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337화 (337/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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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계는 이래야 옳지, 지금까진 너무 순한맛이었다. >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보아하니 어느 정도 경지 안정은 된 거 같구나."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영단의 힘입니다."

"클클클, 그럴 리야 있겠느냐. 네가 고작 3백 년 만에 성단기에 오른 것을 어찌 내 도움만으로 가능한 일이라 하겠느냐. 그 모두가 네 자질이 뛰어나고, 수련에 꾀를 부리지 않는 네 노력이 더해진 때문이지."

"아무리 제자의 재주가 뛰어났다 하더라도 어찌 사부님의 뒷바라지 없이 오늘의 제가 있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이 전부 사부님의 은덕입니다."

장우는 장문일 앞에 꿇었던 몸을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클클클. 내가 너를 모르겠느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속으로는 스스로 재주가 남다름을 깨닫고 있겠지. 뭐 상관은 없는 일이다. 뛰어난 제자를 둔 것 또한 큰 명예일 터이니."

"감사합니다. 사부님."

장우는 다시 한 번 사부 장문일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 그런데 사부께서 왜 불렀을까요? 성단기 경지를 이제 겨우 안정시키는가 했는데 말이에요.

'그건 나도 모르지. 그 동안 줄곧 수련만 재촉하던 분이 어쩐 일로 나를 불렀을까? 성단기 경지가 안정되긴 했지만 아직 다른 수련을 하기엔 너무 이른데?'

몽이의 말도 그랬지만 장우도 의아한 마음을 품고 있던 터였다.

예전 장우를 홀로두고 외유를 다녀왔던 장문일은 그 후로 한 번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동부에 머물렀다.

그러면서 그가 신경 쓴 것은 장우의 수련이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장우의 수련을 몰아붙인 것이다.

물론 장우로선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손해볼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싹튼 의심은 스승이 자신의 성장 이후에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스승이 자신에게 바라는 바가 간단하진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고 있었다.

"내가 근래에 문득 생각해보니, 깨닫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엎드린 장우를 보며 스승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장우가 고개를 들고 스승을 보자 그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너를 받아들인 이후로, 지금까지 내가 너에게 줄곧 수련만 강요하고 있었던 것 같더구나."

장문일이 마치 장우의 속을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는 듯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장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스승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클클,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보니 너도 불만이 아주 없지는 않았구나."

장우는 고개를 숙였다.

불만이라기 보다는 의심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그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고민하다가 너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느니라."

"세상 구경이라면 밖으로 나가신단 말씀입니까?"

"그래, 우연인지 이번에 나를 만나고 싶다는 도우(道友)들의 연락이 있었느니라. 그런데 보아하니 그것이 그저 단순한 모임은 아닐 것 같더구나. 그래서 이왕이면 너를 데리고 가서 견문을 넓혀 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

"밖으로……

장우는 다른 말 보다는 바깥 세상으로 나간다는 말에 혹한 반응을 보였다.

열네 살에 삼선문으로 끌려와 이후론 스승의 동부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에 친교를 맺은 수사도 없으니 그야말로 수련만 하며 3백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것이다.

그런 장우에게 바깥 구경은 말만으로 흥분될 일이었다.

물론 겉으로 흥분된 듯이 보이는 것은 속마음에 숨어 있는 의구심과 불편함을 감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 무슨 일일까요?

'볼 일이 있어서 가는 김에 나를 데리고 가겠다는 거지. 여기 그냥 두고 가기엔 뭔가 걸리는 것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 항상 장우님을 곁에 데리고 있겠다는 그런 걸까요?

'뭔지 확실한 것은 없지. 그래도 일단 경계심은 갖고 있어야겠지.'

언제부턴가 사부의 행동 하나하나를 의심스럽게 보는 장우.

하지만 지금까지 정말 의심을 확인할 증거는 찾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스승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봐야 얼마 가지 않아서 다시 의심스러운 마음을 내게 되곤 했지만.

"네가 성단기에 오르지 못했다면 밖으로 데리고 갈 수가 없었겠지만 그나마 최소한의 기준은 넘은 셈이니 함께 가도록 하자꾸나."

"네에, 감사합니다 사부님!"

장우는 사부의 말에 과하게 흥분한 모습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만큼 기쁘고 기대된다는 표현이었다.

장문일도 그런 장우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백 년 이상을 살았지만 그래봐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제자였다.

그런 제자가 저리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니 장문일 역시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참으로 잘 키운 제자가 아닌가.

속으로 앙큼한 생각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 정도야 그리 문제될 것도 없었다.

고작 성단기 수준의 제자가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다고 걱정을 하겠는가.

그저 가까이 두고 제대로 성장시킬 수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기특한 제자는 그런 면에서도 정말 좋은 제자였다.

"성단기 승경 축하 선물로 내어준 공간낭에 네 물건들을 챙겨 넣거라. 이번에 가면 꽤나 오래 나가 있을 것이니.

