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3)
〈뒤쫓아온 삼안수사〉
암해(暗海)는 어둡고 거친 바다다.
그리고 수도계에서도 드물게 넓은 바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암해를 가로지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수시로 만나는 크고 작은 섬의 동식물이나 수사들도 사나운 경우가 많다.
- 그래도 다행이지 뭐예요? 구수신귀가 암해의 지도를 선물에 끼워 줬으니 말이에요.
‘그래, 설마 암해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을 줄은 몰랐지.’
장우는 구수신귀에게 받은 옥간에서 읽은 암해의 지도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남북으로는 도무지 그 끝을 모를 정도로 늘어선 암해였다.
그래서 지도에도 남과 북의 끝은 나와 있지 않았다.
대신 암해의 동서는 땅의 모양이 제법 상세했는데 그 중에 동서 양쪽의 대륙이 서로 맞닿을 듯이 나 있는 길이 있었다.
물론 그 길이란 것이 폭으로 따지면 수백만 리가 넘어서 길이나 다리로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 면이 있긴 했다.
그럼에도 그곳을 다리라 부르는 이유는 암해라는 바다를 놓고 보면 분명 동서를 이어주는 모습인 데다가 바다에 드문드문 기둥을 세우고 땅을 올려놓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 중간이 끊겨 있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그게 어디냐? 끊어진 부분이야 고작 1 년 정도 날아가면 넘어갈 거린데. 그게 아니었으면 암해 위를 백 년은 떠돌아야 했을 걸?’
- 그건 그렇죠. 그런데 장우님.
‘왜?’
- 암해의 무너진 다리, 이거 괜찮을까요?
문득 몽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예전에 신선들이 서로 싸우다가 다리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 때문에?’
- 네에. 너무 오래 된 일이라 이제는 기억하는 수사들도 거의 없다곤 했지만 그래도 암해의 다리가 무너진 것이 신선들의 싸움 때문이라면서요?
‘구수님이 준 옥간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었지.’
동서(東西), 양쪽으로 나뉘어 싸우던 그 예전의 신선들이야 이젠 없다고 해도, 그들을 따르던 무리는 여전히 다리 양쪽에 나뉘어져 있겠죠. 그러니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요.
몽이는 하필 그런 다리를 따라서 넘어갈 이유가 있느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장우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이 다리의 끝에 영찬 령보를 만드는데 필요한 주요 재료가 있다고 했다.
구수신귀가 여러 재료들에 대해서 알려줬는데 특별히 암해에 닿아 있는 재료들은 세심하게 위치까지 알려줬다.
그 중에 다른 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 하나가 암해의 무너진 다리 끝에 있으리란 내용이 있었다.
‘조심해야지. 될 수 있으면 다리 위의 수사들과는 연을 맺지 않는 것이 좋겠지. 그러면 은원이 쌓일 일도 없을 테니까.’
그냥 필요한 것만 챙겨서 떠나겠다는 생각이다.
‘뭐 이쪽 동편의 수사들과 따로 연을 맺지 않으면 서편으로 넘어가더라도 무슨 특별한 일이야 있겠어? 암해의 동서를 오간 수사들이 한 둘도 아닌데.’
네, 정말그랬으면 좋겠네요. 하지만 장우님은 경지가 낮을 때부터 자주 진선들과 얽히곤 했잖아요. 솔직히 이제 겨우 화신기 밖에 안 된 장우님이 벌써 몇 번이나 진선과 얽혔어요? 저는 그게 걱정인 거죠.
몽이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장우는 손가락으로 그런 몽이의 머 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몽이가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니 정말로 쓰다듬을 수는 없어서 그런 시늉만 하는 것이다.
그나마 그런 행동이 몽이의 마음을 달랠 수 있으니 다행이었다.
몽이가 장우의 손가락에 머리를 들이밀며 헤실헤실 웃었다.
장우는 그 모습을 보며 의념을 펼쳐 주변을 살폈다.
의념이 4층탑 모양의 비행 법보 밖으로 넓게 퍼져 나갔다.
그는 지금 법보 안쪽에 담긴 공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암해의 다리를 따라 이동하는 중이라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탑의 1 층에 가부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 장시간 비행을 하게 될 때에는 법보에 담긴 공간으로 들어간 후, 법보의 크기를 최소한으로 줄여서 비행을 한다.
그렇게 탑승자를 내부 공간에 숨기고, 법보의 크기마저 줄이면 그만큼 기운을 숨기기 쉽다.
