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식왕 클리어러-41화 (41/245)

# 41

독식왕 : 클리어러 041화

[부]

[명예]

[지위]

[영토]

[동료]

‘뭐야, 이게?’

당연하게도 이것만 보아서는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가장 상단에 있는 ‘부’를 터치해 보았다.

1. 30억 벌기

2. ???

활성화된 퀘스트는 단 하나였다.

[30억 벌기]

목표 : 제한된 기간 안에 30억을 벌어라.

수락 기한 : 72시간. 기한 안에 수락하지 않으면 퀘스트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퀘스트 열람 후 관련된 활동을 시작하면 자동 수락한 것으로 인정)

기간 : 7일

제한 : 계좌 잔액 기준

지금까지 들어온 돈은 무효

타인에게 양도받은 금액은 제외(NPC 포함)

보상 : 랜덤 보상 상자(유니크급 장비 제한)

*실패 시 : 레벨 5 하락, 메인 퀘스트 [부] 항목이 사라짐(복구 불가)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보류.”

일단 퀘스트 수락을 보류한 나는 다른 퀘스트들도 차례로 터치해 보았다.

‘부’와 마찬가지로 각각 하나씩의 퀘스트가 열려 있었다.

[명예]-1. 카오스 게이머 셋 이상 처치하기

[지위]-1. 랭킹 100,000 안에 진입

[영토]-1. 던전 한 개 이상 획득

[동료]-1. NPC 1인 영입

“흐음…….”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왜 내게 이런 퀘스트들이 주어졌는지, 또 이게 왜 ‘메인’ 퀘스트인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반응을 본 티코이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메인 퀘스트라는 게 생겼는데 말이지…….”

나는 메뉴창을 볼 수 없는 NPC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티코이는 당장 생각에 잠겼다.

내 눈빛을 보고 암젤이 들고 있던 과자를 슬며시 내려놓았다.

“미안한데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옹.”

메인 퀘스트가 주어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시스템에 접속하고 능력을 얻게 된 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게임을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일종의 자격 검증을 거치는 단계였고 던전 마스터가 되면서 메인 퀘스트가 열리게 되었다.

왜 이 시점에 메인 퀘스트가 열린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나머지 퀘스트들의 내용을 보면 돈을 벌고, 카오스 게이머를 해치우고, 랭킹에 진입하고, NPC를 영입하는 것이다.

던전을 획득하는 것 말고는 모두 이제껏 내가 해온 일들이었다.

말하자면 마지막 퍼즐이었던 ‘던전 획득’이 던전 마스터가 되면서 끼워진 것이다.

‘지금까지 클리어한 내용도 퀘스트를 달성한 것으로 쳐 주면 안 되나?’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30억 벌기’의 제한 사항을 보면 이제껏 번 돈은 제외한다고 나와 있다.

다른 퀘스트를 모두 열어본 것은 아니지만, 같은 내용의 제한 사항이 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음…….’

부와 명예, 지위와 영토, 그리고 동료까지.

나를 각성시킨 이는 나에게 일반 게이머와 다른 길을 걷게 될 거라고 했다.

이것들을 달성하다 보면 나는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걸까?

부와 명예 같은 것들은 다른 게이머도 모두 추구하는 것이리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카오스 게이머를 해치운다든지, 던전을 획득하는 일 같은 것은 일반적이지 않긴 하지만.

생각에서 깨어난 티코이가 말했다.

“큰일이군요. 일주일 안에 30억을 벌어야 하다니.”

“응? 갑자기 얘기가 왜 그렇게 돼?”

“주인님이 말씀하신 것에 따르면 퀘스트 수락 기한이 72시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열람 후 퀘스트와 관련된 행위를 하면 곧바로 수락한 것으로 간주한다고 했고요. 다른 퀘스트를 수행한다고 해도 어차피 돈을 버는 일과는 관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72시간이면 다른 퀘스트를 달성하기 힘든 시간이기도 하고요.”

“음.”

티코이 말이 맞다. 그래서 다른 퀘스트들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열람 시 자동 수락과 같은 조건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큰일이네.”

큰일도 보통 큰일이 아니다. 퀘스트를 달성하지 못하면 레벨이 5 하향될 뿐만 아니라 관련 퀘스트 항목이 영영 사라진다고 하니까.

그 말은 곧 이 퀘스트를 달성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보상을 영원히 얻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유니크 등급의 랜덤 보상 상자.

가상현실 게임 안에 있을 때는 모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퀘스트를 받게 되고, 그 보상으로 뛰어난 아이템들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과 다르므로 던전만 열심히 공략한다고 귀한 아이템들을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이것은 느낌이지만 다른 메인 퀘스트를 달성한다고 유니크 등급의 장비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후우~”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 짧은 기간 안에 어떻게 30억을 벌라는 거야?’

티코이 말마따나 이 퀘스트를 무시하고 다른 퀘스트로 넘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제부터 예약을 하고 던전을 공략한다고 해봤자 30억이나 벌 수 있을 리 없다.

남에게 양도받은 금액은 안 된다고 하니 설령 대출을 받아도 불가능하겠지.

티코이가 신중한 얼굴로 말했다.

“방법은 역시 아이템을 파는 것밖에 없겠네요.”

그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과연 암거래를 통해 아이템을 판다면 일주일 안에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안에서는 전자제품을 사용할 수 없으니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카오스 게이머 닷컴에서 답신을 보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답신이라니?”

“저희가 아직 사이트 안에서 물품을 거래한 내역이 없어서 일단 확인 신청을 해야 했거든요. 더구나 ‘귀화제’는 한 번도 시장에 나온 적이 없는 아이템이라 검증 절차가 필요합니다.”

