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2 01화 (13/18)

외전 01

윤서경은 요새 조금 쓸쓸했다. 유온이 새로 생긴 취미 생활로 너무 바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유온의 손을 거쳐 간 취미 생활은 수도 없이 많았고, 어느 것에나 유온은 재능을 보이며 몰입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유독 더했다.

문제는 유온의 이번 취미가 뭔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뭘 만드는지 물어도 우물거릴 뿐 대답을 해 주지 않는다. 윤서경이 출근을 하고 나면, 현관에서 배웅하고 난 후에는 곧바로 작업실로 들어가 버린다는 듯했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뜻 모를 소외감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창 일하던 도중, 윤서경은 서류철을 책상으로 던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대표님?”

“……이한영 씨.”

대표가 제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부를 때 별로 좋은 일이 없다는 걸 학습한 지 오래인 이한영이 움찔했다.

“다른 일에만 관심이 있어 보이는데, 내 기분 탓인가?”

“…….”

앞뒤를 잘라먹은 대표의 말은 당연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순간 대표가 싫어하는 ‘네?’라는 되물음을 던질 뻔했으나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이 상황에서라면 주어는 당연히 이한영 본인이어야겠지만, 그는 맹세코 윤서경에게 책잡힐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또 대표가 궁금해하는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대체로 윤서경이 뜬금없는 소리를 떠드는 건 이유온에 대해서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이 바쁜 와중에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대표에게 사소한 짜증이 치밀었다. 해서 이렇게 대답을 해 주고 말았다.

“글쎄요, 사랑이 식은 거 아닐까요?”

“…….”

물론 말하고 곧바로 후회했다. 진심으로 눈에 살기가 담기는 윤서경 때문에.

불쌍한 비서를 괜히 노려본 윤서경은, 이내 자신의 태도가 적절치 못했음을 깨닫고 헛기침 두어 번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계속하죠.”

윤서경에겐 제법 심각한 문제였던 잡담이 언제 지나갔냐는 듯, 그와 비서들 사이에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한참 동안 오고 갔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윤서경의 뇌리 한 구석에는 한 마디가 남은 채였다.

‘글쎄요, 사랑이 식은 거 아닐까요?’

아닐까요…… 아닐까요…… 아닐까요…….

메아리치는 이한영의 말을 윤서경은 애써 지웠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오늘 아침만 해도 입맞춤을 몇 번이나 하고 나왔는데. 비록 슥 돌아봤을 때, 현관문이 다 닫히기도 전에 이미 유온은 바삐 작업실 쪽으로 가고 있긴 했지만.

어쨌든 그건 아니다.

복잡한 일이 대략 정리된 뒤 윤서경은 휴대폰을 들었다. 단축키를 누르자 곧바로 익숙한 통화 연결음이 들려왔다. 이상한 건, 평소엔 두 번 정도 신호음이 가면 바로 받는데 늦어진다는 것이었다. 미간에 얕은 주름을 잡으며 기다리기를 1분쯤, 드디어 유온이 전화를 받았다.

―아, 여, 여보세요. 서경 씨? 늦게 받아서 죄송해요.

보아하니 살짝 숨이 거친 게 휴대폰을 멀리 팽개쳐 두고 다른 것에 몰두하다 뛰어온 느낌이었다.

“아닙니다. 뭐 하고 있었어요?”

―그냥……. 뭐 좀 만드느라…….

“요새 열심히 하네요.”

그러자 유온은 헤헤, 하고 작게 웃었다. 그 순간 윤서경은 자신의 옹졸한 의심이 몹시 부끄럽게 느껴졌다. 뭘 하건 유온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하지. 그렇다고 집에 윤서경이 있는데 내던지고 작업실에 처박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설령 그렇다 해도 유온이 그렇게 하고 싶다면 상관없다. 구경이라도 하게 해 주면 좋고, 아니면 작업실에 있을 유온의 작은 움직임을 느끼며 거실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그래서 윤서경은 대신 이런 말을 꺼냈다.

“바쁘지 않으면 같이 저녁 먹을까요?”

오랜만에 밖에서 데이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하지만…….

―……아…….

……아?

―그, 그게, 지금 한창 잘되고 있어서…….

“그래요? 알겠어요. 음, 저녁은 다음에 하죠. 열심히 해요, 유온 씨.”

―미안해요.

“미안하긴요. 내가 갑자기 말한 건데요.”

