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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85화 (85/157)
  • 85화. 암살 (5)

    그렇게 룬트슈테트와 파울루스가 한참 동안 설전을 벌이고 있을 무렵.

    다른 한편에서는, 알베르트 슈페어가 지난 이틀간의 일들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쩌다 보니 엄청난 일에 휘말려버렸군.”

    사실 슈페어에게 있어서 지금의 이 사태는 전혀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로서는 그저 이번 회의를 통해서 당 내부에서의 입지가 좀 더 공고해지기만을 바랬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기대와는 달리 히틀러와 다른 측근들은 모두 죽어버렸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자신이 갑자기 차기 총리로 추대되어버린 상황.

    ‘제기랄, 하필이면 내가 차기 총리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이렇게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슈페어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 폭발로 인해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이 슈페어인 만큼, 세간의 눈초리도 그에게 향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번 폭발이 암살 시도였다는 여론이라도 생긴다면··· 아마 높은 확률로 내가 주모자로 몰리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벌어진 이 사태이 슈페어에게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정리한 뒤 총통의 유언장을 인정받기만 한다면, 슈페어가 정말로 차기 총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차기 총리가 되는 수밖에.’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파울루스 장군과 손을 잡고 그의 계획에 따를 것인가? 아니면···.

    그렇게 슈페어가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의 집무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시오?”

    “저입니다, 총리님.”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들어낸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였다.

    *****

    “총리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오. 어서 들어오시오.”

    결국, 룬트슈테트 원수와 군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 나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하기 위해서 슈페어를 찾아온 참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차분한 기색이었다.

    ‘···아무래도 슈페어 총리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한 모양이군.’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나를 맞이했다.

    “하하하, 마침 장군을 부르려던 참이었는데 딱 맞게 잘 오셨군. 어서 자리에 앉으시오.”

    “감사합니다.”

    슈페어가 보여준 뜻밖의 모습에, 나는 일단 그의 맞은편에 앉아서 조용히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과연, 그는 어떤 결론에 도달했을까?

    그리고 나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파울루스 원수.”

    “예, 각하.”

    “내가 오늘 하루 동안 계속 생각해봤소만, 아무래도 이번 일을 그냥 발표하기는 어려울 것 같소.”

    “그냥 발표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럼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동안 우리 독일에서 총통 각하의 위상은 절대적이며 유일무이한 것이었소. 그런데 그런 분이 서거하셨으니,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이유를 제시해야 하지 않겠소?”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이유라.

    그 말인즉슨, 총통이 사망하게 된 폭발의 원인을 규명하겠다는 것일 터.

    즉, 자신은 이번 암살 사건에 대해서는 완전히 선을 긋겠다는 말이겠지.

    “···설마 이제 와서 진범을 색출하겠다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만약 필요하다면 그렇게라도 해야겠지. 그렇다고 대충 얼버무렸다간 당 내부에서도 의심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소.”

    나는 어제와는 다르게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슈페어의 모습에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가 갑자기 왜 암살 사건의 배후를 걸고 넘어진단 말인가. 설마, 슈페어도 히틀러처럼 군부를 견제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융커에 대해서 악감정을 가지고 있던 히틀러와는 다르게 슈페어는 굳이 우리와 척을 질 이유가 없다.’

    게다가 지금 슈페어의 입장에서는 우리와 권력 다툼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총리직을 인정받는 것이 더 우선일 터.

    그렇다면 아마도 암살 사건 때문에 자신의 정통성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 두려운 것이리라.

    ‘···그렇군. 그래서 폭발의 원인을 규명하고 넘어가자는 것인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폭발의 원인을 조사하기 시작하면 내부의 소행이라는 것이 금세 밝혀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걱정하시는 바는 알겠습니다만, 그런 조치는 각하께도 오히려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겁니다.”

    “글쎄, 정말 그럴지는 잘 모르겠군. 장군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나는 이번 폭발 사고와는 전혀 무관하오만.”

    슈페어는 나를 바라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하긴, 지금의 그로서는 진범이 잡히더라도 딱히 잃을 게 없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슈페어에게 오히려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각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소? 난 당장이라도 친위대를 불러 당신을 고발할 수도 있소.”

    “뭐, 좋습니다. 각하의 말씀대로 사건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고 진범을 잡았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각하께서 정말 차기 총리가 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무슨···.”

