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드디어 도착! 완합종 녹림도(綠林島)!
파파파팟, 파파팟!
키이이익! 끼루루룩! 끼룩끼룩!
차가운 냉기를 품은 얼음의 결정들이 하급 비행 요수를 향해 날았다.
갈매기를 닮은 비행 요수 요구조(妖鷗鳥)들은 날아오는 얼음 결정들을 피해서 이리저리 곡예비행을 했다.
그러다가 그 중에 몇 마리는 얼음 결정을 피하지 못하고 운해 밑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아직도 남은 요구조(妖鷗鳥)가 십여 마리는 된다.
공여려는 입술을 깨물며 다시 얼음 결정을 만들어 냈다.
끼루루루루 끼루루루루!
요구조(妖鷗鳥)들이 그 빈틈을 노려 일제히 부리를 벌리고 투명한 영기를 쏘아낸다.
그 순간 요수들의 입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져 청옥비선을 향해 날아왔다.
투화화화황! 투화화황!
하지만 하급 비행 요수의 공격은 청옥비선의 보호 금제에 부딪혀 기운을 잃고 흩어질 뿐이다.
청옥비선의 보호 금제는 무척 강력해서 연신기 초기 급의 하급 요수가 뚫을 수 없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공여려는 선실 쪽의 눈치를 보며 부지런히 얼음 결정을 날려 하급 비행 요수를 사냥했다.
혹시라도 선배가 선실 밖으로 나오면 또 얼마나 구박을 받을지 모른다.
매번 비행 요수들의 습격을 막는 것은 공여려의 일인데, 그것을 막지 못해서 보호 금제가 크게 충격을 받으면 선배가 나온다.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해서 귀찮게 했다는 이유로 구박을 하는 것이다.
지난 서너 달 동안에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다.
물론 가끔씩 공여려가 상대하기 벅찬 요수들이 달려들 때면 건우가 나서서 처리를 해 주었다.
그것을 생각하면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수가 많은 하급 요수들 때문에 야단을 맞을 때면 서러워서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어서 저 요구조(妖鷗鳥)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머리가 둔한 이 하급 요수들은 수준의 차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끈질기게 달려든다.
오랜만에 만난 먹잇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착만 가득한 것이다.
“새 대가리들 같으니! 그러니 수도계에 조인족들은 멍청하다는 소리가 나돌지. 그냥 죽어!”
공여려가 악을 쓰며 얼음 결정들을 허공에 흩뿌렸다.
몇 마리 남지 않았으니 강력한 공격으로 마무리를 하려는 생각이다.
허공에 뿌려진 얼음 결정은 이전에 날릴 것들보다 크기가 작았지만 수가 수십 배는 많았다.
그 얼음 결정들은 공여려의 손짓을 따라서 넓게 퍼지더니 그물을 만들어 요구조(妖鷗鳥)들을 향해 쏟아졌다.
끼두루룩 끼루끼루룩!
한 순간에 십여 마리의 요구조(妖鷗鳥)들이 공여려의 얼음 그물에 걸려서 얼어붙더니 운해 밑으로 가라앉았다.
“휴우.”
공여려가 몸에서 불안하게 들끓는 영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길게 날숨을 쉬었다.
사실 저 하급 요수는 운해 밑으로는 내려오는 법이 없어서 일반 저계 수사들은 만날 일이 없는 종류였다.
저계 수사들이 운해 위로 비행을 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공여려도 청옥비선 같은 상급의 비행 법기가 아니었다면 구름 위로 올라올 일은 없었을 것이고, 요구조를 경험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운해 밑으로 추락해버린 요구조의 사체는 조금 아깝다.
연신기 초기 요수라 큰 가치는 없어도 아주 쓸모가 없지는 않을 텐데, 청옥비선의 비행이 빨라 그것들까지 챙길 여유는 없었다.
그래도 건우가 처음 몇 마리를 챙긴 후에는 더는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사체로 야단을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끝났느냐?”
공여려가 길게 숨을 내쉬며 영기를 다독이고 있을 때, 선실에서 건우가 걸어 나왔다.
“서, 선배님.”
공여려가 건우의 등장에 바짝 긴장하며 말을 더듬었다.
이번에도 또 무슨 꾸지람을 받을지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건우는 그런 공여려의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청옥비선을 타고 오는 몇 달 동안 공여려를 조금 못살게 굴기는 했다.
하지만 이유 없는 타박은 아니었는데 저리 겁을 내다니, 자신이 좀 심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너를 야단치려는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비행이 빨라서 곧 종문이 있다는 녹림도(綠林島)에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네? 벌써요? 다섯 달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요?”
원래 여섯 달은 걸릴 거라고 했던 거리다.
그런데 그보다 두 달 가까이 기간이 단축되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직 녹림도에 완전히 닿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곧 녹림도의 영역에 들어가니 청옥비선의 비행 고도를 낮춰야 한다. 그리고 속도도 줄어야지.”