귀화제는 ‘플레지킹 허니’에 나와 티코이가 상의하여 붙인 이름이다. 플레지킹 허니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면 레시피가 노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레시피가 있어도 합성은 나만 할 수 있는 거지만, 그래도 최대한 신비감을 주는 편이 나았다.

“그래?”

거기까지 들은 나는 몸을 일으켰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니까.

그런 나를 종용하듯 메시지가 나타났다.

[관련 활동을 시작하여 ‘30억 벌기’ 퀘스트가 수락되었습니다. 남은 기한은 7일입니다.]

‘젠장.’

돈을 벌자고 말을 나눈 것만으로 퀘스트가 수락되어 버리다니. 생각보다도 더 인정사정이 없다.

“빨리 나가자.”

4

던전 밖으로 나오자마자 티코이가 핸드폰으로 메일을 확인했다.

“아, 답장이 왔네요.”

“뭐라는데?”

“일단…… 경고가 적혀 있습니다. 물건이 가짜로 판명되면 뒷일은 저희가 감당해야 한다고 하네요. 명백히 협박하는 느낌입니다. 그걸 감안하고도 진품 여부를 확인받고 싶다면 직접 만나자고 합니다.”

“어디서?”

“그것까지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아래에 전화번호만 적혀 있네요.”

티코이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연락해 봐.”

찝찝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까.

비밀문 바깥 통로에 서서 티코이는 정체불명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말은 대부분 그쪽에서 하는지 티코이는 듣고만 있었다.

전화를 끊은 뒤 내게 말했다.

“자기들이 카오스 게이머 닷컴 한국 지사라고 합니다. 만나려는 마음이 있으면 문자를 보내라고 하네요. 장소를 정해서 답장을 주겠답니다.”

“한국 지사라고?”

거기까지는 예상치 못한 일이다. 카오스 게이머 닷컴 일당이 한국에도 있다니.

생각보다도 덩치가 큰 집단이라는 뜻이다. 거의 모든 나라에 지사가 있다면 불법 거래자들을 응징한다는 것도 단순한 도시 전설이 아닐지 모른다.

‘찝찝하네.’

내 능력이 아직 C급 수준임을 감안하면 결코 상관하고 싶지 않은 놈들이다.

하지만 퀘스트를 달성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만나자고 해.”

“네.”

티코이가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금방 왔다. 그것을 확인한 티코이가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일 오후 2시에 만나자고 합니다. 그런데 장소가…….”

“어딘데?”

“던전입니다.”

“어휴.”

찝찝한 놈들.

왜 던전 안에서 만나자고 하는 건지 금방 이해가 됐다. 아이템이 가짜라고 판명나면 그 자리에서 묻어버리겠다는 거겠지.

5

피스&호프 길드 한국 지부.

길드장실에서 인터뷰가 진행 중이었다.

여성 사회자가 길드장에게 질문을 던지고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부드러운 얼굴과 말투로 대답을 한다.

그 과정은 모두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자 여성 사회자가 호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반신반의했는데 피스 앤 호프는 정말 훌륭한 길드군요. 활동으로 얻은 수익의 10퍼센트를 사회적 활동에 투자하다니, 정말 모든 길드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좋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물론이지요. 게이머들은 사명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제 배만 불리려고 한다면 각성의 의미를 퇴색하게 하는 것입니다.”

카메라가 꺼지자 여성 사회자가 붉어진 얼굴로 명함을 내밀었다.

“뒷면에 적힌 것은 제 개인번호예요. 편하실 때 연락주세요.”

길드장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네, 조만간 식사나 함께 하시죠.”

인터뷰 팀이 철수하자 남자는 거칠게 넥타이를 풀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흥! 못생긴 년이 들이대기는.”

데이비드 정은 피스&호프 한국 지부의 길드장이다.

혼혈인 그는 아버지가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원래는 미국에서 살고 있었으나 길드가 한국에 지부를 내면서 귀화를 했다.

게이머들의 귀화 절차는 결코 복잡하지 않았다.

그것도 유명 길드의 지부가 설립되는 문제가 연관되었을 때는.

길드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이런 저급한 나라에 귀화하지 않았을 텐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사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얼굴을 찡그린 채 두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똑똑.

비서를 통하지 않고 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는 자연스럽게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들어왔다.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지만 뺨에 난 칼자국이 거친 인상을 대변했다.

“길드장님.”

“철웅 씨, 무슨 일이죠?”

“전에 말씀드렸던 그 물건의 판매자와 연락이 됐습니다. 내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전에 말했던 물건이란 카오스 게이머 닷컴 홈페이지를 통해 판매 허가 요청이 들어온 아이템이었다.

‘귀화제’라는 이름인데 한 번도 시장이 풀린 적이 없는 물건이다. 판매자가 설명하기로 체력과 마나 소모량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흥!’

“사기꾼 새끼들이 설쳐 대기는. 역시 아시아의 질 낮은 나라답네요.”

규정상 확인은 해보아야 했지만 결과야 뻔할 뻔 자다. 그렇게 경고를 하는데도 사기꾼들은 쉬지 않고 나오니까.

물론 길드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일이다.

오히려 카오스 게이머 닷컴이 얻는 수익의 상당 부분이 이런 사기꾼들에게서 나왔다.

만약 가짜로 판명 나면 그 자리에서 응징을 한다.

그러고 떨어지는 블러드 스톤과 콜드 스톤을 수확한다면 카오스 게이머 닷컴으로서는 어쨌든 남는 장사였다.

“알았어요.”

그가 승인을 하자 철웅은 고개를 숙인 뒤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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