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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처령은 그렇게 끝나고, 지수갈은 이렇게 끝나고 >
“역시 남자는 주머니가 두둑해야 어깨에 힘이 들어가.”
- 그게 남의 재산을 갈취하고 할 말입니까?
“어차피 내 노예가 된 놈인데 그놈 것을 내가 취하는 것이 뭐 어때서?”
- 그건 그렇지만요. 그런데 맹처령이 영족이었던 건 좀 의외였어요.
“그래, 지수갈이 요괴, 요괴하길래 정말 그런 줄 알았더니.
- 지수갈도 좀 맹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지수갈은 천겁독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거예요?
“천겁독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알잖아. 독공법으로 천겁독을 배양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씨종자로 쓸 일정량의 천겁독이 있어야 하는 거.”
- 그래서 씨종자로 쓸 천겁독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는 거예요?
“두어 번 정도 쓸 수 있을까? 그 이상 쓰게 되면 천겁독을 다시 배양하지 못하게 될 걸?”
- 그럼 이참에 지수갈도 천겁독을 써서 노예로 삼으면 좋지 않을까요?
“무슨, 천겁독이 아까워서 그렇게는 못 쓰지.”
건우가 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 아깝다고요?
“천겁독이면 태령기 수사도 어찌해 볼 수 있는데 고작 성령지 완경을 잡자고 쓰냐? 맹처령이야 워낙 나를 열 받게 만들어서 생각 없이 써 버렸던 거지. 나도 쓰고 나서 얼마나 아까웠는데.”
- 우와, 성령기 완경을 그렇게 하찮게 보시는 거예요? 영기 수련으로도 고작 성령기 후기밖에 못 됐던 사람이.
“왜 갑자기 뼈를 때리고 그러냐? 나한테 뭐 쌓인 거라도 있냐?”
- 요즘 건우 님이 아공간에도 안 들어오고 그러니까 버림받은 거 같다고 할까요?
“이건 뭔 개소······. 아니다. 네가 요즘 수고가 많지. 멸계로 튕기면서 뒤흔들린 아공간을 정리하느라 고생도 많고. 애 쓰는 거 안다.”
- 뭐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면 제가 좀 기운이 나기는 하네요.
“하지만 멸계에선 될 수 있으면 아공간에 드나들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공간이 영기 수도계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멸계와 자꾸 연결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거 같거든.”
- 아공간에 물건을 넣고 빼는 건 괜찮고요?
“아공간 자체가 내 의념 공간 아니냐. 그런데 내가 멸계에 속해 있는 상태에서 의념 공간으로 들어가면 오염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조심하려고.”
-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그러고 보면 건우 님은 확실히 영기 수도계가 맞는 분인 모양이네요.
“애초에 수미산을 삼킨 겨자씨가 영기 수도계에서 나온 거잖아. 나는 그걸 바탕으로 수사가 되었고.”
- 맞네요. 그런데 건우 님.
“왜?”
- 다음 소계로 갈 때 금역을 통해서 가실 거잖아요.
“혁세림의 금역을 통할 가능성이 높지.”
- 그럼 맹처령은 어떻게 해요? 숨어서 따라온다고 해도 지수갈에게 들킬 가능성이 높은데요?
“그건 그 때 가서 봐야지. 죽기 싫으면 맹처령이 알아서 방법을 찾겠지.”
- 우와! 냉정하기가!
“그보단 나는 맹처령이 100일에 한 번씩 나에게 어떤 공물을 가지고 올지 그게 기대가 되는데?”
- 네네. 성령기 완경 수사를 노예로 삼아서 앵벌이를 시키는 성령기 초기 수사가 있다! 뭐 그런 건가요?
“너는 나를 놀리는 재미로······. 음, 지수갈이 오는 모양이군.”
건우는 별채 밖에서 느껴지는 지수갈의 기운에 루야와의 대화를 중지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수갈이 건우가 있는 별채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는 혼자가 아니라 세 명의 낯선 수사와 동행을 하고 있었다.
“지 수사. 만나기로 한 날은 내일로 알고 있는데 하루 이르게 오셨습니다 그려. 그런데 연통도 없이 함께 오신 분들은 뉘신지요?”
건우의 말에는 뾰족한 가시가 돋아 있었다.
