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환장 통수 선협전-46화 (46/499)

45. 원래 내 거 맞지?

1년의 시간은 너무도 짧았다.

공여려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영기의 흐름을 안타까워하며 수련에 매진했다.

하지만 마르는 영맥을 공여려가 되살릴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큰 지진으로 생겨난 영맥의 지류였다.

한 번 터진 영맥이 솟구치다가 삿갓조개가 출구를 막는 바람에 고여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삿갓조개가 야금야금 빨아먹었고, 그 후에는 건우가 엄청난 속도로 흡수했다.

당연히 눌려 있던 영기의 압력이 줄어들고, 흘러나오는 영기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건우도 수련을 하던 중에 그런 사실을 깨닫고는 수명이 다한 영맥에 미련을 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연신기 수사인 공여려에겐 그조차도 감지덕지할 기연이었다.

아쉽다면 이미 말라가는 영맥의 수명이 너무 짧았다는 것.

“하아, 결국 이번에도 축기엔 오르지 못했네. 하지만 벽을 두드리긴 했으니 아주 성과가 없는 건 아니야.”

다음에 다시 시도를 한다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를 해야 경지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이 보통이다.

생각해보면 건우라는 수사는 정말 운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곳의 영기를 혼자 독차지했으니 그런 성취를 얻었겠지.”

공여려의 눈빛이 사납게 터져 나왔다.

건우만 아니었으면 자신이 이곳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신이 축기에 올랐을 것이고, 건우를 발 아래 두고 손짓으로 부리는 입장이 되었을 것이다.

“내 것을 훔쳐 간 거야. 원래 내 것이었다고.”

억지가 분명했지만 어차피 주인 없는 영맥이 아니었나.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건우가 가로챈 것은 분명하다.

공여려의 생각은 그렇게 편협되게 쏠리고 있었다.

그 때, 공여려가 수행을 하고 있는 수중 동부 안으로 작은 영기 덩어리 하나가 날아들었다.

질이 낮은 옥석 조각이었다.

공여려는 그것이 뿜어내는 영기를 감지하고 손을 휘저어 옥석 조각을 잡아챘다.

- 올라오거라. 영맥이 말랐으니 더는 수련을 해 봐야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건우의 호출이었다.

영맥이 마른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공여려를 불러낸 것이다.

공여려는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지금으로선 건우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연신기 수사가 축기기 수사의 명을 어떻게 거부할까.

그런 기색만 보여도 호되게 경을 칠 것이고, 운이 없으면 목이 달아날 수도 있다.

수도계에서 경지의 차이란 그렇게 무섭다.

* * *

“선배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연락을 받자마자 달려왔지만 공여려는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되었다. 늦지 않았으니 그럴 필요 없다.”

건우는 그런 공여려에게 슬쩍 손짓을 해서 몸을 펴게 했다.

그리고 공여려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옥비선을 다오.”

“네? 네! 여기 있습니다.”

공여려는 급히 공간낭에서 청옥비선을 꺼내 건우에게 내밀었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내 스승이었던 경진후 수사의 것이었지?”

건우가 청옥비선을 받아들며 공여려에게 물었다.

예전에는 경진후가 스승이었지만 지금은 같은 경지에 올랐으니 스승이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스승이었던 경진후 수사’가 된 것이다.

“그렇습니다. 선배님.”

공여려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것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 봐야겠지? 스승의 것을 제자가 이어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 게다가 이걸 사용할 수 있는 사람도 나 뿐이고 말이다.”

건우는 자신의 손에 들어온 청옥비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공여려는 그 말에 마땅히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딱히 따지자면 스승보다는 아버지가 더 가까운 것이 아니냐고 하고 싶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부모를 위험에 빠트린 것이 공여려고, 공여려와 건우를 미끼로 쓴 것이 그들 경진후와 경미후였다.

사실상 공여려와 그 부모 사이의 관계를 따져봐야 좋은 소리는 나오기 어려웠다.

“물론입니다. 청옥비선은 당연히 선배님의 것입니다. 경진후 사숙께서 선배님의 스승이셨으니 당연하지요.”

공여려는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청옥비선의 소유권이 건우에게 있음을 인정했다.

법기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비행 법기인 청옥비선은 꽤나 귀한 것이었다.

당연히 공여려도 욕심이 날 수밖에 없지만, 수도계에선 힘이 곧 법이 아닌가.

지금 여기서 건우의 심기를 상하게 하면 어느 수풀에서 해골이 되어 바람을 맞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 당연히 그렇겠지만 또 네가 섭섭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물어본 것이다. 정말 괜찮으냐?”