그래서 한 방향으로 오래도록 비행을 할 일이 생기면 그렇게 법보를 줄여 기운을 감추고 날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종련문 비행 법보가 여타의 비행 법보와 달리 유독 은말하기로 이름이 높은 이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을 잘 살펴서 영찬 재련에 쓰일 재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 그렇게 비행을 할 수가 없었다.
‘음?’
주위를 살피던 어느 순간 장우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의념을 자극하는 기묘한 기척 하나를 발견했다.
그 기척은 장우가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뒤쪽에서 은밀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뭐지?’
왜요? 장우님?
‘누군가 뒤를 쫓고 있는 것 같다.’
네? 설마 신선은 아니겠죠?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냐? 그런 수준이라면 그저 손짓만으로 나를 잡아다가 꿇릴 수 있을 텐데, 은밀히 뒤를 쫓을 이유가 없지. 게다가 내가 그 기척을 알아차리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럼 누굴까요?
‘그건 모르지. 하지만 나를 알고 쫓는 것인지, 모르고 쫓는 것인지는 궁금하구나.’
장우님을 아는 수사가 몇이나 된다고요. 이쪽에선 교류를 나눈 수사도 없잖아요.
‘있다면 종련문의 일로 얽힌 이들 뿐이겠지.’
그러네요. 그럼 어떻게 해요?
‘일단 몸을 숨겨보자꾸나. 종련문의 4층탑 비행 법보가 있으니 몸을 숨기기엔 더 없이 좋겠지.’
거기에 비행을 멈추고 비행 법보에 은폐 결계를 친다면 어지간해선 찾기 어렵겠죠.
‘옳다. 내 생각이 바로 그거다.’
장우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곧바로 손바닥을 뒤집어 수십 개의 깃발들을 불러냈다.
깃발은 수사들이 결계나 금제를 만들기 위해 많이 사용하는 소품 중에 하나였다.
장우는 여러 기운이 깃들어 있는 깃발들을 손에 들고 비행 법보를 지상으로 끌어 내렸다.
그리고 지상에 닿기가 무섭게 수십 개의 깃발을 사방으로 던져 꽂아 결계를 완성했다.
이 때에는 4층탑이 이미 팔뚝 크기로 줄어 장우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럼 들어가 볼까?’
장우는 곧바로 은폐 결계를 발동시키고 자신은 비행 법보에 내장된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어디 어떤 놈인지 알아보자꾸나.’
장우가 들어선 비행 법보 내부의 공간은 그 규모가 상당했다.
이전 종련문의 문주가 가지고 있던 비행 법보와 비슷하게 커다란 산이 하나 담겨 있는 공간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간 내에 영기를 생산할 수 있는 근원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장우는 빠른 시일 내로 작은 영천(靈泉)이라도 뽑아서 가져다 놓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당장 자신의 뒤를 밟고 있는 이가 누군지 아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후방을 살피던 장우는 결국 자신의 이목을 어지럽혔던 대상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 크기가 손바닥보다 약간 더 큰 베틀 북 모양의 비행법기였다.
저거 그 때, 삼안수사가 챙겨갔던 그거 아니에요?
몽이가 그 비행 법보를 알아보고 눈을 똥그랗게 떴다.
‘맞는 거 같다. 저렇게 작게 만들어 은밀하게 뒤를 따라오고 있었으니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지.’
저 놈도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모양인데요?
‘그러게 내가 사라진 것을 알고 당황한 듯 보이는구나.’
몽이의 말처럼 베틀 북 모양의 비행 법보가 장우가 숨은 곳을 지나쳐 한참을 나아가다 멈춰섰다.
그리고 그 비행 법보의 크기가 다섯 장 정도로 커지더니 그 위에 삼안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삼안 수사는 베틀 북 비행 법보 위에서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그런 삼안 수사의 이마에 붙은 눈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어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으음. 저 놈의 눈이 특별하니 내가 만든 결계를 찾아낼 수도 있겠는데?’
장우는 삼안 수사의 붉은 눈빛이 결계가 있는 방향으로 향할 때마다 바짝 긴장했다.
그리고 결국 장우의 예상이 맞았는지 삼안 수사가 한동안 장우가 숨어 있는 결계 쪽을 내려다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하하하. 장우 수사. 그런 재주로 내 눈을 피할 수 있을 거 같습니까? 이만 모습을 드러내시지요.”
