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퍼라도] 45. 홀론의 그림자
데스퍼라도(Desperado)
홀론의 그림자
활활 타오르던 태양이 지면서 서편 노을을 그려내었다. 이내
마지막 붉은 머리마저 서녘 대지에서 모습을 감추니 온통
하늘에 스며들었던 황혼의 연출도 이젠 서서히 내려앉는
땅거미에 밀려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붉은 협곡들은 낮의
열기를 아직도 품었는지 따스한 기운을 아직도 솟아냈고
바로 그 품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자가 있었다.
리크는 마치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아이의 맑은 표정으로
벌써 2 시간 정도 잠에 취해있었다. 잠시 후 이리저리 뒤척
거린 리크는 잠이 깬 듯한데 아직도 두 눈은 감고 있었다.
'악몽이었어..정말 끔찍한..'
리크는 계속해서 눈을 감고 있었으며 아직 누운 체 미동
조차 안하고 있었다.
'지금 난 분명 돌아온 거야..기나긴 악몽으로부터 내 고향에..
눈을 뜨면 이곳은 아폴립스의 나무가 사방으로 뻗어있는
가드린 마을이 틀림없어...아..어머니..카란..헤네스..아버지..
제..제발..'
잠시 후 눈을 뜬 리크는 그토록 절실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고향이 아닌 붉은 토양의 낮선 영역임을 또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허탈한 표정, 다소 두려움 마저 얼굴에
일고 있었으니 아직 리크의 악몽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자신의 손목과 녹슨 철검을 이어주는 하시아의
피묻은 옷 끈을 바라보다 이내 냉혹한 현실로 돌아와 버렸다.
"하시아.."
시골 촌구석 출신 리크는 하시아의 순박하다 못해 순수한
심성 해맑은 미소가 다시 그의 가슴속 깊이 파고드니 이내
눈물을 떨쿠며 하시아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하시아..."
리크는 철검을 땅에 꽂은 체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고 피묻
은 끈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제법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리크는 일어나서 뭐라 중얼거렸다.
"패샷보이..스캇..플랜시아..그들은 살아있지..그래 여기서 더
이상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더 이상 그들을 잃을 수
는 없단 말이야. 일단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좋겠어.."
리크는 철검을 자신의 등뒤에 차고는 이미 어두워진 붉은
대지로 터벅터벅 나아가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다 리크는
순간적으로 몸을 피해 저편 불쑥 튀어나온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리크는 이곳으로부터 제법 떨어진 곳에서 사람
들의 인기척을 느꼈고 이내 극도의 긴장감마저 리크를
감쌌다. 이미 피 맛을 알아버린 녹슨 철검에는 말라비틀
어진 피 자국이 있었고 리크는 다시 한번 그 검을 등 뒤
로부터 서서히 빼어 들었다.
한편 이쪽으로 다가오는 자들은 서부시대 카우보이 차림새
의 미연방 살상 챔피언인 홀론의 그림자와 그의 추종자들
이었다. 그들 역시 리크 못지 않게 저마다 극도로 긴장된
표정들을 하고있었으니..
"지금부터 조심해야 돼 서 북쪽 35지점 거리는 168M 바위
가 튀어나온 지점에 우리가 찾는 놈이 있으니까. 열 감지
센서에 의하면 놈은 철과 주석으로 구성된 검을 지니고
있는데 여타 과학적 중무기는 없는걸 보아서 저놈이 분명
지난번 제 7조 [단테피오테스]회원들을 몰살시킨 놈이
틀림없을 거야."
일명 홀론의 그림자란 아이디를 갖고 있는 중년의 콧수염
남자가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우보이 역시 뭐라 말문
을 열었다.
"이..이대로 직접 그놈에게 가려하십니까?"
"이대로 간다..자 태연한 표정들을 지으라고..마치 멋모르고
지나가는 일행처럼...그리고 일단 놈이 바위틈에서 튀어나오면
동시에 총구를 향해 발사한다..이미 녀석은 우리 손아귀에
들어 왔다고....놈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그가 튀어 오르는
동작보다는 우리의 총구에서 발하는 빔 레이져가 더 빠를
테니 너희들은 정확히 조준하고 발사만 하면 된단 말이야..
다시 한번 말하는데 절대 실수 없도록..."
15명의 카우보이들은 긴 망토를 바람에 펄럭이고 리크가
숨어있는 바위 쪽으로 향하였다. 마치 황야의 무법자를
연상케 하듯 이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숨막히는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홀론의 그림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살상 서바이벌에 관해서는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베테랑들이었지만 지난번 7조 대원들이 믿기 지
않을 정도로 빠른 시간에 학살당하는 것을 홀로그램 영상
으로 자세히 보아서 그런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때 보다도 긴장을 하고 있었다.
