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The Boss-166화 (16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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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나라 여행 이후 난 혼자 지내기로 결정했다.

    영상 통화보다 더 좋은 궁전 소환이 있었기에 숙모의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궁전으로 초대는 결투 승패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부담 없이 지인들을 초대하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간 또한 느리게 흐르니 더 할 나위 없는 최고의 연락 수단은 갈수록 내 삶을 치고 들어왔다.

    내가 혼자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자 가장 아쉬워하면서 좋아한 사람은 리아였다. 그녀는 미야프를 떠나보내야 한다고 펑펑 울면서도, 선호와 함께 지낼 수 있다고 좋아했다. 물론 그녀는 공사를 깔끔하게 구분하며 날 지원했다.

    혼자 시간을 보내며 계절이 변했다. 동시에 나도 많이 변했다. 더 이상 처음 보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여전히 먼저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나 원장은 이런 내 변화를 반기며 많이 응원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 한 달 간 가장 많이 연락을 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원장이었다. 못해도 이틀에 한 번 정도는 남궁에서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다. 덕분에 여행하는 동안 나는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몽마 사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결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런 꾸준함이 내 가장 큰 장점이라는 듯이.

    다 좋은 것 같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다.

    몽마들은 많았지만 귀족은 없었다. 그나마 랭커들의 도전이 없었다면 결투도 시원찮았을 지도 몰랐다. 그만큼 나는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기피하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몽마를 사냥해 얻은 아이템을 팔아 얻은 경험치는 고작 74,600밖에 되지 않았다. 반면 랭커들과 연이은 결투로 498,070의 경험치를 얻었다. 353번의 결투로 얻은 소득이 3천 마리의 평민 몽마와 52마리의 귀족 몽마를 사냥한 것보다 나았다.

    90만이 넘는 여유 경험치가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신기를 성장시키지 않았다. 어차피 활력을 조금 더 올려봤자 별 의미가 없었다. 완전히 공격적으로 가닥을 잡았기에 더욱 그랬다.

    물론 변한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지난달 우승 보상으로 받은 시큼한 사탕을 바로 사용했다. 그렇게 2개의 스킬을 습득 취소했다. 바로 구강 삽입과 도둑 숨기였다. 속옷 도둑도 썩 필요하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기에 일단 배워 놓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7개의 기술치를 확보한 나는 마구자비로 기술을 배우지 않았다. 이제는 좀 여유를 가지고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기에 나는 한 가지 기술을 배우고 4개의 기술치를 남겨 놓았다. 그 한 가지 기술은 바로 색기 방어였다.

    패시브 스킬인 색기 증가와 쌍둥이 스킬인 색기 방어는 악마형 몽마에게 받는 피해를 30%나 줄여주는 기술이었다. 일반 몽마라면 별 효용이 없겠지만, 왕족 몽마를 상대할 때는 꽤 든든할 것 같았다. 한 달간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숙련도가 3성까지 올랐다.

    "그나저나 깔끔하네."

    거의 두 달 만이었다.

    일전에 여름달을 사냥하러 갈 때 이후로 일이 꼬이다 보니 자꾸 밖으로 떠돌았다. 그런데도 집안은 깨끗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청소해주는 아주머니에게 보너스를 주기로 결심하며 일단 씻었다.

    정말 오랜만에 편안하게 목욕을 하니 머리까지 시원한 착각이 들었다. 샤워를 끝내고 냉장고에서 꺼내먹는 캔 맥주 하나가 그렇게 달달할 수 없었다.

    "그냥 아주머니 두 분께 보너스를 드려야겠네."

    냉장고가 잘 정리되어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실없는 소리를 하며 소파에 앉아 여행의 성과를 점검해 보았다.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잡아 끈 건 기술의 숙련도였다.

    그동안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기술 숙련도가 꽤 올랐다. 아니, 이제는 10성이 아닌 기술을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2성의 속옷 도둑, 3성의 색기 방어, 7성의 활력 치료. 마지막으로 8성의 백수 투하까지.

    이 4개의 기술을 제외하면 모든 기술이 10성에 다다랐다. 사냥뿐만 아니라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근처 허수마비를 잡은 게 은근히 도움이 됐다.

    지독한 노력 덕분에 근력, 속도, 정확을 올려주던 성기 강화는 30%에서 45%로 성능이 증가했다. 속도 증가는 60%로 올랐고, 광속 자지술은 2회로 늘어났다. 강약 조절 또한 방어력과 항마력이 10% 증가하는 옵션이 추가되며 은근한 보탬이 됐다.

    "그래도 범용 기술보단 특화 기술이지."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변화는 특화 기술의 진화였다. 맞아 줄래는 1.5배에서 2배로, 무기 연구는 30%에서 50%로, 동공 확장과 혈류 증가는 근력 50%와 타격력 50%로 올랐다. 이는 그 전체적으로 내 힘이 2배 이상 강해졌다는 걸 의미했다.

