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힘있게 빨리는 혀끝이 아리다.
더운 입술은 양껏 이선의 혀를 빨다가도, 이선의 미간이 찌푸려지려 하면 순순히 놓아주었다. 대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암시하기라도 하듯 혀뿌리가 거칠게 입을 들쑤셨다.
제 몸을 무엇 하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선은 제 몸에 대한 통제를 모두 남자에게 넘긴 채, 간간이 멀어지는 입술 틈새로 밭은 숨을 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숨결 하나까지도 집어삼킬 듯한 입맞춤이다. 강한 입술과 숨은, 눈을 감고 있어도 자신이 남자와 키스를 하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으응…….”
버거운 건 숨뿐만이 아니었다. 자꾸만 몸이 뒤로 넘어가려 했다. 밀려드는 체중은 자신이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는 힘이었다. 온전히 뒷머리를 감싸고 있는 손의 크기나, 밀려드는 체중, 힘이 강한 입술. 모든 것은 이선에게 사내의 존재감을 일깨워주었다.
밀리는 대로 순순히 몸을 뒤로 물리지 못하는 것은 남자의 자존심이나 뭐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그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했다. 다른 남자와도 쉽게 입을 맞추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쉽게 허락하는 사람이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괴상한 오기이기도 했다.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반항에도 강희찬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선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팔에 힘을 주고 슬쩍 들어 올렸다. 무게중심이 흔들리자, 앉아 있는 사람의 이상한 고집도 흔들렸다.
“으응…….”
겁먹은 신음이 강희찬의 입술 위로 번졌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바들거리며 버티던 몸은 순식간에 강희찬의 몸에 매달려왔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의지를 해오는 것처럼. 이제는 제 목덜미를 꼭 끌어안는 팔이 제법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여전히 서툴게 입맞춤을 따라오는 통통한 입술 위로 슬쩍 웃으며, 강희찬은 마른 몸을 얌전히 눕혔다. 처음 침대에 눕혔을 때, 많이 무섭고 아팠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누군가 받쳐 주고 있다고 쳐도, 뒤로 몸이 넘어가는 공포심이 있을 테니까.
제 목덜미를 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갈수록, 갈증은 더해진다.
“읏…….”
모든 것이 물이 많이 섞인 수채화 같은 사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듯 헐떡이는 숨결도, 제 옷깃을 겨우 잡아오는 떨리는 손길도. 모든 것이, 처음 봤을 때와 같았다.
너무도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던 그때. 팔다리가 축 처진 채, 당황한 코치의 등에 둘러메지던 힘없는 몸처럼. 이선의 모든 것은 당장이라도 흐린 기억 너머로 사라질 것 같았다.
언제라도 현실에서 붕 떠올라 사라질 듯해서 만지고 있어도 더욱 닿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만질 수 없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머릿속에서도 안개가 낀 듯 순한 얼굴이 흐려질 것이다. 끝이 조금 아래로 내려오는 눈꼬리나 이마 위를 힘없이 움직이는 앞머리. 그런 것들이 점점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언가 초조해졌다.
강희찬은 문득 깨달았다. 지금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고 헐떡이는, 손가락 하나만 넣어도 빠듯할 정도로 좁은 안을 가진 입이 활짝 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곱게 접는 것을 본 적도 있는 건 같은데. 오롯이 자신만을 향한 건 아니었다. 선생은 기본적으로 애새끼들한테만 웃었고, 근방에 자신이 있다면 그 웃음 역시 삐걱삐걱 어색해지곤 했다.
‘…웃겠지.’
선생은 멍청한 짝사랑이나 하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는 연애를 해볼 생각은 하는 듯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또 사랑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저에게만큼은 쭈뼛거리며 제대로 웃어주지 않아도, 애인이 생기면 애새끼들에게 웃어주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예쁘게 웃어주겠지. 별을 따다 달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지껄여도 해주고 싶을 만큼 예쁘겠지.
부드럽고, 한참을 빨아댄 덕에 통통하게 부어오르기까지 한 입술은 욕심을 부추겼다.
숨도 쉬지 못했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제가 넘겨주는 타액만을 받아 마시길. 머리 색과 닮은, 여린 눈동자에 오롯이 자신의 얼굴만을 담기를 바랐다.
욕망과 욕심이 추하게 뒤엉킨 힘이 이선의 입술을 힘껏 빨았다.
“응…….”
이선에게는 모든 게 버거웠다. 오롯이 받고 있는 강희찬의 체중도, 너무 뜨거운 체온도. 점점 짙어지는 입맞춤도. 어느 하나 이선이 수월히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운 것들뿐이다.
이선은 손을 뻗고, 강희찬의 등 뒤에 둘렀다. 이번에도 그가 숨이 찬 자신을 알아채 주기를. 그래서 잠깐이라도 입술을 놔주기를.
그런 기대를 하며 강희찬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하지만 바람은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그의 입술은 강하게 이선을 책망했다. 더해지는 열기와 더불어 묵직한 남자의 냄새가 짙어졌다.
어떤 향수를 쓸까.
그의 냄새는 언제나 이선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지금 깨달았다. 어쩌면 사람 자체의 체향일지도 모른다고.
손가락 하나 꼼짝도 할 수 없는 이선의 몸을 뜨거운 체온이 제어했다. 조금 벌어졌던 이선의 다리 사이를 열고, 단단한 몸이 파고들었다. 강희찬의 몸에 맞추어 한껏 벌어지는 다리가 퍽 민망하다. 하지만 뒤늦게 다리를 모아보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노골적으로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가 움직여왔다. 더 노골적인 열기가 이선의 중심에 맞닿아 문질러졌다.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순진하진 않다. 그랬기에 이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강희찬의 품에 처음 안겼을 때 느껴봤던 것보다 더욱 묵직했다. 이선은 그것이 제 착각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적나라한 움직임에 가뜩이나 열기가 몰렸던 얼굴이 한층 더 홧홧해졌다. 강희찬의 다리 사이에 존재하는 묵직함이 더해졌다는 사실보다, 그의 허릿짓에 맞추어 아래로 몰리는 성감이 이선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다.
“흐으…….”
창피하다.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채웠다.
점점 고개를 드는 제 중심을 강희찬이 알아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와 입술을 맞대며 흥분을 하다니. 그가 자신을 더럽다 생각할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몸을 물리고, 게이와 몸 따위 섞고 싶지 않다고. 그런 차가운 말을 뱉어낼 것만 같아서 이선은 몸을 비틀었다.
어떻게든 강희찬에게서 멀어져 보려 했지만, 녹록하진 않았다. 오히려 움직일 때마다 그의 중심에 더욱 몸이 비벼졌다. 마치 자극을 원하기라도 하듯. 천박한 움직임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읏……. 아, 저기…….”
겨우 입술이 떼어졌다. 다급히 입으로 모자랐던 숨을 채웠다.
불규칙하게 오르내리는 이선의 가슴께로 강희찬의 손이 난잡하게 지나다닌다. 티셔츠 위로, 단추를 채우지 않은 채 걸쳐 입은 셔츠가 거칠게 그의 손에 잡혔다.
당장이라도 옷을 찢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손길이 이선의 몸에서 셔츠를 떼어냈다. 이선은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그의 손이 움직이기 쉽게 했다. 그가 제 옷을 찢을까 봐 걱정한 것뿐이라고. 그런 변명을 속으로 되삼켰다. 닿지 않아도 열기가 전해지는 그의 몸에 장애물 없이 붙고 싶은 게 아니라고.
샤워를 마치고, 입어야 하나 잠시 이선을 고민케 했던 옷은 강희찬에게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뭘 이렇게 다 껴입고 나왔어.”
짓씹는 듯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혼잣말인 듯하면서도, 은근히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옷이 떨어져 나가기 쉽도록 팔을 움직이는 와중에도, 이선은 슬쩍 억울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좀 쌀쌀하니까…….”
변명 같은 말이 채 완성되지 못하고 공중에서 어물대며 사라진다.
조금 숨이 쉴 만하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나 하다니. 강희찬이 조잘거리는 입술을 지그시 내려다봤다. 발갛게 달아오른 뺨보다도 더 짙게 붉은 입술이 합, 하고 숨어들었다.
옷 너머로도 느껴질 만큼 흥분한 중심과는 달리, 시선은 놀라울 정도로 가라앉았다. 한동안 이선의 얼굴에 눈길이 머문다. 그러나 강희찬은 곧 이선의 목덜미로 얼굴을 내렸다. 더 이상 말상대를 할 가치가 없었다.
허리께를 머물던 커다란 손이 이선의 중심을 향했다. 정확히 말해, 바지의 버클을 풀었다.
티셔츠를 받쳐 입었던 상체와는 사정이 달랐다. 그때는 가만있다 못해, 그가 제 옷을 벗기기 쉽도록 몸을 움직였던 이선도, 이번에는 그럴 순 없었다.
버클이 풀리고, 지퍼가 내려가고. 제자리에서도 자신을 번쩍 들어 올렸던 사람이다. 허리를 들게 하고, 다리에서 바지를 벗겨내는 건 어린애 팔을 비트는 것보다 쉬울지도 모른다.
당장이라도 바지가 벗겨질 거다. 꽤 현실감 있는 상상을 하며, 이선은 간절히 바지춤을 양손으로 쥐었다.
“왜, 왜…….”
어정쩡히 제 행동을 제지하는 이선을 향해 강희찬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 눈에 띄게 바들거리는 손. 그따위야 힘을 쓴다면 치워내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강희찬은 인내심 있게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뭐가 왜예요.”
“옷은…….”
“그럼 입고 하게요?”
딱히 못 하진 않겠지만……. 아니, 그래도 아예 안 벗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강희찬의 얼굴에 얼핏 고민의 기색이 스쳤다. 원하는 게 있다면 얼마든지 해주고 싶다. 능력이 되는 한에서는 기꺼이 해줄 테고. 하지만 이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대치는 의미 없는 일이다. 얼른 포기하고 손이나 치우라고. 그런 의도를 담은 강희찬이 가만히 이선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여전히 뼈마디가 튀어나오는 손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저만 벗어요…….”
불만의 말이 논리적이고, 제법 의표를 찌를 줄도 안다. 하지만 해결은 간단했다.
강희찬은 이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선의 바지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목 뒤로 넘기고 티셔츠를 잡아 올렸다. 입고 있던 검은 티셔츠가 올라가며, 허리부터 맨살이 드러났다.
“…….”
이선이 말릴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그의 맨 상체가 드러났다. 이선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막연히 생각했다. 운동을 오래 했던 사람이니까.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성인 남자를 들어 올릴 만한 완력을 가졌으니까, 어느 정도는 단련된 몸을 가졌을 거라고. 그렇게 막연히 상상만으로 그려봤던 몸은 상상과는 전혀 달랐다.
유니폼이 감싸던 다리는 화면에 잡히는 모습만으로도 곧고 길게 뻗었고, 실제로 보면 더욱 길었다. 반팔인 유니폼이나 티셔츠 아래로 드러나는 팔뚝은 가늘지 않았지만, 길어서 그런지 둔하다는 느낌을 주지도 않았다.
날씬한 편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던 이선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드러난 가슴 근육은 위로 솟아 있었다. 핸드폰 화면을 통해 봤을 때보다 더욱 커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착각인 걸까.
부피감이 느껴지는 가슴 아래, 현실적이지 못할 정도로 윤곽이 드러난 복근이 있다. 저런 몸을 가지고 있으면 스스럼없이 벗을 맛이 날지도 모르지. 이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지만. 그래도 야구는 팔다리로 하는 운동이니, 딱히 복근은 단련할 필요가 없지 않나…….
저마다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근육들에서 이선이 눈을 떼었다.
어쨌든 이렇게 나와서야, 왜 자신만 벗어야 하냐는 이선의 핑계는 통할 구실을 잃었다. 그런 이선의 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강희찬은 지체 없이 이선의 바지춤을 열었다. 이선의 눈이 화등잔만치 커졌다. 그리고 고개와 몸을 홱 돌렸다. 그도 모자라, 다리를 오므리고 품에 안으려 했다.
또다시 공벌레가 되려는 이선의 움직임을 강희찬이 재빨리 제지했다. 몸을 곧게 펴주고, 억지로 똑바로 눕혔다. 그동안에도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는 몸은 제 나름대로는 반항을 이어가고 있었다.
“왜 자꾸 몸은 이렇게 해요? 불편하지 않아요?”
“…….”
불편하다.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상체만큼이나 단련된 다리 근육을 보는 것, 더 나아가 옷 너머로도 느껴졌던 그의 중심을 노골적으로 보는 것보다는 덜 불편할 거다.
차마 그런 이유를 말할 수 없었다. 입술을 꾹 물어버리는 이선이었지만, 이번엔 쉬이 넘어갈 순 없었다. 대답을 종용하듯 끈질긴 시선이 이선의 입술에 들러붙었다.
“…답답해서요.”
“뭐가 답답해요?”
“숨 쉬기가 힘들어요.”
“나 지금 정 선생한테 손끝 하나 안 대고 있어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이 섞인 말이 이선의 위로 흘렀다. 그는 어느 순간 투항하는 사람처럼 양팔을 들었다. 잠깐 발톱을 세워봤던 이선의 공격도 힘을 잃었다.
…손이야 대지 않았지만, 저런 체구가 위에 있으면 당연히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마 저 남자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 제 몸을 볼 일은 없어서 모르겠지. 여전히 역지사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게다가 아까부터 한참을 이선의 하체에 노골적으로 닿았던 제 하체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말이다. 다시금 그의 허리에 다리를 두르게 된 이선은 강희찬의 성기가 이전보다 더 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창피하게도 그의 중심을 느낀 순간, 자신의 성기 역시 부풀어 있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느낄 수 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아니, 알기만 할까. 아까부터 마치 유혹이라도 하듯 묘하게 힘이 들어가며 문질러지는 아래에 더욱 감각이 몰렸다.
“강희찬 씨가 위에 있으니까, 숨 쉬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의 욕망도, 제 감각도 애써 무시했다. 이선은 유일하게 제 마음대로 움직여도 그의 제지를 받지 않는 눈만을 도록 굴렸다. 그리고 제 욕망을 애써 무시하고, 비난의 화살을 강희찬에게 돌렸다.
제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소리긴 했다. 스스로도 알았기에 목소리는 자신이 없었다.
“그거, 정 선생 입이 작아서 그런 거예요.”
이선을 괴롭혔던 젖은 혀가 강희찬의 입술을 훑었다.
…저 입술엔 자신의 타액이 묻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당연했다. 그 생각이 스치자, 강희찬의 행동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타액과 온기를 나누며 부드러워진 그의 입술이 툭, 하고 말을 뱉었다. 이선은 도무지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말이다.
“무슨……. 강희찬 씨가 자꾸 입을 막잖아요.”
“그럼 그냥 내 탓으로 해요.”
“그게 아니라, 정말로…….”
더 이상의 논쟁은 이어질 수 없었다. 강희찬이 이선의 입술을 내리눌렀다.
서로의 옷 너머로 느껴지던 그의 몸이, 천 하나가 걷어지자 더욱 확실히 닿는다. 뜨거운 상체가 누르는 순간, 이선은 제가 은연중에 바란 것이 이 온기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풀어졌던 바지의 앞섶을 신경 쓰기도 전에, 이선은 그에게 입이 맞추어진 채로 들어 올려졌다. 어린애를 다루듯 너무도 쉽게 그에 의해 몸이 일으켜진다. 이선은 어느새 강희찬의 무릎 위에 있었다.
커다란 손이 헐렁한 티셔츠의 허리께를 파고든다. 이선의 입술이 당황으로 벌어졌다. 한참을 탐하던 더운 숨이 미련 없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티셔츠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벗기 싫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이미 강희찬은 상반신을 드러낸 채였다. 그의 앞에서, 부끄러우니 옷을 입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뭔가 우스웠다. 너무할 정도로 굴곡과 음영이 드리운 몸 앞에 제 몸을 드러낸다는 건, 다른 의미에서 창피하긴 하지만…….
자신은 망설이고 있었고, 강희찬은 의지가 확고했다. 이런 종류의 싸움이라면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이선이 망설이는 사이, 티셔츠가 침대 밖으로 휙 던져졌다. 마치 달갑지 않은 것이라도 되는 양.
“아……!”
애처롭게 시야에서 사라진 제 옷이 향한 곳을 망연히 바라보는데, 입술이 또다시 삼켜졌다.
서로 나누는 키스가 아니다. 몇 번이나 입술을 겹쳐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짐승에게 한입에 집어삼켜지듯. 그렇게 입술에서부터 온몸을 먹어치우는 그의 입술은 이내 이선의 벗은 맨몸을 향했다. 목덜미에 강희찬의 숨이 내리고서야, 이선은 자신의 체온이 선득하리만치 차다는 것을 체감했다.
‘…몸이 너무 차다고 싫어하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머리를 스쳤다. 따뜻한 물을 조금 더 얹고 나왔다면 달랐을까. 뒤늦은 후회가 이어졌다.
싫어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자신을 불쾌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실체가 아니라도, 현실과 다르지만, 그의 머릿속의 정이선이 퍽 괜찮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체온을 그가 싫어하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이기적인 상념을 이어가던 이선의 머리가 폭신한 베개 위에 뉘어졌다. 목덜미에서 흩뿌리던 숨이 옮아간다. 어깨를 덮은 살갗을 아프지 않게 깨물다가, 과할 정도로 쿵쿵거리는 심장께로 향했다. 심장 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간지럽게 이선의 가슴팍을 스치는 머리카락이 점점 내려가다 멈추었다.
“아, 읏……!”
이선의 호흡을 빼앗던 입술이 그대로 유두를 삼켰다. 입술로 받아내기도 버거웠던 힘이 자극이 익숙하지 않은 여린 부분을 덮쳤다. 입술을 먹어치우던 그대로, 강하게 빨고 혀를 내어 정점을 자극한다. 마치 억지로 이선의 잇새를 가르던 때처럼.
가슴팍을 파고들 기세인 강한 혀끝이 버거워졌다. 완전한 고통이라고도, 그렇다고 쾌감뿐이라고도 하기 힘든 감각이 유두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져갔다.
이선은 다급히 손을 들었다.
“흐으, 자, 잠깐만요…….”
