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39화 (139/157)
  • 139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3)

    “어이, 베이커 중사. 잠깐 괜찮나?”

    “예, 무슨 일이십니까?”

    1944년 9월 7일.

    플로에르멜 인근에 배치된 미 67 기갑연대 소속 M26 퍼싱 전차장, 베이커 중사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해치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출격 명령이네. 저쪽 미부와 인근 부대에서 지원 요청이 들어와서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러나 베이커에게 말을 건 이는 미군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녹색 베레모를 눌러 쓴 영국군 보병 장교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미군인 베이커 중사가 영국군 장교의 지휘를 받게 되었는가.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그가 소속된 미 67 기갑연대는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영 1군에 배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 영 1군이라고는 해도 병력의 거의 절반 이상이 미군 병사들이지만 말이지.’

    그렇다고는 해도, 보통은 같은 국적끼리 사단을 형성하기에 베이커 중사처럼 미군이면서 영국군과 함께 싸우게 된 케이스는 제법 드문 편이었다.

    사실 그 또한 M26 퍼싱 중전차의 전차장이 아니었다면 영국군 보병 연대와 함께 싸울 일은 없었으리라.

    그러나 베이커 중사는 영국군과 함께 싸우는 것에 대해서 제법 만족하는 편이었다.

    아직도 많이 미숙한 미군 병사들에 비해서 영국군 보병들은 지원 사격도 잘 해주는 데다가 가끔 홍차도 얻어 마실 수 있었으니까.

    “···해서, 이곳에 있는 유일한 다리가 적 중전차에 의해 막힌 상황이라고 하는군. 게다가 이 근방은 저수지와 도랑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몰래 접근하기도 어렵네.”

    “후··· 설마 또 타이거입니까? 아무리 퍼싱중전차라도 타이거를 일방적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하하, 그래도 자네는 이제껏 타이거를 두 대나 잡은 에이스가 아닌가. 지금 대대 전체가 자네의 활약만을 기다리고 있네.”

    그런 영국군 장교의 말에, 베이커 중사는 머릿속으로 설명을 곱씹으며 전장의 상황을 그려보았다.

    작전 지도를 보아하니, 적 중전차는 아마 다리 건너편에서 은, 엄폐한 채 접근하는 아군 전차를 요격하고 있는 것일 터.

    그에 반해 다리 이쪽은 변변한 엄폐물 하나 없는 탁 트인 개활지인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몰래 접근하는 것도, 다리를 우회하는 것도 어렵겠군. 먼저 적의 위치를 정찰한 뒤에 아슬아슬한 유효 거리까지 접근해서 장거리 저격을 노려보는 편이 낫겠어.’

    그럼 만에 하나 초탄 사격이 빗나가더라도 상황에 따라 물러나거나 포격전을 이어나갈 수 있으리라.

    “···알겠습니다. 뭐, 이대로 가도를 따라가서 다리에 있는 적 중전차만 제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 그리고 그다음에는 시가지까지 화력 지원이나 좀 해줬으면 좋겠군.”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하, 믿고 있겠네.”

    그 말을 끝으로, 영국군 장교는 퍼싱에서 뛰어내려 지프 차로 옮겨타고는 어디론가 가 버렸다.

    베이커 중사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이크에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들었지? 자, 가자! 소대 전진!”

    “전진!”

    그리고 잠시 뒤, 퍼싱 소대를 이끌고 한참을 달려서 미부와에 도착한 베이커 중사는 전차를 멈추고 고개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영국 군복을 입은 헌병들이 가도에 서서 양손을 흔들고 있었다.

    “정지! 소속과 관등성명을 밝혀라!”

    “미 67기갑연대 소속 기갑소대장 바트 베이커 중사입니다. 햄프셔 연대 1대대로부터 전차 지원 요청을 받고 도착했습니다!”

    “좋아, 그놈들은 저쪽에 있을 거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쭉 가도록.”

    작전 지도에 따르면, 이 도로의 끝에 아까 장교가 말한 다리가 있을 터.

    그리고 그런 그의 예상대로, 다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영국군 병사들의 고함 소리와 총성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 멀리서 이미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찾던 타이거 중전차는 어디에도 보이질 않았다.

    “···타이거 전차는 도대체 어디에 있지?”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중사님, 혹시 저희가 도착하기 전에 물러난 것 아니겠습니까?”

    M26 퍼싱 전차를 숨기고 타이거의 위치를 찾길 20여 분째.

    그러나 적이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질 않자, 소대원들이 하나둘씩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외부 무전을 통해서 영국군 중대장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봐, 전차들! 도대체 언제까지 놀고 있을 생각인가! 그럴 거면 와서 화력 지원이라도 해달라고!”

    “···알겠다.”

    무전을 받은 베이커 중사는 한숨을 내쉬며 판단을 내렸다.

    보병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타이거는 진즉에 다른 곳으로 간 것이라고.

    “아무래도 이 동네에 타이거는 없는 모양이군. 어이, 헨슨! 앞장서서 다리를 돌파해라.”

    “예스, 써!”

    소대 2호 차량의 전차장, 조 헨슨 하사는 힘차게 대답하며 다리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나 헨슨 하사가 다리를 반쯤 건너는 바로 그 순간, 번쩍거리는 섬광과 함께 그의 퍼싱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렸다.

    “헨슨! 대답해라, 헨슨!”

    그러나 차내 무전기는 반복적으로 치직거릴 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충격으로 인해 무전기가 고장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기절하거나 전원 사망한 것일지도 모른다.

    베이커 중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불길한 생각들을 밀어내면서, 다리 너머에서 섬광이 빛났던 곳을 노려보았다.

    ‘제기랄, 설마 무너진 헛간을 이용해서 숨어있었을 줄이야. 잔해더미로 덮어놓는 바람에 깜빡 속았군.’

