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독식왕 : 클리어러 040화
Chapter 15 - 메인 퀘스트
1
결정석을 꺼내놓은 뒤, 관리소 안에서 대기를 했다.
정산금이야 나중에 계좌로 입금되지만 라이선스를 갱신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던전을 공략하고 했던 것처럼 태블릿 모양의 기기 위에 손을 올렸다.
게이머에게 등급을 올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등급이 높으면 유명 길드에 들어갈 자격이 생기고 입장 가능한 던전의 수준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게이머가 쉼 없이 던전을 공략하는 이유는 돈도 돈이지만 본인의 성장을 도모하려는 목적이 컸다.
그러기 위해 비싼 장비를 갖추느라 빚을 지는 경우도 허다했다.
장치를 내려다보고 있던 직원의 동공이 커졌다.
“어?”
그녀는 혹시 오류인가 싶어 장치를 재부팅하고 다시 검사를 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C급…… 인데?”
그것도 이제 막 문턱에 닿은 게 아니라 C등급 중에서도 중간 수준으로 판정되었다.
불과 일주일 전 D급으로 등록된 것을 감안한다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성장이었다.
“그래요?”
직원이 놀란 것과는 달리 나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레벨이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당연히 등급이 올랐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지난번 결과가 잘못됐었나?’
비록 던전 관리소에서 일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공무원이 되기 위해 이론 공부도 열심히 했던 그녀로서는 이런 일이 결코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이번 검사가 잘못되지는 않았을 테니, 처음 했던 검사에 뭔가 오류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받아들이기가 한결 쉬워졌다.
“자, 여기.”
직원이 갱신된 라이선스를 건넸다. D급이라고 적혀 있던 라이선스는 C급으로 상향되었다.
“고마워요.”
나는 아쉬워하는 표정의 그녀에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다음에 또 올게요.”
이 말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될 가능성이 컸다.
일반적인 게이머들은 주로 같은 던전을 여러 번 방문하는 식으로 수입을 올리지만 나는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같은 던전을 또 오는 것은 지루하고 효율이 낮은 행동일 뿐이다.
다만 지금까지처럼 공략할 던전의 등급을 바로 올리는 것은 힘들 터였다.
던전은 등급이 오를수록 난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니까.
D급 이상의 던전을 암젤과 둘이서 공략하기에는 아직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E급 던전을 몇 개 더 공략할 필요가 있지만 적어도 이 던전을 다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2
점심때가 되기 전에 공략이 끝났기 때문에 오후 일정이 비게 되었다.
택시 차창 밖으로 바라본 하늘에서 게으른 흰 구름이 흘러갔다. 그것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티코이였다.
“응, 영호야. 무슨 일이야?”
최영호는 티코이의 인간 신분일 때의 이름이다.
인간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듣는 귀가 있으니 발언에 조심해 달라는 것.
“주인님, 혹시 무슨 일 있으셨나요?”
“일? 방금 던전 마스터랑 싸우고 나오긴 했는데, 왜?”
“음……. 사실 지금 제가 있는 곳이 던전 안입니다.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 생겨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일단 주인님에게 여쭤보는 겁니다.”
“그래? 던전 안이라고?”
나는 암젤을 흘긋 보았다. 그녀는 좌석 위에서 몸을 말고 졸고 있었다.
“나 한가한데 거기 구경 좀 가도 돼?”
“물론 와주신다면 저야 영광이죠. 그런데 워낙 누추한 곳이다 보니 대접할 게 마땅치 않아서…….”
“그런 건 신경 쓸 것 없어. 어디로 들어가면 되지? 예약하지 않았으니까 입구로는 못 들어가는데.”
“제가 들락거리는 구멍, 아니, 통로가 있습니다. 던전 앞으로 오시면 제가 모시겠습니다.”
“알았어. 도착하는 데 두 시간은 걸리니까 미리 나와 있지 마.”
“넵, 알겠습니다.”
3
내 당부에도 불구하고 티코이는 던전 앞에 나와 서 있었다.
그 모습이 멀리부터 보이는데 어쩐지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우는 개과니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처음에는 또 버림받을까 봐 걱정이 많아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지만 쭉 지켜보니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날 주인으로 떠받드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모양샌데, 그것은 물론 본인의 성향이 크게 작용한 것일 터였다.
‘도를 넘긴 충성심도 겪다 보니 익숙해지네.’
내가 모습을 보이자 영호가 쪼르르 달려왔다.
“주인님!”
“바깥에서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아닌 게 아니라 지나가던 행인 몇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암젤도 마찬가지지만 티코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구석이 있었다.
외모나 옷차림이 반듯하고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밥은 먹었어?”
“넵,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티코이를 따라 던전의 뒤편으로 걸어갔다. 보통이라면 사람이 전혀 접근하지 않을 것 같은 장소다.
수풀을 헤치자 그 안에 외길이 나 있었다. 몇 분 걸어가다 보니 던전의 외벽이 나타났다.
티코이가 벽을 두어 번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벽이 우르릉 흔들리면서 문이 나타났다.
“원래 있었던 거야? 아니면 네가 만든 거야?”
“원래부터 있었습니다. 다들 몰라서 그렇지, 모든 던전에 이런 통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던전마다 비밀 통로가 있다고? 대체 뭐 때문에?
문이 열리고 나타난 공간은 의외로 협소했다. 작은 방 안에 단상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다.
우리 세 명은 함께 단상 앞에 섰다. 그리고 동시에 귀환서에 손을 올렸다.
화악-
나타난 공간은 역시나 던전의 최상층이었다.