양 손바닥 아래에 버거울 정도로 단단한 근육이 닿는다. 만지면 살갗 아래로 뼈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제 어깨와는 질감이 달랐다. 오롯이 근육이었다. 가슴이나 팔도 아니고, 어깨를 따로 단련할 수 있는지. 이선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에 겨우 힘을 실었다. 절대 떨어질 것 같지 않던 단단한 몸은 의외로 쉽게 멀어졌다. 그래 봐야 그의 입술과 제 유두의 간격은 손가락 한 마디도 되지 않을 테지만, 고통과 간지러운 성감이 떨어진 것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왜요.”
눈을 들어 올린 강희찬의 입술이 열렸다. 말과 동시에 떨어지는 더운 숨마저도 발갛게 부풀어 오른 유두에는 자극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투정을 부릴 순 없었다.
“…아, 아파요.”
옅게 물기가 맺힌 눈동자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목소리가 겨우 아픔을 호소했다.
당장 눈물이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눈동자에 한 번, 평소와 달리 꼿꼿하게 솟아오른 유두에 한 번. 짙은 눈동자가 차례로 머물렀다.
성감은 옅은 고통 아래에서 점점 부피감을 더해간다. 하지만 이선은 미약한 쾌감을 애써 외면했다. 아픔만을 호소한 이선이 강희찬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눈을 피하면 거짓임을 알아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선의 착각이었다.
“정말요? 정 선생은 엄살 잘 피우잖아요.”
“정말 아파요.”
눈을 피하지 않아도 강희찬은 이선의 엄살을 알아챘다. 하지만 이선은 조금은 억울해졌다. 원래 거짓이란 건 입으로 재차 내뱉으면 내뱉을수록 사실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선의 경우, 완전한 거짓도 아니었다. 조금 생략해서 말한 부분이 있었을 뿐이지.
이제 정말로 많이 억울해진다. 이선이 강희찬을 바라봤다.
얼굴에서 진심을 느껴준 것인지, 그는 이선의 가슴팍을 바라봤다. 제가 한참 빨던 왼쪽과 허하게 남겨두었던 오른쪽. 번갈아 보던 그가 몸을 슬쩍 일으켰다. 이선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 있던 손 하나가 올라와, 솟아오른 이선의 젖은 유두를 슬쩍 눌렀다.
“아……!”
“정 선생은… 튼튼한 구석이 있긴 해요?”
“…네?”
“아니면, 하얀 사람들은 이런 데도 색이 이래요?”
뒤늦게 제 손의 힘을 인지한 건지, 누르는 압력이 다소 약해진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마치 유리공예를 만지는 것처럼 깃털 같은 손길은 더욱 간지러웠다.
이선은 꾸물꾸물 팔을 들어 올려 가슴팍을 가렸다. 꼴이야 상당히 우스웠지만,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유두가 조금은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강희찬은 그 모습을 보며 한쪽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부모님이 고생하셨겠어요. 이렇게 예쁘게 낳고 키우려면. 나 같으면 학교도 못 보냈을 것 같은데.”
그는 바리케이드가 쳐진 가슴에서 미련을 떼었다.
딱히 여기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그렇게 말하는 듯, 결이 좋은 머리카락이 이선의 명치께부터 시작해 복부를 스쳤다. 모자에 가려지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윤기가 도는 머리카락은 어린아이들처럼 반짝이는 띠를 가지고 있었다.
커다란 강아지였거나, 아이들이었다면 손을 들어 쓰다듬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강희찬은 강아지도, 이선의 담임 반 학생도 아니었다.
제 몸보다 아이 하나만큼은 더 무거울 체중이 짓누른다. 이선은 바짝 긴장한 채, 그의 머리카락이 스치는 곳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마치 긴장을 덜어줄 것처럼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쪽, 하는 낯부끄러운 소리가 울렸다. 하지만 딱히 위로는 되지 못했다.
“저…….”
우묵하게 들어간 복부와 그 아래. 속옷의 밴드 위에도 입맞춤이 떨어졌다.
‘대체 왜 그런 데를…….’
민망함과 함께 차오르는 불만이 채 완성되지도 못했다.
강희찬의 옆모습은 언제나 인상 깊었다. 융기한 콧날에서부터 도톰한 입술까지 흘러내리는 옆선이었다. 정면으로 봐도 선이 곱다 싶은 얼굴이다. 앞모습이 완벽하면 옆선에는 조금 덜 신경을 썼을 법도 한데. 참 신기했다.
눈으로 봐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콧날은 직접 피부로 느껴보니 확연히 느껴진다. 이선의 눈에는 그저 제 다리 사이에 있는 정수리가 전부였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촉각이, 그리고 상상력이 채웠다.
속옷 안에서 애처롭게 부풀어 있는 이선의 성기가 떨린다.
천 너머. 이선의 중심 위로 콧날이 좌우로 스쳤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속옷의 밴드 위에서 쪽, 소리가 울렸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거기까지만으로도 벅찬데, 강희찬의 어깨가 솟아올랐다. 그의 폐에 가득 숨이 들어가는 소리가 울렸다.
“으, 으윽……. 잠시만…….”
이선은 난감함에 다리를 버둥거렸다. 아무리 씻었다고 해도, 이런 곳에 다른 이의 얼굴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울고 싶어졌다. 온갖 구석에서 깔끔을 떨 것같이 생겨서, 대체 왜 이런단 말인가.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선의 골반을 틀어쥔 강희찬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리, 어깨 위에 올려요.”
“하지 마세, 윽…….”
오히려, 커다란 손은 이선의 허벅지로 올라왔다. 마치 자세를 편하게 잡아주겠다는 듯. 그의 말은 간결하고 산뜻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근육이 덮인 몸 위에 마른 두 다리가 오른다. 색도 질감도.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대비되는 몸의 차이였다.
허벅지를 반복적으로 쓸어대는 손바닥. 들어 올려진 제 다리 사이에 묻어 있는 결이 좋은 머리카락. 이선의 눈을 거친 그 장면이 더없이 선정적이다.
다리 아래에 있을 그의 몸은 생각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의 얼굴에서 벗어나고 싶다.
“으으… 읏!”
알 수 없는 흐느낌을 흘려대며 다리를 버둥거리자, 그에 응답하듯 강희찬의 얼굴이 이선을 향했다.
“놔, 놔주세요.”
“…….”
“강희찬 씨, 제발…….”
마주한 강희찬의 검은 눈에는 의아함과 황당함이 서렸다. 대체 왜 그러는데. 이선이 간절히 애원하는 이유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벽과 같은 근본적인 차이였다.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자고. 반대로, 자신이 만약 강희찬의 다리 사이에 코를 파묻고 숨을 들이켠다고 생각해 보라고. 이선은 그리 따지고 싶었다. 하지만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왠지 강희찬이라면, 지금과 똑같은 표정으로 제 샅을 맡길 것이다. 장담할 수 있었다.
역지사지는 되지 않아도, 간절함은 통한다. 결국, 강희찬은 의아하다는 표정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이 다리 사이에서 멀어짐과 동시에, 이선은 어깨 위에 두었던 제 다리를 갈무리하고 몸을 홱 돌렸다. 엎드리자 서 있는 중심과 그에게 잔뜩 빨려 부풀어 오른 유두가 시트에 닿는다. 숨을 쉬는 것이 조금 버거워졌지만, 밀려오는 안도감은 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엎드린 이선의 등 위로 강희찬의 시선이 내리꽂혔다.
“그렇게 누워 있으면, 더 해달라는 뜻 아닙니까?”
얼굴을 숨기는 것이 못내 아쉽다. 동그란 뒷머리도 벗은 등도 속옷에 감싸인 엉덩이도. 모두 마음에 들지만, 그래도 얼굴을 숨기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강희찬의 입에서 본심보다도 더 짓궂은 말이 나온 이유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선은 그의 속내를 알 리가 없었다. 그저 어깨를 떨며 강희찬의 노골적인 말을 견뎠다.
“…….”
오들오들. 떨고 있는 탓에 더욱 추워 보이는 어깨. 아래로 시선을 내리다 보면, 오목하게 들어간 허리선이 있다.
남자 벗은 몸 따위야 지겹도록 봤다. 봐도 별 감흥이 없으며, 기분이 좆같을 땐 불쾌해지기까지 한 게 사내새끼의 벗은 몸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눈앞에 있는 곧고 마른 등은 묘하게 선정적이다. 마님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는 돌쇠가 된 것처럼,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돌쇠가 아니었다. 숫되게 고개를 돌려야 할 이유는 없다. 눈을 떼지 않았다. 오히려, 강희찬은 마른 허리 아래로 눈을 내렸다. 노골적이고 집요한 시선이 발라먹을 듯 이선의 등을 핥았다.
전반적으로 살집이 없어서 기대하진 않았는데. 허리 아래엔 속옷에 감싸인 작은 엉덩이가 제 나름대로는 봉긋 솟아 있다.
‘얼굴 박으면 무슨 느낌일까…….’
핥는 것보다도 노골적으로 훑어보고 있음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엎드려 있는 이선이 저의 노골적인 시선을 보지 못하는 게 다행이었다. 성희롱을 일삼는 중년 상사 같은 눈을 선생이 봤다가는, 가겠다고 질질 울었을 게 분명하니까.
강희찬은 죄책감도 없이 마른 몸을 마음껏 감상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운동을 해왔던 사람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건 운동으로 다져진 하체는 아니라는 걸. 그냥 타고나기가 살이 잘 붙지 않는, 골격이 가는 몸이었다.
얼마 전까지라면 운동엔 죽어도 재능이 없을 몸이라는 생각이 전부였을 텐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아무리 하체 운동을 해도 근육이 붙을까 말까인 그 몸은 지나치게 마음을 동하게 한다. 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좁았던 입 안과 닮은 곳이 숨겨져 있을 터였다. 상상력은 중심으로 몰리는 피를 더더욱 가속화시킨다.
“아!”
양손을 내려 검은 속옷에 감싸인 엉덩이를 쥐었다. 팔다리에 비하면 그나마 살이 붙어 있긴 하구나, 싶을 정도인 엉덩이는 손쉽게 강희찬의 손바닥에 감겼다. 마치 제 손에 알맞게 만들어지기라도 하듯. 입고 있는 팬티가 거슬렸다.
그냥 벗겨버릴까. 아주 조금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이선의 상체 아래로 숨어 들어갔던 팔이 쑥 뻗어 나왔다. 그러더니 강희찬의 손을 떼려는 듯 허공을 휘두른다.
어처구니가 없는 꼴에 강희찬의 입에선 한숨 같은 비웃음이 픽, 하고 샜다. 아무것도 안 들리는 척, 모르는 척 있더니 듣기는 했나 보다. 그렇다면 더 확실한 반응을 보고 싶은 건 당연하다.
“아니면, 바로 하자는 거예요?”
평소의 이선이라면 알아듣지 못했을 말이, 예민한 공기 아래에서는 아니었다. 샅을 다른 사람의 얼굴에 내맡기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임을 직감했다.
이선은 바로 몸을 바른 자세로 돌렸다. 뒤를 내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앞이라는 본능적인 계산이었다.
다시 마주한 강희찬의 얼굴엔 웃음기가 번져갔다. 뒤늦게 이선은 그가 일부러 심한 말을 하며 저를 놀렸음을 깨달았다.
“거, 거기……!”
제법 용기를 내어 엄한 얼굴을 해보는 것일 테지만, 강희찬의 눈엔 그저 어린 동물이 발톱을 세우는 꼴이었다. 담임을 맡은 초등학생도 쫄지 않겠다 싶은 얼굴도 여전했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선의 입술은 단호히 열렸다.
“만지지 마세요.”
“…….”
“이상한 데… 얼굴, 하지 마세요.”
물론, 18미터 앞 타자와의 기싸움이 일상인 투수가 상대다. 이선의 기백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강희찬은 어쭙잖게 세워졌던 발톱이 갈무리되는 모양새를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섹스할 거라면서, 왜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아요? 되는 게 있긴 해요?”
“윽…….”
연이은 질문에 이선의 입이 꾸욱 다물린다.
제가 생각해도 우습긴 했다. 자신 없는 이선의 위로 강희찬이 몸을 겹쳤다. 따뜻한 몸보다도 더 뜨거운 입술이 주린 듯 입술을 찾는다. 단순한 포옹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건 그다음이었다. 키스와 함께 이선의 몸이 그의 팔에 갇혔다. 강희찬의 상체가 일으켜지며, 그는 다시 제 무릎 위에 이선을 앉혔다.
“억울하면, 정 선생도 만져요. 난 좋으니까.”
하지만 그는 입술을 완전히 놓아주지는 않았다. 맞붙은 채로, 강희찬이 입술을 움직이며 말을 이었다. 달싹이는 움직임에 맞추어 서로의 입술이 스쳤다.
이선은 그게 퍽 민망하면서도, 구태여 몸을 뒤로 빼진 않았다. 대신, 이선 역시 그를 따라 했다.
“그게, 무슨…….”
말은 완성되지 못했다. 입술은 다시 맞물린다. 오물거리던 이선의 입술이 단숨에 삼켜진다. 이번엔 짧은 입맞춤으로 끝나진 않았다. 혀끝이 잇새를 파고들었다. 그와 동시에, 강희찬의 손이 속옷 안을 파고들었다.
화들짝 놀란 이선이 입술을 떼려고 했다. 하지만 강희찬의 다른 손이 이선의 목덜미를 누른 채, 입술이 멀어지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으응! 흐읏…….”
그의 손아귀에 성기가 다 잡힌다. 이미 놀라 둥그렇게 뜨였던 눈이 다시금 커졌다. 그제야 이선은 제 물건이 속옷 안에서 서 있었음을, 그리고 자극에 못 이겨 말간 액을 뱉어내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억셀 정도로 큰 손이 조심스레, 그리고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젖은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것이 입술을 파고들어 혀를 얽어대는 소리와 함께 더해져, 더욱 이선의 얼굴을 홧홧하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손짓이 조금씩 새어 나오는 물기와 감기면서 빨라진다. 이선의 성기는 자극에 착실히 반응해 점점 고개를 들었다.
“응……. 으응…….”
숨을 빼앗는 입술 탓에, 이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막힌 소리를 내는 것이 전부였다.
타인의 손이다. 제가 스스로 만졌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체온과 악력, 그리고 만지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속,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성감으로 이어졌다.
모든 체온이 전부 아랫배와 얼굴로 몰렸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거세지면서, 미간이 찌푸려졌다. 뒤늦게 이선은 양손으로 강희찬의 어깨를 짚었다. 하지만 힘을 주어 밀어내기 전, 이선의 성기가 먼저 말간 액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윽……. 흐윽…….”
수치심을 견디기 힘들어 눈을 꾹 감아버렸다. 그런 와중에도 강희찬은 집요하게 손을 움직였다. 너무 쉬이 절정에 오른 중심은 이선의 수치심과는 별개로 착실히 사정을 이어갔다.
“읏……! 하, 으응…….”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고 생각될 무렵, 이선이 적셔버린 손도 멈추었다. 선정적인 소리만 내게 했던 유연한 혀도 멈추었다.
성기를 죽죽 훑던 손이 멎어간다. 이선이 사정을 마친 후에도 그의 손은 여전히 속옷 안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다. 멀어지는 건 손보다도 입술이 먼저였다. 조심스럽게 강희찬의 입술이 멀어지면서 이선의 입에선 반은 신음인 흐느낌이 흘렀다.
“으읏…….”
“왜 울어요?”
어느새 울먹임으로 번진 이선의 얼굴을 강희찬이 빤히 들여다봤다. 반 뼘도 되지 않을 거리였다. 눈가에 맺힌 물기. 덜덜 떨리는 젖은 입술을 몰라보는 게 더 어려운 일이다.
‘어디 잘못 만졌나?’
그 순간, 이선의 눈에선 툭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강희찬은 순간적으로 제 악력이 불안해졌다. 뒤늦게 그는 사정을 마친 성기를 제 손아귀에서 놓았다.
“내 탓 아니에요. 강희찬 씨가, 자꾸 만지니까…….”
왜 우냐고 묻긴 했지만,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면 제법 당황스럽다. 게다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이유를 듣는다면 더더욱.
강희찬은 젖어 있는 제 손바닥을 흘끔 내려다봤다. 그리고 제 손을 더럽힌 액의 근원지를 또 한 번.
‘대체 무슨 소린가 했네.’
속옷 밴드 위로 내놓아 있는 이선의 성기는 힘을 잃은 채였다. 아무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광경이다.
고작 이게 뭐라고 울려고까지 한단 말인가. 강희찬은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삼키며 입술을 떼었다.
“알아요. 싸라고 만진 건데. 못 싸는 게 더 이상하지.”
“…….”
“섹스하면서, 한 번도 안 쌀 줄 알았어요? 성교육 안 받았어요?”
강희찬은 왼손을 이선의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불투명한 액체가 손가락 마디마디, 손바닥 할 것 없이 덮여 있었다.
이선은 눈을 질끈 감으며 제 흔적에서 고개를 돌렸다. 허리에 둘린 단단한 팔만 아니었다면, 당장 침대 구석으로 도망쳤을 거다. 그리고 이불을 모두 끌어안고 몸을 숨겼을 거다.
수치심으로 물든 이선의 귓가로 옅은 웃음이 스쳤다.
“고작 손에 좀 쌌다고 울면 안 되는데.”
“…….”
“난 더한 데다 다 싸버리고 싶으니까.”
충격으로 아연해진 이선을 둔 채, 정액이 묻은 손이 그대로 아래로 향했다. 손은 침대 위에 있던 콘돔 상자를 집고, 부수듯 열었다.
…대체 왜 손을 닦지 않는 걸까. 일부러 자신을 민망하게 하려는 속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선의 미간이 설핏 찌푸려진 채로, 강희찬의 손끝을 따랐다. 개별포장이 되었던 콘돔 두 개가 찢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이선은 불안함이 서린 눈동자를 들어 강희찬을 보았다.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는 얼굴이 그곳에 있을 뿐이다.
콘돔을 꺼내 제 성기에 착용할 거라 생각했다. 원래 그런 용도로 나온 물건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강희찬은 포장이 벗겨진 콘돔을 몇 번 만지기만 했다. 정작 중요한 콘돔은 제 할 일을 끝내지 못한 채 침대 위에 버려졌다.
“강희찬 씨…….”
“무서워요?”