    하지만 적의 위치를 파악한 이상, 이제 걱정할 것은 없다.

    게다가 저 경사 장갑의 형상으로 보아하니, 적 전차는 티거가 아니라 판터인 모양.

    그렇다면 적이 재장전에 들어간 지금, 우리의 퍼싱으로 응사한다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판단한 베이커 중사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사격 명령을 내렸다.

    “목표, 11시 방향의 판터 전차. 거리도 700밖에 안되니 먼저 쏘는 놈이 이긴다! 대충 조준하고 갈겨!”

    “발사!”

    포수의 외침과 함께, M26 퍼싱의 90mm 주포가 불을 내뿜었다.

    이제 저 판터는 정면 장갑에 바람구멍이 뚫린 채 캠프파이어처럼 불타오르리라.

    “격파 완···.”

    카앙!

    그러나 그런 베이커의 기대와는 다르게, 믿었던 퍼싱의 90mm 철갑탄은 경사 장갑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포탄을 튕겨낸 적의 중전차는 그 위용을 자랑하듯이 헛간에서 나와서 다리를 막아섰다.

    마치 판터와 같은 두꺼운 정면 경사 장갑.

    그러나 판터보다 훨씬 더 거대한 광폭궤도와 포탑, 그리고 길쭉한 대구경 주포까지.

    그 전차는 베이커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독일군 전차와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방금 전, 저 녀석이 퍼싱의 포탄을 튕겨내는 모습을 본 베이커는 알 수 있었다.

    저 전차는 티거나 판터보다도 훨씬 더 강한 녀석이라는 것을.

    그랬기에 베이커는 차탄 장전을 명령하는 대신, 무전기를 붙잡고 외쳤다.

    “공군!”

    *****

    “팔콘, 팔콘. 응답하라, 팔콘.”

    “여기는 팔콘 1. 무슨 일인가?”

    “미부와 쪽에서 지원 요청이다. 또 호랑이 때문에 쩔쩔매는 모양이더군.”

    “···알겠다. 우리가 가지.”

    미 육군 항공대 소속 P-47 썬더볼트 파일럿, 로버트 중위는 지원 요청이라는 무전에 한숨을 내쉬며 기수를 돌렸다.

    그런 그의 뒤를 따라 썬더볼트 두 대가 기수를 돌리며 그에게 무전을 날렸다.

    “팔콘 2에서 팔콘 1에게. 무슨 일인가?”

    “여기는 팔콘 1. 또 다른 주문이 들어왔다. 남은 총알은 거기에 다 쏟아붓고 가자고.”

    “멍청한 땅개 놈들 같으니라고. 뭐 하나 직접 처리하는 일이 없구만.”

    “하하하.”

    로버트는 동료의 불평 소리를 웃어넘겼지만, 솔직히 내심 동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그가 속한 육군 항공대는 대공부터 정찰, 공중지원, 그리고 대포병 공격까지 말 그대로 오만 잡일을 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아군의 전술 능력이 독일군에 비해 열세인 탓에 공군력을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이번에도 고작 타이거 한 대 때문에 우리를 부른 거고 말이지.’

    하지만 명령을 받은 이상 어쩔 수 없다.

    빨리 날아가서 대충 폭탄 몇 개 떨어트려 주고는 복귀하는 수밖에.

    로버트 중위가 그렇게 투덜거리며 미부와를 향해 항속 주행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저 멀리서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뭐지?”

    “여기는 팔콘 2. 7시 방향, 항공기 접근 중. 아군기는 아닌 것 같다.”

    “확인. ···어?”

    타다다다당!

    고개를 돌려본 로버트 중위가 아직 안전거리라고 생각하며 대처하려는 순간, 순식간에 접근한 적기는 기관포탄을 쏟아내며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런 젠장! 고도를 올려! 속도를 올려서 떨쳐내는 거다!”

    “편대장님, 이미 고고도입니다!”

    “···뭐?”

    그 말에 로버트는 깜짝 놀라서 계기판을 다시 바라보았다.

    계기판의 바늘이 가리키는 현재 고도는 무려 3만7천 피트.

    이 높이라면 하늘의 캐딜락이라 불리는 아군의 P-51 머스탱조차도 썬더볼트를 쫓아올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설마 독일군의 전투기가 이 고도에서 썬더볼트를 추격해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기껏해야 에탄올 부스터 같은 잔재주를 써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올린 것뿐일 터. 하지만 고공의 제왕은 누가 뭐라고 해도 P-47 썬더볼트 뿐이다!’

    그렇게 판단한 로버트 중위는 재빨리 무전으로 추격 명령을 하달했다.

    “팔콘 2, 속도를 높여서 놈의 뒤를 잡아라. 팔콘 3는 팔콘 2를 지원하도록!”

    “카피 댓.”

    그러나 로버트의 예상과는 다르게, 적기의 속력은 좀처럼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에 생각을 고쳐먹은 로버트는 살짝 물러나서 고도를 높이며 아직도 엄청난 속력을 자랑하는 적기를 계속 주시했다.

    저놈이 아무리 빨라도 아군기들과 계속 추격전을 벌이다 보면 한 번쯤은 빈틈을 보일 터.

    바로 그때 로버트가 급강하하며 속력을 높여서 뒤를 잡는다면 제 아무리 빠르게 도망치더라도 충분히 요격할 수 있으리라.

    ‘그래, 바로 지금!’

    로버트 중위가 힘차게 스로틀을 밀자, 그의 썬더볼트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위치에너지가 운동에너지로 전환되면서 그의 기체가 최고 속력에 도달하는 바로 그 순간.

    “···미친, 저게 도대체 뭐야?”

    그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P-47 썬더볼트의 최고 속력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멀어지는 적기의 뒷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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