약속도 없이 낯선 이들을 대거 데리고 왔으니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게다가 세 명의 수사가 모두 성령기 후기에서 완경의 경지에 있으니 건우도 만만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물론 이곳 객관은 거대 세력의 비호를 받는 곳이라, 이곳에서 성령기 수사들이 사고를 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또라이는 어디에나 있는 법, 객관 이라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우, 화내지 말거라. 여기 세 수사는 내가 이번에 새로 사귀게 된 이들이다. 모두 사오리 소계로 간다고 하니 네게 소개를 해 주려고 데리고 왔다.”
지수갈은 건우의 날카로운 반응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넉넉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 애썼다.
“흥, 고작 초기 따위가.”
그런 중에 성령기 완경의 수사 하나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일행을 외면하며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그는 얼굴에 잉어의 수염을 달고 피부에 비늘 흔적이 남아 있는 어족(魚族) 수사였다.
“어허! 그러지 말자 하지 않았습니까. 고 수사가 그리하면 지 수사께서 난처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다른 남성 수사가 곧바로 소매를 붙잡으며 반쯤 달래듯이 말했다.
그는 경지가 한 단계 낮아서 성령기 후기였고, 평범한 인간 수사로 보였다.
“공 수사의 말이 옳아요. 저 길 수사의 경지는 이미 듣고 오지 않았나요? 그런데 고 수사께서 이리 일을 그르치실 거면 그냥 떠나심이 좋겠네요.”
마지막으로 성령기 완경의 여성 수사가 고 수사라 불린 어족 수사에게 못마땅한 표정으로 일침을 가했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가면 될 일이라는 말이다.
건우는 그렇게 저들끼리 떠드는 세 수사를 보며 여전히 표정이 굳어 있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다가 건우가 지수갈을 바라보며 물었다.
“크하하하. 내가 아우를 위해서 이리 수사들을 초빙해 왔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들 역시 사오리 소계의 멸계전을 목표로 하는 이들이다. 모두가 출신이 다르지. 우리처럼 다른 소계에서 온 이도 있고, 이곳 출신도 있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의논 없이 이리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들어봐. 어차피 사오리 소계로 빠르게 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금역을 뚫고 가야 하는데, 금역의 입구를 열고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열 명 정도까지 가능하지.”
“그래서요?”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 이들 셋이 우리의 여비와 함께 조금의 성의를 보인다면 함께 금역을 통과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단 말이냔 거지.”
“그거야 지 수사의 생각일 뿐, 내가 그와 생각이 다르다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아우가 생각이 다르면? 흠, 그러면 어쩔 수 없겠지. 솔직히 금역을 통과하는데 아우의 재주가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지수갈은 조금 난처한 표정이었지만 건우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함께 온 세 수사의 표정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분명 빠르게 금역을 통과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처음부터 건우를 못마땅하게 말하던 성령기 완경의 어족 수사가 지수갈에게 화를 냈다.
그리고 다른 두 남녀 수사 역시 지수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우, 어차피 금역을 지나는데 사람이 더해진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으냐. 그런데 이리 까탈을 부려? 내 체면도 생각을 해 줘야지.”
지수갈이 다른 수사들의 압박에 못이긴 척 건우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건우의 표정은 냉랭하기만 했다.
“흥! 내가 왜 지 수사의 체면을 고려해야 한단 말입니까. 내가 지 수사와 동행을 하기로 한 것은 지 수사가 딴 마음을 먹더라도 감당할 수 있겠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일행이 생기면 상황이 복잡해지겠지요. 누가 어찌 손을 잡고 문제를 일으킬지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건우는 절대 새로운 동행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당장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은 성령기 완경의 지수갈 정도 뿐이었다.
성령기 완경이 둘이 된다면 무사히 몸을 빼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고, 그보다 상대가 많아진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지수갈을 포함해서 네 명의 일행이라니.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건우의 말을 들은 지수갈의 표정도 이전보다 훨씬 딱딱해져 있었다.
성령기 초기 따위가 자신을 감당할만해서 함께 다닌 것이라 하는데 어찌 그렇지 않을까.
“이리 되었으니 어쩔 수 없겠습니다. 지 수사와의 동행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지요. 나는 혼자 움직이겠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건우가 단칼에 잘라내듯 상황을 결정지었다.
헤어지면 그만, 다른 문제는 건우가 알 바가 아니다.
지수갈이 의논 없이 일을 벌였으니 책임도 그가 질 일이다.
