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 순조로운 거래 완료지만 그게 더 이상하다 >
“일단 살펴보십시오. 하지만 선택은 제가 먼저 할 것입니다.”
“아직 순서를 정하지 않았는데, 그건 너무 강 수사에게 유리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하. 앞서도 말을 했지만 저는 그리 염치가 없는 인간이 아닙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새로 배양된 열여섯 개의 구근 중에서 각별한 하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먼저 선택을 한다고 해서 제가 크게 유리할 것은 없지요.”
“으음? 그건 확인을 해 보면 알겠지.”
“어쨌거나 일을 이끈 것이 이 강 모인데, 선택권까지 부 수사에게 양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 것일 뿐, 특별한 구근이 있어 그것을 선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기다리게. 내가 이것들을 면밀히 살피고, 강 수사의 말이 틀리지 않다면 순서를 양보할 것이니.”
건우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부도치는 끝까지 구근들을 확인했다.
하지만 작은 구근들은 품고 있는 기운의 크기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지라도 흡기토성유근(吸氣土性留根)으로서의 정체성만은 모두 확실했다.
게다가 아직은 성장을 시작하지 않은 것이라 차이가 있는 것일 뿐, 이후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키우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 당장 기운이 조금 약한 뿌리라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은 아니었다.
정말 문제가 될 것들은 이미 실패작으로 불태워 버린 걸 눈으로 확인했던 부도치였다.
“확실히 강 수사의 말이 틀리지 않군. 이 중에 몇 개가 조금 기운이 성하긴 하지만 그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보긴 어려워. 이것들 중에 어느 것을 택하든 별 상관은 없겠어.”
“그렇지요?”
“좋네. 강 수사가 먼저 선택을 하게. 이후 번갈아 가며 하나씩 취하기로 하지.”
부도치는 이번에도 화통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는 문제를 오래 끌지 않고 단호하게 결정하는 성향인 듯 했다.
건우도 그런 부도치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열여섯 개의 구근 중에 하나를 취했다.
“그럼 저는 이것으로 하지요.”
“좋군. 이 중에 기운이 가장 성한 것이야. 그럼 나는 이것으로.”
부도치는 당연히 그럴 것으로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 또한 남은 것들 중에 가장 좋은 놈으로 골라갔다.
이후 건우와 부도치는 번갈아 가며 흡성토기유근의 구근을 나누어 가졌다.
각기 여덟 개 씩의 구근을 가지게 된 것이다.
“실로 생각지 못한 보물을 얻게 되었군. 강 수사 고맙네.”
“저 또한 이득을 얻었으니 서로 좋은 일인데 인사를 받기는 민망합니다.”
“아니지. 아니야. 고래로 우리 성토문이 고령토 대지에 자리를 잡은 이후, 지금껏 흡기토성유근은 두 개만 가지고 있었네. 개토, 복토, 활토의 동도들 역시 두 개씩을 가지고 있어서 총합이 여덟 개 였지.
“그렇습니까? 그리 수가 적은 줄은 몰랐군요.”
“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렇게 여덟 개의 흡기토성유근이 새로 생기게 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겠나?”
“앞으로 고령토 대지가 두 배로 넓어지게 되겠군요. 거기에 더해서 토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수사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고 말입니다.”
건우는 늘어난 흡기토성유근으로 생길 변화를 그렇게 짐작했다.
“그렇지. 흡기토성유근이 두 배가 되었으니 당연히 그런 변화가 생기겠지. 그런데 개토와 복토, 활토의 동도들이 우리 성토문에서만 열 개의 흡기토성유근을 소유한다면 가만히 있을까?”
“분쟁이 생긴다는 말이군요?”
“나와우리 성토문이 욕심을 부린다면 당연히 그리 되겠지.”
“그래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건우는 부도치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해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만 입을 다문다면 흡기토성유근을 다른 4대 수도 문파와 나누어 가질 생각이네. 하나씩!”
“아하, 네 개는 부 수사께서 따로 관리를 하시고, 다른 네 개는 서로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나누기는 하겠지만 전부 나누진 않겠다는 이야기다.
