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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였네, 낚였어 >
"결국 이 자리는 제가 어르신을 꼬여낸 것이 아니라 제가 낚인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건우가 완전히 풀어진 모습으로 몸에서 힘을 빼며 말했다.
힘빠진 모습으로 의자에 앉은 모습이 비 맞은 것처럼 처량해 보였다.
"클클클. 이제 알아차렸느냐? 네 놈이 나를 찾고 있다는 것을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진광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건우를 놀리듯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일부러 흘린 흔적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여기까지 따라오신 게로군요?"
"그렇지."
"당연히 그 목적은 이곳에서 멸계로 갈 방법을 찾는 것이고요?"
"말해 무엇하겠느냐. 이미 그렇다고 이르지 않았느냐."
"휴우."
건우가 대화를 하다말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진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슨 의미냐? 그 한숨은?"
건우는 그 순간 진광이 그물을 잡은 손등에서 힘줄이 솟는 것을 보았다.
여차하면 그물을 던져 건우를 잡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진광의 저 쇠그물은 단순한 물건이 아닐 것이다.
한 번 던져지면 세상을 뒤덮어 어디로도 도망가지 못할 천라지망을 펼칠 것이 분명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도 지금 당장 멸계로 갈 방법이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여기서 저를 잡아 추혼술을 펼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건우는 저항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느긋한 태도로 사실을 이야기했다.
진광은 건우가 여상스럽게 하는 말을 무심코 듣고 있다가 자신이 바라는 내용이 아님을 알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본계로 갈 방법이 없다고? 네 놈이 얼마 전에 그곳에 갔다가 온 것을 내 이미 알고 있는데!"
쿠구구구구궁!
"쿨럭! 울컥! 커억!"
진광이 노여움을 드러내며 강력한 의념에 극멸기를 더해 쏘아내자 건우가 견디지 못하고 세 개의 머리에서 동시에 피를 토했다.
그 순간 건우는 지금이 아공간으로 숨어야 할 때가 아닌가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은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억지로 고개를 들어 진광을 보았다.
이렇게 이 자리를 끝내는 것은 아쉬움이 컸다.
상황이 우습게 되었지만 어쨌거나 진광을 만나긴 하지 않았나.
맨바닥에 엎어져도 일어날 때 흙 한 줌이라도 쥐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나.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어르신께서 저를 어찌 쥐어짜더라도 없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으면 후배가 감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뭐라? 감출 이유가 없다고?"
건우의 말이 뜻밖이었던지 진광이 기세를 줄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 방법이 있다면 멸계전이 수미 세계에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것을 악착같이 감춘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그런 방법이 있으면 우리들이 죽을 각오로 덤비지 않을 것이란 말이지? 하지만 그리되면 전장에 참가하는 위험이 줄어 이곳으로 몰려올 놈들이 늘어날 수는 있겠구 나."
"하지만 그런 사실을 본계에서 어찌 알겠습니까. 사실 이곳에서 본계로는 한 마디 말도 전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러니 결국 후배가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어르신께 죽을 위험에 처해서까지 모른다, 없다 하면서 버틸 일은 아니란 말입니다."
"흐음. 듣고 보니 그도 그렇겠구나. 네가 진정 방법이 있다면 내 앞에서 그리 버틸 이유가 별로 없겠어.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멸계전의 승패 따위는 별로 관심이 없다."
"네? 멸계전의 승패에 관심이 없으시다고요?"
건우가 진광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연히 이기면야 더없이 좋겠지. 그러면 막대한 보상을 받아서 진선(眞仙)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니 어떻게든 본계로 돌아갈 방법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
"하지만 이번 멸계전이 저희 수미 세계의 승리로 끝난다 해도 어르신께선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정체를 속이시면 될 일이 아닙니까."
건우는 진광이 이미 한 번 했던 일을 다시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물었다.
"그럴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홍애지에서 숨어 지내는 짧은 시간에 지금의 경지를 이룰 수 있었으니 승경에는 최고라 할 수 있겠지. 당연히 수미 세계가 선계로 오른 후에도 그 방법을 쓴다면……?"
"그러니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건우는 진광을 끌어들여 차라리 수미 세계의 승리 쪽에 변수로 써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렇게 맞장구를 쳤다.
