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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58화 (58/157)
  • < 58화. 1943년 (2) >

    “···놈들은 분명 카프카스로 올 겁니다.”

    내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바로 카프카스였다.

    ‘이제 역사는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달라져 버렸지만, 그래도 소련군의 동원 능력과 자원 상황은 예측할 수 있지.

    지금쯤 소련은 석유 공급이 모두 끊겨서 길어도 1년이면 비축해둔 석유가 고갈될 터.

    그렇다면 놈들은 결국 카프카스를 되찾으러 올 수밖에 없다.’

    물론 만슈타인의 말대로 소련놈들이 카프카스가 아닌 다른 곳을 공격해서 이득을 볼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어떤 이득을 취하더라도 결국 카프카스를 되찾지 못한다면 장기적인 전쟁 수행 역량을 개선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과연, 카프카스라. 그럼 다른 장군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도 파울루스 장군의 말에 동의합니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이라면 결국 남쪽에서 결판이 날 수밖에 없겠군요.”

    그런 내 주장에 레프 원수와 클루게 원수도 동의를 표하며 나섰고, 일전에 나에게 충고를 했던 만슈타인 원수도 이 자리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히틀러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그럼 돈강 일대와 스탈린그라드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소련군의 공세를 격퇴하도록 하시오!”

    그렇게, 오늘의 회의는 현재의 전선을 유지하면서 카프카스를 지켜내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그리고 모두들 회의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는 찰나, 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총통 각하, 카프카스 방어를 위해서 한가지 청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청이라니? 무엇인가. 한번 말해보게.”

    “혹시, 9군 사령관 발터 모델 상급대장을 돈강 방어선 사령관으로 임명하면 어떻겠습니까?”

    *****

    1943년 2월 10일, 독일군이 돈강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했을 바로 그 무렵.

    모스크바의 스타브카에서는 스탈린으로부터 마지막 기회를 받은 주코프와 바실렙스키가 머리를 맞대고 공세 계획을 짜고 있었다.

    “주코프 동지,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그 전에 현재 상황부터 확실하게 파악하고 갑시다. 일전에 내가 부탁했던 조사는 끝마쳤소?”

    “예, 말씀하신 현황 보고서라면 여기 있습니다.”

    주코프의 말에 바실렙스키는 책상 서랍에서 서류 묶음 같은 것을 꺼내 올려놓았다.

    그 보고서는 여러 서류들을 급하게 짜깁기한 터라 난잡하고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당장 알아보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흠··· 아무래도 병력 동원이나 전차, 전투기의 생산에는 큰 문제가 없는 모양이군.”

    “예. 지난번 회의 이후로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대부분의 재료가 우랄 산맥에서 수급 할 수 있거나 다른 자재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코프는 조잡한 서류 묶음을 휙휙 넘겨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무래도 대체재를 사용하는 만큼 생산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모양이지만, 어차피 전차는 일단 전장에 나가서 굴러가기만 하면 그만이다.

    애당초에 지금도 평균 생존 시간이 20시간도 채 안 되는 마당인데 약간의 품질저하가 대수겠는가?

    그리고 걱정했던 식량 문제도 생각만큼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카프카스의 랜드리스 루트가 막힌 만큼 당장 배급량은 좀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식량은 극동의 일본군 영해를 통해서 얼마든지 들여올 수 있으니까.

    ‘지난번 회의에서는 정말 최악의 경우를 가정해서 말했지만, 의외로 생각만큼 나쁜 상황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서류를 넘기던 주코프의 손은 어느 한 페이지에서 멈춰섰다.

    그건 바로, 이번 달의 석유 수급량에 대한 보고서였다.

    “후···. 그럼 역시 문제는 석유인가?”

    “···예, 그렇습니다.”

    석유의 얘기가 나오자 바실렙스키와 주코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석유 수급량이 많이 줄었군.”

    “예, 아무래도 유전지대와 랜드리스가 동시에 막힌 게 제법 크게 작용한 모양입니다.”

    보고서에 적힌 석유 수급량은 부대의 보급은커녕, 민간 수요조차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쥐꼬리만한 양이었다.

    “그럼, 지금까지 비축된 석유로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겠소?”

    “지금까지와 같은 소모량이라면 일전에 동지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약 6개월 정도입니다만, 만약 배급량을 줄이고 최대한 아껴 쓴다면 최대 8개월까지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8개월이라···.”

    바실렙스키의 대답을 들은 주코프는 작전 지도를 바라보며 다시 고민에 빠졌다.

    ‘젠장··· 8개월이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군.’

    오늘이 2월 10일이니, 지금부터 8개월이면 제한 시간은 10월 10일까지.

    그때까지 카프카스의 독일군을 몰아내고 지금의 이 석유 수급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

    ‘카프카스라··· 현재 독일군은 길게 늘어져있는 상황이니, 아군에게 마냥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공세에 나설 때쯤에는 독일놈들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을 터···.’

    오랫동안 여러 작전과 모든 가능성을 모두 검토한 결과, 주코프가 내린 결론은 승리의 가능성도 패배의 가능성도 반반이라는 것이었다.

    단 50%.

    이 도박과도 같은 확률에 정말로 조국의 운명을 걸어볼 것인가.

    “후···.”

    그렇게 주코프가 한참 동안 고민에 빠져 있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실렙스키가 입을 열었다.

    “주코프 동지, 카프카스를 공격하는 것이 고민스러우십니까?”