“물론입니다. 선배님. 선배님의 당연한 권리이니 이 후배는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건우가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물어보자, 공여려가 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건우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든 청옥비선에 의념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축기기가 되었으니 주인 없는 청옥비선을 연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건우는 청옥비선에 강력한 의념을 불어넣어 다른 이가 사용할 수 없도록 아로새겼다.

건우의 의념은 일반적인 축기기 수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니 어지간한 이들은 청옥비선을 얻는다 해도 거기에 새겨진 건우의 의념을 쉽게 지워내진 못할 것이다.

“음, 이제 된 거 같구나. 그럼 지금 출발을 해도 되겠느냐?”

건우가 오래지 않아 연화 작업을 끝내고 공여려를 보며 물었다.

“따로 챙길 것은 없습니다. 선배님 편하실 대로 하시면 됩니다.”

공여려가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

“그래, 나도 따로 준비할 것은 없으니 곧바로 출발을 하자꾸나.”

건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든 청옥비선에 영기를 불어 넣으며 허공으로 던졌다.

그러자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작았던 청옥비선이 푸른빛과 함께 커지더니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나, 모양이 조금 바뀐 거 같으네요?”

그런데 청옥비선은 이전에 봤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돛이 없는 작은 어선처럼 생긴 배는 앞쪽 갑판이 넓고 뒤쪽에 작은 선실이 달린 모양이었다.

몸체 전체가 청옥으로 되어 있는데 이전에 없던 초록색 무늬가 가득 도드라져 있었다.

“목기의 영향을 받아서 조금 변한 것이다. 의념을 불어 넣을 때에 목영근의 기운을 빨아들이더니 스스로 재생력을 높였구나.”

“법기가 선배님의 속성 영기를 흡수했다는 말씀인가요?”

공여려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청옥비선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목속성 영기와 어울리도록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전 주인이 목속성 영기가 없어서 저런 기능을 쓰지 못한 것일 뿐이지.”

“아, 그렇군요. 그럼 이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이군요?”

“일단 스스로 복원하는 재생력 늘었고, 비행 속도도 조금 더 빨라졌겠지.”

“정말 잘 된 일이네요. 그럼 종문에도 조금 더 빨리 돌아갈 수가 있겠네요.”

“그래, 지도를 보아하니 청옥비선으로 날아가면 여섯 달 정도면 종문에 도착할 수 있겠구나.”

“아! 정말 얼마 안 걸리네요.”

공여려는 금방이라도 완합종에 도착할 듯이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이제 오르거라. 출발 할 테니.”

건우는 흥분하는 공여려가 무색하게 툭하니 한 마디를 던지고는 청옥비선에 올랐다.

훌쩍 몸을 날려 청옥비선의 선수에 오른 건우를 따라서 공여려도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그럼 가자꾸나.”

건우는 공여려가 청옥비선에 오르자마자 손바닥을 저어 영기를 뿜어냈다.

영기는 곧바로 청옥비선 전체를 감싸더니 청옥비선에 담긴 술법들을 일깨웠다.

스스스 스화화화홧!

다음 순간, 건우와 공여려가 10년 이상 머물렀던 섬이 금새 손바닥 크기로 줄어들더니 짙은 구름에 가려 사라졌다.

순식간에 날아오른 청옥비선이 구름 위를 올라탄 것이다.

“아아, 이렇게 쉬운 것을 그리 오래 기다려야 했군요.”

한쪽으로 방향을 잡고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청옥비선 위에서 공여려가 허탈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비선의 보호 결계가 비바람을 막아줄 것이니 너는 이곳에서 연공을 하며 시간을 보내거라. 나는 선실에 들어가 비선을 조종할 테니.”

건우가 그런 공여려에게 한 마디를 던지더니 뒤쪽 선실로 향했다.

공여려는 그런 건우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굳이 선실이 아니어도 청옥비선을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홀로 두고 들어가는 건우가 매정하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몇 개월을 좁은 비선에 머물러 있어야 할 테니, 건우의 말대로 연공을 하는 것이 시간을 보내기엔 가장 좋을 것이다.

‘아공간의 입구를 비선의 움직임에 맞춰서 유지하지 못하니 비행 중에는 아공간에 들어갈 수가 없겠군.’

하지만 선실 안에 들어온 건우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편안한 아공간을 두고 반 년 가량을 선실 안에서 지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럼 하는 수 없이 공부나 해야겠군.’

딱히 비행 중에 영기 수련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영맥 위에서 수련을 했던 경험 때문인지 평범한 환경에서의 수련은 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선실 안에서 삿갓조개의 진주를 꺼내서 연공을 하는 것도 꺼려졌다.

공여려가 그것을 알아차리긴 어렵겠지만 보물은 될 수 있으면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민 장로가 남긴 옥간들을 새로 들여다보며 그 내용을 익히는 것이었다.

