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6화 (86/157)
  • 86화. 토성 작전 (1)

    1943년 5월 24일.

    나는 돈강 방어선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 약 4개월 만에 다시 카프카스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시간이 참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고작 100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군.’

    그러나 노보체르카스크에 위치한 남부집단군 사령부에 도착하는 순간,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어서 오십시오, 파울루스 각하.”

    “···설마 이 인원들이 다 나 때문에 이렇게 밖에 나와 있는 것인가?”

    “그야 당연하지. 육군 참모총장님께서 친히 사령부에 방문하셨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내가 차에서 내리자, 그곳에는 무수히 많은 장교들과 병사들이 사열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가장 앞에 서서 나를 맞이한 이는 바로, 남부집단군 사령관으로 새롭게 임명된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었다.

    “후··· 자네가 진심으로 한 짓인지 장난인지는 모르겠네만, 아무튼 어서 들어가세.”

    “하하하, 알겠네. 그럼 내 방으로 가세.”

    나는 장난스럽게 웃는 모델의 뒤를 따라서 그의 집무실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바르바로사 작전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이었던가?”

    “그래, 그때까지는 구데리안 장군의 집에서 우리 셋이서 자주 모였었지.”

    “그때 나는 일개 사단장이고 자네는 참모부 장교였는데, 이제는 서로 진급해서 집단군 사령관과 육군 참모총장으로 만났구만.”

    “각자 노력한 덕분이 아니겠나.”

    “하하, 노력한 덕분이라···.”

    내 대답에, 모델은 씁쓸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원수로 진급한 것은 이해가 가네. 스탈린그라드 전투부터 블라우 작전까지, 멀리서 소식을 전해 들었던 나조차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한 일을 해냈으니까.”

    “···그렇지도 않네.”

    “하지만 내가 이렇게 쾌속 진급을 하는 것은 좀 의문이 드는군. 뭐, 르제프에서 방어전을 잘 해내긴 했어도 그게 남부집단군 사령관이 될 만큼은 아닌 것 같단 말이지.”

    “······.”

    거기까지 들은 나는 그제서야 모델이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아마 모델은 내가 참모총장으로서 직권을 남용해서 그를 부정하게 진급시켜준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것이리라.

    그리고 사실, 이러한 그의 추측은 참이었다.

    만약 내가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1944년이 되어서야 겨우 집단군 사령관으로 진급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모델에게 진실을 말해주는 대신, 웃으며 말했다.

    “뭐,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사실 지금까지 워낙 이례적인 진급을 거듭해왔지 않나.”

    “그럼 역시···.”

    “하지만 내 명예를 걸고 맹세컨대, 결코 자네가 내 친구라서 이 자리까지 진급시킨 것은 아닐세. 자네가 지금의 그 자리에 임명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최고사령부에서 판단하기에 자네가 최적임자였기 때문이네.”

    “···그런가.”

    나는 내 말에 반신반의하는 듯한 모델을 웃으며 바라보다가 이내 말을 돌렸다.

    “그 문제는 이제 됐으니, 이제 슬슬 돈강 방어선의 얘기를 들어보지. 내 어제 자네의 보고서를 받아보았네만, 소련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고?”

    “하하. 그러고 보니 쓸데없는 얘기에 정신이 팔려서 정작 중요한 일을 미루고 있었군. 이쪽으로 와보게.”

    발터 모델은 자리에서 일어나 작전 지도가 펼쳐진 테이블 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현재 소련군과의 교전을 벌이고 있는 지점은 바로 여기일세.”

    “흠···.”

    모델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소련군의 공세 지점은 바로, 파블롭스크와 브카노브스카야 일대였다.

    “···두 군데에서 동시에 돌파를 시도하고 있는 건가? 내가 보고를 받은 것은 브카노브스카야 일대뿐이었네만.”

    “자네가 오는 동안 파블롭스크 쪽에서도 공세가 시작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왔네.”

    “그럼 공세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아직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네만··· 돈강 방어선에 맞닿아있는 소련군 전력을 모두 생각한다면 최소 100만 이상일걸세.”

    그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소련군의 규모는 최소 100만 이상에, 그것도 양쪽에서 동시에 공세를 개시한 상황.

    이로 미루어보아 소련군이 이번 반격 작전에 정말 모든 것을 걸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놈들의 작전 목표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역시 양익 포위를 통해서 루마니아 3군과 11군을 섬멸하겠다는 건가? 아니, 그러기에는 전술적으로도 지형적으로도 놈들에게 불리한 상황일 텐데. 그럼 역시 방어선을 돌파한 뒤에 깊숙이 진격하는 것이 목표인가?’

    만약 그렇다면 놈들의 작전 목표는 아조프해까지 진격해서 카프카스와 스탈린그라드 일대를 전부 차단하는 것일 터.

    그러나 정말 그런 의도였다면 한 곳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서 밀어붙이는 것이 나았을 텐데, 왜 구태여 양쪽에서 공세를 시작했단 말인가?

    그렇게 지도를 보며 한참 생각하던 나는 잠시 고민을 멈추고 모델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보기에는 소련군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글쎄, 현재로서는 뭐라 말하기가 어렵군. 자네도 알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양쪽에서 공세에 나서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지.”

    역시나 저 친구도 나와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모델은 싱긋 웃으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가?”

    “···어떻게 말인가?”

    “만약 저 두 공세 중 하나가 기만이라면··· 하고 말일세.”

    “기만책이라고?”