“아, 그렇군요. 선배는 완합종의 정식 제자가 아니고, 저는 고작 연신기 제자일 뿐이니 제 멋대로 비행 법기를 타고 움직일 수가 없군요.”
“그렇다. 그리고 나는 방문객의 처지나 같으니 일단 접객청을 통해서 정식으로 방문 목적을 밝혀야지.”
“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아무 말도 없이 녹림도의 영역으로 들어갔다간 크게 경을 칠 거예요.”
공여려의 목소리에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자신이 속한 종문이 코앞이니 그 동안 눌렸던 기세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래, 그러니 지금부터 청옥비선의 속도를 줄이고 고도를 낮추겠다.”
“네, 그렇게 가시다보면 영역을 지키는 분들이 나오실 거예요.”
따로 순찰을 돌거나 하지는 않지만 녹림도의 영역 경계에는 곳곳에 완합종 수사들의 수련 거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수사들은 1차로 녹림도로 들어오는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역할은 물론이고 침입자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여려는 그 사실을 두고 청옥비선이 다가가면 마중 나오는 수사들이 있을 거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건우의 눈에 냉기가 돌았다.
“고얀! 너는 감히 나를 우롱하려는 것이냐!”
우르르르르릉!
건우가 공여려에게 크게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청옥비선의 보호 금제 안쪽의 영기들이 떠르르 울렸다.
“아악, 서, 선배님!”
공여려가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건우를 불렀다.
“어떤 집단이든 손님을 공식적으로 맞이하는 접객 담당이 있기 마련이다. 내가 분명히 그에 대해 언급을 했는데도 너는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고 마냥 녹림도로 가다보면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고? 도대체 무슨 의도냐?”
건우가 서릿발이 담긴 듯이 차가운 음성으로 공여려를 꾸짖었다.
공여려는 그런 건우의 반응에 얼굴빛이 새파랗게 질려서 벌벌 떨었다.
어설프게 머리를 굴리다가 호되게 걸려버린 상황이었다.
마땅한 변명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아차릴 일인데 공여려는 그 동안 건우에게 쌓인 것이 많아서 제 앞마당에 오자마자 긴장이 풀어졌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실수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요, 용서해 주십시오. 선배님, 후, 후배가 잘못했습니다.”
이럴 때에는 그저 죽었다고 엎어지는 것이 유일한 답이다.
구구절절 변명을 해 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공여려는 눈치껏 알아차렸다.
“쯧, 내가 이제 곧 완합종과 인연을 맺으려는데, 여기서 너를 혹독하게 대한다면 그 인연이 처음부터 꼬이게 되겠지. 쯧쯧쯔.”
건우는 혀를 차며 청옥비선의 갑판에 엎드려 있는 공여려를 외면했다.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공여려가 겨우 한숨을 돌리며 이마를 바닥에 쿵쿵 찧었다.
그러는 사이에 청옥비선은 운해 밑으로 내려갔고, 선수 앞쪽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푸른색의 섬 일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넓군. 섬이 아니라 대륙이라 해도 되겠어.”
건우가 청옥비선의 선수에 서서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하얀 장포를 휘날리며 중얼거렸다.
청옥비선의 금제는 탑승자에게 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바람은 굳이 막지 않으니 시원한 바람이 건우의 옷자락을 날리는 것이었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후, 후배가 종문의 접객청에 연락을 하겠습니다.”
그 때, 공여려가 조심스럽게 건우의 뒤로 다가와 말했다.
“연락할 방법이 있느냐?”
건우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녹림도의 영역 안에서만 쓸 수 있는 전신부(傳信符)가 몇 장 있습니다.”
공여려는 조금 전의 잘못을 만회하려는 듯이 스스로 나서서 건우의 일을 돕고자 했다.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았다가 또 방법이 있으면서 함구했다고 경을 칠 것이 두렵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과거 객경장로였던 수사의 후계로 축기기에 오른 이가 완합종에 들기를 원하면 그것을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당연히 오래지 않아서 종문의 사부 항렬이 될 사람이었다.
밉보여 좋을 것이 없음을 공여려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래, 그럼 연락을 해 보거라. 그간의 일을 상세히 고하면 알아서 판단을 하겠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보내기 전에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는 내가 확인을 하는 것이 좋겠구나. 혹여 놓치고 적지 않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네 기억이 온전치 못해서 잘못 적은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니.”
“그, 그야 물론입니다. 후배는 당연히 전신부를 작성하고 선배님께 보여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 네가 이제야 조금 머리가 트이는 모양이구나.”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건우의 칭찬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공여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공여려는 종문에 전신부를 보낼 때에 따로 일을 꾸미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알리고 종문에 도움이 될 인재를 데리고 온 작은 공이라도 인정받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과 세절도에서 헤어진 문제를 적을 때에도 건우와 말을 맞춰야 했다.
