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278화 (278/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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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역 입장을 두고 분쟁이 일다 >

"아직 안 가셨습니까?"

건우가 잠시 지수갈을 잊고 있었다는 듯이 능청을 떨며 알은척을했다.

"아니 어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니냐?"

지수갈은 조금 전에 화를 냈던 것과는 달리 크게 섭섭하다는 투로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런 지수갈의 수작에 코웃음이 날 뿐이었다.

"지 수사는 크게 착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지 수사가 나를 아우라 부르거나 말거나 그건 지 수사의 마음이겠지만 나는 지 수사를 형님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 수사는 내게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모양입니다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것이냐? 고작 저들을 데리고 온 것을 가지고 나를 이리 홀대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느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싫다고 하면 될 일인데, 어찌 헤어지자 하냔 말이다."

지수갈은 건우의 말에 억울하다는 듯이 그렇게 하소연을했다.

건우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지 수사가 잘못을 모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저 만나고 헤어짐이 있었을 뿐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지요. 내가 지 수사에게 빚을 진 것도 아닌 데 내가 뭩 선택하건 지 수사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요."

"길 아우 이럴 수는 없다. 그리고 잊은 모양인데 우리에겐 요괴 놈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다. 그걸 잊지 마라."

지수갈은 결국 맹처령의 위협을 언급하며 건우의 마음을 돌리려했다.

"괜찮습니다. 그 수사가 홀로 된 지 수사를 쫓을지, 유 수사와 일행이 된 나를 쫓을지는 알아서 판단을 하겠지요."

하지만 건우는 도리어 그 맹처령이 지수갈을 쫓을 확률이 더 높다는 식으로 그를 놀렸다.

결국 지수갈은 건우를 설득하지 못하고 점차 매서워지는 유세명의 눈빛에 쫓기듯이 별채를 떠나고 말았다.

떠나는 지수갈이 건우를 죽일 듯이 노려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건우는 그에 대해선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지수갈 정도는 어떻게든 상대할 자신이 있었고, 지금처럼 은밀하게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는 맹처령도 있었다.

'어느새 숨어들어 지켜보고 있군. '

천겁독을 해독하지 못하는 한, 맹처령은 건우를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입장이었다.

그리고 맹처령도 자신이 건우 가까이 가면 건우가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맹처령이 실내에 들어와 있는 것은 자신이 그런 식으로 건우를 지켜줄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행동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유세명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는데도 걱정을 덜 수 있는 것이고.

"혁세림으로 가려면 내일 오전에 전송진을 타야 하는데 그건 알고 있나요?"

유세명이 문득 물었다.

"내일이란 말입니까? 며칠 전에 듣기로는 닷새 정도 후라 했는데요?"

"호호. 그 사이에 전송진을 이용할 이들이 모두 채워졌는데, 그들 중에 많은 수가 날짜를 앞당겨 달라고 했다지요."

"그렇더라도……

"호호호.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죠. 그중에 태령기 후기의 어르신이 있다는 것이 문제랄까요?"

"아, 그런 어르신이 나섰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죠? 그리고 그 때문에 지 수사가 성급히 서둔 감이 없지 않아요. 내일 당장 전송진을 타게 생겼으니 우리를 급히 이곳으로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죠." "그야 전송진을 타고 이동한 후에 해도 될 일이 아닙니까. 모두가 전송진을 탈 터인데."

건우는 지수갈이 서둘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세명의 말은 달랐다.

"그리되면 내일 전송진을 이용하는 비용은 우리에게 받을 수가 없잖아요."

"음, 그런 면이 있군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 수사가 실수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미 끝난 일을 두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맺고 끊는 것이 분명하군요. 혹시 생각이 바뀌어 지 수사를 받아들일까 걱정을 했는데 말이죠."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래야죠. 내가 그 지 수사의 경비까지 부담할 이유는 없잖아요?"

"하하. 그야 당연하지요."

결국 유세명이 지수갈을 밀어내려는 이유가 경비 부담 때문이라는 말이다.

건우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대충 수긍하는 반응을 보였다.

