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일단 첫 출발은 순조롭게 불로소득 줍줍줍
“아, 참. 맞다.”
이동을 마친 건우는 뭔가 떠오른 것이 있는 듯, 허공에 손짓을 했다.
그러자 건우가 입은 옷이 백색의 완합종 제자 복장에서 청색과 갈색이 어울린 단정한 장삼으로 바뀌었다.
“내가 완합종 제자라고 자랑하고 다닐 때가 아니지. 자, 그럼 여기에 이렇게.”
옷을 갈아입은 건우는 곧바로 역용술법을 운용했다.
역용술은 용모를 바꾸는 용도로 사용되는 잡기인데, 의외로 한민 장로가 남긴 검은 색의 옥간에 그 내용이 들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영기를 이용해서 용모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의 근육을 직접 움직이는 방식이라 영기 탐색에 역용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근육을 너무 과도하게 조이거나 풀어 놓으면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이 나오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은 연습을 통해서 몇 가지 익숙한 모습을 만들어 놓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건우는 녹영림 생활 중에 그 역용술을 조금 익혀 뒀었다.
꿈틀, 꿈틀, 꿈틀.
건우의 얼굴 근육과 어깨 승모근, 허벅지와 팔근육 등이 요동쳤다.
원래 건우는 근육질의 몸이 아니라 날씬한 편에 속하는 체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승모근이 솟아 오르고, 허벅지와 팔뚝이 굵어졌다.
게다가 양쪽 어깨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근육이 굵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얼굴을 좌우로 당겼다.
결국 건우의 얼굴은 넙데데한 사각형 꼴이 되었다.
이전보다 눈도 좌우로 조금 길어지고 오똑했던 코도 낮아졌다.
특히 턱의 좌우가 약간씩 내려간 형태가 되어서 입꼬리가 쳐져서 울상을 짓고 있는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좋아! 나쁘지 않네. 이전 이미지는 전혀 남지 않았어. 자, 그럼 화룡정점으로 이렇게.”
마지막으로 건우는 오른쪽 광대에 손톱 크기의 검은 점을 만들었다.
“변신의 완성은 점이지.”
건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식 웃고는 주변을 둘러봤다.
산 중턱을 택해서 들어왔는데 보이는 옅은 운무가 가득히 끼어 있다.
그것도 그냥 운무가 아니라 영기를 품고 있는 운무다.
“진법 금제가 펼쳐져 있구나. 제 멋대로 움직이다가는 탈이 나겠어.”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십이비승봉의 만능 열쇠인 수정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수정패에서 가느다란 금빛 선이 나와서 한쪽 방향으로 뻗어가기 시작했다.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뻗어가는 금빛 선.
건우는 그것이 이곳의 진법 금제를 벗어날 수 있는 생로임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그 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금빛 선은 숲의 바위와 나무, 돌을 쌓은 작은 석탑 따위를 돌거나 혹은 넘으면서 움직였다.
건우 역시 그 움직임을 그대로 따랐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담한 동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 왼쪽에는 작은 샘이 있고, 오른쪽에는 영초 밭이 있었다.
건우는 금빛 선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의념을 극도로 끌어올려 주변을 살폈다.
샘과 영초 밭과 동부의 입구를 차례로 훑어 본 건우.
“샘은 소규모의 영천(靈泉)이지만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군. 이런 영천을 만드는 것은 많은 재료가 필요하지만 그 재료를 뜯어서 재활용하긴 어렵겠어.”
건우는 영기가 샘솟는 영천이 탐이 났지만 곧바로 미련을 버렸다.
그것을 그대로 떼어서 아공간에 넣는다고 해도 기껏해야 수미산 반영세계에서 옮겨온 수련장소 정도의 효과가 있을 뿐이다.
이미 가진 것들이 있으니 욕심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영초 밭을 보면서부터 건우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오래도록 관리가 되지 않아서 그런지 여기저기 빈 자리가 많이 생긴 영초 밭이었다.
하지만 수령이 수만 년은 되어 보이는 영초들이 밭에 한가득이었다.
“저건 혈기초, 저건 갈매향화, 저건 해독에 좋은 별로초, 저건 당하귀, 구절망대······.”
건우의 입에서 영초 밭에 있는 약초들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그렇게 한참 떠들던 건우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모르는 약초가 없지? 수령이 오래 되어 약효가 굉장한 것을 빼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약초들이잖아.”
그랬다.
그 영초 밭의 약초들은 다방면에 많이 쓰이는 것들로 흔하게 거래되는 것들이었다.