윤서경은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기 위해 노력하며 전화를 끊었다. 유온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거라면, 정말 상관없었다.

그냥 약간 쓸쓸할 뿐.

그러나 그런 식의 퇴짜가 무려 두 번이나 이어졌다. 웬만해선 거절을 하지 않는 이유온이. 자신이 그렇듯, 언제나 윤서경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 이유온이!

사랑이 식었다는 이한영의 말이 망령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윤서경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직접 백화점에 들러서 선물과, 호텔에선 팔지 않는 유명 파티세리의 케이크를 샀다. 혼자 찔려서 사는 뇌물이었다.

“다녀오셨어요.”

다행히도 이유온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지 않고 나와서 윤서경을 반겨 주었다.

“다녀오셨어요, 서경 씨.”

“네. 하루 동안 잘 있었습니까?”

“네…….”

평소보다 조금 열렬한 입맞춤을 받으며 유온은 좀 부끄러워했지만, 빼진 않았다. 한참 키스한 뒤 윤서경은 크고 작은 두 개의 쇼핑백을 내밀었다.

“선물입니다.”

“……고마워요.”

유온은 선물을 받을 때면 늘 그랬듯 수줍게 웃으며 쇼핑백을 받았다. 이젠 갑작스러운 선물을 받아도 당황하지 않는다. 윤서경이 심혈을 기울여 고른 가느다란 백금 뱅글 팔찌는 유온의 새하얀 손목에 잘 어울렸다. 다이아몬드가 박힌 양쪽 끝을 이리저리 돌려 본 유온이 감탄했다.

“너무 예뻐요. 저한테…… 어울려요?”

“맞춘 것 같네요.”

그 말에 웃음을 지은 유온이 다시 제 팔을 내려다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팔찌는 정말 맞춤처럼 유온에게 크기도 모양도 딱 맞았다. 유온의 손목이 워낙 가늘어 팔찌를 고를 땐 신중해지는데 오늘은 아주 옳은 선택이었다.

빈 상자를 정리해 두고 거실 테이블로 가서 케이크 상자를 열었다. 호텔의 스타일과 다르지만, 과일과 초콜릿이 올망졸망 올라간 귀여운 케이크였다. 유온의 눈이 반짝거렸다. 일부러 퇴근길을 빙 돌아, 누굴 시키지도 않고 직접 사 온 보람이 있었다.

케이크를 먹고 있는 입술에 키스하자 그는 조금 부끄러워하면서 윤서경의 목에 팔을 감았고, 달콤한 분위기는 그대로 녹을 듯한 섹스로 이어졌다.

다음 날, 윤서경은 비서의 말 따위 멀리 날려 버린 채 기분이 잔뜩 좋아져선 출근했다. 이한영을 비롯한 비서들은 그 이유를 짐작했다. 하지만 정말로 알고 싶지 않았기에 필사적으로 못 본 척했다.

그대로 며칠 시간이 흘렀다. 윤서경은 이한영의 말에 잊고 있던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대표님, 이번에 들어온 선물 중에 중요한 목록만 추려서 올렸습니다. 이번에도 회장님 댁으로 가지고 갈까요?”

“아, 그렇게 해.”

내일이 자신의 생일이었다.

바쁘게 살다 보면 잊을 법도 했지만, 부경호텔 대표의 생일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넘어가는 행사는 아니었기에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그럴 수 없었다. 곳곳에서 선물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들어오는데 어떻게 모르겠는가.

선물은 매해 그랬듯 이한영이 정리하고 괜찮은 물건은 서 회장, 부모님 댁으로 보낸 후 목록만 추려 윤서경에게 알려 주곤 했다.

예년과 크게 달라질 것 없는 풍경이지만 윤서경의 결혼 후 딱 하나 달라진 게 있다.

“다들 별일 없으면 일찍 들어가지.”

“네, 일정 조절해 뒀습니다. 바로 들어가셔도 됩니다, 대표님.”

윤서경이 생일 전날엔 제법 이르게 퇴근하게 된 것이다. 선물을 처리하는 것 말고는 통상적으로 업무를 보고, 야근이 필요하면 야근도 하고. 여느 날과 똑같은 하루였으나 그 한 가지가 달라졌다. 이유야 당연히, 유온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생일은 되도록 유온과 단둘이 보내고 싶었다.

아직 정체가 시작되지 않은 서울의 도로를 가로질러 한적한 주택가로 들어선 윤서경은 시계를 확인했다. 4시.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긴 했다. 일찍 들어온다 해도 집에 도착하면 5시는 되어야 했었으니.

