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연애사 2권
너만 모르는 비밀 (채하 외전)
내가 지원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 내 모든 선택은 지원이를 따라 이루어졌다.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날 무렵, 문과와 이과 선택에 대한 안내문을 나눠 준 선생님은 부모님과 잘 상의해서 결정하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지원이가 그 자리에서 이과 칸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을 보고 지원이와 똑같이 펜을 움직였다. 단 10초도 고민하지 않고 내린 결정이었다.
지원이 하나만 보고 이과로 결정한 것은 헛된 수고가 아니었다. 우리는 남은 고등학교 2년도 같은 반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희망 대학을 적어 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나는 이번에도 지원이가 쓴 희망 대학을 그대로 따라 적었다. 누가 봐도 미쳤다고 손가락질하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학과까지 따라 쓰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수험생 생활이 끝나고 우리가 같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지원이가 먼저 함께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둘 다 기숙사 입사는 물 건너간 상태라 자취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알파인 나와 베타인 지원이가 함께 산다니 부모님들께서도 싸우지 말라는 말만 하시고 반대하지 않으셨다.
나와 지원이가 동거를 시작했을 때도 부모님들께서 걱정한 일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지원이가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 싸우기는커녕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학생이 된 지원이는 한마디로 고삐 풀린 망아지였다. 동기 몇 명과 피시방에 살다시피 하면서 게임에 정신이 팔려 학교조차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지원아, 학교 가자.”
“나 지금 바빠. 안 갈래.”
“너 그러다 F 뜨면 어쩌려고.”
나는 매일같이 지원이의 시간표에 맞춰 피시방으로 출근을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원이가 출석 일수 부족으로 F를 받을까 봐 걱정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 이유는 그것이 아니었다. 지원이와 항상 붙어 있는 과 동기라는 놈들 때문이었다.
“채하 안녕.”
“너도 앉아. 같이하자.”
“아니. 나 수업 있어.”
지원이 때문에 말을 트게 된 지원이 동기 놈들은 나에게 친한 척을 해 댔다. 나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놈들과 세 마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혹시 저것들도 지원이한테 반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놈들이 다른 컴공과 남학우들처럼만 생겼어도 걱정을 덜했을 텐데 나름 볼만하게 생겼던 것이 문제였다.
그 세 명이 지원이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계를 늦춘 것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고서였다. 남들이 알면 비웃었겠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꽤나 심각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계해야 할 대상을 잘못 골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원이가 착실하게 학교에 다니자 지원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최희주, 김윤호, 이선준이 지원이를 파티 구성원 1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랐다.
지원이에게 다가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무덤덤하고 남에게 관심 없는 성격에 금방 떨어져 나갔지만 항상 예외는 있었다. 지원이의 철벽을 뚫고 조금이라도 가까워지려는 낌새가 보이는 사람들은 종종 생겼다.
나는 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방해하고 분위기를 깨 놓으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내가 지원이를 짝사랑하는 것을 눈치챈 삼인조가 합세하자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어? 지원아.”
“야, 너네도 술 마시러 왔어?”
오늘도 우리는 술집에서 우연을 가장해 지원이와 그의 썸남을 만났다. 김윤호가 넉살 좋게 합석을 유도했고 이런 쪽에 영 눈치가 없는 지원이는 수락했다. 나도 눈치가 없는 것처럼 지원이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옆자리를 빼앗긴 썸남의 굳은 표정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승리의 미소가 지어졌지만 겨우 표정 관리를 했다.
“안녕하세요. 지원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예요.”
“아, 네. 안녕하세요.”
서로 통성명을 하고 김윤호의 주도하에 술병이 빠르게 비워지기 시작했다.
“물 마시고 이것도 하나 먹어.”
“응. 고마워.”
지원이는 술잔이 빌 때마다 내가 챙겨 주는 물과 안주를 받아먹었다. 내 챙김에 익숙한 지원이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빈 술병이 늘어날수록 지원이는 고개를 푹푹 꺾고 몸을 나에게 기댔다.
“지원이, 많이 취했어?”
“어우, 나 완전 괜찮아.”
지원이 입에서 술 취한 사람이 하는 말 중 믿어서는 안 될 말이 나왔다.
“지원이가 많이 취했네요. 저희는 먼저 가 볼게요.”
