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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식왕 클리어러-200화 (200/245)

# 200

독식왕 : 클리어러 200화

마요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것은 콜드 스톤이었다. 그것도 수십 개나 되는 양을 쉬지도 않고 계속 꺼내놓는다.

“이게 웬…….”

“아마 가브리엘의 보수였겠지.”

“보수?”

마리아의 말에 반문한 나는 곧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았다. 가브리엘은 ‘식인’ 스킬로 나처럼 모든 블러드 스톤과 콜드 스톤을 흡수할 수 있었다.

니콜라스가 그에게 내린 지령의 보수가 아마 이 결정석이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깔끔하게 이해된다.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불로소득을 통해 내 스탯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한 가브리엘. 그를 묶어놓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민첩 18을 흡수했습니다.]

[행운 16을 흡수했습니다.]

[근력 22를 흡수했습니다.]

…….

콜드 스톤 하나하나가 무시 못 할 스탯 포인트를 품고 있었다. 아마 전부 A급 헌터에게서 추출한 게 아닐까 싶었다.

‘이게 가브리엘에게 갔다면 큰일이었겠네.’

가뜩이나 다루기 힘든 가브리엘에게 이만큼 스탯을 퍼주어서 어쩌자는 건지 궁금했지만 이 정도라도 주지 않았다면 그가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

바꿔 말하면 니콜라스 입장에서는 나와 노아가 그 정도로 눈엣가시였다는 뜻이다.

‘높게 평가해 줘서 고맙군.’

덕분에 가브리엘에게 갈 몫이 내게 왔다.

여기까지는 아무리 니콜라스라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형님, 이것도 있어요.”

콜드 스톤 흡수에 열중하고 있는 내게 마요르가 마지막으로 건넨 것은 조그만 병이었다. 손바닥만 한 병에 새까만 액체가 절반쯤 담겨 있다.

궁금한 표정으로 마리아를 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뭔지는 나도 몰라.”

나는 가만히 병을 내려다보다가 불현듯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아…….’

노아가 말하길 후발대에게는 가브리엘을 제어할 수단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

확신할 순 없어도 이게 그 수단이 아닐까 싶었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인간이 아닌 소환수가 돼버린 가브리엘에게 이 액체가 통할지도 모르겠고.

게다가 지금은 굳이 다른 방법을 택하지 않아도 가브리엘을 제압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나는 조그만 병에 대한 관심을 접고 콜드 스톤을 흡수하는 데만 집중했다. 양이 많다 보니 흡수하는 데도 상당 시간이 걸렸다.

…….

[체력 20을 흡수했습니다.]

[행운 14를 흡수했습니다.]

[근력 19를 흡수했습니다.]

드디어 40개의 결정석을 모두 잿빛으로 되돌렸다.

동시에 거칠게 폭주하던 가브리엘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가브리엘이 소환술의 영향력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의 반전은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 나는 뼈다귀만 남은 가브리엘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누구 부하지?”

“조성오…… 님의 충실한…… 수하입니다.”

“좋아. 돌아와!”

짧은 시간이나마 나와 파티원들에게 섬뜩한 공포를 안겼던 소환수의 반항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불과 30분 전까지 적이었던 게이머가 소환수가 되어 슬롯에 박혀 있는 것을 보면 약간 마음이 복잡하긴 하지만.

가브리엘도 기구한 운명이 아닐 수 없다.

오이누스의 대리인이 되어 폭주를 하다가 이제는 내 손아귀에서 놀아날 입장이 된 거니까.

하지만 동정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의 손에 죽은 수백 명의 인간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선 안 된다.

2

마이클과 앰버는 가브리엘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사실에 황당해했다.

앰버는 술자리에 어울리지 않고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마이클은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찰나였다.

“어디 갔지?”

마이클의 말에 앰버가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사라졌어? 원래 이상한 놈인 줄은 알았지만 진짜 제멋대로네.”

마이클은 설명 못 할 위화감을 느꼈다.

눈살을 찌푸리고 생각하다가 퍼뜩 몸을 돌렸다. 이 집에서 사라져선 안 될 가장 중요한 물건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FXXX!”

그의 고함이 터져 나왔을 때 앰버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Son of…….”

마이클이 시뻘게진 얼굴로 걸어 나왔다. 손에는 빈 상자를 든 채.

그는 상자를 벽에 집어 던져 박살 냈다. 곧바로 앰버에게 소리쳤다.

“위치 확인해 봐!”

앰버가 재빨리 핸드폰으로 가브리엘과 그의 잔당들이 있는 장소를 확인했다.

“……없어.”

“뭐?”

마이클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앰버의 핸드폰을 빼앗아 직접 들여다보았다. 그가 확인해도 가브리엘과 잔당들의 소재는 찾을 수 없었다.

황당한 마음에 마지막에 머물렀던 장소를 검색하자 뜻밖의 장소가 출력되었다.

“조성오의 집에 있었다고?”

가브리엘 역시 그곳에서 신호가 끊어졌다. 여러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자신들이 있는 시크릿 하우스를 방문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하다.

“…….”

이제야 약간의 실마리가 떠올랐다. 가브리엘이 굳이 술이나 마시자고 자신들을 찾아올 리가 없다는 사실. 그리고 가브리엘에게 느낀 마나의 분위기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는 점…….

“Shit!”

마이클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표정인 앰버를 마주 보았다. 귀신에 홀린 심정이지만 단 한 가지, 일이 단단히 꼬였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3

현장에 도착한 노아는 가브리엘과 그 패거리들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점은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나를 비롯해 OG 멤버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을 먼저 기뻐했다.

“정말 해치웠군요!”