말이 동시에 뒤섞였다. 이선은 제 호기심을 잠시 눌렀다.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다. 앞으로 일어날 일도, 버거울 정도의 쾌감도. 전부 무서웠지만, 가장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당신이 나를 경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자의 손에 반응하고, 신음을 흘리는 자신을 그가 더럽게 여기지 말아주었으면.
그런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이선은 목을 넘지 못하는 말을 삼킨 채, 강희찬을 바라보기만 했다.
“나도 무서워요.”
나직한 목소리가, 여상한 얼굴이 의외의 말을 뱉어냈다. 이선은 잠시 멍해졌다. 강희찬은 온갖 것으로 젖어 있는 제 손을 내려다봤다.
“내가 잘못 만지다, 다치게 할 것 같아서.”
다시 올라온 시선이 올곧게 이선을 향했다.
“…정 선생이 할래요?”
의중을 알 수 없는 그의 언행은 언제나 이선을 당혹스럽고 두렵게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를 하기도 전에, 이선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젓고 봤다. 붕붕. 격하게 돌아가는 와중에, 이선은 그가 제게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낯빛이 사색이 되어갔다.
“무슨…….”
이선의 반응을 본 강희찬은 퍽 의외라는 얼굴을 했다. 그리고 고민과 걱정이 어렸던 얼굴에 궁금함이 피어올랐다.
“왜요? 난 나쁘진 않은데.”
“그거는… 안 될 것 같은데…….”
우물거리는 목소리와 더불어, 고개가 점점 내려가기 시작한다. 또 얼굴을 숨기려고. 기색을 파악한 강희찬의 손이 기민하게 이선의 얼굴로 향했다.
“안 될 건 또 뭐예요? 솔직히, 나보다 정 선생이 더 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선의 얼굴을 잡으려던 왼손이 직전에 멈추었다. 제 손에 묻어 있는 질척한 것들을 보며 혀를 쯧, 하고 찬 강희찬은 손을 바꾸었다. 메마른 그의 오른손이 이선의 뺨을 감쌌다. 그리고 조심스레 들어 올리며 시선을 맞추었다.
풀지 못하는 수학 문제를 눈앞에 둔 어린아이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저, 저는 못 해요. 남자랑 해본 적 없어요.”
“나도 없어요.”
“…제가 잘못하면, 어쩌시려고…….”
“아프면 게임 좀 쉬고 좋죠. 게이 섹스해서 아프다고 말하면 감독님이 뭐라고 하실지는 모르겠는데. 뭐, 선수 다치면 대체선수 올리려고 2군이 있는 거니까.”
“강희찬 씨.”
이제는 더 이상 하얘질 수 없을 정도로 핏기가 사라졌다. 그 반응이 강희찬은 퍽 우스웠다.
이런 주제에 어떻게 게이로 살겠다고.
어린애를 놀릴 때 느낄 법한 즐거운 감정도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여자와 섹스를 해도 덜덜 떨며 할 인간이다. 그런 주제에 시커먼 사내와 살을 맞대며 살아가겠다니.
뒤늦은 걱정에 입 안이 썼다.
“농담이에요.”
강희찬은 백지장이 되어가는 이선의 얼굴을 가만히 보다, 결국 먼저 백기를 들었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저런 얼굴이 되어야 하는 걸까. 감독에게 얘기하겠다는 건 강희찬의 입장에선 딱히 농담은 아니었다. 컨디션이 좋지 못해서 경기에 빠져야 한다면, 정확히 이유와 상태를 보고하는 건 당연했다. 다만, 그걸 들은 감독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둘째 문제다.
하지만 저렇게 놀란 얼굴을 한다면, 그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농담이라는 말에 혈색과 함께 안도감이 도는 얼굴을 보니, 거짓말도 딱히 나쁘진 않다고 생각할 뿐이다.
“…장난치지 마세요, 정말.”
“…….”
“아까, 심한 말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도 했는데…….”
투정이었다. 이리저리 호구처럼 치이고, 싫은 소리 하나 못 할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흔치 않게 흘러나오는 투정과 어리광은 강희찬의 아래를 뻐근하게 만들곤 했다. 그와 더불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은 사내로서의 욕심을 부추겼다.
강희찬은 가만히 이선을 내려다보았다.
“정 선생이 해도 나쁘지 않다는 건 정말이에요.”
“…….”
“내가 잘못 손대서 정 선생이 다치는 것보다 나을 테니까. 난 내 몸 아픈 건 바로 아는 사람이고.”
“…강희찬 씨.”
“정 선생님. 지금 나랑 섹스할 생각이에요?”
언뜻 대화가 이어지는 것처럼 들려도, 실상은 아니다.
강희찬은 여전히 제 할 말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이선은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더 편한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이선은 강희찬이 이끄는 대화의 흐름에 몸을 맡겼다.
“…….”
끄덕. 격하게 좌우로 흔들렸던 아까와는 달리, 느릿하면서도 확실하게. 이선의 고개가 위아래로 한 번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본 강희찬은 낮은 한숨으로 화답했다.
“제대로 알아듣고 대답하세요. 입술 좀 빨면서, 서로 좆 비비는 거 생각하면 집어치워요.”
“…….”
“여기로.”
젖은 강희찬의 왼손이 이선의 뒤로 둘린다. 등이나 두드려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젖은 손이 속옷을 젖히고 엉덩이를 스쳤다. 한 자락의 망설임도 없이 손가락 끝이 이선의 가장 깊은 곳, 안에 숨겨져 있던 구멍을 찾아내어 느른히 눌렀다.
“아……!”
다물려 있던 구멍이 낯선 침입자를 거부하듯 더욱 오므라들었다. 굵은 손가락은 개의치 않으며, 느긋하게 입구를 서성였다.
“여기, 내 좆 받을 수 있게 늘리고, 집어넣어서 쑤셔 박을 거란 소립니다. 그게 남자랑 하는 섹스예요.”
한층 가라앉은 검은 눈이 음험하기까지 했다. 이선은 그의 이름도 차마 부르지 못한 채, 불규칙한 호흡을 이었다.
“정 선생은… 지금, 나랑 그거 하겠다고 내 집에 왔어요. 남자 집에 따라오는 게 이런 말이라고.”
“저, 저도…….”
입술이 덜덜 떨리고 있는지 말이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다. 이선은 제 입술을 질끈 물었다. 그 모습이, 강희찬의 눈엔 괜히 무의미한 반항이나 하는 어린 동물처럼 보일 뿐이다.
“저도, 알아요.”
“…….”
“다 알고 강희찬 씨 따라온 거예요. 모르지 않아요.”
눈물을 내보내지 않기 위함인지, 깜빡이지 않는 눈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끄트머리가 살짝 내려간 눈꼬리는 더욱 애처로웠다.
마음만 먹으면 무기로 충분히 쓸 수 있을 얼굴인데. 얼굴의 주인은 그런 영악함을 가지지 못했지.
강희찬의 입술이 다시금 비틀려 올라갔다.
“하나만 약속해요.”
하지만 의도를 가지지 않았어도, 그 얼굴은 강희찬 하나를 휘두르기에는 충분하다. 게다가 자신은 기꺼이 휘둘려줄 의향이 있었다.
강희찬은 토끼처럼 빨간 눈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저기 만질 건데…….”
“…….”
“아프면 아프다, 좋으면 좋다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말갛게 저를 올려다보는 눈을 먼저 피한 건 강희찬이었다.
엉망으로 울도록 괴롭히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보듬어주고 좋은 것만 먹이고 보여주며 웃게 해주고 싶었다. 선생의 얼굴은 그런 식이었다. 언제나 강희찬의 마음속에서 모순된 욕망이 충돌하도록 만들었다.
생각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도록 훈련을 받은 것이 인생의 절반 이상이다. 생각에 익숙하지 않은 머리를 숙였다. 그의 손바닥이 신경질적으로 앞머리를 헝클었다. 머리카락은 금세 제자리를 찾아도, 그의 머릿속 사정은 전혀 달랐다.
“좋게 만드는 건 못 해줘도, 다치게는 하기 싫으니까.”
한숨과 섞인 말이 웅얼거리며 공기를 갈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막상 순간이 되고 보니 너무 어렵다. 섹스는 어려웠다.
어차피 자신은 좆이 달린 새끼다. 때가 되면 알아서 몸이 움직이게 되어 있다고. 몸이 동하는 상대를 만나면 어련히 알아서 잘 세우고 박지 않겠냐고 생각했었다.
첫 상대가 남자라는 건 의외였지만, 어쨌든 비슷할 터였다. 누군가는 박을 테고, 누군가는 박힐 테고.
손끝만 대도 말라빠진 낙엽처럼 파스스, 바스러질 것 같은 선생이다. 어릴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무릎 한 번 까지지 않고 살아왔을 선생보다는 자신이 아픈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랬다.
적어도, 자신은 예민하게 통각을 살펴야 하는 사람이고, 그럴 능력도 있다. 꾹 참으며 제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모를 멍청이가 아니었다.
그랬음에도 선생은 칼자루를 제게 넘겼다. 참견만 할 수 있다면, 앞으로 사내새끼랑 섹스가 하고 싶다면 박는 쪽을 택하라고 해주고 싶은데…….
강희찬은 앞머리를 헝클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홱 들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자신의 정수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은 움칫거리며 슬쩍 뒤로 물러났다.
앞으로 무슨 짓을 당하는 건지 정말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게 맞나. 상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는 멍청한 꼴에 강희찬의 입에선 절로 혀 차는 소리가 흘렀다.
“지금 어때요?”
“…네?”
이선의 고개가 슬쩍 갸웃했다. 어차피 한 번에 알아들을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지금 어떠냐고요. 아파요?”
“아파요.”
이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강희찬의 한심한 눈길이 이선의 얼굴에 꽂혔다.
“나 지금 손도 안 대고 있는데 뭐가 아파요?”
멋모르고 대답을 했다가 엄살을 부리는 꼴이 됐다. 이선의 입술이 삐죽 나왔다.
“또 엄살이나 피우고.”
마른 손이 이선의 입술을 꾹 눌렀다. 마치 꿀밤을 먹이는 것처럼. 하지만 너무도 다정하고, 전혀 아프지 않은 벌이었다.
“아무 때나 아프다고 엄살 피우지 말고. 아까 내가 앞에 만질 때 어땠어요? 아팠어요?”
“…….”
“아님, 싫었어요?”
자신 없는 얼굴이 강희찬과 어울리지 않는다. 자신의 울먹임을 다른 의도로 읽은 듯했다.
이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강희찬 본인도 남자라면 알 터였다. 사정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 수치심을 모르는 사람이라 남의 기분을 가늠하지 못한다던가. 이건 좀 가능성 있는 이야기였다.
이선은 조금 더 명확하게 제 의사가 전달되도록, 고개를 흔들었다. 이제 바짝 마른 앞머리가 이마를 스쳤다. 드디어 의사소통이 된 건지, 강희찬의 얼굴에서 불안의 기색이 조금 옅어졌다.
“혼자 만질 땐 어떻게 했어요?”
“…강희찬 씨.”
“자위는 하고 살았을 거 아니에요.”
이선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강희찬은 저를 바투 끌어당겨 안으며, 속옷 안에 숨어 있는 제 구멍을 찾아 자신의 중심에 맞대었다.
감각보다도, 강희찬의 말이 이선을 아연하게 했다. 멍하니 입술을 벌리고 있는 이선을 향해 그가 아, 하며 말을 이었다.
“설마 안 해봤어요? 그것도 어울리긴 한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그럼 말해봐요. 어떻게 만지는데.”
아연한 얼굴이 강희찬을 간절히 바라봤다. 차라리 장난이기를. 늘 그랬듯이 성격이 나쁜 그가, 자신을 놀리기 위한 것이길. 지금이라도 웃으며, ‘농담도 못 하겠네요’라며 웃어주기를 간절히 빌었다.
강희찬 역시 그 의도를 모르진 않았지만, 어쨌든 응해줄 생각은 없었다.
정말 궁금했다. 성욕이라고는 한 자락도 없을 듯한 얼굴을 해서는, 제 좆을 만진다니. 정갈하게 온몸을 다 씻고, 대단한 의식이라도 하는 양 정좌로 앉아서 하나? 아니면, 저처럼 씻는 와중에 간단하게 하려나?
‘그건 좀 어울리진 않는데…….’
아무리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봐도, 애새끼처럼 이불 속에 웅크리고 들어가서 몰래 바지에 손을 집어넣거나, 죄책감이 어린 얼굴로 겨우 제 물건을 쥐는 얼굴이 전부였다.
궁금하다. 올해 안으로, 이렇게 무언가에 대해 궁금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궁금했다.
강희찬은 전혀 봐주지 않을 기세로 이선을 노려봤다. 빨리 대답해. 운동선수의 기백에 눌린 마른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살살…….’ 머뭇거리는 입술이 경련하듯 떨고 있었다.
“응? 뭐라고요?”
“아까… 하신 것보다는 조금 약하게…….”
결국, 말은 완성되지 못하고 동그란 머리가 푹 숙어지며 정수리를 보인다.
제 좆 좀 살살 만진다는 게 대체 뭐가 창피하다고 저런 반응을 보여주는 걸까. 강희찬의 기준에선 저 정도로 창피하려면, 자위하다가 제 좆구멍에 이상한 걸 처넣고 의사 앞에 섰을 때 정도는 되어야 했다.
세상 남자들 다 하는 자위 좀 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이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있는 인종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속으로만 삼켜야 한다. 무릎 위에 앉히는 것만 해도 이렇게 힘들었다. 창피하다고 몸을 웅크리며 이불을 푹 뒤집어 써버린다면, 또 어르고 달랠 자신이 없다.
강희찬은 쓸데없는 말을 삼키는 대신, 아래에 시선을 던졌다.
“진짜 살살 만지긴 해야겠네요.”
중얼거린 강희찬은 팔을 뻗었다. 지나치게 부끄러움이 많은 몸을 끌어안고 제 쪽으로 당겼다. 가뜩이나 너무도 쉽게 품에 들어오는 몸이다. 수치심에 벌벌 떨고 있으니 더욱 작아진 듯 강희찬의 품 안에 감겼다.
…오히려 이렇게 나오면, 더 심한 말을 해서 울려보고 싶다는 걸 선생은 모르는 게 분명했다.
꼭 안고 보듬어주고 싶다는 것도 진심이지만, 괴롭히고 싶다는 것도 명백히 자신의 진심이었다.
강희찬은 헐벗은 등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쓸었다. 곧게 등을 내려가는 뼈가 손바닥을 스쳤다. 한 손으로는 마른 허리를 단단히 감싸안고, 나머지 손은 이선의 앞을 향했다. 유일하게 몸을 감싸고 있는 속옷 위를 더듬어 중심을 슬슬 쓸었다. 당황한 이선의 허리가 잘게 떨렸다. 하지만 여전히 강희찬의 팔 안쪽에 묶여 있었다.
조심스러운 손길이 속옷의 밴드를 잡고 들춰냈다. 고개만 내밀고 있던 성기와 그 아래의 고환까지. 완전히 강희찬의 시야에 들어온다. 공간이 생긴 만큼, 발기해 있던 이선의 성기가 찬 공기와 섞이며 움직였다. 강희찬의 시선이 그 모양새를 빤히 바라봤다.
“좆도 예쁘네. 이런 것도 주인이랑 닮는 건가.”
“하, 하지 마세…….”
성기는 애처롭게 홀로 흔들렸다. 그에 맞추기라도 하듯, 벌벌 떨리는 목소리가 잇새로 흘러나오다 막힌다. 강희찬은 이번에도 버릇처럼 떠는 이선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혀끝이 입술을 익숙하게 파고들었다.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젖은 소리가 요란했다.
“으응…….”
몇 번을 들어도, 도저히 제 입에서 나는 소리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이선이 입맞춤에 당황하는 동안, 강희찬의 손은 바쁘게 움직였다. 허리 밴드가 엉덩이의 굴곡에 맞춰 곡선을 그리며 스친다. 씻을 때가 아니라면 드러내놓을 일이 없는 맨살이 공기에 노출된다. 엉덩이가 다 드러나는 감각에, 입술에 온 신경을 쓰고 있던 이선의 정신이 핫, 하고 돌아왔다.
“다리, 잠깐만 들어봐요.”
아무리 버둥거려도 소용이 없다. 그는 앉은 자세로도 너무도 쉽게 한쪽 팔로 이선의 체중을 지탱했다.
맞붙은 입술 위로, 어르는 말이 스친다. 수치심에 허리를 떨던 이선이 속옷이 빠져나가도록 한쪽 다리를 들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상했다. 창피하고 무섭다. 그런데도 다음의 것을 바라는 자신이 있었다.
강희찬은 그런 이선을 비웃지 않았다. 아까부터 싫다고 줄기차게 거절의 의사를 보이더니, 정작 속옷이 떨어져 나갈 때는 얌전히 몸을 가누는 모습에 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이선이 휩쓸리고 있다는 게 맞는 것처럼. 창피해하지 말라고. 그렇게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
이선의 한쪽 발목에 속옷이 애처롭게 걸렸다. 이미 속옷은 제 기능을 상실했다. 발목에 걸려 있어봐야 강희찬에게는 아무런 방해도 주지 못한다. 작은 천은 금세 강희찬의 신경이 닿는 범위에서 사라졌다.
맨살이 드러난 엉덩이가 강희찬의 손에 쥐어졌다. 그는 마치 사람의 살덩이를 처음 만져보기라도 하는 양, 이선의 엉덩이를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다.
이선은 강희찬의 가슴팍에 제 가슴을 붙인 채 바싹 긴장했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엉덩이를 만지듯. 성적인 함의가 없던 손이, 그 사이에 숨어 있는 구멍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꾹 다물려 있는 구멍은 마지막 보루인 속옷이 치워지자 더욱 침입자를 거부했다.
콘돔의 윤활액으로 손을 적셔놨지만, 턱도 없겠지.
강희찬은 한숨을 내쉬며 남은 손으로 시트를 더듬었다. 콘돔이 두어 개쯤 손아귀에 잡혔다. 포장지를 본능적으로 뜯으려는 손이 멈칫했다. 제가 쓸 수 있는 손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움칫거리는 어깨처럼, 여전히 낯선 손길을 거부하는 이선의 입구에서 손을 떼진 않았다. 대신, 강희찬은 남은 손을 사용해 콘돔 하나를 이선의 입가에 갖다 대었다.