    “그래. 지난 4개월 동안 이미 소련놈들은 돈강 방어선을 여러 차례 정찰하며 아군의 전력 규모를 파악했네.

    그러니, 놈들도 우리가 동시에 두 곳을 방어할 능력은 없다는 것을 알고 양동 작전을 시도한 것이 아닐까 싶네.”

    소련군이 양동 작전이라···.

    나는 모델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게 생각하면 소련군이 파블롭스크 일대에서 공세에 나선 것도 이해가 가는군.’

    사실 소련군의 입장에서 파블롭스크 일대를 공격하는 것은 그리 득이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저곳을 돌파한다고 해도 돈강 방어선이나 카프카스를 위협할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역포위를 당할 위험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카노브스카야 일대의 공세가 주공이고 파블롭스크 쪽이 양동이라면 얘기는 달랐다.

    “확실히··· 아군의 반격을 분산시키는 게 목적이라면 저 정도로 떨어진 장소에서 공세를 펼칠 수밖에 없겠지.”

    “그래, 그런 것이 아니라면 소련군의 이번 공세는 말이 안 되네.”

    거기까지 말한 모델은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자신만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 우리 남부집단군은 파블롭스크의 공세는 일단 무시하고 브카노브스카야 일대에 모든 반격을 집중할 생각이네.”

    *****

    1943년 5월 25일.

    브카노브스카야의 맞은 편에 위치한 돈강 방어선 일대.

    이곳에서 217호 티거 전차장, 오토 카리우스 소위는 큐폴라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살펴보면서 중얼거렸다.

    “···개판이군.”

    지난 4개월 동안 남부집단군이 공들여 만든 돈강 방어선과 어떻게든 이번에는 카프카스를 되찾겠노라 각오하고 병력을 때려 박는 소련군이 맞부딪힌 결과, 현재 그의 눈앞에는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강변에는 무수히 많은 시신들이 나뒹굴며 돈강을 붉게 물들였고, 그곳을 돌파한 이들은 피아노 선과 철조망에 걸려서 눕지도 못한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련군은 그 모든 지옥을 헤치고 올라와 기어이 아군의 기관총 진지를 향해 수류탄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뭐, 저희가 투입되는 곳이 다 개판이지 않습니까.”

    그 끔찍한 광경을 눈에 담던 카리우스는 휠홀츠 상병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까지 우리 중전차 대대가 투입된 곳 중에서 어디 한 번이라도 쉬운 곳이 있었던가.

    이번에도 분명 어떻게든 이곳을 사수해내야만 하니 우리를 투입한 것이리라.

    “후··· 좋아. 그럼 우리도 일을 시작해보자고. 휠젠자크, 고폭탄 장전.”

    “예! 고폭탄 장전!”

    “홀츠, 일단 1차 방어선을 넘는 놈들에게 한발씩 먹여줘라. 거리가 멀지 않으니 전차든 보병이든 탄종은 고폭탄으로 통일한다.”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티거가 묵직한 88mm 고폭탄을 쏴대는 동안, 카리우스는 큐폴라 밖으로 눈만 살짝 내민 채 사방을 살폈다.

    ‘아직 적의 기갑부대는··· 많지 않군. 몇 대 있는 놈들도 전부 T-34에 불과하니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현재 그가 탄 217호 전차와 적들 간의 교전 거리는 약 800m.

    얼마 전에 보고서에서 읽었던 85mm 구경의 신형 T-34나 122mm 주포를 달았다는 JS-2 중전차 같은 것이 나타난다면 위험할 수도 있는 거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리우스는 현재의 거리를 유지했다.

    왜냐하면, 조금 위험한 상황이더라도 티거 전차가 앞에 서줘야만 아군의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런 신형 전차들은 어쩌다 한번씩 보일까 말까 하는 거지. 어차피 전선에서 굴러다니는 놈들은 태반이 구형 T-34뿐이다.’

    카리우스가 그렇게 생각하며 전차 안으로 고개를 집어 넣는 순간이었다.

    “···어?”

    “홀츠, 무슨 일이냐.”

    “그게··· 적 전차를 맞췄는데도 포탄이 튕겨 나갔습니다.”

    “뭐? 철갑탄으로 쏜 것 맞나?”

    “예, 철갑탄이 도탄된 것이 확실합니다. 고폭탄이었으면 그냥 폭발했을 겁니다.”

    “···일단 차탄 장전해.”

    “예!”

    홀츠 상병의 말에, 카리우스는 왠지 모를 불길한 기분을 느끼며 큐폴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설마, 그럴 리가. 분명 저 녀석이 잘못 쏘는 바람에 스쳐 지나간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고개를 들어올리는 순간, 그의 시야에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전차가 아군의 참호를 짓밟으며 넘어오는 모습이 들어왔다.

    “젠장, 홀츠! 발사해라!”

    “예!”

    콰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지금껏 카리우스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았던 88mm 주포가 불을 내뿜었다.

    그러나 잠시 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철갑탄이 그 전차의 정면 장갑에 닿는 순간.

    카리우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티거의 포탄이 튕겨져 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제기랄···. 88mm가 튕겨져 나갔다고?”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T-34 따위가 아니었다. 저건 보고서에서 보았던 그 소련군의 신형 중전차임에 틀림 없었다.

    “···전차장님, 어떻게 합니까?”

    “전진! 슐츠, 왼쪽으로 파고들어라!”

    “···예!”

    그렇게, 티거와 JS-2의 첫 교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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