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51화 (51/157)
  • 51화. 천왕성 작전 (끝) - 무료 마지막 화

    “빌어먹을··· 방한복을 입어도 몸이 으슬으슬 떨리는군. 이러다 정말 얼어 죽

    겠어.”

    1942년 12월 29일.

    카프카스에서 올라온 3기갑군단 소속의 3호 돌격포 전차장, 오토 그로스만 소

    위는 방한복의 옷깃을 여미며 투덜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코트만 걸쳐도 충분하던 카프카스가 그립습니다.”

    “따뜻한 남쪽에 남은 놈들은 지금쯤 유전 경비나 서면서 놀고 있을 텐데, 저

    희만 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그의 혼잣말에 옆에 앉아있던 병사들이 한마디씩 보태며 불평을 터트렸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 그 친구들도 카프카스 산맥으로 기어 들어간 파

    르티잔 놈들 소탕하느라 개고생하고 있을 테니까.”

    그로스만 소위는 그런 그들을 애써 달래며,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시침과 분침이 가리키는 시각은 8시 50분.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벌써 시간이 되었군. 중대 본부 다녀올 테니까, 사주 경계 똑바로 하고 있어

    라.”

    “예!”

    그로스만은 힘차게 대답하는 병사들을 뒤로 한 채, 중대 본부로 향했다.

    그렇게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해치며 한참을 걷고 있자, 어느새 옷깃 사이

    로 싸늘한 칼바람이 스며들어왔다.

    “빌어먹을··· 이놈의 추위는 정말 적응이 안 되는구만.”

    그리고 잠시 뒤, 그는 전신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꼴로 중대 본부 참호에

    도착했다.

    “317호 돌격포 전차장, 오토 그로스만 소위입니다. 중대 회의에 참석하기 위

    해 방문했습니다.”

    “좋아, 그럼 전원 다 도착했으니 슬슬 회의를 시작하지. 그로스만, 자네는 밖

    에서 눈 좀 털고 들어오게.”

    “···예.”

    전차장들 중 그로스만이 제일 늦었던 모양인지,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포대장

    은 곧바로 중대 회의를 시작했다.

    “다들 여기까지 올라오는 기차에서 소문은 많이 들었겠지? 우리가 스탈린그라

    드를 함락시키러 간다고 말이야.”

    “예!”

    “그런 헛소리는 잊어버려라. 우리 3기갑군단의 임무는 칼라치 서쪽 방면을 밀

    고 올라가서 소련놈들의 퇴로를 차단하는 거다.”

    “칼라치 서쪽 말입니까?”

    어리둥절해 하는 전차장들에게 포대장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계속해

    서 말을 이었다.

    천왕성 마지막 (3기갑군단).png

    “그래, 우리는 바로 여기서부터 돈강을 따라 진격해서 고루빈스키까지 향한

    다. 목표지점까지의 거리는 약 30km고, 그동안 제804 척탄병 대대가 우리를

    지원할 거다.”

    그로스만 소위는 포대장의 설명을 들으며 가만히 지도를 살펴보았다.

    중대 회의를 위해 주어진 이 전술 지도에는 최소한의 정보밖에 그려져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칼라치 서쪽에 있는 소련군의 표식이 야전군 기호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다.

    ‘야전군이라··· 설마 우리 군단만으로 야전군을 돌파하고 진격해야 하는 건가?’

    이에 의아함을 느낀 그로스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포대장님, 질문 하나 해도 괜찮겠습니까?”

    “좋아, 한번 말해보게.”

    “이 전술 지도상으로는 이곳에 1개 야전군 규모의 소련군이 있는 것으로 그려

    져 있습니다. 저희의 전력만으로 이곳을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걱정말게. 6군 사령부에 의하면, 저놈들은 오랜 격전 끝에 이제 일개

    군단 수준의 전력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니까 말이야.”

    “···그렇군요.”

    야전군이 군단 규모까지 줄어들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단 말

    인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얘기에 그로스만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돈강을 도하해서 허겁지겁 도망치는 소련놈들을 쫓는 것뿐

    이다. 뭐,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지.”

    “하하, 맞습니다.”