건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약초들 사이에 비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아, 저기에 이 약초들의 기운으로 키우던 귀한 것들이 있었던 거군. 그런 건 다 뽑아가고 흔한 약초만 남겼어. 그런데 그게 몇 만 년 동안이나 찾는 사람이 없으니 이렇게 왕성하게 자란 것이야.”
건우는 깨달음에 무릎을 쳤지만 아쉬움은 금할 길이 없었다.
약초들 중에서 오래 된 것은 2만 년이 지난 것도 있고, 얼마 전에 뿌리를 내린 어린 것들도 있었다.
그 말은 이 밭이 방치된 상태에서 약초들이 저마다 알아서 번식을 해 왔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제대로 관리를 받지 못해서 너무 오래 된 약초들은 그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거름으로 돌아갔으리라.
건우는 그런 사실까지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영초 밭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꼼꼼하게 잔뿌리까지 털어낼 필요도 없었다.
의식을 이용해서 약초들의 뿌리가 뻗은 깊이를 확인하고, 그보다 더 깊은 곳까지 땅을 파헤쳐올려 그대로 아공간으로 넣었다.
일단 기본 아공간에 영초 밭을 임시로 조성하고, 이후에 각각의 속성에 따라서 생장 환경이 좋은 영근 영역으로 옮길 생각이었다.
“어? 어라라?”
그러던 중, 밭을 파헤치던 건우의 행동이 뚝 멈췄다.
“어떻게 여기에 이런 게 있지?”
건우가 발견한 것은 땅 밑으로 백 미터 가까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였다.
그런데 그 나무가 지표면 위로 드러난 것은 고작 한 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분재된 나무를 보는 것 같이 작은 나무.
건우는 그 나무를 요목조목 살폈다.
“생긴 것을 보니 전나무와 향나무를 섞어 놓은 것 같네. 이런 나무면 향이 좋은 목재가 되겠어.”
나무의 기둥은 바르게 쭉 뻗으며 자랐지만 거기에 달린 가지들은 또 제각각 굽이치며 멋스럽게 휘어졌다.
거기에 달린 잎은 침엽수 계열이지만 정확히 어떤 나무의 잎이라 단정짓기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건우가 보고 있는 나무는 자연 발생적으로 태어나는 나무가 아니라 수사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배양해서 키우는 종류였다.
때문에 나무를 배양하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서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나오기에 건우도 작은 나무의 정체를 쉽게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굉장하네. 이런 걸 지심육종분재(地深育種盆栽)라 했던가?"
건우가 자신이 녹색 옥간에서 봤던 내용을 돌이켜 보며 중얼거렸다.
땅속 깊이 배양한 식물을 키우며 겉으로는 분재처럼 모습을 숨기는 방식의 재배법이나 그렇게 자라는 식물을 지심육종분재(地深育種盆栽)이라 한다.
건우도 옥간을 통해서 그것에 대해 알긴 했지만 정작 지심육종분재를 하는 정확한 방법은 알지 못했다.
“일단 이걸 아공간으로 옮겨야겠군.”
건우는 땅 속 100미터 가까이 뻗어있는 지심육종분재를 흙과 함께 뽑아 올렸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축기기 수사들에겐 그리 힘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이곳 십이비승봉은 의식을 넓게 펼치거나 비행 법기를 사용하는 등에 대한 제약은 있어도 영기를 사용하는 데에는 아무 제약이 없었다.
그러니 축기기 수사들이 작정하고 힘을 쓰자면 작은 산봉우리 하나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범인들이 신선이라 부르는 수사의 힘이 아니겠는가.
“자, 이젠 동부를 털어 볼까?”
건우는 지심육종분재를 아공간으로 옮기고 손을 털며 동부 쪽을 바라봤다.
동부는 절벽면을 뚫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원래는 평지에 절벽을 돋우고 거기에 거처를 만든 것이 분명했다.
주변 지형을 보면 이곳에 절벽은 어울리지 않았다.
원래 수사들이 수련 거처로 동부를 선호하니 간혹 그런 식으로 동부의 입구를 만들고 깊이 파고 들어가 공간을 넓히는 방식을 많이 쓰곤 했다.
이곳 역시 그런 곳들 중에 하나로 보였다.
건우는 성큼성큼 동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영초 밭이 털린 마당에 동부라고 멀쩡할 리가 있나. 이미 귀한 것들은 주인을 만나 사라지고 없겠지.”
건우가 동부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크게 염려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 때문이었다.
영초 밭이 손을 탄 것을 봤으니 원래 동부에 있었던 금제니 결계니 하는 것들도 이미 파훼되었을 거라고 봤던 것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의식을 최대한 펼쳐서 주변을 경계하는 것을 멈추진 않고 있었다.