“아, 제가 데려다….”
“아니요. 저희 같이 살아서 제가 데리고 가면 돼요.”
내가 지원이 어깨에 닿은 손을 밀어내자 친구들이 썸남을 붙잡았다. 자기들과 더 놀자는 삼인방 덕에 나는 지원이를 데리고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짓도 여러 번 하다 보니 손발이 딱딱 맞았다.
김윤호가 무식하게 빨리 먹인 탓에 술집을 나왔을 때는 지원이가 완전히 뻗어 버려 업어야만 했다.
“지원아.”
“…….”
“지원아.”
내 등에 업힌 지원이는 잠들었는지 여러 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좋아해.”
지원이가 듣지 못하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하고 술의 힘을 빌려 처음 속삭여 본 속마음이었다. 지원이를 업고 집으로 가는 동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나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지원이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지원이를 탓할 것이 아니라 친구로도 지내지 못할까 봐 고백하지 못하는, 겁쟁이인 나를 원망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다음 날 아침, 지원이는 집에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삼인조로부터 썸남은 술을 먹은 뒤 노래방까지 끌고 갔다가 새벽 6시에 해장국과 해장술을 먹이고 집에 보내 줬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이후 지원이에게서 그 남자의 연락이 뚝 끊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연애에 큰 관심이 없는 지원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유치해도 이 방법은 지원이를 노리는 사람에게 잘 통하긴 했다. 여자와 남자, 알파, 베타, 오메가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이 짓을 한 6개월 정도 하고 나니 소문이 났는지 지원이에게 접근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원이는 내가 친구들과 함께 무슨 짓을 했는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
나와 지원이는 3학년 1학기 수강 신청을 앞두고 하루라도 공강을 만들어 보고자 열심히 시간표 테트리스를 하고 있었다. 지원이는 핸드폰을 들고 이것저것 검색하더니 나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현대인의 사랑과 커뮤니케이션? 무슨 교양이길래 이름이 저렇게 길어?”
“데이트 수업이래. 파트너랑 한 학기 동안 데이트하고 레포트 쓰고, 시험도 없어서 완전 꿀이래.”
내 머릿속엔 데이트라는 단어만 떠다녔다. 이건 무조건 지원이와 함께 들어야 했다. 곧바로 전공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2학점짜리 전공 필수 수업과 지원이가 말한 교양 수업이 겹쳤다. 전공 수업은 내년의 나에게 미루기로 했다. 지원이가 듣는다길래 추운 겨울에 계절 학기도 함께 들었었는데 이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인기 교양 수업 중 하나여서 신청이 치열했지만 운 좋게 나와 지원이 모두 성공했다. 개강 첫 주, 강의 오리엔테이션 날 파트너를 미리 정해 온 사람은 학과와 학번, 이름을 적어서 내라는 교수님의 말에 나는 첫 번째로 제출해 버렸다. 혹시라도 지원이가 마음을 바꿔 다른 수업을 듣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수업이 끝나고 지원이와 앞으로 있을 6번의 데이트 코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6번의 데이트가 끝나기 전 지원이에게 내 마음을 고백하겠다고.
우리의 첫 데이트는 부산이었다. 나와 지원이가 부산행 비행기를 타던 날은 3월이었지만 아직 봄보다는 겨울이 어울리는 날씨였다. 금요일 공강이었던 우리는 목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오후 비행기로 부산에 도착해 바로 밤바다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김해 공항에서 지하철을 여러 번 갈아타고 광안리에 도착하자 주위가 깜깜해져 있었다. 우선 저녁부터 먹자는 지원이의 말에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횟집에 들어갔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메뉴를 골라야 했다고 후회해야 했다.
테이블 위가 안줏거리로 가득 차자 지원이는 자연스럽게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직원은 소주 한 병과 소주잔 두 개를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올려놨다. 감사 인사를 한 지원이는 내 손에 잔을 들려 주고 소주잔의 절반을 채웠다.
“우리 딱 한 병만 먹고 바다 보러 가자.”