    “좋아, 작전은 내일 아침 7시에 개시한다. 그때까지 각 포반은 모두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예!”

    그렇게 중대 회의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 7시, 루프트바페의 폭격 지원과 함

    께 그로스만의 돌격포 중대는 진격을 시작했다.

    “전차 전진!”

    “전진!”

    그로스만의 구령과 함께 317호 돌격포는 힘차게 설원을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스만 소위는 곧, 어제 포대장이 했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령부의 정보가 맞았군. 확실히 야전군이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작고 방어진

    지도 허접하다.’

    급조된 적의 참호 안에는 보병들만 가득했고, 그나마 돌격포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저쪽에 숨어있는 대전차포 한문뿐.

    그럼 대전차포만 빨리 처리하면 우리에게 위협이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

    다. 그리고 대전차전이 없다면 기관총도 같이 쓰는 것이 더 유리할 터.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그로스만 소위는 곧바로 승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베버, 넌 올라가서 기관총을 잡아라. 장전은 내가 한다.”

    “예!”

    “막스! 1시 방향, 대전차포부터 처리해라. 그 다음은 참호를 공격하도록. 이

    제부터 탄종은 전부 고폭탄이다.”

    “알겠습니다!”

    타다다다당!!

    위에서 베버가 기관총을 쏴갈길 때마다 돌격포로 접근하던 소련군 병사들이

    쓰러졌고, 7.5cm 주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참호들이 차례대로 무너져 내려간다.

    그렇게 돌격포가 참호를 무력화 시키고 지나가면, 뒤따라오던 척탄병들이 참

    호 안으로 뛰어들어 소련군의 잔당들을 처리했다.

    “좋아! 전차 전진! 우리는 참호를 넘어서 계속 진격한다!”

    “예! 전차 전진!”

    그리하여 1942년 12월 31일.

    그로스만 소위가 진격을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났을 무렵, 65군의 잔당을 모두

    쓰러트린 3기갑군단은 칼라치 북쪽의 소도시 고루빈스키까지 도달해 있었다.

    *****

    그 무렵, 클레츠카야의 남서 전선군 사령부.

    로코솝스키 중장은 보드카를 들이마시며 눈발이 휘날리는 창밖의 풍경을 멍하

    니 바라보고 있었다.

    “후우···.”

    그런 그의 앞에는, 이제는 사라져버린 65군의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

    1942년 12월 29일자 65군 보고서

    - 오늘 아침 대규모 독일군 기갑부대의 기습적인 공세가 시작되었음.

    - 적은 돌격포 포함 약 200여 대로 추정.

    - 이에 칼라치 가도 일대의 부대가 전멸, 적군은 현재 고루빈스키를 향해 진

    격 중.

    로코솝스키는 그 보고서를 힐끗 바라보다가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젠장··· 다 끝났군.”

    끝났다.

    남서 전선군의 마지막 도박도, 주코프 장군의 천왕성 작전도. 그리고, 그의

    운명까지도.

    전부 다 이렇게 끝나버린 것이다.

    로코솝스키는 가죽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은 채, 취기에 젖은 머리를 굴려서

    생각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돈강을 도하한 게 잘못이었나?

    아니면 그날 우연히 조우한 것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놈들이 다리를 부숴서?

    ‘아니, 그런 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작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

    게다가, 사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남서 전선군의 상황은 결코 나쁘지 않

    았다.

    비록 남서 전선군의 모든 전력을 투입한 공세가 어이없이 막히긴 했지만, 어

    쨌든 아군이 적을 압박하는 형세였으니까.

    이대로 교착 상태를 유지하다가 내년에 병력이 증원된 다음 다시 한번 공세에

    나서면 충분히 놈들을 격퇴할 수 있으리라.

    저 보고서가 올라오기 전까지 로코솝스키는 그렇게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그랬을 터인데··· 갑자기 저 기갑부대는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런데 며칠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기갑부대가 등

    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그동안 간신히 전선을 유지하던 65군은 단 이틀 만에 사라져 버렸고, 돈강 너

    머에서 독일군을 압박하던 5기갑군과 제1근위군은 포위당할 위기에 처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증원이라니··· 빌어먹을.”