겉으로 태연해 보여도 실제론 바짝 긴장하며 최선을 다하는 중인 것이다.
아공간 안에서 지켜보고 있는 루야와 멍뭉이가 없었다면 건우도 조금은 엄살을 피웠을지도 모른다.
일단 보는 사람이 있으니 의연한 척 해야지 별 수 있나.
더구나 멍뭉이는 자신에게 예속된 존재가 아닌가.
그런 녀석 앞에서 궁색한 꼴을 보일 수야.
“어이쿠, 이게 뭐야?”
하지만 그런 마음도 얼마 가지 않아서 무너지고 말았다.
곧게 뻗은 통로를 따라서 동부의 전실에 도착한 건우는 그곳에 벌어져 있는 참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실에는 다섯 구의 사체가 나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건우도 익숙한 완합종 제자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성단기 제자의 것과 비슷한 문양이 있는 옷이었다.
오래 전의 것이라 문양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아마도 성단기 수사가 분명할 것이다.
그 완합종의 제자는 다른 한 명의 수사와 힘을 합쳐서 세 명의 적을 상대한 모양이지만 끝내 머리의 반이 사라진 상태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한 수사는 도망을 치려다가 도자기로 만든 창에 등이 꿰뚫려 있었다.
건우의 시선이 다시 전실 안쪽에 있는 세 구의 사체로 향했다.
“대천세계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알게 해 주는 꼴이군.”
그 셋은 한 곳 엉킨 상태로 제대로 쓰러지지도 못하고 서로 몸을 기댄 상태로 엉거주춤한 꼴을 하고 있었는데, 뒤에 있는 수사가 앞의 두 수사의 등에 양 손을 꽂아 넣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런 공격을 받고, 앞에 있던 두 수사도 반격을 했는지 뒤쪽 수사의 아랫배와 옆구리에 도자기 창과 은색 비수를 꽂아 넣고 있었다.
“뒤에서 기습을 했거나, 아니면 앞에 둘이 기습을 해서 뒤에서 급히 반격을 했거나 그런 거겠지.”
건우가 놀란 표정을 지우고 담담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건우의 깊은 눈빛은 탐욕을 담고 죽은 수사들의 허리와 소매, 품 속 등을 살피고 있었다.
“흐흐흐. 공간낭이 널렸네. 아주 그냥 대박이 터지겠어.”
건우가 저도 모르게 경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완합종 제자에게 먼저 다가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머리가 절반이 날아간 상태로 천정을 보며 누워 있었다.
건우는 성급히 손을 대지 않고 먼저 의식을 펼쳐서 수사의 사체를 살폈다.
혹시라도 반응하는 영기가 있는지 꼼꼼하게 살피고, 그 중에 수사의 의념이 깃들어 있는 것을 구별했다.
다행히 위험하게 보이는 반응은 없었다.
전투 중에 횡사를 당한 것이라 특별히 사후에 대한 대비를 하지는 못한 것이 분명했다.
과거 한민 장로는 자신의 영혼을 옮길 준비를 할 여유가 있었지만 이 수사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건우는 완합종 장로의 허리에서 공간낭 하나를 챙기고, 함께 있는 영수대도 챙겼다.
영수대는 영수를 넣어 보관하는 것인데, 의식을 불어 넣어 보니 안에 있던 영수는 이미 죽었는지 반응이 없었다.
이후 완합종 장로의 몸은 그대로 아공간의 한쪽 구석으로 옮겨졌다.
오래 되긴 했지만 성단기 수사의 몸이니 어디 쓸 곳이 있을까 싶어서 보관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건우는 사체를 보관한 아공간은 따로 떼어내서 다른 곳과의 연계를 완전히 끊어버렸다.
혹시 사체에 무슨 수작이 숨어 있어도 그것이 아공간 전체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고, 급한 경우엔 격리한 아공간 영역을 그대로 떼어 버리는 강수를 둘 수도 있었다.
그만큼 의식과 수련에 손해를 보겠지만 급한 위험을 피하기에 그만한 방법도 없을 것이다.
이후 건우는 남은 네 명의 수사들의 몸을 뒤져서 공간낭이나 법기, 법보 등을 거뒀다.
당연히 남은 해골들은 완합종 장로와 함께 한 곳에 가지런히 쌓였다.
“공간낭이 다섯에, 영수대가 둘. 공간낭을 살피지 않았는데도 법기가 넷에 법보로 보이는 것이 하나가 있네. 이것들은 연화를 하지 않으면 쓸 수 없지만 연화야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좋아. 아주 좋아. 하하하하.”
건우는 이미 얻은 법기와 법보는 물론이고 다섯 공간낭에 들어 있을 보물들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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