“물고 있어볼래요?”
아직 제대로 시작한 것도 없는데 얼굴이 엉망이다. 그 잠깐 사이에 혼자 훌쩍거리기라도 했나. 눈가가 발갛게 짓무르기 시작했고, 얼굴엔 잔뜩 열이 올랐다.
가여운 얼굴 앞에 콘돔을 갖다 댄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지만, 강희찬은 애써 양심의 외침을 외면했다.
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선생은 변태를 만나기 딱 좋은 인간이었다. 첫 경험이니 그나마 몸 걱정을 해주는 변태가 낫지 않겠냐고. 기적의 합리화를 마쳤다.
강희찬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이선은 멋도 모르고 합, 하며 콘돔의 포장지를 이로 물었다. 덕분에 강희찬이 조금만 손에 힘을 주어도 콘돔의 포장은 뜯겼다.
토끼 눈을 해서 짜고 있는 주제에, 시키는 건 또 군소리 없이 잘한다. 손이 남아 있었다면 착하다며 머리카락이라도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이렇게 순순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면 좋다가도, 앞으로 어떻게 좆 달린 새끼들을 만나며 살아갈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지금 역시 그랬다.
“이것도.”
나오는 한숨을 삼킨 채, 강희찬은 한 번 더 새 콘돔을 이선의 앞에 갖다 댔다. 이번에도 작은 입이 벌어지며 콘돔을 물면, 강희찬이 포장이 뜯어지도록 비틀었다.
두 번의 합동작전을 통해 얻어낸 윤활액이 강희찬의 손바닥에 쏟아지듯 넘쳐났다.
“이거… 왜, 왜 이렇게 많이…….”
차마 콘돔이라는 말을 하지도 못하는 건가. 수치심과 아연한 기색이 섞인 얼굴이 강희찬의 손바닥 위와 얼굴을 번갈아 봤다.
“몸 안에 들어갈 건데, 로션을 들이부을 순 없잖아요. 그래도 몸 안에다 쓰라고 만든 물건인데, 좀 낫겠죠.”
말과 동시에 굵은 손가락이 이선의 입구를 파고들었다.
대화에 집중하는 동안, 이선은 경계심과 함께 몸의 힘이 다소 풀린 상태였다. 빠듯하긴 해도, 구멍 안으로 진입했다. 그 이후는 비교적 수월했다. 강희찬은 파드득거리며 떨리는 허리를 달래듯 쓸며, 괜찮다고 쉼 없이 중얼거렸다.
당장이라도 엉엉 울 것 같은 얼굴을 해서는, 이선의 손이 강희찬의 팔을 붙들어왔다. 하지 말아달라고. 차마 그런 말도 못 하고 떨리는 몸이 강희찬의 가슴에 더욱 붙어온다.
강희찬은 서늘한 어깨에 입술을 댔다.
제 입술이 뜨거운 건지, 이 사람이 유독 찬 건지. 입술에 닿은 체온과 제 손가락 하나가 파고든 안쪽은 도저히 같은 사람의 것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달랐다. 안은 손가락이 녹을 듯 뜨거운데…….
채 하나가 다 들어가지도 않았다. 분명 강희찬의 입장에서는 그랬지만, 이선에게는 마치 주먹 하나가 들어온 양 버거웠다. 어깨에 내리는 뜨겁고 다정한 호흡도, 괜찮다는 달래는 말도. 몸을 파고든 손가락 하나에 모든 것이 가려지고 있었다.
“아, 으윽…….”
숨을 쉬기가 버겁다. 불규칙한 호흡에 끅끅거리는 달뜬 숨이 섞인다.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죽을 거다. 더 했다가는 죽을 것이 분명했다.
밀려드는 불안과 두려움과는 별개로, 이선의 안은 내벽을 조였다. 더 이상의 진입을 막는, 최소한의 방어였지만 막상 강희찬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손가락 마디가 튀어나온 부분까지 맞춰놓은 양 내벽이 모양에 맞춰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강희찬이 조금씩 손을 움직일 때마다 안쪽의 피부도 그에 맞춰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그게 마치 자신을 반기는 것 같다고. 강희찬은 그리 느끼며 뻔뻔스럽게도 손가락 중지 하나를 더 구멍에 맞추었다.
“읏……. 흐읍, 그, 그냥…….”
당장이라도 꺼질 것 같은 불안감을 일으키는 숨이 강희찬의 어깨에 닿는다. 나뭇가지 같은 팔이 목덜미에 둘렸다.
두 번째인가…….
입을 함부로 놀리는 제 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어버릴 때와 지금. 이선이 먼저 제 목덜미를 끌어안아 준 것이 드물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꼭 필요할 때만 어리광이지.’
비릿한 심술이 올라온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선생은 꼭 제게만은 필요한 일이 있어야 그나마 말랑해졌다. 호구 주제에. 제게는 매정한 호구의 태도에 원래도 뾰족했던 마음이 더욱 모가 난다.
자신은 구태여 속내를 감추는 편은 아니다.
강희찬의 중지는 처음 이선의 안으로 들어설 때와는 달리, 제법 길이 든 구멍을 짓궂게 파고들었다.
“흐읏…….”
숨을 들이켜는 신음이 귓가를 울렸다. 듣기만 해도 입술을 맞대고 호흡을 나눠주고 싶은 숨소리였다.
안쓰러운 소리는 심술을 순식간에 무력화시킨다. 강희찬은 고개를 돌렸다. 부슬부슬. 주인을 닮아 가늘고 힘이 약해 보이는 모발이 얼굴을 스쳤다. 입술이 닿는 유일한 곳은 이선의 귓가였다. 그곳에 입술을 바짝 붙였다.
“괜찮아요.”
혼자 훌쩍거리는 이의 귓가에 입술을 내리며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털끝 하나 다치게 하지 않겠다고. 많이 겁먹지 말아달라고. 그런 모든 말을 ‘괜찮아요’라는 한마디에 묻어 넘겼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귓가에 입맞춤을 받던 이선은 강희찬의 어깨에서 고개를 들었다. 투명한 물기가 떨어질 생각을 않는 눈동자와 마주했다. 옅은 눈동자에는 강희찬을 향한 원망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 그냥……. 그냥 빨리 하시면, 읏, 아… 안 될까요?”
“…….”
강희찬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의미를 알기 힘든 질문이었다.
말이 없는 그의 얼굴을 보고, 이선은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바싹 위축된 듯 어깨가 움츠러들면서도, 작은 입술은 부지런히도 달싹거렸다.
“히, 힘드신 것 같아서…….”
“…….”
“그… 아래…….”
채 말을 마치지 못하는 이선의 시선이 슬그머니 밑을 향한다. 무엇 하나 정확한 표현을 피하는 말보다, 시선의 향방이 더욱 명확히 의사소통의 역할을 수행했다.
“…정 선생님.”
부연설명을 듣자, 강희찬의 입에선 결국 한숨이 터지고 말았다.
손가락 좀 넣었다고 죽을 듯이 끅끅대는 주제에. 멍청이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단 말인가. 사람이 하도 어이가 없으면 화를 낼 기운조차 빠진다. 새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멍청한 건 죄가 맞다. 하지만 선생은 처음이지 않은가. 처음이면 서툴고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
강희찬은 저 역시 처음이라는 점은 까맣게 잊은 채, 답지 않게 인내심을 넓혔다.
자신과는 처음이니 괜찮다. 하지만 저딴 소리를 다른 새끼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좆 달린 새끼에게 저딴 소리를 한다는 건 차라리 머리부터 먹어치워 달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사내새끼들이란 제 욕심을 채우기 급급하다. 저런 소리를 듣는다면, 여린 안쪽이 찢어지든 말든 제 것을 처넣기 바빠지는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저런 얼굴로, 저런 표정까지 짓는다니……. 암담하기가 이를 데가 없다.
“…….”
선생의 성향과 약점 따위 파악하는 것 정도는 냉수를 마시는 것보다도 쉽다. 간단했다. 약간의 겁만 주면 된다. 조금만 노골적인 소리를 해도, 아연실색해서는 파닥거리며 잔뜩 몸을 움츠릴 것이 분명했다.
결과가 너무도 빤히 보이는 일이었다. 강희찬은 삐뚤어진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지금 내 거 집어넣었다간, 정 선생 내일 병원 가서 남자한테 강간당했다고 말해야 할 겁니다.”
“…….”
효과는 만점이었다. 버거운 감각으로 인해 발갛게 달아오른 뺨의 색이 허옇게 질리기 시작한다. 벌어진 입술은 다물 줄을 모른다. 경악스럽다는 듯, 혹은 경멸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이선의 얼굴을 보며, 강희찬은 비웃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놀리면 놀리는 대로 반응이 착착 온다. 지겹지도 않은지, 매번 놀라는 얼굴이 퍽 우스웠다.
어쨌든 유혈사태 없이 안전하게 첫 섹스를 끝마칠 생각이다. 선생의 협조가 다소 필요하긴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순항 중이었다. 아직까지는.
하지만 저런 소리를 하며 사람을 뒤집어놓는다면, 강희찬 역시 장담할 순 없었다. 어쨌든 저 역시 좆이 달린 새끼였다. 좆이 달린 새끼들의 대부분은 좆이 가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었다.
피가 몰린 곳은 아랫도리면 족하다. 머리에까지 피가 몰려,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의 말만 듣고 이 구멍에 좆을 파묻는다면 어떻게 될까. 병원에 가서 강간을 당했다며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것도 영 없는 소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니까, 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해요.”
제발 도와달라고. 쓸데없는 소리는 말고, 아래에 힘이나 좀 풀어달라고. 그리고…….
강희찬은 입술을 짓씹었다. 그와 동시에, 이마 옆으로 땀방울 하나가 주룩 흘렀다. 어지간해서는 땀이 나는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선과의 섹스는 체력적인 문제보다도, 정신적인 소모가 컸다.
손가락 하나 닿지 않고도 강희찬의 체온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인간은 여전히 멍청한 얼굴이나 한다. 색이 옅은 눈동자가 제 얼굴을 흐르는 땀방울을 멍하니 좇는다.
가는 손가락이 강희찬의 얼굴에 닿았다. 관자놀이부터 얼굴의 옆선을 따라, 검지 하나가 가만히 땀을 닦아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얼굴은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점이 강희찬을 웃게 했다.
“내 생각 해줄 거면… 좀 만지기라도 해봐요. 손으로.”
“…네?”
지금 손으로 만지고 있는데……. 그런 물음이 생략된 짧은 대꾸였다. 강희찬은 턱 끝으로 제 아래를 가리켰다.
“밑에.”
“아…….”
의미 없는 소리만이 공기를 울렸다. 이선은 뒤늦게 잔뜩 생략된 구체적인 목적어를 깨달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선의 왼손이 강희찬의 얼굴에서 떨어졌다. 그는 속옷 한 장을 입은 채, 자신은 아예 다 벗은 채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말하는 ‘밑에’라는 게 어디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식으로 에둘러 표현한 것은 자신이 먼저였다.
이선은 몇 번이나 멈칫거리는 손을 겨우 아래로 이끌었다. 그리고 천을 뚫어버릴 기세로 부풀어 있는 그의 중심을 속옷 위로 가만히 매만졌다. 처음 그가 바지를 벗을 때만 해도, 저게 뭔가 싶었는데……. 정말 기분 탓이었으면 했지만, 뭔가 그때보다 더 커진 듯한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남자로서의 패배감과 본능적인 두려움. 이선의 손은 차마 속옷 안을 파고들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자신은 남의 속옷을 들추고 손을 집어넣을 만큼 용감하진 못했다. 게다가 속옷의 앞섶이 젖어 있는 것 같다. 그 습기가 이선에게는 더욱 큰 장벽이 되었다.
‘…무섭다.’
속옷 안에서 징그러운 것이 튀어나와, 자신을 해할 것만 같다. 하지만 티를 내는 건 조금은 자존심이 상했다.
이선은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며 기계적으로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과연 이런 손짓에 흥분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서툴렀지만, 속옷 안의 물건은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조심스레 시선을 올렸다. 이선은 흘끔거리며 강희찬의 얼굴을 훔쳐봤다. 미간을 찌푸리는 것 외엔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불쾌하다고 느끼는 걸까. 얼굴로는 속을 알 수 없지만, 그의 성기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이선은 그 부분에서 미약한 안도를 느꼈다.
하지만 그 순간, 야박하게 혀를 차는 소리가 이선의 손짓을 타박했다.
“제대로 만져야지, 뭐 하는 거예요.”
“아니…….”
건강하게 잘 반응하는 것 같은데……. 이선은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었는지 듣지 못했는지, 강희찬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대신, 여전히 이선의 뒤를 점령한 손가락을 더 깊이 넣을 뿐이다.
“안에 손 넣고, 쥐고 흔들어요.”
“…….”
노골적인 주문이다. 이선은 무어라 반격을 해보려고 입을 달싹이다가 꾹 다물었다. 도저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만지기 싫어요?”
이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딱히 아니었다. 물론 무엇이 튀어나올지 가늠이 되지 않는 속옷 안이다. 손을 집어넣는 순간 뱀이라도 나올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구태여 따지자면 ‘싫다’고 말할 것은 아니었다.
“그럼, 창피해요?”
이번에도 이선은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분명 지금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에 가까울 테지만, 이 답은 강희찬이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다.
‘좆 내놓는 건 난데, 정 선생이 왜 창피해요?’
역지사지가 전혀 되지 않는 남자라면 이딴 소리나 할 것이 너무도 자명했다.
결국, 이선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타의 반으로 그의 검은색 속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습한 기운은 천 밖에 있을 때보다 더욱 선연하다. 까슬한 음모가 닿는다.
당장 손을 물려버리고 싶었지만, 몸을 움칫거리는 수준으로 간신히 참아냈다. 기억에 남은 대로, 강희찬의 기준으로 오른쪽으로 갈무리해 놓은 그의 중심이 금세 잡힌다.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속옷의 밴드 위까지 올라올 기세로 커져 있는 성기는 찾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준이었으니까.
손끝에서부터 거부감이 밀려든다. 고작해야 천 하나였다. 하지만 그 안은 지나치게 뜨겁고 습했다. 도망치고 싶어……. 이선은 금방이라도 손을 물리고 침대 구석으로 도망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흐으…….”
눈을 질끈 감았다. 시야가 차단되자 감각은 더욱이 손끝에 몰렸다. 제 것을 만질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델 것 같은 손바닥으로 겨우 그의 것을 감쌌다. 뿌리 부분을 쥐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끄트머리의 불룩한 귀두를 감싸는 것도 겨우였다. 그의 속옷 안을 척척하게 하는 액이 흘러나왔다. 으으, 하는 반사적인 신음이 다시금 이선의 입술을 울렸다. 이선은 조심스레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질척하게 젖은 소리가 핥아오는 것만 같아서 더욱 몸을 움츠렸다.
“왜 싫어해. 그냥 좆이잖아요. 정 선생 거보다 안 예뻐서 싫어요?”
“무슨…….”
그는 딱히 이선의 대답을 기다린 건 아니었다.
몹쓸 소리나 지껄인 입을 그대로 이선의 목덜미에 묻었다. 입술 너머로 드러난 이가 아프지 않은 정도로 이선의 귀를 깨물기 시작했다. 이갈이하는 어린아이처럼. 의미 없이 살갗을 씹는 도중에도, 거친 숨이 종종 미약한 감각 사이사이를 채웠다.
“그렇게 만졌다가는, 내일 아침까지도 못 쌀 것 같은데.”
“…윽.”
“더 세게 잡고 흔들어요.”
언제나 전달이 좋은 목소리가 유독 거칠다. 이선은 감고 있는 눈을 더 세게 감았다.
눈을 감아도 소리는 왜 들리는 걸까. 감각 기관의 체계에 대한 불만과 함께 이선의 손바닥에 질척한 쿠퍼액이 감겼다.
못 싼다면서, 이건 대체 뭐란 말인가. 거짓말쟁이.
이미 자신의 감각으로는 이 정도면 사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스물여덟까지 살 동안, 대체 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어느 정도의 사정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금만 더 하면 사정을 시킬 수 있으려나. 눈을 감은 채로 좀 더 손에 힘을 주었다.
처음 만졌을 때의 거부감은 많이 덜어졌다. 이젠 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이선은 슬그머니 눈을 떴다. 제 손바닥에 버겁게 싸여 있는 물건이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선의 호기심은 충족되지 못했다.
“됐어요. 그만.”
강희찬이 쯧 하고 혀를 찼다. 그와 동시에 이선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어어. 강희찬의 중심을 쥐지 않은 손이 억센 목덜미를 감쌌다.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이,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당장이라도 손을 물리고 싶었었는데. 막상 그만둬도 된다는 말을 듣자 미련인지, 호승심인지 알기 힘든 감정이 일었다. 마치 제대로 일을 마치지 못하는 반편이가 된 것만 같았다.
이선은 고집을 피웠다. 정말 조금만 더 만지면 된다. 정상을 한 걸음 남기고 하산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만 같았다.
“조금은 무슨.”
항변에도 불구하고, 이선은 그대로 눕혀졌다. 그의 속옷에서 손을 빼지 못한 채다.
강희찬이 당장이라도 제 손목을 잡아 쥐고 치워낼 기세였다. 이선은 손아귀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강희찬은 제 샅에서 이선의 손을 떼었다.
“가, 강희찬 씨…….”
이선이 차마 벗겨내지 못했던 그의 속옷이 내려간다. 속옷의 밴드가 내려감과 동시에, 쿠퍼액을 흘리고 있는 기둥이 꺼덕거리며 튀어 올랐다. 시선이 낮아진 채로 보는 그 모습은 더욱 이선을 아연하게 했다.
속옷 위로 드리워진 실루엣으로만 봤을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직접 본 그의 성기는 눈에 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강희찬의 몸에 붙어 있기엔 적절할지도 모르겠으나……. 아니, 그렇게 따져도 크다.
‘…흉물스럽다.’
도저히 평상시에는 입으로 말할 일이 없는 그 수식어가 제격이었다.
긴 성기는 휘지도 않고 곧게 뻗었다. 색 역시 본인의 피부색을 닮는 건지 깨끗한 느낌을 주었고. 붉은 귀두 끝에서는 불투명한 액체가 흐르고 있다.
