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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56화 (56/157)
  • < 56화. field marshal >

    “제가··· 참모총장을 말입니까?”

    “그래. 소련군의 대공세를 막아내고, 스탈린그라드를 정복한 자네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에게 그 자리를 맡기겠나.”

    히틀러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는 파울루스를 보며 미소지었다.

    ‘아무래도 이 친구는 지금 독일에서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 되었는지 아직 잘 모르는 모양이군.’

    하지만 히틀러로서는 그의 그런 모습이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명예와 권력에 무관심하면서도 유능한 장군이라니, 이거야말로 딱 자신이 찾던 참모총장감이 아니던가.

    히틀러는 만면에 웃음을 활짝 지으며, 파울루스 상급대장에게 말했다.

    “다음 달, 베를린에서 블라우 작전의 대승리를 축하하는 수훈식이 있을 걸세.

    그 자리에서 자네를 야전 원수에 임명하고 참모부로 불러들일 예정이니, 그때까지 6군 사령관직을 인수인계해 두게나. 알겠나?”

    “···영광입니다!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하하하, 좋네. 그럼 다음에는 베를린에서 보겠군. 남은 기간동안 히틀러부르크를 잘 부탁하네.”

    히틀러는 파울루스와 악수를 나눈 뒤, 총통본부로 향하는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

    그렇게 히틀러가 돌아간 뒤 몇 주간, 나는 점령지 관리 문제와 사령관직 인수인계 작업 따위의 따분한 서류 업무를 처리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사실, 6군 사령관의 결제가 필요한 업무들은 내 후임으로 내정된 전 51군단장 자이들리츠-쿠어츠바흐 대장이 다 가져가 버려서 내가 할만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내가 커피나 마시면서 느긋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무렵, 6군 사령부에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그는 바로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였다.

    “이런, 한창 휴가를 즐기고 계셨던 모양이군. 방해해서 미안하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내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올리자, 만슈타인은 원수봉을 들어서 적당히 경례를 받아준 뒤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도 커피 한 잔 주겠나?”

    “물론입니다.”

    잠시 뒤, 당번병이 커피를 내오자 만슈타인은 커피잔을 들면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원수 진급 축하하네. 이제 참모부로 가버리면 얼굴 보기 힘들 테니, 마지막으로 한번 보려고 이렇게 왔네.”

    “···과분하게도 그리 되었습니다.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과분한 일이 아닐세. 이번 전역에서 자네가 이루어낸 전과들을 보면 원수 계급장을 달기에도 부족함이 없지.”

    “하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나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만슈타인 원수의 치하에 얼떨떨하게 답했다.

    그러자 만슈타인은 그런 내 모습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말이네만, 차기 참모총장님께서는 올해의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리라 생각하시는가?”

    “···앞으로의 전황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러운 화제 전환에 나는 만슈타인 원수를 바라보았다.

    ‘하긴, 저 남자가 축하 인사나 하려고 여기까지 왔을 리가 없지. 아마 여기서부터가 진짜 본론일 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커피잔을 치우고 책상 위에 동부 전선 작전 지도를 펼쳤다.

    1943년 2월 1일, 현재 동부 전선은 다음과 같은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우선, 북쪽으로는 라도가 호수(18군)부터 일멘 호수(16군), 르제프(9군), 칼루가(3기갑군), 오룔(4군)까지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이 전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보로네슈의 2군부터 스탈린그라드, 그로즈니까지 우리 남부집단군이 카프카스 깊숙한 곳까지 발을 뻗은 모양새였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독일 국방군은 어디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

    나는 잠시 고민한 끝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선, 지도 위에 그어진 전선만 놓고 보면 우리 독일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처럼 보입니다.

    북쪽으로는 레닌그라드와 무르만스크로 향하는 길목을 점령했고, 중앙에서는 아직도 모스크바를 코앞에서 위협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그로즈니의 유전과 랜드리스 루트를 차단한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렇지. 정말 대단한 일이네. 그래서, 43년에는 마지막 일격을 가해서 소련 놈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을 생각인가?”

    마치 시험하는듯한 만슈타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비록 모든 자원 줄을 차단당하긴 했지만, 아직 소련놈들에게는 비축된 물자가 제법 남아 있을 겁니다.

    그러니 놈들은 마지막 남은 공세 역량을 모두 투입해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개하려 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맞네. 그럼 그 반격 지점이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당연히 이곳, 카프카스 아니겠습니까.”

    나는 그의 물음에 일고의 고민도 없이 바로 답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만슈타인 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대답과 조금 달랐다.

    “흠···. 물론 소련의 입장에서는 이곳을 되찾는 게 급선무이긴 하겠지.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네.”

    “···어째서입니까?”

    “그 말에 답하기 전에 하나 묻고 싶네. 자네는 어째서 지금과 같은 유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방어를 하자고 말했나?”

    “그야, 아군의 전선이 너무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독일군은 북쪽의 라도가 호수부터 남쪽의 그로즈니까지 무려 2200km의 거리에 걸쳐서 넓게 배치되어 있었다.