그 말에 속아 소주잔을 비웠다. 그러나 한 병이 두 병이 되고, 두 병이 세 병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술에 취해 기분이 좋아진 지원이는 조명이 켜진 광안 대교를 보고 연신 같은 감탄사만 뱉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할 상태가 절대 아니었다. 나는 오래도록 밤바다에 정신이 팔린 지원이의 옆모습만 바라보았다. 아직 기회가 5번이나 남았으니 조금 더 좋은 고백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결심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미리 정해 놓은 부산 맛집 대신 햄버거를 먹었다. 해장용으로 햄버거나 피자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지원이를 위해서였다.
“그냥 국밥 먹어도 되는데.”
“아니야. 지원이 너 햄버거로 해장하는 거 좋아하잖아.”
사실 나는 돼지국밥을 먹든 햄버거를 먹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먹는 것인데 메뉴 따위가 중요할까. 차갑게 식은 삼각김밥을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미리 짜 온 데이트 코스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데이트 장소마다 파트너와 함께 찍은 사진이 필요하다는 교수님의 언질이 있었기에 지원이는 장소가 바뀔 때마다 나에게 딱 달라붙어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어색하게 웃는 내가 어떤 마음인지도 모른 채, 사진 속 지원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감천 문화 마을에 도착하자 지원이는 나를 이끌고 느린 우체통이 있는 곳으로 갔다. 1년 후에 도착한다는 문구가 쓰인 우체통 앞에서 지원이는 나에게 엽서 한 장을 내밀었다.
“이거 써 줘.”
“뭐라고?”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써. 내년에 받게.”
지원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엽서를 써 달라는 것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기로 했다. 작은 종이에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눌러 담았다.
다음 해 3월, 내가 엽서를 받자 지원이는 그제야 엽서의 존재를 기억해 냈는지 내가 쓴 엽서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엽서가 지원이에게 도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원아’로 시작하던 그 엽서는 우체통 대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기 때문이다.
지원이의 엽서는 나와 함께 와서 좋고 앞으로도 사이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다는 아주아주 평범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엽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쓰게 웃었다.
부산 데이트가 끝나고 우리는 서울 대신 대전으로 향했다. 다음 날 나는 뭐라고 우겨서라도 서울로 돌아가야 했었다고 후회했다.
금요일 밤, 대전에 도착한 우리는 내일 보자고 인사를 하고 집 앞에서 헤어졌다. 나와 지원이는 돌아오는 날 아침에 다시 만났다. 부모님들과 함께. 토요일 아침, 함께 등산을 갈 예정이었던 부모님들은 우리까지 데리고 산으로 향했다.
“채하야, 우리 등산한 것도 데이트 한 번으로 치면 되겠다. 그치?”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모님들의 발뒤꿈치만 보고 걷는 나에게 지원이가 말했다.
“어? 어… 그러게.”
싫다고 하고 싶었지만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우리의 대화를 들은 지원이의 어머니께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셨다.
“나랑 채하랑 데이트하는 교양 수업 같이 들어서 데이트하고 레포트 써야 돼. 그래서 오늘 등산 온 것도 데이트했다고 하게.”
“정말? 그럼 둘이 사진도 찍어야겠네?”
지원이는 어머니의 말에 정상에 도착해서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동네 뒷산 정도의 낮은 산이었기 때문에 정상까지 올라가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빨리 둘이 서 봐.”
핸드폰 카메라를 켠 지원이 어머니의 말에 우리는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나란히 섰다.
“둘이 손이라도 잡아 봐. 누가 데이트하는데 멀뚱멀뚱하게 서서 사진을 찍어.”
우리 엄마의 말에 다들 맞는다며 데이트하는 사람 분위기를 내라고 성화셨다. 그러자 지원이는 내 팔짱을 꼈다. 나는 지원이의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깜짝 놀랐다.
“채하야, 좀 웃어 봐. 누가 보면 데이트가 아니라 억지로 끌려온 줄 알겠어.”
웃으라는 지원이 어머니의 말에 애써 얼굴에 힘을 주고 입꼬리를 올렸다. 짝사랑 5년 차에도 여전히 지원이와 함께 있으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지원이와 함께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산에서 내려온 우리는 산 입구에 있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성적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지원이는 점심 식사까지 레포트에 넣겠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댔다.
“그럼 지원이랑 채하가 데이트하면 우리는 지금 상견례 하는 건가?”