"네, 스승님."

"그럼 열흘 정도 시간을 줄 터이니 알아서 주변 정리를 하도록 해라. 해 뜰 무렵에 동부 앞으로 오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장우는 서둘러 인사를 올리고는 곧바로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수사는 보통 자신의 소유물을 몸에서 떼어 놓는 경우가 별로 없다.

있다고 해도 정말 중요한 것은 절대 몸에서 떼어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공간낭, 혹은 저물대 같은 기물이었다.

술법을 이용해 넓은 공간을 붙잡아 둔 기물은 많은 물건을 보관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다.

장우도 성단기가 되면서 장문일에게 쓸만한 공간낭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그래서 거처로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족족 공간낭 안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수사의 것이라면 범인들에겐 가치를 논할 수 없는 보물이 된다.

성단기에 오른 장우에겐 아무것도 아닌 물건이 연신기나 축기기에겐 귀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장우는 자신의 거처에 먼지만 남을 때까지 모든 물건을 공간낭에 챙겨 넣었다.

장우님, 그런 물건을 의념공간에 넣지는 않으시겠죠?

그런 중에 몽이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장우를 보며 물었다.

'내가 넣어달라고 해도 네가 싫다고 하지 않을까?'

그래도 해 달라고 하시면 제가 거절은 못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런데 또 네가 싫다는 걸 내가 억지로 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나?'

헤헤, 그건 또 그렇죠. 맞아요. 장우님과 저는 너무 마음이 잘 맞는 거 같아요.

'솔직히 사부가 무슨 일로 함께 밖으로 가자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나가게 된 것만으로도 좋기는 해. 뭔가 잔뜩 기대가 된다고 할까?'

그건 사부님 탓이죠. 어떻게 3백 년을 가둬놓을 수가 있어요? 쳇.

'화신기 초기인 사부님 입장에선 3백 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지. 당신 기준으로 생각했다면 3백 년 동안 날 수련시킨 것이 무슨 문제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요.

'아무튼, 나는 좋아! 뭔가 두근두근 하잖아.'

네에. 사실은 저도 좋아요! 헤헤.

***

"태상 원로가 출발했다고 합니다."

세 명의 수사가 원형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 셋은 모두 비슷한 복색을 하고 있었는데 학창의에 금은의 실로 법술 문양을 수놓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문양들은 스스로 옷의 표면을 흐르며 때로 모습을 바꾸기도 했다.

그것은 삼선문의 문주들만 입을 수 있는 복장으로 탁자에 모인 세 사람이 바로 삼선문의 문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긴 수염 색이 금, 은, 백으로 서로 다를 뿐, 외모도 비슷하여 수염이 아니면 구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삼선문의 문주는 때로 수염 색이 바뀐다는 소리를 했는데, 실제론 하나가 아니라 셋이었던 것이다.

"그래요?"

"제자도 함께한 모양입니다."

"동부는 어떻습니까?"

"철저하게 봉인을 해 두었습니다. 뚫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봐야 크게 얻을 것은 없을 듯 싶습니다."

"그렇겠지요. 외유를 나가는 수사가 동부에 뭔가를 남겨둘 이유가 없지요. 있어봐야 잡스러운 것들 뿐일 게고 말입니다."

"그렇겠지요. 하지만 태상 원로가 다시 자신의 동부로 돌아오는 일은 없게 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하지요. 어차피 작정하고 벌이는 일인데, 끝장을 봐야지요."

그들은 동부를 떠난 장문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이 험악하기 짝이 없었다.

"그 동안 그가 우리를 얼마나 업신여겼습니까? 이제 우리도 화신기에 올랐으니 그 자를 도모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전에야 장문일 그 놈의 경지가 높아서 우리가 눌려 지냈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 놈이 꽁지가 빠져라 몸을 뺀 것일 수도 있지요."

"그건 아닐 겁니다. 우리가 그 자를 경계하여 멀리 한적한 곳에서 승경에 성공했는데 그 자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맞습니다. 아직 장문일 그 자는 우리가 화신기에 오른 것을 알지 못함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가 외유를 하게 된 것은 입적한 고계 수사의 거처가 발견되어 그런 것이 아닙니까."

"핑계일 수도 있지요."

"아닙니다. 이미 그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번 일로 장문일 그 자와 함께 움직일 화신기 수사가 일곱은 넘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정말로 뭔가 발견이 되긴 한 모양이군요. 이러면 또 우리에게도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우리야 삼선의 비기를 나누어 익힌 터라 셋이 하나와 같은 몸이니 당연히 기회가 되겠지요. 장가 놈과 손잡은 놈들 중에 누가 있어 하나로 뭉친 우리 셋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저들 무리를 흩어 놓기만 하면 기회는 우리에게 오겠지요."

"좋습니다. 다들 마음이 들뜬 것 같으니 이제 우리도 출발을 하십시다. 대충 위치는 알고 있지만 정확하지 않으니 미리 앞질러 가서 기다리는 것도 좋겠지요."

