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43화 (43/157)
  • 43화. 천왕성 작전 (5)

    1942년 11월 19일, 오전 10시 20분.

    육군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오늘도 아침 브리핑을 위해서 총통의

    집무실로 향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이건만, 오늘따라 할더의 발걸음은 유난히도 무거웠다.

    ‘후···.’

    이윽고, 집무실 앞에 도착한 할더는 부동자세로 서 있는 위병에게 말을 걸었다.

    “육군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이네. 총통 각하께서는 안에 계신가?”

    “예, 지금 참모총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바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알겠네.”

    할더가 집무실로 들어가자, 히틀러는 카프카스부터 터키, 이집트, 이란까지

    그려진 대축적지도를 들여다보다 고개를 들었다.

    “할더 장군, 오늘은 딱 좋을 때 오셨구려. 안 그래도 그로즈니 점령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던 차였소.”

    그런 히틀러의 모습에 할더는 마음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애

    써 담담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하, 긴급사태입니다. 어제 새벽부터 돈강 일대와 스탈린그라드 남쪽에서

    소련군의 대규모 공세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무, 뭐라고?”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히틀러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하고 할더를 멍하

    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에 할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새롭게 공세에 투입된 소련군 병력은 최소 70

    만 이상으로 추정되며, 놈들은 이미 치르강과 칼라치 앞까지 도달한 상태입니

    다.”

    사실 소련군이 이렇게 대규모 반격에 나서리라는 것은 이전부터 충분히 예상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6군과 루마니아군이 소련군의 공세 징후

    에 대해서 꾸준히 보고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총통 각하께서는 ‘소련군의 예비대는 이미

    모두 고갈되었으니 그럴 리 없다’며 일축해버렸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빌어먹을···.’

    할더는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최고사령부의 추태에 한심

    함과 분노를 느끼며 총통에게 간청했다.

    “···각하, 지금이라도 모든 진격을 멈추고 남부집단군을 퇴각시켜야 합니다.

    1기갑군과 17군을 로스토프까지, 6군과 4기갑군을 돈강 너머까지 물린다면 비

    록 잠깐 후퇴할지언정, 소련군의 반격에 맞설 수 있습니다.”

    이 정도까지 심각한 상황이라면 총통도 마지못해 후퇴를 허락하리라.

    그러나 할더의 예상과는 다르게, 총통은 본인이 만들어낸 이 비극 속에서도

    단 한 걸음도 후퇴를 허락할 마음이 없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소. 이제 빛나는 승리까지 단 한걸음밖에 남지 않았는데,

    여기서 후퇴라니! 무조건 현재 위치를 사수하시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위태로운 위치에서 맞서 싸우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다 못해 6군만이라도 돈강 너머로 후퇴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자네는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후퇴만을 주장하는군. 그렇게 매번

    도망치기만 하면 도대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나?”

    “각하! 저는 도망치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무의미하게 죽어가는

    병사와 젊은 장교들을 구하고 싶을 뿐입니다.”

    할더의 마지막 말에 히틀러는 입을 다물고 잠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다 이

    내, 책상을 강하게 내려치며 분노를 터트렸다.

    “할더 장군! 평생 참모부에서 놀고 먹던 자네가 감히 나한테 병사들에 대해서

    들먹이는 겐가? 단 한 번도 야전에 서본 적 없는 자네가?”

    “말이 심하십니다, 각하!”

    “듣기 싫소! 당장 나가시오!”

    히틀러의 거친 축객령에, 할더는 말없이 분노를 삼키며 집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런 그의 등 뒤에서는 무조건 현재 위치를 사수하라는 히틀러의 고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쩌다가 참모총장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무력하고 하찮게 되어

    버렸단 말인가.’

    할더는 무기력하게 복도를 걸으며, 남쪽으로 내려간 자신의 후임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군. 이제는 그 녀석이 잘 버텨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

    그 무렵, 카르포프카로 이전한 6군 사령부에서는 연일 소련군의 반격에 대한

    보고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각하. 현재까지의 보고를 모두 취합하고 교차 검증한 결과, 소련군의 규모는

    돈강 일대에 약 40만, 스탈린그라드 남쪽에 약 20만 정도로 추정됩니다. 그리

    고 스탈린그라드 북쪽에서도 적의 병력이 더욱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럼 총합 70만 정도인가?”

    “예, 그렇습니다.”

    “흐음···.”

    참모장의 보고에 회의실 안에는 작은 탄식이 흘렀다. 그러나 막상 보고를 받

    은 나는 내심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전생과 똑같은 곳에서 반격을 개시했나. 그나저나 규모가 70

    만이라니··· 내 예상보다 훨씬 적군.’

    전생의 천왕성 작전에서 소련군은 거의 100만에 가까운 병력을 투입했었다.

    그에 비하면 70만은 오차나 보고의 불확실성을 감안하더라도 눈에 띄게 줄어

    든 규모였다.

    ‘역시 모스크바 전투 당시 칼루가 포위망의 여파로 놈들도 병력에 여유가 없

    나 보군. 그래, 이 정도 규모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심할 수는 없었다.

    놈들이 병력을 일부만 먼저 투입한 채 우리의 대응을 지켜보며 빈틈을 노리는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그리고 얼마 뒤, 루마니아 4군을 지원하던 4기갑군단과 48기갑군단에서 올라

    온 보고는 그런 내 의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이었다.

    “각하, 48기갑군단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현재 대규모 소련군 기갑부대가 아

    군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집중 공격 중. 적의 규모는 최소 100여 대 이상으로

    추정. 시급히 증원이 필요함. 이상입니다.”

    “···4기갑군단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4기갑군단과 루마니아 4군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전문이 왔습니다. 아마 보고

    내용은 거짓이 아닌 것 같습니다.”

