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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천괴(混天怪)가 목표랍니다 >
장문일의 베틀 북 비행 법보의 갑판에 몇 사람의 수사들이 모였다.
서로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것은 세 명의 수사였는데, 5척 단구의 장문일과 9척 거구에 검은 수염이 얼굴 가득한 수사와 쪽진 머리를 한 곱게 늙은 여성 수사였다.
장문일을 제외한 다른 두 수사의 뒤로는 십여 명의 수사들이 어수선하게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이게 몇 년 만인가? 천 년 조금 모자란가?"
9척 거구의 수사가 문일을 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겠지. 지난 천겁 때에 봤었지."
장문일은 9척 거구 수사와의 만남을 되짚어 보며 대답했다.
"하하하하. 생색은! 뭐 덕분에 천겁을 쉬이 넘겼으니 그 정도는 이해해 줘야지. 그런데 시동(侍童)인가?"
도움을 받았던 것을 무시하지는 못하면서도 그 이야긴 하기 싫다는 듯이 9천 거구 수사가 장문일의 뒤쪽에 홀로 서 있는 장우를 눈짓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를. 제자네."
장문일은 시동이란 말이 불괘하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제자라고? 고작 성단기에 불과한데? 아니, 그렇게 생각하기엔 나이가 어려 보이는군. 어허! 300살 언저리인 것 같은데 성단기라! 인재로군! 인재야."
제자란 말에 조금 더 유심히 장우를 살핀 거구의 수사가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뭐라구요? 그게 정말이에요?"
그러자 지금까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선자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그녀는 곧바로 장우를 요모조모 뜯어보기 시작했다.
"혜정(慧淨) 선자, 우리 이야기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앉아 있더니 인재라 하니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군."
그런 모습에 거구의 수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막구(莫鍊) 수사가 따질 일은 아니지요."
거구 수사의 이름이 막구였는지 혜정이라 불린 선자가 눈썹 끝을 치켜 올리며 말을 막았다.
"막구 수사야 상관이 없다지만 혜정 수사가 내 제자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나로선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런데 그 때, 장문일이 날선 어조로 혜정 선자를 경계하며 말했다.
그러자 혜정 수사가 눈을 반달처럼 곱게 휘어 웃는 낯으로 장문일을 바라봤다.
"꽤나 아끼시는 제자인 모양이네요.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거래의 대가란 맞추기 나름이 아니겠습니까?"
"실없는 소리. 누가 제자를 거래 대상으로 본다던가?"
"호호호. 아니 될 것은 또 무엇이 있습니까. 보세요 저 아이들 중에 대부분은 제가 값을 치르고 데려온 아이들이랍니다."
혜정 선자가 뒤쪽에 서 있는 수사들을 힐끗 돌아보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을 받은 수사들은 조용히 몸을 숙여 공경을 표했다.
"일 없네. 내 제자는 무엇과도 바꿀 생각이 없으니."
"호호호호. 장 수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 참으로 이상합니다. 세상 냉정하고 이성적인 분이 어찌 그러시는지 모르겠군요."
"마음이야 항상 흐름이 바뀌는 법이지."
"그런가요? 호호, 그런데 어째 제가 보기에 장 수사께서는 천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어 보이는데요?"
"그리 보인다면 혜정 수사에겐 그런 것이겠지. 마음이야 누구에게 쓰느냐에 따라서 또 다른 것이 아닌가."
"호호호호. 그렇다고 하지요. 그 말씀 또한 그른 것이 없네요."
혜정은 그쯤하고 장문일과의 언쟁을 멈추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후로도 가끔씩 장우의 몸을 더듬곤 했다.
장우는 그런 혜정 수사의 눈빛이 거슬렸지만 사부의 지인들이라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시립해 있을 뿐이었다.
"내 제자는 그만 힐끔거리고 이번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지."
그 때, 장문일이 슬쩍 손을 저어 장우의 앞에 흐릿한 막을 펼치며 말했다.
그리 되자 막구와 혜정은 더 이상 장우를 자세히 살필 수가 없게 되었다.
"정말 아끼는 모양이네요. 호호호. 좋아요, 저 아이 보다는 이번 일이 더 중하니 괜한 분란은 만들지 않겠어요."
그쯤 되자 혜정 수사도 한 걸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장문일이 그렇게까지 하는데 계속 제자를 탐하는 것은 싸우자는 말 밖에 되지 않을 것임을 그녀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다른 세 수사는 그곳에서 보기로 했으니 우리끼리 일단 말을 맞추도록 하지."
