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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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부터 나는 잠수를 탔다.
내 예상대로 기자들은 끈질겼다. 그들은 금세 내 정체를 밝혀냈고, 삼촌은 덩달아 바빠졌다. 인터넷에 슬그머니 내 이름 석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의 한적한 별장에서 여유를 만끽하던 나는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실소가 절로 나왔다. 박고영 세 글자가 어제부터 오늘까지 연신 포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로 등록되어 있었다.
"삼촌이 막는다고 해도, 결국 막는 건 불가능하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인간들도 있거든. 근데 형 어쩌냐? 이름 팔렸으니 얼굴도 팔릴 텐데."
나와 함께 선배드에 누워 가을에 일광욕을 즐기던 선호가 대낮부터 이름 모를 칵테일을 마시며 끼어들었다.
하여튼 이 자식은…….
여전히 분위기 파악 못하는 선호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려다 말았다. 요 며칠 너무 팼더니 좀 미안하기도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동생이니까.
"삼촌한테 말은 해 놨어. 이름이야 어차피 힘들 거고. 사진이라도 막아 달라고. 어차피 내 사진을 구하는 건 어려울 테니까."
"역시 형은 음흉하다니까."
"내가 뭘?"
"아버지한테 그랬을 거 아냐. 이름을 던져주고 사진을 막자고. 아냐?"
이 자식이 이렇게 눈치가 빨랐나?
선호의 말 대로였다. 나는 사진은 몰라도 이름까지 막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안전하게 내 얼굴을 막는 게 낫지 싶었다.
물론 가능성은 여전히 낮았다.
리아도 같은 생각인지 작은 수영장에서 올라와 가운을 걸치며 대화에 동참했다.
"그래도 힘들 거예요. 한국 기자들뿐만 아니라 유럽 기자들도 고영 씨 정체를 밝히려고 난리거든요. 이번에 겨우 꼬리를 잡았으니. 아마 어떻게든 알아낼 걸요?"
"그래도 힘들 걸요? 형 사진 찍는 거 진짜 싫어했어요. 인터넷은커녕 형 컴퓨터 속에도 형 사진이 없을 걸요? 아니. 고영이 형. 형 집에 형 사진이 있나?"
"없……. 을 걸?"
내 대답에 선호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리아를 바라보았다. 리아는 선호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작게 웃어주며 녀석의 옆에 있는 선배드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둘이 많이 친해진 거 같았다.
나는 머리 아픈 고민을 지우며 화제를 돌렸다.
"그거야 삼촌네 로펌이 알아서 하겠지. 잘되면 좋고. 안되면."
"안되면?"
"어쩔 수 없지. 그냥 고소 때리는 수밖에."
선호는 내 대답에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도 내가 낯가림이 심하다 못해 병적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평소와 달리 쓸데없는 말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사냥 안 하냐? 그 렙에 술이 넘어가?"
"……형. 나 일주일 동안 죽어라 사냥만 했어. 그리고 리아 씨도 좀 쉬어야지. 진짜 죽겠다니까?"
"그래서 렙 몇인데?"
"……24."
"장난 하냐?"
선호가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런다고 약해질 내 마음이 아니었다. 사실 파티 사냥으로 이정도 올린 거면 준수한 속도였다. 다만 그것이 선호를 풀어줄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어찌됐건 이 녀석은 쪼렙이니까.
나는 선호의 옆에 앉아 있는 리아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어때?"
"아직은 무리에요. 아니면 고영 씨가 스탯 리셋 아이템을 구해주면……."
"열심히 해. 나중에 보너스 두둑이 챙겨줄 테니까."
내게 금화 20개가 있는 걸 알고 있는 리아가 은근히 날 압박했다. 거기에 무너질 내가 아니었다. 아무리 선호가 소중해도 나보다 더 소중할 수는 없었고, 금화 20개는 내게 일종의 최후의 보루와 같았다.
물론 선호의 스탯을 리셋 시켜 줄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녀석이 제대로 랭커가 되려면 그렇게 해선 안 됐다. 어차피 레벨은 금방 올릴 수 있었기에 나는 선호에게 많이 경험할 것을 요구했다.
나름 선호도 끈기가 있었다. 녀석은 이렇게 쉬는 것 같아도 숙련도 수련에 열심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와 좀 반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형은 강한 몽마를 잡고 광렙 했다며? 나도 그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어느 세월에? 그리고 너 기술 숙련도가 너무 낮아. 지금은 숙련도 노가다하는 게 나아. 괜히 업해 봤자, 숙련도 올리기만 불편해져."
