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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원수가 되었다-5화 (5/157)
  • 5화. 대항마

    “오늘도 한가하구만.”

    내가 할더와 육군 수뇌부들 앞에서 폭탄 선언을 던진 지 약 2달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나는 바르바로사 작전과 관련된 업무에서 사실상 배제되었고, 그

    덕분에 잡다한 서류들이나 처리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있었다.

    “슬슬 퇴근해야겠군.”

    시계를 바라보니, 바늘은 오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책상 위를 대강

    정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모차장님, 퇴근하십니까?”

    “그래. 이제 슬슬 가야지.”

    “하하, 좋으시겠습니다. 저도 빨리 가봐야 하는데 일이 너무 많아서···.”

    하지만 이곳에 퇴근하려는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

    일이 고작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덕분에 총참모본부 전체에 비상이 걸렸기 때

    문이었다.

    ‘젠장···.’

    그러나 이곳에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빨

    리 사라져 주는 것이 도와주는 일일지도 모르지.

    “그럼, 수고들 하시게.”

    나는 조용히 인사한 뒤, 사무실을 나섰다.

    바로 그때였다.

    “참모차장님! 파울루스 참모차장님 계십니까?”

    누군가 나를 찾으며 뛰어들어오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내가 참모차장이네. 무슨 일인가?”

    “휴, 아직 계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뜻밖에도, 나를 찾으러 온 이는 친위대 복장을 한 젊은 장교였다.

    도대체 친위대가 나에게 무슨 볼일일까.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나에게 그는 놀라운 말을 전했다.

    “총통 각하께서 참모차장님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지금 저희와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

    ‘히틀러가 나를 식사에 초대했다고? 도대체 왜지?’

    친위대의 차량에 올라타, 총통의 거처로 향하는 동안 나는 곰곰이 생각에 빠

    졌다.

    사실, 히틀러가 장교들을 식사에 초대하는 것이 대단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2차대전 중에는 정기적으로 국방군 장교들을 식사에 초대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렇다면 오늘 나를 부른 것도 그런 의례 행사들 중 하나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할더의 말에 따르면, 총통은 나를 해임시키지 말라고 특별히 지시를 내리지

    않았던가.

    그런 히틀러가 나를 불렀다면 분명히 무언가 노리는 바가 있을 터였다.

    ‘···문제는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는 거지.’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 차는 총통 관저 앞에 도착했다.

    “다 왔습니다.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네.”

    나는 각오를 다지며 총통 관저로 들어갔다.

    “어서오시오, 파울루스 장군. 지난번 회의 이후로 처음인가?”

    “그렇습니다, 각하.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치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간에 국방군 소속의 군인으로서 최고 군

    통수권자인 총통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분명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그렇

    기에 나는 억지로 웃어 보이며 그와 악수를 나누었다.

    “자, 그럼 이만 자리에 앉지.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오.”

    그렇게 식사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드디어 총통이

    본론을 꺼내 들었다.

    “지난번 회의 때 파울루스 장군이 주장했던 것들은 정말 인상 깊었소. 지금껏

    나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 장군은 단 한 사람도 없었거든.”

    “그렇습니까.”

    “그래··· 비록 결과적으로는 저 융커놈들이 원하는 대로 회의가 끝나긴 했지

    만 말이지.”

    “그건 정말로 유감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정말로 자신 있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할더에게 호언장담했던 대로 전쟁 개시 후 8주까지 우리가 중간 목적지에 도

    달하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느냔 말이오.”

    이쯤 되니 히틀러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예상이 되었다.

    ‘역시, 히틀러는 내가 할더의 대항마가 되기를 바라는 건가.’

    사실 그로서는 내 말이 맞든 틀리든 간에 크게 상관없을 것이다.

    만약 할더의 뜻대로 독일군이 승승장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것이고, 반

    대로 독일군이 고전분투한다면 이것을 빌미 삼아 육군을 장악하면 될 테니까.

    그리고 그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신의 편에 서서 육군을 움직여줄 꼭두각

    시 역할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역겨움에 속이 뒤틀릴 것만 같았다.

    아돌프 히틀러.

    저 남자는 스탈린그라드의 비극을, 내 조국 독일의 패망을 만들어낸 원흉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꼭두각시가 되라고?

    ‘빌어먹을···.’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할더를 설득하는데 실패한 이상, 바르바로사 작전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히틀

    러의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그의 뜻대로 어울려주는 수밖에.

    “물론입니다, 각하. 바르바로사 작전은 처음에는 놀라운 대승을 거두겠지만,

    적들의 끝없는 물량과 아군의 보급 문제 때문에 발목 잡혀서 결국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드러나는 시점이 바로 전역 개시 후 12주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북쪽으로는 프스코프, 중부집단군은 스몰렌스크와 르제프, 남부

    는 키예프 인근까지 진격하는 것이 고작일 겁니다.

