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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134화 (134/157)
  • 134화. 동상이몽 (4)

    남자의 안내에 따라서 방으로 들어간 나는 나를 이곳으로 불러낸 이를 바라보았다.

    차분하지만 선이 굵은 얼굴.

    멋지게 끝이 말려 올라간 콧수염.

    그리고, 그런 평범한 인상과는 정반대로 안광이 흘러나오는듯한 강렬한 눈빛까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는 바로 소비에트 연방의 대원수,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처음 뵙는군. 당신이 파울루스 원수요?”

    사실 반신반의하면서 따라왔는데 정말로 스탈린이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하지만, 그가 도대체 왜 일개 군인에 불과한 나를 따로 불러냈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있자,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남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서기장 동지의 전담 통역사를 맡고 있는 블라디미르 니콜라예비치 파블로프 대령입니다. 서기장 동지께서 파울루스 원수가 맞냐고 물어보시는군요.”

    “···그렇군. 그럼 내가 본인이 맞다고 대답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이에 파블로프 대령은 스탈린을 향해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을 이용해 나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을 정리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자가 이오시프 스탈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도대체 왜 이런 곳까지 직접 와서 나를 만나려고 한단 말인가.’

    우선, 그에게도 우리 독일과의 강화 협상을 맺을 생각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방금 전에 ‘지금 당장이라도 강화 협상을 중단시킬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애당초에 그럴 생각이었다면 굳이 이런 자리를 만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강화나 전쟁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면 나에게 할 말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아니, 지금은 생각해봤자 머리만 복잡해질 뿐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일단은 대화를 나눠보는 수밖에.’

    그렇게 마음을 정리한 나는 각오를 다지며 스탈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기장 각하. 저는 독일군 참모총장을 맡고 있는 프리드리히 에른스트 파울루스 원수입니다. 이렇게 불러주셔서 영광입니다.”

    “반갑소. 일단 자리에 앉으시오, 원수. 당신에게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으니.”

    “···예.”

    나는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스탈린의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우선 여쭤보겠습니다만, 어째서 저를 찾으신 겁니까? 보시다시피 저는 그저 일개 군인에 불과한 몸입니다만.”

    “겸손이 과하시군. 장군이 지금까지 우리 소비에트 연방의 발목을 얼마나 잡아왔는지 내가 모르리라 생각하셨소?”

    나는 스탈린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평가에 깜짝 놀라면서도 동시에 의문을 느꼈다.

    물론 내가 지휘관으로서, 그리고 참모총장으로서 여러 번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래도 눈에 뛸 만한 활약을 한 것은 기껏해야 스탈린그라드 전투뿐이었고, 독일군에서 명장을 찾자면 나보다도 만슈타인이나 발터 모델, 에르빈 롬멜 같은 이름이 먼저 떠오를 터.

    그런데 도대체 왜 스탈린은 굳이 나를 지목해서 이곳으로 불렀단 말인가?

    “···글쎄요. 그런 것이라면 저보다 훌륭한 명장들이 많을 텐데 말입니다.”

    “확실히 독일군에는 우수한 지휘관들이 많더군. 하지만··· 그들과 당신은 결정적으로 다르오. 그렇지 않소?”

    “······.”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에는 한가지 가능성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이 자는 내가 회귀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하지만 이내 나는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회귀를 직접 경험한 나조차도 아직 믿기 어려운 일인데, 그것을 다른 누군가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혼란에 빠진 모습을 본 스탈린은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당신의 그 반응을 보아하니, 역시 내 짐작이 사실이었던 모양이군.”

    “···아까부터 무슨 말씀인지 저는 도통 모르겠습니다만.”

    “파울루스 원수, 솔직하게 말해보시오. 당신이 히틀러를 죽인 것 아니오?”

    “······!”

    갑작스러운 스탈린의 말에 나는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지금까지 스탈린이 했던 모든 말들이 다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군. 그래서 나를 부른 것인가.’

    사실, 소련놈들이 히틀러의 죽음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 독일에서는 소련 측의 공작으로 인해 사망한 것처럼 발표하고 얼버무렸지만, 정작 소련의 입장에서는 전대미문인 일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저들로서는 독일 내부의 권력 암투로 인해 발생한 쿠데타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으리라.

    ‘그리고 그 주동자로 나를 꼽았다라··· 우연히 때려 맞춘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진상을 알아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놀랍군.’

    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정보력에 내심 놀라면서도 시치미를 때며 말했다.

    “실례지만, 어째서 제가 주동자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지 않소. 암살 시기가 당신의 진급과 너무 절묘했던데다가, 그 후로도 당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으니 말이오.”

    하긴, 생각해보면 그랬다.

    애당초에 나치 쪽 인사들은 히틀러와 함께 죽여버렸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고, 군인들 중에서 주동자를 찾자면 다른 이들은 모두 현장 지휘관으로 나가 있었기에 제외된다.

    ‘모델과 만슈타인은 카프카스에, 롬멜은 북아프리카에 있었고 룬트슈테트 원수는 서부전선군 사령관이라는 한직이었으니 말이지.’