    “총통 각하의 유언장 말입니다. 그것도 거짓인 것은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내 말에 곧바로 반박하려던 슈페어는 이내 곧 말문이 막혀버렸다.

    만약 이번 사건에 대해서 조사하게 된다면, 슈페어를 총리로 임명한다는 히틀러의 유서도 마찬가지로 거짓임이 탄로가 날 테니까.

    “그럼 당 내부에서는 차기 총리직을 두고 끝없는 경쟁이 시작되겠지요.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치면 친위대에서 정말 장관님을 총리로 모시리라 생각하십니까?”

    계속해서 이어지는 내 말에, 슈페어는 인상을 찌푸리며 나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그는 포기했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하하··· 이거 참,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요. 설마 장군님께서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희들도 이번 작전에 목숨을 걸어서 말입니다.”

    “그래서, 총통 각하의 사망은 어떻게 공포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의 수뇌부가 모두 당했는데 파르티잔의 습격 따위로 얼버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사실 슈페어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고 이렇게 총통 본부를 폐쇄한 채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에는 총통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독일 국민들에게 발표해야 할 테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일단은 사고에 의한 폭발로 인해서 총통 각하를 포함한 당 간부들이 위독하다는 걸로 발표를 합시다.

    현재 총통 본부 내부에서도 히틀러가 죽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으니, 이렇게만 발표하면 한동안은 더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동안 총리님께서 총통 각하의 권한을 위임해 전권을 행사하면서 당을 장악하십시오. 그리고 그 후에 총통 각하의 사망을 발표하는 겁니다.”

    “과연···.”

    슈페어는 내 대답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내, 나를 바라보며 한 가지를 되물었다.

    “···만약에, 그렇게 했음에도 당 내부에서 저에 반대하는 세력이 결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때는 총통 각하의 유지를 이어받은 정당한 차기 총리로서 저희에게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그럼 군이 슈페어 총리님을 위해서 움직일 것입니다.”

    “젠장, 그럼 각하께서는 그 대가로 도대체 무엇을 요구하실 겁니까.”

    “저희 군부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뿐입니다. 그건 바로, 전쟁과 작전 수행에 대해서 간섭받지 않는 것뿐입니다.”

    “후··· 제기랄.”

    내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슈페어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민에 잠겼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슈페어는 이마에 흐르는 식은 땀을 닦아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좋소.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당신을 믿고 한번 해보겠소.”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독일의 모든 일간지 1면에는 일제히 총통 각하께서 폭발 사고로 인해 중태에 빠졌다는 기사가 실렸다.

    *****

    그렇게 히틀러가 제거되고, 슈페어가 전권을 위임하며 나치당을 포섭하고 있을 무렵.

    우리 독일 국방군 내부에서도 크나큰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군 총사령관으로 영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각하.”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직도 자네를 완전히 신뢰하지는 못하겠네.”

    “예,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우선, 히틀러가 맡고 있던 육군 총사령관 자리는 나에게 마지막까지 반대했던 룬트슈테트 원수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가 맡은 총사령관직은 사실상 최고 원로로서 얼굴마담 역할에 가까웠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독소 전쟁을 지휘하게 될 것은 바로 동부전선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만슈타인 원수였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만슈타인 각하. 블라우 작전에 이어서 다시 한번 각하를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네가 일전에 얘기했던 병력 차출 명령이 취소될 것이라는 말이 설마 이런 의미일 줄은 몰랐네.”

    “글쎄요,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슈타인 원수는 묘한 눈빛으로 나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나에게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이듯이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자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네. 하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겠네.”

    “···무엇입니까?”

    “총통께서는 사망하신 건가?”

    그 물음에,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만슈타인은 웃으며 돌아섰다.

    “그런가. 그거면 됐네.”

    그렇게 개편된 지휘 체계 속에서, 육군 총사령부는 총통의 아집 때문에 막혀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남부집단군에서 병력을 차출해 북아프리카로 보내라는 명령은 취소되었으며, 여러 곳에서 차출된 부대들을 돈강 방어선에서 속속들이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기갑군은 롬멜 원수의 바람대로 트리폴리를 포기하고 튀니지로 물러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1943년 5월 20일.

    국방군과 육군 총사령부가 한창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을 무렵, 남부전선군 사령관 발터 모델 상급대장으로부터 한 통의 보고서가 올라왔다.

    그것 보고서의 내용은 바로, 소련군이 돈강 방어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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