그런 부도치의 말에 건우는 그에 대한 판단에 혼란을 느꼈다.
부도치가 선하고 의로운 이인지 아닌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런데 그리 하자면 당연히 강 수사의 협조가 필요하네.”
“그런데 굳이 네 개를 부 수사가 따로 관리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구근을 홀로 제어하여 복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말입니다.”
“허어, 내 의도를 잘못 이해했군. 나는 구근에 사사로운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네.”
“아니라고요?”
“그렇다네. 내가 따로 네 개를 관리하겠다는 것은 혹시라도 우리 성토문이나 다른 문파에 속한 흡기토성유근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네.”
“그러니까 탈이 나는 곳이 생기면 그것을 보충해 주기 위해 따로 관리를 하겠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지. 그리고 또 흡기토성유근의 수가 너무 많아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경계라니요?”
“고령토 대지가 너무 커지게 되면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겠나. 넘치는 것이 모자람만 못한 경우는 왕왕 있는 법이니.”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참으로 혜안을 지니셨습니다. 이 강 모가 새삼 깨달아 배우는 것이 많습니다.”
건우는 다시 한 번 부도치를 향해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였다.
“그럴 필요 없네. 그저 이번 일이 밖으로 퍼져 나가는 일이 없도록만 해 주면 되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와 부 수사 사이의 거래는 절대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겠습니다.”
건우는 부도치를 똑바로 쳐다보며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약속 하겠나?”
“물론입니다.”
“하하하. 고맙네. 이제 마음이 놓이는군.”
부도치는 건우에게 몇 번 확인하며 약속을 받고는 기쁜 표정으로 크게 웃었다.
그러다가 부도치는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건우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이제 강 수사는 원하면 얼마든지 흡기초성유근을 만들어 낼 수 있겠군. 강 수사 역시 구근을 여덟 개나 가지게 되었고, 그것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부도치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
혹시라도 건우가 흡시토성유근을 다수 배양해 내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 또한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미 약속드린 그대로 저는 흡기토성유근을 세상에 함부로 퍼트릴 생각이 없습니다. 미래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것이 제 진심입니다.”
“흐흠. 미래를 알 수 없다는 말이 무섭긴 하지만, 그것까지 따질 수는 없겠지. 어쨌거나 모쪼록 흡기토성유근으로 세상에 혼란이 일지 않기를 바라겠네. 그리고……
“달리 더 주실 가르침이 있으십니까?”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강 수사의 태도가 바르고 어긋남이 없으니 충고를 해 주려고 하네.”
“듣고 뼈에 새기겠습니다.”
“과거 고령토 대지에 토 속성 공법을 수련하는 문파가 하나 있었네. 하지만 그 문파는 멸문을 당했고, 이후 우리 성토문을 비롯한 4대 수도 문파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지.”
“네,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고대 수련 문파가 멸문을 당한 이유가 흡기토성유근 때문임은 몰랐겠지?”
“네? 그게 정말입니까?”
건우는 부도치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대 수도 문파의 멸문이 흡기토성유근 때문이라니 !
“흡기토성유근은 사실 그 문파에서 수련을 보조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령보의 일종이지. 그런데 그것이 고령토를 만들어 내어 영역을 넓히니 신선들 중에 한 분이 격노하신 것이야.”
“신선이라면 진선경 이상의 수사를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그래서 그 분께서 결국 그 문파를 멸하시고 흡기토성유근을 여덟 개만 남기신 거지. 우리 4대 수도 문파의 선조들은 그것을 얻어서 관리를 하게 된 것이고.”
“그 말씀은 이후에 흡기토성유근의 수가 많이 늘어나면 예전의 그 신선이 다시 나타나 벌을 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만에 하나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려는 것이네.”
“아! 알겠습니다. 더는 흡기토성유근의 구근을 배양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그리고 부 수사께서 어째서 더 많은 구근을 요구하지 않으시는지도 알겠습니다.”
“알았다니 다행이군. 앞으로 혹시라도 흡기토성유근의 수를 늘릴 일이 있으면 심사숙고 할 테니까.”