    ‘최소 전차 100여 대 이상이라···.’

    나는 소련군의 갑작스러운 공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째서 놈들은 갑자기 이런 무모한 돌파를 시도하는가? 북쪽에 비해서 진격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아니면 내 생각대로 숨겨둔 병력을 투입하기 시작한 건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재로서는 놈들의 의도를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는 확실했다.

    “마침 잘 됐군. 슈바너 소령. 지금 자네들의 호랑이를 투입할 수 있겠나?”

    “현재 기동이 가능한 것은 25대뿐이지만, 각하께서 명령을 내려주신다면 이것

    만으로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겠습니다.”

    “좋네, 그럼 우선 20대만 투입하도록 하지. 나머지 5대는 칼라치 방어에 배치

    해두게.”

    “알겠습니다!”

    *****

    “--여기는 바이스 5! 엔진과 궤도가 나가버렸다! 도움이 필요하다!”

    무전기 너머로 105호 전차장의 비명과도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젠장···. 프란츠, 여기서 105호 차를 엄호할 수 있겠나?”

    하버 상사의 물음에 프란츠는 전면 관측창을 열고 전장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105호 차량은 도량 밑으로 들어가 엄폐하려다 놈들의 사격에 궤도가 끊긴 상

    황. 엔진룸과 좌측면이 노출된 채 공격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렵겠는데요. 엄호하고 싶어도 2호차와 3호차의 잔해가 사선을 가

    립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저희가 누구를 도울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프란츠의 104호 차량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미 전면 장갑이 관통당해서 궤도와 변속기가 나가버렸고, 조종수 한스와 무

    전수 닐스도 대답이 없다. 아마 관통의 파편이나 충격에 의해 의식을 잃은 거

    겠지. 거기에 탄약수 발터는 어제 부상으로 후송된 상태였다.

    이제 4호차에 남은 전투원은 하버 상사와 프란츠 단 둘뿐. 이 둘이서 저 멀리

    몰려오는 T-34들과 맞서 싸워야 했다.

    “···상사님. 포탄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철갑탄 여덟 발에 고폭탄 셋이다.”

    하버의 말을 들으며, 프란츠는 관측창 너머로 적들의 숫자를 세 보았다. 아

    니, 굳이 셀 것도 없이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10대는 훌쩍 넘는 숫자였다.

    ‘젠장, 철갑탄 여덟이라니··· 턱없이 부족하구만.’

    분명 하버 상사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만 프란츠도, 하버도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프란츠, 철갑탄 장전했다. 이제 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차탄은 무조건 철갑

    탄이다.”

    “알겠습니다.”

    “이제 넌 그냥 알아서 판단하고 쏴라. 난 장전만 해줄 테니.”

    “···예.”

    프란츠는 후들거리는 팔로 수동 레버를 잡아 돌렸다. 끼릭거리는 소리와 함께

    움직이는 스코프 안에서는 며칠 전, 와인을 나눠주었던 루마니아 병사들이 몰

    려오는 T-34와 소련군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었다.

    ‘거리는··· 800.’

    그래, 생각하지 말자. 지금 중요한 것은 제대로 조준하고 제대로 쏘는 것뿐이

    다. 지금은 그것만 똑바로 해내면 된다.

    프란츠는 신중하게 조준점을 맞추고 레버를 당겼다. 쾅! 하는 포성과 함께 또

    한 대의 T-34가 불꽃에 휩싸인다.

    하지만 기뻐할 틈은 없었다.

    ‘다음은··· 700, 아니 650m.’

    루마니아군의 참호를 짓밟고 넘어온 놈들이 이제는 이쪽으로 불을 뿜으며 다

    가온다. 사방에서 튀어 오르는 흙먼지와 충격에 조준점이 흔들거렸다.

    ‘침착하게···.’

    쾅!

    그 순간, 굉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104호 전차를 덮쳤다. 그리고 그 반동으

    로 스코프에 머리를 박은 프란츠는 그대로 뒤로 나자빠져 버렸다.

    “크헉!”

    잠시 뒤, 정신을 차린 프란츠는 욱신거리는 이마를 감싸며 바닥을 짚고 일어

    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하얗게 도색되어 있던 전차 내부는 그을림과 파편, 연기로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사, 상사님? 무사하십니까?”

    “그래, ···아직은.”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하버 상사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피

    가 철철 흐르는 허벅지를 움켜쥐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지금 당장 탈출해야···.”

    “하하, 사방이 적인데 어디로 가려고?”

    하버 상사의 말에, 프란츠는 관측창을 열었다. 그런 그의 눈앞에는 지근거리

    까지 다가와서 포구를 들이밀고 있는 T-34의 거대한 76mm 포신이 놓여 있었다.

    ‘···끝인가.’

    투콰앙!

    그 순간, 처음 듣는 웅장한 포성과 함께 프란츠의 눈앞에 서 있던 T-34는 그

    대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잠시 뒤, 저쪽에서 코끼리가 그려진 거대한 전차가 나타나 프란츠네

    전차의 앞을 가리며 멈춰섰다. 그러나 프란츠가 느낀 감정은 고마움이 아닌

    실망이었다.

    “멍청하긴, 설마 이 거리에서 T-34들과 교전할 생각인 건가?”

    현재 놈들과의 거리는 약 550. 이제 곧 수십 발의 76mm 포탄이 날아와서 저

    전차를 고철로 만들어버리리라.

    팅! 티딩! 팅!

    그러나 잠시 뒤, 프란츠의 귀에 들려온 것은 폭발음이 아니라 끝없이 울려 퍼

    지는 도탄음이었다.

    “···어?”

    소련군 전차병들의 악몽, 티거가 동부 전선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