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이러면 알 놈들은 다 안다고 봐야 하나?
“어떤 놈이냐!”
“으윽, 구염 수사! 심상치 않네!”
“이, 이럴 수가! 의념이 극도로 제약되었군!”
“그러니 하는 말이네.”
붉은 장포의 수사와 삼목족 수사가 당황해서 이리저리 용을 써 본다.
하지만 화신기사 된 후로 한 번도 막혀 본 적이 없었던 의념이 얼어붙은 듯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자신의 몸에서 두어 걸음 정도까지만 의념이 닿을 뿐이다.
그 이상으로는 뻗어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게 어찌······.”
“기, 길우몽 수사?”
구염이라 불린 붉은 장포의 수사와 삼목족 수사가 대전 끝에 있는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건우를 떨리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너는 구염이라고? 그러면 너는 이름이 뭐냐?”
건우가 삼목족 수사를 보며 물었다.
“나, 나는 제형(劑刑)이라고 하··· 합니다.”
제형은 잠시 망설이다가 끝내 말을 높이고 말았다.
지금 상황을 길우몽이 만든 것이라면 어떻게든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 구염 수사. 그리고 제형 수사.”
건우가 두 화신기 수사를 한 번씩 노려보며 이름을 불렀다.
“구염이다.”
“제, 제형입니다.”
구염과 제형이 각각 건우의 부름에 대답했다.
“잠시 기다려라. 내가 저 아이들에게 일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 물어 본 연후에 너희의 처분을 결정할 것이니.”
건우는 두 화신기 수사에게 그리 이르고는 대전에 들어온 형문의 제자들 중에 가장 경지가 높은 영체기 완경의 수사를 바라봤다.
“서, 선배님.”
그러자 그 영체기 제자가 급히 바닥에 엎드리며 건우에게 인사를 올렸다.
다른 형문의 제자들도 다급하게 그 영체기 제자를 따라 대전 바닥에 엎드렸다.
“어찌 된 것이지?”
건우가 물었다.
“저들 두 선배들이 갑자기 휘하의 수사들을 이끌고 형문으로 난입하여 선배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선배님을 오래도록 뵙지 못하였다 했고, 부양도는 방문객을 받지 않는 상태라 고(告)했습니다.”
“그 다음은?”
“하지만 저 두 선배님께서는 저희 말을 무시하고 저희를 핍박하여 부양도로 몰았습니다.”
“부양도로 몰았다?”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려 하면 가차없이 영체까지 소멸을 시키며 부양도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선배님의 부양도까지 쫓겨 왔습니다. 선배님의 청정을 깨트려 송구합니다.”
“음, 저들이 찾아온 이유는 아느냐?”
건우가 다시 형문의 제자에게 물었다.
“제형이라 하는 삼목족의 선배께서는 이전 이곳에 있던 일족 선배님들의 복수를 원하셨고, 구염 선배께서는 혹시 모를 검선의 유산을 찾는다 하셨습니다.”
“검선의 유산?”
“그것이 이곳 망천유역에 있다 하여 오래 전부터 찾아다니는 화신기 선배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내가 형문을 너희에게 맡기고 이곳에 칩거한 것이 고작 3백 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망천유역에 화신기 수사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그렇습니다. 그런 중에 무슨 일인지 길우몽이란 이름이 튀어 나왔습니다.”
“내 이름이?”
“어쩌면 검선의 유산을 선배님께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허면 확신이 아니라 그저 의심스럽다는 정도일 뿐이구나?”
“그리 알고 있습니다.”
“알았다. 너희는 영기 수련을 하여 기운을 수습하거라.”
건우는 대충 상황을 듣고는 형문 제자들에게 정양을 명령하고 고개를 들어 구염과 제형을 바라봤다.
이미 그 둘과 함께 온 영체기 수사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건우가 그들의 영기를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게 묶어 버린 탓에 정신을 잃은 것이다.
이대로 영기가 멈춰 버리면 오래지 않아서 영체까지 피해를 입게 될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구염과 제형은 자신들의 제자와 부하들을 챙길 여유가 없었다.
그들도 당장 운용이 멈추려는 영기를 억지로 붙들고 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었던 것이다.
“먼저, 제형!”
“마, 말을 하시오.”
“너는 네 일족의 복수를 하고자 했다고?”
“아, 아니오. 그저 사라진 동족들에 대해서 궁금해 했을 뿐이······.”
“네가 대전에 들어와서 했던 말을 잊은 모양이구나! 더 들을 가치도 없다!”
건우가 변명을 하려는 제형의 말을 중간에 끊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 순간 건우의 소매에서 일곱 개의 장검이 제형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 하나하나가 강력한 성광지력을 머금은 보검이었다.
푸푸푸푸푹!
“커어억!”
“거, 검선의 유산!”
일곱 개의 검은 그대로 제형의 몸을 찔렀다.