좆이 예쁘네 뭐네 추행 같은 말을 했던 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자신이 조금만 더 뻔뻔한 사람이었다면, 역시 진심으로 그런 소리를 했을지도 모른다. 참 잘생기셨다고.
하지만 이선은 제대로 성인인 남자의 성기를 보는 게 처음이었다. 차라리 검고 흉하게 생긴 것이 튀어나왔다면 덜 놀랐을 거다. 훌륭하고 반듯한 물건은 더욱 위화감을 주었고, 이선을 움츠러들게 했다.
그는 꺼덕거리는 성기를 향한 이선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당당한 기색에 오히려 이선이 먼저 눈을 옆으로 돌렸다.
“아, 안 되겠어요. 저는…….”
“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풀면 돼요.”
“모, 못 해……. 그거는, 안 들어가요.”
“손가락도 좋다고 세 개씩이나 받아먹으면서, 왜 내 좆은 싫어요.”
“강희찬 씨.”
질렸다는 듯한 이선의 목소리에도 강희찬은 그저 악당처럼 웃을 뿐이다. 악당은 이선이 보란 듯 자신의 성기를 쓸었다. 그러며 한 손으로는 콘돔을 들고 이선의 입가로 가져왔다.
같은 행동이었는데도, 이번엔 거부감이 들었다. 남자가 단순히 뒤에 사용하기 위한 윤활액으로만 저것을 쓸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선의 아랫입술이 덜덜 떨렸다. 강희찬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아깐 얼른 하라더니, 이제는 제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눈치란 게 조금 생기긴 했나 보다.
강희찬은 진심으로 이 상황이 즐거워졌다. 하지만 비틀어 올라가려는 입매를 애써 눌러야만 했다. 어쩐 일인지, 자신의 즐거움이 표정으로 드러나면 이선은 퍽 이상한 반응을 보이곤 했으니까.
다시 조개처럼 입술을 물어버리고 고개를 홱 돌릴지도 모른다. 선생은 꽤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었으니까. 싫거나 무서운 일이 있다면, 고개를 홱홱 돌리고 보는 애 같은 면모를 강희찬도 보지 않았던가.
재빨리 이선의 입술 사이에 콘돔을 끼웠다. 마지못해 작은 앞니가 포장을 문다. 참 잘했어요. 선생들이나 할 법한 칭찬을 해주고 싶었다. 강희찬은 제 손을 올려 이선의 뒷머리를 쓸려고 하다 멈추었다.
‘아무리 그래도 좆 만졌던 손인데…….’
강희찬은 시트에 손바닥을 두어 번 문질렀다. 그러고는 이선의 흘러내린 앞머리를 조심히 넘겼다. 동그란 이마가 눈을 잡았다. 그 아래, 물기가 가득한 두 눈 안의 동공이 오롯이 저를 향했다. 차마 아래는 내려다보지 못하고, 제 얼굴만을 올려다보는 눈은 괴롭히고 싶은 마음을 유발하기만 한다.
더더욱 보란 듯 콘돔을 제 좆에 끼우기 위해 바람을 빼고 좆에 갖다 댔다.
동그란 고리처럼 말려 있는 부분을 손으로 감싸고, 좆의 뿌리 부분을 향해 손을 몇 번 움직이면 된다. 갑갑하긴 하지만, 어차피 몸에 고무막을 씌우는 거다. 불편한 게 당연했다. 처음 사용해 보는 도구는 생각보다는 간단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저의 서투름으로 인해 이선이 다치지 않을까. 그런 불안감으로 뒤덮여 있던 강희찬에게는 한줄기의 안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안도는 찰나였다. 미약한 갑갑함이 점점 견딜 수 없는 불편함으로 바뀌고 있었다. 콘돔이 성기의 절반을 겨우 가릴 뿐이다.
억지로 마저 씌울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강희찬의 손이 멈추었다. 이선의 불안한 눈이 더더욱 울먹울먹했다.
“씨발…….”
상황을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젖어든 이선의 눈이, 짓씹은 욕설에 더욱 흔들렸다.
…다들 이렇게 불편한 걸 감수하면서 좆질을 한단 말인가. 섰던 것도 죽일 기세로 조이는데.
고무막에 반절 정도 조이고 있는 제 좆을 내려다보다, 강희찬은 혀를 찼다.
어렵게 끼웠던 콘돔을 다시 벗겨냈다. 허탈하긴 했지만, 몸은 다른 말을 했다. 족쇄 같은 고무가 풀리자마자 좆은 다시 고개를 들며 꺼덕였다. 마치 생명을 가진 듯, 편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좆 주제에 좆같이도 까다롭다.
“가… 강희찬 씨?”
불안한 눈으로 강희찬의 이름을 불렀다. 미약한 어린 동물처럼 바들거리는 이선을 향해, 강희찬은 여전히 건조한 시선을 던졌다.
“…정 선생 애인은 좋겠네요.”
여전히 고저가 없는 목소리는 어떻게 들으면, 퍽 분한 듯도 하다. 제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동생에게 빼앗긴 아이처럼, 심술궂게 비틀린 입매가 움직였다.
“운 좋은 줄 알아요.”
“…네?”
신경질적으로 콘돔을 시트 위에 팽개치더니, 강희찬은 이선의 두 다리를 한 손에 그러쥐었다. 발목이 모이고, 무릎이 맞붙는다. 강희찬은 그대로 그러모은 이선의 종아리를 제 어깨 위에 두었다.
“좋겠어요. 첫 섹스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할 수 있어서.”
“…….”
“축하해요.”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한마디를 내뱉고, 강희찬은 손으로 제 성기를 훑었다.
이미 콘돔의 윤활액과 체액으로 번들거리는 성기가 훑어지고, 그 손바닥이 그대로 이선의 다리 사이를 향했다. 축축한 손이 성기와 회음을 지났다. 이선의 아래에서 질척거리던 액이 허벅지 사이에 고루 펴지자, 이선은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뭘 하려고…….’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선의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하지만 남자는 이 순간만큼은 이선의 느린 걸음에 보폭을 맞추어주지 않았다.
강희찬은 어깨에 걸친 이선의 다리를 억세게 옥죄더니, 그 사이로 제 좆을 끼워 넣었다.
“다리 모으고 힘줘요.”
“뭐, 뭐 하시는……!”
“섹스는 안 해요.”
“…강희찬 씨…….”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가 강희찬에게 닿는다. 남자는 그저 거친 숨을 한 번 몰아쉬었다. 겁에 질린 이선에게는 그마저도 위협이었다. 그런 이선의 속내를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강희찬의 목울대가 크게 울렸다. 그 역시 무언가를 힘겹게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이선은 잠시 생각했다.
“섹스는 안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억지로 허벅지에 힘을 주지 않아도 이선의 다리는 이미 포개어진 상태다.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종아리를 엑스 자로 포갠 덕분에 허벅지 사이는 완전히 메워졌다. 그리고 이선은 곧 기묘한 자세의 의미를 깨달았다.
강희찬의 허리가 다리 사이를 움직였다. 아까부터 고장이 난 것처럼, 발딱 선 채 덜덜 떠는 제 성기와 고환의 위로 묵직한 것이 내리눌렀다.
압도적으로 커다란 물건에 눌린 성기. 그리고 강희찬이 허릿짓을 할 때마다 그의 성기는 이선의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제 다리 사이에서 움직이는 타인의 성기가 이선의 시야에 너무도 노골적으로 들어왔다.
“으, 으읏……! 아, 아니…….”
“다리에, 힘 빼지 말고… 더 조여요.”
“아, 힘들… 너, 너무……. 흑.”
허릿짓이 거세진다. 척척대는 소리가 방 안을 울리고 이선의 귓속으로 들이닥친다. 저렇게 커지다가 터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포개어진 다리 사이에서 들락거리는 둥그런 귀두가 무서웠다.
윤활유를 바르긴 했어도 맨다리엔 충분치 못했다. 처음엔 생살끼리 쓸렸다. 성기가 지난 자리에 표식을 남기는 것처럼, 이선의 허벅지 안쪽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본능적인 아픔에 다리의 힘이 풀리고, 틈이 벌어졌다.
하지만 살이 쓸리는 아픔 속에서도, 틈을 비집고 쾌감은 몸 가운데로 모인다.
“아……! 아아!”
이런 감각은 모른다. 알아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아픔과 정염에 젖어 흐느끼는 제 신음 소리가 너무도 추하게 들렸다. 사람이 이렇게 느껴서는 안 된다. 이런 건 정상적인 섹스일 리가 없었다. 이선은 쾌감이, 그리고 그것을 느끼는 자신이 두려워졌다.
단단한 기둥이 주는 감각을 피하려 다리에 힘을 빼고 틈을 더 내었다. 하지만 강희찬은 무섭도록 강한 손아귀 힘으로 이선의 허벅지를 움켜쥐고 억지로 붙였다. 그의 손이 짚은 곳에 온통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마른 살에 쓸리던 것이, 지금은 미끄러지듯 이선의 성기 위로 기둥이 움직인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체액, 혹은 서로의 것이 섞인 액이 부족한 윤활유의 자리를 대신했다.
움직임이 쉬워진 만큼 강희찬의 허릿짓은 더 빨라진다. 끝까지 발기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물건이 점점 다리 사이에서 크기를 더욱 키우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러고 있었다.
성기의 모든 부분이 묵직한 기둥에 뭉개진다. 물건은 이선의 고환과 음경을 눌렀고, 그의 고환은 움직임에 맞추어 젤로 척척해진 이선의 회음부를 눌러댔다.
“흐, 흐읍……. 윽…….”
누워서 다리를 모으기만 하는데도 기운이 빠졌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와 열감이 이선을 좀먹었다. 그의 허리가 거세질 때마다, 반은 빈사 상태인 이선은 반동 탓에 침대 헤드를 향해 몸이 밀렸다.
시트 위에 널려 있던 이선의 손이 천을 쥐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움직인다면 이런 고통스러운 쾌감에서 멀어질 수 있다. 그런 헛된 희망을 가지며 제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강희찬의 손이 이선의 골반을 틀어쥐었다. 그러고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가볍게 이선의 몸을 제 몸을 향해 바투 당겼다. 엉덩이와 샅이 부딪치며 나는 젖은 살 소리가 유독 컸다.
“아, 흐응! 그으……. 나, 그만!”
자극이 심했다. 직접적으로 성기에 쏟아지는 노골적인 움직임도 그랬지만, 커다란 고환이 빈틈없이 꾹꾹 회음을 누르는 감각은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당장이라도 회음을 뚫고 들어올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이선의 성기에서는 흐릿한 백탁액이 쏟아졌다.
“아, 아으……. 응!”
마른 배 위로, 왈칵하며 쏟아진 액체가 고인다. 강희찬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쌌다.
어깨를 파르르 떨며, 눈을 감고 사정의 여운을 감당하고 있는 여린 얼굴을 봤다. 미간이 찌푸려진 채로, 벌어진 입술 틈새로는 공기가 들고 난다. 벅찰 만큼 숨을 쉴 때마다 가슴팍이 오르내렸고, 마른 배에 고여 있던 액이 허리선을 타고 침대 시트 위로 흘러내렸다. 이선의 몸을 흐르는 백탁액이 마치 싸지도 않은 제 좆물처럼 느껴졌다.
더. 온몸을 다 좆물로 틈 없이 적셔버리고 싶다.
너무 쉽게 손에 잡히는 발목도, 거기에서부터 타고 올라가는 마른 종아리도, 약한 자극에도 금세 발갛게 자국이 남아버리는 허벅지도. 같잖게도 발딱거리며 서서는 쾌감을 착실하게 느끼며 좆물을 흘려대는 기둥은 물론, 그 밑에서 제 좆에 비벼지는 알도. 피가 날 때까지 물고 빨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색이 고운 정점이 있는 가슴팍부터, 그림자가 고이는 어깨선. 그리고 눈을 뜨는 것조차 힘에 겨워하는 얼굴까지.
모든 것을 제 통제 아래에 두고, 영역표시를 하는 개새끼처럼 좆물로 더럽혀버리고 싶다. 다른 새끼를 알 틈은 주지 않을 거다. 자신이 특별히 못된 새끼라서가 아니다. 저 얼굴을 보면 모든 새끼는 이따위 생각이나 할 것이 당연했다.
온갖 탐욕과 추잡한 속내를 그대로 보일 순 없다. 강희찬은 말과 함께 마른침을 삼켰다. 크게 오르내리는 목울대 안으로 음심을 쑤셔 넣었다.
“더 조여요.”
“…흐윽…….”
몸에서 그나마 살이 붙어 있어서 만질 맛이 나는 허벅지를 주물렀다. 뒤늦게 강희찬은 제가 손을 댔던 모양대로 발갛게 열이 올라 있는 흔적을 발견했다.
내일이면 멍이 되려나.
미약한 죄책감이 번지며 손아귀에서 힘을 슬쩍 풀었다. 그렇다고 해서 손길을 거두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허벅지를 위아래로 슬슬 쓸자, 감겨 있던 눈이 파르르 떨리며 눈꺼풀이 들어 올려진다. 눈을 뜨는 것만으로도 힘든지 멍했던 동공에 이채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혼자 싸고 기절하면 끝날 줄 알아요?”
“아, 자… 잠깐…….”
“자는 동안, 내가, 쑤셔 박으면 어쩌려고. 어?”
“흐읏……! 지금, 움직이면……. 으응!”
이미 파정을 한 이선의 성기에 자극이 겹쳐졌다. 사정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다. 감각은 해일처럼 온몸을 덮쳤다. 그는 제 입술을 가누지 못해 소리를 흘려내는 이선을 자꾸만 재촉했다.
이런 적은 없었다. 사정을 했으면 끝이 아니던가. 지금껏 자신이 알고 경험한 성적 지식이었다.
강희찬이야 자위는 해본 적 있냐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지만, 그건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어디 가서 당당하게 말하진 못할 유일한 성생활에서, 이런 건 없었다. 오롯이 저 자신의 통제였다. 손을 움직여 자극을 가하면 반응이 오고, 사정을 하고 나면 손짓은 끝난다.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손을 움직이고, 원치 않으면 쾌감은 멈추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제 몸은 철저히 저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모든 신경 감각은 강희찬의 통제 아래로 들어갔다. 사정을 마친 성기에 가해지는 자극은 차라리 폭력이었다.
강희찬은 아직 파정을 하지 못한 상태였다. 다른 이와 섹스를 하면 이런 문제가 있었다. 오른손으로 성기를 쓸어본 게 전부인 빈천한 성생활의 소유자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이 이상의 절정감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위로 자극이 쌓인다.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감각이 아니다.
“눈 떠요.”
손가락 하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이선을 향해 강희찬이 엄하게 재촉했다. 고개를 잘게 흔드는 게 반항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희찬에게는 통하지도 않았다.
“눈 뜨고, 싸는 거 똑바로 보라고.”
그는 거친 말과 함께 부지런히 절정을 향해 달리는 허릿짓을 이었다. 척척 몸이 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머릿속을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흐…으윽……. 가, 강희찬 씨… 읏……!”
무섭다. 이런 사람은 모른다. 자신이 아는 강희찬은 이런 이가 아니었다. 느린 제 걸음을 맞춰주고, 한숨을 쉬다가도 부탁은 다 들어주었다. 제가 아는 그는 이렇지 않았다.
서러움이 차오르면서도, 이선은 그의 무서운 재촉을 따라 애써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까맣게 점멸하는 시야 속에서 이선의 몸이 흔들린다.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라치면 강희찬의 재촉이 붙어왔다. 보라고. 얼른 보라고. 뭘 자꾸 보라고 하는 건지, 이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사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걸까. 그냥 멀쩡히 있어도 눈을 돌리고 싶은데.
마치 괴롭히는 것처럼 강희찬은 끈질기게 이선의 눈이 감기지 않도록 종용했다. 결국, 이선은 온몸을 두드려 맞는 격한 허릿짓이 멈추는 순간까지 강희찬의 성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제 허벅지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나기를 반복하는 성기가 기괴하게까지 느껴졌다. 더 조이라고. 이미 허벅지가 아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건만, 강희찬은 부족하다는 소리만 했다.
몸의 어느 부분에 힘을 주어야 그가 만족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불만족스러운 요청만을 계속하는 그의 말과는 달리, 강희찬의 성기에서는 희뿌연 액체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이선의 다리 사이를 적시고, 회음을 지나며 저 아래의 구멍에 닿았다.
“아……. 읏, 씨발…….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머릿속이 뒤흔들렸다. 정확히 말하면, 강희찬의 허릿짓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빨라져 이선의 몸 역시 속절없이 흔들렸다.
사정하는 모습을 보라는 강희찬의 명령을 더는 따를 순 없었다. 이선은 무서운 놀이기구를 타는 듯, 눈을 꾹 감고 입술을 악물었다. 남자로서의 본능으로 알 수 있었다. 거세게 몸이 흔들리는 만큼, 강희찬의 사정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길고 길었던 여정의 마지막이다. 이번만 버텨내면 끝인 거다. 스스로를 향해 그렇게 끊임없이 되뇌었다.
이선은 그의 사정이 조금이라도 원활했으면 하는 마음에, 허벅지에 더 힘을 주었다. 지금도 경련이 일 듯 덜덜 떨리는 다리에 제대로 힘을 주었나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응……!”
노력이 얼마나 빛을 봤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이선은 제 아랫배가 척척해졌음을 느꼈다.
슬그머니 눈을 떠보았다. 어느새 강희찬의 허릿짓은 잦아든 채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는데도 왠지 모르게 자신이 더 숨이 찼다.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뭉개진 이선의 성기 위로 희뿌연 액이 심할 정도로 엉겨 있다 못해, 아랫배에 고여 있었다. 불규칙한 호흡을 따라 이선의 가슴팍이 오르내렸다. 움직임에 못 이겼는지, 액체는 이내 허리선을 따라 시트로 흘러내렸다.
…엉망이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물들어 있었다.
“…….”
이제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여기서 몸을 일으킨다면, 시트가 엉망이 되어버릴 거다. 이미 흘러내리는 정액으로 더럽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거리낌 없이 몸을 움직일 순 없었다.
“아……!”
망설이던 이선의 위로 강희찬이 몸을 겹쳤다. 순간적인 무게에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무겁다는 말조차 나오지 못할 만큼 무겁다. 옷을 입으면 꽤 슬림해 보이는 체형이 맞았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가, 강희찬 씨……. 시트…….”
