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일군 원수가 되었다-9화 (9/157)
  • 9화. 바르바로사 작전 (1)

    1941년 5월 21일 아침.

    중화기로 무장한 제5산악사단을 실은 수송기가 말레메 비행장에 착륙했다. 그

    리고 그때부터 전황은 빠르게 독일군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도 기관총 있다, 이 새끼들아!”

    지금까지는 압도적인 화력과 수적 우세 덕분에 간신히 버티고 있던 영국군이

    점점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21일 오후가 되자, 영국군 부대는 하나둘씩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

    게 생겨난 구멍들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젠장! 예비대, 예비대는 어디에 있나?”

    “이미 이라클리온 비행장과 레팀논 비행장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쪽의 부대를 빼내서 투입하게! 이대로라면 하니아 항만까지 놈들

    의 손에 떨어지게 생겼단 말이다!”

    “지금 병력을 차출하신다면 놈들의 교두보가 하나에서 세 개로 늘어날 겁니

    다. 게다가 현재 교전 중인 부대를 퇴각시키려면 상당한 피해를 감소해야 합

    니다.”

    “···빌어먹을.”

    그러나 이미 모든 예비대를 투입해버린 크레타 섬 방위군 사령부에게는 더 이

    상 투입할 수 있는 병력이 없었다.

    그리고 5월 23일. 결국 항만과 시가지도 차례대로 독일군의 수중에 떨어져 버

    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니아 항만으로 독일군 전차를 실은 이탈리아 수송

    선이 도착했다.

    결국, 프레이 버그 소장은 더 이상 크레타 섬을 사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

    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군. 현재 크레타 섬에 남아있는 모든 연합군 부대와 그리스 의

    용군에게 전달하게. 25일 아침까지 남부의 스파키온 항구와 레라페트라 항구

    로 집결하도록. 우리는 이집트로 탈출한다.”

    이에 각지에서 교전 중이던 영국군 부대와 그리스 의용군들은 남쪽을 향해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무사히 항구까지 도착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각지에서 연합군이 동시

    에 퇴각하는 모습과 영국 해군의 움직임을 통해 이들의 의도를 간파한 슈투덴

    트 중장은 곧바로 이들을 추격하도록 명령했고, 많은 이들이 추격과 매복에

    걸려 포로 신세로 전락했다.

    그리고 다행히 배에 올라탄 이들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배가 출발한

    뒤에도 근해를 벗어날 때까지 집요하게 쫒아오는 슈투카 편대의 폭격에 시달

    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5월 25일 오후.

    항구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영국군 분견대의 항복을 끝으로, 짧지만 격렬

    했던 크레타 섬 전투는 독일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을 맺었다.

    *****

    “슈투덴트 중장, 팔슈름예거의 피해 상황은 어느 정도인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사망자나 중상자의 규모만 따지면

    30% 정도밖에 되지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나머지 인원들은 모두 약간의 휴식과 치료를 받으면 다시 투입될 수 있습니다.”

    “놀랍군! 정말로 놀라운 일이야! 고작 그 정도의 피해로, 해군도 없이 저 거

    대한 크레타 섬을 함락시키다니!”

    “하하, 과찬의 말씀입니다.”

    크레타 섬을 정복한 뒤, 결과를 보고 받은 히틀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정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제7공수사단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전면 재편성에 들어가야만 했던 원

    래의 역사에 비하면, 이건 정말로 완벽한 승리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히틀러의 흥분은 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몰타 섬도··· 아니, 저 빌어먹을 영국놈들까지도 대규모 공수

    작전으로 함락시킬 수 있지 않겠나?”

    “···각하, 몰타 섬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영국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

    습니까.”

    “음, 그렇지. 아직은 힘들겠지. 일단은 저 소련놈들부터 처리하고 팔슈름예거

    의 규모도 더 키워야 할 테니 말일세. 그러니, 슈투덴트 중장!”

    “예, 각하!”

    “크레타 섬을 점령한 공로로 귀관을 대장에 임명하겠네. 앞으로도 팔슈름예거

    의 발전을 위해 힘써주게나.”

    “영광입니다! 하일, 히틀러!”

    히틀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슈투덴트 대장의 견장을 손수 끼워주었다. 이에 슈

    투덴트 대장은 나치식 거수 경례로 답했다.

    “좋네, 그리고 파울루스 중장.”

    “예, 각하.”

    슈투덴트 대장을 바라보던 나는 갑작스러운 부름에 깜짝 놀라 히틀러를 바라

    보았다.

    총통은 그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발칸 반도 작전을 입안하고 이를 승리로 이끌어낸 귀관의 공로를 평가해, 귀

    관을 대장에 임명하겠네.”

    대장이라고? 내가?

    당혹스러워하는 나에게 총통은 슈투덴트 대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손수 계급장

    을 달아주었다.

    “축하하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조국의 승리를 위해 헌신

    해주시게.”

    갑작스러운 진급에, 나는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멍하니 히틀러를 바라보았다.

    고작 그리스를 점령한 것이 대장으로 진급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었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이건 총통이 나에게 주는 선심성 선물에 불과했다.

    “···감사합니다, 각하.”

    하지만 그래도 좋다.

    이 전쟁의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내 조국 독일을 구하기 위해서는 더 큰

    힘이 필요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기꺼이 총통의 손을 잡았다.

    *****

    최근 들어, 프란츠 할더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빌어먹을, 고작 작전 계획 하나 짠 걸 가지고 대장 진급이라니.’

    이는 얼마 전 대장으로 진급한 파울루스 참모차장 때문이었다.

    발칸 반도 작전을 입안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지도한 공로라지만, 아무리 생각

    해도 이는 말도 안 되는 진급이었다.