그걸 생각하면 자신이 적은 전신부를 건우가 읽고 미리 살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공여려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공간낭에서 나무로 된 패를 하나 꺼내서 거기에 의식을 불어넣어 전신부의 내용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성이 끝나자 그것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선배님, 이러면 되겠습니까? 좀 살펴 주십시오.”
“그래, 어디 보자꾸나.”
건우가 공여려의 전신부를 받아들었다.
* * *
완합종의 다섯 섬 중에서 남쪽에 위치한 녹림도는 네 개의 완합종 부속 섬들 중에서 서열 3위의 섬이었다.
동도와 서도의 도주가 영체기 중기인데 비해서 남도와 북도의 도주는 영체기 초기라 그렇게 서열이 정해진 것이다.
물론 그 중에서도 남도의 도주가 조금 더 일찍 영체기에 올라서 서열 3위라 하는 것이지만 실상 네 곳의 섬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상 섬들 사이의 경쟁이 심해서 때로는 같은 완합종에 속해 있으면서도 서로 싸움을 벌여서 수사들이 죽어 나가곤 할 정도였다.
그래서 완합종의 녹림도는 다른 부양도, 격류도, 설상도의 수사들을 항상 경계했다.
그 때문에 접객청을 맡고 있는 성단기 후기의 수사 섭주구의 일은 무척 중요했다.
그는 녹림도로 들어오려는 밀정을 잡아내야 했고, 또 녹림도에 이익이 될 수사들을 영입하기도 해야 했다.
밀정을 가려내고 인재를 찾아 내는 일은 서로 상반된 일이라 때론 무척 곤혹스러운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날아온 전신부는 꽤나 신선했다.
“경진후와 경미후가 쌍수수련을 하던 아이들이었지?”
“그렇습니다. 사숙.”
섭주구의 물음에 접객청에 속한 축기기의 제자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보통 섭주구와 일을 의논하는 접객청의 간부들은 대부분 성단기의 초기나 중기 수사들이었다.
그런데 이번 전신부는 고작 연신기의 제자가 보낸 것이라 축기기 제자가 그것을 확인했고, 사정이 특별해서 섭주구에게 들고 온 것이다.
물론 그 축기기의 제자는 섭주구가 아끼는 제자였다.
“경진후와 경미후가 실종이라, 성단기의 포공공마라면 사실상 죽었다고 봐야겠군. 그런 중에 공여려가 살아왔다? 그것도 십여 년 만에 축기에 성공한 놈을 데리고?”
“전신부의 내용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어찌 처결을 했느냐?”
“일단은 경계에 대기하며 명을 기다리라 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이제 이것들을 어찌하는 것이 좋겠느냐?”
“사숙, 이번 일은 제자가 판단할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섭주구의 물음에 축기기 제자가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찌 그러하냐?”
“사숙, 이는 오래 전이지만 객경장로님과 연관된 일입니다. 게다가 그 객경장로님의 연공 수련법을 종문에 내어 놓겠다는데 그런 일에 제가 의견을 낼 수는 없습니다.”
“하긴, 축기기 수준에선 끼어들기 어렵긴 하겠군. 하지만 이것은 대답할 수 있겠지?”
“어떤 하문이신지요?”
“이 전신부의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당연히 그 축기기 수사를 제자로 받아들이고 수련 공법을 종문에 바친 공을 셈해서 공헌 점수를 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음? 마땅하다?”
“그 진염결이라는 수련 공법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고작 10년 만에 축기에 올랐다는 수사의 수련 자질이 더 중요합니다. 비록 영근이 셋이라고 하지만 그런 조건에서도 축기에 그토록 빠르게 올랐다면 인재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 그 녀석이 인재니 종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구나?”
섭주구는 웃으면서도 제자를 보는 눈빛에 칼날이 들어 있는 듯이 날카로웠다.
“그, 그도 그렇지만 그런 인재가 사숙의 그늘에서 성장하면 이후에 사숙에게 보탬이 되지 않겠습니까. 불러 쓸 수 있는 좋은 패는 여럿 지닐수록 좋다고 배웠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래. 바로 내가 그렇게 가르쳤지. 옳다. 옳아.”
섭주구는 제자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탁자를 두드리며 크게 웃었다.
그 때마다 어깨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섭주구의 허리가 출렁거렸다.
섭주구는 팔다리가 몸통에 묻혀 버린 듯 보이는 초고도 비만의 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다시 연락을 해서 곧바로 이곳으로 오라고 전해라. 청옥비선을 타고 오는 것을 허락하며 경로를 벗어나지 말고 최고 속도로 오라고 해라.”
한참을 웃던 섭주구가 축기기 제자를 보며 그렇게 명령을 내렸다.
어차피 직접 만나서 살펴야 종문에 받아들일 것인지 내칠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목을 비틀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섭주구는 오랜만에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일처리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나저나 포공공마, 성단기의 포공공마라······ 아쉽군. 만나기도 쉽지 않은 기연인데, 그런 것이 나타났을 때, 내가 그곳에 없었다니.”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성단기 포공공마라는 놓쳐버린 기회에 속이 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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