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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35화 (135/157)
  • 135화. 강화. 그리고 그 이후

    스탈린과의 밀담을 나눈 이후, 나는 양국 간의 평화협정에 조인하기 위해서 식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상기한 내용대로 진행해도 괜찮겠습니까?”

    “좋소. 이대로 끝내도록 하지.”

    “우리도 이의 없소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조약문의 내용을 확인하시고 서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협상 내용은 이미 실무진의 사전 접촉에서 결정 내려진 데다가 세부 조정도 군부가 아닌 외교부의 소관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오늘의 내 역할은 최종 조약문을 훑어보고 서명하는 것뿐이었다.

    “그럼 다음으로 파울루스 원수 각하, 이곳에 서명해주십시오.”

    “알겠소.”

    나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마침내 내 앞에 도달한 평화협정 조약문을 바라보았다.

    ‘어디 한번 읽어나 볼까.’

    조약문의 내용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결정된 독일과 소련 간의 새로운 국경선은 다음과 같았다.

    북쪽의 발트 3국으로부터 시작해서 민스크, 키예프, 그리고 드네프르강을 따라서 오데사까지.

    카프카스 유전지대에서 독일이 약간의 이권을 챙긴 것을 제외하고 보면, 새로운 국경선은 독소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의 국경과 현재 동부전선의 딱 중간 같은 모양새였다.

    사실 지금 동부전선의 판세만을 놓고 보자면 우리가 다소 양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서부전선이 위태로운 것을 생각하면 이것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중, 우리가 가장 많은 양보를 한 곳은 바로 자원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남부지대였다.

    ‘남쪽은··· 카프카스와 크림반도를 전부 내주고 우크라이나도 1/3 정도 선에서 갈랐군.’

    솔직히 말해서 내가 참가하고 지휘했던 블라우 작전으로 힘들게 얻어낸 카프카스를 이렇게 쉽게 내주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소련은 결코 카프카스 유전지대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을 테고, 어떻게든 우리가 받아냈다고 하더라도 거리가 워낙 먼 탓에 관리하기도 어려웠을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처럼 카프카스에서 생산되는 석유를 우리가 우선적으로 저렴하게 구매한다는 지금의 조건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이는 크림 반도도 마찬가지였다.

    바닷길로 이어지는 항구 하나가 아쉬운 소련은 무슨 일이 있어도 크림 반도는 내줄 수 없다고 우겨댔고, 그로 인해서 남쪽의 국경선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것이었다.

    ‘뭐, 그 덕분에 우크라이나의 가장 핵심적인 도시인 키예프와 오데사를 확보했으니 큰 손해는 아니겠지. 게다가 남쪽에서의 양보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쪽에서는 많은 영토를 확보했고 말이지.’

    그에 반해서, 북쪽에서는 우리 독일이 상대적으로 많은 영토를 취할 수 있었다.

    우선 앞서 얘기되었던 발트 3국뿐만 아니라 나르바, 프스코프, 그리고 벨라루스의 여러 핵심적인 도시들까지.

    레닌그라드 일대와 모스크바 방어를 위한 반경 약 400km 정도의 거리를 제외한 북부의 거의 대부분이 우리 독일의 영토로 편입된 것이었다.

    이는 아마도 전후의 재건을 우선시한 스탈린의 판단 때문에 북부가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이겠지만, 그로 인해서 소련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우선, 혁명의 수도인 레닌그라드가 크릭스마리네와 루프트바페의 사정권에 들어가게 되었고, 발트해를 장악했던 소련의 발틱 함대도 과거의 위세를 잃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비에트 연방의 식탁을 책임지던 우크라이나의 흑토지대가 대거 우리의 손에 떨어지게 되면서 소련의 식량 사정도 한층 더 어렵게 될 터였다.

    ‘스탈린은 인민들이 굶주리더라도 자원과 석유의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일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크라이나의 2/3가 사라진 마당에 가만히 버틸 수는 없겠지.’

    그럼 이제 소련이 할 수 있는 대처는 둘 중 하나뿐이었다.

    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거나, 아니면 자국의 식량 생산량을 늘리거나.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전시 상황에서 식량을 수출할 국가가 있을 리 만무한 데다가, 그나마 여력이 있는 영미나 우리 독일은 이미 소련과 척을 진 상황.

    그렇기에 저들은 더더욱 일본을 칠 수밖에 없으리라.

    지금 소련이 식량을 수급할 방법은 극동으로 가서 관동과 조선, 홋카이도를 손에 넣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럼··· 현재 동부전선의 소련군이 480만 이니, 이들 중 100만에서 120만이 극동으로 간다고 치면 약 350~370만 정도가 남겠군.’

    그리고 우리 독일군도 350만 중 150만을 서부전선으로 차출할 예정이니 장기적으로 국경선에는 200만 대 360만, 약 1 : 1.8의 전력비가 유지된다.

    거기에 더해, 소련은 재건에 힘을 쏟아야 하는 데다가 식량이 부족해서 공세에 나설 여력이 없고 우리 독일은 소련에게서 석유를 공급받지 못하면 연합군과의 싸움이 곤란해진다.

    이 정도라면 스탈린이 바라는 대로 아군과 소련 간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연합군을 견제할 수 있는 절묘한 상황이 이루어질 터였다.

    ‘후··· 간신히 여기까지 왔군.’