    “···그렇소. 솔직하게 말해서, 아무리 기발한 작전을 생각해봐도 우리가 승리할 가능성은 고작 50%밖에 안 될 것 같군.”

    “그렇다면, 좀 더 작고 확실한 목표를 노려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주코프는 바실렙스키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작고 확실한 목표? 그게 무엇이오?”

    “북쪽의 핀란드군을 밀어내고 무르만스크를 점령해서 북해 랜드리스 루트를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북해 랜드리스 루트라···.”

    생각해 보면, 지금 소련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석유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희망봉-이란 랜드리스 루트와 유전지대를 회복하기 위해 카프카스를 점령하고자 한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약한 핀란드군을 몰아내고 무르만스크를 점령하기만 하면 북해를 통해서 미국으로부터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을 터.

    ‘···하긴, 유전지대를 회복하든 랜드리스로 받아먹든 당장 문제만 해결되면 그만이지.’

    그렇게 생각한 주코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려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동지, 북해 루트는 독일놈들의 방해가 심해서 곤란하지 않겠소? 게다가 수송을 맡은 영국놈들이 꽤나 징징거릴 텐데.”

    “물론 충분한 양을 보급받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급한 불을 끄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서 좀 더 전력이 충원되면 그때 카프카스를 되찾으면 됩니다.”

    거기까지 말한 바실렙스키는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영국 수송선이 조금 가라앉는 것쯤이야, 우리 인민들이 흘린 피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아니겠습니까? 동맹이라면 저놈들도 고통을 분담해야지요.”

    “하하하! 맞는 말이오. 그럼 다음 공세는 레닌그라드의 독일군을 압박하면서 무르만스크 루트를 탈환하는 것으로 합시다. 바실렙스키 동지, 한번 작전을 입안해보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독일군이 남쪽의 방어를 굳건히 다지는 동안, 소련군의 칼날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

    그 무렵, 모스크바 근교에 위치한 허름한 오두막집.

    이곳에는 계급장이 없는 소련군 군복을 입은 한 남자가 창가에 앉아서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는 바로 천왕성 작전 당시 남서 전선군을 지휘했던 사령관,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중장이었다.

    “후우···. 빌어먹을 놈들, 보드카 한 병도 안 주는군.”

    일전에 파울루스에게 패해서 병력을 모두 잃어버린 그는 어떻게든 남은 병력을 수습해 전선을 안정시킨 뒤, 이곳으로 불려와서 기약 없는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제기랄··· 조사를 할 거면 하던가, 아니면 풀어주던가. 아무 연락도 없이 방치만 하고 있으니, 정말 미쳐버리겠군.’

    사실, 지금 당국이 로코솝스키를 대하는 처우는 그리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로코솝스키는 작전에 실패하고 병력을 잃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교도소 대신 안전 가옥에 있었고 고문이나 조사를 받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런 무의미한 시간이 계속될수록 로코솝스키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로코솝스키가 이곳으로 끌려온 지 벌써 한 달째가 되었을 때, 이 허름한 오두막집으로 누군가가 찾아왔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당연히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리라 생각한 로코솝스키는 그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로코솝스키 동지, 일어나시오. 우리와 같이 이동해주셔야겠소.”

    싸늘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푸른 베레모를 쓴 NKVD요원들이 로코솝스키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 결국 올 것이 왔나.’

    이제 그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예전과 같은 수용소인가? 아니면 소문으로만 들었던 형벌부대?

    온갖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로코솝스키를 태운 차량은 모스크바의 중심가와 붉은 광장을 지나서 한 건물 앞에 멈춰섰다.

    그곳은 바로 소비에트 연방의 심장, 크렘린 궁이었다.

    “···설마.”

    “어서 들어가시오, 동무.”

    그렇게 NKVD요원의 뒤를 따라 크렘린 궁에 들어선 로코솝스키는 불편한 발걸음을 열심히 놀려서 어느 방 앞에 섰다.

    그 방문을 본 로코솝스키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이곳으로 부른 것이 누구인지를.

    “로코솝스키 동지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게.”

    이윽고 로코솝스키가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그의 예상대로 강철의 대원수, 스탈린과 주코프 대장이 앉아있었다.

    두 사람 앞에 선 로코솝스키는 시선을 위로 올리며 큰 소리로 절도있게 경례했다.

    “현재 대기 중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로코솝스키 중장입니다. 서기장 동지의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과연 서기장 동지께서는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가.

    로코솝스키가 초조하게 부동자세로 선 채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주코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서기장 동지, 일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로코솝스키 중장이 작전에 실패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로코솝스키 동지, 정말로 그런 것이었소?”

    도대체 의중을 알 수 없는 서기장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로코솝스키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나간 일에 대한 변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잠시 뒤, 서기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로코솝스키에게로 다가갔다.

    “결과로 보여주겠다라···. 그 말이 사실이어야 할거요, 동지.”

    스탈린은 그의 어깨에 손수 계급장을 달아준 뒤 축객령을 내렸고, 로코솝스키는 주코프와 함께 다시 복도로 나왔다.

    그렇게 잠시 앞서 걷던 주코프는 서기장의 집무실과 충분히 멀어진 다음에야 로코솝스키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로코솝스키, 다시 돌아온 것을 축하하네.”

    “정말 감사합니다, 동지. 그래서 저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됩니까? 카프카스입니까?”

    당연히 카프카스로 돌아가서 남서 전선군을 지휘하게 되리라 생각하던 로코솝스키에게, 주코프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아니, 자네의 역할은 레닌그라드를 포위해주는 것일세.”

    < 58화. 1943년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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