아버지의 농담에 나를 제외한 모두가 웃었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몇 년 후 지원이네 가족과 정말로 상견례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셨을 것이다.
***
어이없게 두 번째 데이트를 날려 버린 후 세 번째 데이트는 벚꽃 구경이었다.
“이거 입어.”
지원이가 내민 쇼핑백을 열어 보자 분홍색 카디건이 들어 있었다. 그 카디건은 지금 지원이가 입은 것과 같은 것이었다.
“너랑 같은 옷이네?”
“응. 커플룩 입고 데이트하는 기분 내자고.”
나는 그 말에 혹시나 지원이가 나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금세 내 착각일 뿐이라고 정정했다.
“와, 예쁘다.”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지원이는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활짝 핀 벚꽃의 색은 물이 가득 든 투명한 컵에 빨간 물감을 한두 방울 떨어트린 듯했다.
지원이는 꽃을 보면서 걸었다. 나는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지원이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걸었다.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우리는 누가 봐도 연인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채하야, 우리 여기서 사진 찍자!”
가장 큰 벚나무 아래에 선 지원이는 큰 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지원이의 말에 삼각대를 설치하고 사진을 찍을 준비를 했다. 카메라 세팅을 끝내고 지원이의 옆에 섰다. 사진 속 우리는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제 사진 찍었으니까 얼른 점심 먹고 도서관 가자.”
누군가 그랬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시험공부를 하는 중에 시간을 쪼개 꽃구경을 나온 지원이에게 고백할 수는 없었다.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나에게 고백을 받으면 혼란스러울 것이 분명했다. 잠도 줄여 가며 공부하는 지원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참아야 했다. 내 욕심을 채우자고 지원이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을 망칠 수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식사를 하고 도서관으로 갔다. 내 앞에 앉은 지원이는 입 모양으로 “열심히 해.”라고 말한 후 책을 펼치고 바로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책 대신 고개를 숙인 지원이의 정수리만 슬쩍슬쩍 훔쳐보았다. 다음 데이트 때는 꼭 내 마음을 고백하자고 다짐하면서.
***
나보다 하루 먼저 중간고사가 끝난 지원이는 그동안 못 잔 잠을 채우려는 듯 죽은 듯 잠만 자기 시작했다. 다음 날 내가 마지막 시험을 끝내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지원이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함께 먹을 점심을 사 와서 지원이를 조심스럽게 깨웠다.
“어… 시험 잘 봤어?”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 내가 시험을 잘 봤는지부터 물어보았다. 나는 적당히 봤다고 대답하고 지원이를 식탁으로 데리고 갔다.
“우와, 삼계탕.”
“맛있게 먹어.”
과제와 시험에 치여 며칠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식사도 대충 해결했던 지원이의 기력 보충을 위해 선택한 메뉴였다. 지원이는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양손으로 닭을 뜯어 먹었다. 지원이에게 물을 한 잔 따라 주고 나도 살점을 베어 물었다.
“우리 다음 데이트 뭐 할래?”
닭 다리 하나를 다 먹은 지원이가 물었다. 사실 미리 찾아본 곳이 있었지만 일단 고민하는 척 뜸을 들였다.
“음… 놀이공원 갈래?”
나는 이미 놀이공원에 가서 불꽃놀이를 보면서 지원이에게 마음을 고백할 계획을 세운 상태였다.
“놀이공원?”
“응. 우리 시험도 끝났으니까.”
“그래. 좋아.”
좋다는 지원이의 말에 우리는 바로 날짜를 정했다. 주말보다는 사람이 그나마 적은 평일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지원이도 동의했다. 둘 다 수업이 일찍 끝나는 목요일 오후에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다.
***
놀이공원에 갈 생각 때문인지 지원이는 목요일 아침부터 들떠 보였다.
“수업 끝나고 연락할게!”
“응. 이따가 봐.”
신이 난 발걸음으로 집을 나서는 지원이의 옷차림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곤 최대한 지원이와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골라 입고 학교에 갔다. 남들이 알면 유치하다고 손가락질하겠지만 오랜 짝사랑은 나를 한없이 지질하게 만들었다.
제일 지루한 2시간짜리 전공 이론 수업이 끝나기 몇 분 전, 나와 같은 시간에 수업을 마치는 지원이가 조금 일찍 수업을 마쳤는지 메시지를 보냈다.