아무리 평소 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이던 노아라 할지라도 이번만큼은 내심 불안했었나 보다.

“가브리엘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게…… 정말 믿기지 않아…….”

마리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말 그대로 수년간 가슴에 묻어둔 체증이 내려갔으니 누구보다 후련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팡파르를 울릴 때가 아니다.

“이제 놈들만 잡으면 되겠네요.”

“네, 상황이 정리됐다는 말을 듣자마자 카일과 캐미를 그쪽으로 보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시간을 끌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카일과 캐미도 훌륭한 실력을 갖췄지만 냉정히 말해 적들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 이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아직은 촌각을 다투어야 할 듯했다.

“시크릿 하우스에 있다는 거죠? 제가 직접 갈게요.”

그렇게 말하고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과자를 먹고 있는 NPC를 찾았다.

“마요르! 안내해!”

“넵! 형님!”

멤버 여럿이 움직일 필요는 없다. 다만 시키지도 않았는데 암젤만이 냉큼 몸을 일으키고 따라왔다.

4

현장에 도착했을 때 시크릿 하우스 안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다만 한적한 곳에 세워진 건물이고, 피스&호프가 직접 보안에 신경 쓴 곳이기 때문에 경찰이 출동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안에서 번쩍번쩍하는 불빛이 새어 나오고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한창 싸움이 벌어지는 중인 듯했다.

나는 일부러 안에 들어가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어 카일에게 전화했다.

전화를 받을 상황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신호가 다섯 번 울리면 바로 올라갈 생각이었지만 네 번째 신호가 갔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길드장님.”

당연하게도 핸드폰 안쪽에서는 소란스러운 잡음이 들렸다.

“지금 상황이 어떤가요?”

“간신히 시간만 끌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저희 편에 세 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부상자란 카일과 캐미를 제외한 다른 게이머일 터. 카일이 게이머로 이루어진 경호 팀을 이끌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가 부상을 당한 건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이제 제가 맡을 테니 부상자를 데리고 빠지세요.”

“네, 알겠습니다.”

토를 달지 않고 즉각 대답이 나온다. 2층 유리창이 터지더니 안에서 카일과 캐미가 튀어나왔다. 옆구리에 각각 두 명의 게이머를 끼운 채로.

캐미는 나를 보자 너스레를 떨었다.

“우와, 더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어.”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한국어 발음이 좋아졌다. 표정은 의연하지만 보호구가 찢어지고 상처 난 부위가 여럿 보였다. 카일 역시 부상을 당했고, 그들이 데리고 나온 게이머들은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여긴 걱정 말고 부상자들 데리고 병원으로 가세요.”

이번에도 토를 다는 일 없이 카일과 캐미는 주차된 자동차 쪽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부상자를 싣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의상을 바꾸었다.

점퍼 세트.

다리를 살짝 구부려 도약하는 것만으로 카일과 캐미가 뚫어놓은 창문 안으로 쑥 들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방에 두 발을 디딘 후 품에 안고 있던 암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마찬가지로 부상을 당했지만 카일과 캐미보다는 상태가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조성오……?”

마이클의 인상이 구겨졌다. 앰버는 옆에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기 왔다는 건 가브리엘이 실패를 했다는…….”

“보고 싶다면 만나게 해주지.”

나는 검은 소환술을 발동시켰다. 보유하고 있는 열 개의 슬롯 중 단 하나에만 소환수가 자리 잡고 있다. 콜드 스톤 40개를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굴복시킬 수 없었을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전직 게이머.

까맣게 뼈만 남은 가브리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Huh……?”

“What the…….”

마이클과 앰버는 A급 게이머이다. 상대의 마나를 감지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게이머들이고, 이미 만난 적이 있는 게이머의 기척은 더더욱 놓칠 리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새까만 스켈레톤이지만 그가 생전에 누구였는지 금방 깨달았다.

“가브리엘……?”

두 사람이 혼란을 느낄 여유는 짧았다. 가브리엘이 곧장 공격을 했기 때문에.

까맣게 빈 두 동공 안에서 굵은 빔이 쏘아져 나갔다.

퍼버버벙-!

이미 엉망인 방 안이 더욱 엉망으로 어지러워진다.

나는 굳이 손을 보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등을 돌렸다. 암젤도 신기하다는 듯 가브리엘을 보다가 내 쪽으로 왔다.

“저 녀석 생각보다 쓸 만하다옹.”

“그러게.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된다더니.”

“티코이가 던전에서 우릴 공격했던 일이 생각난다옹.”

“그거랑은 경우가 다르지.”

우리는 동시에 창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아마 마이클과 앰버를 상대하는 데 가브리엘 하나만 있어도 충분할 것이다. 살아생전에도 그랬을 텐데, 지금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가브리엘이니까.

아래에서 마요르의 과자를 나누어 먹고 있자니 금방 소란이 잦아들었다.

다시 점프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가브리엘이 살기등등한 자세로 서 있고, 바닥에 두 명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가브리엘의 등을 툭 쳤다.

“잘했어. 이만 들어가 봐.”

보라색 빛줄기로 화한 가브리엘이 소환수 슬롯에 들어와 박혔다.

그때, 죽은 줄만 알았던 시체 쪽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들려왔다.

“으으…… 사, 살려다오.”

대머리 전체에 피칠갑을 한 마이클이 고개를 들었다.

“나, 날 살려주면 니, 니콜라스를 죽일 방법을, 알려주마…….”

“응, 필요 없어.”

내가 눈짓하자 암젤이 호랑이를 소환했다. 호랑이는 단숨에 마이클의 목줄기를 물어 숨을 끊어버렸다.

이제야 가슴속이 후련해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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