"음. 그건 고영 씨 말이 맞아요. 고영 씨도 숙련도 때문에 고행 꽤 했거든요."
"진짜요? 형이 고생했어요?"
리아가 대화에 끼어들더니 어느새 지들끼리 날 주제로 떠들기 시작했다.
절레절레.
나는 시끄럽게 떠드는 두 사람을 피해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별장이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그냥 한적한 동네에서 좀 떨어진 전원주택에 더 가까웠다.
삼촌이 별장이라고 해서 별장이라 한다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지. 나름 수영장까지 딸려 있으니까."
하여튼 삼촌은 스케일이 작아서 문제였다.
홀로 내 방에 돌아온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여름달을 사냥하고 얻은 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 시작은 상징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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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 여왕의 상징]
+ 고결하고 순수한 장난꾸러기의 마음.
+ 타격력 50%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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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달은 타격력, 마법력, 증폭력의 3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당연히 타격력을 선택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특성이니까.
그렇게 추출한 여우 여왕의 상징은 트루드와 꽤 달랐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냥 두 가지 모두 내게 더 없이 좋았다.
뿌듯한 얼굴로 상징창을 둘러본 나는 이내 보관창을 열어 여름달을 사냥하고 얻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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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달의 사악한 미소]
+ 무더운 여름에 떠오른 서늘한 달무리.
+ 활력 1,500 상승.
+ 타격력 500 상승.
+ 마법력 500 상승.
+ 치명 증폭 20% 증가.
+ 마법 증폭 20%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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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장도 형태인 이 왕족 아이템은 그냥 공격 일변도였다. 그나마 활력이 붙어 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다만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이거 볼 때마다 속이 쓰리네.
상징 추출 할 때 알 수 없었던 증폭력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뒤늦게 후회가 밀려왔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은 법이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트루드의 마법 방패처럼 범용성이 높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것을 팔아도 크게 찝찝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물론 팔기 전에 3차 성장을 모두 내 마음대로 완료 해야겠지만.
일단 타격력과 치명 증폭만 해 놓을까? 활력까지 하기에는 돈이 좀 부족한데.
지난 열흘간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나 원장에게 조언을 구해 봐도 딱히 결론이 나지 않았다. 팔 때 가격을 위해서라면 아예 성장을 시키지 않는 게 나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난 10일 동안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건 아니었다. 이미 마음속으로는 거의 넘어갔다. 타격력과 치명 증폭을 성장시키기로.
"아무래도 팔 때를 생각하는 것보다 쓸 때를 생각하는 게 낫지."
게다가 나와 상성을 갖는 지력 기반 참가자들이 사용해도 걱정이 덜할 것 같았다. 괜히 이걸 팔았는데 마법력이나 마법 증폭을 3차 성장시키면 나만 찝찝할 테니까.
"에효……."
집중력이 깨질 만큼 내 한숨 소리가 컸다.
언제나 문제는 돈이지. 돈.
경험치가 부족했다.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경험치는 30만이 겨우 넘었다. 물론 그동안 사냥을 해서 얻은 게 있었지만, 그건 모두 선호를 위해 써버린 상태였다.
2차 성장까지는 어찌어찌 한다고 해도 3차 성장은 지금 당장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트루드의 마법 방패를 호콘 왕세자에게 팔기도 뭐했다.
"결국 써봐야겠네. 어떤 게 나은지 알아야, 결정을 할 수 있으니까."
결론이 나왔다.
나는 그대로 여름달의 사악한 미소를 강화했다. 다행히 강화제는 여유가 있었고, 10강한 덕분에 타격력과 마법력이 600으로 늘어났다. 성장할 경우 850까지 늘어나기에 확실히 공격력 하나는 끝내줄 것 같았다.
문제는 터무니없는 왕족 몽마들의 공격력이지만.
나는 신기를 교체하기 전 상태창에 비교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여름달의 사악한 미소를 신기로 등록한 후 변한 상태창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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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력 : 6,770(-2,250)
+ 정력 : 2,875(-1,500)
+ 경험 : 300,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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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력 : 1,782(+600)
+ 마법력 : 7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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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력 : 170(-350)
+ 항마력 : 5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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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중률 : 236(0)
+ 회피율 : 2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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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명도 : 79(0)
+ 치명 증폭 : 432%(+72)
+ 치명 저항 :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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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용한 게 억울할 정도였다. 이 또한 왕족이 되며 새로 생긴 작은 기능 중 하나였다. 덕분에 일목요연하게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 활력과 정력 손실이 꽤 컸다. 방어력과 항마력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타격력이 크게 늘었다.
