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38화 (138/157)

138화. 브르타뉴 반도 방어전 (2)

잠시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려서, 1943년 8월 1일.

내가 히틀러를 암살하고 슈페어와의 거래를 통해 군부의 독립성을 인정받았을 바로 그 무렵.

국방군의 실권을 장악한 내가 가장 먼저 실시했던 조치는 바로 쓸데없이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는 무기 개발 프로젝트들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이보게. 여기 있는 이 프로젝트들은 모두 개발 지원을 중단하도록 명령하게.”

“···여기 있는 것들을 전부 말입니까?”

“그래, 설령 개발 부서에서 반발하더라도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반론은 받지 않겠다고 전해주게.”

지난 수년간, 히틀러가 벌려놓은 과대망상 덩어리 프로젝트는 정말 수도 없이 많았다.

초중전차 마우스나 중구축전차 야크트티거부터 시작해서 육상 전함 P-1000 라테, 수직이착륙기 트리프플뤼겔, 그리고 런던을 향한 포신 150m짜리 대포 V-3까지.

그러나 이런 프로젝트 중에서도 몇 가지, 계속 개발을 진행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71구경장 장포신 88mm 주포를 장착한 중전차 쾨니히스 티거와 제트 전투기 메서슈미트 262, 그리고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 V-2였다.

‘우선은 티거 2인가···.’

현재 독일군의 주력 전차는 4호 전차이고, 티거와 판터가 중전차의 역할을 맡고 있는 상황이었다.

독일의 주적인 소련이 T-34/85와 IS-2, 그리고 연합군이 M4 셔먼을 주력 전차로 쓰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이대로 티거와 판터만 양산해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이제는 티거도 더 이상 무적의 전차가 아니란 말이지.’

이미 동부전선에서는 티거와 정면에서 교전할 수 있는 IS-2 중전차가 등장했고, 내후년쯤에는 티거보다 강력한 IS-3나 M26 퍼싱도 개발될 터.

그렇다면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저들을 압도할 수 있는 티거 2 중전차를 미리 개발해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다음은 메서슈미트 262와 V-2인가··· 이 녀석들은 조금 고민되는군.’

사실, 메서슈미트 262와 V-2는 티거 2와 비교해서 약간 애매한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양산하기만 하면 전투에 투입해서 전과를 올릴 수 있는 티거 2와는 다르게 저 둘은 개발을 마치더라도 실전에 써먹기에는 살짝 부족한 성능이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메서슈미트 262는 직선 속도와 출력만큼은 압도적이어서 루프트바페가 연합군 공군보다 열세인 10000m 이상의 고고도에서도 머스탱이나 썬더 볼트를 따돌릴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엄청난 속도만큼 기체의 안정성이 떨어져서 급선회와 같은 전술 기동은 선보이기 어려웠고 파일럿에게 요구되는 조작 난이도도 높았다.

그리고 이는 V-2도 마찬가지였다.

V-2는 마하 5라는 가공할만한 최종 돌입속도와 최대 320km에 달하는 사거리 덕분에 유럽 대륙에서도 영국 본토를 일방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다.

하지만, 비싼 단가와 긴 생산시간에 비해 한 발로 날릴 수 있는 탄두의 중량은 고작 1톤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명중률이 높지 않아서 제대로 된 피해를 입히기는 어려웠다.

그렇기에 단기적으로 본다면, 이 프로젝트들을 계속 진행할 돈과 자원으로 전투기와 전차를 더 많이 양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서명하려던 나는 결국 펜을 내려놓았다.

‘아니, 어차피 이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제트 전투기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그리고 우주 탐사의 시대가 온다.

그리고 지금 우리 독일의 경제 사정도 그리 나쁘지는 않으니 당장 써먹지는 못하더라도 미리 개발해두는 편이 낫겠지.’

그리하여 티거 2와 메서슈미트 262, 그리고 V-2 프로젝트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파울루스 원수, 그렇다면 우리도 신무기를 투입하면 어떻겠소이까?”

“···아군의 신무기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장군께서 지난번에 말씀하셨던 티거 2와 메서슈미트 262 말이오.”

그런 롬멜 원수의 말에, 나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1944년 9월 현재, 티거 2와 메서슈미트 262는 이미 양산 단계에 들어가서 실전 투입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이들을 서부 전선에 긴급 투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메서슈미트 262는 독일 본토에서 프랑스의 비행장까지 자력으로 비행해서 가면 될 테고, 쾨니히스 티거도 특급 열차를 한 대 배정하면 며칠 내로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저들을 투입하는 것만으로 정말 연합군의 진격을 막아 세울 수 있을 것인가였다.

‘판터와 티거도 격파했다는 연합군의 신형 중전차··· 아마 M26 퍼싱이겠지. 물론 킹 타이거를 투입하면 퍼싱은 막을 수 있겠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동부전선에서 증원군이 도착해야 할 터. 그렇다면 과연 그때까지 저 신무기들이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일이 잘못 풀린다면, 브르타뉴 반도도 연합군에게 빼앗기고 아군의 신무기에 대한 정보까지 적들에게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랬다간 미국놈들은 쾨니히스 티거의 정면 장갑조차도 격파할 수 있는 괴물 같은 전차를 만들어 올 테지.

그렇게 내가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롬멜 원수가 재촉하듯이 입을 열었다.

“파울루스 장군, 지금은 사정을 가릴 때가 아니오. 정말 브르타뉴 반도를 포기할 생각이 아니라면 뭐든지 일단 닥치는 대로 투입해야 할 상황이란 말이오.”