삼안 수사는 한동안 장우가 펼친 결계 방향을 내려다 보다가 크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장우는 삼안 수사가 자신의 결계를 알아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4층탑 비행 법보 밖으로 나가서 법보를 회수하고 은폐 결계까지 거둬 들였다.
“결계를 급하게 쳤더니 수사의 눈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거 참 이 장모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려.”
“어허, 장우 수사는 나를 그리 얕잡아 보셨단 말입니까? 애초에 장우 수사의 재주가 하찮으니 이 관 모의 눈을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관 수사였습니까? 실로 종련문에서부터 함께 한 것이 오래였는데 이제야 수사가 관씨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려? 무에 그리 감출 것이 많아 이름조차 숨겼답니까?”
“으음. 장우 수사의 혀는 예의를 배우지 못한 모양입니다. 경망스럽기가 짝이 없군요.”
장우의 빈정거림에 마음이 상했는지 삼안 수사의 말투가 험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그머 니 붉은 눈동자를 부풀리고 허물을 벗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서 분신 하나를 배양해 냈다.
이전 종련문주의 시험에서 장우의 독기를 막을 때에 쓰던 바로 그 분신이었다.
삼안 수사는 그렇게 분신을 불러내 장우의 독기에 대비하고 표정에 여유가 생겼다.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내가 장우 수사를 따라 온 것은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적이 원하는 것이야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만?”
“하하하. 그 마구잡이로 날뛰는 혀 때문에 장우 수사가 곤란을 겪지 않을까 걱정입니다만, 일단 그건 넘어가고, 제가 제안 하나를 할까 합니다.”
“제안? 도적이 제안을 할 게 뭐가 있을까 싶습니다. 설마 목숨은 살려줄 테니,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으라거나 그런 말을 하려는 것입니까?”
“옳습니다. 제가 은밀히 장우 수사의 뒤를 좇은 것은 분명 사실이니 그리 예민한 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진 것 모두를 내어 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장우 수사를 쫓은 것은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뭐란 말입니까?”
“사실 이 일은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장우 수사가 가지고 있는 종련문의 비행 법보입니다. 4층탑 비행 법보 말입니다.”
“으음. 고작 비행 법보를 취하기 위해서 뒤를 쫓았다니 믿기 어렵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어째서 관 수사에게 내 비행 법보를 내어 줘야 한다는 것입니까?”
장우는 정말로 비행 법보 하나만 내어주면 삼안 수사가 물러갈까 하는 궁금증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생각조차 없었으니 고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삼안 수사가 종련문의 비행 법보를 노리는 이유가 궁금하긴 했다.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렇기는 합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겠습니까. 장우 수사가 가지고 있는 4층탑 비행 법보와 이 관 모가 가지고 있는 베틀 북 비행 법보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서 제가 얼마간 영석을 더해 드리겠습니다.”
“마냥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니란 말이군요? 그리고 또한 관 수사의 말대로라면 내가 가진 4층탑 비행 법보에 뭔가 비밀이 있다는 이야기고 말입니다.”
장우는 삼안 수사의 태도에서 종련문의 비행 법보에 뭔가 큰 비밀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는 삼안 수사도 예상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해를 하신 모양입니다. 사실 종련문의 열여섯 비행 법보 중에 어떤 것이 보물을 품고 있는지는 이 관 모도 모릅니다. 그저 열여섯 중에 하나에 있다는 것과 그것을 가려낼 수단을 알고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나에게 4층탑 비행 법보를 달라고 하는 것이군요. 베틀 북 비행 법보와 교환해도 내가 손해 볼 것은 없고, 거기에 더해서 약간의 보상도 받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바로 그렇지요.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우리가 서로 싸울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다만 장우 수사가 이 관 모가 좋아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그건 좀 곤란하겠지요.”
“뭐 그거야……
장우는 삼안 수사의 말에 곧바로 대 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수도계의 수사로서 다른 수사가 귀한 보물을 얻게 된다면 그것을 누가 배아파 하지 않을까.
장우도 삼안 수사가 잘 되는 꼴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 영석을 더해 준다는데 그냥 교환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 때, 문득 몽이가 장우에게 슬그머니 서로 좋은 방안을 권했다.
장우가 교환에 응하기만 하면 굳이 싸울 이유가 없지 않겠나 하는 것이다.
“영석 얼마를 받고 비행 법보를 교환하는 것은 실로 내키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장우는 삼안 수사의 제안에 부정적인 답을 내 놓았다.
〈 뒤쫓아 온 삼안 수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