"자, 그럼 우리 혁세림으로 가는 길에 대해서 자세히 이야기해 볼까요? 서로 알고 있는 정보도 교환하고."

그런 건우에게 유세명이 눈웃음을 흘리며 제안했고, 건우는 그녀와 마주앉아 앞으로의 행로를 의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을 새운 두 사람은 다음 날 아침, 전송진이 있는 광장을 향해 날아갔다.

광장에 설치된 전송진 위에 백여 명의 수사들이 올라섰다.

건우도 유세명과 함께 전송진에 올라섰다.

이미 비용은 유세명이 해결한 후였다.

멸계에서 공용 화폐처럼 쓰이는 것은 다름 아닌 진극멸기로 만든 멸석이었다.

건우도 진극멸기를 영석처럼 만든 멸석은 멸계에 와서야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이전 멸계전을 치르는 곳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었다.

멸계전에서 건우가 그것을 보지 못했던 이유는 멸석이 영기에 극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멸석은 미량의 영기라도 접하게 되는 순간 그대로 형태를 잃고 흩어진다.

그러니 멸계전이 벌어지는 곳에서는 만들어 쓸 수가 없어 건우도 직접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기 지 수사가 있습니다."

건우가 전송진에 배정된 자리로 가서 포단에 앉아 명상을 하려는데 유세명이 눈짓으로 한 쪽을 가리켰다.

건우는 그곳에서 지수갈이 어제 함께 왔던 고씨와 공씨 수사 둘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빛이 사나운 것을 보니 우리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진 모양이네요."

유세명은 지수갈 일행이 신경 쓰이는 모양인지 자꾸 곁눈질을했다.

하지만 건우는 지수갈 일행보다는 맹처령에게 더 관심이 있었다.

맹처령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장하고 지수갈 일행 가까운 곳에 있었다.

맹처령이 영족의 기운을 드러내고 있으니 가까이 있는 지수갈도 맹처령을 알아보지 못하고 서로 데면데면 한 모습이었다 건우는 맹처령이 일부러 지수갈 일행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맹처령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유능함을 건우에게 인식시키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어떻게든 건우의 인정을 받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아, 저기 태령기 어르신들이 오시는 모양이네요."

그때, 유세명이 한쪽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건우 역시 흥미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네 명의 태령기 수사들이 각각의 색으로 기운을 뿌리며 광장의 중심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검거나 혹은 검붉거나 혹은 검푸르거 나.

극멸기를 높은 수준으로 익힌 이들은 대부분 검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태령기 후기의 멸계 수사라…….'

건우는 바짝 긴장하며 네 수사 중에 한 명을 슬쩍 바라보았다.

수려한 외모의 중년 남성 모습을 한 그는 특이하게, 드러난 피부 전체에 복잡한 문양이 문신처럼 도드라져 있었다.

건우는 그 문양들을 살피려 했지만 그 때마다 아지랑이 같이 흐릿해지며 모양이 바뀌었다.

태령기 후기의 수사가 일부러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양 자체가 지니고 있는 현묘함이 제 스스로 외부자의 인식을 흩어 버리는 것이었다.

건우는 곧바로 문양의 비밀을 캐보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저것은 직접 가르침을 받으며 가까이에서 오래 살펴야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종류였다.

"대단하지 않아요? 모두들 저 어르신 한 분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수련을 쌓아서 경지를 올리면 유 수사도 저리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오리 소계로 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호호호. 그렇죠? 영계 수준의 세계와 벌이는 멸계전이라니, 진극멸기가 얼마나 후하게 떨어질지 생각만 해도 흥분이 되네요."

유세명이 진짜 흥분한 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에 건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유세명의 행동에는 은연중에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신을 유혹하려는 기운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건우는 의념이 강력하고 아공간으로 의념 공간이 구체화 되어 있어 유세명의 삿된 기운이 들어오지 못했다.

혹여 건우의 이목을 속이고 스며든다 하더라도 구체화 된 의념 공간에서는 그 모습을 숨길 수가 없다.

유세명도 자신의 수작이 건우에게 통하지 않는 것을 알고도 그런 조잡한 수작을 멈추지 않았는데, 건우는 그것이 무의식적인 습관 같은 것이라 이해하고 넘 어가는 중이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는데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 다만 나중을 생각해서 하나하나 기억해 둘 뿐이다.