“아우, 그게 무슨 말이냐? 나와 헤어지겠다고?”
결국 지수갈이 붉은 혈기가 피어오를 정도로 흥분하며 건우를 다그쳤다.
“어차피 오다가다 만난 사이에 헤어짐이 대수롭겠습니까? 저는 이제 지 수사와 함께 할 생각이 없으니 이만 물러가 주십시오.”
흥분한 지수갈과 달리 건우는 냉정했다.
이런 건우의 행동에 지수갈은 이제 눈동자까지 빨갛게 변할 정도로 화가 난 모습이었지만 객관에서 소란을 피울 담은 없는지 건우를 노려보기만 했다.
“쯧, 일을 어찌 이따위로 한다는 말인가? 지 수사, 덕분에 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군. 성령기 초기 따위에게 이리 무시를 당하다니!”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자 고 수사라 불렸던 어족 수사가 화를 내더니 갈색 둔광을 남기고 사라졌다.
“괜한 헛걸음을 한 꼴이 되었군.”
이어서 성령기 후기의 남성 수사도 건우와 지수갈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잿빛 둔광과 함께 별채를 떠났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해 주겠어요?”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여성 수사는 떠나지 않고 건우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처음부터 호감이 갈 태도를 보였던 여성 수사라 건우도 모나지 않은 반응으로 그녀를 대했다.
“듣자니 소계 사이의 금역을 지나는데 1년도 걸리지 않았다는 데 그게 정말인가요?”
건우는 지수갈을 힐끗 쳐다봤다.
그가 그런 이야기로 수사들을 끌어 모았던 모양이다.
“맞습니다. 지 수사와 함께 이곳 소계로 오는 길에 금역을 통과했는데 3백 일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하, 그게 거짓은 아니었다는 거군요? 그런데 길 수사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여성 수사가 탄성을 터트리더니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래요 길 수사. 길 수사는 이제 정말로 지 수사와 헤어져 홀로 금역으로 갈 생각인가요?”
여성 수사는 은근한 어조로 확인하듯 물었다.
그러자 지수갈이 뭔가 알아차린 듯이 사나운 눈빛으로 여성 수사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가 뭐라 하기 전에 여성 수사가 지수갈을 쳐다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 수사는 길 수사와 갈라서게 된 마당이니 내가 길 수사에게 동행을 청한다고 문제가 될 것은 없지 않나요? 그리고 나는 지 수사와는 달리 길 수사에게 약간이라도 성의를 표할 생각도 있어요. 지 수사는 그냥 길 수사에게 얹혀 갈 생각이었겠지만.”
“이, 이런 간교한······.”
지수갈은 여성 수사의 말에 허를 찔린 듯이 반론을 펴지 못했다.
‘대단하군. 그 사이에 그런 발상을 하고 지수갈을 저리 몰아붙여 입을 다물게 만들다니.’
건우는 그런 여성 수사의 모습에 내심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가요? 내 제안이 제법 나쁘진 않을 텐데요? 물론 이곳에서 혁세림으로 가는 동안의 비용도 내가 지불하겠어요. 부담이 좀 늘기는 하겠지만 그만한 여유야 있으니까요.”
여성 수사는 다시 건우를 보며 눈웃음을 쳤다.
건우가 한 손을 들어 회색 머리의 턱을 쓰다듬었다.
금방 거부하지 않은 것은 허락의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에 여성 수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찔렀다.
“왜요? 지 수사는 감당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렇게 여성 수사의 도발까지 더해지자 건우의 세 머리, 여섯 개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렇게까지 말씀을 하신다면 다음 소계까지 함께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마치 도발에 넘어간 듯, 건우가 피식 웃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여섯 개의 손을 모아 공수하며 고개를 숙였다.
“호호호홋. 감사해요. 당분간 잘 지내봐요. 나는 유세명(柳細鳴)이라 해요.”
유세명 역시 곱게 두 손을 모으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건우의 인사를 받았다.
“반갑습니다. 유 수사. 길 우몽이라 합니다.”
건우가 역시 길우몽이란 이름을 모두 밝히며 통성명을 마무리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다급해진 것은 지수갈뿐이었다.
“길 아우, 이게 무슨 일이냐? 나를 이리 버린다고?”
< 맹처령은 그렇게 끝나고, 지수갈은 이렇게 끝나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