    즉, 지금의 독일군은 가장 많은 땅을 점령하여 가장 유리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가장 넓게 배치되어 있어 가장 취약해진 상황이기도 한 것이었다.

    “역시 정확하게 봤군. 맞네, 현재 아군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너무 넓게 배치되어 있고 그에 반해 상대는 어디를 공격하든 상관없는 상황이지.”

    “하지만 놈들은 자원 때문에 카프카스로 올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뭐,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겠지만, 왠지 모르게 내 생각에는 놈들이 다른 곳으로 올 것 같단 말이지.”

    “다른 곳··· 말입니까.”

    분명 만슈타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지금 소련놈들이 카프카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공세를 취한다면 아군의 허점을 파고들어서 이득을 볼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 말인즉슨, 마지막 남은 공세 역량을 카프카스가 아닌 다른 곳에서 소모한다는 의미가 아닌가? 그게 정말로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가 고민에 빠져 있자, 만슈타인 원수는 슬쩍 말을 흐리며 커피잔을 비웠다.

    “···그냥 내 개인적인 직감에 불과하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말게나. 커피는 잘 마셨네. 이만 가보겠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만슈타인이 떠난 뒤, 나는 한참 동안이나 동부 전선 작전 지도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베를린으로 향하는 수송기에 몸을 실었다.

    *****

    “각하, 이제 곧 내릴 시간입니다. 슬슬 준비를 하시지요.”

    “···그런가. 고맙네.”

    나는 옆에서 들려오는 부관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수송기 아래에는 회색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후··· 드디어 도착했구만.”

    스탈린그라드에서 베를린까지의 거리는 무려 2200km. 중간에 몇 번이고 착륙하고 또 갈아타야 하는 정말 길고도 긴 여정이었다.

    그렇게 수 시간에 걸친 비행을 마치고, 간신히 수송기에서 내린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린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의 활주로 저편에서 무수히 많은 기자와 시민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놀라운 광경에 내가 가만히 서 있자, 저쪽에서 검은색 차량 한 대가 천천히 다가와서 내 앞에 섰다.

    그곳에 타고 있는 이는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하하,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어서 차에 타시오.”

    “···예, 각하.”

    내가 총통의 옆자리에 앉자, 차는 천천히 거리를 달려서 국회의사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지크 하일!”

    “하일 히틀러!!”

    그리고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베를린 시민들의 함성과 환호가 뒤따랐다.

    그 모습에 히틀러는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파울루스 장군, 지금 기분이 어떠시오?”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하하! 역시 겸손하시구려. 하지만 좀 더 당당해도 좋소. 귀관은 그럴만한 자격이 있으니까.”

    “···예.”

    그렇게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한 우리는 맞은 편에 위치한 크롤 오페라 극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화려하게 꾸며진 강당에서 수많은 고위 인사들과 장교단, 그리고 초췌한 얼굴의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이 참석한 가운데 진급식이 시작되었다.

    “귀관은 압도적인 열세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지휘와 놀라운 지략을 발휘하여 적군의 대공세를 막아내고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해내었다.

    귀관과 6군이 보여준 영웅적인 분투는 전 장병들의 귀감이 되었으며 그대들이 이루어 낸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에 국방군 총사령관의 이름으로 파울루스 상급대장을 야전 원수에 임명한다.”

    총통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손수 원수 계급장을 달아주었고,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야전 원수로 진급했다.

    ‘야전 원수라···.’

    그러나 이번에는 전생과는 달랐다.

    처참한 패배의 끝에 자살을 종용당했던 그 날의 진급과는 다르게, 오늘의 나는 빛나는 승리를 거머쥐고서 당당하게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그렇게 6개월 만에 돌아온 나는 모두의 갈채와 축하 속에서 야전 원수가 되어 참모본부로 복귀했다.

    *****

    다음 날 아침,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깔끔하게 면도를 하고는 집을 나섰다.

    그렇게 매일 보던 출근길을 걸어서 총참모본부에 도착한 그는 집무실에 가만히 서서 자신의 책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이 이 책상에 앉은 지가 벌써 몇 년째였던가. 그래, 루드비히 베크 장군이 사임한 게 1938년이었으니 벌써 5년째겠군.

    그러나 어느덧, 이제는 그가 떠나갈 차례가 되어버린 것이다.

    “후···.”

    할더는 어젯밤, 자신의 손으로 깨끗하게 정리한 참모총장실에 앉아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때, 문 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이에 할더가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영웅이 되어 돌아온 자신의 후임,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가 서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각하.”

    “파울루스··· 아니, 이제는 원수 각하라고 불러드려야 할까. 아무튼, 진급 축하하네.”

    6개월 만에 너무나도 초췌하게 변해버린 할더의 모습에, 파울루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제가 전방에서 싸우는 동안, 총참모부에서도 격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 정말 힘든 싸움이었지.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못 버티겠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할더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곳으로 오는 동안, 총통께서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셨네.”

    < 56화. field marshal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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