건우는 청색 옥간을 꺼내서 법기와 법보, 법부와 괴뢰 따위의 제작에 대한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금 타고 있는 청옥비선을 연화시키면서 그 실체를 파악하니 갑자기 그런 기물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법기보다 뛰어난 것이 법보란 말이군. 그 위로 영기와 영보가 있고, 그 위로는 선기와 선보가 있다?’

수사들이 사용하는 기물을 가장 간략하게 나눠 놓은 부분을 읽은 건우는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복기했다.

법기(法機), 법보(法寶).

영기(靈機), 영보(靈寶).

선기(仙機), 선보(仙寶).

법기와 법보는 인간계의 수사들이 쓰는 것이고, 영기와 영보는 영계의 수사들이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기와 선보는 말 그대로 불로불사의 경지에 오른 신선들이 선계에서 쓰는 보물들을 말한다.

물론 그 모두를 뭉뚱그려 법보라 하기도 하는데 등급을 나눈다면 그렇게 여섯 등급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인간계의 수사들 중에 간혹 영기(靈機)를 얻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군. 하급 영기라도 얻기만 하면 갑중 갑이 되는 모양이네?’

건우는 옥간의 내용에서 인간계에 영기가 등장한 예가 있었다는 기록을 읽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엔 그 영기(靈機)의 주인이 수도계를 평정하고 오래지 않아서 영계로 비승을 했다고 했다.

물론 그 전에 영기(靈機) 쟁탈전으로 숱하게 많은 수사들이 비명횡사하는 일은 매번 비슷하게 벌어진 모양이었다.

‘영기(靈機)를 얻어도 제 것으로 연화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그 사이에 이리저리 공격을 받아 죽고, 영기의 주인이 바뀌는 일이 자주 벌어지곤 했다는 말이군.’

건우는 뒤로 이어지는 내용을 읽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도 건우는 아공간에 있는 금속 봉을 제대로 연화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화정이 들어 있다는 연단로는 손 댈 생각도 못하는 중이다.

금속 봉의 경우엔 원래 연단을 할 때 연단로에 들어간 재료를 섞어주는 용도로 쓰던 것이지만 품고 있는 기운이 어마어마했다.

혈모원 우두머리가 그것을 휘두르고 다닌 것은 단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한민 장로가 남긴 영단을 먹고 한민 장로의 의식 한 가닥이 침투해 세뇌를 당하던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그 덕분에 한민 장로가 연화한 금속 봉을 들고 휘두를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축기에 오른 지금도 건우는 그 금속 봉을 연화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정도면 법기는 넘어서 법보 수준은 되는 거 같은데,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찾을 수가 없으니 아쉬운 일이지.’

건우는 문득 그 금속 봉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녹색 옥간을 떠올렸다.

연단술이 기록된 그 옥간에도 아직 파악하지 못한 내용이 많았다.

혹시 거기에 그런 내용이 들어 있을 수도 있었다.

‘해골 선배의 옥간이 수련 경지에 따라서 다른 내용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지. 아마도 성단기가 되면 또 다른 내용이 나올지도 몰라.’

생각해보면 해골 수사 덕분에 건우가 대천세계에서 그나마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골 수사가 남긴 옥간은 그야말로 화수분처럼 축기기가 된 건우에게 숨겨진 내용을 드러냈다.

건우도 얼마 전에야 옥간을 새로 확인하다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아서 어깨춤을 출 일이다.

‘그나저나 성단기가 되기 전에 나도 본명 법기를 만들기는 해야 할 텐데. 어떤 법기를 만들지 고민을 해 봐야겠구나.’

건우는 청색 옥간에서 의식을 회수하며 문득 본명 법기를 떠올렸다.

본명 법기는 수사의 영혼과 연결된 특별한 법기를 말한다.

이 법기는 수사마다 단 한 가지만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을 잃게 되면 수련에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사들은 본명 법기를 목숨이나 영체 다음으로 귀하게 여긴다.

당연히 귀한 재료로 최고의 법기를 만드는 것은 모든 수사의 꿈이다.

또 본명 법기를 가지고 있는 수사들은 항상 어떻게 하면 본명 법기를 더욱 개량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그 기회를 얻으면 놓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건우도 축기기가 되었으니 그런 법기 하나 정도는 만들어 가지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했다.

‘쓸 만한 재료는 역시 그것뿐인가?’

멍뭉이를 영수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놈도 괜찮은 재료가 되었겠지만 영수가 된 멍뭉이는 법기 재료에서 자연스럽게 비껴났다.

결국 남은 것은.

‘삿갓 조개의 패갑. 그걸 이용해서 본명 법기를 만들어 볼까?’

건우의 생각은 역시 가장 귀한 재료라 할 수 있는 삿갓조개의 껍데기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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