특히 날 사로잡은 건 증가한 치명 증폭이었다. 20%의 증가분만으로도 72%의 치명 증폭이 올라갔다. 성장을 시킨다면 여기에서 36%의 치명 증폭이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결론이 나왔다.
"개성이 없으면 죽은 거지."
떨어진 활력, 떨어진 방어력, 떨어진 항마력. 분명 내 탱킹 능력이 낮아진 건 맞았다. 다만 나는 몸빵을 하는 탱커가 아니었다. 나는 딜러였다.
내게 중요한 건 방어력 따위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강력한 한 방을 때릴 수 있는 공격력이었다.
결심을 굳혔지만 그래도 돌다리를 두드릴 생각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이윽고 다시 눈을 감은 나는 이번에 한 아이템 정보를 눈앞에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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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황금 향로]
+ 왕족 몽마 소환.
+ 사용 후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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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자유 임무의 우승하는데 생길 수 있는 유일한 변수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유일한 변수가 내 손안에 있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디서 사용한다? 아무데서나 사용하면 난리 날 텐데."
걱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유혹의 황금 향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넓은 공터가 필요했다. 최소한 여름달이 가진 권역보다 넓은 공터가.
그게 문제였다.
인구밀도 하나는 남부럽지 않는 우리나라는 그만한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나마 산악 지역이나 외진 시골이면 가능하겠지만.
"아니지. 그런데는 부대가 있잖아?"
군대는 여전히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리아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았다. 어차피 이번 달 안에 사냥하면 됐기에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문제가 날 망설이게 했다.
95의 체력.
여름달은 강한만큼 세 마리의 왕족 몽마 중 가장 부자였다. 다만 공격성이 아이템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런지 여름달은 기술과 능력의 책이 아니라 능력의 책 2권을 남겼다.
당연히 난 바로 능력의 책을 사용해 내 능력치를 높였다.
그 결과가 바로 100까지 5개 밖에 남지 않은 체력 능력치였다.
일전에 체력 50을 돌파하며 획득한 추가 효과는 나름 쏠쏠했다. 회복력이 1.5배 늘어난 덕분에 왕족 몽마 사냥이 수월했던 점도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체력 100이 되면 어떤 변화가 있을 지 궁금한 건 당연했다.
"소환하기 전에 체력을 100까지 채우고 싶은데. 뭐, 업적이야 없겠지만."
조급함이 드는 걸 어찌하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밖으로 나가 리아를 부려먹었다. 물론 요즘 따라 심상치 않은 눈치를 보이는 선호가 투덜거리는 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리아에게 일을 시키지 않을 순 없었다.
리아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쉽진 않겠지만, 한 번 알아볼게요. 그래도 꽤 많은 경험치를 줘야 할 거예요. 가장 최근에 거래된 게 15만이었대요."
"……미친."
"정말 미쳤어요. 부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니 시세가 점점 개판이 되는 거 같아요."
나와 같은 생각인지 리아도 독설을 뿌렸다. 덕분에 선호가 멍해졌지만.
"아무튼 그래도 알아 봐 줘. 부탁해."
"네. 염려마세요. 그런데 고영 씨."
"응? 왜?"
"귀족 몽마 리포트는 좀 어려울 거 같아요. 요즘 씨가 말랐거든요."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계속 정보는 넘겨 줘.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네. 그거야 당연하죠. 혹시 계획하시는 일에 차질이 생길까 말씀드리는 거예요."
지난번에 딱 한 번 실수한 뒤로 리아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똑 부러지는 모습에 나는 안심이 됐다.
그 대신 새로 합류한 녀석 때문에 불안감이 생겼다.
내가 시킨 일을 하기 위해 방으로 향하는 리아를 따라가려는 선호의 목덜미를 잡으며 나지막이 주의를 주었다.
"일하는 애 방해하지 말고. 사냥이나 다녀 와. 언제까지 리아한테 빌붙을 거야?"
"……알았어. 나도 양심이 있다고."
굳이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나는 선호를 믿었다. 이 녀석이 아무리 철이 없어도 개족보를 만들 거라 여기지는 않았다.
잠시 후 선호가 사냥을 위해 별장을 나섰고, 리아도 자료 조사를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그렇게 집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집중하고 여름달을 사냥할 때 떠올랐던 영감을 만지작거렸다.
저마다 할 일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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