    로코솝스키가 다시 한번 술잔을 들이키려 할 때, 방문이 열리더니 부관이 들

    어왔다.

    그는 술에 취한 로코솝스키의 모습을 못 본 척하며 보고를 올렸다.

    “사령관 동지, 5기갑군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방금 전, 제1근위군의 잔여 병

    력과 합류해 돈강을 도하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독일군 기갑부대의 추격을 뿌리치며 퇴각 중입니다.”

    “···그런가. 그럼 6군과 21군은 어떻게 하고 있나?”

    “6군과 21군도 5기갑군의 퇴각에 발맞춰 돈강 너머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루

    마니아와 이탈리아 놈들이 아군 부대를 추격하고 있긴 하지만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로코솝스키는 부관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5기갑군에 6군, 21군이라.

    이 정도 전력이면 뭐, 내 후임자가 새로운 전선을 구축할 정도는 되겠지.

    로코솝스키는 씁쓸하게 웃으며 부관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알겠네. 자네도 가서 퇴각 준비를 하도록 하게. 우리도 돈강을 건너가야 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렇게 부관마저 물러난 다음, 로코솝스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

    았다.

    어두운 밤, 눈발이 휘날리는 창밖의 풍경은 마치 로코솝스키의 미래처럼 어둡

    기만 했다.

    잔 안의 보드카를 모조리 들이마신 로코솝스키는 서랍 안에 들어 있던 토카레

    프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후우···.”

    총구의 싸늘한 감촉이 관자놀이에 느껴진다. 이제 이 손가락만 당기면, 모든

    것이 끝나리라.

    로코솝스키가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의 책상 위에 놓

    여 있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따르르르릉!

    “······.”

    로코솝스키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로 한참 동안이나 그것을 바라보았다.

    따르르르릉!

    “제기랄.”

    그러다가 이내, 그는 권총을 잠시 내려놓고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남서 전선군 사령관, 로코솝스키 중장입니다.”

    “나 주코프 대장이오. 방금 전에 보고 받았소만, 공세가 실패해서 퇴각 중이

    라지?”

    “···예.”

    주코프는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질책? 경고? 아니면 분노?

    하지만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로코솝스키는 모스크바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잠시 뒤, 주코프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후, 일단은 병력을 물리고 전선부터 재구축하도록 하시오.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지. 알겠소?”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어졌다.

    그러나 전화가 끊어진 뒤에도, 로코솝스키는 수화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설마··· 아직 기회가 있는 건가.’

    그러다가 그는 결국 권총을 다시 서랍에 집어넣었다.

    *****

    1943년 1월 5일.

    3기갑군단의 공세가 시작된 지 약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스탈린그라드 일대

    의 전선은 크게 변해있었다.

    “각하, 보고입니다. 퇴각하는 소련군을 추격하던 11군, 루마니아 3군, 이탈리

    아 8군이 돈강까지 도달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동맹국 친구들도 소련놈들을 돈강 너머로 밀어내는 데 성공했나 보군.”

    “아마 소련군이 전선을 재구축 하기 위해서 스스로 물러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북쪽 전선도 제법 밀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만슈타인 원수가 보내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투입된 1개 기갑군단의 효과

    는 정말로 놀라웠다.

    양측 합계 5개의 야전군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단번에 뒤집어 버

    리고, 65군과 제1근위군을 사실상 지도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작전 지도 위의 전선은 마치 천왕성 작전이 시작되기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천왕성 찐막 (전개 과정).png

    ‘하지만 비슷한 건 전선의 모습뿐이고, 그 실상은 전혀 다르지.’

    그러나 전선에 배치된 소련군의 숫자는 천왕성 작전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들

    었고, 더 이상 병력이 증원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전생의 나에게 끔찍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주코프의 천왕성 작전이

    완전히 실패로 끝났다는 것.

    나는 지도 위의 그 모습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모

    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헤르만 호트 상급 대장부터 잘무트 대장, 그리고 군단장들까지.

    나는 지금껏 함께 싸워온 전우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드디어 스탈린그라드를 점령할 시간이 왔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