한편 바위틈에 낀 리크 역시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낮선 자들이 자신이 이 바위에 숨어있는 것을 알고
이쪽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즉 리크는
저들의 점점 거칠어지는 호흡을 느낄 수 있었고 이는
분명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15명이라...저들이 다가올수록 발걸음 소리조차 자연스럽
지가 못하니...분명 내가 이곳에 있음을 눈치 챘음에
틀림없어..'
리크는 자신의 철검을 서서히 들어올렸고 이어서 하시아
의 끈을 자신의 코에 갖다대었다.
'저들이 사용하는 마법 석궁에 표적만 되지 않는다면..
승산이..'
한편 그들은 어느새 리크가 숨어있던 바위틈까지 왔고
콧수염의 사내는 그들끼리 통하는 손짓을 사용해 동시에
모두 공격할 것을 지시했다. 비록 그들이 차고 있는 권총
은 그 옛날 서부시대의 고고학 유물을 연상케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그 내부 성능은 바로 현대 중무기인 빔
건들렛이었다. 만약 그들이 바위를 향해 발사한다면 저
커다란 돌덩이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안에 있던
리크 역시 소멸 당할 판이었다.
콧수염의 사내는 옆 부하가 들고 있던 열 감지센서를 보고
는 아직도 바위틈에 사람이 있음 확인했고 이내 손짓을 통
하여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콧수염은 열감지 센서
를 다시 확인 보았다. 그 순간 콧수염 사내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만 뭐라 외쳤다.
"잠..잠깐!!"
"파..팟..팟...쾅..."
홀론의 그림자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이미 빔은 바위를 향해
발사되었고 커다란 굉음소리를 냈다.
"이..이럴 수가 발사하기 직전에 열감지센서에 잡힌 놈의 흔적
이 갑자기 사라져버리다니.."
바위는 이미 가루가 되어 자욱한 먼지만이 휘날렸고 이들은
확인하기 위해 재빨리 그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던 그 어떤 흔적도 없었고 하얀 돌가루와 돌멩이
들 만이 뒹굴고 있었으니 콧수염의 사내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는 이내 열감지센서를 다시 들여다
보기 시작했고 그 순간 외쳤다.
"뭐야..우리 뒤에서 열 감지 신호가 잡히다니...그렇다면.."
"슛..쉭..쉭.."
"악...헉...아..악.."
눈 깜짝 할 사이에 15명 대부분이 '픽' '픽' 쓰러졌다. 콧수염
의 사내 역시 빔 건들렛을 들고있던 손목에서 차가운 기운을
느꼈고 이내 그와 동시에 그 앞으로 자신의 손목이 잘려진
체 땅바닥으로 뒹구는 것을 보았다.
지난번 협곡에 단 한번 사용한 이후 지금 그 두 번째 시전을
한 분광소뢰체의 환영보법은 보기 좋게 성공을 하였다. 일종의
순간이동술로서 무림에서조차 몇 안 되는 상승고수만이 시전
할 수 있는 보법이였고 바로 그것이 절대절명에 처한 리크의
목숨을 살려 주었던 것이다. 어쨌든 리크는 그들이 빔 건들렛
을 발사하기 직전에 이들 뒤로 순간이동하였고 그 순간 혈파천
(血派天)의 제 5초식 쾌혈검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리크가 어떨결에 사용한 혈룡충천과 어기혈천도 역시 혈파천
의 제 1초식과 2초식으로서 지난번 리크의 목숨을 살려주었고
지금은 쾌혈검법이 이들의 몸을 또다시 잔인하게 갈라놓았으니
과연 이와 같은 패도적인 무공에 리크 마저 몸서리를 떨었다.
"젠..젠장..그냥 사람을 베는 게 아니라 아예 두 쪽 아니면
세 쪽을 내버리니..도대체 마공(魔功)에 속한 무공들은 다
이렇게 잔인한가.."
대지에는 어느새 따뜻한 피를 꾸역꾸역 솟아내는 토막 난
시체들로 성시를 이루고 있지만 그중 아직도 의식을 간직한
체 리크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홀론의
그림자였다. 두 손목이 잘려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콧수염
의 사내는 고통이고 뭐고 앞에 녹슨 철검을 쥐고있는 젊은
청년을 그저 넋 놓은 체 바라보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