“물론입니다. 부 수사께서 이리 겁을 주시는데 어찌 경거망동 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건우는 실제로도 흡기토성유근을 자신의 의념공간에서만 키울 생각이었기에 거침없이 약속을 했다.
“알았네. 어차피 선택이야 각자의 몫이지. 뒤에 따르는 후과(後果)도 스스로 책임질 일이고.”
“네네.”
“그래, 그럼 이제 강 수사는 어쩔 것인가? 고령토 대지에서 수련을 해 볼 생각인가? 보아하니 화기(火氣) 속성 공법을 익힌 듯 한데?”
“아닙니다. 이곳에서의 일은 끝났습니다. 이제 다른 곳으로 가 봐야지요.”
“뭔가 큰 목적이 있는 모양이군. 알겠소. 강 수사의 앞날에 큰 복이 있기를 바라지.”
“감사합니다.”
“그럼 정리가 되는 대로 떠나게. 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터이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부수사.’
“커엄. 고작 성령기 초입이 끝까지……. 뭐 그것도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겠네. 쯧.”
부도치는 건우가 경지에 비해서 자신을 대하는 예의가 부족하다 여겼지만 짧게 혀만 찼을 뿐, 그대로 둔광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내가 아무리 지금은 성령기 초기에 불과하지만, 나도 과거엔 태령기 완경의 경지를 밟았던 사람인데 어찌 쉽게 굽힐 수 있을까. 쯧.”
하지만 건우는 부도치가 사라진 빈 공간을 보며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맞아요. 건우님이 경지가 좀 낮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막 숙이고 들어갈 수는 없죠. 그럼요.
그런 건우 앞에 몽이가 나타나 한쪽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자, 그럼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가야겠구나.”
- 네? 정말로이대로 떠나는거예요?
건우의 말에 몽이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아니, 그럼? 뭐 더할 일이라도 있더냐?”
- 아니, 원래 이 쯤 되면 부도치 수사가 뭔가 뒤통수도 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솔직히 나도 그게 당연한 거 같아서 묘하게 지금 상황이 낯설게 느껴지긴 해. 하지만 그렇다고 부도치 수사를 찾아가서 준비한 통수 같은 거 없냐고 물어 보는 것도 이상하잖아.”
- 하하하. 그건 그렇죠.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은 접어두고 이거나 한 번 심어보자.”
건우가 자신이 배양한 흡기토성유근의 구근 중에 하나를 몽이의 얼굴 앞에 들어 보이며 말했다.
- 생긴 것이 꼭 못생긴 감자 같아요.
“이게 제대로 자라면 수십 장 크기가 되겠지. 그리고 잔뿌리는 백여 리를 장악할 거고.”
일단 의념 공간을 나눠서 격리 공간을 만들고 키워보죠. 목기만 가득한 복지 공간을 만들고 거기에 쪼개진 복개활성완토공(覆開活盛完土功)의 옥간 네 개를 넣어 보자고요. 토기(土氣)가 충만한복지에서 옥간을 복원하면 얼마나 대단한 수련 공법이 나올지 기대가 되네요.
“그래야지. 그걸 위해서 고령토 대지를 찾았던 건데.”
하아, 생각해 보니까 아직도 수 속성 수련 공법하고, 금 속성 수련 공법을 더 얻어야 하는 거네요?
“그렇다고 한숨까지 쉴 건 뭐가……"
그렇게 오행의 수련 공법을 모두 성령기 초기까지 끌어 올려야 하고, 그 후에는 또 오행기로 묶어서 수련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정말 갈 길이 머네요. 언제 태령기 완경이 되고, 그 경지를 넘어 신선까지?
“하하하. 수사의 가장큰 힘이 뭐겠느냐. 바로 수명이 길다는 것이 아니냐. 걱정할 거 없다.”
몽이의 탄식에 건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웃었고, 곧이어 몽이는 건우의 손에서 흡기토성유근의 구근 하나를 받아서 의념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건우가 따로 준비한 격리 공간에 흡기토성유근의 구근을 깊이 심었다.
< 순조로운 거래 완료지만 그게 더 이상하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