    만약 겨울까지 공세를 지속한다면 더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는 점령할 수 없을 겁니다.”

    “흠.”

    내 말에 히틀러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독일군이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말인데 기뻐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반대로 불쾌한 표정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타개할만한 비책도 있는 것이겠지?”

    “물론입니다.”

    “좋소, 한번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

    여기가 승부처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지도 앞에 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한가지 전제를 두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독일군에게는 세 방향으

    로의 진격을 동시에 수행할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음, 만약 장군의 말대로 12주 차에 진격이 멈춘다면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겠지.”

    “예. 그리고 그 말인즉슨, 결국 아군은 세 군데로 흩어진 공세 능력을 한군데

    로 집결시켜서 하나씩 차례대로 적을 쓰러뜨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군.”

    “그럼 여기서부터가 문제입니다. 레닌그라드로 향하는 북부집단군, 모스크바

    로 향하는 중부 집단군,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남부 집단군. 총통 각하라면 이

    중 어느 쪽에 전력을 집중하시겠습니까?”

    “···좀 더 깊이 생각해봐야겠지만, 아마도 우크라이나나 모스크바 중 하나를

    택할 것 같군.”

    원래의 역사에서 히틀러는 경제적 가치가 높은 우크라이나 지역을 원했고, 군

    부는 정치적 상징성을 지닌 모스크바를 원했다.

    양측의 첨예한 대립 끝에, 독일군은 결국 모스크바를 점령하기로 결정하고 북

    부집단군의 제4기갑군까지 동원해서 공세에 나서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그렇다면 반대로, 히틀러의 뜻대로 우크라이나를 공격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다. 어쩌면 남쪽에서 승리를 거뒀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전쟁의 승패를

    바꾸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대답은 달랐다.

    “저라면 레닌그라드를 노리겠습니다.”

    내 말에 히틀러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 그가 기대했던 비책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이겠지.

    “···이유가 무엇인가?”

    “왜냐하면, 레닌그라드를 점령하면 저희 독일군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번 회의 때 말씀드렸던 문제점 중 하나인 보급 말입

    니다.”

    레닌그라드는 발트해에 인접해있는 거대한 항구도시다. 만약 독일군이 저곳을

    점령한다면 해운을 통해서 대량의 물자를 최전방까지 보낼 수 있다.

    게다가, 발트해는 입구가 하나밖에 없는 병과 같은 지형이기 때문에 영국 해

    군을 상대로도 크릭스 마리네가 충분히 제해권을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겨울이 되면 레닌그라드도 얼어붙어서 더 이상 보급을 지속할 수 없겠

    지만, 그 전에 충분한 양의 물자를 전방의 부대에 공급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중부집단군도, 남부집단군도 공세를 계속 지속할 새로운 추진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말은 조금 과장된 것이었다.

    만약 8월 중순부터 레닌그라드를 공략하기 시작해서 9월 중에 점령한다고 하

    면, 기껏해야 북부집단군과 중부집단군의 동계 물자 정도를 보급하는 것이 고

    작이리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회귀 전처럼 동계 피복조차 보급받지 못해서

    추위로 인해 죽어가던 병사들만 구할 수 있어도 42년의 전황은 훨씬 나아질

    테니까.

    “과연! 만약 셋 중 하나를 먼저 점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확실히 레닌그라드

    를 첫 단추로 삼는 것이 좋겠군.”

    히틀러는 내 설명이 솔깃하게 들렸는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개를 끄

    덕였다.

    “좋소. 만약 장군의 말대로 바르바로사 작전이 난항을 겪는다면, 귀관의 작전

    을 중용하도록 하겠소.”

    “감사합니다!”

    이제 됐다. 씨앗은 모두 뿌려놨으니 이제 때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나에게 히틀러가 한마디를 던졌다.

    “아, 그러고 보니 요즘 참모본부에서 한가하게 지내신다고 들었소.”

    “···그렇습니까?”

    그 말에 나는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파울루스 장군 같은 명장을 놀리다니, 정말 한심

    한 일이지 않소이까? 참모본부가 어쩌다가 이런 소꿉놀이가 되어버렸는지 모

    르겠군.”

    “···참모총장에게도 나름의 안배가 있는 것이라 생각할 따름입니다.”

    “그렇소이까?”

    내 대답에, 히틀러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내가 히틀러의 저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발칸 작전에 대해서는 알고 있소?”

    “예, 물론입니다.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그리스에서 이탈리아와

    싸우고 있는 영국군을 몰아내기 위한 작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 작전 계획은 파울루스 장군이 한번 주도해서 입안해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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