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50화 (50/157)

50화. 천왕성 작전 (12)

“파울루스 장군, 전황은 좀 어떤가?”

전화기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남부집단군 사령관 만슈타인 원수였다.

‘만슈타인 원수가 이렇게 직접 연락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쪽의 전황 말씀이십니까?”

“그래, 자네에게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전화했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목소리에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스탈린그라드 일대

의 전황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알겠습니다. 각하께서도 그동안 계속 보고를 받으셨을 테니, 세부적인 설명

은 생략하고 전체적인 상황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좋네. 한번 말해보시게.”

“현재 스탈린그라드 포위망과 남쪽, 북쪽 방면은 전선을 굳건하게 사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강을 도하해서 칼라치 일대를 점령하고 있는 서쪽의 소련군입니다

만, 이쪽은 3주에 걸친 공방 끝에 현재 위치에서 팽팽하게 대치 중입니다.”

천왕성 마지막 (마지막 반격 직전).png

사실, 지금의 이 상황만 보면 아군의 작전 목표는 이미 달성된 거나 마찬가지

였다.

애당초에 만슈타인 원수가 내렸던 명령은 소련군을 물리치라는 게 아니라 스

탈린그라드의 포위망을 유지하면서 놈들의 공세를 막아내라는 것이었으니까.

이대로 지금의 대치 상태가 이어지기만 해도 놈들이 스탈린그라드를 탈환하거

나 우리를 포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우니, 이 상황은 우리의 승리라고 봐

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이 대치 상태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소련군의 공세는 어떻게든 막아냈습니다만··· 반대로 놈들을 밀어내

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지금 이대로 계속 버틴다고 해도 아군이 승리할 거라는 보장도 없습니

다.”

“역시 보급 때문인가?”

“···예, 맞습니다.”

현재 아군은 6군과 4기갑군, 11군까지 3개 야전군의 보급을 모두 남쪽의 철로

에만 의지하고 있는 상태.

그러나 이쪽의 라인은 남쪽으로 길을 돌아서 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가, 중간의 기착지까지 카프카스로 내려간 1기갑군, 17군의 보급로와 같은 길

을 사용하는 바람에 보급품을 충분히 실어나르기 어려웠다.

그래서 현재 아군은 천왕성 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미리 비축해둔 보급품을 조

금씩 갉아먹으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버티는 것도 결국에는 한계에 도달할 터.

그 상황에 도달하면 우리도 결국 현재 위치를 포기하고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계속 보고를 받아왔을 만슈타인 원수도 이 사실을 당연히 알고 있을 터.

모든 보고를 마친 나는 초조하게 수화기 너머의 말을 기다렸다.

과연 만슈타인 원수는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만슈타인 원수의 말은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랐다.

“훌륭하군. 그 정도면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버텨주었네.”

“···그렇습니까.”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만슈타인 원수의 칭찬에 나도 모르게 떨떠름하게 답했다.

그런 내 모습에 만슈타인은 아주 흡족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하하하, 설마 내가 고작 3개 야전군만으로 소련군의 공세를 완전히 물리치는

것을 바랬겠는가?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자네들에게 기대한 것은 소련군의 남하를 막으면서 버

티는 것뿐이었네. 그런데 자네는 그 이상을 해주었군.”

‘우리에게 기대한 것은 소련군의 남하를 막으며 버티는 것뿐이었다고?’

그 말에 내 머릿속에서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일련의 사건들이 연결되기 시

작했다.

‘그러고 보니, 만슈타인 원수는 카프카스로의 공세를 지속하기 위해서 우리만

으로 소련군을 막도록 명령했던 거였지. 그렇다면···.’

그리고 곧, 나는 그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렇군. 만슈타인은 처음부터 이곳에 이런 대치 상태가 벌어지리라고 예상했

던 거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카프카스 일대를 모두 점령한 다음

전력을 북쪽으로 돌려서 소련군을 격퇴할 계획이었던 거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내심 안도하면서도 다시 한번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그가 이렇게 전화를 했다는 것은 카프카스 점령을 벌써 끝냈

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설마, 카프카스 점령을 벌써 끝내신 겁니까?”

“하하, 자네는 눈치가 너무 빠르군. 이건 크리스마스 깜짝 선물로 보내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크리스마스 선물 말입니까?”

내가 의아해하며 되묻자, 만슈타인 원수는 웃으며 답했다.

“그래, 이제 곧 제3기갑군단이 그곳으로 파견될 것이네.”

*****

잠시 시간을 되돌려서 1942년 7월 1일.

블라우 작전이 막 시작되고, 6군과 4기갑군이 돈강을 따라 스탈린그라드를 향

해 쾌속 진격하고 있을 바로 그 무렵.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상급대장이 이끄는 1기갑군과 리하르트 루오프 상급대

장의 17군은 로스토프를 점령한 뒤 카프카스의 유전을 향해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1기갑군과 17군의 앞길을 막아서는 적은 아무도 없었다.

원래 이곳을 방어하고 있던 북 코카서스 전선군은 블라우 작전 초기에 포위당

해서 사실상 전멸해 버렸고, 살아남은 부대들도 주코프가 내린 퇴각 명령에

따라 도망치기 바빴던 것이다.

그리하여 1942년 8월 1일, 독일군이 로스토프를 점령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무렵.