더러워진 것 같은데……. 더불어, 자신의 아랫배와 닿은 그의 몸도. 그런 말이 차마 완성되진 못했다.
이선의 귓가에서 숨을 고르던 입술이 말을 중간에 잡아챘다. 이제 입맞춤이 처음이라 놀랐다고 하기도 민망하다. 오늘 몇 시간 사이 숱하게 겹쳐 본 입술이다. 그럼에도 이선은 또다시 놀랐다. 맥락 없이 이어진 키스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으, 으응……. 자, 잠깐만…….”
“정 선생님.”
사정하기 전과 뭔가 달라진 게 있나 싶은 성기가 이선의 젖은 아래를 문질렀다. 기둥과 고환을 훑고 내려가 그의 정액으로 젖어 있는 회음, 그리고 그 아래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구멍에 그의 기둥이 쓸리고 있었다.
…끝이 아닐 수도 있다. 다시금, 빈천한 성생활의 주인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조심스레 성기를 만지고 절정으로 닿는다. 그러고 나면 끝이었다. 이선이 아는 성적인 체험이라는 건. 사정을 하고 나면 힘을 잃어버리는 성기처럼 마음 어딘가는 허했다.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로 하곤 하는 유행어들을 보면 딱히 그런 남자가 자신만 있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안도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강희찬의 목소리는 달래는 듯하면서도, 엄하게 이선의 행동을 제지했다.
“안 돼요.”
대체 뭐가 안 된다는 소린지는 모르겠으나, 이선은 도망치려는 듯 몸을 뒤척였다.
“아, 아까 다 하셨으면서, 왜…….”
“언제부터 섹스가 손장난 좀 하다가 싸는 거였어요? 요샌 애새끼들한테 성교육 안 해요? 정 선생부터 다시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걸 왜 초등학교에서……!”
“애새끼들, 어차피 다 알 걸요.”
우리 애들은 안 그래요. 그렇게 자신 있게 따지고 싶었지만, 사실 장담할 수는 없다. 이선의 반에서도 핸드폰이 없는 아이들을 세는 것이 더 빨랐다. 요새야 부모님들이 여러 방법으로 유해 정보를 차단한다고는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접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선은 문득 대화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희찬과 말을 하다 보면 가끔씩 이런 식으로 휘말려들 때가 많았다.
이선은 입술을 꾸욱 물며 눈을 치떴다. 한 뼘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대체 어떤 얼굴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금이라도 위협이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건, 아까 강희찬 씨가 안 하겠다고 하셨어요…….”
“섹스? 말은 똑바로 해야죠. 정 선생이 무섭다고 질질 짜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지.”
하지만 이선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나 보다.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노골적인 말을 했으며, 심지어 없는 사실까지 날조를 했다.
“제, 제가 언제 질질……! 아, 아무튼… 강희찬 씨가 안 하겠다고 하신 건데…….”
“쑤셔 박고 좆질 안 한다니까.”
“…….”
과격한 말본새에 아연한 이선을 두고 강희찬은 허릿짓을 이었다.
“대신 다른 거라도 해줘야 맞지 않아요?”
섹스는 하지 않는다. 그 말의 참뜻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섹스 빼고는 다 하겠다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 번 더 사정할 것 같은 중심이 이선의 구멍을 뚫고 들어올 기세였다. 긴장으로 잔뜩 움츠린 구멍 위로 성기가 비벼지고, 맞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질척거리는 젖은 소리가 이선의 귓가를 괴롭혔다.
“어, 얼마나 더 하시려고…….”
“글쎄요.”
“…강희찬 씨.”
“얼마나 할까? 정 선생 좆에서 물 한 방울 안 나올 때까지 할까요? 그럼 다른 새끼랑 이딴 짓도 못 할 거 아냐.”
회음이 찔렸다. 들어가지 못하는 구멍을 대신하는 것처럼, 마치 그곳에 새로운 구멍을 뚫어버릴 기세로 강하게 찔렸다. 그때마다 성기 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자극이 몸 안으로 공명했다.
강희찬의 배에 문질러지는 이선의 성기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힘을 더해갔다. 사정한 후에도 다시 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몸은 처음 해보는 낯선 경험 속에서 덜덜 떨며 무력하게 쾌락을 받아먹기만 할 뿐이다.
“아, 아, 읏……!”
“억울하잖아, 씨발.”
이선이 차오르는 성감에 힘겨워하는 사이, 강희찬은 이선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그리고 사나울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짓씹었다.
“난, 씨발……. 손끝 하나라도 다칠까 무서워서 손도 못 대는데, 다른 새낀 쑤셔 박을 거 아냐.”
“아, 으응……. 흑!”
이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알아듣든 그렇지 못하든 강희찬은 말을 이었다.
“풀어주지도 않고 좆부터 들이댈걸요? 사내새끼들이 다 똑같지.”
“가, 강희… 읏……! 아읏……. 나, 나올 것… 으응!”
“밑에 찢어져도, 어? 지금처럼, 좋다고 싸댈 겁니까?”
커다란 왼손바닥이 이선의 정수리를 지그시 눌렀다. 강희찬의 체중에 밀려 흔들리던 이선의 몸이 그의 손이 닿자 비교적 덜 흔들리기 시작했다. 옅게 배어난 땀은 그와의 피부 사이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굴곡이 여실히 느껴지는 몸 아래에 눌린 채였다. 틈을 파고드는 강희찬의 오른손에 성기가 쥐어 잡혔다.
이미 사정을 마친 성기는 회음을 통해 느껴지는 자극만으로도 선액을 흘려댔다. 직접 성기를 감싸 쥔, 뜨거울 정도로 따뜻한 손바닥이 성기를 녹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손길은 이선의 사정을 돕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절정으로 치달을 것 같은 감각의 끝이 그의 엄지에 의해 틀어막혔다.
“응! 아아, 읏! 놔, 놔주…읏……!”
그러고도 강희찬은 성기를 쓰는 손바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이선의 성기를 위아래로 죽죽 훑었다. 하지만 구멍을 막은 손은 집요할 정도로 떨어지지 않는다. 가해지는 자극에 비해 배출구는 꽁꽁 막혀 있다.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만 같다. 너무도 분명했다. 왈칵 차오르는 성감과 더불어,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이선은 강희찬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연스럽게 성감이 모여 있는 허리가 들썩였다. 강희찬은 그 야한 몸짓을 여실히 내려다보았다.
“하, 으…으응……! 그, 그만……. 아아!”
‘…이런 건 취향이 아니다.’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지 않을 것 같은 몸 따위. 햇빛 아래에서 운동도 안 해봤을 것 같은 매가리 없는 몸이다. 학생야구를 하는 녀석이었다면 운동 좀 열심히 하라며 머리를 쥐어박았을 체형이었다.
가슴은커녕 살도 거의 없는 사내의 몸이다. 그 몸이 이토록 성감을 자극할 줄은 몰랐다.
쾌감이 버거워서 헐떡이는 발간 얼굴도, 제 좆을 쥐어 잡은 손 하나를 떼어내지 못하는 양손도. 당장이라도 갈 것처럼 덜덜 떨리며 제가 싸놓은 좆물을 흘려대는 허리까지도. 뭐 하나 야하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이래서 문제다.
선생이 조금만 더 저 자신을 알고, 그걸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투아웃은 넘어오고도 남았다. 멍청하게 카드를 쥐여 줄 것이 아니라, 옷을 벗었다면. 이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자신이 아닌 투아웃이 되었을 터였다.
입술을 짓씹었다. 혀를 차도 갈 길을 잃은 분함은 딱히 풀리진 않는다. 결국, 강희찬의 못된 심보가 향하는 건 바로 눈앞의 사람이었다.
“다른 새끼랑, 만나?”
“아, 앗, 그…으읏, 놔, 놔줘……. 흣!”
“대답해. 다른 새끼랑, 어? 좆 비비면서 좋다고 쌀 거냐고.”
“아, 아으……. 흑…으읏!”
집요한 엄지 손끝이 이선의 성기를 문질렀다. 번져 오는 저릿한 쾌감이 이선의 온몸을 때린다.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벗어나보려 했지만, 무거운 체중은 쉬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남자의 손끝으로 희롱을 당하는 성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하나 제 몸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이선은 대답도 하지 못한 채 신음을 흘리는 게 전부였다.
강희찬의 말이 오롯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저, 그가 무언가에 화가 났다는 사실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러지 말아달라고. 화내지 말라고. 그런 마음을 담으며, 이선은 눌려 있던 팔을 힘겹게 들었다. 그리고 옅은 땀이 배어 있는 목덜미에 팔을 감고, 강희찬의 머리를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진단서 운운하는 소리를 했을 때도 어느 정도 먹혔던 방법이라는 영악한 생각을 할 여력 따윈 없었다. 이선의 행동은 그저 본능적인 판단에서 온 어리광이나 다름없었다. 어린아이가 화가 잔뜩 난 부모님의 앞에서 자연스레 불쌍한 표정을 짓는 것과도 비슷했다.
“하.”
목덜미에 팔이 감기고, 마치 입술을 먹어달라는 듯 강희찬의 얼굴을 끌어안는다. 하지만 그런 본능적인 어리광은 이번에는 통하지 못했다. 대답을 요구하던 강희찬은 이선의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히려 화를 자극하는 꼴이었다.
하라는 대답은 하지 않고, 여우짓이다.
심술이 번진 그의 입술이 비틀려 올라갔다. 대신, 성기의 사출구를 제대로 틀어막고 쥔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높아지는 신음과 더불어 허리가 몇 번이나 휘기를 반복한다. 영 살집이라고는 없는 가슴팍이 강희찬의 상체에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어느새 꼿꼿이 선 이선의 유두가 그의 몸을 스쳤다.
“아, 으읏……. 아아…….”
요동을 치는 것 같은 몸부림이 강희찬의 아래에서 계속해서 꿈틀거렸다. 어렵지 않게 체중으로 그 움직임을 내리누르던 강희찬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절정을 느낀 거라고. 경련하는 이선의 허벅지와 손 안에서 떨고 있는 성기가 말해주고 있었다.
사정을 막았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선생은 멀쩡히 여자를 만나던 남자도 홀리는 인간이었다. 할 수 있는 온갖 야한 짓은 다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흐… 으응…….”
몇 번의 잔떨림이 멎고 나서야 강희찬은 이선의 몸을 누르던 제 체중을 조금 물렸다.
사정할 수 있게 손을 치워달라고 간절히 빌더니, 결국엔 혼자 간 얼굴이 강희찬의 아래에 드러난다. 눈을 감고 입술은 벌린 채로.
“안 돼, 안 돼…….”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연발하며.
강희찬은 잔인할 정도로 구멍을 틀어막았던 손을 뗐다. 순간적으로 이선의 성기가 쉼 없이 휘어지던 허리처럼 덜덜 떨렸다. 얘도 주인처럼 쾌감은 조금 벅차하는 스타일일지도 모른다.
절정의 여운에 잠겨 있는 얼굴을 보자니, 심술은 조금도 풀리지 못했다. 아까부터 이랬다.
섹스는 아니더라도 유사섹스를 하고 있다. 상대의 이런 얼굴을 보면 분명 즐거워야 할 텐데, 강희찬은 조금도 즐겁지 못했다. 남이 주는 쾌감에 익숙하지 못한 몸을 볼 때마다 비릿한 욕정이 피어올랐다.
이 몸을 누군가는 너무도 익숙하게 만지겠지. 처음엔 이렇게 겁을 먹고 덜덜 떨어대도, 사람이란 게 적응하는 동물이었다. 언젠가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아래에서 몸을 떨며, 능숙하게 쾌감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 생각만 한다면 혀끝이 쓰다 못해 목덜미로 열이 뻗쳐올랐다.
멎지 않는 건 비릿한 심술만은 아니다. 아랫배에 고인 정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읏, 자, 잠깐만요.”
강희찬은 어느새 터질 듯 빳빳하게 선 제 앞을 이선의 구멍에 맞추어 비벼댔다. 구멍과 회음, 그리고 고환과 방금까지 고통스러운 쾌감을 경험했던 기둥까지. 그 어떤 부분도 남기지 않고 게걸스레 핥아먹듯 비벼대자, 이선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어갔다.
“다리 좀, 감아봐요. 허리에.”
대체, 왜……. 말없이 표정으로 묻는 이선을 내려다보며, 강희찬은 그저 짧게 용건을 말했다. 제 허리에 다리를 감으라고.
대답할 가치도 없는 물음은 상대할 생각도 없었다.
대체 왜냐니. 너무 뻔하지 않은가. 선생은 이기적인 애새끼들이랑 하루 종일 지내서인지는 몰라도, 은근히 그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좋다고 마음대로 끝낼 수 있는 걸 원하면, 혼자 좆을 잡았어야 했다. 남자의 집에 졸래졸래 따라서 들어올 것이 아니라.
강희찬은 대답을 대신하기라도 하듯, 피가 잔뜩 몰려 있는 중심을 이선의 하체에 더욱 노골적으로 갖다 댔다.
이선의 고개가 잘게 저어졌다. 안 된다고. 더는 안 되겠다는 말은 차마 달싹이는 입술 사이로 나오지도 못했다. 대신, 몇 번이나 떨리듯 달싹거리던 입술에서 겨우 말이 흘렀다.
“어, 언제까지…….”
“글쎄요.”
다른 때였다면 이런 얼굴을 보고 분명 마음이 약해졌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마음 한구석이 지나치게 가라앉았다. 그것이 언제쯤이면 이 행위의 끝이 날지를 가늠하려는 이선의 말 때문임을 강희찬은 애써 외면했다. 덜덜 떨리면서도 안쓰러울 정도로 다시 힘을 받고 있는 이선의 성기를 제 것으로 비벼 올렸다.
“언제까지 해볼까요? 정 선생 다신 좆물 못 싸게, 여기 다 텅텅 빌 때까지?”
“…으, 흐응…….”
농담인지 아니면 진심인지. 사정하고도 가라앉지 않았던 중심이 위협적으로 하체에 스칠 때마다 이선의 안에선 쾌감과 더불어 본능적인 두려움이 커졌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강희찬이 원할 때까지 이런 짓을 계속했다가는, 정말 남은 평생을 사정하지 못할 정도로 쥐어짜일지도 모르겠다고.
한 자락의 이성이라도 남은 상황이었다면, 그럴 리가 없다고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이미 쾌감에 젖어버린 머리와 몸을 둘러싼 지나친 열감 속에서 이선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벌써부터 앞이 불구가 된 것처럼 서러움이 차올랐다. 그리고 무서움과 서러움은 끅끅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눈물로 번졌다. 제대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하는 이선을 강희찬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왜 울려고.”
“…가, 강희찬 씨…….”
“뭘 그렇게 겁먹어요. 어? 나도 사람 새낀데, 내일 아침쯤엔 지쳐서 나가떨어지겠죠.”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이젠 정말 자신의 앞은 고장이 날 것이다. 체액으로 적셔졌다고는 하나 지속하는 마찰로 인해 성기 부근이 아릿했다.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한 이선에게는 그 홧홧함조차도 제 성기에 가해진 위협처럼 느껴졌다.
죽을 거다. 내일 아침까지 이런 짓을 했다가는, 몸에 있는 모든 물이 빠져나가서 죽을 게 분명했다.
이선은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강희찬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조금이라도 거센 움직임에 제재를 가할 생각이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대신 무언가 더욱 자극을 받은 듯 그의 성기가 격하게 쓸렸다.
“읏……! 응……. 아, 아파요.”
“아파? 어디?”
물소에게 밀리는 기분이었다. 이선을 침대에 파묻을 기세로 움직이던 등이 한순간 멈추었다. 무력하게 누워 있던 이선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강희찬이 제 팔에 체중을 받치고 몸을 떨어뜨리자, 땀과 체액으로 엉망인 피부에 선득한 공기가 스쳤다. 이선의 손은 반사적으로 홧홧한 성기를 향했다.
“여기…….”
창피함을 무릅쓰고 이선이 아래를 내보이자, 강희찬은 혀를 찼다.
“뭘 했다고. 정 선생, 씻기만 해도 빨개져요, 혹시?”
“안 그래요.”
어딘지 모르게 이 사태의 책임을 제게로 돌리는 것 같아서 이선은 괜히 반항심이 일었다. 이렇게 자꾸 마찰하는데, 어떻게 빨개지지 않는단 말인가. 숱하게 제 성기와 닿았던 강희찬의 성기는 빳빳하게 선 것 외에는 딱히 이상이 없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했다.
“그냥…….”
이선의 입술이 머뭇거리며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했다.
길지 않은 순간에도 눈동자가 정처 없이 이리저리 향하는 모습을 강희찬은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자신의 눈은 착실히 피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실까.
일말의 기대도 없는 강희찬의 얼굴 위로 이선의 시선이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닿았다. 몇 번이나 울고 그치기를 반복했는지 눈 주위가 발갛다. 가뜩이나 얼굴에서 덩그러니 큰 눈을 더욱 커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근데, 왜 안… 하세요?”
“뭐가요.”
“그…….”
무언가 많이 생략된 질문의 의도를 제대로 묻자 이선의 입이 다시 조개처럼 다물린다. 반응을 보고서야 강희찬은 대충 의미를 파악했다.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안 하는 행동이라고 해봐야 하나밖에 없었다.
‘섹스’란 말이 그렇게 뱉기 힘든가. 뭐, 어디 가서 당당하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다닐 만한 단어는 아니겠지만. 어차피 지금 다 벗고 서로 못 볼 꼴을 보이는 상태였다.
미묘하게 내외를 하는 이선의 행동에 강희찬 역시 아주 조금은 민망함을 느꼈다. 부끄러움도 전염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구태여 ‘섹스요?’라는 노골적인 되물음은 하지 못했다.
“콘돔 작아요.”
“아…….”
대신한 짧은 말을 이해한 건지, 만 건지. 이선의 입에선 그저 멍한 소리가 흘렀다. 시선은 어느새 강희찬이 착용을 하려다 실패하고 시트 위에 버려둔 콘돔을 향했다.
“신축성이 있는 소재니까…….”
“…….”
“괘, 괜찮지 않을까요?”
끝이 조심히 올라가는 말이 간절히 동의를 구한다. 1초도 지나지 않아, 강희찬의 입에선 ‘하’ 하며, 기가 찬 숨이 새었다.