키리리릭-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자 아스도라퀸이 줄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심심해서 저러는 건가?’
던전 마스터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티코이가 앞장서서 길을 안내했다.
이번에도 아까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벽을 몇 번 두드리자, 덜컹 문이 열렸다.
이번에 나타난 공간은 다른 의미로 예상 밖이었다. 마치 직급 높은 사무원의 개인 사무실을 보는 듯했다.
고급 자재로 만들어진 가구들이 있고 두꺼운 책이 빼곡하게 꽂힌 책장도 보였다.
“앉으십시오.”
나와 암젤은 티코이의 안내에 따라 커다랗고 푹신한 소파에 앉았다.
곧 방 안에 향긋한 냄새가 가득 찼다.
티코이가 차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다과가 담긴 접시와 함께 그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로열 밀크티입니다. 죄송하지만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요. 다음에 오실 때는 더 다양하게 갖춰놓도록 하겠습니다.”
예의상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미안한 얼굴이었다.
‘로열 밀크티?’
맛을 아직 보지 않았지만 향기는 무척 좋았다. 초딩 입맛인 나는 조심스럽게 그것에 입을 대보았다.
“으음~”
내 입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입에 맞으신가요?”
“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깊은 맛인데?”
“영국 왕실에 직접 차를 공급한다는 곳에서 구입한 물건입니다. 다소 고가입니다만 한번 맛보면 다른 홍차는 마실 수가 없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주인님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물어보았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다는 거지?”
티코이의 안색이 대번에 어두워졌다. 그는 이곳과 연결된 다른 방으로 가더니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보석 상자처럼 생긴 그것을 테이블에 놓고 뚜껑을 열자 그 안에 구슬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은은한 빛이 흘러나오는 구체를 보고 티코이에게 물었다.
“이게 그거야? 던전 코어?”
“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만 효력을 발휘하고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는 물건이죠. 이게 있어야 던전의 생태계가 유지되고 자정작용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코어가 없다면 몬스터들은 자제력을 잃고 밖으로 쏟아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음…….”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구슬을 바라보았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니.
티코이는 신중한 얼굴로 구슬을 한 번 쓰다듬었다.
던전 코어는 순간적으로 밝게 빛나긴 했지만, 그 빛은 깜박이다 이내 꺼져 버렸다.
“코어가 갑자기 제 명령을 듣지 않게 되었습니다. 코어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던전 자체에 구속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요.”
“몬스터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거야?”
“네, 며칠 전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는데 오늘 오전에 불안감이 갑자기 더 커졌습니다. 코어를 꺼내어 보니 이 상태였죠.”
티코이는 정말로 난처한 얼굴이었지만 이 문제는 나로서도 난감했다.
던전 마스터인 그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인데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으음…….”
나는 가만히 코어를 내려다보았다.
가상현실 게임 속에서도 물론 던전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은 순수하게 경험치와 보물을 얻기 위한 장소였다.
그 속에는 코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코어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티코이가 손을 댔을 때보다 더욱 강력한 빛이 발산된 것이다.
더구나 이번에는 빛이 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었다.
티코이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이겁니다! 이렇게 반응해야 정상이거든요!”
‘뭐지?’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나보다 먼저 상황을 파악한 것은 티코이였다.
“주인님, 코어에 손을 대 보십시오!”
나는 그가 하라는 대로 양 손바닥을 코어 위에 얹었다. 그러자 구슬이 마치 태동하는 것처럼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내 손에서 안도를 느끼는 듯 따스한 기운을 발했다.
‘뭐야, 무섭게.’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업적 ‘던전 마스터’를 달성했습니다!]
[퀘스트를 모두 달성한 던전에서 던전 마스터의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해당 던전의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뭐라고?”
나는 예상 못한 상황에 무척 당황했다.
내 반응을 본 암젤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옹?”
“음…… 내가 던전 마스터가 됐다는데?”
내 말을 듣고 티코이가 손가락을 튕겼다.
“역시!”
“응?”
“던전 마스터인 제가 주인님과 주종 계약을 맺었으니 권리가 주인님께 이전된 것입니다. 진짜 던전 마스터는 오직 한 명뿐이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닐 겁니다. 제가 주인님이 계신 곳과 가까운 곳에 출현해서 이 던전에 흘러들게 된 것도 모두 예정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던전 마스터가 된 것도 언젠가 주인님께 지위를 넘겨드리기 위해서였던 거죠.”
티코이의 말은 비약이 무척 심해 보였다.
마치 주인바라기의 입장에서 만들어낸 소설 같았다.
나는 정확한 답을 구하기 위해 암젤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
그녀의 이마에 있는 문신이 반짝 빛났다.
“티코이 말이 맞다옹. 주인님이 던전 마스터가 된 것은 게임의 흐름을 잘 따라왔다는 증거다옹.”
“흐름을 잘 따라와?”
상황이 더욱 알 수 없게 된 느낌이다.
현실로 나온 지가 언젠데 아직도 게임이라니?
눈앞에 또 다른 메시지가 나타났다.
[조성오 게이머는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달성했습니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할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갑자기 BGM이 흘러나왔다.
장엄하고 웅장한 음악.
가상현실 게임을 할 때 이 곡은 스토리의 새로운 장에 들어섰을 때 나오곤 했다.
‘이건 또 무슨…….’
나는 의아한 마음에 메뉴를 활성화했다. 퀘스트를 터치하자 화면이 세분화된 것이 눈에 띄었다.
[메인 퀘스트]
[던전 퀘스트]
‘메인 퀘스트’를 터치했다.
그러자 눈앞에 다섯 개의 퀘스트가 나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