제형은 감히 그 검을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몸을 움직이려 해도 영기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구염이 뭔가를 알아차린 듯이 검선의 유산을 입에 올렸다.
“크으으윽!”
뿌드드드득!
제형은 이미 건우의 아량을 바랄 수 없음을 깨닫고 몸에 일곱 개의 검을 박은 상태로 이마의 눈 하나를 힘겹게 뽑아냈다.
그러자 그 눈에서 새까만 마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제형은 마기가 퍼지는 그 모습에 남은 두 눈에서 희망의 빛을 쏟아냈다.
하지만 거침없이 세력을 넓히던 마기가 어느 순간 벽에 막힌 듯이 뻗지를 못하더니 조금씩 장악한 범위가 줄어들어 결국 주먹 크기의 구슬모양으로 압축되자 그의 눈빛엔 절망만 남았다.
“너희 삼목족이 마귀의 세상과 제법 소통을 하는 모양이고, 특히 그 쪽의 힘 있는 존재와 거래를 잘 하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이것은 네가 그 동안 거래로 모았던 것이겠지?”
건우가 손을 내밀어 검은 마기가 뭉친 구슬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건우도 당장은 자신이 응결시킨 마기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발동을 시작했으니 원할 때에 풀어 놓으면 그 효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에 그 마기의 주인을 건우 자신으로 바꿔야 하겠지만 그것은 이전에 굴형 등에게서 얻은 비전과 눈앞의 제형이 가지고 있을 비전들을 살피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 제발 자비······.”
촤롸롸롸롹!
제형이 모든 일이 틀어진 것을 깨닫고 건우에게 애걸을 하는 순간 그의 몸에 박혀 있던 일곱 개의 검이 제각각 움직이며 그의 그를 난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제형의 몸에서 세 개의 눈을 가진 영체 하나가 대전 천정을 향해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 영체는 얼마 가지도 못해서 다시 투명한 막 안에 갇혀 버렸다.
“음, 쓸모가 없는 영체로군. 이미 마귀에게 절반은 넘어갔어.”
건우가 그 영체를 노려보며 혀를 찼다.
마귀와의 거래로 영체의 절반 가까이가 이미 마귀에게 속한 상태였다.
건우는 인상을 쓰며 영체가 들어 있는 구슬을 소매 속으로 끌어당겨 갈무리했다.
그리고 건우의 시선이 구염이란 수사에게로 향했다.
“대단하군. 나는 도무지 길 수사가 무슨 수법으로 우리를 제압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군.”
구염은 이마에 땀을 흘리면서도 태연한 듯이 건우를 보며 말했다.
건우는 그런 구염의 태도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죽을 걸 아는 모양이군.”
“내가 길 수사의 입장이면 어찌 했을까 생각하니 답이 쉽게 나왔지.”
“그렇다면 갈 때에 가더라도 내 궁금증은 좀 풀어 주겠나?”
“뭐든, 마지막까지 구차해질 이유도 없고, 윤회로 돌아가며 쥐고 갈 것 또한 없으니.”
“좋아. 네가 그렇게 협조적으로 나온다면 네 바람대로 윤회를 막지 않겠다.”
“고맙소.”
구염은 결국 건우의 입에서 윤회 약속을 듣고서야 말을 높였다.
“먼저, 굳이 형문의 아이들을 부양도로 몰아붙인 이유가 뭐지?”
건우는 그럴 이유가 있나 싶어 구염에게 물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오. 그저 제형 수사가 그들을 궁지로 몰아 마귀의 제물로 더욱 쓸모 있게 만들겠다고 했을 뿐이오.”
“마귀의 제물? 아! 그렇군. 두려움과 원망, 거기에 좌절과 절망, 그런 것을 심어 주려 했던 모양이군.”
“나도 그렇게 짐작하오.”
“그럼 형문의 일은 그렇다고 치고, 나에게 검선의 유산이 있다는 이야기는 또 뭐지?”
“조금 전에 보아하니 틀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소만?”
“이 검들이 검선의 유산으로 보이나?”
건우가 제형을 공격했던 일곱 자루의 검을 좌우에 나눠 띄우고 물었다.
일곱 개의 검은 그 끝을 구염에게 향한 상태로 둥실 둥실 떠 있었다.
“아니란 말이오? 성광지력이 가득한 것을 보고 그런 줄 알았소만?”
“음? 검선의 유산이 성광지력을 품었다고?”
“그리 알고 있소이다. 누군가 십이비선의 유산에 대해서 자세히 소문을 냈는데 그 중에 검선의 유산은 수십 자루의 검으로 되어 있고, 그 모두가 성광지력을 품었다 했소이다.”
“으음. 그런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지?”
“길 수사의 과거 행적이 몇 번 검선의 유산과 일치하는 바가 있고, 몇몇만 아는 이야기지만 특히 성광하역에서 소란을 피운 이의 특징이 길 수사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소.”
“성광하역?!”