광장의 전송진에 모였던 백여 명의 수사들은 이후 두 곳의 대성을 거쳐서 혁세림 대성에 도착했다.

그 사이에 인원은 더욱 늘어서 혁세림 대성에 도착했을 때에는 전송진에서 내리는 수사의 수가 근 이백에 이르렀다.

"조만간 매당(賣堂)의 대형 운송선이 출발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렇게 수사들이 몰리는 거고요."

"나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매당의 운송선을 타지 않고 금역으로 가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건우의 안색은 어두웠다.

"그래서 우리가 이리 서둘러 혁세림 안쪽으로 가는 거잖아요. 어떻게든 금역에 빨리 도착을 하려고요."

"그래봐야 무엇하겠습니까. 금역에 입장하는 것은 도착순이 아니라 힘의 차이로 결정이 될 텐데요."

"호호호. 길 수사는 무엇을 그리 걱정하세요? 성령기 완경과도 충분히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로 갔지요?"

건우의 말에 유세명이 웃으며 그를 놀렸다.

"물론 나는 여전히 성령기 완경의 수사가 무섭지 않습니다. 하지만 태령기 어르신은 감히 감당할 수 없지요. 게다가 우리는 둘 뿐인데 다른 이들은 무리를 짓 지 않았습니까."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이미 지수갈 일행과 같은 예가 있었다.

"하지만 서둘러서 나쁠 것은 없지 않아요? 금역의 입구에 도착했는데 아직 도착한 사람이 없다면 우리가 먼저 들어갈 수도 있을 테고요."

"태령기 어르신들이 금역을 쓰실 것이 분명한데 우리가 먼저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쪽에서야 금역의 힘으로 어르신들을 피한다지만 건너편 소계나 사오리 소계에 도착한 후에는 어쩌려고 그럽니까? 잘못하면 한 방에 으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말은 하지도 마십시오."

"호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일단 어르신들은 먼저 보내고, 다음 순서는 우리가 취하는 걸로 하지요. 혹여 세가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무리와 연합할 수도 있잖아요."

"으윽"

연합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다.

하지만 금역은 뒤에 들어갈수록 험하고 사나워질 것이다.

그걸 피하려면 금역의 기운이 안정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헛되게 보내는 시간이 생긴다.

"길 아우.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우가 그렇게 고민을 하며 혁세림의 금역에 도착했을 때, 바라지 않았던 상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태령기 수사들은 금역으로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는 대신에 금역의 기운이 사납게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금역의 입구에는 지수갈 일행과 일곱 명이 뭉친 다른 무리 하나가 이미 도착해 대치한 상황이었다.

"딱 봐도 알겠지? 저들이 먼저 입장을 하겠다고 하는데, 우리 셋으론 저들을 막을 수가 없다."

지수갈이 일곱 명이 모인 수사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성령기 중기와 후기, 완경이 골고루 섞여 있는 무리였다.

그들 역시 둘, 둘, 셋으로 서로를 경계하는 듯했지만 어쨌건 금역에선 함께 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떠냐? 이제 우리와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느냐?"

지수갈이 막다른 곳에 몰아 놓은 사냥감을 보듯이 건우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건우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느니 그냥 우리 둘이 저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을 거 같은데? 내가 이전 금역을 1년도 되지 않아서 지나왔다는 것을 알면 저들도 쌍수를 들어 나를 환영할 걸?"

"뭐라?"

건우의 말에 지수갈이 인상을 구길 때, 일곱 명의 무리 중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건우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로 네가 이전의 금역을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통과했다는 말이냐?"

그 물음에 건우의 곁에 있던 유세명이 화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알고, 저기 저들도 아는 일이죠. 특히 저기 편복족 수사는 여기 길 수사와 함께 금역을 통과했다지요. 아, 나는 유세명이라 해요."

순간 일곱 수사들의 시선이 건우와 지수갈 사이를 바쁘게 오고 갔다.

< 금역 입장을 두고 분쟁이 일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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