“싸기도 전에 좆 잘리면, 정 선생이 나 책임져 줄 겁니까? 평생 데리고 살아줄래요?”
절로 삐딱한 말이 흘렀다. 말의 내용이 문제인지 말투가 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선은 더 이상의 대꾸 없이 눈만 끔뻑이며 올려다보기만 했다.
“…….”
…그래도 꼴에 고자는 싫은 모양이다.
어이가 없다. 생긴 건 ‘우린 섹스 같은 거 안 해도 사랑할 수 있어’ 따위의 소리나 지껄이게 생겨서, 섹스는 하고 살 생각이라니. 발랑 까져가지고.
강희찬이 속으로 해대는 기가 찬 생각을 알 리 없는 이선은 우물거리며 입술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쯤이면 강희찬도 대강 예상할 수 있다. 저건 선생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는 전조현상이었다. 되지도 않는 소리나 해봐라. 바로 쏴버릴 준비는 이미 마쳤다.
“그럼… 그냥 하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네?”
“강희찬 씨만 괜찮으시면… 어차피, 임신하는 것도 아니니까…….”
마치 공에 머리를 얻어맞은 양 정신이 멍해진다.
못 하겠어요. 안 할래요. 싫어요. 그것이 강희찬의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선생의 대답이었다. 그딴 소리를 해댄다면, 온갖 추잡한 말을 해서라도 기를 눌러버리겠다는 다짐이었는데…….
“그냥… 얼른 하시고…….”
머뭇거리며 흘러나온 말이 멍했던 강희찬의 사고를 일깨웠다.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를 하는 이유를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얼른 대충 하고 해치워라. 아무리 고운 말로 돌려봤자 그런 의도였다. 언제나 자신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매정했던 선생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놀라움으로 굳었던 얼굴이 풀어지며, 삐딱한 한숨이 잇새를 스친다. 지금 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의미도 될 수 없음을 깨닫는 자각의 순간이었다.
“힘들어 보이셔서…….”
이선의 눈이 제 아래를 향하려다가도 화드득 다시 옆을 본다. 강희찬은 멍하니 그 꼴을 지켜봤다.
“…….”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강희찬이 아니라 아무라도 상관없었다. 선생에게는, 투아웃이 아니라면 어차피 그 누구라도 같은 의미였다.
몇 번이나 거절의 말을 뱉어도, 거부하듯 몸을 둥그렇게 말아도 그 모든 것들이 즐거운 과정이었다. 번거롭지 않았다고 하면 당연히 거짓이겠지만, 그런 수고로운 과정마저도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문장이 되지 못하는 단편적인 말들이 주는 타격감은 제법 강했다. 당장이라도 머리 안부터 녹아내릴 것처럼 뜨거웠던 공기가 선득하리만치 차가워졌다.
대체 왜 자신이 투정을 받아줘야 한단 말인가.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자신과 몸을 맞댔던 일은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다른 이와 살을 섞을 텐데.
처음은 소중하게 지켜주고 싶다고. 좋은 사내 흉내를 내고 있었음을 새삼 깨달았다.
‘…대체 언제부터 좋은 사람이었단 말인가.’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자신은 이미 퍽 다수의 사람에게 ‘개새끼’라는 호칭을 듣고 있었다. 스스로 역시 그걸 부정할 생각은 아직 없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이유는 없다.
정염과 가라앉은 이성이 묘하게 뒤엉킨 눈이 차분히 이선을 내려다보았다. 본인이 뱉은 말이 어떤 뜻인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이선에겐 그저 부끄러운 기색이 전부였다. 오로지 제 입에서 섹스를 요구하는 말이 나왔음을 신경 쓰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함이 박수를 받을 만하다.
좋은 사람이 아니니 좋지 않은 행동을 해야 한다. 어쭙잖게, ‘네 처음은 소중한 거야. 사랑하는 사람이랑 해야 해’라는, 한물간 드라마에서도 나오지 않을 소리 따윈 가당치도 않았다.
강희찬의 입술이 잠시 열렸다 다물렸다. 그리고 숨과 함께 다시 한번 잇새가 열렸다.
“…그래요.”
“…….”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도 같았다. 섹스는 별것이 아니다. 이미 제 입으로 뱉었던 말이 아니던가.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죽고 못 사는 연인과 몸을 섞는 게 아니다. 자신이 그 흉내를 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선생이 훗날 저를 보듬어줄 놈을 만나든, 밑구멍이 빠지도록 제 욕심만 채우는 놈을 만나든. 알 게 뭐란 말인가.
삐딱해지는 마음은 차선 침범 수준이 아니었다. 이미 중앙선을 가로질러 역주행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생좆으로 쑤셔달란 얘기를 들으면, 남자로서 설레기는 한데…….”
그리고 좋은 사람이 아닌 강희찬은 언제나 그랬듯 제 기분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제, 제가 언제 그렇게……!”
“그래도 정 선생, 역시 성교육은 다시 받는 게 좋겠어요.”
“…….”
아연한 얼굴이 파들거리며 색을 잃어가고 입술을 붕어처럼 뻐끔거렸다.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부정하는 말도 내뱉지 못할 만큼 충격에 젖은 얼굴을 바라보며, 강희찬은 말을 이었다.
“콘돔이 딱히 피임 목적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난 고등학교 때 배웠던 것 같은데.”
“…….”
“오늘 이후로… 콘돔 없는 새끼랑은 섹스하지 마세요.”
더욱더 노골적이고 추잡한 소리를 해서 겁이라도 줘야지. 그렇게 먹었던 마음은 어느 순간 자동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한심스럽기 그지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콘돔인지 섹스인지, 그것도 아니면 설마 생좆인지. 대체 어느 소리에 놀란 건지 질린 얼굴이 마음을 독하게 먹지 못하게 했다.
콘돔 없이 섹스했다가는 에이즈 걸린다는 말 대신, 순화에 순화를 거쳐서.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할 수 있을 만큼 전광판 캠페인으로 보내도 될 만큼 정돈했지만, 여전히 아연한 기색은 가실 줄을 몰랐다.
혼자만의 얼음 땡 놀이라면 맞춰줄 생각은 없다.
강희찬은 그대로 무시하고, 제 좆을 뿌리에서부터 한 번 위로 쓸었다. 좆은 머리보다 제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들어가야 할 곳을 아는 것처럼, 이지를 가진 듯 꺼떡거렸다.
강희찬은 멍하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다리를 잡아 벌렸다. 기껏해야 좆끼리 서로 비비는 애무를 할 때와는 확연한 차이였다.
다리는 보통보다 체격이 큰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벌려졌다. 이선은 몸을 쓰는 게 익숙하진 않았다. 갑자기 놀란 근육이 불편한지 인상을 찌푸렸다. 다리를 제 몸쪽으로 당기고 오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내 제가 뱉었던 말을 뒤늦게 깨닫는다. 거부하듯 힘이 들어갔던 다리가 이완되는 순간이 오롯이 강희찬의 허리를 통해 전해졌다.
“다리, 이렇게 들어봐요.”
“윽…….”
무릎을 접고 다리를 좀 더 벌리게 하자, 뒤집힌 개구리 같은 자세가 되었다. 수치스러웠는지 이선의 입에선 불만을 뜻하는 끙끙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강희찬은 이선의 허벅지를 달래듯 슬슬 쓸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살갗을 매만질 때마다 수치심도 조금씩은 옅어지는 듯했다. 이선은 최선을 다해 수치스러운 개구리 자세를 감내했다.
욕심이 사나운 성기가 회음을 스치며 구멍에 닿는다. 미세하게 빠끔거리는 구멍 안으로 당장 고개를 들이밀 것만 같았다.
이선은 마른침을 삼키다 목에 걸려 몇 번을 콜록거렸다. 그런 와중에도 귀두의 끝은 절대 이선의 몸에서 멀어지지 않았다.
“으윽…….”
아까, 봤을 때… 크기가 어땠었지?
그제야 이선은 제가 했던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소리였는지를 깨달았다.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 당장 사정을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이유로, 대체 무슨 소리를 했단 말인가. 저런 것이 몸에 들어올 바에야 차라리 성기가 없어질 때까지 애무를 받는 것이 나을 것이다.
“켁! …쿨럭!”
“왜 갑자기 기침을 이렇게…….”
강희찬의 젖은 손이 뺨에 붙었다. 그 순간 마법에라도 걸린 듯 이선의 기침도 멎었다.
지금 당장 못 하겠다고 해야 하는데. 막상 입은 떨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제 투정을 달래가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 아니, 다를 것이 분명했다. 자신 역시 남자였다. 남자에게 이 순간 ‘못 하겠다’라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잔인한 소리인지. 짐작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이선이 망설이는 동안, 강희찬 역시 제 성기를 내려다보며 망설였다. 빠끔거리는 구멍은 강희찬의 입장에서야 어서 오라는 환영이지만, 아마 이선에게는 본능적인 두려움의 몸짓일 테다.
콘돔의 윤활유를 잔뜩 바르기는 했어도, 젤을 충분히 쓰지 못했다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로션이라도 더 써볼까. 잠깐 그런 생각을 했지만, 역시 몸 밖 피부에다가 쓰는 물건이 안에 들어가서 좋을 일은 없었다.
결국, 강희찬은 먼저 백기를 들었다. 언제나 그랬듯 이선의 앞에 있는 그는 자신이 약자임을 또 한 번 인정해야 했다.
“조금만 넣을게요. 아프면 바로 뺄 테니까……. 응?”
“…으응.”
이선은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선은 저를 향해 다가오는 입술의 주인을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언제였더라.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강희찬과 닮은 봄볕과 초여름의 더위가 묘하게 섞여가는 시기였다. 이젠 얇게나마 외투를 입지 않으면 어색한 계절이 되어서도 이선은 그가 낯설었다.
주변에 사람 하나 두기 싫은 것처럼 모진 말만 하면서도, 때로는 누구보다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귀를 틀어막고 싶을 만큼 상스러운 소리를 하더니, 또 이렇게 능숙하게 달래준다. 그의 변덕엔 도무지 맞춰주기가 힘들었다.
차라리 못된 말만 했다면 이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와 모르는 사람이 되었을 터였다. 항상 자상했다면, 언제나 사랑을 원하는 자신은 짝사랑의 상대를 바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늘은 그저 정이선에게 현실의, 제대로 큰 어른들의 연애를 깨닫게 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으응…….”
강희찬은 근사한 사람이다. 아버지 나이 또래의, 입술에서 담배 냄새가 나는 사람이 아니다. 처음이 강희찬이라면, 그건 정말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이선은 지금껏 몇 번이나 되뇌었던 주문을 다시 한번 외웠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당장이라도 몸을 쪼갤 것처럼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그의 성기도 아주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진다. 물론 다정히 입술을 침범해 들어온 습한 혀도 위로에 상당 부분 기여했다.
구멍에 맞추어진 성기의 끄트머리가 힘을 실은 채 이선의 안을 파고들었다.
“읏! 흐으……. 으음…….”
소리가 되지 못한 신음이 입 안을 맴돌았다.
입술에서 번져가는 성감에 정신을 빼고 있던 이선도 본능적인 아픔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이게 시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아픔과 두려움. 그것을 잊게 하려는 듯 강희찬의 혀끝이 이선의 소리와 섞이며 달랬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고개를 비틀어보았다. 팔을 들어 강희찬의 등을 두드려보다가, 어깨를 잡고 밀어보려고도 했다. 그 모든 움직임은 이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단단한 몸은 이선이 원하는 결말을 모두 무력화시켰다.
이선에게 젖은 혀끝은 몸을 가르고 들어온 그의 성기와 꼭 닮았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려는 의도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위아래로 동시에 타인의 온기가 이선을 헤집으려 들이닥친다. 무력하기만 한 이선의 안으로 두꺼운 귀두 부분이 천천히, 그리고 빠듯하게 밀고 들어왔다. 틈 없이 입술을 모두 삼킨 숨이 혀끝을 통해 목구멍을 벌렸다.
“응…흐윽!”
몸이 쪼개질 거다.
마치 사람의 주먹이 들어오는 것만 같은 감각 속에서 이선은 확신했다. 몸이 엉망으로 망가져서 죽고 말 거라고. 몸을 가르고 들어오는 타인의 성기 모양을 그리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탓에 울지도 못한다.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 싶은 이선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제 몸을 저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듯 여전히 호흡은 가쁘기만 하다. 성기는 반의반도 들어가지 못한 채였다. 타인의 생살을 뚫고 들어간 탐욕스러운 귀두는 압박감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강희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이선의 입 안을 괴롭히던 제 입술을 물렸다.
빠는 힘도, 움직임이 서툰 혀도. 무엇 하나 강희찬을 만족시키진 못했다. 그를 만족시키는 건 떨리는 몸이 내뿜는 체향과 온기였다.
입술을 맞대어도 갈증은 가시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직 모자라고 아쉬운 입술을 뗀 이유는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숨을 쉬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선은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한 채 어깨만 들썩거렸다.
“잠깐만… 쉬이. 숨 쉬어요.”
“…하…으윽…….”
달아오른 얼굴보다 색이 짙어진 입술이 의미 없이 뻐금거렸다. 어깨도 과할 정도로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은 물 밖에서 숨을 쉴 줄 모르는 물고기같이 절박해 보였다.
강희찬은 이상하게 들썩이는 어깨의 원인을 바로 알아챘다. 운동신경과 거리가 멀어 보이고, 실제로도 그랬다. 숨이 모자라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려 입을 벌리지만, 오히려 더욱 숨을 쉬지 못하고 있다. 이선은 제 몸을 다루는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강희찬은 오른손을 들고 이선의 얼굴을 감쌌다. 손을 크게 벌리지 않아도 엄지는 자연스럽게 벌어진 입술에 닿는다. 역시 숨을 들이마시지 못하고 끅끅대는 신음에 젖은 호흡만을 계속해서 뱉고 있었다.
이러니 숨이 모자라지. 강희찬은 벌어져 있는 입술을 엄지로 갈무리해 주었다.
“아니. 입 벌리지 말고. 코로 숨 쉬어요.”
“…읏, 하지…….”
이선은 입술을 누르는 손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강희찬의 손은 너무도 쉽게 이선의 입술을 다물게 한다. 숨통을 틀어막으며 숨을 쉬라는 말을 하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화법이었다.
자신을 괴롭히려고, 숨을 쉬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밖에 생각할 길이 없다. 하지만 강희찬의 얼굴은 아무리 봐도 남을 괴롭히는 것이 아닌, 걱정의 기색뿐이다. 이선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응? 천천히 해봐요.”
처음엔 입을 다물라는 강희찬의 말에 이선이 거부의 몸짓을 보였다. 지금도 숨이 막히는데, 입까지 다물면 어떻게 하냐는 듯 강희찬의 엄지손가락을 피하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미 얼굴이 강희찬의 손바닥에 감싸인 채였다.
몇 번의 반항이 통하지 않자 이선은 결국 따뜻한 엄지가 이끄는 대로 입술을 다물었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코를 사용하여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잘했어요. 한 번만 더.”
더운 숨과 섞여 뱉어지는 말에 이끌려 이선은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마치 처음 코를 사용하여 숨을 쉬는 것을 배운 것만 같았다.
폐에 숨이 제대로 돌자 이선은 조심히 눈을 떴다. 안정적인 숨소리는 얼마 이어지지 못했다. 규칙적으로 달싹거리던 이선의 가슴팍을 내려다보던 강희찬의 허리가 크게 한 번 움직였다.
귀두도 채 들어가지 못했다. 이선에게는 명치까지 파고든 것만 같았고, 강희찬에게는 넣은 것도 뺀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다. 더 깊은 곳을 원하는 좆이 아우성을 쳐댔지만, 강희찬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리고 벌어진 입술이 안정적으로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이어지던 자제심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성기가 빠듯한 안쪽을 파고들었다. 성기를 받아볼 일이 없는 내벽이 잔뜩 긴장한 채로 침입자를 거부한다. 하지만 피가 잔뜩 몰려 단단해진 성기는 젖은 내벽으로 제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하나의 고통이 가신 자리엔, 아래에서 밀려오는 고통이 채워진다.
숨을 못 쉬는 것과 아래가 쪼개지는 것. 하나의 역경을 넘었는데도, 그 후에 밀려오는 것이 고통이라는 점이 이선은 못내 억울해졌다.
“흐……. 아, 아파… 아파요, 강희찬 씨…….”
“괜찮아요. 다 들어갔어요, 지금.”
“거짓말…….”
맹하게 홀라당 넘어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아래의 감각은 예민할지도 모른다.
강희찬은 이선의 불신 가득한 눈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러는 한편, 애써 숨을 쉬게 도와줬더니 눈을 흘기기나 하는 모습이 퍽 얄미웠다.
당장이라도 ‘약속했으니까, 이제 빼주세요’라는 말이 나올 것 같은 입술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다시 한번 숨도 못 쉬고 끅끅거리기만 할까 그것도 여의치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게 이선은 설탕공예처럼 너무도 까다로운 존재였다.
강희찬은 결국 회유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던 성기의 끝은 본능적으로 더 안쪽을 탐하려고 했다. 들썩거리는 허리를 최대한 누르며 강희찬은 이선의 얼굴 옆 시트에 제 머리를 묻었다.
“진짜. 진짜 조금만…….”
최대한 숨을 골랐다. 잠시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허리는 멋대로 온기를 찾아 들어갈 거다. 말을 하던 강희찬의 목소리가 자꾸만 끊어졌다.
이선은 남자가 제대로 말을 완성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가만히 봤다. 강희찬의 귓가에 머문 땀을 알아챘다.
…힘들어하고 있다. 이 사람도, 자신만큼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스친 순간, 정말 믿기지 않게도 죽을 것 같은 아픔도 반절은 덜어진 것만 같았다. 이선은 무게에 깔린 손을 겨우 들고 강희찬의 반대쪽 얼굴을 더듬었다. 이마에서부터 옅게 흐르는 땀방울이 손끝에 스쳤다. 이선은 가만히 그 물기를 손으로 훔쳐냈다.
“…….”
강희찬의 얼굴이 들어 올려졌다. 마주한 눈이 무섭도록 짙다. 당장이라도 저를 집어삼킬 짐승을 목전에 둔 기분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무섭지만은 않았다.