"클클, 놈! 속이 훤히 다 보이는구나. 하지만 불가능하다. 선계는 그야말로 영기 수도계의 극점. 그곳에 극멸기를 수련한 내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하지만 진광이 그런 건우를 비웃었다.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까?"
"애초에 태생이 문제다. 너도 느끼고 있을 터인데?"
"아, 제가 영기 수도계에 속해 있는 것처럼 어르신께서는 극멸기가 원천인 멸계에 속해 있다는 말씀이군요?"
건우도 진광의 말을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그 역시 아공간 자체가 멸계와 어울리지 않음을 체험한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덕분에 수미산 상징의 한 조각을 허비하기도 했고.
"그렇다. 그러니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본계로 돌아갈 방법을 얻거나 혹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뿐이지."
"제가 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내면 어르신께서는 멸계전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보고 승산이 없으면 안전하게 돌아가시겠군요? 다른 수사들도 그렇겠지요?"
"쯧, 그래서 네가 손해란 생각이라도 드는 것이냐? 아서라, 나에게 본계로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나는 적당히 싸워보다가 물러날 것이지만, 방법이 없다면 목숨을 걸고 끝장을 볼 것이다. 이번에는 영기 수련 수사들 사이로 정체를 감추고 숨는 방법도 슬 수가 없으니까."
"수미 세계가 선계로 편입되면 어찌되는 것입니까? 어르신께서 그 때까지 멸계로 돌아가지 못하시면 천지 법칙에 의해서 소멸이라도 당하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렇게 될 것이다."
건우의 물음에 진광은 굳이 감출 생각도 없다는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건우는 그런 진광의 모습에 고민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결국 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그에게 주는 것이 좋을지 따져보는 것이다.
"쯧,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만약 본계로 갈 방법이 나온다면,전쟁에서 수미의 영기 수사 놈들이 유리할 것은 분명하다."
건우의 고민을 짐작했는지 진광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빤히 건우의 얼굴을 바라봤다.
"여전히 제게 기대를 하시는 모양입니다? 제가 방법을 찾을 거라고 말입니다."
건우가 그런 진광을 보며 물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나는 네가 반드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네 지난 행적이 말을 해 주기 때문이다. 너는 수미 세계가 이번 멸계전에서 승리하길 바라고, 또 그것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냐?"
"물론 그렇습니다."
"그럼 당연히 본계의 수사들이 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 하겠지. 너는 이미 인계의 멸계전에서 그것으로 크게 득을 본 일도 있으니."
"아마도 어르신의 말씀이 맞을 것입니다."
건우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물론 그 외에도 멸계전을 위해 할 일이 많겠지만 진광의 말처럼 전쟁 중에 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좋은 패가 될 것이다.
"좋다! 이것을 받아라!"
그 때 문득 진광이 건우를 향해 검은 색의 옥패 하나를 날렸다.
건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검은 옥패에 불길함을 느끼고 급히 여섯 손을 휘둘러 방어막을 만들었다.
파치치치칭! 푸확! 터덕!
하지만 진광이 날린 옥패는 건우의 방어 법술을 가볍게 뚫고 들어와 세 개의 오른손 중 가운데 손의 장심에 닿았다.
"어어 엇!"
파시시시싯!
"이, 이게 뭡니까?"
그리고 건우의 장심에 닿은 옥패는 그대로 검은 안개로 변하더 니 손바닥으로 파고들어 가슴으로 치고 올랐다.
건우가 애써서 그것을 막아보려 했지만 어느 순간 그 검은 안개는 건우의의 념공간으로까지 파고들어 버렸다.
"클클클. 애쓰지 말거라. 고작 네 수준에 그것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의념 공간에 터를 잡고 네 영체가 들어 있는 영근을 틀어쥘 것이다."
진광은 놀란 표정의 건우를 보며 재밌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런 진광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 넘쳤다.
그 때, 건우는 아공간에 큰 공간을 할애하여 그 한 곳에 검은 안개를 밀어 넣고 상황을 살폈다.
그러자 검은 안개는 무언가를 찾아 이리저리 아공간을 헤매기 시작했다.