    다만 백수 투하는 여전히 지지부진한 감이 있었다. 총력을 기울였지만 기술 자체가 가진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게 어디야? 이정도만 해도 개사긴데, 뭐."

    고작 한 달 사이 성장했는지 과욕이 사라졌다. 그냥 담담했다.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이.

    이게 다 모의 전투 덕분이라면 덕분이었다.

    모의 전투.

    10성짜리 기술이 5개가 되는 순간 생긴 새로운 시스템이자, 일종의 미니 게임이라 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사냥했던 몽마와 모의 전투가 가능했다. 물론 실제 섹스 배틀처럼 머리싸움을 벌일 수는 없었기에 과신하는 건 좋지 않았다.

    "그래도 데미지 시뮬레이션은 정확하니까."

    나는 남궁 태후를 모의전 대상으로 삼아 모의전을 시작해 보았다. 이 덕분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남궁 태후는 삽입 공격에 당하면 바로 다음 턴에 자살하는 경우가 있었다.

    처음에 이걸 알고 얼마나 놀랬는지. 진짜 식겁했다는 말이 딱 어울렸지.

    그때 당시를 떠올린 나는 핸드폰 화면을 게임하듯 조작했다. 모의 전투의 주요 기능을 사용해 게임하듯 전투를 진행해도 됐지만, 그것보다는 정확한 수치를 아는 게 더 나았다.

    이윽고 핸드폰 화면에 간략한 정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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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력 : 2,015

    + 마법력 : 180

    + 명중률 : 23

    + 회피율 : -58

    + 치명도 :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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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 공격 : 6,850 ~ 9,267

    + 치명 공격 : 76,722 ~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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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궁 태후와 전투 시 적용되는 내 정보였다. 버프를 사용했음에도 타격력이 2천을 간신히 넘었다. 그 말은 곧 남궁 태후의 방어력이 700이 넘었다는 걸 의미했다.

    여기에 종족 추가 피해 100%, 기술 증폭 피해 200%가 더해져서 총 300%의 추가 피해 효과가 생겼다. 기본 2천의 데미지에 6천의 데미지가 더해져 내 평타 공격력은 8천정도가 나왔다. 여기에 15%의 증감 폭이 있어 6천대 후반에서 9천대 초반의 편차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최종 산출된 기본 데미지는 치명타가 터질 때마다 500%에 달하는 치명 증폭으로 인해 최대 10만이 넘는 어마 무시한 한 방 데미지를 만들어냈다.

    이론상이기는 했지만 남궁 태후에게 1회전동안 최대 110만의 피해를 끼칠 수 있었다.

    110만은 개뿔이.

    남들이 보면 사기라고 울부짖을 데미지였지만, 나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미간을 찌푸렸다. 꿈속에서나 나올 데미지보다는 현실에 놓인 명중률과 회피율이 눈에 더 들어왔다.

    특히 23%의 명중률이 더욱 날 얼어붙게 만들었다.

    "진짜 운이 좋았어. 그때 미스가 났으면……. 어휴."

    내 명중률이 낮은 건 아니었다. 남궁 태후가 너무 말도 안 되게 높았을 뿐이었다. 이유야 어찌됐든지 나는 다시 남궁 태후와 붙으면 사냥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자살하니 지지는 않겠네.

    썩 위안이 되지 않는 생각을 떠오르기 무섭게 지운 나는 한참을 말없이 화면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정확을 찍어야 하나."

    나는 정확을 하나도 찍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버프를 받아도 명중률이 아니 늘어났다. 그나마 명중 100을 올려주는 업적이 있었기에 이렇게 버틸 수가 있었다.

    필요성을 느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좀 그렇지."

    지금 내 체력은 95였다. 이제 다섯 개만 더 찍으면 새로운 효능이 나올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명중을 찍더라도 그 이후에 찍어야했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한 만큼 더 강해졌지만, 여전히 내게는 약점이 남아 있었다.

    혹시나 싶어 경매창과 매매창을 모두 뒤져보았다. 역시나 없었다. 능력의 책은 벌써 몇 달 째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현 씨가 구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황금 인맥을 가지고 있는 모지현도 이제는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가 그럴 정도라면 아예 씨가 말랐다고 보는 게 맞았다. 차라리 유혹의 황금 향로를 구해 왕족 몽마를 사냥하는 게 더 낫지 싶었다.

    문제는 황금 향로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지만.

    "선물 상자를 까면 좀 나올까 싶었는데. 아, 맞다. 공물 궤짝. 깜빡했네."