이선은 시선을 피하지 못한 채 아까 훔쳐내지 못한 그의 왼쪽 얼굴을 쓸었다. 신기했다. 아픔을 공유한다는 동질감 때문이었을까? 타인이 흘리는 땀방울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처음이었다.
‘…견딜 수 있다.’
나 혼자만 아프고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면, 못 견딜 건 없다고. 이선에게 새로운 주문이 추가되었다.
잠시 멍했던 강희찬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정신을 차려보면 미풍보다도 조심스러운 손길이 제 얼굴에 머물고 있었다.
강희찬은 고개를 비틀어 간지러운 손길을 피했다. 그러자 주눅 든 하얀 손이 갈 곳을 잃고 쭈뼛거리며 주먹을 쥐었다. 강희찬은 그제야 제 행동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저, 익숙하지 않은 손길일 뿐이다.
누군가 다정히 만져주는 건 아주 어릴 때가 아니라면 썩 인연은 없었다. 키가 빨리 컸던 만큼 귀여워하는 어른들의 손길도 너무 빨리 어색해졌다. 야구부에 들어가고 나서는 더욱 심해졌고. 땀이 나면 스스로 씻고 닦아야 하며, 누군가가 챙겨주길 기다리면 먹을 간식이 사라졌다. 끝마디가 찬 다감한 손길을 거절한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딱히 싫어서가 아니라고.
그런 말을 능숙히 할 재간은 없다. 그리하여 강희찬은 입을 다물었다. 대신, 머뭇대며 뒤로 물러나려는 이선의 손을 잡고 제 목에 두르게 만들었다. 제 손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마른 팔은 한 박자 늦게 힘이 들어왔다.
다행히 마음은 전해졌다. 강희찬은 나직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
맞닿아 있는 서로의 몸을 강희찬의 더운 손이 파고들었다. 난잡스러운 손길이 이선의 아랫배를 탐했다. 거친 손이 아래로 향하는 동안, 남자의 허리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진짜 다 들어갔어요. 잠깐만, …잠깐만 참아줘요.”
“으응……. 흣……!”
어떻게 이렇게 체온이 높을 수 있을까. 이선은 남자의 체온이 두려웠다.
아기들은 체온이 높다고 하던데. 남자는 자신보다 어렸다. 그래서인가…….
꼬리를 무는 이선의 상념은 뜨거운 손에 중심이 잡히자 딱 끊겼다.
“앗! …으, 거기……!”
흥분한 자신의 성기보다도 남자의 손이 더 뜨거운 것 같았다. 손 안에서 녹을 것만 같다. 이선은 다시 한번 제 성기가 망가질 것 같은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앗! 아아! 그, 그만 들어……. 윽.”
“아냐. 아니에요……. 윽……. 다 됐어, 다… 조금만……. 응?”
“흑……. 읏! 거기……! 앞에 만지지, 으응…….”
성기의 모양을 덧그리는 듯한 손길의 의도는 분명하다. 조금이라도 이선이 느낄 아픔을 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 진짜……. 몸, 씨발…….”
주인을 닮은 좆이라고. 이선은 질색하는 말이었지만, 강희찬에게는 진심이었다.
처음 쥐어본 남의 좆은 마치 있을 곳이 그의 손이라도 되는 양 손바닥에 착 감겼다. 언제나 만져지는 것보다 강한 악력에 쥐어진 좆은 금세 울음을 토하기 시작한다. 끝없이 밀고 들어오는 기둥에 의해 뒤가 열리고 있다. 두려움 속에서도, 우습게도 본능적인 성감은 자극에 충실히 질질 흘리고 있었다.
성기와 마찬가지로, 달아오른 눈가도 눈물이 옅게 맺혔다. 오롯이 저를 향하는 눈을 마주하자, 강희찬의 아래가 더욱 빠듯했다.
힘겹게 눈을 뜨고 자신을 바라봐주는 모습을 본 순간. 그는 ‘사랑스럽다’라는 흔한 수식어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아닐 테지만, 사랑스러웠다.
후에 다른 남자의 품에서 허리를 흔든다 해도,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누구의 품인들,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사랑을 주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인데…….
“가, 강희찬 씨……. 으응…….”
오물거리는 입술을 집어삼키며 틀어막았다. 강희찬은 허리를 더욱 깊숙이 움직였다. 가장 두꺼운 부분은 이미 녹진한 구멍을 통과한 후였다. 처음 입구를 파고들 때보다는 조금은 수월히 내벽을 범해갔다.
안쓰러운 눈만을 본다면……. 이대로 제 좆을 물리고 아프지 않게 보듬어주고 싶다. 하지만 강희찬은 어울리지도 않는 제 자비심을 애써 외면했다. 저만을 향하는, 조금 처진 눈은 주인처럼 사내의 음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었으니.
그리고 모르는 척 본능의 편에 섰다. 이미 한계치만큼 커진 기둥이 쥐어짤 듯 좁은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으응! 흐으…….”
이제 정말 다 들어온 거다. 이선의 체감은 그랬다. 머리 안쪽까지. 그의 성기로 온몸이 관통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강희찬은 아직 부족하다는 듯 재차 허리를 움직이며 틈 없이 붙은 몸을 더더욱 붙여왔다.
이선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무게만으로 이선의 반항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드물게도 이선이 이겼다. 벅차도록 뜨거운 그의 숨이 이선에게 아주 조금의 틈을 주었다.
“아……. 흐으…….”
강희찬이 방심한 사이 입술이 떨어지며 입가로 타액이 흘렀다. 제 것인지, 아니면 제 입으로 흘러들어 온 강희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선은 또 한 번 입술이 숨을 가로챌까 봐 잔뜩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으……. 흐윽… 너무……. 아, 안 돼…….”
모자란 숨을 채우는 것도, 침이 흐르는 입가를 갈무리하는 것도 아니다. 이선의 본능은 그에게 제 상황을 알리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강희찬은 잠깐의 틈을 주었을 뿐이다. 그는 곧바로 이선의 입술을 주린 듯 찾았다. 이선이 고개를 트는 방향으로 남자의 입술이 갈급히 따라왔다.
“뭐야, 고개. 다시 봐요. 빨리, 나 봐.”
“읏……. 너무, 깊어요. 제발…….”
“안 깊어. 어? 다 들어갔어……. 어? 빨리 입술.”
“거짓말… 거짓말……. 흐으…….”
이선의 불만 어린 투정이 되풀이되는 와중에도, 강희찬은 굶주린 양 이선의 입술을 찾았다.
“뭐가 거짓말이야. 이딴 거짓말을, 왜 한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어봐도 그의 몸 아래였다. 이선은 금세 그에게 입술이 붙잡혔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이선의 아랫입술을 물은 채 강희찬이 중얼거렸다. 웅웅거리는 불분명한 발음은 이선의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아래가 빠듯하게 열려 아픈 와중에 아랫입술까지 물린 서러움이 밀려들었다.
멋대로 입술을 빨고 있는 남자의 아래에서, 이선은 끙끙대기만 했다. 그가 이선을 바투 끌어안았다. 더 붙을 공간이 없었을 텐데도 틈을 좁히려는 손짓은 탐욕스럽기까지 했다.
성기가 이러면 안 될 것 같은 수준까지 이선의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어딘가 잘못 닿은 양 순간적인 쾌감이 온몸을 뒤덮었다. 신음은 한 박자가 늦었다.
“…으응! 읏……. 으윽…….”
어디까지 들어오는 걸까.
이러다 그의 성기와 혀가 몸 어딘가에서 만날 것만 같다.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상상이 현실이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이선을 눌렀다. 이선은 몸을 뒤틀며 최대한 강희찬의 것을 몸에서 빼내려고 바르작거렸다. 개의치 않고 게걸스레 입 안을 훑던 혀끝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왜, 또.”
강희찬의 입술이 멀어졌다. 상체를 조금 일으킨 그가 이선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목소리엔 미약하게나마 성가신 기색이 어렸다.
이선은 순간적으로 기가 죽었다. 아파. 빼줘요. 그만할래요. 입술만 자유로워진다면 내뱉고자 했던 여러 말은 목 아래로 꿀꺽 넘어가고야 만다.
“깊어… 윽……. 깊어요…….”
하지만 완전히 불만을 삼킬 순 없었다. 마지막 남은 용기로 이선은 제 뜻을 전했다.
“하아…….”
한숨이 이선의 얼굴에 끼쳤다. 그러더니 강희찬은 꼭 맞춰져 있던 제 몸을 아쉽게 일으켰다.
무게가 덜어짐과 동시에 이선의 가슴팍엔 서늘한 공기가 닿는다. 몸을 파고드는 성기는 무서울 정도의 쾌감을 주지만, 온기가 멀어지는 건 섭섭했다.
“어디까지 들어간 것 같은데?”
“…여기. 여기 있어요.”
강희찬의 물음에 재빨리 제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끈질기게도 유두를 괴롭히던 강희찬의 머리칼이 스치던 부근. 그곳으로 강희찬의 시선이 따라왔다.
남자의 입가엔 보기 드물게도 호선이 그려졌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이 완성된 건 그다음이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요.”
“지, 진짠데…….”
이선은 믿어주지 않는 강희찬의 얼굴을 간절히 올려다봤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기가 막힐 정도로 떼를 쓰고 있었다.
참 기묘했지만, 이선은 그에게서 느끼던 위화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달았다.
저보다 세 살이 어린 이 남자를 종종 아버지 같다 여기는 순간들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는 그리 생각했지만, 지금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자신을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 어떻게 들어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
나직한 목소리가 상념에서 그를 꺼냈다. 그리고 가만히 이선을 타일렀다.
‘무섭지 않아. 선이야, 멈머 무섭지 않아. 아빠가 안아주고 있잖아. 멈머가 선이랑 인사하고 싶대.’
그 옛날. 동네를 돌아다니는 개가 무서워서 엉엉 울던 자신의 울음소리와 뒤섞이는 다정한 목소리.
그것과 꼭 닮은 목소리를 내는 남자는 가만히 이선의 손을 가슴팍에서 떼어냈다.
조심스럽게 이선의 손을 아래로 내리더니, 배꼽이 있는 곳에 두었다. 이선의 손바닥이 젖어 있는 배와 맞닿았다. 강희찬은 그대로 제 손을 이선의 손등 위로 덮어 눌렀다.
“거기 말고, 여기. 이쯤에 있겠네.”
“으으……. 흐, 으……. 싫어.”
“여기 있는 거 알겠어요? 움직이는 거.”
다정한 아버지 같은 목소리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다. 다 커버린 이선의 눈앞엔 느릿하지만 확실하게 허리를 움직이는 남자뿐이다. 눈물이 핑 돌만큼 잔인한 현실이었다.
그가 앞뒤로 허리를 쳐댈 때마다 이선의 손바닥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바닥 아래의 배 속에서 움직이는 그의 성기였다.
“…으윽…….”
거부감이 확 일었다. 자신의 피부 아래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으, 놔, 놔줘요.”
붙잡힌 왼손을 빼내려고 이선은 힘을 잔뜩 주었다. 최선을 다해 힘을 쓰고 있음에도, 손은 너무도 무력하게 강희찬에게 붙잡혔다. 잔인한 손아귀는 아랫배를 불룩하게 만들며 지나다니는 그의 성기까지 오롯이 느끼게 했다.
“싫어. 징그러…….”
중얼거리는 이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강희찬의 허릿짓이 조금씩 더 빨라졌다.
속도가 높아짐에 따라 안을 파고드는 깊이도 더욱 깊어졌다. 안쪽 어딘가가 잘못 눌리면서, 이선의 싫다는 소리엔 신음이 섞였다. 그러다 점점 말은 사라지고, 공간에는 이선의 달뜬 목소리가 채워질 뿐이다.
“힘을… 빼야지, 어?”
“아…아앗! 으응, 읏……. 읏… 아, 안에……. 응……!”
“좆 잘라 먹으려고, 어? 꽉꽉 물어대잖아.”
더 이상 깊이 들어올 수 없다. 수없이 되뇌는 말이 이번에는 진짜였다.
그가 허리를 붙일 때마다 엉덩이에 닿는 단단한 고환의 존재를 느꼈다. 살갗에 닿는 까슬한 음모도, 성기만큼이나 단단한 고환도. 전부 눈으로 봤던 그 끔찍한 크기가 제 몸으로 다 들어왔다는 잔인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앗! 으, 응! 흐윽……. 읏!”
성기를 깊이 박아넣은 두꺼운 허리는 잘고 빠르게 탁탁 움직였다. 몸이 떨어지지 않은 채로 움직이자 얕은 진동이 이선의 몸으로 전해졌다. 그의 잔움직임은 성기를 통해 몸 안으로 들어오고, 큰 파동으로 변했다. 꼼짝없이 흔들리는 몸은 신음을 흘리기 바빴다.
“가질래요?”
“응… 읏! 시, 싫……. 아읏!”
“왜? 잘라서, 읏……. 평생 넣고 다녀야지.”
“아으……. 하지 마세… 읏, 그런 말……. 아앗!”
“평생, 여기에 내 좆 넣고 사는 거야. 어? 그럼 잘라줘도, 하나도 안 아까운데.”
도저히 의미를 알고 싶지 않은 말들이었다.
강희찬이 허릿짓에 집중한 틈을 타, 이선은 젖먹던 힘을 다해 제 손을 빼냈다. 그리고 자유로웠던 오른손까지 동시에 사용하여 양 귀를 틀어막았다.
…왜 저런 말을 하는 거야. 심한 말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도 했는데…….
서러운 눈물이 질끈 감은 눈 사이로 비어져 나왔다. 강희찬은 정신없이 움직이던 허릿짓을 느른히 바꾸었다. 음험한 시선이 하얀 몸을 빠짐없이 핥았다. 시선으로 발라먹힌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선은 몸소 체험했다. 닿지도 않은 그의 혀가 피부 하나하나를 다 핥는 것만 같아서 소름이 돋았다.
“버릇 고쳐요. 우는 거.”
“…윽……. 무슨…….”
“좆 달린 새끼랑 섹스하면서 우는 거, 그렇게 좋은 버릇 아니니까.”
경고 같은 낮은 목소리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움직임은 다시 거세진다. 척척거리는,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이선의 정신을 빼놓았다.
“아! …하, 으…아아!”
이젠 아프다는 얘기를 할 수 없다.
빠듯하게 열렸던 구멍은 그의 성기가 들고나기 쉽도록 충분히 젖었다. 성기의 움직임에 맞추어 깊이 들어왔을 때는 멀어지지 못하게 조여 물었으며, 귀두만 남기고 빠져나갈 때도 붙잡듯이 내벽을 조였다.
고통과 섞인 쾌감이 차라리 나았음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오롯한 쾌감은 역치가 낮은 이선에게는 고통보다도 더욱 잔인했다.
“좆도 울고, 응? 아래위로 바쁘게 질질 짜고 있어.”
“흣, 읏……. 아, 그만…….”
귀를 틀어막던 양팔이 붙잡혔다. 어렵지 않게 한쪽 손으로 이선의 양 손목을 그러쥔 강희찬은 그대로 팔을 머리 위로 올렸다.
“아……!”
굴욕적인 자세였다. 고작해야 팔이 올려졌다고 이선은 새삼스레 벗은 몸이 몹시도 수치스러워졌다.
단단한 복근에 성기가 문질러짐과 동시에, 안쪽의 지점이 무자비하게 짓이겨졌다. 혼자 손으로 성기를 쥐며 느껴봤던 쾌감을 훨씬 뛰어넘는 감각이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감각은 진작 벗어나 있었다. 버거운 쾌감은 오히려 독이며 고통이나 마찬가지다. 이선의 모든 것을 틀어쥔 남자는 쾌감마저도 통제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뒤가 들쑤셔지는, 오롯이 타인의 손아귀 아래에 있는 무력함. 그런 피지배의 감각이 이선을 지배했다.
“아, 아으……. 흐, 으앗! 아…….”
강희찬은 몸을 잔뜩 붙여왔다. 편편한 이선의 피부 아래로 지나다니는 제 성기를 느끼기 위해.
“아, 흐읏……. 윽……. 잠깐만요. 으, 지금……!”
배려가 가신 온전한 체중으로 눌렸다. 이선은 숨 하나도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 그 순간 절정을 맞았다. 성기에 직접 가해지는 마찰 때문인지, 안을 자극하는 귀두 때문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쾌락의 여운에 허덕이는 것도 사치였다.
강희찬은 뻣뻣하게 몸이 굳으며 절정감을 느끼는 이선의 얼굴을 보면서도 허리를 물려주지 않았다. 더욱 절정을 느끼도록 강요할 뿐이다. 잔인할 정도로 빨라진 허릿짓이 이선을 몰아붙였다.
모자란다고. 안쓰럽게 지친 성기가 뱉어내는 정액으로는 가당치도 않다고. 정액보다 더한 것을 뱉어내야 만족하겠다는 듯, 탐욕스러운 추삽질이 안을 짓이겼다.
“아! 아아! 아, 안에… 좋아……. 아니, 싫……! 으읏!”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가는지 인지할 수 없다. 창피하다고.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도 없었다. 끝도 없이 겹쳐지는 절정 속에서는, 제가 내지르는 교성과도 같은 신음을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사정감과는 다른 감각이 아래로 몰린다. 이대로는 안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선은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벗어나려 버둥댔다. 하지만 애초부터 체격이 달랐다. 긴 세월 쌓인 근육이 뒤덮인 몸이나 단단한 팔다리까진 갈 것도 없다. 손가락 하나까지도 자신의 것과는 달랐다. 그런 사내의 무게 아래에서 이선은 너무도 무력했다.
“응……. 흐…읏, 으응!”
결국, 버둥거리던 팔다리엔 경련하듯 잔떨림만이 남았다. 질끈 감은 눈 아래의 어둠에서, 이선은 절정 이상의 절정을 느꼈다.
“아……! 아아……. 하으…….”
노골적인 정념을 피하고자 감았던 눈은 쉬이 다시 떠지지 못했다. 버겁게 밭은 숨을 겨우 내는 이선의 위로, 아직도 젖어 있는 묵직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자려고?”
“…흐으…….”
겨우 흘러나온 신음이 대답을 대신했다.
이젠 안 된다고. 정말 눈꺼풀 하나,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고. 내포된 뜻을 그가 알아차린 건지, 이선으로선 알 길이 없었다. 다만…….
“해봐. 기절해도 계속할 거니까.”
이선을 더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는 소리를 으르렁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