    나는 무수히 많은 이들의 설전과 고민 끝에 만들어진 이 조약문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조국의 패망을 피하고 평화로 향하는 길을 찾았으니 이걸로 족하지 않겠는가.

    ‘비록 그 또한 살얼음판 위를 걷는듯한 위태로운 평화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종전 이후의 일은 그때 가서 다시 걱정하면 된다.

    지금은 그저 눈앞에 닥친 일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조약서 위에 내 서명을 휘갈겨 썼다.

    - 독일 국방군 총참모총장,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파울루스.

    *****

    1944년 8월 16일.

    독일과 소련이 강화 조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단 하루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우선, 독일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한껏 까불던 핀란드는 깜짝 놀라서 재빨리 소련과의 강화에 나섰다.

    또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같이 동부전선에 군대를 파견하며 독일을 도왔던 동맹국들은 약간의 영토나 석유, 중고 무기를 양도받는 등, 나름대로 보상을 얻어서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연합군이 프랑스 북서부 해안에 상륙했다는 소식에 벌벌 떨고 있던 비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동부전선의 종식을 두 팔 벌려 환영했으며, 반대로 영국과 미국은 소련의 배신에 대해서 이를 갈며 경고의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비시 프랑스나 이탈리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같은 유럽의 추축국들보다도 훨씬 더 독소 전쟁의 종식에 환호한 나라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일본이었다.

    “뭐? 독일과 소련이 강화를 맺었다고? 그게 정말인가?”

    “옛! 이미 전 세계의 언론에서 떠들고 있는 데다가 방금 대일 독일 대사를 통해서도 확인했으니,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독소 전쟁이 끝났다라···. 하하하, 하하! 그래! 그럼 그렇지! 우리 대일본제국이 이렇게 끝날 리가 없지!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독일과 소련이 강화를 맺었다는 보좌관의 보고에 일본의 총리, 도조 히데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희희낙락 웃었다.

    1944년 8월 16일 현재, 일본 제국군은 사실상 패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진주만 공습부터 시작해서 미 해군과 영국 동양함대를 몰아내고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집어삼킨 것은 좋았으나, 일본군의 영광은 딱 거기까지였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의 참패로 인해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 4척과 순양전함 2척, 항공기 250대를 잃어버리며 더 이상 미군에 대해 전력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과달카날 해전, 알류산 열도, 타라와 전투에 이르기까지 졸전을 거듭해 이제는 일본의 코앞이라 할 수 있는 사이판 섬까지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본토 결전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한탄하고 있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독일과 소련이 강화를 맺다니.

    이것은 하늘이 돕는 것이 아니고서야 무엇이라 하겠는가?

    지금까지 독일과 일본은 같은 추축국 동맹이면서도 해로는 연합군이, 육로는 소련이 가로막고 있었기에 서로 도움은커녕 교류조차 제대로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간에도 잠수함을 통해서 설계도면을 주고받거나 비행기로 중요인물을 옮기고 소수의 수송 선단이 왕복에 성공하는 등 소소한 왕래는 있었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는 전황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비록 제조기술의 한계와 재료의 부족 때문에 독일군의 무기를 제대로 카피하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그렇게 열화시켜 만든 무기도 국산품보다 훨씬 좋았지. 그러나 독일과 소련이 화평을 맺은 이상, 이제는 그런 열화 복제품을 만들 필요도 없다!’

    하지만 독일과 소련이 강화를 맺은 지금, 더 이상 양국 사이에 장애물은 없다.

    그 말인즉슨, 이제 곧 유라이사 대륙을 관통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통해서 독일군의 우수한 기술력과 물자가 일본으로 마구 쏟아진다는 것.

    그렇다면 독일제 정밀 가공 기계와 합금 기술을 이용해서. 본토에서 미군의 셔먼 중전차조차도 관통할 수 없다는 타이거 초중전차를 생산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흐흐흐, 우리 황군을 타이거 초중전차로 무장하기만 하면···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지. 독소 전쟁이 끝났다면 도이치 군대도 수백만 대군이 남아돌아 곤란하지 않겠는가?’

    듣자 하니, 이미 구라파에서도 영미 귀축 놈들이 날뛰는 바람에 도이치 군대가 한판 붙고 있다고 했었다.

    그렇다면 대륙 반대편에서 영미와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도 병력을 보내서 한 손 거들어주지 않겠는가?

    ‘저 천하의 양키놈들도 두려워서 벌벌 떠는 도이치 군대가 우리 일본으로 온다면··· 그럼 결호 작전은 물론이고 본토 방어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버티다 보면, 독일과의 전쟁에 지친 미국놈들이 강화 협상을 제안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도조 히데키가 세계지도를 내려다보며 행복한 망상을 하고 있을 때, 젊은 장교 하나가 황급히 회의실로 뛰어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초, 총리 대신 각하! 급보입니다!”

    “무슨 소란이냐! 여기는 대본영이다! 품위를 지켜라!”

    “죄, 죄송합니다, 각하. 다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도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힘겹게 말을 잇는 장교와 호통을 치는 막료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쯧쯧쯧··· 그만하면 됐네. 내 오늘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넘어가도록 하지. 그래, 그래서 도대체 무슨 일인가?”

    도조의 허락에, 간신히 고개를 든 장교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그것이··· 방금 전, 소련이 저희 대일본제국에 선전 포고를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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