지원이 : 어디야? 나 지금 끝났어!!!
오전 11:52
아직 수업 중ㅜ
오전 11:52
지원이: 내가 너네 과 건물 앞으로 갈게
오전 11:53
지원이의 메시지에 알겠다고 답장을 하고 수업 시간이 5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상 위를 슬금슬금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교수님은 수업이 끝나는 시간인 12시가 다 되어 가도 침까지 튀기며 강의에 열중했다.
뒷문 근처에 앉아 있었지만 15명도 되지 않는 전공 수업에서 들키지 않고 도망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리를 덜덜 떨며 교수님이 제발 지금이 몇 시인지 알기를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수업은 정확히 12시 7분에 끝났다. 목요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잡은 약속에는 항상 늦는단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된 지원이는 이미 강의실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채하!”
강의실 앞 벽에 기대어 서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지원이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 내 이름을 불렀다.
“오래 기다렸어?”
“아니, 별로 안 기다렸어.”
지원이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저 교수는 왜 그렇게 말이 많냐며 투덜거렸다. 나는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복도 저 끝에 있는 사물함 문을 열었다. 사물함 안을 본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두꺼운 전공 책을 떨어트릴 정도로 놀랐다.
채하 선배, 좋아해요.
010-0000-0000
저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은 음료 캔이 내 사물함 안에 들어 있었다.
“이야, 설채하 인기 많네? 이거 네가 좋아하는 음료수 아니야?”
지원이가 바닥에 떨어진 내 전공 책을 주워 주며 말했다. 혹시라도 지원이가 오해할까 봐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전공 책을 대충 쑤셔 박고 음료수를 꺼내 그 옆 쓰레기통에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지원이가 그 행동을 말렸다.
“먹는 걸 왜 버려?”
“누가 준 건 줄 알고 먹어. 그리고 나 이거 안 좋아해.”
“야, 뻥치지 마. 너 맨날 이것만 먹잖아.”
“아, 아니야.”
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당황하는 것을 본 지원이가 크게 웃었다.
“장난인데 속네. 내가 넣어 둔 거니까 버리지 마.”
지원이의 말에 음료수에 붙은 포스트잇을 자세히 보니 적혀 있는 전화번호가 낯익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나는 농담으로라도 지원이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못 하는데 지원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한테 저런 장난을 친다. 나를 정말 친구로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음료수 캔만 손에 꽉 쥐었다.
우리는 학교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놀이공원에 갔다. 손목에 자유 이용권 팔찌를 걸고 안으로 들어간 지원이는 아침보다 더 들떠 있었다.
“여기 우리 고등학교 소풍 이후로 처음 와 봐.”
“나도.”
나는 그때 지원이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머리띠를 사서 하고 다녔는지까지 기억했다.
“오늘도 머리띠 살 거야?”
“아니? 내 나이가 몇인데 머리띠를 해.”
그런 말을 하면서도 지원이의 시선은 기념품 숍으로 향했다. 나는 지원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써 봐.”
지원이에게 토끼 귀가 달린 머리띠를 내밀었다. 거울을 응시하며 머리 위 토끼 귀를 이리저리 만져 보는 지원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귀여웠다. 토끼 귀가 썩 마음에 들었는지 이제는 내 얼굴에 여러 가지 머리띠를 대 보고 있었다.
“나는 안 할래.”
“아, 그런 게 어딨어. 나 혼자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볼 거 아니야.”
“둘이 한다고 해서 안 쳐다보진 않을걸?”
내 말에 지원이는 머리띠를 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았다.
“머리띠 안 해?”
“응. 안 할래.”
귀여운 모습을 못 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지만 남들이 귀여운 지원이의 모습을 볼 일이 없어졌으니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토끼 머리띠를 한 지원이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로 했다.
지원이는 놀이기구를 타기도 전에 츄러스 하나를 사서 내 앞에 들이밀고 “아-.” 했다. 예전부터 지원이는 나에게 음식을 먹여 주곤 했다. 나는 작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우리의 이런 행동 때문에 나와 지원이의 사이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었다. 나도 지원이의 행동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지만 이제는 나를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놀이공원이 폐장을 앞두고 불꽃놀이가 시작되자 지원이는 거기에 정신이 팔렸다. 알록달록한 빛깔로 하늘을 수놓는 불꽃들이 큰 소리를 내며 터지고 있었다. 하늘만 쳐다보는 지원이와 달리 나는 하늘 대신 지원이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좋아해.”