차고에 차를 세우고 현관에 들어섰는데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유온 씨?”

의아하게 주위를 둘러보던 윤서경은 작업실 문이 빠끔 열려 있는 걸 보곤 그리로 다가갔다. 하지만 문을 열어 확인하니 아무도 없다.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걸 보면 오늘의 작업은 끝난 모양이다.

잠깐 외출이라도 했나…….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가자 침실 쪽에서 작게 물소리가 들렸다.

설핏 웃음을 지은 윤서경은 안방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꺼내 욕실 탈의실 앞에 기대고 섰다. 얼마 후 물소리가 멈추고, 타월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가운을 입은 유온이 나오다가 윤서경을 보고는 펄쩍 뛰어올랐다.

“까, 깜짝이야, 왜, 왜 여기 계세요?”

“일찍 퇴근했습니다. 자요, 물.”

샤워를 마치면 꼭 물을 찾는 유온의 습관을 따른 것이었다. 얼떨떨하면서도 병을 받은 유온이 꼴깍꼴깍 물을 삼키고는 가운 위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짜 놀랐어요.”

“그렇게 놀랄 줄 몰랐네.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토끼처럼 놀란 모습이 귀여워서 윤서경이 뺨에 쪽 입을 맞추자, 유온은 온수의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을 더욱 붉히며 웃었다.

“잠깐 있어요. 금방 씻고 나갈 테니까.”

유온이 끄덕이고는 침실로 향했다. 머리를 말리는 소리를 들으며 윤서경도 몸을 씻고 나가자, 유온은 제 머리를 다 말리고도 침대에 드라이어를 든 채 앉아 있었다.

“유온 씨?”

“머, 머리 말려 드릴게요.”

윤서경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 앞에 가서 앉았다.

“그럼 부탁할까요.”

무릎으로 선 유온이 드라이어를 켜고는 윤서경의 머리를 꼼꼼하게 말리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로 머리카락이 감겼다가 빠져나오길 반복하면서 점점 물기가 날아갔다. 윤서경은 눈을 내리깔곤, 머리가 빠르게 말라 가는 걸 아쉽다고 생각했다.

달칵. 머리가 완전히 마르자, 유온이 드라이어를 끈 뒤 후다닥 정리하고 돌아와선 윤서경의 옆에 탈싹 앉았다. 팔이 붙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이제는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저녁은 6시쯤에 차려 달라고 했어요.”

“잘했네요.”

“이렇게 빨리 돌아오실 줄은 몰라서…….”

작업실에서 한창 일을 하다가, 윤서경이 돌아오기 전에 씻을 생각으로 욕실에 들어갔던 모양이다.

“당신이 빨리 보고 싶어서요. 생일이지 않습니까?”

“새, 생일 축하해요. 하루 빠르지만.”

유온의 얼굴이 빨개졌다. 장난기가 생긴 윤서경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말로만 축하해 줄 거예요?”

응? 거의 입술이 닿을 만큼 얼굴을 가까이 붙인 윤서경은, 덕분에 거의 입술만 달싹이는 수준으로 유온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저기……, 서경 씨, 혹시, 저……, 하, 하고, 싶은 거…….”

“음?”

“……저한테 하고 싶은 거…… 있어요?”

“…….”

……음.

이 사람이 지금 누굴 잡으려고.

“그런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닙니다.”

말랑말랑한 뺨을 살짝 꼬집자 유온이 고개를 저었다.

“하, 함부로 한 거 아니에요. 서경 씨…… 항상 조금씩 참잖아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같이.”

좋아져요. 뒤의 말은 거의 유온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수준으로 작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서경 씨 마음대로 해도 괜찮아요…….”

사실, 이런 말을 듣고 참을 수 있는 알파라면 수도승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윤서경은 곧바로 유온의 입술에 입 맞추며 그대로 같이 침대에 누웠다. 푹신한 침대가 두 사람의 몸무게를 지탱하느라 출렁거렸다.

누운 채 다리를 유온의 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벌리자 유온은 순순히 그에 따랐다. 말캉한 입술을 한참 맛보다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원래 부드러웠던 피부는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진주처럼 희고 매끄러워져서, 혀끝이 미끄러질 때마다 짜릿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바라는 것, 있어요.”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이자 유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이렇게 용감하게 구는지. 윤서경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전부 솔직하게 말해 줘요.”