    ‘하다못해 전역을 직접 지휘했다면 모를까. 정말 웃기지도 않는군.’

    그러나 할더가 불쾌한 이유는 파울루스의 진급을 시기해서가 아니었다.

    사실 이번 발칸 반도 작전도, 파울루스의 진급도 모두 육군 참모총장인 할더

    를 통해서 진행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총통은 그에게 단 한마디의 상의도 없이 발칸 반도 작전을 파울루스에

    게 맡겼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대장으로 진급시키기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점점 내 권한과 업무를 빼앗으려는 건가.’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결국 참모총장이라는 자리도 유명무실해질 터였다.

    그리고 독일 국방군은 총통의 사병으로 전락해버리겠지.

    그러나 할더에게는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아무것도 없었다.

    독일 국민들은 1차대전의 패전과 베르사유 조약의 굴욕을 던져버리고 프랑스

    를 점령한 위대한 민족 지도자, 히틀러에게 열광했으며 국방군 내부에서도 라

    이헤나우나 카이텔, 파울루스 같은 친 나치파가 득시글거렸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군을 지키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아무리

    고민해봐도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승리.’

    그건 바로, 바르바로사 작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었다.

    애당초, 총통이 이렇게 군의 일에 개입할 수 있게 된 것도 오스트리아 합병부

    터 폴란드 침공, 프랑스 침공까지 총통이 전쟁의 승리에 기여했기 때문이 아

    니던가.

    그렇다면.

    총통이 반대하던 나의 작전대로 승리를 거두기만 한다면.

    정말로 올해 안에 소련을 무너뜨리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총통도 감히 육군의 일에 쉽게 개입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이번 작전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렇게 결의를 다지며, 할더는 작전 명령서에 서명을 휘갈겼다.

    - 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인류 역사상 최대이자 최악의 전쟁, 독소전쟁의 개시를 알리는 바르바로사 작

    전의 개시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

    “···작전 개시 5분 전. 전원 출격 대기 완료할 것. 이상.”

    치직거리는 무전기 너머로 편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파일럿 석에 앉아서 슈투카의 상태를 점검하던 루돌프 소위는 손목시계를 슬

    쩍 확인한 뒤 응답했다.

    “독수리 넷, 입감 완료.”

    뒤이어 무전기에서는 편대원들의 목소리가 차례대로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

    를 들으며 루돌프는 떨리는 가슴을 달랬다.

    이제 곧 전쟁이 시작된다.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의 선임들은 개전이라는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스페인 내전 때도, 프랑스 때도, 그리스 때도 그랬듯이 이 전쟁도 금방 끝날

    거라고.

    그런 식으로 태연하게들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도 첫 실전에 나서는 루돌프 소위는 도무지 진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야속한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작전 개시 1분 전.”

    “젠장···.”

    잠시 뒤, 어둠 속에서 슈투카들이 차례대로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이제 루돌프의 차례였다.

    “···독수리 넷, 출격하라.”

    “후···.”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하고, 전투기가 활주로를 달려

    나간다.

    요란한 엔진음이 울려 퍼지고, 기체는 전신이 떨려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묘한 부양감과 함께 떨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다.’

    루돌프는 천천히 스로틀을 당겨서 고도를 높였다. 시야에서 땅은 사라지고,

    어두운 밤하늘과 별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루돌프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후우······.”

    오히려 이륙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조금 진정되기 시작했다. 루돌프는 침착하

    게 방향을 확인하고 편대에 합류했다.

    “제법이군, 신참. 그래, 그렇게만 하라고.”

    “하하, 감사합니다.”

    편대장의 농담 섞인 말에, 루돌프는 웃어 보였다.

    그래, 별거 아닌 일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정찰을 위해 몇 번이고 지나다녔

    던 곳이 아닌가.

    그냥 그 길을 그대로 날아가서 훈련했던 대로 폭탄을 투하하고 돌아오면 된

    다. 그것뿐이다.

    슈투카 편대는 국경을 통과해서 한참을 날아갔다. 그들의 밑에는 끝없이 펼쳐

    진 황량한 대지만이 저 너머까지 펼쳐져 있었다.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 각자 타겟을 혼동하지 말 것. 이상.”

    편대장의 말대로, 저 멀리 비행장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루돌프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전투기들이 출격하지는 않을까? 아니, 아군기들이 모두 요격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그의 선임들은 정확하게 폭격을 내리꽂았다.

    그들이 피워낸 불꽃으로 루돌프는 목표물을 포착하고 스로틀을 꺾었다.

    곧, 그의 기체가 목표물을 향해서 급속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에에에에엥!

    고막을 찢을 듯한 끔찍한 사이렌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의식을 잃을 것만

    같은 엄청난 압력이 그의 전신을 덮쳐왔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루돌프는 목

    표물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이다!’

    정확한 타이밍에 발사 버튼을 누른 뒤 루돌프는 그대로 스로틀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시야가 반전되며 어두운 밤하늘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는 요란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독수리 넷, 결과를 보고하라.”

    “독수리 넷, 폭격 성공. 전투기 둘을 격파했음, 이상.”

    루돌프 소위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편대에 합류했다. 기수를 틀며 힐끗 아래

    를 내려다보니, 비행장은 온통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고작 한 번의 출격으로 비행단 하나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어쩌면 편대장님 말씀대로 정말 올해 안에 전쟁이 끝날지도 모르겠군.’

    그의 희망처럼 저 멀리서 밝게 동이 터 오르기 시작했다.

    루돌프는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서쪽을 향해 기수를 돌렸다.

    기지로 돌아가는 루돌프의 편대 밑에서는 동쪽으로 향하는 행군 대열들이 끝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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