커다란 소리에 묻힌 중얼거림에 가까운 속삭임은 오늘도 지원이에게 닿지 않았다.
현대인의 사랑과 커뮤니케이션 과목의 레포트 제출이 기말고사 기간과 겹쳤다. 지원이는 시험 기간 전에 미리 레포트를 쓰게 사진을 추려 달라고 했다. 그 말에 노트북을 켜고 사진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실패한 데이트였지만 사진 속 우리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오래도록 모니터 속 모래사장을 걷는 지원이의 뒷모습을 보았다. 지금으로부터 두 달도 더 된 날이었지만 함께 밤바다를 보던 때의 기억은 생생했다. 그날 작은 엽서에 꾹꾹 눌러 담았던 내 마음도 여전했다.
어이없이 날려 버린 두 번째 데이트 때 지원이 어머니가 찍어 주신 사진, 짧게 끝나 버린 세 번째 데이트 때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서 찍은 사진, 지원이가 나를 그냥 친구로만 생각하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된 네 번째 데이트 때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
사진을 추려 지원이의 메일로 보내고 내 컴퓨터에도 따로 저장했다. 지원이에게 보내지 않은 사진들도 함께 저장해 두었다.
지원이 : 사진 받았어!!
오후 02:10
지원이 : 일단 레포트 쓰고 보여 줄게
오후 02:11
메일을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이가 바로 확인을 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지원이에게 열심히 하라고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다섯 번째 데이트 날이 되었다. 오늘의 나는 고백을 해야겠다는 마음은 아예 집에 두고 나왔다. 다섯 번째 데이트 장소는 지원이의 의견에 따라 아쿠아리움이었다.
지원이는 아쿠아리움에 간다고 물빛 셔츠를 꺼내 입었다. 이전 같았으면 지원이와 비슷한 옷을 입었겠지만 오늘은 물빛과 대조되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었다. 시꺼먼 티셔츠가 타들어 가는 내 마음의 색 같았다.
“와, 완전 예뻐. 이거 봐 봐. 채하야.”
“응. 예쁘다.”
지원이는 알록달록한 열대어 구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물고기 대신 지원이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지원아, 사진 찍어 줄게.”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지원이는 동그랗게 뚫린 투명한 창 사이로 물고기를 볼 수 있는 곳에 섰다. 살짝 무릎을 굽힌 지원이는 준비를 마친 듯 활짝 웃었다. 나는 셔터를 눌러 물고기와 지원이가 한 번에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잘 나왔어?”
“응. 보여 줄까?”
“아니야. 네가 잘 찍었겠지. 너도 여기 와 봐. 우리도 한 장 찍어야지.”
나는 지원이의 말에 카메라를 셀카 모드로 바꾸고 지원이 옆에 섰다. 이번에는 내가 무릎을 살짝 굽혀 지원이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자 지원이는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나는 지원이를 바라보며 웃는 척 입꼬리만 조금 올렸다.
지원이와 수족관에 다녀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난 이후부터 몸이 으슬으슬하게 추운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열이 오르는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러트 사이클의 징조였다. 나는 책상 서랍에 넣어 둔 러트 억제제가 담긴 통을 꺼냈다.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키고 약효가 돌기를 기다렸다.
10분 정도 지나자 약효가 도는지 몸 안이 들끓는 것 같은 열기는 조금 줄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보통의 알파들보다 부작용을 더 심하게 겪는 내 온몸에서 힘이 빠져 축 늘어졌다. 나는 약통을 침대 머리맡에 올려 두었다.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눕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과 함께 몸이 녹아 침대에 완전히 붙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채하야! 있잖아.”
그때 지원이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내 상태가 평소와 다른 것을 본 지원이는 곧바로 내게 러트가 왔음을 눈치챘다. 억제제를 먹은 직후에 몰려오는 부작용으로 눈만 겨우 뜨고 지원이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지원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말을 할 기운도 없어 고개만 겨우 끄덕였다. 밖으로 나가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온 지원이는 약통 옆에 물병을 놓고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라며 문밖으로 나섰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고 방문의 잠금장치를 돌려 문을 잠갔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힘없이 털썩 누우니 불쾌한 기운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억제제를 먹어도 러트 사이클을 완벽하게 잠재울 수는 없었다.