“솔직하게……?”

“여길 만지면 느낌이 어떤지.”

“아!”

매끈한 가슴을 움켜쥐듯 잡으며 말하자 유온의 몸이 팔딱 튀어 올랐다.

“가슴만 만지면…… 얼마나 젖는지.”

윤서경은 아예 두 손으로 유온의 가슴을 감싸 잡고 부드럽게 매만졌다. 예민한 돌기를 살살 튕기며 말하자 유온이 바르르 떨었다. 가슴은 물론이고 키스만으로도 아래를 조금 적시는 유온이었다. 가슴을 한참 동안 애무하면, 아찔할 정도의 향이 퍼지며 음부가 젖어 들 것이다. 그걸 하나하나 세세하게 말해 달라는 요구였다.

“어려워요?”

“그, 그게…….”

“그러니까 마음대로 하라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되지, 유온아.”

“아, 응……!”

“말해 봐요.”

유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윤서경은 두 손에 힘을 주어 유온의 옆구리에서 가슴을 꾹 문지르며, 입술 사이에 유두를 물었다. 어서 말하라는 재촉이었다.

“젖, 젖었, 어요…….”

“얼마나?”

“조금…….”

유온의 목소리에는 부끄러움에서 나온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아직 넣으면 안 될 정도로?”

“……서, 경 씨가 만져 보면, 되잖…….”

“말해 주기로 했잖아요.”

유온이 고개를 잘게 저었다. 싫다는 건지, 아직 아니라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윤서경은 멋대로 후자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기왕 주겠다고 말한 생일 선물이다. 안 받으면 아깝지 않은가.

그대로 커다란 손이 한참 더 유온의 가슴을 만졌다. 희고 뽀얀 피부에 온통 새빨갛게 손자국과 입술 자국이 남았다. 가슴을 만지면 만지는 대로 응, 응, 작은 신음을 내뱉던 유온은 어느 순간 성감이 짙어졌는지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아으으……, 으, 응…….”

이렇게 가슴만 집요하게 만져 대는 일은 드물었다. 유온이 다리를 모아 꾸물거렸다. 가느다란 허벅지를 꼬다시피 모아서 움직이자 질척질척, 젖은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렸다. 유온의 얼굴이 더욱 빨개진다.

“이, 이제……, 이제 괜찮…….”

유온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윤서경은 세워서 모은 유온의 두 무릎을 한 팔로 안아 쥐어 옆으로 눕히고 그 아래를 만졌다. 괜찮다는 말 그대로 질척질척하게 젖어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하면 가슴으로만 가겠는데요.”

“아, 아니, 아니에요!”

유온은 부풀어 오른 가슴을 가리듯 두 손을 그 위에 올렸다. 가슴으로만 절정에 이르는 게 어지간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안 해 본 것도 아니면서.

“가, 가슴은 그만…….”

“그럼?”

“…….”

윤서경의 손이 젖은 밀부를 살짝 두드렸다.

“거기…… 만져 주세요.”

“만지기만?”

“…….”

울컥한 듯 유온의 눈길이 사나워졌다. 하지만 금세 누그러져선 거의 울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너, 넣…….”

“응?”

“……손가락……, 아!”

이쯤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더 시켰다간 유온이 울지도 몰랐다. 이미 물기에 흐물흐물 녹아 버린 밀부에 손가락을 밀어 넣자, 쫀쫀한 내벽이 손가락 마디마디를 휘감았다. 가슴을 만진 것만으로 이미 아래는 손가락을 세 개는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잔뜩 젖어 있었다. 정말 조금만 더 했다면 그대로 절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윤서경은 자극이 지나치지 않도록 느리게, 공들여 아래를 풀었다. 깊게 들어오지 않는 손길에 유온이 의아한 듯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눈매가 붉게 물든 눈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모자랍니까?”

“…….”

무언의 긍정이었다. 윤서경은 손가락을 유온의 안에서 빼내고, 잔뜩 성이 난 채 뜨거워진 제 성기 머리를 밀부 주름 위에 문질렀다. 유온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대로 말랑한 입구에 성기를 밀어 넣자 유온의 몸이 퍼뜩 떨렸다. 배가 한층 홀쭉해지며 새하얀 온몸이 바들바들 경련하는가 싶더니, 앞쪽에서 울컥거리며 정액이 쏟아져 나온다. 갑자기 찾아온 절정에 유온은 할딱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분 좋아요?”