"오호? 제법 재주가 용하구나. 하지만 그래봐야 언젠가는 그것이 네 영체를 찾아내고 말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네 놈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자면 숨겨 놓은 영체를 드러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진광도 검은 안개가 건우의 영체를 찾지 못한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지만 여전히 느긋한 태도를 고수했다.
어차피 검은 안개를 의념공간에서 몰아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검은 안개가 의념공간 전체를 잠식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클. 아직은 너를 해코지 할 생각은 없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나와의 계약을 상징하는 증표라 여기거라."
진광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건우에게 말했다.
"영제를 잡아먹을 흉물을 의념공간에 뿌리고, 그것을 계약의 증표로 삼으라 하는 겁 니까?"
건우가 진광을 노려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감히 성령기 초기가 태령기 완경의 수사에게 보일 수 있는 태도는 아니었다.
진광 또한 그리 너그러운 수사는 아니니 즉시 응징이 돌아왔다.
"클클. 그냥 지금 여기서 죽여주랴?"
진광이 스산한 표정으로 물었고, 건우는 슬그머 니 눈을 내리깔았다. 어차피 진광에게 대든 것은 연기였을 뿐이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검은 안개라는 흉물을 받았으니 그에 반발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정말로 너를 어찌할 생각이 없다. 그저 네가 언젠가 본계로 넘어갈 방법을 만들었을 때, 나를 찾아오라는 의미로 네게 그것을 심었을 뿐이다."
진광이 건우를 어르듯이 부드러운 음성을 꾸미며 그렇게 말했다.
"제가 어르신을 찾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클클. 짐작하겠지만 그것은 오래지 않아서 네 의념 공간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극멸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
"그게 무슨……?"
"혹시라도 수미 세계가 멸계전에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너는 선계로 갈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 전에 천지법칙이 너를 걸러낼 테니까. 그것에는 그런 의미도 있느니라."
"어르신께서는 제가 이것을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시는 모양입니다?"
"네가 내 수준이 된다면 어찌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그게 아니라면 네 의념공간을 내 수준의 수사에게 완전히 내어주고 문제 해결을 부탁할 방법도 있겠군. 하지만 그러다가는 도움을 준 놈까지 너와 같은 꼴이 될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건우는 진광의 어조에서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어지간한 수사가 아니고는 진광이 뿌린 검은 안개에 도리어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아, 혹시 네가 태령기에 오르려 한다면 그 전에 나를 찾아와야 할 것이다. 네 영체가 그것에 붙잡혀 있는 이상, 성령기 완경까지는 몰라도 태령기로 오르는 것은 불가능 할 테니 까."
진광은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그렇게 건우의 속이 뒤집힐 말을 태연하게 늘어놓았다.
건우는 발끈하며 눈을 치켜뜨고 진광을 노려봤지만 진광은 곧바로 의념을 일으켜 건우를 짓눌렀다.
콰과과과곽!
"으으윽"
"까불지 마라. 건방진 것. 재롱을 보아주는 것도 정도가 있는 것인 즉!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네 놈은 당분간 알시평을 떠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네가 이곳을 나가는 것은 본계로 돌아갈 방법을 강구한 후에나 가능할 것이란 말이다. 클클클."
진광은 건우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믿는지 그렇게 말을 하며 재미 있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 그렇게 웃어라. 언젠가는 그 웃음의 대가를 크게 받을 날이 있을 것이다. 뿌드드득!'
건우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하지만 겉으로는 침착한 표정을 가장하며 진광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어르신의 손에 잡힌 것을 인정할 수밖에요. 하지만 알시평의 다른 멸계 수사들이 제가 영기 수사란 것을 알게 되면……
"클클클, 그것은 걱정할 필요 없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습니까?"
"네 놈의 행로에 걸림돌을 만들 이유가 있겠느냐? 네 놈이 편히 돌아다녀야 뭔가 수를 만드는 것도 빨라지겠지. 절창 안에 가둬 놓고 뼈를 갈고 살을 헤집는다고 나올 것이 아님은 나도 알고 있느니라."
'그래? 그럼 당분간은 네 놈을 내 뒷배로 써 먹어도 되겠구나? 7대 세력의 우두머리와 거래를 해도 그리 꿇리지 않고 할 수 있겠네? ' 건우는 진광의 수작에 걸린 척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빠르게 계산하기 시작했다.
< 낚였네, 낚였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