"그럽시다."

"오랜만에 흥이 납니다. 하하핫."

삼선문의 문주 셋이 그렇게 장문일을 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목표가 된 장문일은 그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2층 누각이 달린 베틀북 모양의 비행 법보를 타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는 간혹 가치가 있는 수련 자원을 발견하면 그 때마다 비행 법보를 멈추고 장우와 함께 내려가 채집이나 사냥을 했다.

장우는 그 동안 경지를 올리는 수련만 중점적으로 해 온 터라서 술법을 이용한 공방에 미숙한 점이 많았다.

장문일은 약속 장소로 가는 도중에 장우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려 하는 것 같았다.

***

키에에에엑! 캬아아악! 쉬쉬쉿!

독수리의 머리 좌우에 하이에나의 머리와 뱀의 머리까지 달고 있는 요수가 장우를 향해 입을 벌리고 위협을 하고 있었다.

몸통과 네 개의 다리, 꼬리는 영락없이 도마뱀붙이의 것이다.

장우도 그것의 정체를 몰랐는데 스승의 가르침으로 변종 도마뱀 요괴임을 배웠다.

문제는 그렇게 정체를 일러준 사부가 장우를 요괴의 눈앞에 던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로 장우는 온갖 술법을 이용하여 요괴와 생사를 걸고 싸우는 중이었다.

"자,이만 죽자! 응?"

장우가 오른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그 손바닥에 커다란 구체 하나를 만들어 냈다.

파지지지직!

그것은 은색 가시를 품은 물 덩어리였다.

장우는 오행 속성의 영근을 지녀서 그 속성을 잘 쓸 수 있었다.

지금 장우가 만든 물 덩어리 속에는 은색의 금(金) 속성 기운이 담겨 있었다.

장우는 그 금 속성 기운에 뇌전의 기운까지 담았다.

오행 속성 기운이 아닌 뇌전을 다루는 것은 조금 부족해도 이렇게 조합을 해서 쓰면 제법 좋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이미 영기를 모두 소진해서 기운을 잃은 변종 도마뱀 요괴의 숨통을 끊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카아아악! 삐이이익! 쉬이이이!

변종도마뱀 요괴의 세 머리도 장우가 펼친 술법의 위험성을 느꼈는지 울음소리가 거칠어졌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크게 기울어 돌이킬 수 없는 때였다.

후웅! 퍼벅, 푸푸푹!

파자지지지직!

키이익! 커겅, 쉬이이!

결국 뇌전을 품은 물 덩어리를 맞은 요괴가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흘 가까운 싸움에서 장우가 최종 승리를 거두는 순간이었다.

후우우우웅!

바로 그 때였다.

변종 도마뱀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붉은 안개 같은 것이 도마뱀의 몸에서 장우에게로 흘러갔다.

그것은 마치 허공에 튀어 오른 핏방울이 기화되어 날리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또 왔어요!

'그러네.'

몽이는 호들갑을 떨었고, 장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현상을 받아들였다.

이런 식으로 진혈을 흡수해서 역법반서복원대법(逆法反除復元大法)을 수련할 수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고요.

'이게 수련이 맞는지는 아직 몰라. 그냥 진혈을 가진 상대를 죽이게 되면 그 진혈을 흡수하는 것일 뿐이니까.'

그래도 그 때마다 흡수한 진혈의 기운을 축적하고 있잖아요. 뭐 장우님이 쓰진 못하지만.

'그러니까 그게 더 문제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멋대로 작용하는 현상이니까.'

에헤헤. 그래도 자그마치 화신기 초기인 사부님도 눈치채지 못하는 일이라고요. 사부님의 경지보다 휠씬 고명한 수법이란 거잖아요.

'그나마 그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사부님께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할 수 있었겠냐?'

그런 일이 없었으니 그걸로 된 거죠 뭐.

'그래, 그래. 그렇다고 하자.'

자, 어서 갈무리 하고 올라가요. 너무 늦으면 사부님께서 역정을 내실지 몰라요.

'알았다. 녀석도 참.' 장우는 몽이의 재촉에 투덜거리면서도 바삐 몸을 움직여 돌연변이 도마뱀 요괴의 사체를 수습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자 곧바로 둔술을 펼쳐 수천 장 위에 떠 있는 비행 법보로 날아올랐다.

"다녀왔습니다. 사부님."

"제법 실력이 늘었구나. 성단기 중기의 요괴를 그리 깔끔하게 잡아 내다니."

"과찬이십니다. 부끄럽습니다."

"클클클. 녀석, 들어가 쉬어라."

"네, 사부님."

장우는 스승의 배려에 감사하며 선실로 들어갔고, 장문일은 그런 장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빠르다. 모든 것이 빨라. 그것 참."

그리고 홀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 수도계는 이래야 옳지, 지금까진 너무 순한맛이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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