머리가 하얗게 된 와중에도 약속을 잊진 않았는지 유온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어떻게?”

“……배가…….”

유온의 말을 들으며 윤서경은 자신보다 작은 몸을 꽉 쥐고 성기를 조금 물렸다가 다시 퍽 쳐올렸다. 비명 같은 신음이 유온에게서 쏟아졌다.

“앗, 배, 배가, 꽉……, 차서…….”

“하…….”

“좋, 아요…….”

윤서경의 이성을 끊어 버리기에는 충분한 말이었다. 알파는 눈을 번뜩이며 짐승처럼 자신의 짝에게 달려들었다. 유온 역시 다소 거친, 조급한 그의 몸짓이 싫지 않았다. 한참을 뒤엉켜 함께 신음하던 두 사람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윤서경의 성기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려 했다.

“하으…….”

평소대로 노팅을 받아들이려 하던 유온이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무슨 일인지 윤서경은 노팅하기 직전에 몸을 뒤로 물렸다. 덕분에 성기는 정액이 들어가야 할 기관 입구를 막지 않고 좁은 내벽에 감싸였다.

“서경 씨……? 아, 으응……!”

위치가 조금 바뀌었어도 노팅은 똑같이 이루어졌다. 평소보다 낮은 위치에서 성기가 둥글게 부푸는 느낌이 유온에겐 생소했다. 배가 좀 더 아픈 것 같기도 했으나, 오메가의 노팅 페로몬은 똑같이 흘러나와 곧 그마저 격렬한 쾌감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얼마 후 윤서경이 사정을 시작했다. 그 느낌에 유온은 몸서리쳤다. 원래는 기관 안으로, 몸 깊숙이 흘러 들어가야 할 대량의 정액이 전부 내벽에 쏟아지고 있었다. 노팅에 분출되는 정액은 정말로 대량이었고, 대부분 기관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러고도 남은 정액이 거기서 흘러넘쳐 내벽을 답답할 정도로 채우는데 지금은 그 정액이 온전히 안쪽만을 채웠다.

몇 리터나 되는 물이 배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정액만으로 유온의 배가 임신한 것처럼 둥글게 부풀었다. 성기에 눌릴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빠듯한 배 속 때문에 숨이 막혔다. 생경한 느낌에 유온은 부들부들 떨었다.

“하아, 아……, 이, 이상해요……. 배가…….”

“배가, 왜요?”

윤서경은 모르는 척 유온의 배를 살짝 눌렀다. 유온이 비명을 질렀다. 부피가 조금 줄어든 성기와 결합부의 틈새로 정액이 거품을 질걱거리며 넘쳐흘렀다.

성기가 완전히 제 모양을 찾고 나자 윤서경은 유온의 안에서 빠져나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배를 채우고 있던 정액이 물처럼 쏟아졌다. 평소보다 과하게 쏟아져 나오는 정액에 유온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얼굴을 붉혔다.

“이상해, 진짜, 흐윽…….”

……스스로도 조금 도착적이었다는 건 인정한다. 정액을 가득 머금고 부른 배가 보고 싶었다니. 용서라도 구하듯 유온의 뺨에 입 맞추자, 그는 잠시 원망스럽게 윤서경을 흘겨보았을 뿐 곧 두 팔을 목에 감아 주었다.

“많이 싫었어요?”

“…….”

“다신 하지 말까요.”

“……그.”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유온이 아주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웃음을 지은 윤서경은 그에게 짙게 입을 맞추며, 아직도 정액이 찰랑거릴 정도로 남아 있는 유온의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 * *

윤서경은 유온이 품을 빠져나가는 기척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물이라도 가지러 가나, 했으나 유온은 가운을 챙겨 입고는 아예 안방에서 나가 버렸다.

잠이 훌쩍 깨는 듯했다. 물이라면 침실 냉장고에 채워 뒀을 텐데. 그러나 일어나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윤서경은 유온이 왜 그렇게 몰래 빠져나간 건지 알게 되었다. 아래층 주방에서 달그락달그락, 부산스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유온이 뭘 하려 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미소를 지은 윤서경은 다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유온이 깨우러 올 때까지. 문을 살짝 열어 두어 아래에서 들리는 소리와 희미한 냄새가 방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아래에서 올라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머리가 넘실거리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한참 후, 유온이 살그머니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앉았다. 윤서경은 곧바로 두 팔을 뻗어 유온을 끌어당겨 품에 집어넣었다. 유온에게서는 흐릿하게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게 뭐라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워서 머리카락과 이마, 뺨에 입술이 닿는 대로 키스했다.

