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468 회
< --지금 만나러 갑니다.
-- >
루이넬이 사독의 공작을 압도한다.
비록 모든 마력을 전투용으로 바꾸어서 마법을 쓰지 못하지만. 감정에 사로잡혀 날뛰는 사독의 공작보다 냉정하게 계산으로 움직이는 루이넬이 더 유리한건 당연한 이야기.
초중량 액체를 뿌려도 루이넬은 그것의 궤도를 계산해 피한다. 마법으로 상쇄시킬 필요 없이 그것을 회피할 몸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독의 공작의 한쪽 팔은 잘린 어께 때문에 자유로운 움직임이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밀리는데 팔 한쪽마저 못쓴다는건 정해져 있는 결과.
그저 언제 끝내느냐가 관건이다.
루이넬은 다급해졌다. 시간상 대략 15분쯤 지난것 같다.
다행이 마법이 발동하지 않은것이 누군가 마정석을 빨리 부숴서 여유 시간이 늘었지만. 그 뿐. 시간을 끈다면 그걸로 끝이다.
사독의 공작은 자신의 목숨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루이넬만 죽일 수 있다면 그걸로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단 한번. 단 한번의 틈만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사독의 공작은 루이넬에게 한순간의 기회를 만들어 낼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틈을 만들어 낼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사독의 공작은 기분 나쁘게 웃었다.
"비켜........ 다른때라면 몰라도 지금은 죽이고 싶지 않아. 지금이라도 비키면 그냥 보내줄께"
"마녀주제에 웃기는 개지랄을 하고 앉았네. 내가 그렇게 쉽게 물러났으면 아예 처음부터 오질 않았지"
루이넬은 이미 사독의 공작의 낌세를 눈치챘다. 다만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게 마음을 다잡았다.
긴장에 의해 침을 삼킨 루이넬은 킥킥 거리면서 사독의 공작이 품손에 손을 넣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달려든다.
마지막에, 단 한번의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방어도 무시한채 목숨을 걸고 공격해온다.
사독의 공작의 팔이 그녀의 명치를 향해 뻗어온다.
"선물이다 마녀! 아주아주아주! 네가 그리워 하던거지! 얻느라고 고생좀 했다!"
루이넬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그보다 빨리 손을 뻗어 날카로운 손톱으로 사독의 공작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루이넬의 초점이 흔들렸다.
사독의 공작이 손을 뻗는 순간 쥐고 있던 물건을 허공에 살짝 띄우듯 던졌으니까.
그것은.
피의 일족. 그것도 대대로 로드와 그 직계 혈족만이 쓸 수 있는.
뱀파이어 로드의 인장.
루이넬이 속아서 피의 마왕에게 가져다 주었던.
그녀의 죄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그 인장.
금색과 붉은색의 고풍스런 장식으로 되어 있는, 루이넬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그런 물건.
만약 그때 저 인장을 피의 마왕에게 가져다 주지 않았다면?
400년전에 전쟁도 없이 그녀는 편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까?
이성적인 사고가 깨지고 본능에 가깝게 루이넬은 그 인장을 낚아챘다.
그리고 틈이 벌어졌다.
일순간의 틈이지만 사독의 공작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기에,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루이넬의 명치에 손을 찔러넣는다.
정신을 차린 루이넬은 황급히 사독의 공작의 팔을 찔러 방향을 틀어내지만. 오른쪽 가슴 아래 부분에 그의 손이 박혀들어갔다.
"?..... 아파......"
"하하하하! 하하하핫! 이제 끝이다 빌어먹을 마녀! 나중에 저승에서 만나자!!!"
루이넬은 손을 뻗었다, 마치 야수의 움켜쥐는 듯한 손으로 사독의 공작의 목을 잡아 쥐어 뜯었다.
흉한 모습으로 그의 목이 뜯겨나가고 피가 철철 흐른다.
사독의 공작은 목이 뜯겨져 나가 말을 하지 못하고 꺽꺽거리지만, 여전히 입은 웃고 있었다.
루이넬은 마저 그의 목을 잘라 끝을 내주었다.
악연이 끊어졌다.
그리고.
"큭.........."
루이넬이 움찔거린다. 사독의 공작이 찌른 왼쪽 가슴 아랫부분이 저리다.
녀석이 마지막으로 독을 남기고 갔다.
하지만, 루이넬은 정신을 놓기 전에 위태롭게 걸어가 마정석을 손톱으로 쪼개버린다.
마정석 8개. 전부 파괴 완료.
"마법진이 정지했어. 유동되는 마력도 점점 줄어들고......... 다 부순 모양이다"
나는 한숨을 돌렸다.
이제 안전하다. 이 도시의 마족들 전부.
다만 강렬한 마력의 여파로 건물들이 무너지고 수도가 개판이 된건 좀.........