    그 외의 가능성이라면 슈페어가 주도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스탈린은 아무래도 슈페어보다는 내가 주동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러니 묻고 싶군. 일개 참모총장이 아니라, 지금까지 막후에서 이 전쟁을 지휘해온 당신에게 말이오.”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은··· 아니, 독일제국은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그런 스탈린의 질문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잃고 고민에 잠겼다.

    ‘전쟁 이후라···.’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회귀한 이후로 지금까지 독일의 패망을 막겠다는 생각으로 움직였을 뿐, 그 이후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자리에서 모르겠다는 대답을 내놓을 수도 없는 법.

    그렇기에 나는 결국 이런 원론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야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지요. 우리 독일의 정당한 권리와 힘을 인정받는 형태로 말입니다.

    그럼 북미의 미국과 유럽의 독일, 유라시아의 소련이 3강 구도를 형성하게 되겠지요.”

    애초에 독일이 2차대전을 개시한 이유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베르사유 조약과 그로 인한 민족주의의 팽창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 모든 굴레를 집어 던지고 유럽을 석권한 지금, 이 위치를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충분하다. 그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탈린은 3강 구도라는 말에 솔깃해하면서도,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소?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나로서는 당신네들의 말을 그다지 믿기가 어렵구려. 지금은 양면전쟁 때문에 강화를 맺어도, 언제 다시 돌아와서 우리를 위협할지 모르지 않소.”

    “···죄송하지만 신뢰가 없는 것은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연합군과 싸우는 동안 소련이 뒤통수를 치지 않으리라 어떻게 확신하겠습니까.”

    대화가 여기까지 진전되자, 나는 스탈린이 나를 불러낸 이유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장기적으로 소비에트 연방의 안전을 확보하고 독일과 미국, 소련의 3강 구도를 유지해나가기 위해서 나의 진의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독일과 소련은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피를 흘려가며 죽도록 싸워온 사이인 만큼, 여기서 무슨 말을 한다고 한들 양자간에 신뢰가 회복될 리 없었다.

    ‘젠장··· 일이 이상하게 되었군. 여기서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강화를 취소해버리면 곤란한데 말이야.’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기서 어떤 조건을 제시해야 스탈린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잠시 고민한 끝에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서기장 각하, 그럼 차라리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이오?”

    “강화 협상 이후, 양국이 함께 국경선에서 일정 수의 부대를 제외한 나머지 병력을 모두 빼내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문제는 결국 상대방이 강화 협상을 깨트리고 다시 쳐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양국이 동시에 병력을 물린다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리라.

    “흥! 말이야 맞는 말이오만, 병력을 전선에서 빼내 봤자 후방에 숨겨두었다가 언제든지 다시 배치할 수 있는 것 아니오?”

    “맞습니다. 그래서 소련 측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강화 협상 이후에 일본을 공격하면 어떻겠습니까?”

    “···일본을?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시오.”

    갑작스럽게 언급된 일본 얘기에 스탈린은 눈썹을 치켜뜨며 되물었다.

    하긴, 지금까지 소련에게 있어서 일본은 적도 아군도 아닌 애매한 존재였으니 갑자기 공격하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만도 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희 독일이 소련과 강화를 맺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는 소련 측도 바라마지 않는 일이지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소련과의 신뢰가 회복되지 못한 지금 소련군이 계속 전선에 머무른다면 우리도 동부전선에서 병력을 차출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만큼 연합군의 피해도 줄어들겠지요.”

    “···그래서, 우리 병력을 극동으로 보내란 말이오?”

    “예. 각자 등을 돌리고 다른 적과 싸운다면, 병력을 빼돌려서 뒤통수를 칠 여유도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만약 소련군이 극동에서 일본군을 친다면, 시베리아 반대편까지 병력과 물자를 보내느라 전력이 많이 분산될 터였다.

    게다가 소련이 대일 전선에 참전해 북쪽에서 내려오면 태평양에서 섬을 하나하나 점령하며 일본으로 향하고 있는 미군 놈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진격 속도를 올릴 수밖에 없다.

    ‘그럼 그만큼 서부전선으로 투입되는 미군의 숫자도 조금은 줄어들 테고 말이지.’

    그리고 만약 소련과 미국이 일본을 패망시킨다고 해도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본이 항복하면 극동의 어딘가에서 미군과 소련군이 만나게 될 테니, 소련은 대일 전쟁이 끝나더라도 극동에서 병력을 철수시키지 못하게 될 테니까.

    “무엇보다도, 우리 독일과의 전쟁을 포기하는 대신 일본을 쓰러트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말하면 루즈벨트 대통령도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그런다고 해서 루즈벨트가 기뻐할 리는 만무하지만.

    그런 능청스러운 내 말에, 나를 노려보던 스탈린은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답했다.

    “···하하하하하! 당신,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사람이셨군. 좋소, 내 기억해두겠소.”

    그렇게 말하며 스탈린은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나는 그 커다란 손을 마주 잡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도 끔찍했던 전쟁, 독소 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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