“···후. 하긴, 그 말씀이 맞습니다. 그럼 지금 서부 전선에 배치된 중전차 대대는 어디입니까?”

“503 중전차 대대 하나뿐이오. 현재 25군단 예하에 배속되어 1중대가 렌 방어전에, 2, 3 중대가 플로에르멜 남부에서 연합군을 저지하고 있지.”

503 중전차 대대라.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보유 전차의 반절 가량이 소실되었다고 보고가 올라왔었지.

‘마침 잘 됐군. 어차피 독소 전쟁도 끝났으니, 대기 중인 티거 2는 전부 503 중전차 대대에 몰아줘도 되겠어.’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롬멜 원수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특급 열차를 배정해서 지금 당장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

1944년 9월 4일.

프랑스, 브르타뉴 반도의 비스케이 만과 접한 항구 도시 반.

이곳에서 503 중전차 대대 소속 티거 전차장, 쿠르츠 예거 소위는 때아닌 휴가를 누리고 있었다.

“후··· 한심하군. 언제까지 이렇게 대기만 하고 있어야 하는지, 원···.”

불과 30km 떨어진 플로에르멜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쿠르츠 예거 소위가 놀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왜냐하면, 대대의 중전차들이 모두 격파되거나 고장 나서 더 이상 타고 나갈 티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쿠르츠 소위가 투덜거리자, 옆에 누워서 쉬고 있던 조종수가 웃으며 답했다.

“하하, 전차장님. 그래도 쉴 수 있을 때 쉬어두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시끄럽다. 이게 다 네가 궤도를 부숴 먹은 탓이잖나.”

“그렇게 말씀하시면 억울하지 말입니다. 뭐, 제가 조금 거칠게 운전한 것도 맞지만 그 이전부터 궤도 상태가 엉망이었지 않습니까.”

“······.”

사실 조종수의 말대로였다.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부터 지금까지 수개월 동안 쉬지 않고 싸운 탓에 현재 503 중전차 대대에는 성한 전차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으니까.

그래서 쿠르츠 소위의 티거 전차도 스페어 궤도가 부족해 대신 폭이 좁은 철도 수송용 궤도를 끼우고 전투에 나섰다가 기동 불능이 된 것이었다.

“하아··· 그건 알지만 영 답답하군. 전우들이 싸울 때 우리만 이렇게 놀고 있다는 게 말이야.”

그렇게 쿠르츠 소위가 한숨짓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그의 포수, 오토가 밝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전차장님, 오랜만에 좋은 소식입니다.”

“뭐야. 정비관님이 기적같이 부서진 궤도를 이어붙이기라도 했나?”

“하하, 그런 중고는 잊어버리십시오. 방금 반짝반짝한 신품이 도착했답니다.”

“···뭐?”

그 말에,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쿠르츠 소위는 재빨리 전투모를 뒤집어쓰고 뛰쳐나갔다.

“오토, 얀! 빨리 옷 갈아입고 역으로 와라!”

“예!”

그 이유는 당연히 다른 소대원들보다 먼저 상태가 좋은 전차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잠시 뒤, 역에 도착한 쿠르츠 소위는 화물칸에서 하역작업 중인 전차를 보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저게 뭐지? 설마 오토 녀석이 말한 신품이라는 게 신형 중전차란 뜻이었나?”

티거보다는 오히려 판터에 가까운 날렵한 전면 경사 장갑, 그러나 판터보다는 훨씬 길고 육중해 보이는 럭비공 형태의 포탑, 그리고 티거보다도 훨씬 길고 큰 주포까지.

마치 티거와 판터의 장점만을 모아둔 것 같은 그 전차는 어떻게 보더라도 신형 중전차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티거 2의 늠름한 자태에 쿠르츠 소위가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다가와서 그의 어깨를 때렸다.

“어이, 소위.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나?”

“아, 정비관님. 저게 도대체 뭡니까? 설마 신형 중전차입니까?”

“하하하, 역시 딱 보면 아는군. 그래, 우리 503 중전차 대대에 새롭게 배치된 신형 중전차 티거 2다. 그런데 저쪽에서 나온 놈들은 다들 쾨니히스 티거라고 부르더군.”

쾨니히스 티거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 이름을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곱씹어보면서 쿠르츠는 정비관에게 받은 설명서를 훑어보았다.

‘주포는··· 나스호른과 같은 71구경장 88mm 전차포인가. 게다가 전면 장갑은 50도 경사에 150mm나 되고. 공수 모두 확실히 티거 전차보다 강화되었군.’

그 대신 원체 무거운 탓에 추중비가 낮아서 기동성이 느리다는 점과 전차병들 모두 조작을 새로 익혀야 한다는 점이 걱정됐지만, 그래도 쿠르트 소위는 걱정보다 기대가 더 앞섰다.

“좋아, 쿠르츠 소위. 그럼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저기 하역된 놈 끌고서 중대 본부까지 좀 가주게.”

“알겠습니다! 얀, 바로 조종할 수 있겠나?”

“예, 다른 기능들은 몰라도 대강 움직이는 것쯤은 지금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전차 전진! 문을 통과할 때는 조심하도록.”

“전차 전진!”

전차장 해치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선 쿠르츠 소위는 묵직한 궤도 소리를 내며 천천히 전진하는 쾨니히스 티거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 녀석이라면 연합군의 그 신형 중전차가 나타나도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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