 놓아서 핵심을 비껴가려 하지 마라. 나는 영찬황과 영찬후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숨겨 놓은 방법을 묻는 것이며, 아울러서 그곳에 숨긴 신수의 알을 내놓으라 하는것이다!”

“신수의 알? 제게 맡긴 것이 신수의 알이었습니까? 저는 몰랐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말씀을 드리거니와 제게 남은 알은 다섯 쌍으로 여기 옥함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건우는 갈협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탁자 위에 놓인 옥함을 갈협 쪽으로 내밀었다.

갈협은 그런 건우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노려봤다.

“네 놈이 끝까지……"

< 거, 속여 먹기 쉽지 않네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