막구도 아닌 척 하면서 장우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는지 아까운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역시 일의 경중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렇게 본격적으로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고 제의했다.
그렇게 장문일과 혜정, 막구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의 의논을 다른 시종들과 제자들에게 감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우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다.
―혼천괴(混天魂)라니 신기해요.
'그러게. 괴는 덩어리나 종양을 뜻하는 것인데, 혼천은 뒤섞여 혼란스런 하늘이란 뜻이잖아.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느낌이네.'
장우와 몽이는 세 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가려는 곳이 혼천괴라는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언젠지 모를 오래 전에 크게 성했던 수도 문파가 있었는데, 그들이 혼천문이라 했다.
그런데 항상 그러하듯 그 문파 역시 어느 즈음에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물론 수도계에서 수도 문파의 흥망성쇠야 언제나 반복되는 것이라 이상할 것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부분 그렇게 사라진 수도 문파는 큰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혼천문의 경우는 전혀 상황이 달랐는데, 그들이 어느 순간, 세상에서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많은 수사들이 혼천문을 찾아 헤매게 된 연유가 되었다.
순식간에 사라졌으니 그곳을 찾기만 하면 거기에 있던 보물이 그대로 남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수도계에선 그렇게 일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많은데 그런 경우에 그곳에 있던 수사들이 온전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천지 법칙의 벌을 받아 멸망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천지 법칙이 벌을 내려 멸망시킨 경우엔 수사들만 죽어 나갈 뿐, 보물들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거지요?
'그렇지. 천지 법칙이 수사들의 보물 따위에 무슨 관심이 있겠어? 그 보물 자체가 천지 법칙을 크게 거스르는 것이 아닌 경우엔 그냥 그대로 두는 거지.'
하긴, 화산 폭발이나 산사태로 파묻힌 경우와 비슷하겠네요. 주인은 다 죽었어도 보물은 그대로 남는.
'비유하자면 그렇게 볼 수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그 혼천문이 혼천괴가 되었을까?'
아,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나 봐요.
장우의 말에 몽이가 눈을 크게 뜨며 세 수사를 바라보았다.
그 때, 막구 수사가 마침 그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혼천문의 수련방법이 괴랄했지. 온갖 삿된 것들은 모두 모아서 뭉그러뜨렸다고 할까.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기운을 혼천기라고 따로 부르기도 했고."
"하지만 혼천기는 이미 있던 것이 아니었나요? 천지 법칙의 기운 중에서 유독 탁한 것들만 모아 놓은 기운이라 하여 그리 부르고, 그것을 위주로 수련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막구의 말에 혜정 수사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혼천기를 다루는 유파들 중에 가장 융성했던 것이 혼천문이라 보면 되겠지. 그러다가 혼천괴가 되어 버렸지만."
"도대체 그 혼천괴란 것이 뭔가요? 지금까지는 혼천괴가 혼천문이 묻혀 있는 금지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 같군요."
혜정 수사가 이제는 의심스럽다는 기색까지 더해서 막구를 노려보며 물었다.
"크하하하. 어찌 나에게 따지는지 모르겠군. 이번 모임을 주관한 것은 내가 아니지 않나. 나도 혼천괴란 소리를 듣고 따로 알아봤을 뿐인데, 마치 내가 무슨 일을 꾸미기라도 한다는 듯이 보고 있군?"
"아,미안해요. 제가 크게 실수를 했네요. 일이 가까워질수록 점차 불안과 의심이 커져서 막구 수사에게 결례를 했어요."
"그건 혜정 선자의 잘못이 맞는 것 같군. 지금 막구 수사가 우리 둘보다 혼천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은 듯 한데, 도움을 받아야 할 입장에서 할 행동은 아니었지."
혜정이 고개를 숙여 사과를 하고 장문일이 슬쩍 막구의 편을 들었다.
장문일의 말처럼 막구의 지식이 필요한 상황이라 그에 맞춰 몸을 낮춘 것이다.
"크하하하. 뭘 또 그리 정색들을 하고 그러나. 어차피 우리는 물론이고 이후에 만날 이들까지 모두 한 배를 타게 될 것인데, 벌써부터 이리 견제를 해서야 되겠나."
그 모습에 막구는 불쾌한 표정을 풀며 손을 흔들어 괜찮다는 뜻을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혼천괴는 혼천문의 수사들이 대역천 공법을 펼치다가 실패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생명체이며 동시에 혼천문이란 문파 자체라 볼 수도 있지."