17군은 노보로시스크부터 마이코프까지, 1기갑군은 스타브로폴을 지나 퍄티고

르스크까지 무려 477km나 진격해 있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앞서나가던 1기갑군의 진격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끝없이 후퇴하기만 하던 소련군이 드디어 반격을 시작한 것

이다.

“동지, 독일군의 수송 행렬을 발견했다는 연락입니다!”

“수송 부대는 얼마나 있었나?”

“아마 일개 중대인 것으로 파악됩니다.”

“좋네, 지금 즉시 공격하게!”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에는 전력이 부족했던 소련군은 험준한 카프카스 산맥으

로 들어가 파르티잔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고, 거기에 더해 너무나도 길어진

보급로 때문에 1기갑군은 빈번히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련군은 결국 1기갑군의 진격을

막아 세우지 못했다.

왜냐하면, 주코프가 모든 전력과 자원을 스탈린그라드에 집중시키는 바람에

소련군도 마찬가지로 보급의 문제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9월 1일이 되었을 때, 1기갑군은 그로즈니 유전으로부터 고작

80km 떨어진 모즈도크까지 도달해 있었다.

스칼린그라드-카프카스 전도 (진격선).png

“사령관 동지, 스타브카의 명령입니다.”

“···자네가 한번 읽어보게.”

“알겠습니다! 1942년 9월 2일자 최고 중앙 지휘 사령부 명령. 44군과 46군은

그로즈니의 유전을 파괴하고 퇴각할 것. 단, 유전의 파괴를 최우선 임무로 삼

는다.”

“후···.”

1기갑군에 밀려 그로즈니까지 물러나 있었던 44군 사령관, 페트로프 소장은

스타브카의 명령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기랄, 보급도 증원도 아무것도 안 주면서 지금 그로즈니의 유전을 파괴하

라고?’

사실 페트로프도 스타브카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지금 위에서는 스탈린그라드가 불바다가 되고 있다고 하니 보급이 제대

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를 탈환하는 데 우선 병력을 집중하겠다는 것도, 그로즈

니의 유전을 넘겨줄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독일군 기갑부대가 코앞까지 온 마당에 한가하게 유전 파괴 작업

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사실 유전을 파괴하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장 시추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만약 유전을 복구하

려고 하더라도 최대한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제기랄···.’

페트로프 소장이 스타브카의 명령서를 바라보면서 한숨짓고 있자, 46군 사령

관 콜로프 소장이 입을 열었다.

“···동지, 어떻게 하실 거요?”

“후··· 별수 있겠소. 최고 사령부의 명령인데 수행하는 수밖에.”

“알겠소. 그로즈니 유전을 파괴할 동안만이라도 독일군을 막아봅시다.”

결국, 마지막까지 도망치며 독일군의 진격을 방해하던 44군과 46군은 그로즈

니 앞에서 1기갑군과 맞부딪히게 되었고, 그날의 전투를 끝으로 북 코카서스

전선군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

그리고 다시 시간을 되돌려서, 1942년 12월 24일. 스탈린그라드 일대의 독일

군 진지에도 크리스마스 이브는 찾아왔다.

나는 창문 너머로 눈사람을 만들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꾸미는 병사들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이런 곳에도 크리스마스는 찾아오는군.”

“예, 병사들도 무척이나 들떠 있습니다.”

“좋은 일이지. 슈미트 중장, 오늘과 내일만큼은 보급을 걱정하지 말고 특별

배식을 하게나. 케이크를 만들거나 지휘관의 판단하에 약간의 술을 배식해도

좋네.”

“···괜찮겠습니까? 비축된 보급품도 그다지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만.”

“하하, 괜찮네. 만슈타인 원수께서 깜짝 선물을 보내주시기로 하셨으니.”

사실 원래였다면 최대한 보급품을 아끼며 나중을 대비해야 할 테지만, 만슈타

인 원수가 약속대로 기갑군단을 보내준다면 지금의 이 대치 상태는 그리 오래

가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판단한 나는 화끈하게 창고를 열기로 결심했고, 그리하여 스탈린그라

드의 크리스마스는 힘겨운 전황에도 불구하고 꽤나 즐겁고 풍요롭게 진행되었다.

“이봐, 한스! 편지다!”

“감사합니다!”

“하하, 동생이 결혼한다는군.”

때마침 도착한 화물차는 고향의 가족과 친구들이 보내온 두툼한 편지 뭉치를

한가득 실어날랐고, 얼어붙은 참호에 앉아 이 편지를 받은 병사들은 울고 웃

었다.

또, 무전기나 라디오가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 퍼졌

고, 병사들은 캐롤을 부르며 특별 배식된 포도주와 케이크를 먹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전쟁은 멈추지 않았다.

몇몇 불행한 부대는 건배를 하는 순간에 소련군의 포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아

까운 포도주를 모두 쏟아버렸고, 어떤 이들은 이 거룩한 날에도 여전히 총을

잡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났을 무렵.

나는 만슈타인 원수가 보낸 선물을 받기 위해 카르포프카 역으로 향했다.

“하하, 만슈타인 원수 각하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이제야 도착하셨구만.”

역으로 들어오는 열차의 화물칸에는 무수히 많은 전차들과 드럼통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3기갑군단이라. 전차가 총 몇 대였던가?”

“일단 서류 상으로는 200여 대 정도가 오는 것으로 적혀있습니다.”

“200대라, 그 정도면 충분하군.”

나는 하차 작업을 하는 전차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이 길고 길었던 전투를 끝낼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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