건우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성광하주와 싸우며 나오금강체술을 사용하는 길우몽의 모습은 물론이고 성해룡결공법과 은행나무 분재, 성해룡주까지 드러냈던 것을 떠올렸다.
그 이야기를 듣는다면 건우와 길우몽의 정체를 짐작해 낼 이들이 있을 법도 했다.
망각이 거의 없는 수사들의 특징을 생각하면 십이비선 밀역과 은밀역에서의 건우나 길우몽까지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런 식으로 조각조각 흩어진 둘의 정보를 모으다보면 결국 둘이 하나란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도 가능했다.
성광하주의 증언이 있었다면 길우몽과 건우를 하나로 유추하는 것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아직 그리 우려할 정도는 아니오. 성광하역의 소식은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으니.”
“구염 수사의 재주가 남다른 모양입니다. 다른 이들은 모르는 소식을 홀로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운 좋게 성광하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오. 그 소식을 듣는 즉시 이곳 망천유역으로 달려왔는데 하필 제형을 만나 일이 이렇게 되었구려.”
“제형을 만나서?”
“제형이 없이 나 홀로 있었다면 어찌 경망되게 다른 화신기 수사를 잡겠다고 나섰겠소? 더구나 성광하주와 실랑이를 했다 하는 수사인데.”
“혼자는 안 될 일인데 제형을 만나 둘이 되니 담이 커졌다는 소리군.”
“그렇소. 그리 된 것이오. 내 운이 거기서 다한 것이지.”
“그게 말이 되는가? 내가 이미 이 사도천에서 삼목족 화신기 넷을 잡았는데, 어찌 너희 둘이 나를 도모하겠다는 생각을 했지?”
건우가 캐묻듯이 구염을 추궁했다.
“사도천의 화신기 넷이 죽었다지만 그것이 어찌 길 수사가 한 번에 이룩한 일이라 생각했겠소.”
“그러니까 내가 이곳의 굴형이나 타형 등을 하나씩 각개격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그리 생각했소. 지금 들어보니 그것이 아니었던 듯 하지만.”
“내가 성광하주와 겨루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을 터인데?”
“붙박이처럼 박혀서 움직이지 못하는 성광하주와 다툰 것에 무슨 큰 의미가 있었겠소?”
“그것 참, 너희 둘의 행사가 어처구니가 없구나. 어찌 그리 아전인수에 정저지와인지.”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확실히 그러하오. 그 때문에 오늘 이 자리가 내 무덤이 된 것이 아니겠소. 허망하구려! 영계 비승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마는구려!”
구염이 그렇게 혼잣말을 하더니 어느 순간 그의 몸에 새파란 불꽃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불꽃은 구염을 빠르게 불태웠다.
건우는 그런 구염의 분신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잠시 후, 구염은 몸이 불타고 영체만 남은 상태가 되자 건우를 바라봤다.
- 이제 나를 죽여주시오. 부탁하오.
구염은 스스로 몸을 불사르고 영체만 남겨 죽음을 청하고 있었다.
건우는 일곱 개의 검 중에 하나를 날려 구염의 영체를 세로로 갈랐다.
그리고 손을 뻗어 구염의 몸이 불타는 중에도 온전하게 모습을 유지한 공간낭을 취했다.
아울러서 죽은 제형의 것도 함께 취한 건우는 손을 저어 대전 바닥에서 요상을 하고 있는 형문 제자들을 지상으로 돌려보냈다.
검선의 유산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형문의 제자들도 들었겠지만 그 이유로 형문 제자들을 죽여 입막음을 할 생각은 없었다.
“쯧! 귀찮은 것들!”
건우는 이어서 다시 손을 저어 구염과 제형이 데리고 온 수사들의 공간낭과 법보들을 취하고 그들 역시 지상의 형문으로 내려 보냈다.
형문의 제자들이 알아서 처분을 내릴 것이다.
굳이 거기까지 관여할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십이비선의 유산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였다.
“유산의 주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유산들이 가지고 있는 숙명이 그 주인들을 한 곳으로 모으려 하는가?”
건우는 일곱 개의 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 검들이 모두 하나로 합쳐지더니 무릎 위로 올라왔다.
= 이거 반갑소이다. 이제야 겨우 검선의 유산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소이다. 그 때의 해(亥) 수사가 지금의 해(亥) 수사인지 모르겠소이다.
바로 그 때, 다시 검선의 유산으로 한 줄기 뜻이 전해져왔다.
건우는 그것이 혜선의 유산을 얻은 자(子)라는 수사임을 알아차렸다.
오래도록 아공간에서만 검선의 유산을 궁구하며 시간을 보냈더니 자(子)가 무척이나 답답했던 모양이었다.
아공간에서 나와서 구염과 제형을 상대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이렇게 연락이 오다니.
= 해(亥) 수사. 이 몸이 망천유역에 있는데 어찌 한 번 얼굴이라도 보는 것이 어떻겠소?
“음? 망천유역에 있다고?”
건우는 갑작스런 자(子)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