"그게 무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설명을 해 주게."
"그래요. 이해가 되지 않아요."
"크하하. 쉽게 생각하면 되겠지. 혼천문이 있던 삼십만 리의 땅이 모두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뭉쳤는데, 그 덩어리가 혼천문의 대역천 공법의 힘으로 태어난 존재인 것이지."
"상상이 가지 않는군요."
"그렇다면 괴라고 부른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
"그냥 살덩어리다. 그것도 아주 크고 흉하고 독하며 더럽고 징그러운 살덩어리."
"어머나, 그런 이야긴 없었잖아요."
혜정 수사가 막구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크게 싫은 티를 냈다.
그것은 장문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금제나 봉인이 아니란 말이군. 거대 생명체가 목표란 말이 아닌가."
"그렇지. 혼천괴, 거대한 육괴(肉現), 그것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이지."
막구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했고, 혜정과 장문일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생명체라니 변수가 많겠군요. 게다가 그것을 밖에서 어찌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그 자체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란 말일 테고요."
혜정 수사의 표정이 복잡했다.
"하지만 육괴 그 자체는 따로 의지나 지성을 가지지 않은 것 같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그 혼천괴는 예전 혼천문을 집어 삼킨 고깃덩이에 불과한 것 같아. 물론 본능적인 움직임이야 있겠지만."
"그런데 그것이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어쩐 일이지?"
"그야 당연히 혼천괴가 세상에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전 혼천문이 있었던 곳은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흔적조차 없는 곳이지. 그곳은 사실상 온갖 괴물들이 날뛰는 미개지(未開地)야."
"세상은 넓고 수사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많지요. 또 오래전에 흥했던 곳이라도 한 순간 수도계와 멀어지면 미개지가 되기도 하고요."
"혼천괴가 있는 곳이 그런 곳이란 말이군."
"그것만이 아니지. 혼천괴는 수 백 만리 크기의 호수 밑바닥에 있어. 그것도 호수 바닥에 박혀 있는 상태지."
"음, 그래서 아는 이들이 없다는 거군요?"
"그렇지."
세 수사는 그렇게 자신들의 목적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것을 듣는 시종과 제자들도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 엄청난 크기의 종양이라니 끔찍해요.
'음, 듣기만 해서는 무척 흉할 것 같기는 하네. 그런데 그렇게 큰 호수 밑으로 어떻게 들어가지? 내 경지로는 어려울 거 같은데?'
- 그거야 사부님과 다른 어르신들이 알아서 하시겠죠. 무슨 그런 걸 걱정하고 그러세요?
'아니 일이 잘못되어서 그 깊은 곳에서 따로 튕겨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죽는 수밖에 없을 거 같으니 그렇지.'
큰 호수, 깊은 곳은 단순히 수압만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일정 깊이 이하로 내려가면 수압만으로도 죽음을 면치 못할 수준이 되기도 할 것이다.
사부를 믿고 있기는 하지만 장우는 항상 혼자가 되었을 때를 염려하고 경계하는 버릇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스승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장우야!"
장우가 세 수사들의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있을 때, 문득 장문일이 그를 불렀다.
"네, 사부님."
"내려가서 몸을 좀 풀고 오너라. 갈 길이 급한 것은 아니니, 내 너에 대한 훈육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니라."
"알겠습니다. 사부님. 다녀오겠습니다."
장우는 사부의 말에 의념을 부풀려 가까운 곳에 상대할 영물이나 마수가 있는지 확인하며 곧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이 상대하기에 적당한 마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자 망설이지 않고 둔술을 펼쳐 사라졌다.
"흐응, 귀여운 아이네요."
"자질이 뛰어난 제자를 들였군. 부러운 일이야."
장우가 사라지자 혜정과 막구가 장문일을 부러워 했고, 장문일은 슬쩍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자 혜정과 막구가 뒤를 돌아보며 성단기 수사 하나씩을 찍어 심어를 보냈다.
이후 두 명의 성단기 수사가 둔광을 남기고 사라졌다.
장우의 뒤를 따라 나선 것이다.
장문일은 이미 일이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혜정과 막구를 말리지 않았다.
도리에 흥미로운 기색으로 비행 법보 아래에서 벌어지는 세 수사의 경쟁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뜻하지 않게 경쟁에 내몰린 세 수사만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졌다.
- 흥! 이겨버리세요!
몽이가 장우를 응원했다.
< 혼천괴(混天M)가 목표랍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