알파로 발현한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러트를 겪을 때마다 지원이를 평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갈망했다. 지금 약을 먹었으니 내일 아침쯤엔 다시 괜찮아지겠지만 그때까지는 정신력에 의지해 버텨야 했다.
“지… 원아….”
나도 모르게 지원이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절대 지원이가 들을 정도로 크게 불러서는 안 됐다. 혹시라도 방에 들어온 지원이에게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약 하나를 더 꺼내 지원이가 주고 간 물과 함께 삼키고 잠을 유도하는 억제제 부작용이 더 빨리 생기기를 기다렸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는 어제보다 몸 상태가 훨씬 나아져 있었다. 평소엔 알파라는 내 형질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지만 러트 사이클을 겪을 때만은 예외였다. 러트가 오면 짐승처럼 지원이를 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내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러트가 올 때마다 겪는 자기혐오는 지원이가 오메가로 발현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
5월 28일, 본격적인 기말고사 기간을 앞두고 우리는 마지막 데이트를 했다. 여름의 초입에 선 날씨는 조금 후덥지근했다. 마지막 데이트 장소는 야경 명소로 유명한 공원이었다.
나와 지원이는 애매하게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고 공원으로 갔다. 야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언덕 위로 올라가면서 지원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된 화제는 이제 대학 생활이 3학기 남은 우리의 미래 계획이었다.
“채하 넌 올해 내내 희주랑 게임 프로젝트 한다고 했지?”
“응. 일단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해야지. 그걸로 포트폴리오 만들 수도 있으니까.”
올해 초부터 지원이의 과 동기인 최희주, 김윤호, 이영준과 함께하는 스마트폰 게임 제작 프로젝트에 디자이너로 참여하고 있었다.
“지원이 너도 같이 프로젝트 하면 좋을 텐데….”
지원이도 함께한다면 같이 있는 시간이 더 늘어날 거라는 생각에 같이해 보지 않겠냐며 은근히 떠봤다. 그러나 돌아오는 지원이의 대답은 단호했다.
“됐어. 나는 전공이랑 좀 안 맞는 것 같아.”
지원이는 제대로 공부를 시작한 2학년 2학기 무렵부터 전공을 고른 자신의 짧은 식견을 자주 원망했다. 그래도 적성에 맞지 않아도 성적은 영원히 남는 것이라며 성적 관리를 꽤 열심히 하는 편이었다.
어느새 야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언덕 위에 도달했다. 전망대 아래로 고층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다. 지원이는 전망대 난간에 팔을 걸치고 핸드폰을 들어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직 해 지려면 20분 정도 남았대.”
“그래? 조금 천천히 올 걸 그랬나 봐.”
말과 달리 속으로는 해가 더 늦게 지기를 바랐다. 지원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었다.
“날 밝을 때 사진 찍자.”
지원이는 핸드폰을 들어 카메라 앱을 실행하고 셀카 모드로 변경했다. 나는 이전의 데이트처럼 아무렇지 않은 체 무릎을 살짝 굽혀 지원이와 어깨높이를 나란히 했다. 찰칵 소리가 나고 이제는 어색하지 않게 웃는 척을 할 수 있는 내 모습이 화면에 박제되었다.
우리가 사진을 여러 장 찍는 사이 해는 저 끝으로 떨어졌다. 해가 져도 꺼지지 않는 도시의 조명이 어두운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반짝이기 시작했다.
지원이는 난간을 잡고 그 아래 펼쳐진 풍경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풍경 대신 지원이의 옆얼굴만 바라보았다.
처음 데이트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원이의 옆모습을 훔쳐보는 것이 아닌 서로 마주 보는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옆모습만이라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어설픈 고백으로 지원이와 멀어지는 것보단 친구라는 이름으로나마 남는 편이 나을 것이었다. 오늘도 ‘좋아해’라는 말은 가슴속 깊숙한 곳에 숨겨 놔야 했다.
그 ‘좋아해’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던 것은 그로부터 4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