"수도를 복구하는건........ 더 힘드려나. 잔해를 치우고 해야하니까 오히려 작업량이 많을것 같고"
"차라리 도시 하나를 만드는게 더 나을것 같군"
"그치? 근데 왜 나랑 너는 이렇게 편하게 대화하고 있냐?"
"수도를 잃은 마왕은 마왕이 아니니. 귀계의 마왕은 패배한것이나 다름 없다. 나도 마찬가지로 모시던 자가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런 고로 넌 지금 취업 준비중이라 나한테 아부떠는 거라고?"
"그런것도 딱히 나쁘진 않은가?"
나빠 이놈아.
지금으로 부터 아무리 못해도 20분전만 해도 널 죽이려고 생각했었거든?
귀계의 마왕 끔살시키면 나중에 넌 내 휘하가 되니까. 죽이긴 아깝고 존나 문지기로 부려먹으려고 했거든?
........... 오? 지금도 부려먹을 수 있는거잖아?
좋다.
"도시를 만든다라. 확실히 그게 좋겠네. 건물 잔해 치우려면 견적이......... 반년은 치워야 되겠는데"
"마법적으로 지탱하고 있던 건물들이 많으니까 마법의 유동으로 인해 마력이 틀어져서 무너진 건물들이 대다수겠지. 잔해에서 그나마 쓸만한 마정석이나 그 외의 다른 것들을 제외하면. 차라리 수도를 버리는게 나을 것이다"
"으아아아, 빙염의 마왕의 수도 복구하는데 돈 엄청 들어갔다고. 수도 복구 하느니. 역시 하나 새로 짓는게 낫겠지?"
"그렇겠지"
예전에 빙염의 마왕과 싸울때. 그때 전투 장소는 빙염의 마왕의 수도 체이디온이였다.
거기서 깽판치느라 수도의 90퍼센트 가량이 날아가서. 복구하는데 시간과 돈이 엄청 들어간다.
그나마 깔끔하게 싸워서 건물 잔해 하나 남지 않도록 부순게 대부분이기에 새로 짓기만 하고 복구는 일부만 하면 되는데. 여긴 무너진게 대다수니 치우는것도, 짓는것도 일이다.
차라리 하나 새로 짓자. 음. 깔끔해서 좋겠다.
수도의 인구들이야 대용량 게이트 하나 설치하고 옮기면 된다.
"야, 듀랜달. 일어나. 움직여야지"
"무슨 소린가?"
"너 임마. 존나 쩌는 신체능력은 엿바꿔 먹었냐. 지금 구해달라고 우왕좌왕하는 마족들 목소리 안들려?"
건물이 무너졌으면 필연적으로 그 건물 아래에 깔린 마족들이 있기 마련이다.
부실공사는 아니지만 어쩐지 삼풍 백화점 붕괴 사고가 생각나는군.
"가자, 너랑 나정도면 마력으로 건물 잔해 들어올리는건 일도 아니잖아"
"............... 그렇군. 너는 폭군과 성군의 기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마왕이라는 건가"
듀랜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냈다.
편하게 투구를 아예 벗어버려서 숨을 편하게 쉴 수 있게 한다.
"좋지, 따르겠다"
"호구 하나 얻었다"
".......... 뭐라고?"
아냐, 아무것도.
그런데 뭐라고 할까.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무너진 건물에 마력을 흩뿌려 잔해들을 들어올린다.
보통 이런 고난위도의 행위는 고위 마족만이 할 수 있고. 또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하기에 그중에서도 소수만이 가능하다.
더군다나 나는 겨우 이거 하나 하고 있는게 아니다.
마력으로 무너진 건물 수채의 잔해를 들어올리고. 그림자에서 손처럼 생긴 것들을 쭉쭉 꺼내 부상자를 구출해낸다.
건물 아래에 깔려 있을 사람들을 위해 바람의 천....... 아니 그건 너무 강하니까 바람의 매듭으로 안쪽의 공기를 환기시켜준다.
이 동작을 동시에 행한다. 좀 힘들지만 못할것도 아니다.
전투때는 그냥 마구잡이고 처 날리면 되니까 괜찮지만. 이건 정교한 컨트롤이 필요해서 조금 귀찮다고 할까.
듀랜달도 협조중. 녀석도 고위 마족인데다 진짜 검강을 쓸 수 있으니 마력 컨트롤은 나보다 뛰어날지도 모른다. 정교하게 만든 검강을 마치 피리소리로 뱀 부리는 사람처럼 움직여 마족들을 구출한다. 와, 쩐다.
이런 느낌이려나.
나는 마력을 압축하고 또 압축해 마음을 담는다.
......... 오? 된다. 이제 이 강기는 제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겁니다.
세세한 집중 없이 오로지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게 가능하다.
나는 듀랜달처럼 강기를 길게 뽑아 건물 잔해중에 걸리적 거리는 부분을 잘라내거나 한다. 강기라 크기 제한도 없으니 유용하게 쓰여진다.