“서, 서경 씨. 간지러워요.”

작게 웃음을 터뜨린 유온이 웅얼거렸다.

“아침부터 어디 갔다 왔어요?”

“음……. 씻고 내려오세요.”

그렇게 말한 유온은 이번엔 자기 쪽에서 윤서경의 뺨에 입을 맞추곤 몸을 일으켰다.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주방으로 내려간 윤서경은 생각보다 더 본격적인 식탁에 조금 놀랐다. 미역국에 잡채, 불고기, 더덕구이에 나물까지.

“이걸 다 혼자 했어요?”

“저녁에 준비해 놨어요.”

그러니까 혼자 했다는 뜻이었다. 뭐든 잘하는 건 알았지만 요리도 이렇게까지 잘할 줄이야. 이쯤 되면 유온이 못하는 건 뭔지가 더 궁금해졌다.

“그리고…….”

식탁에 마주 앉자 유온은 자기 쪽 식탁 구석에 숨겨 두었던 무언가를 꺼냈다. 조그마한 쇼핑백에 담겨 있는 상자였다.

“생일 축하해요, 서경 씨.”

“선물까지 준비하지 않아도 괜찮았는데요.”

“그래도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윤서경의 입꼬리는 슬슬 올라가고 있었다.

“열어 봐도 됩니까?”

유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자를 열자 나온 건 꽤나 뜻밖의 물건이었다. 튤립이 작게 새겨지고, 가운데에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자잘한 보석이 박힌 심플한 키 링. 은으로 만든 듯했는데 지금까지 어느 브랜드에서도 본 적 없는 디자인이었다.

“금속 공예는 처음 해 보는 거라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직접 만들었다고요? 이걸?”

그러니까…… 저 작업실에 틀어박혀서 매일 만들고 있었던 게 이거란 뜻인가?

사랑이 식긴.

윤서경은 괜히 의기양양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키 링을 자랑할 생각에 벌써 마음이 조급해졌다.

“반지는 두 개나 하고 다니면 불편할 것 같고, 생각해 보니까 자동차 키 링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만들었는데…… 마음에 드세요?”

“당연하죠, 누가 만든 건데요.”

그러자 유온은 배시시 웃었다. 예전 같았으면 키 링이 진짜 파는 물건처럼 번쩍거리지 않는다고―물론 이유온이 만든 키 링은 특별하게 주문 제작한 물건처럼 고급스럽고 예뻤지만―주눅이 들어 있었을 텐데, 이젠 그저 윤서경이 받아 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듯했다. 윤서경으로서는 정말 달가운 변화였다.

더해서 유온이 작업실에 앉아 금속 공예용 납땜기며 칼 같은 걸 들고 꼬물꼬물 이걸 만드는 장면까지 자동으로 떠올라 더욱 즐거웠다. 그렇게 부지런히 작업실에 틀어박힌 게 자신의 생일 선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니.

“정말 고마워요, 유온 씨. 소중하게 가지고 다니겠습니다.”

차를 바꿔 탈 때마다 키 링도 바꿔 달면서 가지고 다닐 작정이었다. 그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유온이 웃음을 터뜨렸다.

“식겠어요. 얼른 드세요.”

“잘 먹을게요.”

유온이 만든 생일상은 당연하지만 맛있었다. 입맛 까다로운 윤서경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레스토랑의 음식보다 훨씬 더.

“서경 씨.”

“네.”

“생일 정말 축하해요.”

“고맙습니다.”

유온이 몸을 길게 빼더니 식탁 너머로 윤서경의 뺨에 짧게 키스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랐다. 식사를 마치고 출근하기 위해 현관에 섰을 때, 유온이 배웅을 나왔다. 윤서경은 유온을 끌어안고 머리카락에 한참 입술을 대고 있다가 키스했다.

“출근하기 싫은데요.”

“그래도 회사는 가야죠…….”

“하하.”

윤서경은 다시 한번 유온에게 입 맞췄고, 유온도 되돌려 주듯 발돋움해서 윤서경에게 키스했다. 만약 행복을 눈에 보이는 가치로 환산한다면…… 헤아릴 수 없는 숫자가 나올 것이다.

언제나, 이유온이 함께한다면 최고의 생일이 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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