    뒤늦게 저번 달 자유 임무 우승 보상이 떠올랐다. 괜히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보관창을 열어 보았다. 제대로 들어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황금 공물 궤짝이 보였다.

    대충 오래된 황금 궤짝인가 싶었는데, 설명을 읽어보니 그건 또 아니었다.

    그게 그냥 아이템이면, 이건 캐시 아이템이었다.

    "그래봤자 확률 장난을 쳤겠지."

    그리 큰 기대는 들지 않았다. 어차피 도박성이 짙은 아이템이었다. 사행성 아이템 치고 제대로 된 걸 못 봤다.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여 핸드폰 화면에 있는 황금 공물 궤짝과 선물 상자를 연이어 눌렀다.

    ['만능 복사기 1개'를 획득합니다.]

    [업적 '언어의 마술사'를 획득합니다.]

    "……어. 잠깐만. 업적이라고? 업적?"

    순간 정신이 멍했다. 상자에서 업적이 튀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업적창을 열어 보았다.

    [언어의 마술사]

    확실히 비활성화 되어 있는 업적 하나가 있었다. 절로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다.

    한동안 인생의 허망함을 아는 노인의 모습으로 지내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정신을 차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업적 정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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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의 마술사]

    + 동족의 모든 언어 사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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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그 언어가 그 언어였나?

    짤막한 업적 정보를 확인하는 순간 실소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기대가 너무 처참히 깨진 탓이다. 나는 언어라기에 섹스 랭귀지를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말 그대로 언어였다.

    전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통역 아이템이었다.

    "……괜찮아. 잘 된 거지. 남들은 피똥 싸가면서 공부하는데. 난 그냥 업적만 끼우면 되잖아?"

    잘되기는 무슨.

    통역이 필요하면 돈 주고 통역을 구하면 됐다. 굳이 내가 공부할 필요가 없었다. 차라리 허접한 옵션이라도 전투와 관련된 것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음울함을 애써 털어내며 나는 황금 공물 궤짝에서 나온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다.

    그 순간 내 눈이 부릅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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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능 복사기]

    + 성투 물품 복사 가능.

    + 제한 없음.

    + 사용 시 소멸.

    --------------------

    짧고 굵다.

    이 말은 꼭 만능 복사기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만큼 엄청난 아이템이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나는 만능 복사기의 성능을 확인하기 무섭게 상징창부터 열었다.

    "어떤 걸 복사할까? 여왕들? 아니. 아니지. 그보다는 하나뿐인 헐벗은 선녀가……. 잠깐만."

    만능 복사기로 복사할 상징을 고민하던 와중 내 머릿속에 벼락이 쳤다.

    나는 상징창을 닫고 만능 복사기의 설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았다. 내 눈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보스의 개발자는 복사의 위험성을 모르는 블리자드 직원 같았다.

    "제한이 없다. 제한이 없다라……."

    내 머리가 위험에 처한 바퀴벌레처럼 파바박 돌아갔다. 꼼수에 한해서는 바퀴벌레의 생존 본능 못지않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능 복사기의 정보창을 닫고 물품창도 닫았다.

    그 대신 업적창을 열었다.

    치명 증폭 10%의 몽마 사냥꾼, 치명 증폭 20%의 몽마 집행자가 보였다. 두 업적 중 몽마 사냥꾼은 평민 몽마를, 몽마 집행자는 귀족 몽마를 사냥하여 얻은 업적이었다.

    "그리고 사냥꾼은 666마리, 귀족은 66마리. 아니, 69마리였나?"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았지만 내 추측은 변하지 않았다. 이 뻔히 보이는 규칙과 동일성을 가진 업적은 왕족 몽마에게도 적용될 게 분명했다.

    "조만간 왕족 몽마가 또 나오겠지. 그러면 그때 업적을 얻고 조합하면. 그러면 못해도 치명 증폭 100은 올리겠지?"

    전혼을 복사해 보았자, 치명 증폭 10%를 올리는 게 전부였다.

    내가 생각해도 묘수였다.

    나는 실실 웃으며 보스 앱을 껐다. 이내 메신저를 켜고 나 원장에게 자랑을 했다. 이제는 예전처럼 돌아간 것 같아 부담감이 없었다.

    [나 쌤. 나 대박 터짐요. 템 카피 할 수 있음. 쩔지?]

    나 원장의 답장이 바로 날아왔다.

    [올. 부럽다. 그걸로 신기 복사해서 하나 넘겨!]

    축하와 장난이 뒤섞인 글자들에서 나 원장의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웃을 수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은 채 죄 없는 침대를 두드렸다.

    "……똑똑하기는 개뿔. 병신이네, 상병신이야."

    내게는 신성 무구 제작 퀘스트가 있었다.

    하나만 더 모으면 끝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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