".......... 괴물이군. 내 검강을 한번 보고 따라했다는 건가?"
"지난번에 너랑 싸울때야 신나게 치고박고 했으니까 관찰할 여유는 없었으니까. 이번에 보고 한건데?"
"어떻게 하는거지?"
"그냥 감으로"
".......... 괴물이군"
뭐 어때서. 탓할거면 내 능력을 탓해라.
한창 구조 작업을 하면서 나는 아직도 나 뒷통수를 간질이는 불길한 감각이 찜찜했다.
뭐지? 도대체 뭐지?
이 느낌은......... 이전에 후방 기습을 당할때의 느낌과 흡사하다. 즉, 누군가 나 주변 사람들이 다친다는 느낌.
이번엔 누구지? 누구냐........ 아니 좀 달라.
이 느낌은 좀 더 나아간.
........... 이미 위험에 당해 해를 입었다는 그런 느낌이다.
감각 전체를 이 수도, 아니 그 이상으로 넓혀 마정석이 있던 곳 까지 넓힌다.
마룡왕. 무사.
카르덴. 무사.
시엔느. 무사.
라시드. 무사.
로르덴. 무사.
루카크. 무사.
루이넬. 무사.......... 어?
"루이넬?"
루이넬의 기척이 이상하다.
내가 루이넬을 찾았을때는, 부서진 마정석 근처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숨을 몰아쉬는 루이넬이 있었다.
안색이 창백하고 이상한 시큼한 냄새. 그리고 목이 잘린 사독의 공작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는게 보였다.
루이넬은 아마 그와 싸우다 부상을 입었고. 마지막으로 힘을 내어 마정석을 부순 모양.
나는 급히 닥터를 불렀고. 수도의 게이트는 쓰지 못하니 인근에서 이동한 닥터는 노르디아노에 의해 날아왔다.
그리고 나온 루이넬의 상태는.
"위험하네.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가 않아"
"루이넬은 흡혈귀잖아! 직계라며! 재생력이 뛰어난데 왜!!!"
"마비독에 산성독. 거기에 지독한 시독까지. 재생력이 있더라도 독이 지독해도 너무 지독하네"
루이넬이 중독되었다.
지금도 숨을 몰아쉬면서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매는 중이다.
"강력한 독이네. 어지간한 마족은 녹아내릴 정도로 지독한. 그나마 재생력이 몸을 갉아먹는 독을 막고 있어서 버티고 있다지만........ 이대로는 얼마 가지 못하네"
루이넬이 위험하다.
루이넬이 아프다.
루이넬이........ 죽는다.
사독의 공작 이 개새끼......... 죽어서까지. 아니, 이러면 물귀신 작전이냐.
"....... 치료 방법은?"
"독에 특수한 성질이 있는지. 아예 마력 자체를 배제하네. 극렬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 외부에서의 섣부른 간섭은 위험해"
"그렇다는 이야긴. 내가 마력을 주입해서 독을 빼내는건 무리라는 건가"
외부에서 불가능하다는 건. 내부에서는 가능하다는 것.
내부에서는 어떻게?
"막대한 양의 마력. 그것을 내부에서 줄 수 있는 마력의 정수. 하트가 필요하네"
"어느정도?"
"마왕급으로. 아니. 마왕급이라도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적어도 그정도의 하트가 있다면 약간의 마력 정돈 더 받아 들일 수 있으니 괜찮겠지"
나는 인간이다. 마족으로서의 하트는 없다.
루이넬을 위해 해줄 수 없다.
........... 형한테 물어보면. 무림에서 배워온 지식같은걸로 인간의 몸으로도 내단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알 것이다.
"여유 시간은?"
"3시간"
하지만 겨우 3시간이다.
내가 내단을 만들지 못한다고는 생각안한다. 다만 3시간 안에는 빡빡하고 못할 위험이 많다.
아니, 아니,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내 기억중에 족쳐도 될 허약한 마왕. 그것도 지금 수도의 전 마족들을 내버리고 튄 개자식 마왕이 하나 있던것 같은데?
아무리 못해도 마법으로 마왕이 되서 일반 마왕중에 약하다 뿐이지. 마력은...........
"닥터 아저씨. 그놈, 마력은 많겠죠?"
"그놈? 아........... 물론이겠지. 나도 이래보여도 숨쉬면서 자연적으로 모인 마력은 고위 마족에게도 지지 않을테니까"
그렇다면 닥터와 동기인 그놈도.
마찬가지겠지.
나는 누워있는 루이넬에게 시선을 돌렸다.
안색이 창백하고 새하얀 왼쪽 가슴 아랫 부분이 녹색으로 물들어 있어 조금씩 그 범위가 커져간다.
3시간? 그딴거 필요없어.
"10분만 기다려 루이넬"
귀계의 마왕.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이 씨발 새끼야.
============================ 작품 후기 ============================
걱정 마세요. 일단 사지부터 찢고 시작할테니까.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